요즘 한창 유행하는 인문학적 주제들을 풀어 놓은 책이다. 주제를 매우 심도 있게 다루고 있기보단 책의 제목처럼 퇴근길에 후다닥 읽을 수 있도록 가볍게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잘 읽어 놓는다면 어디가서 아는 척하기는 딱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은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책이다. 퇴근길 인문학인데, 나의 퇴근길은 책을 펼쳐들 틈도 없이 짧은 편이다. (길을 걸으며 책을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 아무튼 다시 말하지만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읽으며 인문학이라는 것도 별것 아니군! 이라고 느낀다면 저자의 의도는 매우 성공적인게 아닐까?
책의 주제는 크게는 3가지이다. 1인 생활자, 개인과 사회, 소확행이라는 주제이다. 이것들을 주제로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자존감, 과식사회, 여행, 북유럽, 뇌과학, 콤플렉스 등을 다루고 있다. 목차를 보고 있자면 '어?' 한번쯤은 들어 본 것 같은데 라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그렇다. 몇 년째, '트렌드 코리아'라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거나 한창 베스트 셀러에 올랐던 책들이 다루었던 주제들이다. 물론 중간중간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있다. 다이어트로 고민중인 사람이라면 과식사회라는 주제를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다이어트 팁을 얻을 수도 있고 왜 살을 빼기가 힘든지도 나와있다.
그리고 의외로 마음에 들었던 주제 중 하나는 여행과 취향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나는 여행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나 해외 여행 시 그 비좁고 불편한 좌석과 건조한 공기는 마치 고문실에 나를 버려둔 것 같다. 그리고 탑승을 위해 기다려하는 긴긴 시간들은 어떻고! 라고 불평을 하며 차라리 구글 어스나 볼란다라고 말을하면 마치 나를 야만인 보 듯 바라보는 시선들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여행을 다루면서도 꼭 떠날 필요는 없다는 내용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취향의 주제대로 그것은 틀림이 아니라 다름일 뿐이다.
사르트르와 함께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이다. 카뮈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유명한 책이기도 하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 책에 대한 감성도 섰을 텐데, 요 근래 그 동안의 번역이 잘 못 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새로운 번역본으로 출간도 되면서 한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2. 줄거리
이야기는 뫼르소의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뫼르소의 반응은 무척이나 담담하다. 아니 어머니의 죽음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얼이 빠진 듯 멍해보이기도 한다. 그는 사람들의 동정과 배웅을 받으며 어머니가 머물고 있던 양로원으로 간다.
양로원의 원장을 만나고, 그곳에서 어머니의 지인을 만나고 장례를 치른다. 양로원 원장은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뫼르소에게 이것저것 권하지만 뫼르소는 따르지 않는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뫼르소에게 어머니의 죽음이란 그저 하나의 특이한 사건일 뿐인 것 같았다.
서로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지만 마치 지난밤이 우리들의 친밀감을 두텁게 만든 것 같았다.
아름다운 하루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야외에 나가 본 일이 없었다. 엄마 일만 아니었으면 산책하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인정상의 문제거든요.
장례식이 끝나고 뫼르소는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는 바다가에서 전에 함께 일한 적이있던 마리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
나는 일요일이 다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처럼 일터에 복귀한 뫼르소를 사장은 친절히 대해줬다. 그는 살갑게 어머니의 나이를 묻지만 뫼르소는 제대로 대답을하지 못한다.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보다 그를 더 기분 나쁘게 한 것은 저녁에 흠뻑 젖은 채 걸려있는 회전식 수건이었다.
퇴근 후, 집으로 향하던 그는 어둑한 층계에서 스패니얼 개와 함께사는 살라마노 영감과 만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레몽 생테스라는 남자를 만난다. 살라마노 영감은 다른 사람들엑 '불쌍한 사람' 취급을 당하는 남자이고 레몽은 다른 이들에게 '경멸'을 당하는 부류였다. 두 사람들 주변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뫼르소는 레몽의 치정 이야기를 듣는다. 뫼르소는 레몽을 대신 해 정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그와 친구가 된다.
일주일이 지나고, 뫼르소는 마리와 만난다. 그리고 저녁 레몽이 정부를 폭행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호되게 당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 앞이라 당당하려 했지만 무척 비굴한 모습이었다. 후에 레몽은 뫼르소에게 그의 정부가 그에게 '버릇없이 굴었다.'라고 경찰에 증언해 줄 것을 요청했고 뫼르소는 그것을 받아 들였다.
그날 저녁 살라마노 영감은 그의 유일한 동반자였던 개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렸다.뫼르소는 그에게 동물보호소에 찾아가라는 충고를 해준다.
엄마 생각이 났지만 이튿날 아침에 일ㅇ찍 일어나야 했고 배도 별로고프지 않아 저녁도 굶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레몽이 회사로 전화를 걸어 뫼르소와 여자친구를 친구의 별장에 초대했다. 그리고 아랍인이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장이 파리 출장소에 갈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한다.
사장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 생활을 바꿔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저녁에 마리가 뫼르소에게 자신과 결혼 할 생각이 있냐라는 질문에 '그녀가 원한다면'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 살라마노 영감을 만나 그의 인생사와 하소연을 듣는다.
