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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보통 글을 쓸 때 처음 시작으로 무성의 하게 책 표지를 올리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저자인 기드 모파상의 사진을 올렸다. 왜냐하면 이 책은 모파상의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이다. 벨아미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벗' 이라는 의미이다. 책을 아주 쉽게 폄하하여 요약하자면 뭣 모르는 시골에서 상경한 청년이 파리에서 잘생긴 얼굴을 믿고 여자들을 이용하여 성공하는 스토리이다. 그래서 저자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저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개인적인 궁금함도 있었기 때문이다. (수염이 참 멋지신분 같다.)

 

 책을 읽고 난 후 놀란점이 있다. 어떻게 보면 요즘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막장 드라마보다 약간 수위가 높아 보이는 이야기가 무려 '사실주의 소설' 로서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인데 나중에는 고개를 끄덕일만 했다. 어떻게보면 참 반전이랄 것이다.

 

 한 때 유행했던 TV 드라마에서처럼 조강지처를(애초에 조강지처랄 것도 없지만) 버리고 딴 여자를 만난 남자의 파멸 따위는 이 책에서 고려 대상이 전혀 아니다. 그건 허구인 소설 속에서나 이야기지 이 사실주의적 소설은 그런거 없다. 영화 '식스센스' 이후 강박적으로 반전을 추구하는 창작물의 세태에서 다른 의미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2. 줄거리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조르주 뒤루아는 알제리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다 전역하고 프랑스 파리로 온다. 꽤나 큰 꿈을 안고 파리로 상경했지만 북무 철도 사무원으로 일하는 그의 생활은 곤궁하기 그지 없다. 그의 생활은 마치 갓 시골에서 상경해 사람들이 자신을 얕잡아 보지는 않을까 하며 전전긍긍하는 시골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런 그에게 행운이 찾아오는데 바로 전우로 있었던 포레스티에를 만나서 우연히 상류사회의 파티에 참석하고 그가 근무하느 신문사 '라비 프랑세즈' 에 입사를 한 것이다. 파티에 참석하면서 뒤루아는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얼핏보게 되고 상류사회로의 진입을 열망하게 된다.

 

 그때부터 뒤루아는 자신의 재능(매력)을 십분 발휘하여 신분상승을 추구한다. 필요에 따라 여자를 유혹하고 더 높은 계단에 발을 디디기 위해 원래의 여자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취한다. 그러는 와중 마음만 앞설 뿐 글한줄 제대로 쓰지 못하던 기자 뒤로아는 장관을 글 몇편에 매장시켜버릴 정도로 뛰어난 논평가로도 성장한다.

 

 뒤루아의 욕심은 점점 더 커져간다. 자신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을 경멸하면서도 그들 처럼되기를 원하고 결국은 자신의 정부였던 이의 딸과도 결혼을 하게 되는데.

 

 

3. 마치며

 

 책은 인간의 추악한 욕망 혹은 순수한 욕망과 그 힘을 잘 드러낸다. 몇 푼 안되는 돈으로 살아남기 위해 식사를 굶어가며 다음 월급을 기다리며 궁상 맞게 살아가는 뒤루아를 밀어 올린 것은 상류층을 향한 욕망이었다. 실제로 책을 보면 알 수 있듯 뒤루아는 그렇게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소심하고 게으르다는 표현이 옳다. 대학을 가려고 했지만 포기하고 군인으로 성공하려고 했지만 일찍 전역해버린다. 그래서 도피하듯 도착한 곳이 파리였는데. 거기서도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고 있는 그를 최상류층으로 밀어 붙인 것은 얼핏 엿본 상류사회와 그에 대한 욕망이었다.

 

부유하고 유명한 권력가의 집 만찬에 초대되고 야회복을 입었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소설은 이 사회에서 사랑이나 결혼은 순수한 사랑이라는 것의 결과와는 거리가 먼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오히려 작중에 단 한번도 결혼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정부로 지낸 '드 마렐' 부인과의 관계가 육체적 욕망이긴 하지만 가장 순수한 감정에 가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들 정도이다.

 

뒤루아 씨, 저는 사랑에 빠진 남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은 바보가 되는 법이거든요.

 

  모파상이 뒤루아라는 캐릭터를 빌어 설명하는 프랑스 파리의 상류 사회는 모순 덩어리다. 결혼은 성공의 발판을 위해서 사용되고 사랑과 육체적 쾌락은 정부를 통해서 충족 시킨다. 정부고위 관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라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권력을 남용한다. 그리고 선출된 인물들 마저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선출된 이유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언론이 행하는 일은 사회 정의와는 관련 없이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이 있다. 권력과 결탁하여 돈벌이를 위해 확인도 되지 않은 글이나 정부의 청탁을 받은 글을 그대로 실을 뿐이다.

 

 그런데 무섭도록 놀라운 점은 이런 것들을 잘 활용한 뒤루아는 성공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인 뒤루아의 파멸이 혹은 그를 막는 난관이 언제 나올까 싶지만 그런게 없다. 난관이 없다기 보다는 있긴한데 솜씨 좋게 해치운다. 사랑을 팔아서든 부인을 팔아서든 말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쉬이 인정해주는 것을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는 결국 자신이 다니던 신문사의 사장의 딸인 쉬잔과 결혼식을 올린다. 사장은 국채 투매로 거대한 부를 이루어 파리에서 제일가는 부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원래 처와 간통죄라는 명목으로 이혼을 하고 자신을 무시하던 장관을 여기에 엮어 파멸시킨다.

 

 그리고 쉬잔과의 성대한 결혼식 당일

 

 그는 구경꾼들이 울타리를 이룬 높은 돌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그러나 그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과거로 돌아가 있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눈앞에는, 거울 앞에 앉아 그의 관자놀이 위 곱슬머리를 매만지던 드 마렐 부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책에도 잘 찾아보면 꽤나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노르베르 드 바렌' 이라는 인물이다.

 

"난 인간의 정신이, 돈 많은 갑부들의 돈을 눌러 이기는 승리를 위해 건배하겠네."

 

 그렇다면 그의 일생을 어땟을까.

 

밤에 집에 돌아가도 혼자이고 아무도 돌봐 줄 사람이 없고, 게다가 내 주위에 정체 모를 위험, 알지 못하는 무서운 것들이 우글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견딜 수가 없다오. 낯선 이웃과 나를 가로막은 벽은 멀리 보이는 별처럼 그와 나를 떨어뜨려 놓고 있지

 

 가끔 이런 책들을 보면 인간은 끊임 없이 발전했다고는 하는데 근본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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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얼마 전 (그러기엔 상당히 시간이 지났긴 하다.) 2017년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계 영국인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이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것보다는 이 책이 판타지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판타지 소설을 참 좋아하는데 소위 말하는 폄하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양판소 소설이건 톨킨이 쓴 책이건 그 상상력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 노벨상을 받는 작자가 판타지 소설을 쓰면 어떤 소설이 나올까 싶어서 읽어보게 된 책이다.

 

 혹시나 들어가기에 앞서 오크와 엘프, 검과 마법이 난무하고 젊은 주인공이 유쾌한 모험을 떠나는 소설을 기대하고 있는 분들은 그냥 장바구니에서 책을 빼고 뒤로가기를 누르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소설은 영국의 궂은 날씨처럼 지독하게 음울하고 초가을 해뜨기전 대교에 뿌옇게 낀 안개처럼  답답한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

 

2. 줄거리

 

 줄거리는 꽤나 단순하다. 도깨비와 용이 활보하던 먼 옛날 아서왕이 용을 물리치고 브리튼족과 색슨족의 통합을 이루어낸지 얼마되지 않은 시대이다. 그리고 매우 낙후 된 촌락지방의 액슬과 비어트리스 부부가 자신들의 아들을 찾아가기 위해 여행을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매우 사랑하는 사이지만 특이한 점이 있다. 그건 바로 과거의 기억이 제대로 공유가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은 분명 현재를 살아가고 단 한순간도 떨어지려 하지 않을만큼 서로 사랑하지만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기억이 없다. 그들은 심지어 왜 자신들이 그 동안 아들을 찾아가지 않았는지에 대한 기억도 없이 어느날 문득 찾아온 기억의 편린을 시작으로 아들을 찾아가기 위한 여행이 시작된다.

