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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비로소 나답게 만드는가?” 과학 저널리스트 아닐 아난타스와미는 올리버 색스를 연상시키는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우리를 ‘나’ 곧 ‘자아’의 세계로 초대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나’에 대한 애착, 무언가가 ‘내 것’이라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터득한다. 일견 ‘나’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인생에서 한 번쯤은 스스로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온다. 타인에게 보이는 다양한 ‘나’, 새롭게 발견한 나의 모습을 볼 때면 궁금해진다. 무엇이 ‘진짜 나’인가? 수천 년 전에는 종교와 철학이 이 고민에 함께했다면, 이제 우리에게는 과학이 있다. 뇌과학적으로 ‘자아’와 ‘자기감’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자아는 21세기 뇌과학이 마주한 최고의 난제이자,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이 책에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알츠하이머병, 조현병 등 제법 익숙한 병명부터 신체통합정체성장애, 유체이탈에 이르기까지, 자아와 관련된 다양한 신경심리학적 질병을 겪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기억을 모두 잃어도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내 몸이 내 것이라는 감각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침대에 누워 있는 또 다른 나를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아’는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며, 우리는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는가? 저자는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뇌과학, 신경과학, 심리학, 철학 등 학계 최전선의 전문가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섬뜩하면서도 경이로운 자아의 세계를 더듬는다. 실마리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집요한 탐사의 중심에는 ‘자아’라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이 자리한다. 뇌와 몸, 정신과 정서, 사회적 관계와 기억 그리고 자아의 연결고리를 치밀하게 파헤치는 가운데, 우리는 ‘나’(또는 ‘자아’)의 빈자리에서 역설적이게도 자아의 정체를 포착하게 된다.
저자
아닐 아난타스와미
출판
더퀘스트
출판일
2023.03.15

 나는 누구인가.

 

 나의 자아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춘기를 통과 한 사람들이라면 위와 같은 질문이나 그와 비슷한 질문을 한번쯤 자신에게 던져보거나 고민을 해보았을 것 같다.

 

 물론 나도 조금은 고민을 해보았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고민에 대해 어떤 적절한 해답을 구했는지는 어떤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 좀 더 어릴 때는 놀고 먹기 바빴고 지금은 먹고 살기 바빠서 솔직히 더 이상 자아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로 취급하지 않고 있는게 사실인것 같다.

 

 현실은 어떨지 몰라도 '자아'라는 주제가 주는 매력은 분명 강력한 것 같다.

 

 자아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오래전부터 종교와 철학 등 온갖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뤄 온 문제이다. 그리고 여전히 분야마다 주장하는 사람마다 그 정의가 조금씩 다르다.

 

 본 책은 부제와 같이 뇌과학적 관점을 중심으로 심리학, 철학자들의 의견을 덧붙이며 자아에 대해 탐구를 한다.

 

 책에서 탐구하는 사례들은 굉장히 충격적이면서도 흥미롭다.

 

 우리가 흔히 치매라 부르는 알츠하이머나 자폐증 같은 익숙한 사례도 다루지만 자신이 죽었다고 말하는 코타르증후군, 자신의 신체를 절단 하고 싶어하는 신체통합정체성장애와 같은 낯선 신경심리학적 질병을 사례를 소개하며 자아에 대해 질문한다.

 먼저 챗GPT 에게 "자아란 무엇인가" 대해 질문을 해보았다.

 자아는 개인의 의식, 인식, 아이덴티티, 그리고 자기의 존재를 경험하는 주체적인 측면을 의미합니다. 자아는 개인의 정체성과 자기인식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개념으로서, 개인이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구별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자아는 심리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지며, 주로 인지심리학, 발달심리학, 심리분석학 등에서 다양하게 연구되고 이론화되었습니다. 자아의 형성은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일어나는데, 어린 시기부터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개인의 신체, 정서, 사회적인 요인들에 영향을 받습니다.

 자아는 인식과정, 감정, 행동 등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며, 개인의 생각, 욕망, 가치관, 신념 등이 자아의 일부로 작용합니다. 또한, 자아는 개인이 자신의 경험과 행동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자아를 다른 개념들과 구분짓기 위해 "자아-이상(self-concept)", "자아-이미지(self-image)", "자아-개념(self-schema)" 등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용어들은 자아의 다양한 측면이나 형태를 강조하며, 개인의 자기인식과 관련된 특정한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자아는 개인의 의식과 인식, 아이덴티티 형성에 관련된 개념으로서, 개인의 주체성과 자기인식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개념입니다.

 

 책에서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자아에 대한 관념들을 소개하고 있다.

 

자아는 자기 자신에 대해 우리가 말하고 들어온 이야기들로 구성되고, 그 이야기들로부터 서서히 펼쳐지며 생겨나는 실체다.

하나로 지각된 통일감을 갖는 자아.

이러한 실체가 시간이 지나도 지속된다는 느낌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자아에 대해 가지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불교에 대해 공부를 하신 분들은 무아에 대해 이야기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책은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신경심리학적 질병을 사례들로 (통일 감을 잃은 신체, 나와 타인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등) 우리가 자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통념에 반하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책에 소개 된 사례들 중 몇가지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낯설은 것들이 많다. 분명 살아있지만 자신이 죽었다고 믿는 사람,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만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느끼며 불편함을 넘어 불쾌감 혹은 그 이상의 감정으로 자신의 신체를 절단하는 사람들에 과한 이야기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 몸과 내 자아가 일치한다는 생각에 대해 의구심을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억을 잃음으로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던 알츠하머에 대해서도 자아 유지라는 관점에서 생각 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의도치는 않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 오디오 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외사랑'을 들었다. 스릴로 소설로 주요 주제로 성정체성 장애를 앓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소설을 듣고 있던 중 도무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다리를 자르기 위해 아시아로 건너가 불법 수술을 받은 사례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멀쩡한 신체를 절단하는 수술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돈을 들여 다리를 잘랐고 그 후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외사랑'이라는 소설 속 이야기와 위 사례는 조금 다른 이야기기는 하지만 그 개인이 느꼈을 기분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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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들어 다들 한번쯤 Chat GPT에 대해 들어 보았을 것이다.

