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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알렉시티미아' 라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 소년의 성장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뇌 속의 편도체가 작기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이라고한다.

 

 병이 이야기는 제쳐두고 이 소설을 읽다보면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된다. 유치원 시절 나는 누군가가 골목에서 폭행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근처 슈퍼에 들어가 누군가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슈퍼주인에게 알린다. 그러나 슈퍼주인은 그것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 나는 분명 진실을 말했지만 나의 말에는 어린 아이라면 보였을 법한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 죽은 사람은 슈퍼주인의 아들이었다. 슈퍼주인은 폭행사실을 알린 나에게 오히려 '네가 진지하게 말하지 않았다.' 라고 비난을 한다. 진지하게 말하지 않으면 진실이 거짓이 되는 것일까?

 

 감정이라는 것을 통해 우리는 공감하고 누군가의 아픔을 깊게 들여다보며 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눈을 가리고 진실을 들여다보지 않게도 한다. 이 책에 나오는 고니라는 소년에 관한 이야기다. 늘 강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아이를 아무런 편견없이 들여다보는 사람은 '나' 뿐이다.

 

 다른 아이들과 어른들은 자신의 두려움이나 죄책감을 쿡쿡 찔러대는 고니에게 질색하며 그저 나쁘고 폭력적인 아이로만 규정할 뿐 아무도 이 불행한 소년의 진심이나 사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정작 고니의 진심과 사연을 들어준 것은 같이 아파 할 수도, 불행에 공감 할 수 도 없는 나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고니는 꽤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너랑 나도 언젠가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 될 수도 있겠지."

 

"우린 서로를 닮을 수는 없었다. 나는 너무 무뎠고, 곤이는 제가 약한 아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센 척만 했다."

 

 그리고 책에는 고니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인 도라가 나온다.

 

도라는 곤이의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아이였다. 곤이가 고통, 죄책감, 아픔이 뭔지 알려 주려 했다면 도라는 내게 꽃과 향기, 바람과 꿈을 가르쳐 주었다.

 

 감성이 풍부한 고니는 강한척을 하기 위해 그것을 폭력적으로 표현할 뿐이었기에 나에 비해 썩 나을 것도 없었다. 자신을 편견없이 받아주는 나에게 관심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어색할뿐이다. 그리고 고니 역시 주인공인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보다는 다른 이들처럼 나를 바꾸려고 들었다.

 

 그러나 도라는 달랐다. 자신의 꿈을 들어주는 나를 온전히 공감하려 했던 것이 소년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를 통해 나 역시 고니를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 방금 네가 어떤 앤지 조금 이해하게 됐어." - 도라 -

 

 

 감정이라는 문제는 참어려운 것 같다. 어떤 때는 냉정할 필요가 있지만 어떤 때는 또 열정적이어야 한다고한다. 불행한 이를 보면 나는 그를 보며 불쌍하다고 공감을 해줘야 하는걸까 아니면 냉정한 시선으로 그의 불행의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찾아봐줘야 하는걸까?

 

참 어려운 일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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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카프카의 장편소설을 읽다보면 항상 진이 빠지는 것 같다. (사실 뭐 단편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이제서야 카프카 고독 시리즈를 다 읽게 되었다. (성, 아메리카, 소송)

 

 이 세 권의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상대하는 대다수 인물들의 공통점은 이야기가 지나치게 장황하면서도 별다른, 그러니까 실속있는 이야기가 없다. 늘 그럴 듯 하게 이야기는 시작하지만 온갖 제약조건이 있어 불가능하거나 불완전한 해결책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대화 내용들은 보면 마치 우리나라 단독으로는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미세먼지를 보는 것 같아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다.

 

 책은 회사에서 쓴다면 욕먹기 딱 좋은 문장들이 등장해 독자들을 괴롭히지만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 만들어준다. 실제로 카프카의 작품에는 발표 되고 난 이후로 온갖 주석과 해석들이 달리고 각색 되기도 했다. 소송도 마찬가지이다. 한 권의 책에서 누군가는 종교를 찾고 누군가는 실존주의를 찾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사회주의를 찾는다. 보는 시점에 따라 온갖 것들이 튀어나오니 굉장히 매력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2. 줄거리

 

  주인공인 K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을 찾아온 감시인들에 의해 자신의 방안에 구속 되면서 자신이 소송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런데 도무지 자신이 어떤 죄목으로 소송을 당하게 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건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감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이유를 들며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그들은 그저 일을 할뿐이고 법원은 실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분증명서 같은 것은 우리가 알 바 아니오. 우리는 하루 열시간씩 당신을 감시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 말고는 당신 일과 아무 관계가 없는 말단 직원일 뿐이오.'

 

'관청은 결코 주민들의 죄를 찾아내려고 하는 게 아니고, 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죄에 이끌려서 우리 감시인들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K는 곧 구속상태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직장인 은행으로 향한다. 그는 소송을 반쯤은 장난으로 생각하고 소송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질 우려 따위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날 밤, 그는 하숙집 여주인인 그루바흐 부인에게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고 이어 뷔르스트너 양에게 그녀의 방을 사용하게된 경위를 설명하며 (요즘 같으면 충분히 성폭행으로 구속되고도 남았을 행동을 보이며) 추파를 던진다. 

 

 K는 법원으로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정해진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는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정해 법원으로 간다. 그러나 빈민가에 도저히 법원이 있을 법하지 않은 낡은 건물에서 법정을 찾아 헤멘 K는 판사에게 심리 시간에 늦었다는 핀잔을 받지만 그곳에서 언변술로 자신을 방안에 구속하던 감시인의 비리를 폭로하고 난폭한 행동으로 판사를 당황시키며 승리감에 도취된다.

 

 다음 주 주말, 또 다시 법정을 찾아가지만 심리가 열리지 않는 법정에서 법원 정리의 아내를 만나고 미래에 판사가 될 것이라는 대학생을 만난 후, 법원 정리를 따라 법원 사무처에 들어가 그곳을 헤메다 밖으로 나온다. 이 법원 사무처의 풍경은 마치 톱니바퀴가 고장나 서로 헛돌기만하는 거대한 기계를 연상시킨다.