 

 부부는 여행의 과정에서 특이한 일들과 많이 마주친다. 그들의 과거를 기억 할 것만 같은 이들, 색슨족으로 태어나 브리튼족을 위해 봉사했지만 비참하게 쫓겨난 색슨족의 전사, 위스턴과 용 케리그를 쫓는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 도깨비에 물려 마을에서 쫓겨나면서 어머니를 찾으려고 하는 데드윈까지.

 

 

 

3. 망각, 기억, 용서

 

 위 세 단어가 이 책 최대의 주제이자 키워드가 아닐까한다. 누군가는 망각이 인간의 최대의 축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에게 그런말을 한다면 헛소리 하지말고 망각이야 말로 인간 최대의 저주라고 답변할 지도 모른다.

 

 반대로 수험생에게는 기억이야 말로 인간 최대의 축복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방금전 사랑하는 연인과 가슴아프게 헤어진 사람에게는 지금 당장 기억을 날려버리길 바랄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과 망각은 모두 용서와도 관련되어 있다. 어떤 사건을 망각함으로써 용서를 할 수도 있고 기억함으로써 사죄할 수도 있다. 과연 어떤 것이 바람직하고 옳은 일인가에 대해 질문한다면 누가 과연 그것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잘못된 일이 사람들에게 잊힌 채 벌받지 않기를 바라는 신은 어떤 신인가요?"

- 위스턴 -

 

"이 땅이 망각 속에서 쉴 수 있게 해줘요."

- 가웨인 -

 

학살과 마법사의 술수 위에 세워진 평화가 영원히 유지 될 수 있을까요?

- 위스턴 -

 

 위스턴은 사람들의 기억이 돌아오길 원한다. 가웨인은 망각을 통해 평화를 유지 할 것을 주장한다. 사실 색슨족과 브리튼족은 이 망각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전에 있었던 끔찍한 학살은 잊어버리고 서로 이웃을 한 채 서로 즐겁게 웃고 떠들 수 있었다. 가웨인은 기억이 돌아온다면 다시금 처절한 학살과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 주장하고 언젠가는 돌아올 기억임으로 그것을 굳이 지금 당장 꺼낼 필요는 없다고 위스턴을 설득한다. 하지만 위스턴은 그것을 거짓평화라고 평가한다. 잘못된 일은 잊혀질께 아니라 처벌을 받고 고쳐야한다고 주장한다.

 

이 모습이 예전 굴 속에서 가웨인이 목을 베었던 괴물개의 머리를 연상시켰고

액슬은 다시 우울한 기분이 몰려왔다.

 

 가웨인에게 *망각*은 용서였지만 위스턴에게 *망각* 이란 가식과 거짓이었다. 그것은 정의가 아니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를 기억해줘. 네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느꼈던 이 우정과 우리를 기억해줘."

- 비어트리스 -

 

전사에게 했던 약속. 모든 브리튼족을 미워해야 한다는 약속.

그러나 분명 위스턴은 이들 다정한 부부까지 그 안에 포함시켜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 에드윈 -

 

 위스턴은 에드윈에게 스승이자 형으로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러가기전 에드윈에게 약속을 강요한다. 브리튼족을 미워하라고 자신이 색슨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헌신과 용맹을 무참히 짓밟고 그를 떠나게 한 브리튼족에 대한 증오를 다음세대에 전달한다. 하지만 에드윈 역시 브리튼족과 같이 살았었다. 그들은 어린 에드윈에게 빵을 나눠주고 돌봐줬었다. 소년은 그 증오의 감정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위스턴에게 그러마라고 약속한다.

 

 그러나 비어트리스가 자신들의 우정을 기억해달라고 한다. 위스턴이 전달한 증오는 이 *기억* 때문이지만 비어트리스는 *기억* 을 통해 화합과 용서를 구한다. 

 

"더 디게 낫는 상처도 결국 다 낫게 마련이지요."

- 액슬 -

 

'아마 안개 덕분에 오래된 상처가 아물 수 있었을 거예요."

- 액슬 -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책 상에서 약간의 시차를 두고 액슬은 비슷한 말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한문장이 아닌 앞뒤의 문맥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게 느껴지는데. 그것이 결말을 해석함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궁금하다면 직접 사서 보도록하자.

 

4. 마치며

 

 작가는 이 책을 유고 내전과 르완다 학살에서 영감을 받고 썻다고 한다. 르완다 학살은 사실 잘 모르겠고 유고 내전이라면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거치면서 뉴스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보스니아 내전에서 자행된 인종청소에 관한 이야기도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20세기를 거치며 많은 국가들이 강대국의 강요로 인해 망각과 용서를 강요 받았다. 그리고 그 강요된 망각이 기억으로 터져나온 것이 어쩌면 저 유고내전과 르완다 학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마치 멀린의 마법처럼 힘으로 짓눌러 강요된 망각이 풀리고 - 마치 용이 늙어가듯 강대국이 힘이 약해지고 - 기억이 돌아오는 날 정의와 복수라는 이름아래 행해지는 무자비한 사건들을 바라보며 우린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

 

 이런 일은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이, 중동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쿠르드족의 정부수립 투표와 같은 형태로 말이다. (물론 유럽에서는 스페인의 카스티야와 바스크, 영국에서는 북아일랜드와 스코트랜드, 이탈리아 역시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 역시 얼마전까지만 해도 위안부에 대해 정부에 의한(?) 강요된 망각과 용서를 당할 뻔 했다.

 

 사실 아직도 작가가 찾고 있는 해답에 대해서는 잘모르겠다. 망각에 취해서 용서를 해라는 것인지. 아니면 아픈기억을 끄집어 내서라도 진정한 화해를 하라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좋은 기억을 쌓아감으로써 긴 세월에 걸쳐 용서를 하라는 것인지 말이다. 물론 여기에 대한 해답은 각자가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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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날이 슬슬 추워지고 낙엽이 질 때쯤, 항상 찾아오는 책이 또 나왔다. 한 해를 마무리고 내년을 준비하다보면 늘 읽게 되는 책이다. (그래서 뭐 딴걸 준비 하는건 아니고.. 읽기만 한다.) 매년 십이간지의 동물에 맞춰 타이틀을 정하는 트렌드코리아가 또 다시 출간이 되었다. 굉장히 다사다난 했던 한해가 끝나간다.

 

 내년은 황금 개의 해이다. 그래서 올해의 타이틀은 "WAG THE DOGS" 이다. WAG THE DOG는 경제학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다. 롱테일 이론과도 관계되어 있는 이론인다. 동양식으로 바꾸면 풀을 쳐 뱀을 놀라게 한다는 타초경사 쯤 되려나?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취업을 준비하며 2013'COBRA TWIST' 가 타이틀일 때였다. 지금와서 차분히 그간 읽었던 내용들을 돌이켜 보자면 트렌드라는 것이 과거의 것을 기반으로 점차 그 속성을 세분화 하고 강화시키거나 아니면 오히려 반대편을 향해 튀어 나가는 것 같다.

