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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눈먼 자들의 도시는 포르투칼의 노벨상 수상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가 쓴 소실이다. (어째 요즘 들어 계속 노벨상 수상을 한 작가의 책만 읽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은 불편함이다. 책은 챕터 구분을 제외 하고는 문단이 거의 구분이 되어 있지 않다. 누가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어떤 것이 묘사를 하는 것인지. 어떤 것이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는 것인지를 문단으로 전혀 구분을 해놓지 않은 책 독자들을 이끌어가고 있다. 마치 지금 내가 쓰고있는 글마냥 끊임 없는 문장의 연속이다. 덕분에 가끔씩 책을 읽고 있노라면 갑갑한 감정이 들곤 했다.

 

 우리는 오감을 이용하여 살아간다. 오감 중 어느 하나만 문제가 생겨도 우리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이다. 후각이 마비되면 어떤 음식물이 상한것인지 제대로 구분 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아래층에서 화재가 나도 검은 연기가 올라올때까지는 제대로 알아챌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책은 오감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시각의 마비를 다루고 있다.

 

 책은 지명이 정확하지 않은 국가의 어느 도시에서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한다. 어느날 갑자기 전염병으로 찾아온 백색실명 속에서 사람들어 어떻게 살아 갈까?

 

2. 백색실명

 

 사실 요즘은 세기말을 그린 작품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핵전쟁이든 좀비의 출현이든 바이러스의 감염이든 말이다. 그런데 백색실명은 굉장히 특이한 설정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흔히 가지는 실명에 대한 이미지는 암흑이다. 그런데 이 책은 백색실명을 말한다. 왜하필 백색실명일까?

 

 작가의 의도야 어째듯 작품을 받아들이는 건 독자의 몫임으로 어쩔 수 없이 내 마음대로 해석을 할 수밖에 없다. 정확히 기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20세기 중반까지 포루투칼은 우리나라 만큼이나 독재가 심각했던 국가이다. 그때 권력자들이 일반 민중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이 우리나라의 전모씨가 사용했던 3S 정책의 원조격인 3F 정책이라고 한다. (Football, Fatima, Fado)

 그리고 산업화 시대 이후 우리는 어둠 보다는 오히려 밝음에 익숙 할 것이다. 밤에 완전한 잠에 빠져들 때 빼고는 완전한 어둠을 마주치기란 결코 쉽지 않은게 요즘의 현실 일 것이다.

 작가는 백색 실명에 대해서 묘사하기를 원래 우리가 아는 어두운 실명과는 달리 백색실명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감각마저 마비시킨다고 말하고 맑고 투명한 눈에는 아무런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은 마치 여전히 눈이 보이는 것 마냥 습관적으로 말한다고 한다.

 

 저자는 압도적으로 많은 정보로 인해 무엇인 진실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게된 대중 혹은 그로인해 윤리를 상실한 인간들을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그저 눈이 멀었을 뿐이지만 대부분의 인간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눈이 보였을 때면 상상할 수 도 없었을 일들이 마구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무렇지 않게 아무곳에서나 일어나는 배설행위, 약탈, 강간까지 평소 우리가 동물과 다른점이라고 주장하거나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이 서로의 눈이 보이지 않는 다는 이유로 서로 감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산산히 부서진다.

 

 백색실명은 우리의 오감중 단순히 시각만을 차단한 것이 아니었다. 책에서는 이런 점도 곳곳에 묘사가 되는데 사람들은 악취와 오물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뒹굴고 차단된 시각은 위를 튼튼하게 한다고 그리고 장기간 지속된 실명상태는 기억마저 왜곡하고 사라지게 한다고 묘사한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모든 감시가 사라진 곳에서 인간의 본성이 혹은 자아가 드러나는 것일까? 

 

3. 마치며

 

  사실 책은 지금 서평으로 적어놓은 것보다 훨씬 많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인간의 본성과 수치심, 그렇지만 인간 관계를 통한 희망 같은 것을 다루고 있지만 내가 그것을 다쓰기에는 모자란 것 같은 것이 사실이다. 책을 읽다보면 정부에 대한 불신이 곳곳에 튀어나오는 것 같다. 눈먼 자들을 정신병동에 몰아 넣고 마치 자신의 책무를 다했다는 듯 떠들어대는 관리들은 스스로를 칭찬하고 재계의 반반을 이유로 몇몇 곳은 아예 격리구역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들은 눈까지 멀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들이 자신들을 감시 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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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일식' 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데뷔작임과 동시에 일본의 유명한 문학상인 이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작가가 법학부에 재학중인 대학새으이 신분으로 수상을 했다고 하니 당시 문학계에서 이 작가에게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었을지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참고로 힐노 게이치로가 대학생의 신분으로 이상을 수상 할 때까지 학생신분으로 이 상을 받은 것은 총 세명 뿐이었다고 한다.

 

 확실히 쉬운 책은 아니었다. 일단 용어부터가 어렵다. 철학, 종교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 수 없이 등장하고 어려운 한자어가 등장하다보니 가끔씩은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흐름이 끊어질 정도였다. 단순히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저자의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2. 책의 내용

 

 일식에는 수 많은 종교적, 철학적 상징들이 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책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 큰 줄거리가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의 주인공 니콜라 수사가 이교도의 확산을 걱정하며 동시에 헤르메스 선집에 이끌려 이교도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프랑스 남쪽으로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리옹에 떠난 니콜라 수사는 리옹 대주교의 추천으로 작은 개간지 마을로 향한다. 그 곳에는 피에르라는 뛰어나면서도 신실한 신앙심을 지닌 연금술사가 살고 있고 그 곳을 담당하고 있는 성직자 역시 신앙심이 깊고 존경을 받고 있노라고 말해준다.

 

 니콜라는 기대에 부풀어 그곳으로 출발하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전형적인 가난한 시골마을과 술과 여자에 빠져 타락한 유스티아누스라는 자가 맞이해주는 마을이었다. 그곳에는 자크라는 수사가 활동 하고 있었는데 니콜라가 요설이라고 표현 할 정도로 연설과 언변이 뛰어난 자였다.

 

 그의 여행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피에르는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을 배척을 하며 마을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않는 숲쪽에 석조 건물을 가지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잡일을 맡아주는 몸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기욤 역시도 마을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있었다. 그의 딸 (유스티아누스의 딸일지도 모를) 장은 벙어리인 동시에 백치라고 불리고 있었고 그의 부인은 바람을 피웠다고 전해졌다.

 

 니콜라는 피에르에게 빠져든다. 그의 학문의 깊음과 신실함, 그리고 연금로를 바라보며 작업을하는 그의 성실함까지 그에게 마음이 빼았기는데... 자크는 이단 심문관으로써 마녀사냥을 계획하고 니콜라에게 피에르가 어떤자인지를 물어본다.

 

 마침 마을에는 전염병이 창궐하며 사람들은 폭력적이어지고 화풀이할 대상을 찾게 되는데. 그와 동시에 집단적으로 환각인지 환상인지 모를 것에 시달리며 마을에 점점 광기가 높아져가는 그때, 안드로규노스가(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가진 존재,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며 연금술에서 대작업의 결과 등으로 표현되며 완전체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들 눈앞에 나타나게 되는데...

