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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고전이란 책의 이름은 다 알지만 읽어 본 사람은 없는, 혹은 읽다 보면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앞 뒤 내용을 다 읽어보면 내가 아는 그 내용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한번쯤, 울타리에 페인트를 칠하는 소년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 교육을 할 때 '일에 대한 관점을 바꿔라.'라 같은 교훈적인 이야기로 사용되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이 이야기가 등장하는 책이 바로 '톰 소여의 모험'이다.

법칙이란 바로 어른이건 아이 이건 어떤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려면 그 물건을 손에 넣기 어렵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게도 톰 소여의 모험은 그 정도로 피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던 책이었다. 미국 남부의 작은 시골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은 요즘 아이들이 읽어도 톰의 행동이 유치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소년다운 과장된 행동과 복잡하면서도 지극히 단순하고 과잉된 감정은 웃기기도 하며 나도 이랬던 것 같다는 감상에 젖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편 이제는 모험이라는 것을 몸으로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작은 스크린 안에서 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그것과는 반대되는 힙함 또는 낭만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서 산적만큼 예의 바른 사람은 없는 거야.

줄거리


"톰 소여의 모험"은 마크 트웨인이 1876년에 발표한 고전 소설로,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 세인트피터스버그를 배경으로 톰 소여라는 소년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소설은 톰의 장난기 많고 자유분방한 성격과 그의 친구들과의 다양한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톰 소여는 이모 폴리의 집에서 살고 있다. 그는 모범적인 학생과는 거리가 멀고, 자주 학교를 빼먹고 장난을 치며 문제를 일으킨다. 톰은 베키 대처라는 새로 온 여자아이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여러 가지 모험을 계획한다. 이 과정에서 톰은 종종 친구들과 함께 다니며, 그중에서도 허클베리 핀과 가장 가까운 사이다.

허클베리 핀은 어른들의 규율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소년으로, 톰과 함께 위험한 모험에 빠져들게 된다.

"톰, 남들이 그러는 것은 나랑 상관없어. 나는 남들이 아니잖아."


톰과 허클베리는 어느 날 밤 공동묘지에서 우연히 목격한 살인 사건으로 인해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인디언 조라는 악당이 의사 로빈슨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두 소년은 겁에 질려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대신 무고한 머프 포터가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버린다. 톰은 자신의 양심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법정에서 진실을 증언을 한다. 이로 인해 머프 포터는 풀려나지만, 인디언 조는 도망친다.

톰은 즉시 금주 소년단에서 탈퇴했는데, 판사는 바로 그날 밤 병사게 악화돼 사망했다. 톰은 그런 사람은 앞으로 절대로 믿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톰과 허클베리는 어느 날 문득 장난 삼아 보물을 찾기 놀이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우연히 인디언 조 숨겨둔 금화를 발견하게 되고, 톰과 허클베리는 또 다시 위험한 모험을 겪게 되지만 어린 아이 다운 행운과 용기로 이를 극복하고 이를 통해 마을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톰 소여는 다시 한번 빛나는 영웅이 되었다.


이후 톰은 베키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허클베리 핀은 문명화된 삶을 거부하려 하지만 결국 톰의 권유로 과거의 생활을 청산하기로 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마치며


소설은 톰 소여의 별 숨겨진 뜻이 없고 다분히 재미를 위한 장난기 많은 모험을 통해 순수한 어린이의 세계를 묘사하며 동시에 당시 시대의 사회적 규범과 개인의 자유 사이의 갈등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다 지독하게 규칙적이어서 정말 견딜 수가 없어.
허락받을 필요 없이 뭐든 할 수 있다면 죽어도 좋겠어.


별 의미 없는 구슬이나 잡동사니를 자랑하고 서로 교환하며, 마치 조울증이 걸린 것처럼 쉽게 기뻐했다가 마치 크나큰 시련을 당한 것처럼 슬퍼하는 어린 소년, 소녀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흥분하고 화를 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톰은 이제 베키 새처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단정했다. 명예면 충분했다. 그는 명예를 위해 살고 싶었다.


그러면서 책에 나오는 강과 호수, 산이 어우러진 시골 근교의 풍경에서 벌어지는 소년의 별 뜻 없는 모험과 생각지 못한 우연이 겹쳐서 만든 행운과 포기하지 않는 용기로 얻어 낸 성취는 독자의 낭만을 자극하는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이를 통해 "톰 소여의 모험"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 독자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작품으로,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 외 기억에 남는 문구

사실 그도 '뽐내고' 있었다.

다음 순간 톰이 나무껍질에 쓴 글을 읽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 '이 애가 설사 백만 가지 죄를 짓는다 해도 나는 용서할 수 있어!"

그러나 복수에 대한 열망도 사라지고 곧 유쾌한 생각이 들었다.

소년들이 훌륭하게 복수한 셈이었다. 방학이 시작되었다.

술도 마시고 욕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혀 하고 싶지 않았다.

좋기는 우라지게 좋아서 땅바닥에 주저앉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고 뒹굴지도 못한단 말이지.

부자가 된다는 게 남들이 떠들어대듯 그리 대단한 게 아니더라고. 걱정에 또 걱정, 진땀에 또 진땀,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을 항상 갖도록 만드는 거야.

나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어.

톰 소여의 모험
현대 미국문학의 아버지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미국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저자의 대표적 작품 <톰 소여의 모험>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완역한 것이다. 19세기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강이 흐르는 한 마을에서, 공부보다 모험을 좋아하는 톰과 그의 친구 헉의 성장기를 풍자와 유머로 솔직하고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위트가 번뜩이는 저자 특유의 문체를 되살려냈다. <톰 소여의 모험>의 초판에 실렸던 트루 W. 윌리엄스의 세밀한 펜화도 옮겨왔다.
저자
마크 트웨인
출판
문예출판사
출판일
201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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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인터넷이 전 세계에 보급되고, SNS가 발달하면서 타인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나의 생활을 드러내는 것이 굉장히 일상적이고 쉬운 환경이 되었다.

 많은 이들은 이런 행위로 명성 혹은 인기를 쌓아 자신의 팔로워가 된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인플루언서라는 신종 용어가 생겨났다.

 또 그 반대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다른 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들여다보는데 지친 사람들이 많이 생겨 난 탓인지, 한동안 서점가 베스트셀러의 제목에는 유독 '쇼펜하우어'의 이름이 들어간 책이 많았다.

 '스토너'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19세기말 미국 중서부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대학에 진학하여 영문학 교수가 되는 인물이다. 그의 인생은 그다지 주목받을 만한 사건들로 가득하지 않다. 그의 인생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지만 그는 참전하지 않고, 아주 작은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스토너는 결혼 생활에서 불행을 겪고, 직장에서도 큰 성공을 이루지 못하며,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언뜻 들으면 과연 소설의 주인공으로 어울릴 법한 삶인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며 이러한 평범한 인물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다 보면 내 삶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바라보다 지친 나를 돌아볼 기회가 될 것이다.

 

줄거리


 스토너는 미주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농업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문학 수업을 듣고 난 후 그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고 전공을 바꾼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미주리 대학교의 영문학 교수가 되어 평생을 그곳에서 보낸다.

 스토너의 삶은 여러 갈래로 펼쳐진다. 그는 이디스라는 여인과 결혼하지만, 이디스는 결혼 생활 내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둘의 관계는 차갑고 불행하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딸 그레이스는 부모의 불행한 결혼 생활의 영향을 받아 성장한다.

 스토너는 대학 내에서도 여러 갈등을 겪는다. 특히 동료 교수 홀리스 러맥과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러맥은 스토너의 삶에 큰 장애물이 되며, 이로 인해 스토너의 학문적 경력은 여러 번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스토너는 자신의 가치를 지키며 일에 대한 열정을 다한다.

 스토너의 삶에서 잠시 동안의 기쁨은 동료 교수 캐서린 드리스콜과의 사랑이다. 그녀와의 관계는 스토너에게 진정한 행복과 위안을 준다. 그러나 이 관계도 대학 측의 압박으로 끝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스토너는 외롭게 생을 마감한다.

마치며


 꽤나 길게 줄거리를 써 내렸지만 그의 삶에 소설에서 흔히 있는 반전이나 극적인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꽤나 극적이거나 자극적이라 할 만한 이야기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 스토너가 우연히 대학에 들어가 문학 교수가 되는 것과 이디스, 그리고 캐서린 드린스콜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정도였던 것 같다.

 결말을 아주 자세히 적어도 그 누구도 스포일러를 했다고 투덜거리지 않을 어찌 보면 어디서 인가 한 번쯤은 만나봤을 법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 깊은 몰입감을 준 저자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토너'를 매우 절제된 문체로 쓰여있다.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으며,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문체는 인물들의 내면세계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비록 스토너는 그들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의식하고 있었다.