 

 이 이후로 K의 일상이 꼬이기 시작한다. 아니 일상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최초의 심리 이후일수 있다. K는 직장내에서 자신의 라이벌인 부지점장이 자신이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어째서인지 그가 찾아가거나,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은 K가 소송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법원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등을하며 어떻게하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 제시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K가 무슨 이유에서 소송을 당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아니 관심도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무죄는 안 된다고 말한다.

 

'법원의 최종 판결은 공개되지 않고, 판사들조차 그것을 볼 수 없어서, 옛날의 판례에 대해서는 전설로만 전해 올 뿐이죠.'

 

 K는 자신을 위해 변론서를 작성할 생각만 할 뿐 완성을 하지 않는 변호사와의 계약을 해약한다. 그리고 31세 생일, "개같군!" 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형을 당한다.

 

 

 사실 줄거리를 쭉 나열하긴 했지만 이 책은 완성작이 아니다. 책의 말미에는 미완성 원고들도 있다. 그래도 전개하는 와중에 내용이 뚝하고 끊겨 버리는 '성'에 비하면 그럴 듯한(?) 결말도 있다.

 

3. 마치며

 

 서론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 책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달려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무엇이 옳은 해석인가가 중요 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인 독자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가 당연히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에서 인간다움을 느꼈다. 최초 이유도 모른 채, 소송을 당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방에 구속되어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K는 자신에게 가해진 사법권력의 강압적인 부당함에 분노하고 최초의 심리에서는 저항하며, 자신이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저항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자신의 무죄와 법원의 부정함을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이 지은 죄로 인해 감시인들을 매질하는 형리에게 뇌물을 주어가며 감시인들을 구하려했다. (비록 K의 말대로 고소는 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는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는 억압하는 시스템(법원)을 부정하면서도 자신과 비등하거나 조금이라도 우월해 보이는 상대에서는 자신을 억압하는 시스템(법원)의 권위를 인정하며 자신이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을 숨기려했다. 사실 그 권위를 가장 인정한 것은 K 그 자신이었던 것 같다. 그는 법원을 부정하려하는 척했지만 계속 이끌려 다녔으며 어떻게든 소송을 끝내기 위해 이 방법 저 방법을 쓰다 결국에는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한 채 무력하게 처형당하고 만다.

 

 이제 여영 승진기회 따위는 놓쳐버리고 형리에게 매질을 당하고 기계처럼 소리를 지르는 감시인과 잘나가는 은행원에서 제대로 된 업무로를 볼 수 없을 지경으로 몰락해가는 K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자신은 신념을 가지고 오롯이 스스로 존재한다고 믿지만 거대한 무리에서 내쳐지는 순간 으깨지고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도대체 너는 소송에 져도 좋단 말이냐? 그렇게 되면 어덯게 되는지 알고 있어? 그렇게 되면 너는 그냥 지워져버리는 거야.'

 

 '전에는 언제나 떳떳하게 자기 이름을 말할 수 있었지만, K는 언제부터인지 그 이름이 부담스러웠다.'

 

 

※ 카프카의 다른 소설들

 

[독서 노트/고전] - 미완의 걸작 소설 성 - 프란츠 카프카

 

미완의 걸작 소설 성 - 프란츠 카프카

1. 들어가며 가끔 천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어떤 모습이 보일까라는 궁금증이 든다. 사람마다 그 차이가 적든 많든 서로 같은 물건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떠올리니 당연히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겠지만 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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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노트/소설] - 변신 - 프란츠 카프카

 

변신 - 프란츠 카프카

1. 줄거리 어느 날, 불안한 꿈을 꾸며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의 몸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이야기의 시작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전개가 이어지며 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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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사르트르와 함께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이다. 카뮈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유명한 책이기도 하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 책에 대한 감성도 섰을 텐데, 요 근래 그 동안의 번역이 잘 못 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새로운 번역본으로 출간도 되면서 한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2. 줄거리

 

 이야기는 뫼르소의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뫼르소의 반응은 무척이나 담담하다. 아니 어머니의 죽음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얼이 빠진 듯 멍해보이기도 한다. 그는 사람들의 동정과 배웅을 받으며 어머니가 머물고 있던 양로원으로 간다.

 

 양로원의 원장을 만나고, 그곳에서 어머니의 지인을 만나고 장례를 치른다. 양로원 원장은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뫼르소에게 이것저것 권하지만 뫼르소는 따르지 않는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뫼르소에게 어머니의 죽음이란 그저 하나의 특이한 사건일 뿐인 것 같았다.

 

서로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지만 마치 지난밤이 우리들의 친밀감을 두텁게 만든 것 같았다.

 

아름다운 하루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야외에 나가 본 일이 없었다. 엄마 일만 아니었으면 산책하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인정상의 문제거든요.

 

 장례식이 끝나고 뫼르소는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는 바다가에서 전에 함께 일한 적이있던 마리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

 

나는 일요일이 다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처럼 일터에 복귀한 뫼르소를 사장은 친절히 대해줬다. 그는 살갑게 어머니의 나이를 묻지만 뫼르소는 제대로 대답을하지 못한다.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보다 그를 더 기분 나쁘게 한 것은 저녁에 흠뻑 젖은 채 걸려있는 회전식 수건이었다.

 

 퇴근 후, 집으로 향하던 그는 어둑한 층계에서 스패니얼 개와 함께사는 살라마노 영감과 만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레몽 생테스라는 남자를 만난다. 살라마노 영감은 다른 사람들엑 '불쌍한 사람' 취급을 당하는 남자이고 레몽은 다른 이들에게 '경멸'을 당하는 부류였다. 두 사람들 주변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뫼르소는 레몽의 치정 이야기를 듣는다. 뫼르소는 레몽을 대신 해 정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그와 친구가 된다.

 

 일주일이 지나고, 뫼르소는 마리와 만난다. 그리고 저녁 레몽이 정부를 폭행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호되게 당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 앞이라 당당하려 했지만 무척 비굴한 모습이었다. 후에 레몽은 뫼르소에게 그의 정부가 그에게 '버릇없이 굴었다.'라고 경찰에 증언해 줄 것을 요청했고 뫼르소는 그것을 받아 들였다.