 

3. 맺으며

 

 책에는 어려운 말이 난무하여 가끔씩 흐름을 끊는 듯한 느낌마져 든다. 이것이 저자의 젊은 날의 치기였는지 아니면 실제로 필요 했는지 나로써는 뭐라고 판단 할 수가 없다.

 

 소설 전반에는 침묵이 가득하다. 수 많은 활자들이 종이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책 곳곳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기욤의 딸이자 벙어리인 장의 살짝벌어진 입마냥 기묘한 침묵이 나를 압도 했던 것같다. 니콜라 수사는 전반적으로 말을 잘 하지 않는다. 타인의 무지에서 비롯되는 오해에서 자신의 진의를 이해 시키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은채 허무하다고 이야기 한다. 연금술사인 피에르와 안드로규노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타인에게 뿜어내지만 결코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 침잠하는 마냥 말을 삼킨다.

 

 피폐한 프랑스 남부의 시골을 배경으로 한 책은 아름다우면서도 불행하고 신비로우면서도 가끔씩 사람을 옥죄는 듯한 느낌을 계속 가져다 주었다.

 부폐한 사제와 마을 사람들의 허무함, 무력함 혹은 지독한 폭력이, 피에르와 안드로규노스, 니콜라 수사, 장의 침묵과 자크의 연설이 교차한다.

 

 안드로규노스,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닌 이 존재는 결함을 상징하는 것일까? 니콜라는 안드로규노스가 화형 당할 때 예수를 보고 어떤 이들은 환상을 본다. 그리고 타고남은 재에서 발견되는 황금은 과연 현자의 돌이었을가? 세차게 타오르는 듯하며 존재감을 뽐내는 듯 하다가도 침묵의 비명만을 내지르던 안드로규노스와 니콜라는 일식에서 하나로 결합을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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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 안나 카레니나, 죄와 벌 등 수 많은 명작들을 남겨 많은 이들이 이름은 알고 책 제목도 한 번쯤 들어봤지만, 흔히 고전 명작들이 그렇듯 실제로 읽은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든게 사실이다. 나도 장편 소설을 몇 권 읽어봤지만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일단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은데 이름 때문에 구분하다가 머리가 빠질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확실히 대문호의 작품 답게 문장에서도 내용에서도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사실 톨스토이의 장편소설을 손에 쥐기란 쉽지 않다 일단 대부분 무지하게 뚜겁기 때문에 펴보기 조차 싫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조금 편한 단편소설 모음은 어떨까 싶어 서평을 써본다.

 

2. 작품 내용

 

① 세 가지 질문

 

 직장인이라면 연말에 회식자리에서 다들 한번 정도는 이런 건배사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세상에는 중요한 금이 몇가지가 있는데 바로 현금, 황금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지금을 즐깁시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다. 이 내용의 기원이 바로 이 작품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왕은 일을 시작할 알맞은 때와 귀를 기울여야 할 사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항상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신하와 학자들에게 질문을 한다. 질문을 받은 이들은 각자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 들을 들려주지만 왕은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의 눈을 피해 숨어있는 은사에게 찾아간다.

 

 왕은 은사를 찾아가 그가 하던 쟁기질을 도와주고, 우연히 상처입은 자를 만나 치료해준다. 상처 입은 자는 자신에게 복수를 꿈꾸던 자였는데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평생 충성을 맹세한다.

 

 왕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던 은사는 자신과 있었던 하루일을 예로 들며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고, 필요한 사람은 함께하는 사람, 가장 중요한 일은 함께 있는 이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② 젊은 황제

 

 등극한지 얼마 되지 않은 황제는 매우 바빠 5주동안 제대로 쉬지 못했다.(어느 나라 대통령과는 매우 다르다.) 덕분에 아내와의 휴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티를 마치고 휴식을 만끽하려는 찰나 깜빡잠이들고 마는데. 갑자기 나타난 안내자와 여러가지 상황을 겪는다. 감옥의 죄수, 병사, 알콜중독자 등 자신이 휴식을 취하고 싶어 대충 처리해버린 일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을 보여준다. 황제는 자신은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며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고 하지만 황후한테 혼나며 자신의 위치에서 행해야 하는 의무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올바르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며 깨달음을 얻는다.

 

③ 세 죽음

 

 이 작품은 귀부인, 마부, 나무의 각기 다른 세가지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난치병에 걸려 주위 사람들에게 온갖 히스테리를 부리며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귀부인, 자신의 죽음을 별다른 불평없이 받아 들이며 자신의 장화를 젊은 동료에게 선물하는 마부, 그리고 이 젊은이에게 십자가가 되어주는 나무까지

 

 과연 가치있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④ 악마는 유혹하지만 신은 참고 견딘다.

 

 하인들에게 칭송을 받는 친절한 주인이 있다. 어느날, 악마는 하인과 주인이 잘지내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겨 한명의 하인 알레프를 꼬셔 이들을 이간질 시키려 한다. 알레프는 하인들에게 우리가 주인을 위해 최선을 하다하고 이익을 내주기 때문에 주인이 우리에게 친절한 척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라 주장하며 하인들과 내기를 한다.

 

 알레프는 기회를 잡고 주인이 눈동자만큼이나 아낀다는 양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하인들은 알레프가 크게 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주인은 그를 용서하고 오히려 자유를 준다. 악마는 나무에서 ㄷ러어져 땅속에 파묻힌다.

 

 이건 대체 뭘 말하고 싶은건지 모르겠다 사실, 신의 선함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악마의 꾐에 빠지지 말하는 것일까?

 

⑤ 죄인은 없다.

 

 중년의 독신자 볼긴의 눈에 비친 여러 인물들이 비교가 되면서 등장한다. 지주이자 의원으로써 부와 권력을 가진 집주인, 작은 이익을 바라는 늙은 집사 스테판, 학교를 다녔지만 글을 읽을 줄모르는 목동 소년, 얼마전 유일하게 가진 재산이었던 말을 잃은 농부 등 다양한 인물의 군상이 서로 비교가 된다.

 

 다만 공통적인 사항이 있다면 바로 신분에 갖혀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하인의 아들은 하인으로, 가난한 이의 아이는 가난한채로, 괴팍하고 능력없는 부자집 아들은 여전히 부자로) 주어진 신분에 갖혀서 살아가는 것이다.

 

 당신이 그렇게 사는 것은 어느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도 실패하는 것도 죄는 아니다 라고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⑥ 부자들의 대화

 

 부잣집에 손님들이 몇 명모여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일단 젊은이부터 시작, 젊은 이는 부자의 삶을 부끄러워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겠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들은 아버지는 니가 아직 어려서 뭘모르니 크면 다시 생각해라고 이야기 한다.

 

 손님들은 이 의견에 자신의 의견을 첨언하기 시작하는데. 특이한 점은 부자들이 모였는데도 자기 인생에 만족하는 이가 하나 없다는 것이다. 다들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산다고 말을 한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앞으로 그렇게 살겠다고 이야기 하지만 주변인들은 나이가 들어서 혹은 가족을 생각하라와 같은 현실적 이유를 들어서 의견에 반대를 한다. 진정으로 원하는 삶과 현실 과연 무엇이 더 중요할까?

 

3. 맺으며

 

 사실 뒤에 2개의 작품이 더 남았지만 이만 줄이겠다. 어떻게 보면 앞에 나온 작품들이 주는 교훈만으로도 충분히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골치가 아프다.