 

얼굴들에서 그는 서서히 죽어가는 마음, 모질게 마모되어 사라지는 감정과 애정을 보았다.


 그리고 중서부의 황량한 농촌 풍경과 대학 캠퍼스의 모습은 묘사한 것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게 그려지며,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나뭇잎은 더욱 짙은 갈색과 황금색으로 물들었고, 캠퍼스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졌다. 잔디밭 위에는 노란 잎사귀들이 흩날리며 쌓였고, 가을 햇살이 비추는 나무들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다시 주인공 스토너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요즘으로 치면 스토너의 인생은 SNS에 올릴 이야기가 거의 없는 인생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멋진 곳으로 여행을 가지도 않고,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업적이나 극적인 상황도 없다. 오히려 그의 인생은 남들에게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인내와 고뇌의 연속이었고, 그것을 항상 담담히 마주 보고 있었다.

스토너는 그녀의 모든 행동, 즉 분노, 고뇌, 고함, 증오에 찬 침묵 등을 모두 남의 일처럼 바라보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대부분 사람의 삶이 그런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가 하드보일드 소설 속 주인공은 될 수 없다. 긴 인생의 아주 잠깐의 극적인 순간순간은 존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겉으로는 대부분은 어제 같은 오늘의 일상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큰 굴곡 삶이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화려한 삶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스토너의 인생은 외견상 큰 사건 없이 흘러가지만, 그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고, 자신의 길을 찾으려 노력한다.

 문득 얼마 전, 읽었던 소설 '모순'의 진진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그녀의 불행은 스토너의 것보다 훨씬 요란하고 시끌벅쩍하다. 불행을 자기 안으로 삼키고 녹여버리는 스토너에 반해 진진의 어머니는 그것을 드러내고 발산한다.

"아, 윌리" 이디스가 말했다. "당신 속이 다 먹혀버렸대요."

 

 무엇이 옳은 방법인지 나로서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다만 두 사람 다 끝까지 자신의 인생을 지켜낸 멋진 사람인 것만은 알 수 있는 것 같다.

 스토너의 삶은 실패로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그 끝이 실패인지 아닌지는 소설을 읽는 이의 각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스토너의 모습은 큰 감동을 주었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그의 삶은 그는 스승인 슬론의 충고처럼 항상 자기가 누구인지 잊지 않은 삶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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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orrichard.tistory.com

 

 

 
스토너(초판본)
“이 소설에 대해선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나는 제대로 시작할 수조차 없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전 세계 수많은 문학 애호가들의 인생 소설로 손꼽히는 명작 《스토너》가 1965년 미국에서 처음 발행됐을 때의 표지로 출간된다. 50여 년 전, 이 책의 초판은 출간 1년 만에 절판되었지만 2010년대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재출간되며 역주행 베스트셀러 신화를 쓴다. 이 책을 두고 평론가 모리스 딕스타인은 “당신이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 최고의 소설”이라 극찬했으며, 영국의 유명 작가 닉 혼비, 이언 매큐언, 줄리언 반스는 물론 수많은 국내 명사와 독자 역시 애정을 드러냈다. 이번 에디션에서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추천사 전문을 실었다. 또한 초판에 담긴 일러스트레이션을 완벽히 재현했다. 주인공 스토너가 평생을 보낸 대학에 있는, 화재로 모든 게 스러지고 기둥만 남은 어느 건물 그림이다. 폐허가 된 자리에서도 기둥만은 불쑥 솟아 괴상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이는 스토너가 받아들인 삶의 방식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자 했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과대학에 입학하지만, 부모님의 바람과 달리 전공을 영문학으로 바꾼다. 전쟁의 열기가 젊은이들을 휩쓸고 갈 때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교수직에 몸담은 뒤에도 출세의 뜻을 내비치지 않는다. 조용하고 소박하게, 그러나 쉬지 않고 열정을 좇아가는 스토너를 보며 특별한 감동에 젖을 수 있다. 평생 한곳에 살았던 스토너가 문학을 통해 자신의 공간을 넘어서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당신 또한 《스토너》 초판본을 통해 이 소설이 견뎌낸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뛰는 경이로움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저자
존 윌리엄스
출판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일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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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코맥 매카시가 쓴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내가 올해 들어 읽은 책 중 가장 읽기 어려웠던 책이었다.

깊이 있던 내용이 어려웠던 것은 아니고, 그 구조와 표현 방식이 독특하고 낯설어서 읽기 어려웠다.

등장인물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표시하는 따옴표나 쉼표 같은 구두점들이 대부분 생략되어 있었고, 단락이나 장면의 전환도 갑작스럽게 이루어져서, 집중력을 조금만 잃어버려도 '갑자기 왜 이런 전개가 되는 거지?' 라며 마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혼란스러워하는 보안관 에드처럼 되어버렸다.

이와 비슷한 양식을 가졌던 주제 사마라구의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이렇게 어려움을 겪지 않은 것 같은데. 그동안 숏폼에 중독되어버린 내 뇌가 문제인지 아니면 그냥 나이가 들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책으로는 이제 절판되어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계기도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어서 이다.

책은 구하기도 읽기 어렵지만 구할 수만 있다면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르웰린과 안톤의 추격전에서 오는 긴장감과 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중간중간 길을 잃어가면서도 소설을 끝까지 다 읽게 해 준 동력인 것 같다.

영화


먼저 소설책을 끝낸 뒤, 영화를 보았다. 가끔 (아니 높은 확률로) 소설 원작의 영화는 실망스러울 때가 많았지만 코언 형제가 감독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로 보는 것도 만족도가 높았다.
특히 안톤 쉬거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은 초코송이 같은 웃긴 머리를 하고도, 실제로 마주친다면 불쾌하면서도 두려울 것 같은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무척이나 잘 살렸던 것 같다.

줄거리


코맥 매카시의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텍사스 서부를 배경으로 한 범죄 스릴러로, 무자비한 폭력과 도덕적 딜레마를 탐구한다. 이야기는 1980년대 초, 사냥을 하던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인 루엘린 모스가 우연히 마약 거래가 잘못된 현장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현장에는 시체들, 헤로인, 그리고 200만 달러의 현금 가방이 있다. 모스는 돈을 가져가기로 결심하지만, 이는 그를 무자비한 살인마 안톤 시거의 표적으로 만든다.

안톤 시거는 돈을 되찾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죽이며 모스를 추격한다. 그는 무자비하고 냉혹하며, 자신의 피해자들에게 동전 던지기로 생사 여부를 결정짓는 인물이다. 이 과정에서 모스는 시거와의 싸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도망치고, 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시거와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한편, 오래된 보안관인 에드 톰 벨은 이 폭력적인 사건을 조사하며, 현대 사회의 폭력과 도덕적 붕괴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낀다. 벨은 자신의 노후와 자신이 믿어왔던 가치관이 더 이상 현대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 것 같아 혼란스러워한다. 그는 정의와 질서를 지키려 노력하지만, 사건이 진행될수록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게 된다.

결국, 모스는 시거에게 붙잡히기 전에 다른 범죄자들에게 살해당하고, 시거는 끝내 돈을 되찾지 못한다. 시거는 모스의 아내를 찾아가고, 그녀에게도 동전 던지기로 생사를 결정하라고 요구하지만, 그녀는 이를 거부한다. 이내 그녀를 죽이고 떠나는 시거는 교통사고를 당하지만, 여전히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소설과 영화는 큰 줄기의 이야기는 같지만 르웰린이 죽는 이유 같은 세부 내용은 조금 다르다.

마치며


사실 스토리만 놓고 본다면 꽤나 흔한 장르의 소설이나 영화인 것 같다.

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가난한 남자가 마약거래 현장에서 우연히 큰돈을 얻는다. 거래에 관련된 두 조직은 자신의 조직원고 킬러를 보내 돈 가방의 행방을 쫓고, 그 지역의 담당 보안관은 그 사건의 진신을 캐내기 위해 그들을 쫓는다.

전체적인 줄거리를 좀 더 간략하게 요약하면 위와 같다. 이 책에서 벌어지는 진짜 흥미로운 일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대하는 인물들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우왕좌왕하는 르웰린.
자신만의 원칙을 주장하며 행동하는 안톤 쉬거.
선을 추구하며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해보려 하지만 무기력한 에드 톰 벨.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안톤 시거일 것이다.

그는 철저히 계산적면이서도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하고 남들은 이해하기 힘든 불가해한 자신만의 원칙을 가진, 그의 존재 자체가 무질서 속의 질서 같다.