 

 물론 들어 본 것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용해 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Chat GPT에 대한 책을 읽거나 듣기 전, Chat GPT가 코드도 짜준다는 짤막한 블로그의 글만 읽도 별다른 설명도 듣지 않고 대책없이 나도 회사에서 일을하며 필요한 엑셀 매크로를 짜는 코드를 만들기 위해 Chat GPT를 사용해 보았다.

 

 사용해 본 소감은 놀라웠다. 내가 필요한 기능들을 말하면 우선 코드를 짜주고 추가적인 기능이나 상세한 정보를 추가하면 코드가 더 정교해졌다. 덕분에 원래대로라면 코드를 짤 줄 몰라 여기저기 뒤져가며 짜집기를 해서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었어야 될 엑셀 매크로 코드가 30분도 걸리지 않아 만들낼 수 있었다.

 

 없느니만 못하던 은행이나 카드사의 쳇봇을 상대하던 것과는 전혀 색다른 경험이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것 이후, 한 동안 잠잠하던 주제인 AI가 Chat GPT의 부상으로 인해 (Chat GPT도 꽤나 나온지 오래된 서비스다.) 다시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 동안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AI가 그린 그림들이 그날 유저들에게 추천을 많이 받은 게시물로 오르기도 했고, 대통령이 Chat GPT를 사용해 작성 된 신년사를 받아 보고 훌륭하다고 평가하며 행안부 장관에 Chat GPT를 활용해 공무원들에게 잘 활용하게 해달라는 주문도 했다고 한다.(물론 보안의 사유로 그게 가능한지, 옳은지는 상당히 의문이긴 하지만)

 

 

아래는 Chat GPT가 작성해 준 GPT에 관한 글이다.

 

 아직 최신 정보는 업데이트 할 수 없어 GPT 제네레이션 책에 관한 정확한 리뷰 내용은 쓸 수 없지만 그 책을 읽은 걸 바탕으로 Chat GPT가 써낸 글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닌지 정도만 확인했다.

 제너레이티브 프리트레인 트랜스포머(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GPT)은 인공지능의 언어 모델로서, 최근 몇 년 동안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 큰 관심을 받은 모델 중 하나입니다. GPT는 OpenAI에서 개발된 모델로, 텍스트 생성, 번역, 대화 시스템, 요약 등 다양한 자연어 처리 작업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 GPT 모델에 대한 간단한 리뷰를 써보겠습니다.

 GPT 모델은 자연어 처리 작업에서 높은 품질의 결과를 제공하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 주요 요소에 기인합니다.

 첫째, GPT는 대규모의 텍스트 데이터로 사전 훈련(pre-training)되는데, 이는 다양한 언어적 패턴과 문맥을 학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사전 훈련된 모델은 다른 작업을 위해 fine-tuning되며, 특정 작업에 대한 데이터를 사용하여 더 높은 성능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둘째, GPT는 Transformer라는 구조를 기반으로 합니다. Transformer는 자연어 처리 작업에 있어서 혁신적인 모델로, 기존의 순차적인 방식보다 효율적인 병렬 처리를 가능케 합니다. 이를 통해 GPT는 긴 문장이나 컨텍스트를 처리하는 데 뛰어난 성능을 보이며, 특히 텍스트 생성 작업에서 유용합니다.

 GPT 모델은 사용자의 입력에 기반하여 일정한 길이의 텍스트를 생성합니다. 이는 대화 시스템이나 챗봇 등의 인터랙티브한 응용 프로그램에 유용합니다. 또한, 문장이나 문서의 요약, 번역 등에서도 좋은 성과를 보입니다. 하지만 GPT는 모델의 특성상 주어진 문맥 내에서만 텍스트를 생성하며, 완전한 이해나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GPT는 매우 강력하고 유연한 모델이지만, 가끔 예측이 어색하거나 문맥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GPT 모델은 대량의 데이터와 많은 계산 리소스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훈련 및 실행에는 상당한 컴퓨팅 자원이 필요 합니다.

 요약하자면, GPT는 자연어 처리 작업에서 혁신적인 모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사전 훈련된 모델과 Transformer 구조를 기반으로 하며, 텍스트 생성, 번역, 요약 등 다양한 작업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GPT 모델은 완벽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며, 컴퓨팅 리소스의 요구도 상당합니다.

 이 리뷰는 GPT 모델의 기본적인 특징과 장단점을 다루었지만, 더 깊이 있는 정보와 구체적인 활용 사례를 원한다면 추가적인 참고 자료를 검색해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글 전체의 구조는 크게 흠잡을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저 글을 작성하는데 걸린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거기다 영어에 비해 한국어 데이터는 부족한데도 저런 수준이다.

 

 책에서도 이야기 하지만 현재 AI는 레이 커즈와일이 말한 특이점에는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사용하면서 감탄 할 수 있는 WOW 포인트에는 확실히 도달 한 것 같다.