 

 과연 내 삶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고 어떻게 살아 가고 죽을 것인가는 평생동안 끝이나지 않는 화두일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답을 구하지는 못 할지언정 고민을 할 시간은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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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그 동안 꽤 많은 일본 소설을 읽었지만 이런 느낌의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다. 요시모토 바바나나의 달콤함이나 에쿠니 가오리의 잔잔함과도 그렇다고 하루키의 무뚝뚝함이나 허무함과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간단히 느낀점을 표현하자면 읽는 동안 읽는 맛이 나는 책이었다. 한문체의 고풍스러운 표현과 은근하면서도 관능적인 표현은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어디 까지가 현실인지 구분이 안가는 소설 속 내용처럼 독자를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사실 한 번 읽고는 이 책이 짜임새가 좋은 책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한번 더 읽은 후에야 이 책이 얼마나 처음부터 끝까지 짜임새가 좋은 책인지를 알 수가 있었다.

 

2. 책의 내용

 

 책은 신경쇠약을 앓고있는 시인인 마사키의 여행을 담고 있다. 마사키는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은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세번의 인연을 통해 나라 현 도쓰카와 마을 왕선악 산중에 이르게 된다.

 

 마사키는 이곳에 이르는 도중에 여러가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서양 풍으로 곱게 차려 입은 여인에 이끌려 행선지를 요시노로 정하게 되는데,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 왠 광치어린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내릴 역을 지나쳐 본의아니게 구마노 본사로 향하게 된다.

 

 기묘한 노인과의 만남은 노인의 태도 변화 이후 노인이 떠나버림에 따라 혼자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구마노 본사로 가던 중 노인과 함께 기차안에서 마주쳤던 나비와 비슷하게 생긴 나비에 이끌려 원래의 길에서 벗어나 왕선악으로 들어서게 된다.

 

 나비에 이끌려 한참을 산을 오르던중 밤이 내려앉고 마사키는 길을 잃고 헤메던 중 뱀에게 물려 정신을 잃게 된다. 그리고 엔유 스님의 구함을 받게 되고 그곳에서 또 시간이 달리 흐르는 듯 한 느낌과 더불어 아름다운 여인이 나오는 야릇한 꿈, 그리고 고통스러운 환상에 시달리게 된다.

 

 엔유는 마사키에게 뒤쪽의 암자로는 다가가지 말 것을 경고한다. 그곳에는 나병이 걸린 노파가 홀로 죽어 가고 있음으로 마사키에게 절대로 그곳에 접근치 말하고 하는데. 마사키는 점점 꿈속의 여인에 빠져들어서는 산을 내려가기를 거부한다. 이에 엔유는 강제로 하산 할 것을 명령하고, 보름달 밤 잠이오지 않던 마사키는 몰래 암자로 접근을 하는데...

 

3. 내 마음대로 뽑아보는 키워드

 

 키워드1 :  왕선악 (往仙岳)

 

 저자 히라노 게이치로는 소설속에서 다 일본 지방의 실제 지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직 원래 행선악인 산만은 왕선악으로 고쳐서 사용했는다. 여기서 바뀐 글자의 한문은 다닐 行 → 갈 往 한문에 조예가 깊지 않은 관계로 비슷 한 것 같은데 무엇이 다른지 잘 몰라 사전을 뒤적뒤적 이다보니 왕생(往生)의 의미가 '이 세상을 버리고 저승으로 가서 삶'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것을 생 대신 신선 仙 자로 바꾸면 '이 세상을 버리고 신선계에로 가서 삶' 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왕선악은 현실과는 유리가 된 세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키워드2 : 제비나비

 

 제비나비는 소설 속에서 여러번 등장한다. 먼저 노인과 만났던 기차에서 그리고 구마노 본사로 가던 길에서는 마사키를 왕선악 산중으로 이끈다. 그리고 꿈속의 여인의 머리핀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다카코가 남긴 핏물에서 나타난다.

 

 소설에서 나비는 마치 호접지몽(장자지몽)을 연상시킨다. 장자의 제물론편에서 나오는 이 이야기에서 장자가 깨달은 바는 만물에는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즉 물아일체를 경험하면 꿈과 현실을 구분짓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실 책을 관통하는 가장 큰 하나의 주제를 꼽자면 이것이 아닐까? 마사키는 찰나의 순간 명멸하는 정열을 꿈꾸면서 계속해서 자연 혹은 최후에는 여인과 하나되는 완벽한 순간을 꿈꾼다. 그리고 나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에 등장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마사키를 왕선악(신선계 혹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으로 이끄는 존재가 아닐까?

 

 그때도 지금과 똑같았다. 마치 시간의 흐름에서 튕겨져나와버린 듯한 느낌. 기차안에 잘못 날아든 나비가 기차의 이 칸 저 칸으로 얼마 안 되는 거리를 날아다니는 사이에 하나둘 정차역을 지나쳐버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생전 처음 보는 땅에 떨어졌다는 느낌. - p.34

 

 키워드3 : 강물소리, 두견새 그리고 절, 엔유, 다카코

 

 뱀에 물린 마사키가 깨어난 절, 그리고 그 곳에 머루르는 엔유 스님, 엔유는 어떤것을 깨달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는 폐불훼석이 있은 후 행각을 돌다가 도쓰카와 온천 여숙에서 무슨 일인가를 겪고 활연대오, 이제까지 득도라 믿어왔던 바가 기껏 나한의 경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다카코는 뱀과 인간 여자의 교접을 통해 태어난 아이다. 그리고 눈에는 살을 품고 있다. 그녀도 일반적인 인간은 아니다 일종의 경계에서 살고있는 사람이다.

 

"아아, 괴로워요. 지금처럼 제 몸을 저주한 적은 없었어요. 당신을 이곳에 불러들이고 만 것이 너무도 괴로워요. 제 마음의 반은 제 것, 나머지는 무언지 정체도 모를 무서운 힘의 것, 누군가를 생각하면 만나고 싶어지지요. 아무리 멀리 있어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부르고 말이요. 제 마음이 원하는 것을 무리하게 이루어버리고 말아요."

 

 왕선악은 인적이 끊긴 이후로 시공간이 밖과는 다르게 분리된 채로 흘러간다. 그리고 마사키가 머물렀던 선방은 경계속의 또 다른 경계이다. 마사키는 밤에 물소리를 듣는다. 밤은 소위 음의 기운이 강해지는 시간이다. 현세와 저승의 경계가 조금 더 엷어지는 시간이다. 엔유는 마사키가 물소리를 들었다고 하자 안색이 변한다.

 

 마사키가 들었던 것은 삼도천의 강물 소리가 아닐까? 불교에서 저승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는 강인 삼도천은 삼도내라고도 하고 죽은지 7일 째되는 날 이 강을 건난다고 한다.

 

 마사키는 뱀에게 물리고 정신을 잃은지 사흘째 되는날 깨어난다. 후에 여관주인으로부터 듣는 다키의 이야기에서도 다키도 산속으로 사라지고 사흘째 되는 날 돌아온다. 7일이 다 되지 않은 다키 역시 마사키와 마찬가지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 혹은 서양에서는 림보라고 부르는 곳에 다녀온 것 아닐까?

 

 마사키는 그로부터도 몇일 지나 보름 동안이나 머무른다. 마사키가 머무르는 동안 몸은 매우 빠르게 회복된다. 몸이 빠르게 회복되지만 꿈과 환상도(혹은 현실) 점차 강해진다. 마사키가 머무는 선방은 다시 현세로 돌아갈 수 있는 최후의 경계선 이고 다키코와 그녀가 머무를 암자는 그 반대편에 위치하는 것 같다.