일요일, 레몽과 만나 마리와 함께 그의 친구 마송의 별장으로 간다. 그리고 레몽을 미행하고 있다는 아랍인과 마주친다. 별장 앞 바다에서 물놀이를 즐긴다. 점심을 먹고 바닷가를 거닐던 중 아랍인들과 마주쳐 싸움이 일어난다. 레몽은 여기서 칼에 상처를 입는다. 분에 찬 레몽은 다시 바닷가를 나가고 아랍인과 또 조우한다. 레몽이 총을 쏘려하지만 제지당하고 총을 뫼르소에게 맡긴다. 아랍인들은 도망간다.
다시 별장 앞으로 돌아오지만, 뫼르소는 홀로 바닷가로 향한다. 다시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뫼르소는 칼을 들고 자신을 위협하는 아랍인을 쏜다.
하지만 한 걸음을, 다만 한 걸음을 옮겼을 뿐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칼을 뽑아 태양빛에 반짝이며 내게 겨누었다. 강철 위에서 빛이 반짝 튀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내 이마를 쑤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고 한낮의 균형, 행복을 느끼던 바닷가의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 총알은 보이지도 않게 깊이 박혔다. 마치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 같았다.
여기까지가 1부의 내용이다. 2부는 체포 된 후 심문과 재판 그리고 그 사형으로 이어진다. 2부에서도 그의 특이한 모습들이 드러난다.
3. 마치며
2부 줄거리는 뭉텅 짤라내고 마무리로 넘어와 버렸다.
1부의 모습과 2부의 모습은 상당히 차이가 난다. 1부에서는 뫼르소가 굉장히 이상한처럼 여겨진다. 외부자극에는 철저히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는 듯 하면서도 그러나 자신의 내적 욕망은 충실히 따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시 여기는 관습 같은것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인지 편견도 없어 남들이 기피하는 인물들까지 자연스럽게 받아 들인다. 대체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2부에서는 그를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상해 보인다. 그를 재판하는 사람들은 1부에서 독자들이 공감 했을 만한 내용들을 비판하며 뫼르소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런데 그 사형을 선고하는 죄목은 아랍인을 살해한 것에 대한 것이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무언가 이상하다.
검사는 뫼르소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념을 말하며 뫼르소가 자신의 인생을 부정한다고 말한다.
그게 그의 신념이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의심한다면 그의 삶이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했다.
"당신은 내 인생이 무의미해지길 바랍니까?"
간수와 기자들은 자기내들끼리 시끄럽게 떠들고 기자들은 뫼르소에게 일이 잘 풀리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의 기사는 다르지만.
"우리들은 당신 사건을 좀 부풀려서 썼어요. 여름철은 신문사에겐 불황기거든요. 기삿거리가 될 만한 건 당신 사건과 직계존속살해밖에 없었어요."
"도대체 피고는 어머니를 장례 치른 것으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죄로 기소 된 것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나는 이자가 냉혹한 범죄자의 마음을 갖고 자기 어머니를 묻었기 때문에 이 사람의 유죄 또한 주장하는 것입니다."
뫼르소는 마치 구경꾼처럼 자신의 재판을 바라보다. 사형수가 된 이후로도 자신의 삶에 온전히 집중한다. 그에게 있어서는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왜냐하면 삶의 끝에는 모두 죽음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깨닫는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보고 싶어졌던 게 틀림없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 마치 형제 같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책의 내용은 저자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이 사람은 대체 어쩌다가 이런 험한 일만 골라서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수준이 어느정도냐면 이 책 하나를 내기 위해 그 많은 경험들을 한 것일까? 라는 의심이들 정도다. 실제로 저자는 이 책을 낼 때도 도배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책은 어두운 주제와 내용과 다르게 표현과 문체가 제기발랄해 쉽게 쉽게 읽히고 가끔씩은 웃기기도하다.
2. 책의 줄거리
책은 누군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궁금해봤을 고기잡이 배의 일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서울의 직업 소개소에서 일을 소개 받고 진도의 한 항구로 내려간 저자는 그곳에서 여러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궁벽한 어촌에 대해 굉장히 상세히 설명을 해준다. 직업 소개소에서 말하는 소득은 온데간데 없고 과연 21세기에 벌어지는 일일까 싶은 문명과는 굉장히 동떨어진 것 같은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제대로 돈을 못받는 건 기본이다.
그 다음은 고시원과 편의점, 주유소이다. 여기서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애환이 상세하게 묘사된다.
세번째는 돼지농장의 똥꾼이다. 사실 여기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곳이라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요즘 꽤 많은 이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채식주의자로 전환한다. 그런데 과연 그 가혹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인간들은? 여기서 최초로 외국인 노동자가 등장한다. 웃기게 인간은 더 떨어질 곳이 없을 것 같은 바닥에서도 서로 층을 분리시킨다. 그리고 자동화가 언급되며 이 최악의 일조차 점차 없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네번째는 농촌의 비닐하우스다. 이곳 고용주들은 참 선량한 사람이다. 일을 제대로 못하는 주인공을 감싸주고, 주인공의 반발에 눈물 짓기도 하고 그의 환경을 개선해주기 위해서도 노력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선량함과는 별개로 돈과 일 문제에 관한 고용주와 고용인이 얼마나 커다란 간극이 있는지를 아이러니 하게 보여준다.