 

 그날 저녁 살라마노 영감은 그의 유일한 동반자였던 개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렸다.뫼르소는 그에게 동물보호소에 찾아가라는 충고를 해준다.

 

엄마 생각이 났지만 이튿날 아침에 일ㅇ찍 일어나야 했고 배도 별로고프지 않아 저녁도 굶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레몽이 회사로 전화를 걸어 뫼르소와 여자친구를 친구의 별장에 초대했다. 그리고 아랍인이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장이 파리 출장소에 갈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한다.

 

사장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 생활을 바꿔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저녁에 마리가 뫼르소에게 자신과 결혼 할 생각이 있냐라는 질문에 '그녀가 원한다면'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 살라마노 영감을 만나 그의 인생사와 하소연을 듣는다.

 

 일요일, 레몽과 만나 마리와 함께 그의 친구 마송의 별장으로 간다. 그리고 레몽을 미행하고 있다는 아랍인과 마주친다. 별장 앞 바다에서 물놀이를 즐긴다. 점심을 먹고 바닷가를 거닐던 중 아랍인들과 마주쳐 싸움이 일어난다. 레몽은 여기서 칼에 상처를 입는다. 분에 찬 레몽은 다시 바닷가를 나가고 아랍인과 또 조우한다. 레몽이 총을 쏘려하지만 제지당하고 총을 뫼르소에게 맡긴다. 아랍인들은 도망간다.

 

 다시 별장 앞으로 돌아오지만, 뫼르소는 홀로 바닷가로 향한다. 다시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뫼르소는 칼을 들고 자신을 위협하는 아랍인을 쏜다.

 

 하지만 한 걸음을, 다만 한 걸음을 옮겼을 뿐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칼을 뽑아 태양빛에 반짝이며 내게 겨누었다. 강철 위에서 빛이 반짝 튀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내 이마를 쑤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고 한낮의 균형, 행복을 느끼던 바닷가의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 총알은 보이지도 않게 깊이 박혔다. 마치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 같았다.

 

 여기까지가 1부의 내용이다. 2부는 체포 된 후 심문과 재판 그리고 그 사형으로 이어진다. 2부에서도 그의 특이한 모습들이 드러난다.

 

3. 마치며

 

 2부 줄거리는 뭉텅 짤라내고 마무리로 넘어와 버렸다.

 

 1부의 모습과 2부의 모습은 상당히 차이가 난다. 1부에서는 뫼르소가 굉장히 이상한처럼 여겨진다. 외부자극에는 철저히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는 듯 하면서도 그러나 자신의 내적 욕망은 충실히 따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시 여기는 관습 같은것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인지 편견도 없어 남들이 기피하는 인물들까지 자연스럽게 받아 들인다. 대체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2부에서는 그를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상해 보인다. 그를 재판하는 사람들은 1부에서 독자들이 공감 했을 만한 내용들을 비판하며 뫼르소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런데 그 사형을 선고하는 죄목은 아랍인을 살해한 것에 대한 것이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무언가 이상하다.

 

 검사는 뫼르소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념을 말하며 뫼르소가 자신의 인생을 부정한다고 말한다.

 

그게 그의 신념이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의심한다면 그의 삶이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했다.

"당신은 내 인생이 무의미해지길 바랍니까?"

 

 간수와 기자들은 자기내들끼리 시끄럽게 떠들고 기자들은 뫼르소에게 일이 잘 풀리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의 기사는 다르지만.

 

"우리들은 당신 사건을 좀 부풀려서 썼어요. 여름철은 신문사에겐 불황기거든요. 기삿거리가 될 만한 건 당신 사건과 직계존속살해밖에 없었어요."

 

"도대체 피고는 어머니를 장례 치른 것으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죄로 기소 된 것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나는 이자가 냉혹한 범죄자의 마음을 갖고 자기 어머니를 묻었기 때문에 이 사람의 유죄 또한 주장하는 것입니다."

 

 뫼르소는 마치 구경꾼처럼 자신의 재판을 바라보다. 사형수가 된 이후로도 자신의 삶에 온전히 집중한다. 그에게 있어서는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왜냐하면 삶의 끝에는 모두 죽음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깨닫는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보고 싶어졌던 게 틀림없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 마치 형제 같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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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어느 날, 불안한 꿈을 꾸며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의 몸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이야기의 시작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전개가 이어지며 작중 내내 묘한 불쾌감을 전달한다.

 

 그레고르가 자신의 몸이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은 다른 것도 아닌 그날 출장으로 예약된 기차시간과 출근, 고용주의 질책 등이다.

 

 신체의 변화로 인한 혐오감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의 문제였다. 그레고르가 변한 것을 알기 전, 가족의 생계를 도맡아 시피 책임지고 있던 그레고르에게 가족들은 상냥한 모습을 보인다. 그레고르에게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는 지배인에게 대신 변명을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자본가의 편에 서서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익을 만들어내라고 그레고르에게 강변하던 지배인마저 변해버린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곤 그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음을 깨닫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돌린다.

 

 물론 장사가 잘되는 계절은 아니죠. 우리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장사를 못하는 계절은 있을 수가 없어요. 잠자 씨,

그러한 일은 있어서도 안 돼요.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후 빚을 갚기 위해. 평범한 사원을 그만두고 영업직을 택한 그가 벌어오는 많은 중개료에 대해 가족들은 처음에는 감동하고 감사를 표했지만 어느 새, 그런 것들은 당연한 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사려깊은 그의 여동생 그레타는 여전히 그에게 감사를 표했는데 그레고르에게는 그것이 큰 위안이었고 그녀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그녀를 음악학교에 입학 시키려는 계획을 짜고 있을 때,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이런 관계 때문인지 변해버린 그를 폭력적으로 대하려는 아버지와 외면하려는 어머니와는 달리 여동생은 겉으로 나마 그를 챙겨주려고 노력을 하고 다른 가족들은 그런 여동생의 역할에 큰 만족감을 표한다.