 

 두견새는 그야 말로 저승길 초입의 새이다.

 

 "이 산은 두견새가 퍽 울어대는군요. 아, 지금 또...... 휘파람새니 다른 이름 모를 새들은 모두 이쪽으로 저녁거리를 찾아날아드는데, 두견이만은 이상하게도 항상 멀리서 울지요....... 저는 저 두견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옛 사람이 어째서 저 새를 일컬어 '저승길에서 온 새' 라 했는지 알 듯한 기분이 듭니다.

 

 마사키는 엔유에 의해 쫓겨나 듯 산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아마 다키가 묻혔을지도 모를 묘지를 지나친다. 그곳은 일종의 이승과 저승 혹은 선계의 경계인 듯 오랜시간 경계 머물던 몸은 현세를 견디지 못하는 마냥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키워드4 : 다키, 마사키 그리고 뱀

 

 그럼 대체 다키와 마사키 이 둘은 왕선악으로 간 것일까? 마사키의 경우는 어떻게 왕선악으로 가게 되었는지 그 여정이 잘드러나 있다 그러나 다키는 여관 주인의 말을 빌어 나오기 때문인지 그 여정이 잘 들어나지는 않는데. 몇가지 단서가 있으니 따라가보도록 하자

 

 일단 둘의 공통점이다.  둘은 아름다운 20대였다. 다키는 여관의 주인의 말을 빌리자면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데도 이따금 퍼뜩 놀랄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다. 마사키는 아수라와 같은 출중하게 매력 넘치는 모습을 온몸에 휘감고 있다고 나온다. 그리고 둘은 달도 없는 밤에 왕선악으로 가서는 초승달이 뜨는 밤 (사흘 후) 돌아오고 정신을 차린다.

 

 둘의 차이점은 둘다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으나 마사키는 정렬적인 흙담즙질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다키는 하얗고, 허망하고 청승 맞은 느낌이 드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뱀을 만났다. 뱀은 나비와 동일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왕선악으로 안내하는 길잡이인 동시에 최후로는 왕선악 내부의 이질적인 공간으로 그들을 납치(?) 하는 존재이며 엔유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것 같다. 사실 다키가 산으로 끌려가서 뱀의 아이를 가지고 내려왔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퍼득 떠오른 것은 그리스 신화였는데 마치 제우스가 온갖 동물로 변해 인간세에 내려와서 자기 씨를 뿌리는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뱀은 (악마? 신? 글쎄다 뭐라고 표현하는게 좋을지는 모르겠다.) 아름다운 다키를 유혹해 자신의 아이를 가지게 한다. 그리고 아름답고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또 한명의 인간을 유혹해 왕선악으로 들인다.

 마사키가 선택된 이유는 아름답고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에게는 바로 다키와는 달리 최고의 한 순간을 위해 자신을 불태울 '정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뱀이 다키를 통해 다카코를 낳은 이유는 마사키의 뮤즈 혹은 세이렌으로 활용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뱀의 큰그림???)

 그리고 그 것을 바라보며 인간이 하늘에서 아름다운 한순간 터지는 불꽃이 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불꽃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그 둘을 바라보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과정에서 좀 더 아름다운 재탄생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엔유는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을 알지만 어쩔수 없는 비자발적 조력자가 되었던 것 같다. 마사키가 시를 쓴다는 것을 이야기 할 때 굳어지는 표정이나 애써 산을 내려가라고 하는 권유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마치 구하고 싶지 않았는데 구했다고 말하는 듯한 문장.

 

 '소승은 처음부터 자비심에서 선비를 구한 것이 아니외다. 한 찰나 '감히' 그냥 지나치려 했던 소승의 교만을 절복 하기 위해 업어왔을 뿐이오."

 

 키워드5 : 도쓰카와

 

 책을 읽다보면 여기서 시간과 공간이 굉장히 불분명 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도쓰카와라는 지명이 그렇다. 도쓰카와는 여러번에 걸쳐서 등장한다. 책 첫페이지에 마사키가 서 있는 곳은 도쓰카와 마을의 왕선악 산중이다. 그리고 홍수의 범람으로 인해 폐허가 된 곳도 도쓰카와 연안이고 엔유가 깨달음 얻은 온천 여숙이 있는 곳도 다키까 빠져 죽은 곳도 도쓰카와이다.

 

 무슨 말인가 하니 도쓰카와는 1890년에 여러 촌이 모여서 생신 새로운 행정구역이다(일본에서 최고로 넓은 촌이라고 한다.) 마사키가 있는 곳은 도쓰카와 마을의(도쓰카와 촌을 번역하다가 이렇게 나온 것일까? 왕선악 산중이라고 표현한다. 마사키가 여정중 만난 노인은 1889년 도쓰카와 강이 범람하여 사람이 죽었다고 말한다. 책 속에는 몇몇 번만 정확한 년도가 나오는데 이것을 잘 꿰어 맞추다보면 다키의 아버지가 대홍수에 죽은 연도와 1889년이 얼추 맞아 들어간다. 

 

 마사키가 왕선악 산중을 벗어나 오타니로 왔으나 (도쓰카와 촌 소속이다.) 여전히 강물 소리가 들린다. 산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죽음의 공간이 이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키워드6 : 죽음

 

 책에서 죽음은 대체로 완벽한 정열의 순간과 동의어로 쓰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죽음을 통해 마사키가 완성한 것은 자신인가 자신의 사랑인가 아니면 한편의 완전한 시인가? 아니면 장자지몽처럼 이 둘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이 한송이 왜솜다리로 아니면 아름다운 나비로 변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키워드7 : 엔딩

 

 책의 결말은 아무런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결국 암자(경계) 남은 것은 나한을 초월한 엔유뿐이다. 엔유는 일종의 관찰자인가? 다들 왜솜다리 꽃으로 백골로, 한줌의 핏물로, 나비로 변해 자연으로 돌아간다. 필멸자로써 피할 수 없는 죽음, 완벽한 정열을 통해 탄생된 죽음 속에서 태어난 한마리의 아름다운 나비(완벽한 작품)

 

 결말 부분에 마사키의 시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사키는 이 책을 따라온 독자일까? 소설은 도입부부터 시간과 공간을 마구 헝클어트리기 시작하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마구 무너뜨린채 독자를 끌여 들였고 이제 당신을 내보낸다는 뜻일까?

 

 키워드8 : 도입

 

 사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데 책을 한번 읽고 두번 읽을 때야 눈에 들어왔는데 이 부분이 마치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해질녁, 도쓰카와 마을 왕선악 산 중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로 홀로 서 있는 청년, 그리고

 

 "대체 내가 어디를 헤매고 있는 것일까?"

 두견새 울음소리가 일제히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 문장 이 후, 두번의 문단을 분절 시키며 이 앞의 문단이 뒤의 문단과 시간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음을 암시하며 자신이 왕선악으로 향하게 된 길을 상기시켜 준다.

 

 이 후, 책 내내 강물 소리와 두견새 소리는 저 멀리서 들려온다. 과연 이것은 다 한바탕 꿈이었고 여기야 말로 엔딩이 아니었을까?