마지막은 자동차 부품업체이다. 소위 하청이다. 그것도 메이저급 벤더가 아닌 거의 가장 끝단에 위치한 벤더 같다. 여기서는 파견직과 외국인 노동자의 애환과 관리직과 현장직(실무자) 간의 대립이 드러난다. 그리고 가장 복잡한 인간관계가 나타나며 크다면 크고 우습도록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을 작은 사회가 어찌 굴러가는지 까발리고 있는 것 같다.
저자의 개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에필로그 형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3. 마치며
책에서 말하는 '인간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조건'이라고 하니 왠지 곤충은 '머리','가슴','배'로 이루어져있다는 말이 떠오르니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 책은 묻는 것 같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 앞에 존재했던 무수히 많은 성현들이 철학적인 말들을 언급했으니 제쳐두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돈' 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라는 말에 동의는 하지만 나는 '돈이 인생의 최소한' 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돈이 없으면 같은 시대에 살면서도 전혀 다른 생활을 해야한다.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이 글을 보고있는 디스플레이도 다를 것이고, 읽고 있는 온도 역시 다를 것이다.
책에 등장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한 때 잘나갔던 시절이있다. 몇몇은 대기업에 근무하기도 했고 조그맣지만 자신의 사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상상하기도 힘든 생활 환경속에서 최저임금과 월 2회 휴무를 감내하며 고용주로부터는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곧 잘 주인공에게 '남의 돈 벌어먹고 사는게 쉽지 않다.'라고 충고한다. 이것이 체화 된 체념인지 아니면 고용주로부터 받은 세뇌인지 아리송 할 지경이다. 어째서 고용인이 많은 고용주들이 최저임금을 '충분임금'으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고용주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일까?
책의 마지막 부분 창작된 이야기속 주인공이 소리치는 장면이 굉장히 기억이 남는다. 주인공과 같이 항구에서 도망친 젊은이가 '남의 돈 벌어먹고 사는 일이 참 힘들다.' 라고 말한다. 그러자 주인공이 그를 미친듯이 꾸짖으며 말한다. '그게 왜 남에 돈이냐고 일을 하고 받은 내 돈'이라고 소리친다.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그 동안 보지 못했던 혹은 외면하고 있었던 세상의 이면을 엿본 기분이었다. 사실 이런 모습들은 우리에게서 멀지 않다. 주유원들은 이미 대부분 사라져버렸지만 고시원과 편의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이런 것들 조차 언제 주유원과 같이 없어져 버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날이 쌀쌀해질 때쯤이면(호빵 나오는 시기와 왠지 비슷한 것 같다.) 항상 나오는 책인 트렌드 코리아가 올해도 나왔다. 나이 때문인지 (이건 좀 아닌 것 같지만), 하는 일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성격 탓인지 책을 읽고 있으면 나라는 인간도 트렌드에 뒤쳐진다는 생각이 문득 들곤 한다.
이제 주식을 하는 스타일도 바꾼 터라 트렌드에는 별 관심이 없긴 하지만 거의 습관적으로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우습니다.
매해 그 해의 동물을 주제로 주제를 선정하니 내년은 쥐의 해이다. 그래서 타이틀은 “MIGHT MICE” 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어렸던 시절 슈퍼맨처럼 망토를 휘날리며 날아다니던 작은 생쥐를 TV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가수도 기억난다. 내년 트렌드가 주제인데 옛날이야기는 그만하고 주제로 돌아가보자.
2020년 트렌드에 대한 장에 대한 요약
1. Me and Myselves 멀티 페르소나
- 한 인물이 다른 공간에서 다른 성격을 내보이는 것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EX : 현실에서의 나, SNS에서의 나)
2. Immediate Satisfaction: the ‘Last Fit Economy’ 라스트핏 이코노미
- 마지막 고객 접점의 소비자만족이 중요하다는 측면을 강조 (EX : 언박싱의 순간)
3. Goodness and Fairness 페어 플레이어
- 평등에 대한 욕구의 분출 (EX : 회사에서의 호칭 파괴)
4. Here and Now: the ‘Streaming Life’ 스트리밍 라이프
- 소유하지 않는 것의 일반화 (EX : 넷플릭스)
5. Technology of Hyper-personalization 초개인화 기술
- 1명이 1개의 성향과 취향이 아닌 N개의 성향과 취향을 가진, 1번과 관련이 있다. (EX : 빅데이터 기반 추천)
6. You’re with Us, ‘Fansumer’ 팬슈머
- 더 적극적인 소비, 판매자가 만드는 것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시대는 애초에 지났고 소비한 물품에 대해 단순히 리뷰를 다는 시대도 이제는 구시대적이다. 소비하는 대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소비자들 (EX : 프로듀스101)
7. Make or Break, Specialize or Die 특화생존
- 특화는 이제 차별화의 포인트가 아니라 그 서비스, 제품의 생존 조건이다. (5번과 연관이 있다.)
8. Iridescent OPAL: the New 5060 Generation 오팔세대
- 충분한 구매력과 개인의 성향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는,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5060세대
9. Convenience as a Premium 편리미엄
- 꼭 해야할 일이 외에는 돈을 들여서도 편리를 추구한다. (EX : 건조기, 식기세척기)
10. Elevate Yourself 업글인간
- ‘남’보다 더 나은 ‘나’가 아닌,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추구하는 사람들
책을 읽다보니 사람들이 온라인 매체에 집중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말에 내가 읽고 생각한 결론들부터 후딱 넣어보았다.