 

 그레고르가 변한 것과 더불어 가족들에게도 현실적인 문제가 들이닥친다. 사업이 망한 후 몇 년간 쉬고 있던 아버지, 그리고 일을 하기는커녕 천식으로 때때로 앓아눕는 어머니, 철부지 어린 여동생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이 끊겨버린 그들에게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걱정다. 그런데 어쩌면 현재 가장 불행한 그레고르는 자신을 걱정하기 앞서 변해버린 자신으로 인해 고통을 받을 가족을 걱정한다.

 

그의 앞에 펼쳐진 어둠을 바라보다가 문득 부모님과 여동생이 이렇게 아름다운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애쓴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이 모든 고요와 부와 만족이 자신에게 닥친 끔찍한 일로 인해 끝나야만 하나?

 

 그러나 가족들이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동안에도 몇 년 동안, 가계의 생계를 이끌어온 그의 의견은 묻지 않는다. 가족은 그를 방치하고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무관심과 자신이 짐이 되어버렸다는 수치스러움에 소파 밑으로 점점 숨어든다.

   

한쪽 문과 사람들이 낮에 열어 놓았을 다른쪽 문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열쇠가 밖에 꽂혀 있었는데도.

 

반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리고 수치스러움을 느끼면서 그는 소파 아래로 서둘러 기어들어갔다.

 

 가족들은 돈을 벌기 위해 각자 직업을 찾는다. 매일 지쳐 쓰러져 있던 등이 굽은 아버지는 곧게 뻗은 몸과 다부진 턱을가진 은행원의 모습으로 변하고 어머니는 고급 양장점에서 받아온 옷에 바느질을 한다. 그리고 마냥 어릴 것 같던 동생도 판매직 일을 구해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각자 세상 밖에서 자신들만의 세상을 새롭게 구축하는 동안 그레고르는 점점 소외되고 가족들에게 큰 짐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방은 잡동사니를 놓아두는 창고 방으로 변하고 그로 인해 세를 들어 살던 세 명의 신사가 놀라 항의하자 가족들 중 가장 우호적이던 여동생은 그를 귀찮은 짐 정도가 아니라 가족의 운명을 위협하는 적으로 취급하기에 이른다.

2. 눈이 가는 포인트?

자본주의 속에서의 가장

 적어도 내가 감상하기엔 이 책은 굉장히 자본주의적인 책이다. 그레고리는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후 몇 년 동안 가정의 생계를 도맡아 책임지던 남자이다. 적어도 잠시기는 했지만 그 후 몇 년 동안 평범한 일로 변하긴 했지만 가족들은 그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의 희생으로 벌어들인 돈을 쓰며 안온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지배인으로부터 최종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형선고를 받음으로서 그를 대하는 태도가 변해간다. 변한 것은 그레고리를 대하는 태도만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가 생업에 뛰어 듦으로써 스스로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 역시 변한다. 늘 무기력하던 아버지는 다시 예전의 꼿꼿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쓸모없는 취급을 당하던 여동생은 희망으로 변한다.

 

 마치 그레고르의 모습은 IMF시절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어버린 혹은 산재로 인해 노동력을 상실해버린 가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변해가는 그레고르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후 자신의 몸이 완전히 변해버리긴 했지만 그레고르는 자신이 여전히 인간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지배인을 대하는 동안 꼿꼿이 서려고 했고 인간의 목소리로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가족과 사회에서 고립 될수록 점점 벌레로 변해간다.

 

 도망가던 지배인을 쫓다 넘어질 때부터,

 

넘어지는 순간 바로 그는 오늘 아침 처음으로 육체적인 쾌감을 느꼈다. 다리들은 딱딱한 바닥을 짚고 있었다.

마치 그가 왜 기뻐하는지를 알아챈것처럼 그에게 완전히 복종했다.

 

실제로 날이 갈수록 조금씩, 멀리 있는 것들이 그의 눈에 점점 불명확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르는 두 달 정도의 변신 기간 때문에 가족 내에서 단조로운 삶을 살고,

모든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부족해서 이해력이 떨어졌음을 알아차렸다.

 

 그레고르의 겉모습은 일순간 변했지만 그의 내면과 보이지 않는 것들은 주변의 변화를 따라 천천히 변해갔다. 어쩌면 진정으로 변한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주변 사람들일 것이다. 그레고르의 어머니는 그의 방의 가구를 치우려는 여동생에게 잠시 저항하지만 결국 변해버린 그레고르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감행된 행위를 막지 못한다. 그레고르 역시 저항해보려 했지만 아버지의 폭력과 여동생의 외침에 무릎을 꿇는다. 그 후, 그는 급격히 무너진다.

 

 그러나 바닥을 기어 다니며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며 스스로를 잃어가는 와중에도 그는 가장 인간적이고 가족적인 모습을 보인다.

 

음악에 사로잡힌 그는 과연 짐승일까

 

왜냐하면 여기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처럼 그렇게 그녀의 연주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적어도 그녀를 자신의 방 밖으로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의 끔찍한 형상은 그에게 처음으로 유용할 것이다.

 

 잠자 씨의 집에 세를 들어사는 멀끔하게 차려입은 세 명의 신사는 연주를 하는 그레타에게 모욕적인 행위를 한다. 심지어 자신들이 먼저 청해 들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가 그들을 어찌하지 못할 때 분개한 그레고르가 나선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시선이었다. 그는 가족을 지키고 싶었했지만 결국은 적으로 취급받는다.

3. 마치며

 과연 누가 괴물일까? 변한 것은 그레고르일까? 아니면 그의 가족일까?

 

 대부분 소설에 묘사되는 가족과 사회 상황은 작가가 살아온 혹은 살아가고 있는 사회상황과 연결시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카프카는 매우 엄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잘 돌보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 역시 작가를 하려는 그의 꿈을 응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을 쓰고 잇을 당시에는 경제공황과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개인의 운명은 무척이나 불안정 할 수 밖에 없었음으로 이런 소설이 쓰여 졌을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과연 그런 상황이 얼마나 변했을 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가 점차 파편화 되어가면서 사회의 최소 구성단위라는 가족이 가지는 의미는 점차 감소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오랜 불황과 높은 실업율은 사람들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비록 벌레로 극적인 변신을 할 가능성은 낮지만 누구나 노동력을 상실 할 정도의 신체적 변화를 겪을 여지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소설 속 잠자씨의 가족은 그레고르를 빼고는 모두 처음보다 오히려 행복해 보인다.