 

 그리고 책에 보면 돈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온다. 그것도 수십, 수천 억 단 위가 아니다. 조 단위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빅테크 기업이 AI에 얼마나 많은 돈을 쏟고 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것이 커즈와일이 말하던 자본의 수레바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미 AI가 인간들에게 가져 올 수 있는 온갖 우울한 미래를 손에 꼽으며 과연 AI를 사용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논쟁하는 것은 이미 무의미 할 것이다. AI는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사용을 포기 할 수 없는 전기나 불 같은 도구 같은 것이 되버렸다. 잘못 사용하면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뒤쳐질 수 밖에 없는 도구 말이다.

 

 AI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저런 생각이 있지만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교육에 관한 것이다. 아직 애가 그런 걸 고민할 나이가 아니긴 한것 같지만 애가 크고 초등학교를 들어 갈 때 쯤이면 AI는 지금 스마트폰 처럼 누구나 당연히 들고다니는 물건 이 될 것 같다.

 

 그럼 그 때 교육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내가 한창 자랄 때는 글로벌 시대가 온다는 이유로 영어가 중요하다고 말하며 영어 공부 열풍이 일었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사람보다 컴퓨터와 일할 줄 알아야 한다며 그들의 언어인 코딩을 공부하는 것이 한동안 유행처럼 몰아쳤다. 그런데 AI는? 영어는 지금도 원어민 보다 더 잘 할 거다. 그리고 프로그래밍 언어가 아니라 벌써 자연어를 이해하고 코드로 바꾸는 수준이다. 대체 몇 년 후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상상해 보고 싶다면 읽어 볼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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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자본주의자
서울에 살던 평범한 가족이 특별한 계획 없이 미국 시골로 떠났다. 110년된 집에서 밀을 갈고 빵을 구워먹으며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새로운 일상을 찾았다. 소크라테스처럼 삶에 질문을 던지고, 소로처럼 순간을 음미하며 살다 보니 드디어 나답게 살아가는 삶의 맛을 알게 되었다.
저자
박혜윤
출판
다산초당
출판일
2021.06.14

 

 

 누구나 한번 쯤은 살다보면 가끔씩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돈 벌어서 뭐하냐라는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서 월급보다 병원비가 더 나올 것 같다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들더라도 언젠가 괜찮아 지겠지 같은 생각으로 그 자리에 머문다.

 

 그리고 여기 두 책에는 그 동안 해오던 것들을 버려두고 자신의 삶을, 혹은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 이상적인 삶을 찾아 떠나는 일을 실행에 옮긴 사람들의 수필이다. 물론 두 책은 세트도 아니고 생활하는 시대에도 큰 차이가 있다.

 

 먼저 월든은 많은 이들이 이름은 한번 쯤 들어봤을 법한 데이비드 헨리 소로 가 저술한 책이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월든 호수에서 1845년 에서 1847년까지 두 해를 머물며 이 책을 썼다.

 

 그리고 숲속의 자본주의자는 박혜윤 작가가 쓴 책으로 2021년 출판 되었다. 책 내용에 따르면 저자는 약 7년 동안 미국 시애틀에서 한 시간 덩도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남편과 두 아이와 살며 이 책을 출판 했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 는 책 곳곳에 월든의 내용이 나온다. 월든을 사랑하던 저자는 결국 소로처럼 본래 가졌던 직업과 학위 등 그 동안 쌓아 왔던 것을 한쪽에 치워두고 미국의 작은 마을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개인적인 감상은 월든 보다는 숲 속의 자본주의자가 나의 개인적 취향에 더 맞는 같다.

 

 내가 느끼기에는 월든은 조용한 숲 속을 거닐며 방금 농사일을 끝내고 흙이 잔뜩 묻은 젊은 철학자에게 이상적인 삶에 관한 조곤조곤한 설명을 듣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해 숲 속의 자본주의자는 월든에 나오는 철학을 기반으로 하지만 조금 더 현실과 타협한 느낌이다. 마치 "뭐 어때, 굳이 나까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잖아?" 라고 가볍게 말하는 사람과 커다란 빈백에 누워 수다를 나누는 느낌이다.

 인간의 삶과 자연, 진정한 행복과 만족 등, 월든은 많은 이야기와 생각이 담겨있다.

 그리고 소로는 책의 첫 장부터 우리의 상식을 깨는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만나는 젊은이와 마을 사람들의 불행은 농장, 집, 창고, 가축, 그리고 농기구들을 상속 받는데서 온다.

 소로가 살았을 당시 시대에 농장과 집 등을 물려 받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사업체나 빌딩 건물을 물려 받는 것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가슴 설레는 일은 소로는 불행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가진 것에 얽매이고 더 가질려고 노력하는 일은 인간을 불행에 빠트리고, 진정한 삶이 아닌 일에 얽메인 삶으로 인생을 변질 시킨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그처럼 성공하려고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토록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일까?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혹은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 진정한 삶을 버려가며 일하면 우리는 더 많이 가지게 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하는 악순환을 거치며 병들고 행복을 잃어버린다.

 적게 일하면 에너지 소비가 줄어 적게 먹고 적게 먹으면 그 만큼 소비가 줄어든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자신의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찾는다. 이것이 소로가 추구하는 바 중 하나이다.

 

 과연 무엇이 더 좋은 삶일지는 개인의 선택일 것이다. 앞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고 뒤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니 말이다.

