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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 성, 권력' 왠지 많은 사람들이 익히 제목을 잘 알고 있는 '총, 균, 쇠'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주제 역시 비슷하다. 고대부터 근세 혹은 현대의 인간 역사의 줄기를 분석하고 역사의 변곡점 혹은 그렇게 흘러가게 된 주되 ㄴ요소가 무엇인지를 분석한 책이다.

 

 당연히 책은 제목처럼 우리 인간의 역사를 바꾸어 온것이 노동, 성, 권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나에게 책 내용 자체는 크게 흥미롭지 않았다. 읽고 있자면 다 어디선가 한번 들어보거나 읽어본 내용이었고, 제목에 적힌 주제가 어떻게 역사라는 커다란 옷감에서 씨줄과 날줄의 역활을 했었는지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에도 선명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물론 나의 능력 부족이겠지만.)

 

 신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피지배계층을 수탈하는 권력과 그에 따른 강제적 노동이(혹은 노예가) 현대 자본주의에 이르러 '사용자'와 '임금노동자'로 둔갑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책은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책의 곳곳에 인류 역사의 어느 순간에서건 지배라는 피라미드의 가장 최하단에는 여성이 있었음을 저자는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책을 읽다가 몇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문자라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었다. 그런데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가장 낮은 사람들을 위해 문자를 만든 세종대왕이 세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고 내가 1차적으로 내린 결론은 역사는 처음 의도가 어쨋든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도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는 모양이나 명칭이 바뀔 뿐이지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점이다. 사람이 모이고 잉여 물자가 생기면 위아래라는 권력이 생기고 권력자는 피지배자에게 강제적 혹은 그럴듯한 사유로 노동을 시키고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그 동안은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문장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며, 동시에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우리 각 개인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미래를 향해 투영하며, 각 개인과 처해있는 문화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애를 쓴다.

 

 '사회주의는 빈곤과 결핍 상태에서는 완성될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은 상대하다 보면 모든 꿈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결핍은 불평등을 낳는다. 먹을거리와 입을 옷, 그리고 살 집이 충분하지 않으면, 소수의 사람들이 능력이 닿는 한 모든 것을 움켜쥐고 나머지 사람들은 굶주리게 된다. 누더기를 걸치고 더러운 빈민굴에 몰려 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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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세상에는 왜 이렇게 사기꾼이 많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런 사기꾼들에게 속고 있을까? 우리는 정말 만나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있을까?

 

 흔히 세상에는 사기꾼들이 많으니 남을 믿지 말라는 사람도 많지만, 여전히 중고나라에 보면 사기를 당하는 사연들은 넘쳐나고 보이스 피싱은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에게 너는 ‘그런 사람이야’ 라고 쉽게 정의를 내린다.

 

 혹시 누군가가 주식을 사라고 해서 산적이 있는가? 물론 이건 최종적인 선택은 자신 스스로가 한 것일 테니 사기는 아닐 것이지만 한번 크게 잃고 또 다른 사람의 말에 귀가 팔랑거리지는 않았는가?

 

 우리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넘어간다. 대체 왜 그런 것 일까?

 

 책에는 그 이유에 관한 연구가 나와 있다. 그렇다면 그게 꼭 나쁜 것일까? 우리는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그 누구의 말도 믿지 않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걸까?

 

2. 줄거리

 

 말콤 글래드웰의 책은 으레 그렇듯 수 많은 실제 사연들과 연구로 구성되어 있어 읽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좋은 것 같다.

 

 책은 한 여성 운전자와 백인 남성 경찰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흑인 여성운전자는 운전을 하던 도중 경찰관의 단속에 걸리게 되고 약간의 말다툼이 벌어지고 차에서 강제로 끌어내려져 유치장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여성 운전자는 목을 메달아 자살을 한다.

 

 책은 이이야기를 필두로 우리가 어떻게 타인을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풀어나간다.

 

 책에는 많은 사례들이 나온다. 미국에서 활약한 이중간첩, 2차 대전을 결정적으로 막을 수도 있었을지 모를 체임벌린과 히틀러의 만남, 미국 역대 최대의 폰지 사기로 유명한 메이도프 등등 우리에게는 별로 유명하지 않을지 몰라도 미국에서는 한번 쯤, 대서특필 되었을 이야기들을 다룬다.