그는 사람의 목숨을 동전을 던져 단순히 수학적 확률로 결정짓고, 그 결과를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영화의 말미에서 르웰린의 아내 칼라의 반박에는 살짝 발끈하는 기색을 보이긴 하지만 그는 그만의 원칙이 있다.

문제는 그 원칙과 결과 혹은 우선순위가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알 수 없는 그의 행동 양식은 우리에게 불안감과 두려움을 준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AI와 알고리즘에 서서히 의존하는 현대 사회와 닮아 있는 것 같다. 어떤 과정을 거쳐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때로 우린 그것을 쉽게 수용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과 배경은 마치 카우보이가 뛰어다니는 서부시대를 연상시킨다. 카우보이 모자와 부츠를 신고, 말을 타고 사건 현장으로 가기도 한다. 겉모습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게 없지만 그 속에 사람들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다.

특히, 보안관 에드의 시각에서 바라본 세상은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혼돈과 폭력으로 가득 차 있다.

에드는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더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그의 회고와 독백은 자신의 아버지 시대를 혹은 자신의 어린 날을 말한다.

요즘은?
글쎄 과연 몇 년 전만 해도 알고리즘에 휩쓸려,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보고 있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숏폼의 화면을 휙휙 넘기고 있는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요즘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이 아니라 '중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바꿔야 되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 정도다.

앞으로 세상은 계속해서 빠르게 바뀔 것이다. 이미 평범한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은 많다. 그런데 AI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AI가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원리로 세상이 움직이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시기가 오지는 않을까?

그런 시기가 온다면 우리는, 나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지 궁금해진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8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등 8개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영화)된 코엔 형제의 영화 'No Country for Old Men'의 원작 소설. 사막에서 영양을 쫓던 평범한 사나이 모스는 우연히 총격전의 현장을 발견한다. 참혹한 시체들, 다량의 마약, 200만 달러가 넘는 현금, 그리고 물을 찾는 중상의 생존자 사이에서 모스는 돈가방을 챙겨 그곳을 떠난다. 하지만 생존자를 외면한 것이 마음에 남았던 모스는 그날 밤 다시 현장을 찾아간다. 그러나 마약은 사라지고 생존자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그를 기다리는 것은 미지의 추적자들이다. 모스는 다시 예전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는 도망과 총격전, 음모와 살인 속으로 던져진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사건, 조밀하고 단단한 시퀀스, 무뚝뚝해 보이는 어투와 잔잔한 독백이 교차하는 문체미의 앙상블은 이 작품을 고품격 스릴러, 완성도 높은 서부극으로 만들어 기존의 스릴러, 서부극과는 다른 차이를 보인다. 또한 멕시코 국경의 황량함, 다양한 형태와 구경의 총기들, 핏빛과 화약 연기들의 로컬 이미지 아래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그늘을 보여준다. 〈font color="ffb6c1"〉 ★ 〈/font〉 수상 내역 〈font color="ffb6c1"〉 ★ 〈/font〉 ♦ 2007 퓰리처상 수상 작가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의 고품격 스릴러 ♦ 거장 코엔 형제의 영화 'No Country for Old Men'의 원작 소설 ♦ 2007 전미비평가협회, 뉴욕/보스턴/워싱턴/시카고/샌프란시스코비평가협회 최우수 작품상 수상(영화) ♦ 2008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등 8개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영화)
저자
코맥 매카시
출판
출판일
2008.02.20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총격전이 벌어진 끔찍한 현장에서 르웰린 모스(조슈 브롤린)는 우연히 이백만 달러가 들어있는 가방을 손에 넣는다. 그러나 이 가방을 찾는 또 다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살인마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 그리고 이들의 뒤를 쫓는 보안관 벨(토미 리 존스)까지 합세하면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목숨을 건 추격전이 시작된다.
평점
8.0 (2008.02.21 개봉)
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
토미 리 존스, 하비에르 바르뎀, 조슈 브롤린, 우디 해럴슨, 켈리 맥도널드, 가렛 딜라헌트, 테스 하퍼, 배리 코빈, 스티븐 루트, 로저 보이스, 베스 그랜트, 안나 리더, 킷 그윈, 잭 홉킨스, 칩 러브, 에두아르도 안토니오 가르시아, 진 존스, 부츠 서덜랜드, 캐시 램킨, 마가렛 바우먼, 믹 왓포드, 자니 헥터, 토마스 코파치, 제이슨 더글라스, 러더포드 크레이븐스, 매튜 포세이, 도리스 하그레이브, 브랜든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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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이 책을 고른 건. 사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책을 사려고 했는데 소설 베스트셀러 중 하나라서 샀던 것 같다. 대부분 책을 고를 때는 그런 식이다. 좋아하는 작가라서, 그냥 고르다가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등등 별 대수롭지 않은 이유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렇게 우연히 고른 책이 무척 재미있거나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런 책이었다.

 

책의 줄거리

 

 내 이름은 안진진.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25살 미혼여성이다.

 

 참 진(眞) 자가 두 글자나 들어가 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그녀의 성과 만나 그녀의 인생처럼 되어버린 이름이다.

그녀의 가족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억척스러운 어머니, 가끔씩 집으로 돌아오는 거의 행방불명되다시피 한 아버지, 조폭 두목을 꿈꾸는 남동생이 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두 남자를 저울질 하고 있다. 사진작가인 김장호와 나영규이다.

 

 결혼 이후, 안진진의 어머니의 삶에는 숨 돌릴 틈 없이 불행이 연거푸 찾아온다. 따뜻하고 건실한 사람이라 여겼던 남편은 술 주정뱅이에 가출하기 일 수다. 아이들이 커서는 진진의 동생 진모가 사고를 치고 다니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남편은 치매에 중풍까지 앓으며 반신불구가 되어 돌아온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그 불행을 이겨내는 것이 천직인 것 같다. 책을 읽고, 힘을 얻고 연거푸 몰아치는 불행의 파도를 넘으며 살아간다.

 

 안진진의 어머니에게는 쌍둥이 동생이 있다. 그녀는 언니와 함께 태어난 것처럼 한 날, 한 시에 결혼을 했다.

 

 진진의 이모의 남편은 그녀의 아버지와 영 딴판이었다. 낭만적이지만 불안했던 아버지와 달리 그녀의 이모부는 지루하지만 안정적이었다.

 

 덕분에 진진의 이모는 부잣집에서 남들 보기에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이모의 남편도 아이들도 사고 따위는 치지 않는다. 그녀가 뒷바라지 할 것도 없이 다들 자신만의 계획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굴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삶.

 

 한편 두 남자를 양쪽에 두고 저울질 하는 안진진의 고민은 계속해서 깊어진다.

 

 어딘가 느슨해 보이는 김장호, 그는 그녀의 아버지를 닮아있다. 김장호나 그의 가족, 형과 형수는 가난하지만 무척 따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진진은 그들과 함께 자신의 불행을 나누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철두철미한 계획 아래 연애도 결혼도 진행하려는 나영규는 그녀의 이모부를 닮아 있다. 진진은 그의 계획에 답답해 하지만 그녀의 불행을 털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마치며

 

 IMF 때 초판이 나왔다고하니 꽤 오래된 책이다. 조금 더 어렸을 때 책을 읽어보았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해진다.

 

 결말이 스포가 되겠지만, 진진은 나영규와 결혼하기로 한다. 자신이 사랑하던, 자신을 사랑하던 남자 김장호를 버리고, 한번 헤어질 것을 통보한 나영규와 결혼하기로 한다.

 

 진진의 선택이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김장호와 같은 인물과 결혼하여 인생의 전반을 불행하게 보낸 이를 알고 있다.

 

 바로 그녀의 어머니.

 

 어렸을 때 모습은 모두 잃어버리고 누구나 인정하는 불행한 삶을 겪지만, 아이러니하게 불행은 그녀의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어머니는 더욱 바빠졌고 나날이 생기를 더해갔다. 아, 어머니의 불행하고도 행복한 삶

 

 진진은 나영규와 같은 사람과 결혼하여 남들이 보기에는 행복하지만 스스로는 불행한 결말로 치달은 이모를 잘 알았고 그녀의 자살이 가지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그런 이모와 어머니를 닮았음을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암시하던 진진은 이모와 같은 길을 스스로 선택하여 걸어 들어간다.

 

 진진은 이 선택을 변명처럼 독백한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다.

 

 절대 뚫리지 않는 방패와 무엇이든 뚫어버리는 창을 파는 상인의 이야기는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려서 저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인 줄 만 알았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고 살아가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경력은 많지만 연봉은 낮은 신입, 값은 싸지만 품질은 보통 이상인 물건이나 서비스 같이, 언젠가부터 이런 모순적인 요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나도 살아가고 있다.