 

 4. 맺음말

 

 서두에서 말했 듯이 읽을 맛이 나는 책이다. 고풍스러운 문장은 차라리 마치 한편의 시와 같다. 그리고 여러가지 고전 설화들의 클리셰를 잘 이용해서 만든 한편의 옛날 이야기 느낌이 나는 책이었다. 굳이 이런식으로 소설을 해체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 길수 있는 좋은 책인 것 같다. (맞는지도 모르겠는게 가장 큰 문제긴하다)

 

 밤이 서서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산속에서는, 어둠은 바닥으로 바닥으로 첩첩이 쌓여 올라온다. 어느 틈엔가 복사뼈를 덮고 무릅을 덮고 문득 가슴팍까지 차오른 것을 깨닫는다.

 

 번역의 힘일까?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관계로 무어라고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책 한권 속에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한 것 같다.

 

 방문이 조금 열렸다. 뜰에 가득 찬 달빛은, 향주머니의 끈을 막 풀어헤친 듯 문 틈새로 들어와 마사키를 감쌌다. 땀에 젖은 팔이 얼음 조각처럼 창백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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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노벨상을 수상했던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책을 읽고나서 알게된 놀라우면서도 슬픈 사실은 작품의 배경이라고도 할 수 있을 헤르만 헤세가 기숙신학교에 입학 한 14세때가 19세기 말엽인 1891년인데 이때의 강압적이고 주위 사람들과 치열하게 경쟁시키며 사회에 순종적인 인재를 양성 교육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주류라는 것에 놀랄 따름이다.

 

2. 주요 내용

 

 독일 구석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그 마을에서 일전에 없던 재능으로 마을에서 촉망 받는 소년이었다. 누구도 그 소년의 재능을 의심하지 않았고 소년의 미래는 소년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부유하지 않는 집안에 태어난 재능있는 소년이 성공 할 수 있는 방법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기숙 신학교에 입학하여 관료나 교수, 성직자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한스은 또래의 다른 소년들과는 달리 교회의 목사, 학교의 교장 선생님 등으로 부터 추가적으로 교육을 받고 입학 시험을 준비한다. 한스는 또래 소년들에게 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생활 하면서도 종종 휴식을 취할 때면 두통을 겪는다.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입학 시험에 응시한 한스는 긴장감으로 시험을 망쳤다고 자책을 하며 고향으로 돌아와 걱정에 휩쌓이자만 곧 2등으로 합격한 사실을 통보를 받으며 자신의 실수 때문에 1등으로 합격하지 못한 사실을 아쉬워 한다. 한스는 그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자유시간을 허락 받아 그 동안 공부를 하느라 즐기지 못했던 낚시, 수영 등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나는데. 그 이유는 물고기를 선물하기 위해 방문했던 교장 선생님이 자유 시간을 즐기라고 권유하면서도 기숙학교에서 공부할 내용을 선행 학습하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어른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훌룡하게 성정했다. 길거리에서 뛰노는 일과 장난질 따위는 스스로 그만두었다.

 

 한스는 결국 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또래 아이들 보다 우월하다는 감정을 느끼며 그리고 자신의 것인지 타인의 것인지도 모를 성공에 대한 욕망을 느끼며 낚시대는 버리고 토끼장은 박살을 내버리고 잠시 동안 즐겼던 여유를 포기기하고는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선생님들이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의무는 아이들의 거친 본능을 누르고 국가가 원하는 평화롭고 절제된 이상을 심어 주는 것이다. 현재 행복하게 살고 있는 시민이나 성실한 관료들도 이러한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낙폭한 개혁가나 공허한 이상에 사로잡힌 몽상가가 되었을 것이다.

 

 한스는 기숙학교에 입학하고도 별 다른 생활의 변화가 없다. 그저 공부에 매진할 뿐이다. 기숙사의 다른 학생들이 서로 우정을 쌓아가는 동안에도 한스는 오히려 자신에게 손을 내밀려는 다른 소년의 손을 뿌리친다. 그러던 중 오직 한 소년만이 한스와 우정을 쌓아가게 되는데 그 소년의 이름은 하일러 였다.

 

 한스가 부지런하고 평범하지만 모범생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면 하일러는 나태해보지만 감수성이 풍부하고 진정으로 천재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두 소년은 다른 사람들은 배척한 채 자신들 만의 우정을 이어나가나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잠시 동안 멀어진다. 그렇지만 힌딩거라는 소년이 사고로 인해 사망하고 난 이후 하일러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던 한스는 하일러와 다시 우정을 회복한다.

 

 선생님들은 살아 있는 학생을 대할 때와는 다른 눈으로 죽은 학생을 바라보앗다. 평소에 함부로 상처를 주었던 젊음의 가치를 되새겨 보는 듯했다.

 

 모범생이었던 한스는 하일러의 영향을 받은 듯 점점 선생님들이 원하는 모범적인 학생의 상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기 시작한다. 이에 교장 선생님까지 나서서 한스에게 충고하지만 이미 한스의 변해버린 모습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한스는 점점 환상을 보는 듯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일러가 기숙학교를 탈출하는 일을 벌여 퇴학 당하고 난 후 홀로남은 한스는 이 현상이 점점 심해지다 결국은 신경쇠약이라는 판정을 받고 요양을 명목으로 고향으로 퇴출 당한다.

 

 고향으로 퇴출 당한 한스는 마을 사람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다. 마을에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소년은 이제 낙오자가 되어버렸다. 한스는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을 찾으려는 듯 마을 구석 구석을 더듬지만 이미 남겨진 것은 없다. 한스에게 낚시를 가르쳐주었던 다른 소년도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주머니도 남아있지 않다. 홀로 남겨진 한스에게 잠시간 사랑이 찾아오는 듯 했지만 그것 역시 홀연히 떠나버린다.

 

 그는 다시는 어린아이가 될 수 없고 리제의 곁에도 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스는 기계공이 되기로 하고 견습생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동안 육체적 노동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는 듯 했지만 다른 기계공들과 술을 마신 후 강물에 빠져 사망하고 만다. 소년은 결국 수래바퀴 아래 깔려 버리고 만 것이다.

 

 장례식에는 기계공들과 호기심에 찬 구경꾼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한스는 다시 한번 유명한 인물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3. 맺으며

 

 서두에서 말했다시피 책을 읽고 난 후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과 저 시대의 교육을 비교해봤을 때 뭐가 그렇게 달라졌나 라는 의문이든다.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 여기게 하고 오직 높은 점수와 출세를 위해 공부하게 하고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에서 부터 시작되는 선행 학습까지.

 

 우리나라 부모 혹은 어른 중에는 이런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일이다 혹은 충고다 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아이들 자신의 꿈과 희망이 아닌 어른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강요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좋게 말하면 관심이고 나쁘게 말하면 정말 나쁜 오지랍인 것 같다. 왜 게임도 아닌데 아이를 자신의 아바타로 키워 자신의 못다이룬 꿈을 성취하려는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문득 생각나는 것은 메가스터디 대표인 손주은 대표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공부 잘하는 것도 유전이고 열심히하는 것도 유전이다 과연 아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는 부모는 공부를 열심히 했는가?')