 

 책은 이 사례들을 통해 우리가 낯선 사람을 파악하기 위한 도구들이 어떻게 잘 못 사용되어 지는 지를 밝혀낸다.

 

① 진실 기본값 이론

- 낯선 타인을 대할 때,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그 혹은 그녀가 진실 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항상 타인을 의심하고 산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다.

누군가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더라도 그 것이 결정적이지 않는한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② 투명성 가정의 실패

- 눈을 피한다, 질문에 횡설수설하거나 딴청을 피운다. 흔히 누군가가 타인을 속일 때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시트콤이 아니다. 모두가 내면을 외면을 통해 투명하게 내보이지 않는다.

이런 내면과 외면의 차이가 발생하면 ①의 상황과 더불어 우리가 속아 넘어갈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③ 결합의 파괴

- 우리는 낯선 사람이 그렇게 움직이는 배경이 되는 맥락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포대교에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을 방지하기 위해 다리 아래 추락 방지망을 설치하면 그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자살을 할까?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을까? 라고 추측하지만 연구결과는 그렇지 않다.

 

 이 세 가지 요소들이 더 해지면서 우리는 타인을 오해하거나 타인에게 속아 넘어간다.

 우리가 낯선 사람과 조우할 때 저지르는 첫 번째 오류, 즉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는 오류와 투명승의 환상은 낯선 사람을 한 개인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과 관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오류들에 또 다른 오류를 덧붙이는데. 이 때문에 낯선 사람과 겪는 문제가 위기로 확대된다. 우리는 그 낯선 사람이 움직이는 배경이 되는 맥락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3. 마치며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해야 되는걸까?

 

 무작정 타인을 믿지 않고 의심을 해야 할까? 물론 그렇다면 속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굉장히 피곤한 인생이 될 것이다.

 

 책에는 메이도프의 사기를 의심하고 최초로 밝혀낸 해리 마코폴로스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메이도프도 의심했지만 그의 제보를 받아 주지 않는 증권거래 위원회도 의심했다. 그 결과 그는 메이도프와 증권거래 위원회가 결탁되어 있다고 믿고 집에서 완전무장을 한 채 증권거래 위원회가 기습하기를 기다린다.

 

 책은 여기에서 더 나가 처음 소개되었던 사연에서와 같은 타인에 대한 과도한 폭력이 되는 최악의 상황을 경고한다.

 

 낯선 이와 이야기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만약 낯선 이와의 대화가 틀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그 낯선 이를 비난한다.

 

 우리는 몇 가지 단서를 설렁설렁 훑어보고는 다른 사람의 심중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여긴다. 낯선 이를 판단하는 기회를 덥석 잡아버린다. 물론 우리 자신한테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은 미묘하고 복잡하며 불가해하니까. 하지만 낯선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기준으로 타인을 쉽게 판단하려는 태도를 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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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사실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 하다. 책은 나에게 스마트폰의 액정이든 마우스든 톡톡 두들겨 너의 글에 우연히 들어온 사람이 이 글을 집중력있게 읽을리 없다고 일관성 있게 말하고 있다.

 

 지금 이 페이지에 접속해 있는 사람이 무엇을 찾아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강 훑어 본 후 찾는 것이 있든 없든 곳 여기서 벗어날 것이라는 것을 책은 말하고 있다.

 

 그러니 서두에 짧게 이 글에 쓰여질 내용을 요약하도록 하겠다. 먼저 책을 간단하게 요약 할 것이고, 그 후 그에 대한 감상을 쓸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인터넷 시대의 사람들의 집중력에 맞춰 책의 내용을 3줄로 요약하겠다.

 

2. 줄거리 요약

 

인간의 뇌와 사고체계는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변하고 주변 환경에 따라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문자의 발명과 책, 인쇄술의 발건은 인간의 사고체계 변화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이 후 인간의 사고는 굉장히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TV 같은 매스미디어를 지나 인터넷이 등장했다. 링크를 통해 정보를 서로 연결하는 인터넷은 인간의 사고를 좀 더 향상 시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인간의 뇌를 항상 산만한 상태로 만들고 사고방식을 얕고 가볍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한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책을 읽지 못한다.