몇 년 동안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재미있는 점은 인간이 점점 파편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가 점점 작어 지더니 이제는 한 개인을 조각조각 쪼개가고 있는 것 같다.
신에게서 존재를 이유를 찾던 인간이, 신을 내팽개치고, 자신들이 만든 세상을 구성하는 모양처럼 스스로를 잘게 쪼게 자신들이 만든 세상 속으로 몸을 비집고 밀어 넣는 모습을 연상시키며 레리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처럼 과연 인간은 데이터화가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
구글의 검색 자료를 분석한 책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 인간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사실이 이미 충분히 증명이 되었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은 과거에는 그 숨겨진 페르소나를 분출한 곳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인터넷 세상에서 편리하고도 공공연하게 그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다만 익명성이 존재하지 않는 SNS에서는 여전히 표출이 되지 않지만 개인의 데이터 축정이 증가 할수록 스스로도 잘 모르는 욕구마저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영화든 책이든 하나의 이야기를 두고도 사람들은 다양한 자신들의 의견을 내 놓는다. 영화는 두말할 것도 없이 굉장히 좋은 영화였다. 곳곳에 심어놓은 블랙 코미디적 요소와 관객을 빨아들이는 스릴감까지 굳이 무언가를 느끼거나 해석하려 들지 않고 순수하게 이야기를 즐기기에도 충분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빈부의 격차, 계급의 격차 등등 다양한 단어들이 영화를 보는 사이 스쳐지나갔지만 나의 뇌리에 가장 깊게 남은 것은 바로 '집' 이었다.
올해부터 익숙하게 지내던 도시를 떠나 또다시 홀로 지내게 되었고 얼마전에야 원룸을 구해 내 몸하나 편히 뉘일 수 있게 된 탓일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난지는 꽤 오랜시간이 지났지만 직접 살곳을 고르고 부동산 계약을 맺은 것은 처음이었던 탓에 굉장히 기억에 남는 강렬한 경험이었따.
방을 고르고 최종 계약을 맺고 잔금을 넣기까지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돈 생각은 세상 누군가는 '인생에 돈이 전부가 아니다' 라고 할지 모르지만 집에는 돈이 전부였다. 밝은 햇살도, 깨끗한 공기도, 편히 쉴 수 있는 조용함도 다 돈으로 계산 되어 있었다.
영화의 메인이 되는 두 가족의 집은 두 가족 구성원들의 성격만큼, 두 집의 위치 차이만큼 대비된다. 반지하의 기택(송강호 분)의 집은 아직 날이 밝은 날에도 술주정뱅이가 오줌을 싸고 소란을 피우는 소리가 들리지만, 부촌으로 보이는 언덕 주택가의 박사장(이선균 분), 연교(조여정 분)의 집은 작은 숲으로 둘러 쌓인 채 나뭇잎이 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박사장의 아들 다송이가 장난감처럼 정원에 설치하고 잔 인디언 텐트조차 비가 새지 않지만 기택의 반지하집은 어깨까지 물에 잠긴다.
비가 그친 다음날도 마찬가지다. 박사장의 집에 찾아온 사람들은 비가내려 미세먼지가 사라져서 다행이라 날씨를 평가하며 갑작스러운 모임속에서도 즐겁고 밝은 모습을 연출하지만, 똑같은 폭우로 인해 우연히 체육관에 모이게 된 기택의 이웃들은 생존을 위해 주위 사람들에게 악다구를 퍼붓는다.
이렇듯 계획이 틀어지는 모습도, 무계획적으로 실행한 일의 결과물도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다만 이 두 집엔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습은 다르지만 기생충을 키운다는 것이다. 기택의 집에는 밤에 불을키면 재빠르게 숨는 바퀴벌레와 곱등이를 박사장의 집은 근세가(박명훈 분) 있다. 분명 모습은 다르지만 집주인의 눈을 피해 살아가고 집주인이 남긴 찌꺼기를 먹으며 살아간다.
그럴듯한 말과 꾸밈으로 박사장의 가족을 속였던 기택의 가족이었지만 결국 숨길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냄새였다. 기정(박소담 분)이 반지하 냄새라 말한 것을 박사장은 '지하철에 가끔 탈 때 나는 냄새' 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이른 아침부터 지하철을 타고 영화를 보러갔던 나를 움찔하게 했던 말이었다. 감독이 마치 '넌 아니라고 생각하지?' 라고 말을 거는 기분이었다.
기택이 근세에게 '넌 아무 계획도 없지.' 라고 소리치며 깔보는 듯 소리쳤지만 박사장의 입장에서는 둘 다 똑같은 지하철 냄새 일 뿐이고, 이 냄새는 차 안에서는 선을 넘어와 불쾌하게 만들고 위험한 순간에도 코를 막게한다. 그리고 막 쇼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연교의 발에서 나는 냄새보다도 지독하다. 근세는 박사장을 향해 리스펙을 외치지만 박사장은 자신의 집에서 4년 동안 숨어 산 이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이 인간적 모멸감을 참지 못한 극중 인물들은 두 가지 선택을한다. 기택은 원래의 숙주를 죽이고 다음 숙주를 기다리며 숨어든다. 기택의 아들이자 모든 일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기우(최우식 분)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무엇보다도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해주는 영화였다.