 

 소로는 월든에서 삶의 복잡함과 인위적인 것들이 인간을 억압하고 불안감을 일으킨다고 지적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단순함에서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에서 말하는 내용도 월든에서 이야기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월든과는 다르게 발전 된 사회와 자본주의를 훨씬 더 편하게 이용한다. 물론 그래도 많은 이들이 원하는 경치 좋은 곳에 지어진 커다란 전원주택에 정원을 돌보며사는 한가한 삶과는 좀 많이 거리가 먼 삶이다.

 

 많은 것을 원치 않았기에 많은 것을 하지않는 그러면서도 진짜하고 싶은 것을 하는 느긋한 삶에 관해 이야기 하는 책이었다.

 월든이 출간 되었을 때도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소비를 줄이며 간소하게 사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온갖 매체로 소비심리를 자극하고 SNS 등으로 스스로를 과신하고 다른 이들과 쉽게 비교를 하는 시대이니 더더욱 그렇게 사는게 쉽지 않은 것 같다.

 

 월든에서 소로는 혼자지만 숲속의 자본주의자에서는 가족들과 함께이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할 나이의 아이들이지만 적어도 책속에서는 스마트폰도 TV도 없이 의외로 저자의 방식처럼 잘 살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삶이 현대 시대의 최선의 대안적 삶이라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 동안 유행처럼 떠돌던 파이어족이나 욜로 같은 사회를 휩쓰는 트렌드로도 다른 이들에게 다가 올 일도 거의 없을 것 같다.

 

 이런 책을 읽으면 누군가는 분명, 젊을 때나 좋은거지 늙고 병들면 어쩌려고 그러냐. 등등 오만가지 현실적 걱정을 들고 나올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없으면 없는대로 살라는 거냐라고 비아냥 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날로 치열해져가는 경쟁 사회는 그곳에서 경쟁 하는 사람들을 우울증 등으로 극한에 내몰기도 한다. 거기다 이제 곧 인간 뿐만 아니라 AI나 로봇과도 경쟁을 해야 할 판 인 것 같다.

 

 이런 사회에서 삶은 그냥 사는 것이지 구태여 '잘' 살 필요는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말이 더 잘 와닿은 것 같다.

 그 외 책에서 기억에 남는 문구들

그대의 삶이 아무리 가난하다해도 맞부딪혀 살아나가라. 회피하거나 욕하지 말라.

그대가 나쁜 사람이 아니 듯, 삶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 삶이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황혼의 빛은 부자의 집 창문뿐 아니라. 가난한 집 창문도 밝게 비춘다. 또한 초봄에는 가난한 자들의 집 앞의 눈도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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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주인공 '다이소'는 언젠가부터 곳곳에 생겨나더니 사람이 좀 산다 싶은 곳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가게가 되었다.

 

 심지어 지방 중소도시에서도 외곽, 봄이면 파랗게 물드는 논밭을 아파트단지와 스타벅스보다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내가 사는 지역에도 재작년쯤 다이소가 오픈했다.

 

 주변에 큰 전통시장도 있고 중소형 마트도 있지만 여러가지 생활용품을 한자리에서 해결 할 수 있는 다이소의 입점은 꽤나 반가운 일이었다.

 "천 원을 경영해야. 3조를 경영할 수 있다!"

 

 책의 띠지의 문구는 꽤나 도발적이다. 다이소에서 물건을 살 때 천원짜리를 많이 본 기억은 없지만 물건 가격이 5천원이 최고가인 유통업체의 매출이 3조원이라니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2021년 결산기준 아성다이소의 매출액은 약 2조 6천억이고 영업이익은 약 11%이다. 이 숫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타벅스코리아와 비슷한 수치이다.

 

 매장 숫자는 스타벅스가 약 1800개, 아성다이소가 약 1500개라고 하니 정말 비슷한것 같다. 다만 스타벅스는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메리카노가 4,500원인 반면 다이소의 경우 제일 비싼 제품이 5,000원이니 물론 제품은 다르지만 판매되는 수량으로만 본다면 다이소가 훨씬 더 많이 팔았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유통에 속하지만 결이 다른 대형마트가 몇개의 업체가 과점인 상태로 수십년간 치열하게 경쟁을 해오고 있지만 내가 느끼기로는 다이소가 속한 저가-균일가 시장에서는 비교대상을 찾을 수 없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여전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책에서 읽고 느낀바로는 아성다이소의 경영전략은

 

 상품개발 혹은 발굴한 뒤, 생산은 아웃소싱 통해 비용를 낮추는 한편 대량구매와 제품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덜어내고 생산 공정을 수정하고 물류비를 줄이는 방식 등을 통해 비용을 최대한으로 낮춘다.

 

 그러나 그저 비용을 낮춰 제품의 가격을 다운시키는 것뿐만이 아니라 특별한 아이디어나 차별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상품이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가치를 가격보다 높게 만든다.

 

 그리고 이것을 계속해서 반복하여 한 두개가 아니라 수만가지 제품을 보유하고 공급함으로써 박리다매 전략을 완성했다.

 많은 유통기업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려고 하는 때에 오프라인으로 공격적으로 점포를 늘리는 것도 특이한 것 같다. 물론 덕분에 나도 편하게 쇼핑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일에 대한 주인의식과 일을 할 때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굉장히 강조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개인차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부하에게 장사가 어렵냐 쉽냐라고 묻고 어렵다라고 대답하자 장사가 자격증이나 힘쓰는 것도 아니고 니가 다른걸 뭘 할 수 있는데? 라는 식으로 묻고 다시 부하직원이 머뭇거리다 쉽다라고 하니 그런데 왜 실적이 그 모양이냐라고 핀잔을 주는 일화는 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최악이었다.