 

 다들 그레고르가 벌어오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객체에 가까운 느낌이었다면 스스로 사회 속으로 뛰어드는 주체로 변해 미래를 꿈꾼다. 그 사이 쓸모를 잃고 철저하게 고립된 채 파괴되어간다.


 그런데 감상평을 마무리하려던 그런 생각도 들었다. 벌레로 변한 것은 그레고르가 원하던 것이 아닐까? 회사의 혹은 가족에 대한 의무감에 지쳐있던 그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그런 식으로 표현 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변해버린 그를 그가 가족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돌봐주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독서 노트/고전] - 미완의 걸작 소설 성 -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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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이는 건조한 호주 남부의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추리 소설이다.

 

 책을 읽다보면 가끔씩, 꼭 이렇게 번역해야 하나? 라는 의문과 함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구문들이 있지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메마른 대지가 버스럭거리고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건조한 문체는 소설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예전에 우리나라 신안에 있었던 염전노예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작가는 수 년째, 터를 잡고 술집을 운영하지만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아 여전히 외지인 취급을 하는 지극히 폐쇄적이고 보이지 않는 규율과 힘의 균형이 존재하는 시골마을에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을 절묘하게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야기의 크게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어린 시절,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 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키와라 마을을 강제로 떠나게 되었던 에런 포크는 친구 루크의 장례식을 위해 가뭄으로 고통 받고 있는 마을로 되돌아온다.

 

 루크는 자신의 부인과 아들을 총으로 쏴죽이고 자살을 한 것으로 잠정적으로 결론이 난 상황이었다. 루크의 아버지는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가 가지는 의심을 지우기 위해 어린시절 루크의 절친이자 경찰관이기도 한 포크를 마을로 불러들인다.

 

 포크는 키와라 마을로 돌아오는 것을 내켜하지 않지만 루크와 공유하고 있는 은밀한 비밀의 진실을 일부알고 있는 루크의 아버지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마을에 머물며 루크 일가족 살해 사건의 진실을 파해치기 위해 마을에 머물며 사건을 조사한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사건이 존재한다. 어린 포크와 그의 아버지를 오랜 시간 동안 이룩한 모든 것을 두고 떠나게 한 사건인 엘리의 사망사건이다.

 

 엘리 역시 어린 포크의 친구였다. 둘 사이에 몽글몽글 사랑의 감정이 피어나고, 남들이 모르는 하나의 비밀을 공유했을 때, 엘리는 마을 강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녀의 바지에서는 포크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발견되었고 포크는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다.

 

 당시 강가에서 혼자 낚시를 하고 있던 포크는 꼼짝없이 용의자로 의심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루크와의 비밀 협약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경찰 수사관의 용의선상에서 벗어난 것일 뿐, 비밀은 또 다른 비밀과 의심을 낳으며 서로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이야기는 촘촘한 그물처럼 잘 짜여져 있다.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현재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며 독자를 서서히 진실에 접근 시킨다. 적절한 타이밍을 놓쳐버렸다는 이유로 진실을 말하지 않은 이들은 비밀을 더 크게 만들고 사건을 더 복잡한 미궁에 빠트린 채 사람들을 서로 의심하게 만든다.

 

 책은 몇가지 다른 소설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과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였다. '데미안'의 초반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 허세를 위해 했던 거짓말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뒤죽박죽 되는 경험을 한다. 포크와 루크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른 목적이긴 했지만 그들이 한 거짓말은 오랫동안 그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객관적 진실이 아닌 소문과 편견이 지배하는 마을과 그레천이 토끼 사냥을 위해 총을 쏘는 모습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책은 곳곳에서 비밀이 나온다. 그리고 누구나 비밀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뭄에 말라버려 드러난 강바닥처럼 비밀이 한꺼풀 한꺼풀 벗겨지고 진실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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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취업을 하며 가졌던 생각 중 하나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가 아니라 사서 책장 가득 꼽아 놓는 것이 목표였던 적이 있는데. 지금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간 장편소설은 구매를 하지만 이미 읽었던 예전 소설들은 또 읽고 싶긴하지만 애초의 생각과 달리 돈을 들여서 사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태엽감는 새' 합본판은 '비실용성'과 '소장성 또는 있어보임(?)'을 두루갖춰 나의 욕망에 맞춰 제작된 것 같은 책이었다. 원래 4권으로 된 책을 한권으로 만들어놔서 책이 1,000페이지가 넘고 무겁기도 무거워 손에 들고 읽기에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책이다.

 

 그래도 작년 한해를 보내며 또 올해를 맞이하며 내 신변에 꽤나 큰 변화가 있어 생각도 정리할 겸 예구 후 비닐조차 뜯지 않았던 책을 뜯어 읽어 보았다. 맨날 회사 가기 싫다고 노래는 부르는 현실속 30대가 진짜 회사를 때려친 소설 속 30대를 부러워하며 책에 빠져 들어서 읽었다.

 

 현실과 비현실, 현실과 꿈, 일본과 만주, 과거와 현재까지 시공간을 소설의 내용을 가끔씩 따라가기 버거울 때가 있다. 거기다 온갖 상징과 메타포로 점철된 소설은 모든 인물이 개별적인 것 같으면서도 또한 모든 인물이 동일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한 때 사법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던 30세 주인공은 다니던 변호사 사무실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고 한다. 그러나 부인도 반응도 그렇고 자기 자신 역시 딱히 하고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아 새로운 일자를 찾는 일에 진전이 없다.

 

 주인공은 사회와 점점 멀어져간다. 그리고 현재 사회와 가장 정상적인 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인마저 이별을 선언하고 집을 나가버린다. 그런데 어째 사회에서 점점 멀어질 수록 그와 관계된 사람의 숫자가 늘어가고 그 속에서 타인을 치유하며 큰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에게 강한 적개심을 들게하는 부인의 오빠인 와타야 노보루는 주인공과 반대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며 현실 세계에서 영향력을 차츰 넓혀간다.