 

 내년이면 또 앞자리가 바뀌는 나이가 되었다.

 

 짧게 되돌아보면 내 삶이라고 진진의 삶의 부피보다 더 두꺼울 것도 없다.

 

 내 삶의 얼마만큼이나 자의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아마 못해도 절반 이상은 되는대로 떠밀려 왔고, 나머지 절반도 내 선택인 줄 착각하고 살지 않았을까?

 

 진진은 그 끝이 불행 할 것을 알면서도 나영석과 결혼한다. 가져 본 적 없는 행복을 움켜쥐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일까?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진진의 선택을 쉽게 옹호하거나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그냥 자기 인생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진진은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지금은 이제 그런 사람이 거의 없지만, 나의 선택에 관해 자기 인생의 경험을 끄집어 내가며 충고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한 때, 인생이나 앞으로의 비전 등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자기 개발서에 심취해서 읽었던 적도 있었다.

 

 그 때를 돌이켜 보면 물론 그것이 도움이 아예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고도 말하기에도 애매한 것 같다. 그들의 인생이 내 인생은 아니고 그들의 성공이나 실패가 나의 성공이나 실패와 명백한 인과 관계가 있지도 않았던 것 같다.

 

 책의 마지막 말처럼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실수하고 수습하는 게 인생이 아닐까.

 

그 외 기억에 남는 문구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나는 왜 갑자기, 어딘가에서 그 남자의 냄새나는 양말을 깨끗이 빨아놓고 잠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까.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나는 다만 이것이 사랑인가, 하고 사랑을 묻다가 이것이 사랑이다, 라고 스스로에게 답했을 뿐이었다.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었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연관해서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

 

[독서 노트/소설] - 파친코 - 이미진

 

파친코 - 이미진

‘여자의 인생은 고생길이다.’ 선자의 모친 양진이 때때로 하는 말처럼 선자의 인생은 고생길로 가득하다. 그러나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로 시작하는 소설의 첫문장

poorrichard.tistory.com

 

 



모순
양귀자 소설의 힘을 보여준 베스트셀러 『모순』. 1998년에 초판이 출간된 이후 132쇄를 찍으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을, 오래도록 소장할 수 있는 양장본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스물다섯 살 미혼여성 안진진을 통해 모순으로 가득한 우리의 인생을 들여다본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장들로 여러 인물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장에서 내복을 팔고 있는 억척스런 어머니와 행방불명 상태로 떠돌다 가끔씩 귀가하는 아버지, 조폭의 보스가 인생의 꿈인 남동생을 가족으로 둔 안진진. 어머니와 일란성 쌍둥이인 이모는 부유하지만 지루한 삶에 지쳐 있고, 가난한 어머니는 처리해야 할 불행들이 많아 지루할 틈이 없다. 안진진은 사뭇 다른 어머니와 이모의 삶을 바라보며 모순투성이인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하는데….
저자
양귀자
출판
쓰다
출판일
201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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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의사소통을 위해서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는 언어다. 언어는 감정을 전달하고, 생각을 공유하고, 지식을 전달하는 데 필수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이 지구에만 해도 수 많은 다양한 언어가 존재하고 있다. 어떤 언어들은 사용되지 않아 점차 소멸의 길로 들어서지만,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등 대충 꼽아보아도 두 손가락으로 모두 세기는 힘든 것 같다.

 

 여행을 갈 때,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문화권으로 간다면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상황과 마주한다. 이럴 때에는 약간의 뻔뻔함과 이런저런 몸짓, 때로는 자본주의의 힘으로, 요즘에는 AI 기술 같은 걸로 상황을 쉽게 상황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우주에서, 우리와 완전히 다른 신체 구조와 문화를 가진 외계 생명체를 만나게 된다면? 대체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 첫 인사를 나눠야 할까?

 

들어가며

 

 이 책은 '마션'의 작가 엔디 위어의 또 다른 장편 소설이다. 장르는 SF소설로 주인공이 과학자인 관계로 과학적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과학적인 내용과 그레이스라는 인물의 서사를 흥미롭게 풀어내며 가볍게 읽거나 듣기 좋은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과학자'라는 직업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라이언 고슬링 주연으로 영화화도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그가 연기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이 상당히 기대된다.

 

 줄거리 요약

 

 주인공인 그레이스는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낯선 장소에서 깨어난다. 그의 자신의 이름이 기억 나지 않고, 제대로 걸을 수도 정도로 몸도 기억도 완전히 엉망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천천히 몸을 회복하고 기억을 되찾는데…

 

 그가 있는 곳은 바로 우주이고, 그는 아스트로파지로부터 지구를 구하기 위해, 다시 지구로는 돌아 갈 수 없는 자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그레이스는 다른 두 명의 동료 승무원들이 이미 죽었음을 알고, 홀로 남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타우세티로 향한다.

그러던 중, 낯선 외계 우주선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그레이스가 록키라고 이름을 붙인 외계인 공학자와 조우하게 된다.

 

 그들은 아스트로파지의 비밀을 풀고 각자의 행성을 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레이스는 왜 기억을 잃었을까?

 

마치며

 

 개인적으로 엔디 위어의 '마션', '아르테미스', 그리고 이번에 리뷰를 쓰고 있는 '프로젝트 헤일메리' 모두가 재미있는 책이었다다. 과학을 소재로 이렇게 이야기를 가볍고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작가 특유의 과학자 너드와 유머, 그리고 뜬금없는 것 같은 소설의 시작, 그리고 외계인 엔지니어와 지구인 과학자가 벌이는 만담 아닌 만담도 책을 듣는 내내 즐거운 대목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하나씩 떠오르는 기억들을 쫓아가는 방식은 책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구성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우주선에서 홀로 깨어난 그레이스가 우주에서 외계인과 조우하여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그레이스는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적극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약간 거리를 두려고하는 내향인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외계인과의 조우 후에는 그의 흥분하는 모습, 그와의 관계를 맺고 우정을 쌓는 모습, 그리고 지구를 구하는 임무 때문에 자신의 취미 생활을 방해 받는다며 투덜거리는 모습은 과학자의 탐구욕과 광기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레이스가 록키와 처음 만났을 때, 그들 사이에는 언어의 장벽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과학의 보편성을 통해 의사소통의 길을 찾아낸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이는 과학이 단순히 실험과 이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외계인 사이의 언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이 책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그레이스가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인 것 같다.

 

 물론 그는 원래 선한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학자 시절 주류 과학계에서 인정 받지 못해 교사가 된 그레이스가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특히나 록키를 만나 인정받고 격려 받으며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문제해결을 위해 과학적 사고로 계속해서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에서 과학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었던 것 같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헤일메리Hail Mary’는 미식축구 용어로, 경기 막판에 역전을 노리고 하는 패스에서 유래한 말이다. 작품 속 우주선의 이름인 ‘헤일메리호’도 지구를 종말로부터 구하기 위한 마지막 역전을 바라는 마음에 지어졌다. 주인공이 긴 수면 끝에 눈을 뜬 곳은 우주 한복판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함께 우주선 헤일메리호에 탄 동료들은 모두 죽고 혼자가 된 상황이다. 헤일메리호를 샅샅이 뒤진 끝에,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인류를 구할 마지막 희망이자, 우주 한복판에서 죽을 예정인 과학자였다는 것을. 소설 속 지구는 태양의 온도를 떨어트리는 미지의 생명체 ‘아스트로파지’ 로 인해 멸망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주인공은 그 아스트로파지를 조사하고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우주 출장을 오게 된 것이다. 다만, 기술적 한계로 주인공은 아스트로파지를 없앨 해결책만 지구로 보낸 후 우주에서 홀로 죽을 운명이었다. 즉, ‘편도행 헤일메리호’의 일원으로 우주에 왔다. 그런데 잠깐, 우주선 계기판에 무언가 이상한 신호가 잡힌다. 기억을 되찾고 인류를 구하기도 바쁜데 갑자기 외계인의 등장이라니? 과연 그는 지구 구하기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죽을 수 있을까?
저자
앤디 위어
출판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일
2021.05.04

 

같이 읽어보면 좋은 글

[영화] - 영화 '컨택트' 우아한 지구 정복자 헵타포드 - 드니 빌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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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주, 아니 거의 대부분 자신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날 확률을 과소 평가하고 행운이 찾아 올 확률을 과대 평가하고는 한다.

 

 그래서 벼락 맞을 확률보다 당첨 확률이 낮다는 로또는 매주 사면서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확률로 사고가 날 수 있는 자동차는 거의 매일 타고 다닌다. (내 이야기다.)