 

3. 마치며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고전도 꽤 좋아하는 편이다. 고전 소설들 중에는 굉장히 묘사가 상세하면서도 은유적인 부분들이 많다. 지금도 이 책을 다 읽은 후 빅토르 위고가 쓴 웃는 남자를 읽고 있다.

 

 그런데 책 때문인지 굉장히 읽기가 쉽지 않다. 책의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운게 아니라 그냥 집중을 하기가 힘들다. 소설 초반 교수형을 당한 후 석청이 발린 채 매달린 시선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몇 번이나 책을 놓고 딴 짓을 했다.

 

 군대에서 레미제라블을 읽을 때는 그렇게 잘 읽힐 수가 없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방금 글을 쓰면서도 빅토르 위고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서 검색을 했다. 가끔씩 일을 하다보면 창이 수십 개가 떠있고 연관성도 없는 엑셀들이 한가득 열려 있고 메신저창은 정신없이 번쩍거려 알트 탭을 누르기 바쁘기도 하다.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언이 인간다운 것이라고는 단언 할 수 없기는 하지만 너무 피곤한건 사실이 아닐까?

 

4. 기억에 남는 문구

 

 페이지를 장황하게 꾸밀 때 고객들은 그중 오직 18퍼센트만 읽을 것이다.

 

 “캠브리지 경, 이유는 아주 간단하네. 지식에는 두 종류가 있지. 하나는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해 직접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련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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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때가 때라서 그런지 오랜만에 페스트를 다시 읽게 되었다. 같은 까뮈의 소설이긴 하지만 이방인을 읽은 사람에 비해 페스트를 읽은 사람을 만나본 일은 거의 없다. 아무래도 노벨 문학상의 영향일까? 라고 생각하기에는 두 책이 주제는 비슷하지만 굉장히 다르다. (일단 두께부터가 페스트가 압도적으로 두껍다.)

 

 그리고 혹시나 페스트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나 묘사를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인간에게 갑작스레 가해지는 부조리 혹은 악으로써 페스트라는 질병을 택하고 질병에 저항하는 개개인의 인물이 중점을 맞춰 써져있다.

 

 만약 정말 흑사병이 중세 유럽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 읽고 싶다면 존 켈 리가 지은 흑사병 시대의 재구성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참고 이 책은 절판 되어 일반 서점에 팔지는 않는다. 운이 좋다면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고, 영어에 자신이 있다면 “The Great Mortality” 라는 원서를 읽으면 될 것이다. (구글북에서 ebook으로도 판다.)

 

2. 책의 줄거리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단순하다. 어느 날, 오랑시에 쥐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불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어 오랫동안 잊혀졌던 병이 잘 작동하는 시계의 추처럼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상을 영위하던 오랑시의 시민들은 덮친다. 시민들은 사라졌을 것이라 믿었던 병이 오랑시에 나타나자 큰 혼란에 빠진다.

 

 책은 이 혼란스러운 도시에서 몇몇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의사인 리외이다. 그러나 때가 때이니만큼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파늘루 신부이다. 그는 페스가 확산되고 사망자가 늘어 갈수록 위기 극복을하기 위해 신앙에 의존해야 된다고 소리를 높인다.

 

 페스트는 사악한 자들에게 가해진 신의 징벌이라 설교를 하며 신에게 구원을 받기 위해 순종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페스트가 지속되고 자신의 눈앞에서 아무런 죄 없는 어린 오통의 아들이 밤사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스스로의 말이 설득력을 잃어 버린 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앙을 완전히 놓지는 않는다. 그는 페스트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십자가를 꼭 쥐고 의사의 진료를 거부하며 죽어간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화자인 리외는 까뮈가 그리는 이상적인 인물에 가까울 것이다. 의사인 그는 특별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의사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비루한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페스트가 오랑시를 덮치자 무기력해보이던 리외가 점차 변해간다. 그는 자신의 주변을 파괴하는 거대한 부조리에 대항해 점차 현실주의자로 변해간다.

 

 그는 인간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에 부조리함을 느끼지만 그것보다 더 페스트라는 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듯 죽어나가는 것이 더욱 부조리하다고 여긴다. 리외에게 페스트라는 질병은 파늘루 신부의 페스트처럼 추상적이지도 관념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현실에 엄연히 실존하고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무참히 파괴하는 현실이었다.