요즘 많은 이들이 다른 이들을 'XX충' 이라 욕을한다. 무엇이 가난한자들이 계획하기를 포기하고 부자들이 주는 부스러기에 만족하며 살게 만들었을까. 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모아도 집을 사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 되어 버렸을까?
그리고 가장 소름돋는 건 왜 이 이글을 쓰고 있는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걸까? 그들이 보기엔 다 지하철 냄새가나는 사람일 뿐일지 모르는데?
어느 날, 불안한 꿈을 꾸며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의 몸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이야기의 시작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전개가 이어지며 작중 내내 묘한 불쾌감을 전달한다.
그레고르가 자신의 몸이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은 다른 것도 아닌 그날 출장으로 예약된 기차시간과 출근, 고용주의 질책 등이다.
신체의 변화로 인한 혐오감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의 문제였다. 그레고르가 변한 것을 알기 전, 가족의 생계를 도맡아 시피 책임지고 있던 그레고르에게 가족들은 상냥한 모습을 보인다. 그레고르에게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는 지배인에게 대신 변명을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자본가의 편에 서서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익을 만들어내라고 그레고르에게 강변하던 지배인마저 변해버린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곤 그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음을 깨닫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돌린다.
물론 장사가 잘되는 계절은 아니죠. 우리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장사를 못하는 계절은 있을 수가 없어요. 잠자 씨,
그러한 일은 있어서도 안 돼요.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후 빚을 갚기 위해. 평범한 사원을 그만두고 영업직을 택한 그가 벌어오는 많은 중개료에 대해 가족들은 처음에는 감동하고 감사를 표했지만 어느 새, 그런 것들은 당연한 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사려깊은 그의 여동생 그레타는 여전히 그에게 감사를 표했는데 그레고르에게는 그것이 큰 위안이었고 그녀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그녀를 음악학교에 입학 시키려는 계획을 짜고 있을 때,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이런 관계 때문인지 변해버린 그를 폭력적으로 대하려는 아버지와 외면하려는 어머니와는 달리 여동생은 겉으로 나마 그를 챙겨주려고 노력을 하고 다른 가족들은 그런 여동생의 역할에 큰 만족감을 표한다.
그레고르가 변한 것과 더불어 가족들에게도 현실적인 문제가 들이닥친다. 사업이 망한 후 몇 년간 쉬고 있던 아버지, 그리고 일을 하기는커녕 천식으로 때때로 앓아눕는 어머니, 철부지 어린 여동생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이 끊겨버린 그들에게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걱정다. 그런데 어쩌면 현재 가장 불행한 그레고르는 자신을 걱정하기 앞서 변해버린 자신으로 인해 고통을 받을 가족을 걱정한다.
그의 앞에 펼쳐진 어둠을 바라보다가 문득 부모님과 여동생이 이렇게 아름다운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애쓴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이 모든 고요와 부와 만족이 자신에게 닥친 끔찍한 일로 인해 끝나야만 하나?
그러나 가족들이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동안에도 몇 년 동안, 가계의 생계를 이끌어온 그의 의견은 묻지 않는다. 가족은 그를 방치하고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무관심과 자신이 짐이 되어버렸다는 수치스러움에 소파 밑으로 점점 숨어든다.
한쪽 문과 사람들이 낮에 열어 놓았을 다른쪽 문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열쇠가 밖에 꽂혀 있었는데도.
반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리고 수치스러움을 느끼면서 그는 소파 아래로 서둘러 기어들어갔다.
가족들은 돈을 벌기 위해 각자 직업을 찾는다. 매일 지쳐 쓰러져 있던 등이 굽은 아버지는 곧게 뻗은 몸과 다부진 턱을가진 은행원의 모습으로 변하고 어머니는 고급 양장점에서 받아온 옷에 바느질을 한다. 그리고 마냥 어릴 것 같던 동생도 판매직 일을 구해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각자 세상 밖에서 자신들만의 세상을 새롭게 구축하는 동안 그레고르는 점점 소외되고 가족들에게 큰 짐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방은 잡동사니를 놓아두는 창고 방으로 변하고 그로 인해 세를 들어 살던 세 명의 신사가 놀라 항의하자 가족들 중 가장 우호적이던 여동생은 그를 귀찮은 짐 정도가 아니라 가족의 운명을 위협하는 적으로 취급하기에 이른다.
2. 눈이 가는 포인트?
① 자본주의 속에서의 가장
적어도 내가 감상하기엔 이 책은 굉장히 자본주의적인 책이다. 그레고리는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후 몇 년 동안 가정의 생계를 도맡아 책임지던 남자이다. 적어도 잠시기는 했지만 그 후 몇 년 동안 평범한 일로 변하긴 했지만 가족들은 그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의 희생으로 벌어들인 돈을 쓰며 안온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지배인으로부터 최종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형선고를 받음으로서 그를 대하는 태도가 변해간다. 변한 것은 그레고리를 대하는 태도만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가 생업에 뛰어 듦으로써 스스로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 역시 변한다. 늘 무기력하던 아버지는 다시 예전의 꼿꼿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쓸모없는 취급을 당하던 여동생은 희망으로 변한다.
마치 그레고르의 모습은 IMF시절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어버린 혹은 산재로 인해 노동력을 상실해버린 가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② 변해가는 그레고르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후 자신의 몸이 완전히 변해버리긴 했지만 그레고르는 자신이 여전히 인간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지배인을 대하는 동안 꼿꼿이 서려고 했고 인간의 목소리로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가족과 사회에서 고립 될수록 점점 벌레로 변해간다.