 

 한스는 초콜릿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마지못해 한입 베어 물었다. 숙모에게 초콜릿을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혹은 내가 어린 시절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아이가 그것을 좋아하라는 법은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 혹은 배려가, 인생의 선배라고 해주는 충고 한마디가 타인이 힘겹게 끌고 가고 있는 수레에 오히려 짐을 실어주는 것은 아닐지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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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요즘 세상에 편의점이라는 공간은 여러가지 의미로 중요한 공간이다. 바쁜 직장인들과 가난한 학생들에게 값싸고 편안한 그나마 음식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제공해주고 과거 소위 구멍가게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편의점이라는 현대적이고 깔끔한 이미지의 가게들이 자리를 차지 하고 있다.

 

 편의점은 그야 말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편의점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서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는 편의점을 의미를 부여한 후 한편의 작품을 완성해 내었다는 것에 감탄한 작품이었다. (실제로 작가가 20년 가까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경험했다고 하는데... 와..)

 

2. 책의 내용

 

 책은 여자 주인공인 후루쿠라 게이코의 이야기이다. 30대 중반의 그녀는 대학교를 다닐 때 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졸업 후에도 취업을 하지 않은 채 무려 18년 간이나 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 지점에서!) 그녀는 어릴 때 부터 좀 남과 달랐는데 바로 공감 능력이 부족하여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이런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사이코패스 범죄라고 할 것이다.)

 

 세상에서 일반적인, 상식, 기준으로 통하는 것들은 그녀와 통 맞지가 않았다. 그녀는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피해 자신을 숨기고 살기 시작하는데. 그런 그녀에게 단 하나의 유일한 이상적인 공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편의점이라는 공간이었다. 우연히 편의점에 아르바이트로 취업한 그녀는 그 후로 많은 사람들이 바뀔 동안에도 편의점과 함께 자리를 지켰는데. 나이가 들어 갈 수록 그녀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늘어간다.

 

 그러던 중 우연히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온 시라하를 만나게 되는데. 그 역시 일반적인 사람들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어쩌면 도태 되어버린, 일반적이지 않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둘은 서로 필요에 의해 동거를 시작하게 되는데. 남들의 눈을 피해 일반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시작했던 동거는 오히려 후루쿠라의 생활에 균열을 가져오기 시작한다.

 

3. 마무리

 

 이 책을 읽기 바로 직전에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었기 때문일까? 책을 읽다보니 현대 사회에서 일종의 규격화 된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수가 있는 시간이었다. 인터넷이 세상에 나오고 SNS가 발달 한 후 사회에서는 다양성을 존종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오히려 획일화 되어 가고 있는 세계화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아키텍쳐 베이비라던가, 소위 말하는 국민 ** 상품 등 말이다. 사람들과 사회는 다양성을 추구하라고 말을 하고는 있지만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지 않으면 특히나 그것에 실패한다면 사회는 우리를 낙오자 취급하기 일쑤이다.

 

 사회는 후루쿠라에게 이상한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었다. 그리고 후루쿠라는 그 속에서 최대한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지만 대체 무엇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는 정확한 메뉴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편의점에는 정확한 메뉴얼이라는 것이 있다. 어떻게 인사를 하고 물건은 어떻게 진열하고 등이 말이다.

 

 "아니, 누구에게 용납이 안 되어도 나는 편의점 점원이에요. 인간인 나에게 어쩌면 시라하 씨가 있는 게 더 유리하고, 가족도 친구도 안심하고 납득 할지 모르죠. 하지만 편의점 점원이라는 동물인 나한테는 당신이 전혀 필요 없어요."

 

 사르트르의 소설 속에서 처럼 실존하는 인간으로 '까닭 없이'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 위치나 지위 같은 누군가가 규정해준 본질에 집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회사의 직원, 한 가정의 가장, 누군가의 부모 와 같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것에 매여 살아가는 것처럼 후루쿠라에게는 편의점 점원이 사회가 그녀에게 규정해준 그리고 그녀가 받아들이기 가장 적당한 본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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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얼마 전 있었던 노벨상 수상식에 선약이 있다며 참석하지 않았던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인 밥 딜런을 보며 예전 노벨상 수상을 거부했던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가 떠올랐다.

 

 그는 왜 노벨상이라는 어마어마한 명예를 거절 했을까? 사르트르는 간단히 '제도화된 작가가 되기를 거부한다' 라는 짧지만 쿨한 답변을 남겼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무수한 이유들을 들이 밀었다. 그중 하나가 그가 '실존주의' 철학자 였기 때문이다라는 것인데. 대체 그 실존주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구토' 라는 짧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설 형식을 지니고 있는 이 책을 통해서나마 일부 느낄 수 있었다.

 

2. 책의 내용

 

 주인공인 '앙트완 로카텡' 은 연금을 받으며 무직으로 혹은 역사가나 여행가라는 이름으로 부빌 도서관에서 시간을 주로 보내며 '롤르봉' 씨에 관한 책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30살의 젊은 남자이다. 이 남자는 때로 여관 주인과 몸을 섞기도 하지만 별달리 욕망이나 야심 따위를 보이지 않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그는 과거에 사랑했던 '안니'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와는 헤어진 상태이다. (뭔가 익숙한 느낌의 주인공이다. 마치 하루키 소설속에 흔히 등장 할 법한 남자 주인공이랄까?)

 

 그는 갑자기 어느 날 부터인가 구역질을 하곤 했는데.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하루의 일 들을 기록하며 소설이 시작된다.

 

 그는 부빌에서 생활 하며 그 곳에서 살아가는 부르주아들의 생활을 비웃으며 기존 질서와 관습을 벗어나기 위한 자유를 갈망한다. 그는 바닷가의 조약돌, 심지어 문 손잡이에서 까지 구토감을 느끼며 그것을 상세히 기술하며 자신의 구토감의 원인을 찾아 나선다. 그러던 중 오래전 헤어졌던 연인인 유일하게 진정으로 사랑 했을지도 모를 안니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 옛 연인과의 재회를 앞두고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다 마로니에 나무 뿌리를 바라보다 직감적으로 자신의 구토감의 원인을 찾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어떤 사물의 실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가 부여한 뿌리라는 본질이 아닌 진정으로 고유한 실존으로써 존재하는 뿌리를 느끼고는 그것과 자신이 아무런 연관성이 없이 동떨어진 체 존재했다고 느끼며 당혹감을 드러낸다.

 

 옛 연인과의 재회는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안니는 이미 타성에 젖아 예전에 아름다운 모습과 신비로운 모습을 잃어버렸고 부빌로 다시 돌아온 주인공은 부빌을 떠나기를 결심한다. 그리고 부빌을 떠돌며 자신과 관계 되었던 사람들 한명 한명과 만나 작별 인사를 건낸다. 그리고 역사 연구도 포기하고 절망찬 채 떠나려 할때 재즈음악이 주는 감동 속에서 소설이 구원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책은 끝이 난다.

 

3. 마무리

 

 사실 리뷰를 쓰고 있는 와중에도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를 하고 쓰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사르트르가 주장했던 실존주의를 간단히 표현하자면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 그리고 인간은 다른 사물들처럼 본질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으로써 존재한다.' 라고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르트르 이전의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의 존재의 목적 혹은 본질을 신에게서 찾았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책에서 그저 세상에 내던저진 것으로 표현하며 인간이 실존한다고 말한다..

 

나는 차라리...... 나에게 주어진, '까닭 없이' 주어진 이 인생 앞에 놀랄 뿐이다.