 

 그리고 다이소가 일본기업으로 소문났던 것은 굉장히 억울하셨는지 몇번이고 강조해서 일본기업이 아니라고 강조하신다. 아성다이소에 일본 기업인 대창산업(다이소산교)의 지분이 30%가 있긴 했지만 당시 투자 받을 때는 어쩔 수 없었던 사정이있었음 설명한다.

 예전 기숙사에서 생활을 시작할 때, 다이소에 처음 갔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곳곳에 매장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막 주식을 시작했을 때라 투자를 해보고 싶었지만 비상장사라서 알아보다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자신의 간절함, 장인정신, 집요함 같은 걸로 45세에 퇴직하고 사업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운도 따랐을 것이다.

 퇴직을 할 때, 일본 경제가 호황이었고 그곳에서 사업을 시작해볼만 인맥이 있었다. 그리고 국내에서 균일가 숍을 시작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IMF가 왔다.

 

 그리고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해 냈기에 지금의 다이소가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뭔가를 하기로 결심한다면 너무 늦은 때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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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그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사람이 가득 들어찬 어두컴컴한 영화관, 영화의 앞에 나오는 지루한 광고도 끝나고 화재 비상대피로 안내 방송이 스크린에 나올때 쯤 겨우 도착해 사람들의 다리를 헤치며 나아가 가운데 있는 자리에 겨우 착석했을 때.

 

 나 혹은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내 왼쪽 혹은 오른쪽 팔걸이에 음료수를 끼워놨던 경험. 물론 양쪽 팔걸이가 다 남에게 점령되는 일은 흔치는 않겠지만 혹시 그렇게 됐다면 대체 내 음료수는 어디에 놔둬야 되지??

 

 책은 이런 소유권에 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이다. 내가 산 영화표의 가격에는 분명 영화가 상영하는 동안 좌석에 대한 소유권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소유권에는 과연 어느쪽 팔걸이에 대한 소유권까지 포함 되어 있는 것일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이런 불쾌한 소유권에 관한 문제에 맞닥드리더라도 참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한 해결책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영화표나 기타 약관에 어느 쪽 팔걸이가 고객의 소유인지 명확하게 표기를 하거나.

 

 모든 좌석이 양쪽 팔걸이를 가질 수 있도록 팔걸이 자체를 늘리면 된다.

 

 그러나 영화관을 운영하는 기업은 소유권을 모호하게 설정함으로써 팔걸이를 비용을 줄이고, 그 공간만큼 좌석을 더 설치해 이익을 늘리는 한편 불편한 상황으로 인해 발생하는 분쟁의 해소를 소비자 혹은 현장을 관리하는 말단 직원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실 책은 항공기 좌석을 예로든다.)

 

 책은 위와 같은 예로 우리가 흔히 마주칠수 있는 소유권에 관한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예를 언급하며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6가지 소유의 법칙을 제시한다. 선착순, 점유, 노동, 귀속, 자기 소유권, 상속이다. 이 단어들을 들었을 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유권을 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과연 이것들이 정말 우리의 소유권을 보장해주고 있을까? 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한정판 물건을 사기 위해 오픈런을 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고,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서도 줄을 선다. 선착순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이해 할 수 있는 소유권을 나눠가지는 방식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이 바뀌고 있다.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돈을 주고 대신 줄을 설 사람을 고용하고, 미국의 대형 놀이공원은 돈을 더 내면 빠른 입장이 가능해졌다. 전화번호나 주소, 심지어 심각한 경우에는 주민번호 마자 이미 여러곳에 공유되고 있고, 이것보다 훨씬 매밀하다고 할만한 개인의 유전자 정보 조차 회사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고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론 책에는 소유권에 관한 이런 부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지는 않다.

 

 소유권을 설정하는 방법을 변경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도 알려준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알래스카 킹크랩 어업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 중 하나라는 알래스카 킹크랩 잡이는 자연 환경적 요인 외에도 배에 탄 사람들을 위협하는 요소가 있었다. 바로 바다속 킹크랩에 관한 소유권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원래 킹크랩은 한정 된 기간 내 바다에서 건져내는 순서대로 소유권을 가졌다. 일견 타당해보이긴 하지만 한정된 자원에서 선착순으로 건져내는 것이다보니 악천후나 기타 선박 결함등의 위험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박들은 출항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걸 선박당 소유권을 총량으로 규제 함으로서 안전을 확보하고 오히려 전체적 이익을 늘리는 일이 되었다. 과연 지금 우리사회에 온전히 내것이라고 확언 할 만한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책을 읽은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이다.

 

 어떤 사이트나 어딘가 회원에 가입을 하면 내 정보는 금세 온갖 곳에 공유되고 휴대전화로는 스팸이 넘쳐난다.

은행 어플에 들어가면 마이데이터, 오픈뱅킹 등등 온갖 단어와 미사여구 당신에게 커다란 혜택을 줄 것처럼 이야기 하며 정보를 팔아 넘기라고 한다.

 

 스마트폰은 어떤가 내가 간 위치며 통화내역이며 온갖 내 개인적인 것을 캐내가기 위해 온갖 권한을 요구한다.