 

2. 주요 내용

 

1) What's your 'Small but Certain Happiness'?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 - 이것을 읽고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누군가가 트위터에 썻던 소비에 실패할 여유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올해의 트렌드 중 하나이 B+ 프리미엄이나, YOLO의 연장선에 이것이 있는 것 같다. 다들 모든 것을 내팽겨치고 멀리 여행을 떠나버리거나 프리미엄 제품을 사고 싶지만 그렇다고 내 지갑사정을 고려치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작지만 확실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에 소비를 집중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생각해보면 굉장히 오래된 트렌드가 강화된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만큼이나 뉴노멀시대라고 하던 장기 불황을 터널을 우리가 지나고 있다보니 그런 거겠지만 말이다.

 

2) Added Satisfaction to Value for Money

   

 가성비에 가심비를 더하다 : "플라시보 소비" - 사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트렌드가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과 관련되어 있다. SNS의 발달로 내 일상을 그 어느 때보다 잘 오픈하고 남의 일상도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들보다 멋지게 사는 모습을 보이고 싶으니 돈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뭔가 있어보이는 소비가 아닐까?

 

 '나는 이런 것을 이런이런 취미를 즐긴다.', '나는 이렇게 개념있는 소비를 한다.', '이러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소비를 한다.' 그리고 지불하는 가격이상의 심정적 만족감을 느낀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대외적으로 주장한다.

 

3) Generation 'Work-Life-Balance'

 

 '워라벨' 세대 -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세대의 출현이다. 누군가는 일보다는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는 세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그냥 '돈 주는 만큼 일하는 세대' 라고 칭하고 싶다. 과거와는 달리 회사에 모든 것을 바치고 일을 한다고 해도 정당한 대가나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2030 세대는 그것을 실제로 목격하기도 했던 세대이다. IMF로 인해 평생직장이란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고 부모세다가 그 일에 휩쌓이는 것도 목격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이 바닥은 다 이래'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다.

 

4) Technology of 'Untact'

 

 언택트 기술 - 비대면 기술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 아마존은 점원이 거의 없는 손님이 물건을 집고 매장을 나가기만하면 자동으로 결제가 되는 매장을 시험적으로 오픈하고 주로 알바생이 주문을 받던 패스트푸드 매장은 키오스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기술의 발달로 기업의 니즈와 고객의 니즈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지점 인것 같다. 인건비를 줄이고 싶은 기업과 SNS에 자신을 노출하면서도 사생활은 지키고 싶은 개인의 욕구가 말이다. (사실 이런 무인 점포에서야 말로 모든 정보가 기업쪽으로 흘러 들어갈텐데 라는 상념이 든다.)

 

 

5) Hide Away in Your Querencia

 

 나만의 케렌시아 - 케렌시아는 스페인에서 벌어지는 투우에서 소가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이곳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에너지를 충전하고 최후의 일전을 준비한는 공간이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사실 혼자만의 공간 혹은 시간을 가지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니다. 집에서 편히 쉬고 싶지만 시시때때로 울리는 카톡 알림음과 트위터의 진동소리가 나를 방해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 받고 있는 것이 '패스트힐링' 이라고 한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잠깐의 낮잠을 즐길 수 있게하는 수면방등이 대표적이다.

 

6) Everything-as-a-Service

 

 만물의 서비스화 - 과거에는 물건(하드웨어)을 팔고 서비스가(소프트웨어) 덤으로 따라 붙었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바뀌고 있다. 정수기는 이미 오래되었고 이제는 메트리스까지 렌탈을 할 수 있는 시대다 소비자들이 사는 것은 단순히 정수기나 메트리스가 아니라 그것을 관리해주는 서비스가 주목적인 시대가 되었다.

 

물론 이것도 기업과 소비자의 이익이 맞아 떨어진 것이겠지만 소비자의 감성을 공략하는 것이 더욱더 중요해진 시대이다. 과연 카카오와 네이버에서 AI 스피커를 엄청난 할인을 붙여서 파는 것은 하드웨어를 파는 것이 목적일까 그들의 서비스를 파는 것이 목적일 까를 생각해보자

 

7) Days of 'cutocracy'

 

 매력, 자본되다 - 귀여운것 예쁜것이 좋다. 가심비와도 관계가 있는 것이겠지만 책은 표지를 예쁘게 혹은 초판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로 돌려 판다. 화장품들은 각종 케릭터와 콜라보를 해서 판다. 카카오톡에서 매출을 끌어올린 것은 혁신적인 기술이 아니라 '라이언' 전무라는 소리까지 있으니 말 다했다.

 

8) One's Ture Colors, 'Meaning Out'

 

 미닝아웃 - 자기주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 혹은 지지하는 기업의 미담을 퍼트리기를 주저하지 않고 싫어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불만을 표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SNS를 통해 그만큼 개인의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극대화 된 것도 있지만 익명성에도 있지 않을까? 오래된 속담인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라는 소리가 있다. 그만큼 거대한 기업이나 정치인에게 대놓고 불만족을 표시했다가는 정을 맞을 수 있지만 요즘는 타인들이 동조하는 순간 모난 돌이 어딧는지 제대로 찾을 수가 없게된다.

 

9) Gig-Relationship, Alt-Family

 

 이 관계를 다시 써보려 해 - 인스턴트 식품에 이어 인스턴트 인간관계까지 등장하는 시대에 왔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까지 줄었던 가족의 구성은 이제 일인으로까지 줄어든다. 결혼과 이혼 등 기존에 우리가 상식적으로 혹은 의무적으로 알고 있던 관계들이 해체되고 ''를 중심으로 둔 쉽게 만나고 쉽게 정리가 되는 관계가 점차 성행을 하고 있다.

 

10) Shouting Out Self-esteem

 

 세상의 주변에서 나를 외치다 - 점차 자존감을 지키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단위나 마찬가지였던 가족이 해체되고 개인은 점차 파편화 되면서 특정 구성원 내에서 자신의 지위와 자존감을 찾기란 요원한 일이 되어가고 있고 수저론이 등장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 역시 점차 사라지고 있는데...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소비를 한다는 개념이다. (사실 이 부분은 참 이해가 안간다.)

 

3. 마치며 감상


 책 읽기를 마치고 떠오른 것은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인 '정반합' 이다. 들어가면서 기술 했듯이 이제까지 이 시리즈의 책을 읽어오면서 느낀 결과로는 각 년도별 트렌드는 결국 거대한 흐름안에서 각종 변수들의 출현으로 인해 강화되거나 반대되는 것이 나오는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에는 현재의 트렌드의 큰 흐름은 스마트폰과 SNS의 등장과 경제적으로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장기적인 불황에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이 트위터에 올린 한마디도 영향력을 가지고 침대에 누워서도 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전통적 개념의 인간관계는 약해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면서 사람들은 현재 지향적으로 변하게 된다.

 

 SNS에 나의 온갖 일상들을 업로드 하면서 나의 사생활을 완전히 노출 시키고 개인화 되어가던 것이 오프라인에서 조차 사람과 접촉을하지 않는 언택트 기술로 강회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인스턴트와 같은 그렇지만 개인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소비는 불황을 터널을 지나며 가성비를 추구하던 것에 대한 반동으로 욜로가 나타나고 이것이 강화되어 소위 이쁜쓰레기를 사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결국은 지갑과 현실의 한계로 가심비를 추구하는 형태로도 변형이 된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사실 제일 인상이 깊었던 것은 마지막 챕터인 '세상의 주변에서 나를 외치다' 였다. 이 챕터는 떨어진 개인의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소비를 한다는 개념이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느낌이었다. 마치 실존주의 철학을 보는 것 같다랄까?