 

 확실히 몇번을 읽어도 매번 다른느 낌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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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마치 영화 메트릭스나 이퀄리브리엄을 떠올리게 하는 이 디스토피아적 SF소설은 읽고 난 후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무려 1932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지금 봐도 놀랍도록 생생하게 묘사된 인공부화장의 모습이나 소설 전체의 줄거리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언젠가 한번 읽어 보려고 했던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조금 우습게도 얼마전 유발 하라리가 발간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그가 미래는 '1984'가 아니라 '멋진 신세계' 처럼 될 것이라는 한토막의 글을 읽고 호기심이 생겨 읽어 보게 되었다.

 

 책은 또 다른 디스토피아 소설의 명작이라 할 수 있는 '1984' 와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가 된다. '1984'가 태어난 사람에 대한 사상교육과 선전 그리고 완벽한 빅브라더의 감시를 통해 사람들을 강제로 통제하고 억압을 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유지한다면 '멋진 신세계'는 훨씬 세련된 방법으로 사람들을 통제한다. 바로 아예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목적에 맞게 '만드는' 것이다.

 

 이 외에도 사회 혹은 군중에 대한 통제라는 목표점은 똑같지만 방식은 전혀 다른 두 책에 대한 비교는 나중에 말미에 해보도록 하자.

 

2. 줄거리

 

 대전쟁 이후 거대한 세계정부가 들어서고 모든 아이들은 인공 수정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들의 교육 및 양육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지고 실시한다. 인공 수정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삶은 목적, 계급이 정해지고 그에 맞춰 지능과 육체적 특성이 정해지게 된다.

 

 아이들은 이미 태아시절 부터 세뇌를 받기 시작하게 되고 자신의 신분이나 직업에 대한 불만을 전혀 가지지 않도록 자라나게 된다. 심지어 가장 하층 계급인 엡실론은 고의로 지적장애를 가진 채 태어나게 해 단순 반복 노동을 담당하게 만든다.

 

 지능과 육체뿐만이 아니다.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항목은 욕망이다. 정부는 개인의 욕망마저 통제한다. 부모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하고 임신은 불필요 한 것으로 만든다. 소비와 육체적 쾌락은 미덕으로 죽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다.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시행되어온 세뇌로도 부족해 괴로움이나 고민을 조금이라도 할라치면 마약의 일종인 '소마'를 복용하게 만들어 행복감과 안정감을 가지게 한다.

 

 이 사회에서 높은 계급인 알파 플러스로 태어난 버나드 마르크스는 불만을 가지며 외톨이 생활을 이어가다 연인인(이 사회에서 연인이란 솜털처럼 가벼운 관계이다.) 레니나와 함께 연구라는 명목으로 아직 문명화가 되지 않은 야만인 거주구역으로 들어가 존이라는 남자를 만나고 그를 런던으로 데려오고 존과 함께 갑작스레 유명인이 되어버린 버나드 마르크스는 본격적으로 사회를 즐기기 시작한다.

 

3. 멋진 신세계와 1984

 

 멋진 신세계와 1984는 비슷한 듯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과학기술을 이용해 사회를 통제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1984가 도청 등을 통한 엄밀한 감시를 통해 사회를 통제하고 일반 군중들에게 서로 연결되지 말고 분리 될 것과 절제할 것을 요구한다면 멋진 신세계에서는 결코 군중과 분리 되지 말기를 그리고 끊임 없이 소비하고 행복할 것을 요구한다.

 

 물론 두 소설에는 배경적 차이가 있으니 무엇이 더 옳으냐는 당연히 따질 수 없는 노릇이지만 두 소설 모두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예견한 것이니 과연 어느 쪽이 더 들어 맞을지는 궁금한 노릇이다.

 

4. 마무리

 

 책에서 묘사된 사회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스쳐지나가며 보기엔 참 멋진 신세계다 라고 감탄을 터트릴 수 있을 것이다. 깨끗하고 평화로운 세계, 실업자도 없고, 갑에게 고통을 받는 을 역시 없다. 다들 충만한 행복감만을 느끼며 가끔 괴롭거나 우울 할 때면 그들의 구호처럼 소마 한개면 충분하다.

 

 그런데 또 이런 생각도 든다. 과연 그것이 인간일까? 두려움도 고통도 느끼지 않고 직장에서는 주어진 일만 처리하고 사회에서는 의무처럼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모습은 과연 저것이 기계와 무엇이 크게 다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미숙하기 때문에 쓸모가 없어서 낭비되는 오랜 기간, 만일 암소만큼 육체적인 발육 기간을 단축시킬 방법만 있다면 사회를 위해 얼마나 큰 공헌이 되겠는가!

 

 기계는 돌아가고, 돌아가고, 계속해서 영원히 돌아가야만 한다. 가만히 서 있으면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할 바는 다 해야 돼요. 누가 뭐라고해도 모든 인간은 서로 공유해야 하니까요.

 

 이제는 어찌나 크나큰 발전이 이루어졌는지 노인들도 일을 하고, 성행위를 하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에 잠길 짬을 낼 틈도 없고, 쾌락 이외의 시간이나 여유를 짜낼 수가 없으며...(중략)

 

 "일하는 시간 동안에만, 그리고 지적으로만 어른이죠". 그는 얘기를 계속했다. "감정과 욕망에 있어서는 아기들이지만요."

 

 책에 나타난 문장들은 책 속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란 기계부품과 비슷한것이다. 다만 때때로 기름을 치고 정비를 해줘야하는 기계처럼 여러 수단을 통해 그들에게 '행복감' 이라는 것을 선사해줌으로써 기계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톱니들과 연결되지 않은 부품들은 쓸모가 없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SNS가 등장한 이 후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도 혼자 있는게 아닌 것처럼 되버렸다. 한적한 곳에서는 사색을 즐기기보단 사진을 찍어 공유를 하거나 멍하니 쉬는 시간을 공백이라 여기며 불안해한다. 그리고 풍족해진 먹거리와 컨텐츠들은 우리의 쾌락 중추를 자극하는 것만 같다.