 

 세금, 월급, 복지 등 대부분의 문제는 소유권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 많다. 회사에서 혹은 여타 공동체가 만들어 낸 성과와 이익의 소유권은 누구의 것인지에 관한 논쟁은 오래도록 해묵은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소유권에 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끝으로 '남의 것도 내 것으로 만드는 소유의 법칙' 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이건 좀 너무 마케팅 용으로 붙여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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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부제인 ‘어느 미술품 컬렉터의 기록’ 처럼 저자의 미술품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성공과 실패, 그리고 미술품을 수집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충고와 조언 등을 담고 있는 책이다.

 

 책의 내용에 어려운 것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품 수집을 취미로 여기고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취미로 무언가를 수집하는 사람들은 과거부터 있었다. 먼 과거에는 찻잔과 벼루 같은 것을 수집했고, 우표, 동전, 레고, 최근에는 스니커즈를 수집하는 사람도 많아 진 것 같다.

 

 그리고 그 수집이 누군가에는 단순한 취미의 영역을 넘어 투자의 한 방식으로도 자리를 잡았다.

 

 수집이라는 것이 그렇게 대중적인 영역에 들어서고 있지만 미술품 수집은 내게 여전히 부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상이 강한 것은 가끔씩 기사나 뉴스로 나오는 경매에서 수 백, 수 천억원에 낙찰 되었다는 미술품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책은 이런 미술품 수집을 일반인들도 접근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만들고자하는 저자의 바람을 담고 있다. 저자는 20대 때, 돈이 많지 않은 시절부터 미술품 수집에 열중 했다고 했다. 다른 이의 추천으로 산 미술품의 가격이 크게 올랐던 이야기도 나온다. (어째... 많은 사람들이 주식 투자에 입문하는 계기와 비슷한것 같은건 내 착각일까?)

 

 이렇듯 저자는 미술품은 수집 후 보관하는 동안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효용을 누릴 수 있고 추후 다른 이들에게도 가치를 인정 받는다면 투자의 목적물로 이익을 남길 수도 있다고 설파한다.

 

 조각 투자 등의 핀테크 기술이 발달과 인터넷에 넘쳐나는 정보들로 인해 고가의 미술품 투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성은 이전보다 훨씬 개선 된 것 같다. 과거처럼 화랑 같은 곳에서만 실물로만 미술품을 감상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하면 미술품의 작가에 대한 정보가 주르륵 나올 뿐더러 동일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찾는 것도 훨씬 쉬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자신이 수집한 것을 되팔지 않는다는 저자는 책의 제목처럼 투자보다는 수집 자체를 즐기기를 권하는 것 같다.

 

 육아 용품으로 방안이 가득찬 현실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수집에는 큰 취미가 없다. 다 읽은 책을 처분하지 않은 것도 그저 귀찮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전자책이 나온 뒤로는 종이책 보단 전자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특히 무겁고 큰 책 일수록 보관도 읽기도 가지고 다니기도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씩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았던 책들 중 마음에 드는 작가의 책이 리커버 버전 등이 나오면 가끔씩 사모으는 걸 보면 가끔씩은 손에 잡히는 물성에 욕구 같은 것이 나한테도 없지는 않다는 걸 느끼곤 한다.

 

 내 생각에 수집이란 수집물 자체의 가격 외에도 수집물의 크기에 따라 꽤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 취미인 것 같다.

 책을 읽는 와중에 나도 가끔씩 미술관에만 찾아가서 그림을 볼 것이 아니라 그림을 한 번 사볼까? 하는 마음으로 찾아본 경매 사이트는 싼 것이 시작가가 100만원 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못도 하나 박지 못해 결혼 사진이며, 애 돌사진도 걸어 놓지 못하는 전세 집 어디에 그림을 걸어 놓을 것인가라는 문제의 벽에 부딪혔다.

 

 수집품은 손상되지 않도록 잘 보관해야한다는 저자의 충고를 떠올리면 미술품 수집은 아직 나에게 너무 높은 벽인 것 같아 아쉬웠다. 물론 저자는 작은 소품으로 시작을 하라고 하지만... 과연 그런 소품을 탁자 위에 무심히 올려 두었다간 애들 손에 남아날까? 라는 불안감이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지막으로 미술품 수집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가 말하는 좋은 미술품의 기준을 이다.

  1. 작품의 독창성
  2. 질이 좋은 작품
  3. 작품의 상태
  4. 구매할 작품의 가격이 자신의 경제적 여건과 맞는가?
  5. 주변의 평가
  6. 작품의 진위 문제