 

[독서 노트/경제] - 트렌드 코리아 2017 - 김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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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어느 새, 땀을 쭉쭉 빼던 여름도 거의다 지나가고 가을이 다가왔다.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이라면 완연히 하반기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들고 빠른 곳은 내년 경영계획이나 투자계획 등을 짜는 곳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그렇다.)

 

 아직 올해도 일도 다 못 끝낸 판에 무슨 내년도 경영계획이니 전략이냐라는 생각도 들지만 까라면 까야지 월급이 나오는 직장인의 비애를 가지고 열심히 머리를 쥐어 짜내서 투자계획이나 경영전략을 짜고 있었을 때였다. 이런거 할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돈쓰라고 계획하라는 것도 꽤나 골치아픈 일이다. 그리고 쓰라고 하면서 왜 쓰는지는 엄청 따져 대니 말이다. 아무튼 본래 목적은 이게 아니라. 회사의 경영전략은 효율화에 맞춰져 있다. 어떻게 하면 무엇을 하면 생산성을 올려서 적은 노동력으로 많은 일을 적은 돈으로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을지 끊임 없이 생각해 내길 회사에서는 요구하고 그것을 창의력 혹은 혁신이라고 칭찬하고 좋은 실적이라고 평가한다.

 

 올해도 억지로 회사에서 요구하는 양식에 맞춰 최대한 설득력이 있게 포장한 문서를 제출하고는 퇴근을 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내가 만들어낸 문서 한장이 회사의 생산성과 이익에는 부합 될지 모르지만 내 곁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일자리를 노리고 있다 것과 함께 결국은 내 목 끝을 겨누는 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우울해졌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이나 노동이란 내가가진 자원인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버는 행위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합 할 것이다. 그리고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노동만이 유일하게 자본주의에서 최고의 물질이자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 불가결한 생활 수단인 돈을 벌어 들일 수 있는 방법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점에서 실업이란 대부분의 사람에게 끔찍한 재앙와 같은 단어이다. 이건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칼 마르크스는 이런 자본주의의 근원적이고 구조조적인 오류를 지적했지만 그가 만들어 낸 이론 역시 자본주의의 본래 속성을 바꾸지는 못했다.

 

 노동을 중시하는 것은 오래된 이념이다. 물론 그 노동의 숭고함이나 게으름뱅이에 대한 비판은 지배층이 아닌 피지배층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고대에는 인력 혹은 노동력은 국력이었고 농경사회에서는 토지와 함께 가장 중요한 생산 수단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산업혁명 이후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실업이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실업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내일은 줄어들지 않고 있고 내 옆자리의 사람은 회사를 떠나고 나에게 일을 넘겨주지만 인원은 충원되지 않고 있다. 대체 이건 어디서 부터 잘 못 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 책은 이 질문에대한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된다고 연일 떠들고 있고 기본소득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노동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하는 시기가 오지 않았는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하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한다.

 

 

2. 마음에 드는 문구

 

 현대 자본주의에서 우리는 기이한 상황에 맞닥 뜨린다. 고급노동자는 장시간 노동 하느라 괴로워하는데, 다른 편에는 사익추구 세대에 자신의 노동력이 더 이상 유용하게 쓰이지 않아 고통받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이다...(중략)... 노동 시간 단축정책은 모두에게 보다 공평하게 일을 할당해 불균등한 일 분배 상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 모두가 적게 일해야 모두가 일을 하고 늘어난 자유 시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 보면 이해가가지 않는 일이 벌어질 때가 있다. 청년 실업률은 날이 갈 수록 치솟는데 정작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제대로된 돈을 지급받지 조차 못한채 추가 노동에 시달리다 자살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고용주는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두 사람 분의 일을 한사람에게 시키고 한 명의 실업자와 한 명의 탈진자를 만들어낸다. 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일까?

 

 그러나 성과를 측정 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오늘 날 비물질적 노동에서는 개별 노동자가 ㄴ어느 정도 생산성을 지니는지 파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 결과, 노동자를 '성격'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늘어가는 상황이다. 훌륭한 노동자는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에 몰입하고, 열정을 갖고, 지지를 드러냄으로써 전문가주의적 사회규범에 능통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다.

 

 결과물이 쉽게 확인 되는 제조업이 줄어들고 서비스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회사가 혹은 상사가 직원을 평가하는 방법은 여전히 다소 주관적이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특히나 서비스업에서 개별 고객이 받는 서비스에 대한 평가를 개별 고객이 진행함으로써 서비스업 종사자가 회사의 메뉴얼을 따라 진행했더라고 고객이 받는 만족도는 각각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럴 경우 그 노동자는 자신이 맡은 고객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자신의 생산성이 평가받음으로써 어찌보면 운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늘 날, 힘든 하루를 보낸 후 집에 돌아온 부유한 노동자는 무언가하라고 요구하는 물건에 포박 당한다. 내 경우에는 집에 가면 넷플릭스에 넘쳐나는 추천 시청목록과 CD가 ...(중략)... 덜 바쁜 시기에는 이런 것이 커다란 즐거움을 주지만, 너무 바쁜 시기에는 좌절만 안겨 줄 뿐이다.

 

 사실 이 부분을 보다가 크게 웃었다. 문득 얼마전에 산 '드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보통 회사가 끝나고 나면 운동을 하러가는데 여기에 하나의 취미를 더끼워 넣어보았다. 그런데 처음에는 조금 즐겁더니 도리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돈을 들여산 것을 꼭 시간을 내어 즐겨야 할 것만 같았지만 그럴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운동도 가야하고 책도 읽어야하고 글도 써야하고 그런데 드론을 샀으니 드론까지 시간내서 해야지?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결국 드론은 서랍에 고이 숨겨 놓고 눈에 띄지 않게 되어서야 나는 묘한 죄책감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나 생일, 결혼, 성인식까지 모든 사회적 의례가 이제는 값비싼 선물과 호화스러운 소비의 동의어가 되었다. 끊임없이 타인을 향하는 기쁜과 사랑을 값비싼 상품 구매로 표현한다고 설득당하는 상황에서, 돈을 아끼려고 이를 거부하는 이는 고약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나 구두쇠 밖에 없다.

 

 책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자유시간이 많다면 그 자유시간을 이용해 정성스러운 요리를 준비하거나 제품들을 수리하고 무언가를 만든다. 그렇지만 우리가 직업이라는 것을 가지고 난 이후에는 그런 행위들은 돈으로 대체된다. 정성스러운 요리는 시간이 없어 레토르트 식품이나 배달음식으로 대체 되고 제품수리는 돈을 주고 수리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그냥 완제품을 구매한다. 그리고 조금 더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돈을 좀 더 들여 공산품이 아니라 소량 생산하는 수제품을 구매하여 사용하며 대리만족을 통해 감성을 채운다.

 

3. 마무리

 

 요즘은 모든 곳에서 사람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 책이나 TV에서는 욜로를 외치며 내일은 잊고 떠나라 빚을 내서라도 떠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보통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에게는 축하와 함께 빚을 내서라도 여행을 떠라고 말한다. 나중에는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이때의 기억이 일하는 동안 큰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충구를 해준다. 심지어 어떻게하면 회사를 오래 다닐까라는 질문에 빚을 내서 차를 사고 집을사면 회사를 나가고 싶어도 못나가니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다는 대답이 명대답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나는 이런 대답들을 들을 때마다 약간 벙찐다. 회사를 다니기 위해 돈을 쓰고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억지로 다니는 모습이 너무나도 어의없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회사 일을 하루에 몇시간 머물리도 않는 특히나 자는 시간 조차 빼버리면 덩그라니 비어버리는 공간을 소유하기 위해 빚까지 내가며 회사를 다니고 또 그 빚을 값는다는 명목으로 회사를 다니는 모습이 마치 챗바퀴 속의 쥐처럼 느껴진다.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소비를 휴식을 가지지고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은 회사를 다시 가기 위해서 그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현대 사회에서는 명목상의 개인의 신분이라는 없어졌지만 사회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그가 가진 직업이나 지위 혹은 직장과 바로 소비일 것이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고 다니면 좋은 대접을 받는다. 대기업을 다니거나 전문직에서 일을해도 주위사람들은 그를 높게 본다. 하지만 이제는 노동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에 대해서 다시 정의를 내려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함께보면 좋은 것들

 

1. 실업자에 대한 혹은 노동력은 잃은 사람들에 대한 불편한 시선

[영화] - 나 다니엘 불레이크 - 복지는 시민의 정당한 권리이다.