도망가던 지배인을 쫓다 넘어질 때부터,
넘어지는 순간 바로 그는 오늘 아침 처음으로 육체적인 쾌감을 느꼈다. 다리들은 딱딱한 바닥을 짚고 있었다.
마치 그가 왜 기뻐하는지를 알아챈것처럼 그에게 완전히 복종했다.
실제로 날이 갈수록 조금씩, 멀리 있는 것들이 그의 눈에 점점 불명확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르는 두 달 정도의 변신 기간 때문에 가족 내에서 단조로운 삶을 살고,
모든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부족해서 이해력이 떨어졌음을 알아차렸다.
그레고르의 겉모습은 일순간 변했지만 그의 내면과 보이지 않는 것들은 주변의 변화를 따라 천천히 변해갔다. 어쩌면 진정으로 변한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주변 사람들일 것이다. 그레고르의 어머니는 그의 방의 가구를 치우려는 여동생에게 잠시 저항하지만 결국 변해버린 그레고르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감행된 행위를 막지 못한다. 그레고르 역시 저항해보려 했지만 아버지의 폭력과 여동생의 외침에 무릎을 꿇는다. 그 후, 그는 급격히 무너진다.
그러나 바닥을 기어 다니며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며 스스로를 잃어가는 와중에도 그는 가장 인간적이고 가족적인 모습을 보인다.
음악에 사로잡힌 그는 과연 짐승일까
왜냐하면 여기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처럼 그렇게 그녀의 연주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적어도 그녀를 자신의 방 밖으로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의 끔찍한 형상은 그에게 처음으로 유용할 것이다.
잠자 씨의 집에 세를 들어사는 멀끔하게 차려입은 세 명의 신사는 연주를 하는 그레타에게 모욕적인 행위를 한다. 심지어 자신들이 먼저 청해 들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가 그들을 어찌하지 못할 때 분개한 그레고르가 나선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시선이었다. 그는 가족을 지키고 싶었했지만 결국은 적으로 취급받는다.
3. 마치며
과연 누가 괴물일까? 변한 것은 그레고르일까? 아니면 그의 가족일까?
대부분 소설에 묘사되는 가족과 사회 상황은 작가가 살아온 혹은 살아가고 있는 사회상황과 연결시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카프카는 매우 엄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잘 돌보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 역시 작가를 하려는 그의 꿈을 응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을 쓰고 잇을 당시에는 경제공황과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개인의 운명은 무척이나 불안정 할 수 밖에 없었음으로 이런 소설이 쓰여 졌을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과연 그런 상황이 얼마나 변했을 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가 점차 파편화 되어가면서 사회의 최소 구성단위라는 가족이 가지는 의미는 점차 감소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오랜 불황과 높은 실업율은 사람들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비록 벌레로 극적인 변신을 할 가능성은 낮지만 누구나 노동력을 상실 할 정도의 신체적 변화를 겪을 여지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소설 속 잠자씨의 가족은 그레고르를 빼고는 모두 처음보다 오히려 행복해 보인다.
다들 그레고르가 벌어오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객체에 가까운 느낌이었다면 스스로 사회 속으로 뛰어드는 주체로 변해 미래를 꿈꾼다. 그 사이 쓸모를 잃고 철저하게 고립된 채 파괴되어간다.
그런데 감상평을 마무리하려던 그런 생각도 들었다. 벌레로 변한 것은 그레고르가 원하던 것이 아닐까? 회사의 혹은 가족에 대한 의무감에 지쳐있던 그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그런 식으로 표현 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변해버린 그를 그가 가족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돌봐주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책을 읽다보면 가끔씩, 꼭 이렇게 번역해야 하나? 라는 의문과 함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구문들이 있지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메마른 대지가 버스럭거리고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건조한 문체는 소설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예전에 우리나라 신안에 있었던 염전노예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작가는 수 년째, 터를 잡고 술집을 운영하지만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아 여전히 외지인 취급을 하는 지극히 폐쇄적이고 보이지 않는 규율과 힘의 균형이 존재하는 시골마을에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을 절묘하게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야기의 크게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어린 시절,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 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키와라 마을을 강제로 떠나게 되었던 에런 포크는 친구 루크의 장례식을 위해 가뭄으로 고통 받고 있는 마을로 되돌아온다.
루크는 자신의 부인과 아들을 총으로 쏴죽이고 자살을 한 것으로 잠정적으로 결론이 난 상황이었다. 루크의 아버지는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가 가지는 의심을 지우기 위해 어린시절 루크의 절친이자 경찰관이기도 한 포크를 마을로 불러들인다.
포크는 키와라 마을로 돌아오는 것을 내켜하지 않지만 루크와 공유하고 있는 은밀한 비밀의 진실을 ‘일부’ 알고 있는 루크의 아버지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마을에 머물며 루크 일가족 살해 사건의 진실을 파해치기 위해 마을에 머물며 사건을 조사한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사건이 존재한다. 어린 포크와 그의 아버지를 오랜 시간 동안 이룩한 모든 것을 두고 떠나게 한 사건인 엘리의 사망사건이다.
엘리 역시 어린 포크의 친구였다. 둘 사이에 몽글몽글 사랑의 감정이 피어나고, 남들이 모르는 하나의 비밀을 공유했을 때, 엘리는 마을 강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녀의 바지에서는 포크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발견되었고 포크는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다.