 

 물론 이런 걸 일일이 따지고 살면 거의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발생 확률이 0이 아니라는 것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야기 하려는 책은 확률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소설 책을 읽는 재미는 발생 확률이 0%가 아닌 일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현실은 소설 보다 더 하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들어가며

 

 이 책은 자본과 인간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근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민간에 전해지는 오래 된 설화 속 저주 같은 RB 바이러스, 인간과 흡사한 로봇, AI 선생님, 인체에 내장하는 ESC, 홀로그램북, 화성 관광 등을 통해 사실감을 부여하고 독자의 상상력을 고취시킨다.

 

 의문이 가득한 소년의 이야기가 한 꺼풀 한꺼풀 벗겨지고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가 끝에 다다랐을 때, 작가가 독자한테 원하는 감정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슬픔? 분노? 두려움? 그것도 아니라면 희망이었을까?

 

줄거리 요약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온몸이 새하얀 백색증을 앓고 있는 소년 마오가 다른 이들과 차단된 채 외딴 숲 속 집에 살고 있다.

 마오는 RB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태어났고 바이러스를 치료하고 살아남기 위해, 타인과 다른 자신의 삶을 수긍한다.

 치료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진솔이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다른 소년 하라를 집으로 데려온다. 

  

책의 줄거리

 

 시대는 근 미래, 마치 인간처럼 행동하는 안드로이드가 흔하고 인간은 달에 호텔을 짓고 화성에 정착할 첫 이주민을 뽑으려 하고 있다.

 

 고층 빌딩 숲이 평범한 시기에 울창한 나무로 둘러 쌓인 깊은 숲 속, 최첨단 설비를 갖춘 집에 온몸이 새하얀 소년이 자신의 메이드 로봇과 함께 단 둘이 살고 있다.

 

 백색증을 앓고 있는 소년의 이름은 마오.

 

 이제 16살이 된 이 알비노 소년은 달에 호텔 셀레나를 건설하고 운영에 성공한 거대한 그룹 회장의 유일한 손자이다.

마오는 연약하다. 햇볕을 받으면 알레르기 반응이 강하게 일어나고 먼지와 스트레스, 각종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소년을 이렇게 연약하게 만든 근원은 소년의 부모가 사업을 위해 멸종상태에서 부활시킨 ‘레인보우 버드’가 가지고 있던 희귀한 바이러스, RB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서다.

 

 그 바이러스로 인해 소년의 부모 역시 모두 사망하지만 태아 상태에서 감염된 마오는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소년의 할아버지 회장은 온갖 변이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치료하고 소년을 살리기 위해, 소년을 깊은 숲 속의 집에서 외부와 차단 한 채 살아가게 한다.

 

 그리고 치료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마오는 자신과 같이 RB바이러스에 감염되었지만 생존한 자신보다 2살 많은 하라를 만나게 된다.

 

 평생 사람이라고는 자신을 어렸을 때부터 돌봐 준 진솔을 제외하고 처음 다른 인간을 만나는 마오는 자기 삶에 대한 진실과 마주한다.

 

마치며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대표자 혹은 우리의 의견을 대신할 사람을 투표를 통해 뽑고 있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 체계는 분명 민주주의지만 우리의 실 생활에서 지배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돈, 그러니까 물질적 자본이 가지는 힘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단순히 돈이 많은 것으로는 남들에게 존경을 받거나 유명해지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을 졸부라고 부르며 비꼬기도 했다.

 

 그렇지만 요즘은 좀 많이 달라졌다.

 

 돈이 많다면, 그 돈을 쓰는 것을 온갖 SNS 등에 올리며 자랑하는 행위가 유명세를 사고 그 유명세가 명성 또는 영향력을 가지는 시대다.

 

 이렇게 돈으로 해결 가능한 것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적절한 보상이 따른다면 감옥에 가는 것도, 그러니까 자유가 부당하게 억압받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문조사에 응답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도덕관념은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변해왔다.

 

 인류 최고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도에 찬성했고, 여성 참정권을 부정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라는 세종대왕은 어머니가 노비이면 그 자식도 노비가 되는 노비종모법을 시행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사람들은 그런 시대에 영향을 받아 자라고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먼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까.

 

 돈은 이미 많은 것을 정당화시켜주고 있다.

 

 소설 속에서 인간이 멸종시킨 다시 부활시키는 것을 정당화한 것은 사업(=돈)을 위해서였다. 화성 첫 이주자 그룹에게는 그 이면에 무슨 저의가 숨겨져 알려주지 않고 살 곳과 지원금을 준다.

 

 막대한 기부금으로 사 온 아이의 인생 전부를 저당 잡고, 삶을 이어준다는 명목과 교묘한 속임수로 자신에게 일어난 부당한 일을 스스로 정당화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강압적으로 실험체로 사용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에는 나치, 일본에는 731부대가 있었고, 미국에서는 흑인들을 대상으로 한 터스키기 실험이 있었다.

 

 아마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이 일을 말도 안 되는 잔혹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일이 피해자에게 평생을 써도 다 못 쓸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 벌인 일이라면?

 

 솔직히 말해서 내게 책과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상상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아니라 내 후대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실제로 한 부자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어마어마 한 돈을 소비한다.

 그 방법으로 젊은 자기 아들의 피를 수혈하는 처방도 받았다고 한다. 과연 이 방법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굳이 자기 자식뿐만 아니라 자기 몸에 맞기만 하다면 사람을 사서 하지 않을 건 또 뭐란 말인가?

 

 이렇게 한 단계씩 그 수위를 올려 나간다면 개인을 위한 인간 모르모트를 상상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과연 우리는 아니 세상은 그것을 멈출 수 있을까?

 

 
테스터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장시켜 줄 허블 청소년 시리즈의 첫 책은 30만 명의 독자들이 사랑한 베스트셀러 『페인트』를 쓴 이희영 작가의 장편소설 『테스터』이다. ‘누가 이토록 연약한 소년을 숲속에 홀로 방치해 두었을까’ 하는 미스테리한 질문 하나로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 작품은 장대하고도 아름다운 디스토피아 SF이다. 그와 동시에 이 소설은 세상과 유리된 채 불가항력에 이끌려 살아가는 먼지 같은 존재들을 위한 곡진한 진혼곡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멸종된 오방새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인류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함께 복원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모두 죽었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어린아이가 있다. 백색 소년 마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 평생 숲속 집에 갇혀 메이드 로봇과 함께 산 이 외로운 소년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온다. 바로 RB 바이러스의 또 다른 생존자인 하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소년을 둘러싼 미스테리한 질문들을 파헤친 끝에 마오가 가닿은 반전은 두 소년의 위치를 송두리째 뒤흔든다. 두 소년이 드러내는 슬프고 충격적인 진실은 독자들이 작품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도록 한다. 하루아침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소년들에게 과연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정교하고, 아름답고, 꿈결 같고, 왠지 슬프다. 매력적이고 여운이 긴 작품이다.” -장강명(소설가) “《페인트》와 《나나》를 잇는 또 하나의 명작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한다. 이희영 작가가 빚어낸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디스토피아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정여울(문학평론가)
저자
이희영
출판
허블
출판일
20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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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정원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 독자들로부터 찬사를 얻은 소설가 홍준성의 세 번째 장편소설 《지하 정원》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예스24 크레마클럽을 통해 먼저 독자를 만난 이 작품은 여성 식물학자 얀코가 비뫼시라는 가상의 도시 지하에 ‘똬리나무’라 명명된 거대한 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에 얽힌 비밀을 파헤쳐나가는 파란만장한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비뫼’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의 정신사를 복원해내고자 하는 작가 홍준성은 한국문학에서는 보기 드물게 거대서사에 도전하는 작가다. 전작 《카르마 폴리스》를 통해서 독자들로부터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 “천명관의 《고래》와도 같은, 이야기의 거센 파도”, “어마어마한 몰입감. 환상적인 문체”, “혼돈과 허무, 역사속의 사회상을 총 집결해놓은 듯”하다는 평을 받은 바 있으며, 2021년 런던북페어에서 화제의 한국 작가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비뫼시는 소문과 이야기, 음모와 정치, 그 모든 것이 우화적으로 교직된 가상의 도시로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는 현대의 초상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비뫼시 지하에 ‘똬리나무’라는 생명 법칙을 모조리 어긴 식물의 자리를 마련한다. 여성 식물학자 얀코는 운명을 따라 문명의 기저에 놓인 거대한 토대를 파헤침으로써 비뫼시의 근간에 무엇이 놓였는지를 마주하게 되는데, 이것은 지금 우리의 도시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이성을 통해 세워졌다고 믿어온 인간 문명사의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촘촘하게 기획된 비뫼시의 모습은 소설적 재미까지 더한다. 작가는 정교한 기획과 묘사를 통해 비뫼시를 독자의 앞에 가져다 놓는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물론 경제적·사회적 문제 제기, 더 나아가 자연과학의 법칙을 넘나드는 활달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을 읽을 때 독자는 지적인 쾌감을 느끼게 된다. 장광설과 요설로 가득한 가상의 세계에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 그러다 문득 그 속에 숨은 생에 의지를 만나는 것,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오랫동안 ‘소설’에 기대해온 바일 것이다. 《지하 정원》은 그런 점에서 소설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고 있다.
저자
홍준성
출판
은행나무
출판일
2023.07.05

들어가며 

 

비뫼시의 진정한 특산물은 고아이다. 고급 모직물부터 진공관 라디오까지 그 어떤 공산품을 가져와도 날마다 쏟아지는 고아들엔 미치지 못한다.