[독서 노트/고전]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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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이 책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이전에 세계 경제를 이끌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과 대공황을 거치면서 경제학의 혹은 경제의 주류로 자리 잡은 것은 케인즈주의였다. 그 후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을 거치면서 정부가 아닌 시장의 자율성에 모든 것을 맡기는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득세하게 되었는데.

 

 이 때 부터 쌓여져 온 병폐와 부작용이 한번에 '쾅'하고 터진것이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미국발 금융위기가 아닐까 한다. 끊임 없는 성장을 찬미하고 정부의 규제 대신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 하던 신자유주의는 금융기관의 무절제한 혹은 탐욕은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장기간 저성장이 일반화 되는 '뉴노멀'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었지만 지금 막대한 유동성으로 인해 약간 경제 지표가 혹은 숫자가 좋아지자 다시 탐욕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숨어있던 신자유주의자들이 스멀스멀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다.

 

2. 주요 내용

 

 서두에 말했듯이 이 책은 신자유주의의 다섯가지 기반 아이디어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그 아이디어란

 

1. 대안정기

2. 효율적 시장 가설

3. 동태확률 일반균형

4. 트리클 다운 경제학

5. 민영화

 

 이 다섯가지이다. 먼저 대안정기란 불황 없는 끊임 없는 성장이다. 이것은 버블을 정당화 하는 일에도 쓰였다. 그렇지만 그 결과로 맞이 한것은 참담한 금융위기였다. 끊임 없이 경제가 성장한다면 돈이 돈다면 미국의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부동산 위기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효율적 시장 가설이란 시장이 모든 것을 알고있고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주식으로 치자면 모든 정보가 주가에 반영되어 있음으로 주식을 사봤자 초과이득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주식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게 말이 안된다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정부 규제의 실패가 초래한 가습기 살균제 사태나 대체 무엇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파생상품을 팔았던 금융기관들의 태도나 금융기관의 말과 신용평가기관의 점수를 믿고 그것을 사는 사람들이 겪었던 참담한 일을 본다면 이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알 수 있다.

 

 솔직히 동태확률 일반균형에 대한 비판은 뭔지를 알겠는데 내 실력이 모자라 글로는 적지 못하겠다.

 

 그에 비해 소위 낙수효과 트리클 다운 경제학의 허구성은 누구나 잘 체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욱 빈자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 중의 하나이다. 소위 돈이 돈을 번다는 소리가 괜히 있는 소리가 아니다.

 

 민영화는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뜸한 이슈이다. IMF 이후 많은 기업들이 민영화가 되었다. 그 이후 살기가 좀 나아졌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뭐 살기 힘들어졌다고 해도 민영화탓은 아니겠지만 그리고 MB 시절 인천공항의 민영화 또한 굉장한 이슈여였는데 대부분의 민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들어보자면 민영화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부채를 갚고 민간에 일을 맡김으로써 더 효율적으로 사업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먼저 부채를 갚는다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이자 갚기 싫다는 이유로 굳이 돈을 잘벌고 있는 기업을 팔아서 부채를 갚을 이유가 있을까? 지급하는 이자보다 훨씬 더 좋은 현금흐름을 내보이는데? 투자 관점에서 보았을 때 완전 어의 없는 판단인 경우이다. 그리고 사업이 더 효율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은 논란이 많은 일이다.

 

3. 마치며

 

 한쪽에서는 길고 길었던 금융위기가 슬슬 잊혀져 가는 분위기이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바뀐이 후 경제정책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달라진 경제정책에 대해 신자유주의다들이 득달 같이 달라들어 비판을 가하고 있다.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옳은 것인가. 시장은 최선이고 기업에는 무한한 자유를 그리고 부자에게는 낮은 세율을 적용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 결과를 이미 겪어보지 않았나? 왠지 이런 말이 기억나는 책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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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5.18을 다룬 영화가 또 하나가 개봉했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지 5.18을 다룬 영화 중 가장 흥행 했던 영화는 '화려한 휴가' 였는데(730만) '택시운전사' 가 이 영화의 기록을 깰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두 영화 모두 우연히도 주인공의 직업이 택시운전사 이다.

 

2. 배우 '송강호'

 

 영화를 보는 내내 송강호의 연기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감탄할 새도 없었다. 그의 표정과 대사를 통해서 '김만섭'이라는 택시 기사의 감정을 너무나 잘 이입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우디에서 돈을 벌었었고 집세를 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딸을 위해 동료기사는 제치고 피터를 태우고 광주로 내려갔던 택시기사, 돈을 쫓고, 가족을 사랑하고, 데모로 인한 불편함을 토로하는 소시민의 모습, 그리고 진실을 알고 가장으로써의 안전과 정의 사이에서의 내면적 갈등까지 완벽하게 표현해 주고 있는 것 같다.

 

3. 5.18 시대의 비극과 잔잔한 슬픔의 밀물과 썰물

 

 5.18 참 슬프다. 일반 시민들을 폭도로, 빨갱이로 몰아 붙이며 발포를 명령하는 쿠데타에 성공한 독재자와 그의 명령을 믿고 따르는 군인들 그리고 사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언론까지 현대사에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비극이다.

 

 그런데 영화는 참 담담하게 이런 비극을 전달해준다. 군인들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연을 달지 않는다. 마치 관객이 피터의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는 듯 담담하게 현장을 비춰준다. 그렇기 때문인지 뭔가 와락하고 덮쳐오는 감정은 영화에서 그다지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밀물이 몰려오듯 감정이 서서히 차올랐다가 순간 순간 일상이 아닌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상속에서의 즐거움으로 관객들의 감정을 다시 썰물 빠지듯이 빼내어간다.

 

4. 평범한 사람들의 영웅적 이야기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다들 평범한 사람이다. 김만섭은 어린 딸을 사랑하고 그저 돈이 필요한 평범한 택시 기사 였고,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로 온 독일의 기자 피터 역시 왜 기자를 했냐고 물었을 때 '돈 벌려고' 라고 대답을 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 시위의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을 대학생을 대표하는 구재식 역시 어떠한 사상이나 뜻이 있어서 대학을 들어가거나 시위를 하는게 아닌 대학가요제에 출전하고 싶어서 대학을 들어간 그리고 대체 저들이 왜 저러는지를 모르는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다. 그리고 광주의 또 다른 택시기사인 황태술 역시 평범한 택시 기사일 뿐이다.

 

 명령을 은근히 위반하고 김만섭과 피터 일행을 통과 시켜주는 박중사도 시위대에 주먹밥을 나눠주는 여인도 택시에 기름을 넣어주던 주유소 사장님도 모두 다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당시에는 그리고 지금은 모두가 영웅이다.

 

5. 마무리

 

 억지로 눈물을 짜내지 않아서 참 좋은 영화였다 라고 평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감정이 올라갔다가 해소되기를 반복했다. 달리 말하면 이미 익히 알려진 실화를 가지고 만들어낸 영화이다보니 기승전결에서 커다란 반향이나 반전이 없어 지루 할 수도 있지만 배우들과 감독이 적정한 선을 참 잘 잡아준 것 같다.