당시 강가에서 혼자 낚시를 하고 있던 포크는 꼼짝없이 용의자로 의심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루크와의 비밀 협약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경찰 수사관의 용의선상에서 벗어난 것일 뿐, 비밀은 또 다른 비밀과 의심을 낳으며 서로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이야기는 촘촘한 그물처럼 잘 짜여져 있다.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현재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며 독자를 서서히 진실에 접근 시킨다. 적절한 타이밍을 놓쳐버렸다는 이유로 진실을 말하지 않은 이들은 비밀을 더 크게 만들고 사건을 더 복잡한 미궁에 빠트린 채 사람들을 서로 의심하게 만든다.
책은 몇가지 다른 소설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과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였다. '데미안'의 초반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 허세를 위해 했던 거짓말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뒤죽박죽 되는 경험을 한다. 포크와 루크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른 목적이긴 했지만 그들이 한 거짓말은 오랫동안 그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객관적 진실이 아닌 소문과 편견이 지배하는 마을과 그레천이 토끼 사냥을 위해 총을 쏘는 모습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책은 곳곳에서 비밀이 나온다. 그리고 누구나 비밀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뭄에 말라버려 드러난 강바닥처럼 비밀이 한꺼풀 한꺼풀 벗겨지고 진실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심미안이란 사전적인 의미는 '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안목' 이라고 되어 있다. 무려 사전에 실려 있는 정의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주관적으로 느껴져 당황스러운 느낌이 든다. 대체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나의 개인적 취향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책은 무척이나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흔히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법한 미술부터 좀 더 대중적인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까지 그야말로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다루는 분야가 넓은 만큼 아주 세세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책은 아니다.
이 분야에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면 조금 더 편안하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고 이런 것도 한번 있으니 관심이 간다면 한번 보길 바란다. 라는 내용으로 책이 전개가 된다.
책에서 인상이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자연 그대로의 것도 매력적이지만 인간의 흔적이 묻은 것이 더 아름답다는 저자의 생각이었다. 때때로 방송이나 서적에서 자연 그대로의 것이 가장 아름답고 완벽하다는 말을 들어오고 은연 중에 거기에 동조를하고 있던 나의 머릿속을 울리는 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저자가 심미안을 기르기 위해 말하는 중요한 사항 중 하나는 바로 현장감이다. 미술 감상에 가장 적합한 곳은 미술관이고 음악도 그 종류에 따라 감상하기에 적합한 공간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사실 많은 디지털기기들이 광고를하면서 강조하는 것도 이런 부분들이다. TV는 완벽한 색채 재현, 눈 앞에서 보는 느낌 등의 키워드를 강조하고 스피커나 이어폰 등의 리시버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연 기술은 이것들을 따라 잡을 수 있을지도 나에게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예체능쪽에는 영 재능이 없는 것 같다. 특히 미술쪽에서는 말이다. 요즘은 가끔씩 시간을 내 미술관을 찾아가 그림을 보곤한다. 그러나 여전히 유명한 작가분들의 그림과 신인 작가분의 작품 사이에서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다 해설사분께서 설명을 해주는 시간에 맞춰 그림을 보고 해설을 듣다보면 '아아... 그렇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그림이 특별해 보일 때면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도 특별한 스킬이나 기반 지식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이다. 누구나 이 책의 저자처럼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기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시간도 열정도 흥미도 없을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은 외압을 걷어낸 스스로의 선택이어야 의미가 있다. 좋다는 것은 무엇일까....(중략).... 예술의 일상화란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매일 먹는 끼니의 그릇을 더 아름다운 것으로 놓고, 들리는 음악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채우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좋으나, 그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선별 기준을 갖게 되면, 그것이 곧 심미안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나는 저자가 책 말미에 나오는 이 문장을 쓰기 위해 앞의 내용들을 적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마음에드는 말이었다.
며칠 전, 카페에 방문한 것이 있었는데 개구리 장식이 가득한 곳이었다. 1층은 카페를 운영하고 2층은 도자기, 금속, 뜨개질 등으로 된 수 많은 개구리가 있는 전시장이었다. 처음에는 개구리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주인장의 취향에 의아함을 느끼고 카페로 사람을 불러모으기 위해 전시장을 만든건지 아니면 전시장을 자랑하고 싶어 카페를 만든건지 궁금증이 들었다.
그러나 곧 개구리 장식물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주인장 심미안으로 인해 개구리로 행복할 수 있고 타인과 공유 할 수 있는 주인장의 인생은 참 행복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원하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들로 주변 공간을 채우고 그것에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심미안을 기른다면 참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한다. 그것이 예술이든 아니든 말이다.
아름다움을 파악하고 경험하게 되면, 스스로의 인식과 판단의 범위가 다음 단계로 올라서게 된다. 무용한 것이 유용한 가치로 바뀌는 행복의 선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순환의 시간들을 갖게 되면, 삶이 지루할 틈도 괴로울 틈도 없다.
누구나 살아가다보면 길든 짧든 글을 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왕 글을 쓰는거 잘 쓰고 싶다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번 읽어 볼만한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세계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인 하버드의 150년 된 글쓰기 비법이라니 그곳의 학비를 생각한다면 읽어서 전혀 손해 날 것 같지는 않지 않은가?