인원수나 통계 따위가 아닌, 어딜 가든 손님의 삶.

과연 비뫼시에서 엄격한 건 발진티푸스와 세금인가?

 
 이 책의 배경을 전체적으로 잘 묘사해 주는 문장들 인 것 같다. 극심한 빈부격차, 권력자들의 전횡, 언론을 이용한 선동과 날조, 치열한 이념의 충돌과 그 사이의 억울한 피해자들 산업화 초기 왕정 같기도 하고 그 이후 사회인 것도 같은 지독하게 불합리한 시대를 세계관으로 한 책이다.
 
 책의 전체 내용을 구성하는 1,000개의 메모들은 시간에 흐름대로 나열된 게 아니라 때때로 혼란스럽지만 속도감이 있어 읽는 동안 집중력과 긴장감을 놓지 않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견고하고 흥미로운 세계관을 기나긴 설명이 아닌 메모에서 드러나는 사건과 정교한 묘사, 신문기사, 회의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되어 책 속 세계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기적이 사라진 해로부터 XXXX년 뒤 X월, 책을 읽는 동안 자주 만날 수 있는 문장이다. 지금으로 과거인지 미래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는 비뫼시 역사 공사 현장 지하에서 ‘똬리나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햇볕도 들지 않는 도시 지하 깊숙이 자리를 잡은 ‘똬리나무’는 넓은 잎사귀를 가지고 복잡하게 뻗은 줄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태양 빛을 이용한 ‘광합성’을 통해 성장하는 나무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이 ‘똬리나무’가 발견 될 때쯤, 얄궂게도 비뫼시에서는 굶주린 빈민들의 식량 폭동이 일어난다. 마치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던 폭동은 그 해 따라 군대까지 투입되며 잔혹한 유혈 진압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 사건은 가난한 땜장이의 딸로 평범한 인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얀코의 운명을 고아로 하녀 학교의 학생으로,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사람으로, 진실과 복수를 쫓는 것으로 비틀어 놓는다.
 

선택

 

 복잡하게 얽힌 얀코의 삶은 그녀가 선택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고아가 된 것도, 하녀가 되는 것도, 비나드의 이름으로 대신 사는 삶을 사는 일 역시 그녀에겐 아예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삶의 중요한 순간에 선택 중 많은 부분들이 거대한 사건 혹은 권력과 같은 외부요인에 의해 강제로 결정 되었다. 그녀가 본인의 선택이라고 믿었던 것조차도.
 
 개인이 인생을 살아가는 중 홀로 오롯이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은 의외로 드물지도 모른다. 많은 선택이 직간접적으로 타인과 그 당시 처한 상황에 영향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많은 일들이 최종적으로는 각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지고 있고 우리는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선택들은 항상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메모로 이어지는 삶에서 얀코는 선택을 한다. 랑게의 선의를 받아들이지만 죽음을 향하는 랑게를 외면하고, 참토가 준 쥐고기를 먹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한다.
 
 앞서 말한 고아가 되고 하녀학교에 들어가는 것에 비하면 별 볼일 없는 작은 선택이었지만 오히려 이것들이 그녀의 가슴 속 깊숙이 죄책감 같은 형태로 남아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그녀가 선택되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일들은 오히려 그녀의 인생을 궁지로 몬다. 고아를 제외한다면 그녀가 선택한 삶은 전보다 윤택한 삶이라고 할 만했고 비나드를 대신한 삶은 그녀의 것은 아닐지언정 빈민굴에서의 삶에 비하면 천국이었을 것이다.
 
 이에 비해 그녀가 직접한 선택은 오히려 그녀의 삶을 더 괴롭게 하는 것 같다. 스스로가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일까?
 
 그것 아니라면 남의 삶을 빌려서 산 대가를 뒤늦게 치르는 것일까?
 

 쓰임새에 따라 물건 라벨이 붙듯, 누군가의 이름 역시 상황에 선행하지 않는다.

 

 

 책에는 많은 이들의 삶과 죽음이 나타난다.
 
 어떤 이들은 전염병에 목숨을 잃고 다른 이들은 총탄에 죽는다.
 
 책 속에서 현재의 얀코는 뇌종양과 류머티즘에 시달린다. 그녀는 마치 소설 초반부에 말한 것처럼 살아간다기보다 조금씩 조금씩 굳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모습에 회의를 느낀 그녀는 자살을 고민하지만 결국은 자살을 하지 않는다. 과연 무엇이 그녀의 자살을 막은 것일까? 똬리나무에 대한 집착과 복수심 때문일까?
 
 얀코의 메모에는 복수에 대한 이야기가 군데군데 등장한다. 그녀가 아버지를 잃게 되는 계기인 식량폭동이 긴급하고 강경하게 진압된 원인도 비나드를 잃어버린 간접적인 이유도 그녀의 삶을 평범한 땜장이의 딸이 아닌 기구하고도 복잡하게 꼬아버린 원인을 도시 밑 지하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똬리나무인 것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똬리나무로 인해 망가져버렸다고 주장하는 삶은 얀코만이 아니다. 얀코에게 똬리나무의 존재를 알려주고 먼저 복수를 다짐한 것은 그녀 인생의 최대 조력자라 할 수 있는 참토였다. 그리고 얀코와 편지를 보냈던 식물학자 역시 정확히 비뫼시 지하의 똬리나무는 아니지만 비슷한 식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렸다고 주장하고, 지하의 똬리나무 위에 거주하던 빈민들은 실제로 자신의 터전이나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제게 남은 건 원한과 시간뿐이랍니다.

그건 일종의 복수였다. 그래, 복수 외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똬리나무 때문일까??
 
 자신의 복수를 이루고 지옥 같은 남방한계선에서 살아남은 참토는 비뫼시로 돌아가 ‘똬리나무’의 존재를 확인하고 불태워야 할까?라고 말하는 얀코에게 반문한다.
 

그런 뒤엔? 너한테 뭐가 남는데?

 
삶은 지하에서 도시를 떠 받친 채 서서히 썩어가는 똬리나무처럼 허망한 것일까?
 

저주했던 똬리나무도, 그 위에 매달린 도시도 모두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메모에서 복수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꿈’이다.
 
 꿈은 잠시 현실을 잊게 하는 희망이나 추억이 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지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비나드의 말처럼 결국 언젠가는 깨어나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얀코는 복수라는 꿈 속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 은 아닐까?
 

사랑

 
 책은 비나드가 얀코에게 보내는 편지로 마무리된다.
 
자신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여자와 그리고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자의 어설픈 사랑은 뭔가 우스우면서도 풋풋하고 애달프다.
 
 무언가 결여된 것 같은 삶을 사는 두 사람은 서로 만나 서로를 부족한 곳을 채워줄 것 같았지만 결국은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로 끝이 난다. 그러나 그런 사랑이 있었기에 얀코는 끝까지 살아남고 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복수심이라고 착각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밤잠을 아껴가며 그가 꺼낸 말이라곤 이따금 캐러멜이 먹고 싶으면 자기 이름을 팔고서 한두 개씩 먹어도 된다는 쓸데없는 선심이 고작이었다. 좋았다.

아버지는 내 손을 놓았다. 비나드는 내 손을 놓느니 세상을 버렸다. 나는…… 과분한 삶을 산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을 포갰고 또 열었다. 그곳으로 지난 꿈들을 모조리 욱여넣었다.’

 

마치며

 
서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재미있는 책이었다.
 