 

 그리고 또다시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관련 인물들은 제발 좀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최소한 떵떵 거리면서 대가리를 빳빳히 들고 살지는 못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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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해변의 카프카는 참 오래된 책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이다. 근래 나왔던 하루키의 최신작인 '기사단장 죽이기' 를 읽고 애매가 끼인 휴가 덕분에 어디 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예전에 좋아하던 책이나 한번 더 꺼내 읽게 되었다.

 

 아마 이 책을 완독 한 것이 올해를 포함해서 4번 째인 것 같다. 처음 읽었던 시절은 고3 때 였고,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그리고 20대 중반에 그리고 올해까지... 이 책을 읽을 때 마다 드는 생각은 참 읽을 때 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때는 못봤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아무튼 책을 4번 읽을 동안 가장 심신이 안정 되어 있을 때가 지금인 것 같다. 다른 시기에는 인생에 쫓기듯 생활 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그런게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 전에 읽을 때에도 나의 느낌을 정리 해두고 싶었지만 정리를 못했었다. 아마 그 때와 지금은 다르겠지만 오래된 숙제를 해 내듯 글을 풀어보고 싶다.

 

2. 책의 내용

 

 책은 크게 두 인물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한명은 다무라 카프카라는 특이한 이름을 지닌 (자신이 지어낸) 15세 소년이고 한명은 나카타라는 노인이다.

 

 다무라는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이었다. 그렇지만 다무라의 어머니는 다무라가 어렸을 적 그의 얼굴 모를 누나와 가출하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다무라는 계속 집에서 지낸다면 자신이 훼손 당할 것을 우려하며 15세 생일에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세' 가 되기를 결심하며 집에서 가출을 결행한다. 다무라는 가출을 하고 우연히 행선지로 정한 다마쓰카에서 자신의 누이일지도 모를 여인과 자신의 어머니일지도 모를 인물을 마주친다.

 

 나카타는 특이한 노인이다. 2차 세계대전 전에 태어난 이 노인은 다무라와 마찬가지로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에는 굉장히 똑똑했으나 모종의 사건 이후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소위 말해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이 노인은 고양이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림자가 남들보다 옅다는 특징이 있다.

 

 소설은 다무라가 가출 이 후  다카마쓰에 있는 고무라 도서관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과 나카타가 다무라를 행로를 따라 오는 여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현실과 꿈, 이데아를 넘나들며 이야기 속에 철학을 곳곳에 숨겨 놓고 독자들이 따라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3. 마무리

 

 책을 보고 있노라면 재미있는 생각이 든다.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 다무라 카프카는 가장 가깝고 사랑 받아야 할 인물인 가족으로부터 어린시절 버림받고 아버지로 부터는 저주를 받는다. 그리고 사에키 역시 첫사랑이 죽은 이후 타인과는 깊은 관계를 가지지 못한다. 나카타는 기억을 잃은 이후 아예 그런 관계에 대한 관념 자체가 사라진듯 하다. 호시노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여인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사회에서 일종의 아웃사이더 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의외로 책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의 도움을 받고 도움이 되어 준다.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세 소년이 되어 홀로 살아남겠다던 다무라에게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 고무라 도서관에서 만나는 인물들 그리고 간접적으로 도와준 것 처럼 보이는 나카타와 호시노까지 타인과 관계를 가지지 안을려고 노력하고 살던 인물이 보이지 않는 관계로 엮이고 서로를 변화시키고 삶을 한단계 더 밀어 올려준다.

 

 책의 주요 등장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사에키씨는 현재가 없고 나카타는 과거가 없다. 둘다 가슴 한쪽이 텅빈 상태이다. 그래서인지 그림자도 남들보다 짧다. 두 사람다 우연 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상실을 겪고 난 후 비어버린 가슴한켠을 메꾸지 못한다. (사에키의 경우 어린 시절 부터 사랑했던 연인을 잃었고 나카타는 조금씩 차오르던 애정이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우발적 폭행으로 훼손 혹은 상실 된 것 같다.)

 

 다무라 역시 어머니와 누이의 상실로 인해 안이 빈 상태였다. 아니 완전히 비었다기 보다는 분노와 증오가 그 자리를 차지 하기 위해 싸우는 상태였다가 더 정확한 표현 일 것 같다. 다무라는 가출 후 거친 세상속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세'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리고 외부의 압력으로 부터 견디기 위해 강력한 벽을 이야기 한다.

 

 그렇지만 이 소년은 누군가로부터 계속 도움을 받는다. 소년을 쫓아 이동하는 나카타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군가로 부터 계속해서 도움을 받는다. 사에키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무라와 관계를 맺으며 그녀 안에 공허한 부분을 일정부분 메워 현재를 되찾고 고무라 도서관에서 조우한 나카타에게는 자신의 과거를 전달 해준다. 다무라를 림보에서 구원해 준 것은 다무라의 가슴 한 켠에 남은 사에키다. 그리고 나카타를 마지막으로 구원해 준 것은 호시노가

아닐까?

 

 우리는 태어난 이후 끊임 없이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태어 남으로써 안락한 자궁을 상실한 이후 성장하고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더 많은 것들 역시 상실 할 가능성은 점점 커져만 갈 것이다. 인간관계란 참 어려운 것 같다. 서로를 보듬어 주기도 하지만 서로를 찌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지독하게 찔린 이들을 한 대 모아놓고 서로가 서로를 보충해주는 곳이 소설에서는 고무라 도서관 일 지도 모르겠다.

 

 소설에서는 호시노가 철학과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매춘부를 하는 학생과 관계를 맺으며 헤겔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하며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서로가 객체이자 주체로써 서로를 투사한다.'

 

 내 생각에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큰 철학이 이것이 아닐 까한다. 결국 자신의 존재를 증명 해 줄 사람은 결국 타인이다. 상실로 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터프한 마음가짐 혹은 높은 벽이 아니라 편견 없는 이해와 관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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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다크나이트 시리즈와, 인셉션 등으로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최신작 덩케르크,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고난 소감을 말하라고하면 '힘들다', '이게 다큐멘터리냐? 영화냐?', '나의 사라진 2시간을 돌려 달라' 라고 말하고 싶다. 참고로 덩케르크는 실제로 세계 2차대전 당시 영국군의 '다이나모 작전'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다이나모 작전이 행해졌던 도시가 프랑스의 덩케르크 이다.)

 

 영화는 분명 좋았다. 좋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너무 현장에 있는 듯 몰입하여 피곤할 지경이었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적 물에 빠져서 죽을뻔 한 적이 있어서 깊은 물에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인데 폭격이나 어뢰로 인해 배가 침몰 할 때마다 내가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을 정도로 현장감이 있었다.

 

2. 3가지 시점

 

 영화는 덩케르크의 시가지를 헤메고 있는 '토미'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하늘에서는 꽃비처럼 나치의 선전물이 떨어지고 토미와 그의 동료들은 텅빈 도사를 헤메고 다닌다. 토미가 떨어지는 선전물을 낚아채 큰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순간 총알이 날아온다. 적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소름끼치는 총알 소리와 함께 동료들이 픽픽 쓰러진다. 최선을 다해 도망친 끝에 해변에 도달한 토미 거기서 또 큰일을 해결하려 시도하지만 누군가를 땅에 묻고 있는 병사와 마주쳐 또다시 일을 보지 못하고 그를 도와준다. 그의 손에는 더 이상 총도 들려있지 않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궁금했는데 과연 토미는 큰일을 봤을까?)