 

 그리고 그가 했던 또 다른 유명한 말인 '타인은 지옥이다.(HELL IS OTHER PEOPLE)' 라는 말이 책을 읽다보면 점점 이해가 된다.

 

 나는 책임감에 짓눌렸다. 눈을 부릅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안니가 그 순간에 만들어낸 의식의 한복판에서 몸부림칠 뿐이었다. 결국 나는 기다란 팔로 그 의식을 거무줄처럼 찢어 버렸고, 그럴 때마다 안니는 나를 증오했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실존보다는 본질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처음 만나면 나이가 어릴 때는 학교를 어디 다니는지 나이가 들어서는 직장이 어디인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입은 옷, 그 사람이 타고 다니는 차, 심지어 그 사람이 사는 동네를(혹은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통해서 한 사람을 편하게 평가하고 규정하려든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실존에 대한 고민을 점점하지 않는 탓인지 아니면 마케팅이 발달하면서 자기를 대신 표현 혹은 규정하기 편한 브랜드 같은 것이 세상에 넘쳐 나서인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끔 이런 것들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요즘 주말 내내 우리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서는 이유도 많은 사람들이 한 인간의 실존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채 못한 채 주변에서 만들어 놓은 본질만 바라본 결과 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다. 공산주의와 휴머니즘에 대한 생각 같은 것도 들어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 하다보면 왜 사르트르가 노벨상의 수상을 거부했는지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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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러브레터'의 이와이 슌지의 소설이다. 그리고 영화로도 나왔다. 그렇지만 서울이나 기타 지방 광역시 급의 대도시가 아닌 도시에서 이런 영화를 보는건 일찌감치 포기하는게 빠를 것 같다. 사실 이 책에 눈길이 갔던 건 책 표지 때문이다.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의 모습에 끌렸다 랄까?

 

 간결한 문체, 절제된 표현 정말 일본 소설 답다고 느낀 소설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아니 나이가 꽤나 든 분들 중에서도 SNS계정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드문게 사실이다. 우리는 그것을 타인과의 소통의 도구로도 사용하기도 하고 익명성을 이용해서 뒤틀려진 욕망의 도구로도, 혹은 광고로 사용하기도 하고 심어 테러리스트를 모집하는 도구로까지 활용 될 정도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과연 예의와 사회적 관습 등의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현실 세계속 나와 그런 것 따위는 벗어 던지고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서 활동하는 나 중 어디가 진실에 더 가까운 것일까?

 

2. 책의 내용

 

 일찌감치 부모와 절연하고 파견제 교사로 대도시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나나미, 그녀의 교사를 꿈꾸었던 그녀의 삶에는 별다른 욕망이나 열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20대 초까지 단 한번도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지 않았던 그녀는 '플래닛' 이라는 SNS에서 새롭게 서비스를 하는 인연만들기를 이용하여 한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골인 해버린다.

 

 사실 이 결혼은 현실 속에서 파견교사 자리 마저 잃어버린 그녀가 수세에 몰리다 시피 하여 결정된 결혼이었다. 그녀는 남들의 눈 때문에 부모의 이혼 사실을 숨기고 아무로를 사람을 통해 하객 대행업체에서 사람을 고용한다. 거짓말은 점점 커져가고 SNS에서 그녀는 불안감을 토로하다 마찬가지로 결혹식 당일에 마저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신랑에게 들킬뻔 하기까지 한다.

 

 결국 애초 맞지 않는 옷 같았던 결혼 생활은 이혼이라는 결과를 맞이하고 그녀에게 그야 말로 기상천외하다고 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여기는 어딜까?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러 갔다. 얼마나 심한 꼴을 하고 있을까? 거울을 봤다. 어라? 어찌된 일이지? 의외로 얼굴의 혈색이 너무 좋아보였다.

 

3. 마무리

 

 "못 느끼세요? 이 거리를."

 아무로는 손가락을 가리켰다. 어느샌가 두 사람의 거리가 서로 닿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이 거리는 당신이 좁힌 겁니다."

 나나미는 그 순간 뒤로 물러났다.

 "어쩐지 마음이 허전해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 않으세요?"

 

 비록 SNS에서 만나기는 했지만 현실에서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나나미는 왜 아무로에게 더 친숙함과 의지를 했던 것 일까? 비밀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책에는 로맨스라는 요소가 거의 없다. 과연 그 '러브레터'를 찍었던 감독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건조하기까지 하다. 이 책에서 진실된 인간 관계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온몸에 안도감이 넘쳤다.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는데 "만날까요?" 라는 말이 특효약처럼 효과가 있었다.

 

노을빛으로 물든 요쓰야 역에서 가짜 가족은 해산했다. 헤어지기가 서운해서 서로 껴안기를 반복했다. 옆에서 보면 엄청 사이가 좋은 가족이나 해외에서 오래 생활한 가족 같았다.

 

 나나미는 이혼 후 자신이 요청했던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그곳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마치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을 받는다. 진짜 가족과는 거의 절연하다시피 했던 어려운 상황에서도 찾지 않던 가족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느낌을 왜 단 몇시간을 만났던 사람과 느낄 수 있었을까?

 

나나미는 이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서로 SNS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함께 살았다. 이런 시대에 마치 기적과도 같은 나날을 보냈다.

 

 책을 덮고 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이상하게 사르트르 가 했던 '타인은 지옥이다' 라는 말이다. 책의 말미 부분에 나나미는 아무로와 함께 마시로의 유해를 가지고 그녀의 어머니를 찾아간다. 마시로 역시 AV배우 데뷔로 인해 어머니와는 절연한 관계였다. 어머니는 딸의 유해를 그야 말로대하는데...

 그녀는 술을 마시던 중 나나미와 아무로 앞에서 옷을 다 벗어 버리고는 오열한다. 마치 그녀의 딸이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에 모든 일에 감정을 담지 않고 그야말로 업무 처리하듯 처리하던 아무로는 마침내 펑펑 울며 옷을 벗어버리곤 술을 마시며 책에서 처음으로 감정을 분출한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자신 혹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죽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위로 해 줄 수 있는 것도 타인의 따뜻한 온기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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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제목인 '금수' 는 수 놓은 비단 또는 화려한 옷감이나 직물을 뜻한다. 사실 처음에 책을 살 때 정확한 제목의 의미를 몰라서 짐심을 뜻하는 금수인 줄 알고 인간 이하의 살인마가 나오는 그런 이야기로 상상하기도 했다. (사실 그러기엔 표지가 어울리지 않기는 하다.)

 

 아무튼 왠지 가을과 잘 어울려 보이는 책 표지와 함께 혹시 가을을 맞이하여 외로워 하고 있을 솔로나 얼마 전 헤어진 여인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얼마 전 읽고 글을 섰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과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다른 것 같아 흥미롭다. 그리고 내가 20살 시절이었으면 모를까. 지금은 사실 이 책이 더 공감이 가는 것 같은게 사실이다.

 

2. 책의 내용

 

 극단적으로 단순히 이야기 하면 이혼한 두 남녀가 단풍이 절정으로 물든 가을에 우연히 만나 장문의 편지를 주고 받는 내용의 책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아키와 아리마는 10년 전 이혼을 했다. 그 이유는 아리마가 호스티스인 유카코와 바람이 났다가 그녀에 의해 자살을 당할 뻔 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은 이혼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의 의지였다기 보다는 아리마의 아버지에 의해 이혼을 당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재혼을 하고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의 엄마가 된 아키는 아들과 함께 우연히 여행을 가던 중 아리마와 마주치게 된다. 아키는 주소를 물어 물어 아리마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고..둘은 장문의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서로가 모르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편지로 주고 받게 된다. 유카코와 아리마의 관계, 이혼 후의 사정 등을 서로 주고 받는게 주요 내용이다..