세상이 빠르게 변해 많은 이들이 유투브의 동영상으로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고 인스타그램으로 자신의 일상과 주장을 나타내지만 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블로그나 트위터 등을 활용해 간단한 문장과 글로써 자신의 생각과 정보를 전달하고 회사 업무 중 내외부간 주요 의사소통과 결정 사항은 전화등의 음성이 아닌 메일을 통해 이루어지고 기록으로 남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의 간단한 메세지를 띄우는 것 만으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대입 논술에도 취업을 위해 작성하는 자기소개서 역시 대부분 글로 이루어져있다. 이를 비춰보면 보면 비쥬얼이 강조되는 미디어가 대세가 되어가는 시기이긴 하지만 여전히 활자 매체의 영향력을 무시 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이런 중요한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시스템 혹은 사고의 틀을 제시 해준다.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무엇을 써야 할지는 알겠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겠다.' 라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책은 여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O.R.E.O 글쓰기라는 비법을 제시한다. 이 글쓰기 비법은 대입을 위한 에세이나 보고서 나아가서는 트위터나 블로그에 올릴 글에도 적용 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다.
무언가를 처음 시도 할 때, 가장 좋은 성장방법은 대가의 방법을 따라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글로벌 리더들의 배우고 써먹었을 기술인 하버드의 글쓰기 비법을 배워보자
위의 문장들은 책에서 배운 오레오 기법을 통해 써보았다. 어떤 내용을 쓸지는 정한터라 미리 구조화 된 방식으로 쓰다보니 글을 작성한 시간에 비해 완성도는 꽤나 괜찮은 것 같다. 다만 모든 글들이 그렇지만 수정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책에서 말하는 오레오 O.R.E.O 맵을 풀어 쓰면 이렇다.
Opinion : 의견제시
Reason : 이유, 근거대기
Example : 사례들기
Opinion/Offer : 의견강조
자소서 등을 작성하다보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두괄식 구조와 같다. 이를 좀더 세분화하여 작은 단락안에도 핵심주제를 넣어서 좀 더 탄탄한 구조를 만드는 방식인데. 사실 글을 좀 써봤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어? 어디서 한번 들어 본 것 같은데?' 라고 할 만한 구조이다.
오레오 맵은 단순히 글쓰기의 단락구성에만 적용되는 방법이 아니다 사고하는 방식과 컨텐츠를 선정하는 방식에도 사용 할 수 있다고 책에서 말한다. 글쓰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컨텐츠라고 책은 말하고 그리고 오레오 맵을 통해 어떻게 좋은 컨텐츠를 선정할지 또 그것으로 어떻게 좋은 글을 뽑아 낼지를 책은 설명한다.
그 외에도 문장을 더 좋게하는 팁을 중간중간에 제공한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뽑아내보자면 이렇다.
글 쓰는 도중, 내용이 복잡해지고 산만하다고 생각이 들면 주어가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세요. 주어가 자리를 지키기만 해도 문장이 탄탄해지고, 탄탄한 문장은 메세지를 KTX처럼 실어 나릅니다.
우리나라의 말에는 주어를 생략하는 것을 허용한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쓰는 이런 표현 방식 때문인지 글을 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주어를 생략하고 수동태 형태로 글을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문장을 보며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취업을 하며 가졌던 생각 중 하나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가 아니라 사서 책장 가득 꼽아 놓는 것이 목표였던 적이 있는데. 지금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간 장편소설은 구매를 하지만 이미 읽었던 예전 소설들은 또 읽고 싶긴하지만 애초의 생각과 달리 돈을 들여서 사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태엽감는 새' 합본판은 '비실용성'과 '소장성 또는 있어보임(?)'을 두루갖춰 나의 욕망에 맞춰 제작된 것 같은 책이었다. 원래 4권으로 된 책을 한권으로 만들어놔서 책이 1,000페이지가 넘고 무겁기도 무거워 손에 들고 읽기에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책이다.
그래도 작년 한해를 보내며 또 올해를 맞이하며 내 신변에 꽤나 큰 변화가 있어 생각도 정리할 겸 예구 후 비닐조차 뜯지 않았던 책을 뜯어 읽어 보았다. 맨날 회사 가기 싫다고 노래는 부르는 현실속 30대가 진짜 회사를 때려친 소설 속 30대를 부러워하며 책에 빠져 들어서 읽었다.
현실과 비현실, 현실과 꿈, 일본과 만주, 과거와 현재까지 시공간을 소설의 내용을 가끔씩 따라가기 버거울 때가 있다. 거기다 온갖 상징과 메타포로 점철된 소설은 모든 인물이 개별적인 것 같으면서도 또한 모든 인물이 동일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한 때 사법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던 30세 주인공은 다니던 변호사 사무실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고 한다. 그러나 부인도 반응도 그렇고 자기 자신 역시 딱히 하고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아 새로운 일자를 찾는 일에 진전이 없다.
주인공은 사회와 점점 멀어져간다. 그리고 현재 사회와 가장 정상적인 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인마저 이별을 선언하고 집을 나가버린다. 그런데 어째 사회에서 점점 멀어질 수록 그와 관계된 사람의 숫자가 늘어가고 그 속에서 타인을 치유하며 큰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에게 강한 적개심을 들게하는 부인의 오빠인 와타야 노보루는 주인공과 반대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며 현실 세계에서 영향력을 차츰 넓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