살아 있는 것 같은 비뫼시에서 벌어지는 일들 뿐만 아니라 남방 한계선에서 끊임 없이 자라고 있는 검은 숲과 그것을 막으려는 벌목꾼과 경비병들, 그리고 검은 숲에 살며 사람을 헤치는 트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연달아 두 번을 읽었는데 첫 번째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과 생각 그리고 내용으로 다가오는 책이 여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얀코가 스스로 집착이라 표현할 정도로 그 정체를 파헤치려는 비뫼시 지하에 있다는 ‘똬리나무’ 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똬리나무의 정체를 쫓는 것은 비단 얀코 뿐만이 아니다. 그녀에게 최초로 똬리나무에 대해 알려주는 참토도 무정부주의자들과 다른 도시의 첩자들도 똬리나무의 비밀에 대해 캐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에 맞서 비뫼시의 비밀경찰들과 군인들은 식량 부족으로 폭동을 일으킨 시민들에게 발포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까지 ‘똬리나무’의 비밀을 지키려 한다.
 
대체 그들이 자신의 그리고 남의 인생을 걸어서 까지 파헤치려 하고 지키려고 했던 비밀이 그렇게나 가치 있는 것이었을까?
 
실제는 별 소용도 없는, 지하에서 도시를 받친 채, 죽어가는 거대한 나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가치가 있다고 믿고 그렇게 다룬다면 가치 있는 것처럼 취급될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돈, 지폐나 신용카드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그리고 사회에 신뢰로 견고하게 그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법정 통화의 경우에는 해당 국가에서 그 가치에 대한 보장을 하기는 하지만 비트코인과 같은 것 역시 많은 이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면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러나 복수심에 환상이 깨진 얀코처럼 그것들은 결국 비뫼시를 받치고 있는 그저 썩어가는 큰 나무 변모 할지도 모를 일이다.
 

도덕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 자들은 이미 죽고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허용된 마지막 도덕률이라 믿는다.

그리고 제일 좋은 당근은 꿈이라고 봤다. 그건 값싸고 강력하고 또한 유통기한도 가장 길었기 때문이다.

똬리나무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곳에서 이토록 거대한 크기로 자라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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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미국 청소년 문학의 대표 작가라 불리는 로이스 로리 장편소설. 모두가 잃어버린 여러 감정들을 찾아나서는 열두 살 소년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1994년 뉴베리 상과 1993년 보스턴 글로브 혼 북 아너 상 수상작이다. 모두가 똑같은 형태의 가족을 가지고 동일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 곳. 이곳에서는 열두 살이 되면 위원회가 직위를 정해 준다. 열두 살 기념식을 앞둔 조너스에게 내려진 직위는 '기억 보유자'. 과거의 기억을 유일하게 가지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선임 기억 보유자는 이제 기억 전달자가 되어 조너스를 훈련시키기 시작한다. 조너스는 효율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희생된 진짜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저자
로이스 로리
출판
비룡소
출판일
2007.05.18

 

 내가 직접 고민하고, 세상과 부딪혀 때때로는 실패를 겪으며 선택하는 삶이 아닌 다른 이에 의해 계획되고 준비된, 통제가 되지만 실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된 삶은 과연 어떨까?

 

 다른 이들이 준비해준 이런 삶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일마다 되지 않을 때, 무슨 선택이 옳은 것인지 내가 잘하는 게 대체 뭘까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할 때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줄지도 모를 멘토를 찾기도 하고 누군가는 신을 찾기도 한다.

 

 

 책에 등장하는 마을은 이런 것들을 규칙과 원로들이 대신한다.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면밀하게 감시되고 작은 규칙 위반도 넘어가는 일 없이 마을 전체에 설치된 스피커로 방송 된다.
그들은 결혼, 출산 등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개입한다. 목적은 최적 혹은 실패하지 않는 기초가족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실패하지 않는 마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마을의 가구들은 실용적으로 설계된 데다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각 가구의 쓰임새는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조너스가 아는 한 마을에 있는 어떤 문도 결코 잠겨 있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의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고 출산 역시 직접 하지 않고 직업적인 임산부가 낳은 아이를 부부를 관찰하던 원로들이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을 하고 부부가 신청을 하면 한 해의 특정일에 마치 아파트 분양을 받는 것처럼 입양을 하는 방식이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직업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부터 기록되고 관찰한 바를 바탕으로 12살 생일에 아이들의 직업이 원로의 발표로 결정이 된다. 물론 아이가 그 결정이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할 경우 이의는 제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조너스의 경우 그것조차 규칙으로 금지되어있다.

 

지금이 바로 차이를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을 공동체에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행동을 표준화했습니다.

 

 많은 규칙과 감시, 통제가 되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굉장히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자격이 있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각자의 개성은 죽이는 대신 차별은 금지되어있다. 먹을 것도 늘 배달된다.

 

 조금 재미는 없을지는 모르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없는 마을이다. 과연 여기에서 사람들은 행복할까?
 

 책이 그려내는 마을은 통제되어있지만 주민들의 삶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 생활은 늘 질서 정연하고 예측이 가능해. 그래서 별로 힘이 들지 않지. 이 삶은 바로 원로들이 선택한 결과야.

 

 12살 앞으로의 직업이 정해지는 날을 기다리며 불안해하던 조너스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기억보유자'가 된다.

 

 조너스는 원래 기억 보유자에서 기억 전달자로 바뀐 스승으로부터 기억을 전달받기 시작하며 마을이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우리가 '늘 같음 상태'에 들어가자 눈은 쓸모없는 게 되었지.
전 단지 우리만 있다고, 현재만 있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것이 평등해 보이고 안정된 것 같은 마을에도 차별과 속임수가 숨어있다.

 

 모든 직업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 같지만 조너스 가족의 대화에는 육체 노동자에 대한 천대가 담겨있고, 규칙은 필요에 따라 교묘하게 무시되거나 변경된다.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쓰라는 규칙과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교묘하게 표현을 바꿔치기 함으로써 잔학한 행위를 왜곡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조너스는 마을을 탈출할 것을 결심한다.

 

 '늘 같음 상태.', 책에서 마을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마을의 겉모습은 이상적이다. 아무도 굶지 않고 아프면 방치되지 않고 치료하며 외모 같은 것으로 차별받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체계적인 보육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성장해서는 적절한 직업을 가지고, 원한다면 가족을 구성하고 늙어서는 마을 구성원으로부터 돌봄을 받는다.

 

 정말 요람에서 무덤까지 개인이 걱정할 거리가 없다. 유일한 걱정거리라고는 실수나 범법행위로 인한 임무 해제라는 조치가 유일한 것 같다.

 

 하지만 그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면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조너스의 직업이 된 기억 보유자라는 직업도 그런 것이다. 기억 보유자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의도적으로 제거된 감정, 기억 등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가지고 있는 직업이다.

 

 여기에는 행복한 기억도 있지만 트라우마로 남을 법한 지독한 기억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고작 12살 아이에게, 그것도 직업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다른 직업에 없는 규칙을 새롭게 만들면서 떠넘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물론 최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억보유자가 남과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외로움과 끔찍한 기억들로 인한 괴로움을 제외한다면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는 꽤 특별한 대우를 받는 편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 모든 사람이 부담을 느끼고 고통을 당할 거야. 사람들은 그걸 원하지 않아.

 

 책을 말미에 조너스는 마을을 떠난다. 그 행위로 인해 그동안 자신이 전달받은 기억들을 마을 사람들에게 공유하게 됨으로써 혼란과 고통이 따를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기억을 전달해 주고 돌봐오던 가브리엘이 마을에서 요구하는 표준화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무 해제라는 표현을 빙자한 살해를 당 할 것임을 알고는 미처 준비도 다 되지 못한 상태에서 급히 마을을 떠난다.

 

 마침내 완전히 구속과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조너스는 과연 행복해졌을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조너스가 기억 보유자로 선택되고 잃어버렸던 감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과연 나는 고민이나 위험 같은 것이 없는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포기할 수 있을까? 였다.

 

 물론 '늘 같음 상태'라는 게 애매모호하니 그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아주 많은 돈으로 치환해서 생각한다면 이미 사회에 찌들어버린 나 같은 어른들은 생각하기가 좀 더 수월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는 이미 조너스의 마을 같은 삶에 꽤나 근접해 있지 않은가였다.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에 나가서 통제를 받고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감정을 죽여버린 채 일을 한다. 개성이 중요하다고 외치긴 하지만 인스타 등을 보며 남들처럼 살지 못해 우울해하거나 그들의 흔적을 좇아간다.

 

 사랑이 아닌 타인에 판단에 의한 결혼은 사실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조너스의 마을 사람들은 태어난 이후로부터 훈련되고 교육되어 애초에 가지지 못했고 주변인들도 없기에 결핍을 느끼지 못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다. 우린 가졌던 것을 잃기도 하고 아니면 남들이 한없이 많이 가진 것을 바라보기만 하며 결핍과 분노 같은 것을 느끼고는 한다.