 

 누가 알겠는가 뇌과학과 가상현실이 계속 발전한다면 우리 뇌에 전극이라고 꼽고 다들 가상현실에 빠져 즐기고 있을지. 책에서 말한 것처럼 '행복이란 전혀 웅장하지 못하니까.'

 

 

다른 디스토피아적 소설 혹인 영화?

[독서 노트/고전] - 빅 브라더가 지켜보고 있다. "1984"

[영화] - 채피 - 인간에 대한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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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아마 인간이 존재하고부터 세상살이에 저마다 자기 삶에 힘든 일이 없고 고생하지 않은 개인이나 세대란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기원전 석기시대에 태어났다면 생존 자체가 투쟁이었을 것이고 그 이후로 신분을 잘 못타고 난다면 군대에 끌려가거나 귀족의 변덕에 죽을 수도 있고 귀족이 된다 하더라도 황제에 의해 눈알 뽑히고 궁형을 당할 수도 있다. 왕이나 황제로 태어나도 마찬가지다 오직 혈통빨로 로마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영토를 소유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5세의 경우에도 유전병으로 평생 고생하다 사망한다.

 

 물론 조선시대에 지어진 소설이긴 하지만 (제목이 기억이...) 때를 잘 못타고나 조선시대에 큰 전쟁이란 전쟁은 모두 겪는(아마 임진왜란 ~ 정묘호란 까지인걸로 기억한다.) 불운한 사내의 이야기도 나온다.

 

 아무튼 나이든 세대에게 젊은이들은 늘 예의범절이 부족하고 젊은이들은 앞 세대가 만들어 놓은 세상이 불합리한 법인가 보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이다.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고 돈이 없어 삼포세대는 우습고 포기하는 숫자는 계속 올라간다. 그런 가운데 또 누군가는 전통적 의미의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와중에 낀 세대라는 명칭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2. 줄거리 

 

 보험회사에 근무하던 30대 초반의 영호는 보험금 수령을 위해 회사로 찾아온 2기 암환자인 채연과 만나고 냉면집에서 우연한 재회 이후 금방 사랑에 빠진 채 결혼을 한다.

 

 채연은 미국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었다. 결혼을 한 채연은 미국에서 아이를 불러 들이기로하고 영호 역시 이에 동의한다. 아이의 이름은 샘이다. 샘의 이모는 히스테리가 섞인 걱정으로 영호에게 아이를 인계한다.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되어버린 샘은 이런 저런 말을 건네 보지만 샘은 대답하지 않는데. 길을 가다 틀어진 TV에서 체인지 킹의 후예라는 전대물이 나오자 샘은 마치 화면에 빠져들 듯 영상에 빠져들고 영호는 우연히 한밤 중 체인지 킹의 후예를 다시보기 하고 있는 샘을 발견한다.

 

 그리고 영호는 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체인지 킹의 후예에 대해 파고 들기 시작하며 기묘한 만남이 시작된다.

 

3. 마치며

 

 이 책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 같다. 현재 사회적 일반 상식처럼 통하는 혈연으로 된 가족 구성에 실패한 이들이 그야말로 서로가 서로를 돕고 관계 맺음을 통해 대안적 가족을 구성하고 종국에는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책은 어떻게 보면 온 세대의 실패자들은 죄다 모아놓은 것 같다. 자식을 건사하는데 실패한 부모, 히키코모리,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식들까지 책에서 그들을 사회로 다시 불러들이고 품어 준 것은 혈연이 아니라 관계였다. 그 관계의 중심에 있는 것이 서로에 대한 관심이고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 체인지 킹이었다.

 

 이 책을 보다보니 가족에 관해 쓰여진 책 중 좋아하는 책인 무라카미 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이 떠올랐다. 물론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 같은 경우 가족 내부의 문제는 있을지라도 사회가 생각하는 평범한 혹은 정상적인 가족의 구성을 하고 있었다. 이 책의 결말은 (아마 본지가 오래되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족이라는 명칭 하에 서로를 구속하고 구원할 수 있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결국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자기 자신의 구원이 곧 다른 가족 구성원의 구원으로 이어 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그 사이 가족의 모습은 급격하게 변화 되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심지어는 요즘은 일인 가구가 대세이다. 과연 대안가족이 미래의 우리의 관계를 구워할까? 아니면 결국 우리를 구원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스스로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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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나온지가 10년도 넘어 김영하 작가의 좀 더 젊은 시절 사진을 표지에서 감상 할 수 있었던 소설책이다. 마치 미드 '24시' 처럼 그 어떤 날과도 달랐던 기영의 가족의 하루를 그려놓은 책이다.

 

 책의 표지는 실제로 동명의 그림인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 사용되었다. 무척이나 평온해 보이는, 밝은 푸른하늘과 그 아래에 가로등 등불을 밝힌 어두컴컴한 집과의 대비와 빛과 어둠의 동시성은 무척이나 인상 깊다.

 

2. 줄거리

 

 기영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년가장이다. 아내와의 관계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럭저럭이고 중학생인 딸과의 관계는 그것보다는 좀더 좋아 보인다. 하고 있는 일은 영화 수입상, 상업성이 좋은 영화를 수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업도 그럭저럭이다. 차는 소나타다. 영화 수입상이라는 직업이 특이하긴 하지만 그 외에는 무척이나 평범한 아파트 한동에서 하나 둘 정도는 발견 할 수 있을 법한 중년의 남성이다.

 

 그런 그에게 평소에는 겪어 본 적이 없는 두통이 찾아오고 북에서는 실제 신분이 간첩이 었던 그에게 '귀환' 명령이 마치 갑자기 찾아온 두통처럼 찾아온다.

 

3. 마무리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문장은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였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인 줄 알았던 기영은 평양이 고향인 간첩이었다. 그의 아내 마리는 평범한 영업사원이지만 젊고 똑똑한 대학생 남자친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미래에 엘리트 계층에 속할 법한 이 대학생과 그의 친구 역시 쉽게 드러내놓고 밝힐 수는 없는 범상치 않은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

 

 가장 순수할 법한 기영과 마리의 딸 현미 역시 비밀을 가지고 있다. 마리를 쫓던 국정원 요원도, 현미의 국어 선생님이자 기영의 친구였던 소지 선생님 역시 남들에게 말하기 쉽지 않은 비밀을 하나씩 다 품고 있다.