 마지막으로 저자는 돈으로도 좋은 취미를 살 수 없다고 말한다. 꼭 수집이 아니더라도 취미를 가지는 건 누구에게나 좋은 일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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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 뇌과학 등이 발달하며 ‘합리적인 인간’에 대한 인식이 꽤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인간의 불합리성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철인통치’ 와 같은 합리적인 인간에 대한 환상 역시 가지고 있었음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른 이들에 비해 높은 수준의 합리적 판단을 기대하는 직업은 존재한다.
판사, 의사와 같이 한번의 판단으로 인해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이들은 높은 수준의 고등교육을 거치는 동안 두뇌를 평가 받으며 직업을 가진 뒤로도 선배들의 지도와 실무를 거치며 경험을 쌓아 나간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 그들은 일종의 판단 전문가로서 활동한다.
그들이 항상 100%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꺼라 기대하거나 믿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 과연 이런 이들은 얼마나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있을까?
책은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모든 판단에는 잡음이 들어있다. 그리고 그 잡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비용과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문가들이 항상 옳고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큰 병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으면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진단을 다시 받아보고 다른 의사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통해 특히나 전문가들의 판단이 자신의 집단과 관련 된 문제가 되거나 아니면 개인적 이익과 결부되는 일이라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판단이 나오게 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사실 이건 의도한 왜곡된 판단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긴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이런 판단의 소음을 막기 위해 여러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 할 문제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판단에 소음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의 날씨, 컨디션, 판단을 내리는 시간에 따라서도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일에 대해서 다른 판단을 내린다. 전문가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로 인해서 생기는 비용이나 부작용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지 모른다.
책의 내용을 읽다 보면 고도로 훈련 받은 전문가들이 내리는 판단 또한 A.I에게 맞기는 것이 적합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은 과거의 사례들을 학습하여 판단을 내리는 A.I가 동일한 사례를 지속적으로 학습하면 판단에 대한 변산성은 줄어들 것 같지만 개별적 사실에 대한 가치판단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의문도 생긴다. 그리고 애초에 학습하는 내용이 잘 못 되었을 경우도 문제겠지만 말이다.
한 때, 인간은 뇌의 기능의 10%로만 활용하고 있으며 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으면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진다는 식의 소문과 영화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뇌과학이 발달하며 그런 이야기는 사라지고 인간이 본성적으로 가지는 한계가 계속해서 드러나는 것 같다.
그리고 승승장구하던 인간이 기후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 없이 신에 가까워지고 있던 인간이 점점 한계를 느끼고 주춤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을 쏘아올리고 미지의 우주를 끝 없이 탐구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과연 앞으로 인간은 어떻게 될까?
자신의 판단 권한을 A.I에게 넘길 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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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라는 매우 도발적인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뒤, 당시로서 굉장히 앞선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 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어떻게 인류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인 히틀러가 쿠데타와 같은 불법적인 방법이 아닌 헌법을 위배하지 않는 정당한 방법으로 민주주의 체계에 정점에 올라설 수 있었는지를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책에도 잘 설명되어 있지만 책을 읽기전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해 알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세계 1차 대전 막바지에 수립되 나치 독일이 수립되기 전까지 독일의 비공식 지명이었다.

 

 민주제 연방국이었으며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형태를 취했다.

 

 거기에 더해 민의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으며 헌법상 여성에게도 투표권이 부여되는 등 당시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난한 자들에게는 투표권 조차 부여되지 않았던 시대적 배경에 비춰봤을 때 상당히 앞선 민주주의 체제가 구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국가에서 대체 무슨일이 벌어졌던 걸까?

 

 공화국은 수립 직후부터 극심한 혼란을 겪게된다. 1차 세계대전에 패한 후 연합군과 체결한 베르사유 조약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남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발행 된 국채는 바이마르 공화국에 초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경제학 교재에도 자주 언급 되는 이 초인플레이션과 베르사유 조약은 국민들의 지지를 잃게 만들고, 정부는 좌익과 우익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다.

 

 이 후, 각종 개혁과 외교적 노력이 성공함으로써 공화국에 안정이 찾아오는 듯 했으나 왕정 복고파인 힌덴부르크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경제 대공황이 발생하며 다시금 상황을 악화시킨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연이어 대통령 비상대권을 사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합법적인 독재를 이어나가는 동안 바이마르 공화국은 극심한 분열로 치닫는다.

 

 이 과정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며 준군사조직이나 마찬가지인 돌격대나 철모단 등의 행동은 요즘의 팬덤 정치는 아이들 소꿉장난으로 느껴지게 할 정도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폭력을 휘두르고 살인까지 저지른다. 이런 폭력적인 행위들이 사회적으로 서서히 묵인 됨으로써 종국에는 국가에 의한 폭력까지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저자는 서술한다.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회민주당 등의 좌파는 사람들이 히틀러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히틀러를 이용하기 위해 권력을 준 우파 정치인들은 히틀러를 통제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런 극심한 혼란과 분열 속에서 힘을 키운 나치와 히틀러는 그들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권력을 차지하고 스스로 총통의 자리에 올라 바이마르 공화국과 그들이 수립했던 민주주의를 끝장낸다.

 

 '역사는 반복된다' 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극심한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유럽에서는 극우주의 정당들이 다시 주류 정당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 대통령 선거가 끝난 우리나라 역시 분열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었다.

 

 종교적, 정치적, 사상적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의견 대립과 이로 인한 분열은 필연적 일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경제적, 정치적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빠른 속도와 과감한 추진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극심한 분열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환멸을 느낄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그러나 국민이 그런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권리를 포기 할 때, 정치가 민주주의의 기본인 타협을 포기하고 권력을 유지하려고만 할 때, 민주주의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문장

 '폭력이 점점 일상이 되면서 국민들은 훗날 나치가 저지르는 국가 폭력도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보수주의 정치인들은 그들 입맛에 맞는 조건으로 권력을 유지할 방법으로 나치를 끌어 들였다. 히틀러 정권은 그 결과였다.'

 '만약 나치의 약속이 합리적이라고 믿어야 나치 당원이 될 수 있었다면 아무도 나치 당원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각자 문제를 가장 쉽고 빠르게 해결하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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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이름만으로도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해전에서 23전 23승을 거둔 불패의 명장이며,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 이란 유명한 말을 남긴 걸로도 유명하다. 이외 난중일기를 남기기도 했고 그의 업적과 인생을 몇줄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책 뿐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이순신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다루어왔다. 이 책 역시 그런 인물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사실 냉정하게 말해 뭔가 새로운 사실이나 관점을 가지고 이순신이란 인물은 조명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정을 가득 담아 그의 생애를 극적으로 묘사한 것도 아니다.(역사책이 당연히 그러면 안되겠지만)

 

 냉정히 말하면 이전에 나온 이순신에 관련 된 저작들과 비교해 새로울 것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다양한 지도와 그림을 이용해 부대의 이동경로를 상세하게 표현하고 전투 현황을 묘사해놓음으로써 현장감을 가지기 좋았기에 이순신과 임진왜란에 관심이 있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입문작으로 추천하기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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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들어가며

 

 대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탓일까?