 

 어느 쪽이 더 불행한 걸까?

 

 조너스는 가브리엘과 마을을 탈출해 부상과 굶주림에 시달린다.

 

 그러나 조너스은 마을에 머물렀다면 가브리엘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죽었을 것이며 자신은 감정, 색깔, 사랑 등에 굶주리며 평생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너스와 가브리엘은 계속해서 추위와 배고픔, 부상에 시달리며 약해진다.

 

 그리고 포기하고 싶을 때면 기억 전달자로부터 받은 기억을 가브리엘과 나누며 앞으로 나간다. 따뜻함의 기억, 행복함의 기억 등 괴로울 정도로 짧지만 그것들이 조너스를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해 준다.

 

 

 기억과 감정은 한 사람을 고통과 절망에 빠트리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미 지나가 버렸기에 해결할 수도,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는 문제도 기억과 감정이 섞이면 그 사람에게 고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런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게 해주는 것은 한 조각의 작은 행복한 기억 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것들을 배제하고 극도로 효율적인 삶만을 추구하는 세계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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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력은 저주일 수 있다."

 

 파친코를 읽을 때도 느낀거지만 참 첫문장으로 책 전체를 잘 녹여내는 작가인 것 같다.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무엇을 떠올릴까? 신분과 인종, 종교 같은 출신 배경에 상관없이 가진바 능력에 따라서 성공 할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떠올리지 않는가?

 

 책은 한국계 미국인들을 주요 인물로 삼고 그들의 사회를 주 배경으로 묘사한다.

 케이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녀 역시 이민자 2세대이다. 그녀는 프린스턴대에 들어 갈 정도로 똑똑하고 능력있으며 대책이 없을 정도로 자유분방 하지만 자신의 이상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과감하게 쫓을 줄도 아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에게 왜 능력은 저주가 되었을까?

 그녀는 분명 주류 사회에 편입이 될 준비가 된 사람처럼 보인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보기엔 터무니 없어보이는 자신감 때문에 졸업 후 비록 취업에는 실패하지만 로스쿨에도 진학 준비 중이었다. 인간 관계도 좋은 편이다.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는 제이도 있고 부모님이 아니지만 그녀라는 존재를 지지하는 사빈 같은 사람도 있다.

 

 비록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사빈의 백화점에서 종업원 일을 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는 인정 받지 못하지만 케이시의 동생은 그녀에게 깊은 애정과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케이시가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버지와의 다툼 끝에 집에서 쫓겨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이후의 생활은 그야 말로 우당탕탕 좌충우돌이다.

 동거하던 남자친구에게 갔더니 바람을 피는 장면을 목격을 하고, 제대로 된 수입원은 없지만 신용카드로 빚을 진다.

 금방이라도 나가 떨어질 것처럼 비틀비틀거리며 삶을 살아간다.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겨낸다. 그러나 결국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가난한 이민자의 딸.

 

 가난하다는 것, 이민자라는 것, 딸이라는 것.

 이것들은 케이스의 뛰어난 능력을 저주로 만든다. 이것들은 여러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케이시에게 번듯한 삶과 성공을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하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실패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만약 그녀가 그녀의 친구처럼 프린스턴을 졸업 후 부모의 도움을 받아 이탈리아로 대학원을 갈 정도로 집안이 여유로웠다면?

 테드나 제이처럼 남자이거나 이민자가 아니었다면?

 그들의 삶이 케이시의 것만큼 힘들지 않았다고 단정 할 수는 없지만 저런 조건들이 있었다면 그녀의 방황이 조금은 덜 힘들지는 않았을까?

 물론 그녀의 삶을 가장 힘들게 만든건 어쩌면 그녀 자신이었을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것이다.

 번듯하고 성공한 삶을 살아야한다는 강박관념과 그런것과 상관없이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은 남들이 보기에 편하고 안정적인 길을 놔두고 몇번이나 긴 방황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 였으니 말이다.

 사실 읽고 있는 동안 나도 몇번이고 그녀의 선택에 의문을 가졌다. 조건없이 학비 등을 대주겠다는 사빈의 도움을 거절하고 버는 돈 보다 많은 돈을 소비하고는 등의 행동을 말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녀의 의지와 그녀의 꿈에 대한 소망이 소비로 나타난다는 것을 이해한 뒤로는 나의 기준으로 간단하게 그녀의 선택을 평가하기는 어려웠다.

 

 책은 케이시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지 않는다.

 그녀 외에도 그녀의 어머니 등 많은 이민자들의 삶을 조명한다. 각자 비슷하면서도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이었기에 듣는 동안 지루하지 않았다.

 같은 문화권에서 태어나 유사한 사회공동체에서 삶을 살아왔음으로, 외부에서는 편의상 '한국계 미국인' 같은 특정한 틀로 묶어 특징 같은 것을 부여하지만, 그건 지극히 편의주의적인 사고 방식일지 모른다. 사람은 백인백색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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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크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몸집과 골격, 누더기를 기워 놓은 것 같은 바늘 자국이 무수히 많은 창백한 피부, 각진 턱, 관자놀이에는 커다란 볼트가 박혀 있는 괴물. 내가 프랑켄슈타인을 읽기 전 프랑켄슈타인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이미지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 특히나 30대 이상(?)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이라 하면 이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꽤나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충격적이라면 충격 적이겠지만 원작에 등장하는 프랑켄슈타인은 내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먼저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다.

 

 프랑켄슈타인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이 풀네임으로 책에 등장하는 생명체를 만들어 낸 창조자의 이름이다. 책에서 빅터에 의해 창조 된 생명체는 그 등장부터 책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름도 부여받지 못한 채 사라진다. 그리고 그에 관한 묘사도 덩치가 크고 그저 끔찍한 모습이라고 반복적으로 묘사 될 뿐, 모습에 대한 정확한 묘사는 없었던 것 같다.(그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과학을 발전시키고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당시의 금기를 어겨가며 생명체를 탄생시킨 빅터는 자신의 창조물의 끔찍한 모습에 질려 그를 버려두고 달아난다. 그러나 빅터는 죄책감과 고통에 시달린다.

 

 겨우 그것에서 벗어나 고향인 제네바로 돌아갔을 때는 동생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된다. 자신이 버렸던 창조물의 복수였다. 복수를 위해 창조물을 쫓던 빅터는 그와 조우하게 되고, 빅터에게 버림받은 이후 그가 겪었던 과거를 듣고 복수의 고리를 끊을 방법에 대해 합의를 하지만 결국 빅터가 다시 한번 그를 버림으로써 창조자와 창조주의 쫓고 쫓기는 복수극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빅터에 의해 창조 된 '그'는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실낙원'의 아담과 이브처럼 자신의 창조주에게서 버려진다. 물론 훨씬 더 과격하게. 심지어 창조주의 종족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할 뿐만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우월한 모습을 드러낸다.

 

 힘이 센건 말할 것도 없고, 짧은 시간에 문자와 말을 배우고 사용하는 학습 능력뿐만 아니라 남을 도울 수 있는 이타심과 자신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을 용서 할 수도 있는 아량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없는 것은 단지 인간과 같은 외모 뿐이다. 때문에 자신이 몰래 숨어서 훔쳐보고 배우던, 프랑스인 가족 중 눈이 먼 아버지에게서는 여느 평범하고 선량한 인간의 대접을 받지만 아들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에게서는 대화의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쫓겨난다.

 

 책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금기를 어기고 새로운 창조물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빅터의 열정어린 모습은 마치 A.I와 로봇을 연구하는 현대의 과학자나 기업가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발전하는 그것들의 모습을 보며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이미 거대한 자본금이 계속해서 투입되고 굴러가기 시작한 일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이제는 옛날 이야기처럼 되어린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 이 후 이세돌 9단은 은퇴를 했다. 그는 나중에 한 토크쇼에서 은퇴의 이유를 밝히며 자신은 바둑을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닌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라는 절대자의 등장으로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게 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

 

 예술에 관한 정의는 개인별로 천차만별일테지만 일반적으로 예술이라 여기는 미술 등의 분야에서도 AI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이 우월 하다고 믿고있는 창작의 영역이 오히려 더 빠르게 추월 당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들 정도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것들이 우리를 뛰어 넘었을 때,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기계에 밀려 일자리를 잃은 많은 노동자들이 ‘러다이트 운동’을 벌이며 기계를 파괴했다. 기계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 파괴되는 동안 아무런 불평불만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래에도 인간보다 인간적인 가치라 믿었던 것을 더 잘 수행하는 피조물이 그런 자신을 미워하는 창조주 인간들에게 아무런 불평불만을 제기하지 않을거라 확언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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