 

 위성곤이 기영에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연기를 안 한 거죠. 지금 보시는 게 바로 연기입니다. 회사에선 평소 집에서 하던 대로 했을 뿐입니다. 포르노를 보고 코를 후비고 졸고 그러는거죠. 대학 다닐 때 연극반에 잠깐 있었는데요, 그때 그런 얘길 들었어요. 연기라는 게 없는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자기 안에 있는 또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조명탄이 꺼지면 바다 속 잠수정은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너무 강한 조명아래에서 얼굴의 음영이 지워져서 마치 유령처럼 보인다. 그래서 인간이란 모름직이 밝은 곳에서 쓸 가면이 하나씩 필요한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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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가끔 천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어떤 모습이 보일까라는 궁금증이 든다. 사람마다 그 차이가 적든 많든 서로 같은 물건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떠올리니 당연히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겠지만 왠지 그들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특별 할 것만 같다.

 

 그 중에서 가장 궁금한 작가는 이상과 카프카이다. 두 작가가 쓴 글들을 보면 대체 세상이 어떻게 보이길래 이런 글을 쓴 걸까 라고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성은 카프카의 장편 3부작 가운데 하나이다. 안타깝게도 완성이 되지 않은 작품이다. 다음 장면으로 들어가는 묘사 도중 뚝 끊어져버린다. 책을 읽고 나니 다음 장면이 궁금해 머리카락이 간질간질 거리는 기분이다.

 

2. 줄거리

 

 굉장히 난해한 책이다. 사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과연 이걸 줄거리를 정리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과연 맞게 줄거리를 정리 하긴 하는 것일까? 라는 무력감이 든다.

 

 소설은 K가 베스트베스트 백작의 성에 측량사로 초빙되어 밤늦게 마을 여관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피로한 상태에서 숙박을 청하는 K에게 어떤 남자가 굉장히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면 뭔가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K는 외지인으로써 마을에서 굉장히 배척 받는다. 그리고 K는 그런 원주민들의 태도에 진절머리를 치며 성으로 들어가길 원하지만 어째서인지 성에는 전혀 닿을 수 없고 자신의 직속 관리자인 클람에게 직접 접근하려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는데.

 

3. 마무리

 

 줄거리 파트 서두에서 언급했다시피 책이 굉장히 난해하다. 인물들 간의 대화도 뭔가 핀트가 어긋나 있고 시간과 공간 역시 뒤죽박죽이다. 마치 문장이 휙휙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이야기의 미로 속에 처박혀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 라는 의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 집중해서 읽어도 마찬가지일 건 같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흥미롭다. 마치 굉장히 폐쇄적이고 뭔가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집단의 속살을 한 꺼풀 한 꺼풀 파헤쳐가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게 별로 기분이 좋다는 건 아니다. K를 따라 가다보면 그리고 그가 변화되는 것을 보면 나 역시도 무척이나 피곤함이 느껴졌다. 도무지 실체라는 것을 잡을 수 없다.

 

 내가 직장인이라 그런지 등장인물들의 행위가 마치 혹시 모르는 일을 대비해 쌓아두는 자료 같이 느껴지고 누가 제대로 보기나 할지 의심스러운 알 수 없는 윗사람들 개별 입맞에 맞춰 수 많은 버전으로 수정이 가해지는 보고자료처럼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K는 버그이다. 절대로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아니 실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집단에서 만들어낸 버그이다. 프로그래머의 손에 의해 탄생했지만 필요치 않은 버그, 사실 프로그램에 버그가 있더라도 눈에 띄지 않고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중 아무런 오류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K는 너무 눈에 띈다. 자칭 클람의 여자인 프리다를 훔치고 마을 사람들의 충고에 따르지 않고 접근하지 말라는 바르가스 집안에 접근하고 관리들의 권위를 무시하기까지 한다.

 

 K전에는 올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내려진 형벌은? 사회적 매장이었다. 마을 내 꽤나 권위 있던 그녀의 집안이 아무런 명령서나 손짓도 발짓도 없이 소위 암묵적 합의에 의해 순식간에 작살이 나버린다.

 

당신은 성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을 사람도 아니에요.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신이 그 무엇이긴 해요. 즉 당신은 이방인이고 불필요한 사람이며 어딜 가나 방해가 되는 사람이에요.

 

경계에 관한 사소한 다툼은 우리 스스로 조정하지요. 그러니 우리에게 측량사가 왜 필요 하겠습니까?

 

실수 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 관청의 근무 원칙입니다.

 

 그리고 대체 클람은 누구일까? 그가 실존 하긴 하는 걸까? 때때로 그는 존재가 의문스러운 신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신의 권위를 이용하는 관리들은 신자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한다는 핑계로 권력을 행사하고 그들의 말에 의문을 가지거나 반기를 드는 이들은 신의 이름을 빌어 파문에 처한다!

 

아무튼 프리다는 클람의 애인이다. 클람을 만족시키는데 어찌 다른 사람들이라고 경탄하게 만들지 못 하겠는가.

 

클람의 이름을 사용하지 마세요.‘나 다른식으로 부르지, 제발 이름은 부르지 마세요.

 

부연해서 말하자면 사실 이 조서를 통해서만 드는 클람과 공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거예요.

 

클람은 왜 어떤 사람을 보는 걸 못 견뎌 할까요? 하긴 도저히 시험해 볼 도리가 없으니 증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요.

 책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이 시선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상황, 혹은 장소의 변동에 따라 사람들의 외양과 성격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알아 챌 수 있다. 프리다가 K를 따라간 후 그녀의 자리를 차지한 페피의 변화 그리고 프리다가 돌아 온 후의 변화, K를 따르던 조수의 모습, 관청에서의 바르나스와 집에서의 바르나스까지 재미있다. 마치 인간의 페르소나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쉽다. 뭔가 점차 실체에 접근하려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순간 책이 뚝하고 끊겨 버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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