 

 덩케르크에 고립된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함선 뿐만 아니라 민간인 선박도 징발된다. 도슨의 요트도 마찬가지인데, 도슨은 순순히 해군의 명령에 응하여 자신의 요트에 구명조끼를 가득채운다. 그런데 막상 해군이 승선을 하려고 할 때 스스로 배를 몰고 덩케르크를 향해 나아간다. 두 명의 젊은 이들을 태운채로 말이다.

 

 3대의 영국군 전투기가 편대를 이루어 철수작전을 돕기 위해 덩케르크 해안으로 날아간다. 편대의 리더는 작전을 마치고 귀환 할 수 있는 연료를 남겨놓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잠시 뒤 마주친 독일 공군 편대와의 싸움이 벌어지는데 이 싸움에서 파리어의 연료게이지가 고장나고 만다.

 

 영화는 이 세가지 시점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해변에서 일주일, 바다에서 하루, 하늘에서 한시간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이 세 시점이 얽혀있고 시점에 따라 시간이 순차적으로 흐르고 있지 않음을 알아 챌 수 있다. 그리고 귀환이 완료되는 순간 3개의 시선이 모이고 3개의 시간이 합쳐진다.

 

3. 개인도 없고, 적도 없고, 영광도 없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대체 누구지? 라는 의문이 든다. 영화에서 개인의 이름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특히 군인은) 직책 등의 대명사로 존재한다. 가족이나 애인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군인 한명 없다. 침물하는 배에서 탈출한 이들도 해변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낼 뿐이다. 또한 포화와 총알이 빗발치지만 나치의 폭격기와 전투기를 제외하고는 실체를 가진 적이 보이지 않아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전쟁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뜨거운 동료애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우거나 희생하는 모습 등과 같이 애국심을 자극하여 가슴을 울리는 듯한 뜨거운 무언가는 없다.

(물론 있기는 하다. 비행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어 전혀 몰랐는데 마지막에 짠하고 드러나는 톰하디는 존멋임이 확실하다.)

 

4. 스스로의 생존과 타자의 도움

 

 덩케르크는 그 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다른 전쟁 영화들과는 사뭇다르다. 얼마전 보았던 '헥소고지' 와 같은 영웅도 없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 나 '진주만' 같은 거대한 서사적 플롯도 없다. 심지여 세계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임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의 주축국 병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각자의 사정을 지닌 인문들들의 각자의 '생존' 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영국으로 구조되어 돌아온 사람들 중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조해서 돌아온 이는 단 한명도 없다. 다들 이름 모를 이들의 손에 구해져서 돌아왔다. 누군가를 희생해서라도 살아 돌아가려고 했던 이 조차 타인의 손에 의해 구원되었다.

 

 영화의 종반부 항구에서 병사들을 맞이하는 이들은 다들 잘했다. 수고했다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살아돌아 온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병사는 눈먼 노인에게 자신의 부끄러움을 토로한다. 그러자 노인이 얼굴을 쓰다듬으며 대답한다.

 

 "살아 돌아 온 것으로 충분해"

 

5. 마치며

 

 감독이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보내고 싶었던 메세지는 무엇일까? 확실히 시간을 보내는 오락성이나 전쟁의 참혹함이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목적이 아닌 것 만큼은 분명한것 같다. 국내판 영화포스터에는 조국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 라고 적혀있다. 실제로 인터넷에 있는 포스터를 보면 전쟁의 폐허 속에서 침몰하는 군함을 홀로 남겨채 바라보는 병사의 뒷모습이 찍혀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포스터가 훨씬 영화에 적절한 것이 아닐까한다. 전쟁터 속에서의 고독감, 고립감이 잘 표현된 포스터라고 생각한다. 영화속에서는 잠깐이지만 같은 소속이라는 이유로 연대감을 가지고 다른 국가의 군인이라는 이유로 배척감을 보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구원하려 했지만 결국은 도슨의 요트에 의해 구원된다.

 

 정작 급할 때 그들을 구원해준 이들은 자기가 속한 단체나 가까운 사람이 아닌 전혀 모르던 익명의 인물들이다. 독일군의 총알에 쫓기던 토미르 구운해준 것은 프랑스 병사들이고 토미에게 물을 나누어 준 것은 깁슨이다. 침물하는 함정에서 그들을 구원해 준 것도 프랑스 병사인 깁슨이다.

 

 전쟁은 집단 대 집단의 싸움이다. 집단을 이루는 기준은 국가가 되기도 하고 이익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전쟁터 속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인간의 공존의식 때문이다. 비록 깁슨은 후에 자신이 배척 당할 수 있음을 예상 헸을 것이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영국군을 구원한다. 토미는 자신을 구해준 깁슨에게 통조림을 나누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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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왔다고만 하면 서점가에 신드롬을 일으키는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1Q84 이후 실로 오랜만에 나온 장편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굉장한 팬임을 밝히며 서평은 언제나 주관적이었지만 더 주관적으로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미리 밝힌다.

 

 실로 오랜만에 나온 장편소설이다. 나는 정확히는 그의 장편소설에 열광적인 팬이다. 단편소설은 그럭저럭 읽었지만 에세이는 거의 읽어본적이 없는 편이다. 일종의 반쪽짜리 팬인가? 아무튼 예약구매로 도착한 책이 도착 하자마자 몇몇 방해를 이겨가며 그야말로 탐닉하듯이 책을 읽어 내었다. 간결하면서도 몰입도 있는 그의 문체는 여전했고 다시금 완전한 1인칭으로 변한 시점은 과거 "상실의 시대" 나 "태엽을 감는 새" 시절로 돌아간 듯 한 느낌을 주는 소설 책이었다.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하는 이유

1. 무라카미 하루키다. 뭐가 더 필요하지?

2. 그 때 그 시절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한 책, 그렇지만 왠지 나이든 작가를 느끼게 해주는 책

 

  평소처럼 키워드를 뽑아서 서평을 적어보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머릿속으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지만 간결하게 풀어낼 자신이 없다는게 사실라 일단 간략하게 감상이나 적어보자 한다.

 

  내가 느끼기에 이전 소설인 '1Q84'는 하루키 소설 치고는 굉장히 대중적인 성격이 강한 소설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번 소설인 '기사단장 죽이기'는 다시금 1인칭으로 돌아가버린 시점 마냥 굉장히 매니악한 성격이 강한 소설이 되어버린 것 같다. (뭐 나야 좋지만) 하루키의 소설들을 많이 읽고 소위 말하는 '하루키 월드'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소설에서 수 많은 그동안 그의 소설에서 보았던 수 많은 클리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혼, 아이 없는 부부, 욕심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남자 주인공, 어둡고 커다란 구멍, 이데아, 메타포, 섹스 등등 말이다. 하루키 소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들에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면 수 많은 상징과 기호로 가득찬 메타포의 세계에 뜬금없이 내던져저 헤메다 불쾌해진 채 책을 집어 던질 지도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의 이색적인 특징은 평소와 굉장히 다른 느낌의 결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하루키의 장편소설들은 대부분 열린 결말이었다. 이전 소설인 1Q84는 현실 세계로 돌아온 듯 그렇지만 아닌 듯한 결말로 인해 사람들이 다음권이 또 나오냐는 질문과 추측이 인터넷에 쇄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비록 허무하긴 했지만) 예약 구매를 하며 같이 산 비하인드 북의 인터뷰에 보면 분명 닫힌 느낌의 결말이라고 했다. (내가 느끼기엔... 1권으로 다시 가시오 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해변의 카프카' 는 내가 아직까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책이자.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으로 알게해준 책이었다. 이 책이 한국어로 출간된지 대략 14년 쯤 되었을 것이다.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해변의 카프카'의 주인공 '다무라 카프카' 만큼이나 어렸던 나는 어느 새, 이 책의 '나' 만큼이나 나이를 먹고 말았다. 그 때의 다무라 카프카도 이데아를 보았고 메타포 속을 헤매고 다녔다. 그리고 올해 다시 나타난 '나'도 이데아를 보았고 메타포 속을 헤메고 다닌다. 미묘하게 같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문득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다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번 더 읽어보고 다시 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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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열심히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동주 열국지' 이다.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는 읽어 보았을 것이다. 그에 비해 열국지를 읽어 본 사람은 꽤나 드물었다. 이야기가 조금 곁으로 샛는데. 열국지는 춘추전국 시대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사회 시간이나 도덕 시간에 배웠듯이 제자백가는 춘추전국 시대의 사상가들이다.