 

 ‘공정, 정의, 기회, 상식’ 등의 단어가 온갖 매체에 튀겨지는 팝콘처럼 떠다닌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THE TYRANNY OF MERIT’ 이다. 무미건조하게 직역해버리면 ‘능력의 압제’ 나 ‘능력주의의 압제’ 정도 될 것 같은데. 기존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인 ‘정의란 무엇인가’와의 연관성과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던 (20년 12월) 사회 분위기를 생각했을 때, ‘공정하다는 착각’이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책은 우리 사회에(정확히는 미국사회에) 만연해있는 능력주의 도덕의 허상과 폐해를 비판하고 그것이 어떻게 민주주의 사회를 병들게하고, 그로인해 소외된 사람들의 분노가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그리고 그 분노의 대상이 되는 이들이 얼마나 이 사실에 대해 무지한지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2.주요내용

 

 책은 서구 사회에 능력주의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떻게 사회의 주류 이념이 되었는지도 설명해준다. 물론 서구사회에 수백년 이상 영향을 끼쳐 온 종교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보니 우리사회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저자의 개인적 경험담으로 적어놓은 중국 대학교에서 일화를 봤을때, 그 결과는 우리나라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능력주의란 무엇인가? ‘과거 가문, 혈통 등 개인의 의지와는 관련없이 선천적으로 이어지는 특권이 아닌 개인의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회’ 라고 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직관적으로 혈통이나 가문에따라 부와 성공이 이어지는 사회보다는 뒤쪽에서 묘사하는 사회가 훨씬 공정하고 평등해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책은 우선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비판한다. 과연 우리사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재능과 노력에 따라 기회를 공평하게 주고 있을까? 한 때, 아니 지금도 수저론이라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입에 오르내리는 사회에 살면서, 빈부격차는 계속해서 커지고 부의 대물림은 심해지고 계층간의 이동성은 점점 떨어지는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과연 우리사회에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예’ 라고 대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능력주의가 완벽하게 작동을 한다면 그 사회가 진정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라고 책은 재차 질문을 던진다.

 

 모든 이에게 평등한 기회가 부여되고 그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일견 평화로워보이고 공정해보인다. 다만 여기에도 함정이있다. 바로 보상에 관한 것이다. 사회의 수요에 따라 그 보상의 크기가 측정 될 것이라는 항변은 굉장히 안이한 이야기이다.

 

 책에서는 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인 ‘월터 화이트’를 예로든다. 월터는 고등학교 화학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재정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소시민이었다. 그런그가 암선고를 받고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고순도의 마약을 제조하는 마약상 ‘하이젠버그’로 변모한다.

 

 하이젠버그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월터 보다 훨씬 더 큰 돈을 번다. 과연 누가 옳은 것일까?

 

 마지막으로 책은 능력주의 사회속에서 성공을 했고, 그 이유로 자신이 옳고, 도덕적이라 믿는 사람들을 비판하며 사회에서 성공을 하게 해준 능력과 민주주의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갈 수 있는 도덕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 설파한다. 그리고 이런 능력주주 사회에서 인재 선별기 역활을 하는 대학을 비판하며 일의 존엄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3.마치며

 

 수저론이 횡행하고 부모를 잘 둔 것도 능력이라고 SNS에 부끄럼 없이 이야기하는 시대이니 우리사회에 능력주의가 얼마나 일상화 되어 있는지 느낄 수 있다. 나도 한때, 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기회의 평등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책을 읽고서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는 능력주의가 우리사회에 주는 가장 큰 폐해로 승자에게는 오만함을 패자에게는 굴요감을 줌과 동시에 승자들의 성공에 도덕의 틀을 씌을다는 점이다.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이런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제는 그런 이미지가 퇴색 했지만 선출직이 아니면서 상당한 권력을 쥘 수 있는 판검사에 대해서 정의롭다는 이미지가 사람들 사이에서 꽤나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능력에 의해 선별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일반 시민들보다 법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 등 이 탁월하다고 해서 그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 이 점에은 성공한 기업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군가가 많은 이들이 원하는, 어떤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옳고 시민사회를 이끌어나갈 능력이 있다고 믿어서는 곤란하다. 그의 성공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을 수도 있고 그저 운과 때를 잘타고 나서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능력주의로 인해 포퓰리즘이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고 능력주의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자극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당선 되었다고 말했다. 과연 능력주의의 광풍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4. 기억에 남는 문구

 

 오늘날 양극화된 정치 환경을 넘어 길을 찾으려면 능력주의의 장단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능력주의의 의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어떻게 달라졌는가? 직업의 귀천 없음을 무너뜨리고, 많은 이들이 엘리트는 교만하다고 여기게끔 달라지지 않았던가? 세계화의 승리자들이 자신들은 '얻을 만한 걸 얻었을 뿐' 이라고 스스로 정당화하도록 그리고 '능력주의적 오만'에 빠지도록 바뀌지 않았던가?

 

 기회의 평등은 부정의를 교정하는 데 필요한 도덕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정적 원칙이며, 좋은 사회를 만드는 적절한 이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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