 

3. 마치며

 

 책은 특별하게 시작해서 평범하게 끝이난다. 이것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대체 사랑이란 무엇이고 이별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잘 모르는 사람을 열열히 사랑하며 서로를 포용하지만 오히려 서로에 대한 알아가는게 많을 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력과 포용력이 떨어지는 것다. 그러다 서로에 대한 정보의 공백을 채 메우지 못 한채 타의에 의해 헤어진다면 그 혹은 그녀에 대한 환상이 낙인처럼 남아 오래도록 사랑에 대한 여운이 남는같다. 추억이라는 모양 대신 환상이 남는 지도 모르겠다.

 

 환상이 사라지면 사랑은 평범 해진다. 삶을 기쁨으로 가득 채우던 서로에 대한 사랑이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이 되고 헤어지면 그저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 무언가 깊은 비밀을 간직하고 영원히 특별 할 것만 같던 사랑도 그저 세상에 흔히 존재하는 평범한 것이 된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왠지 이 책을 보고 나니 일본영화인 '러브레터'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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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베르테르 효과라는 용어가 탄생하고 롯데 그룹의 이름의 모태가 된 여인 로테가 등장하는 소설을 괴테는 고작 25살이라는 나이에 고작 14주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중학생 때인지 고등학생 때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필독 도서라는 이유로 한번 읽었던 적이 있는데 사실 당시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그로 부터 10년도 넘은 후 읽어보니 글을 어마어마하게 잘 쓰여졌다는 생각과 함께 책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10년 동안 나도 그저 놀지만 않았는지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생각을 하고 느껴보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의 문장도 체험한 것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

 

 괴테가 "친화력" 이라는 작품에서 쓴 글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젊은 시절에 겪었던 자신과 자신의 친구의 이야기를 조합하여 쓴 글이다. 그래서 더욱 더 공감이 가는 것일까?

 

2. 책의 내용

 

 고향을 떠나 젊고 여유와 학식을 갖춘 그러나 계급 가치와 같은 기존의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젊은 베르테르, 이 젊은이가 보자마자 반하여 영혼을 다 바쳐 열열히 사랑하는 여인 로테. 그런데 이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인 로테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다.

 

 베르테르는 긍정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꽤나 종교적으로도 독실 한 듯하다.

 

 "우리 인간들은 곧잘 불만을 늘어놓기 일쑤죠. 살아가면서 좋은 날은 적고 나쁜 날만 많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매일 내려 주시는 가득한 은혜를 우리가 마음을 열고 누리고자 한다면, 나쁜 일이 있더라도 그걸 충분히 이겨 낼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 베르테르

 

 "우울함이란 게으름과 무척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것은 게으름의 일종이죠." - 베르테르

 

 그리고 개인의 감정과 마음 먹기에 따라 인생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젊은 이었다. 이런 그가 약혼자가 잠시 여행을 간 틈에 로테에게 사랑을 느끼고 매일 그녀를 지켜보며 행복에 겨워하는데. 불행히도 그녀의 약혼자인 알베르트가 돌아와 그녀의 곁을 차지 함으로써 그의 행복은 막을 내리게 된다.

 

 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가 돌아 왔을 때 베르테르는 이미 이성의 힘 보다는 감성의 힘을 훨씬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모해 있다.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이성적인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트는 로테 곁을 맴도는 베르테르를 억지로 모욕을 줘 일부러 밀어 내려하지는 않지만 둘 사이에는 의견 충돌이 잦아 진다.

 

"인간은 인간일 뿐이라고요. 조금 더 분별력이 잇다 한들 격정에 휩싸여 한계로 치닫게 되면 약간의 이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 베르테르

 

 결국 괴로워하던 베르테르는 그녀의 곁을 떠나기로 한다.

 

 "로테,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틀림없이 다시 만날 겁니다!" - 베르테르

 

 사랑이라는 감성의 지배를 받던 베르테르는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나가 일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베르테르는 인부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고 사회에 잘 적응 하는 듯 하지만 하지만 결국 인습을 거부하는 그의 태도는 벽에 부딪혀 사회에서도 도태 당해버리고 만다. 실의에 찬 그는 결국 공직 사회에서도 밀려버리고 다시 로테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얼마 전부터 나는 무척 예의를 차리게 되었는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더군요. - 베르테르

 

 그는 예전에 그곳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모든 것이 전과 같지 않다.

 

 까닭은 잘 모르겠지만 전과 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아 그렇게 썩 마음에 들지 않네 - 베르테르

 그냥 내가 영주라면! 내가 정말 영주라면, 내 관할 안에 있는 나무들 정도야! - 베르테르

 

 로테 때문에 번민하고 괴로워하던 베르테르는 두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일전에 보았던 과부 주인을 사랑하는 하인 남자, 그는 결국 과부에게 사랑 고백을 했지만 거절 당하고 쫓겨났고 종래에는 새로운 하인을 죽이는 일을 저지른다. 그리고 또다른 한남자는 로테를 사랑했지만 실패하여 미쳐버린 한 남자이다. 이 둘은 베르테르가 선택할 수 있는 두가지 선택의 결과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전에 말했던 감정에 극한에 몰려버린 그저 인간의 모습을 말이다.

 

 베르테르는 고민한다. 그리고 로테 역시 자신의 감정으로 인해 혼란을 느낀다. 오직 알베르트 만이 여전히 이성적인 듯 하다. 결국 베르테르는 자신이 사랑하는 로테에게 편지를 남기고는 그녀가 하인에게 건내 준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사랑받은 그녀에게나 사랑한 그에게나 비극이다.

 

3. 마치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계몽주의의 합리적인 감정 절제에 반발하여 극단적인 감정을 자유로이 표출한, 독일 문학의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 운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고 한다.

 

 이상하게 어느 시대에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제한 받았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로마시대에는 병사들의 결혼을 막기도 했고 중세 교회야 말 할 것도 없고 (아.. 기사도에 의한 사랑은 예외인가?), 위에서 말하는 계몽주의 시대나 심지어 요즘 역시도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삼포세대' 라는게 나타나니 말이다.

 

 사랑을 만나고 점점 변해가는 베르테르의 모습을 '서간(편지)' 형식으로 섬세하게 그려내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우울과 같은 개인의 감정을 조절 할 수 있다고 믿던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감정에 대한 생각이 변해가고 결국은 어찌보면 변하기전 베르테르와 비슷하다고 할 수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하는 알베르트와 대립하고 그들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에 혼란스러워 하며 괴로워하는 로테, 안타깝게도 이 여인의 아픔을 헤아려주기엔 이 두 남자가 각자 자기 일로 너무 나 바쁘다. 그녀야 말로 어머니로 부터 물려 받은 임무와 사회적 인습에 짖눌려 있는 제대로 감정조차 표출하지 못하는 이 책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바로 로테가 아닐까?

 

 알베르트는 로테의 생명이 위태로웠기 때문에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 인부들이 시신을 운구를 메고 갔으며, 성직자는 한 사람도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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