 

 열국지를 통해 만나본 춘추전국시대는 (사실 읽고 있는 부분은 아직 춘추시대이긴 하지만) 어마어마한 변화의 시대였다. 끊임없이 전쟁이 이어지고 지역의 통치자인 제후가 그들의 신하들에 의해서 갈아치워지기 일 수 였다. 그만큼이나 제후들은 패권을 쥐기 위해 다양성을 존중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중국의 르네상스 시대라고나 할까?

 

 요즘이야 서양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으니 많은 이들이 서양철학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반도를 동아시아를 오랫동안 지배한 것은 제자백가로부터 시작된 동양철학이었다. 수많은 패권들이 난립하고 급변하는 사회가 왠지 전국시대와 같지 않은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렇지만 제대로 모르는 제자백가를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하는 이유

1. 관중부터 한비자까지 춘추전국시대를 누빈 주요 사상가를 알 수 있다.

2. 의외로 실용적이다. 자신이 꿈꾸고 있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내 마음대로 평가한 사상가들

1. 극단적인 실용주의자 혹은 자본주의자 관중 (관자)

 '동주 열국지' 가 5권짜리 개정편이 나오긴 했지만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10권 짜리 '동주 열국지'에서 관중은 2권에 등장한다. (사실 2권까지 밖에 못 읽었다) 책은 인물이 활동했던 시대를 순서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왜 하필 관중 (본명은 관이오) 처음 이었을까 라고 생각하면 답은 의외로 쉽게 나온다. '동주 열국지'에서 등장하는 인물중 나라를 다스리는 큰 그림을 그린 이는 관중이 최초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고 패권을 가질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이가 없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는 모습이 다분하다.

 

 아무튼 관중은 지독한 실용주의자 이고 자본주의자이자 중상주의자 인 것 같다. 그는 강한 나라를 위해 먼저 부유한 나라를 만들기를 제안했다. 그를 위해 나라에서 운영하는 기생집을 만들기까지 했다고 하니,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유능한 경제학자가 되었을 것 같다.

2. 인본주의자 안자

 안자는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은 아니다. 뭐 수업시간과 시험에 거의 등장하지 않으니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왕에게 충성하지 말고 사직을 위해 일하라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상사를 위해 일하지 말고 회사나 국가를 위해 일하라고 말하는 격이랄까?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3. 반전주의자 손자

 손자병법을 지은 그 손자 맞다. 그런데 반전주의자라고? 내가 생가하기에는 그는 반전주의자가 맞다. 다만 요즘 반전에서 주장하는 인류애나 이런게 아니라 쓸데 없이 돈이 많이 들고 국력을 소모하니 전쟁은 언제나 최후에 수단으로 삼고 다른 수단을 통해서 해결하도록 노력하라고 주장한다.

 

 중국에서 최고의 병법서로 칭송되는 손자병법을 지어낸 인물이 이런 생각을 가졌다고 하니 생각외로 의외이지 않나? 그리고 저자는 손자를 후대의 사상가들의 뿌리와 같은 인물로 평가한다. 매우 흥미로운 평가이다. 저자의 다른 책에 손자병법을 풀이한 책이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4. 이상주의자 공자

 동아시아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우리에게도 유명한 공자! 저자는 공자를 대부가 되고 싶었던 지식인이라고 평가합니다. 대부란 조선시대로 치면 사대부가 되겠군요. 쉬운말로 하면 그냥 귀족이죠. 공자는 무당의 자식으로 어렸을 때 온갖 굳은일은 다하고 자랐다고 합니다. 공자가 만든 유학은 군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신하를 위한 것 입니다.

 

 요즘 같이 자국이기주의가 극대화 되어가는 세계에 힘 없는 국가가 인과 예를 내세우며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만큼 어리석어 보이는 일이 없어 보일 겁니다. (그러니 북한이 힘을 가지기 위해 꾸역꾸역 미사일을 만들고 핵을 개발하는 것이겠죠) 사실 공자가 활약했던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전쟁이 발발하는 마당에 인과 예라니... 그러니 앞의 세사람 관중과 안자는 재상을 하고 손자도 관직에 올랐지만 공자는 그러지 못했겠죠.

 

 하지만 오늘 날까지 살아남은 것은 공자의 사상인걸 생각해보면 뭐가 중요한 걸까라는 고민이 들게합니다.

 

 

5. 노동 운동가 이자 공공복지를 주장한 묵자

 묵자라고 하면 겸애사상으로 유명하죠. 사회나 도덕시간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사랑하라고 이야기하는 사상이라고 우리는 배웠을 껀데, 이분들 공성 특히 방어를 전문으로 하는 집단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동자들 피지배층들이 자신이 일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을 열열히 비판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앞의 인물들과는 다르게 철철히 피지배층들을 위한 사상을 내어놓은 사람들입니다. 관중이나 안자, 손자는 피지배층들을 나라를 위한 자원으로 봤습니다만 묵자는 그렇지 않죠.

6. 군대의 똥별들이 이걸 좀 배워야 할텐데 오기

 손자병법 보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오자병법의 저자이자 불패의 명장인 오기는 병가로 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유가와 섞인 병가라고 저자는 표현한다. 손자는 병사들을 소모품의 가까운 성격으로 보았다면 오자는 한명의 인간으로 보고 아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손자가 병사들을 막굴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 소모품들이 귀중한 자원임으로 이렇게 저렇게 효율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군대에서 사병들을 대하는 태도란... 어휴...

7. 국가주의자 이자 중농주의자 상앙

 후일 시황제가 진을 통일할 수 있는 초석을 쌓았다고 할 수 있는 상앙. 이분 역시 우리에게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다. 이분은 이 책에서 유일하게 전쟁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이용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독한 중농주의자로 농사와 전쟁에 관련된 산업을 제외하고 상업과 당대 지식인의 유세 같은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군주를 제외하고는 출신 성분을 무시하고 오직 능력으로만 평가하고 모든 이들이 법앞에 평등해야한다는 법치주의를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유학자들이 주장하는 성인 군주가 아닌 무위 군주를 주장하면 요즘으로 치면 시스템에 의한 사회 통치를 주장했다. 물론 불완전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놀랄 정도로 근대적인 생각이다.

8. 키보드 워리워 맹자

 '항산이 있어야지 항심이 있다' 라는 말과 맹모삼천지교로 유명한 맹자 역시 우리에게 유명한 사람이다. 이 분은 공자의 사상이 힘을 잃어 갈 때 등장한 인물이다. 유가의 부흥을 사명으로 했는지 이분은 사람을 가라지 않고 쏘아 부쳤다. 왕이 왕 답지 않으면 갈아치워야 한다고 왕한테 이야기하는 결기 있는 분이었다.

 

이 외에도 장자, 노자, 순자, 신도, 한비자까지 등장 하지만 너무 많으니 줄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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