 

 그는 신의 구원을 바라지 않고 페스트에 걸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페스트에 걸린 이들이 다른 이들에게 병을 옮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페스트에 걸렸다면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리외 외에도 그랑, 타루,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여기며 도시에서 탈출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랑베르까지 페스트에게 투쟁을 한다.

 

 전염병은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 자기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자원봉사대는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말했다.

 

 물론 스스로와 타인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 있는가하면 이 혼란을 일으킨 페스트를 사랑하고 이용하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거나 결정을 미루는 관리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이 혼란한 와중에 이익을 얻고 오히려 평온함을 느낀다.

 

 그 중하나가 코타르이다. 페스트가 발생하기 전 자살을 시도했던 코타르는 페스트로 인해 도시가 혼란에 빠지고 자신의 자살을 하려고 했던 사건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페스트가 끝나가는 것을 무척이나 안타까워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 그쪽하곤 상관 없어요.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라면... 결국 하나 명백한 것은 우리가 페스트와 함께 지낸 날부터 나는 여기가 참 좋다는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하지만 시내에는 탈진하거나 낙담해 보이지도 않고 만족감의 살아 있는 표상으로 남아 있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코타르였다.

 

 그는 혼자서 죄수가 되는 것보다는 모두와 함께 포위당하는 쪽을 더 좋아한다.

 

 페스트가 거의 끝나갈 때쯤, 이 도시의 시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도적으로 사람들을 조직하고 이끌며 영웅적인 활약을 보였던 타루가 페스트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허탈한 웃음이 나올 정도로 부조리하다.

 

 그리고 페스트는 나타날 때처럼 갑자기 끝이 난다.

 

 고양이, 지난봄 이후로 처음으로 보는 고양이였다.

 

 마지막으로 리외는 페스트가 언제나 또 다시 우리를 찾아 올 수 있음을 경고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3. 마치며

 

 책에 나오는 페스트처럼 코로나19는 언젠가는 잠잠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얼마나 오래 우리 주변에 머물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빼앗아가고 상처를 남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각자가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돌아봐야하는 때인 것 같다. 적어도 코타르처럼은 되지 말아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리외는 추상이 행복보다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나는 일이 있으며, 그럴 때는 오직 추상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중략)...이렇게 해서, 그리고 새로운 차원에서 리외는 그 긴 시기에 우리 도시의 삶 전체를 형성했던, 각자의 행복과 페스트라는 추상 사이에서 그런 종류의 지긋지긋한 투쟁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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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알렉시티미아' 라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 소년의 성장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뇌 속의 편도체가 작기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이라고한다.

 

 병이 이야기는 제쳐두고 이 소설을 읽다보면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된다. 유치원 시절 나는 누군가가 골목에서 폭행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근처 슈퍼에 들어가 누군가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슈퍼주인에게 알린다. 그러나 슈퍼주인은 그것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 나는 분명 진실을 말했지만 나의 말에는 어린 아이라면 보였을 법한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 죽은 사람은 슈퍼주인의 아들이었다. 슈퍼주인은 폭행사실을 알린 나에게 오히려 '네가 진지하게 말하지 않았다.' 라고 비난을 한다. 진지하게 말하지 않으면 진실이 거짓이 되는 것일까?

 

 감정이라는 것을 통해 우리는 공감하고 누군가의 아픔을 깊게 들여다보며 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눈을 가리고 진실을 들여다보지 않게도 한다. 이 책에 나오는 고니라는 소년에 관한 이야기다. 늘 강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아이를 아무런 편견없이 들여다보는 사람은 '나' 뿐이다.

 

 다른 아이들과 어른들은 자신의 두려움이나 죄책감을 쿡쿡 찔러대는 고니에게 질색하며 그저 나쁘고 폭력적인 아이로만 규정할 뿐 아무도 이 불행한 소년의 진심이나 사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정작 고니의 진심과 사연을 들어준 것은 같이 아파 할 수도, 불행에 공감 할 수 도 없는 나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고니는 꽤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너랑 나도 언젠가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 될 수도 있겠지."

 

"우린 서로를 닮을 수는 없었다. 나는 너무 무뎠고, 곤이는 제가 약한 아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센 척만 했다."

 

 그리고 책에는 고니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인 도라가 나온다.

 

도라는 곤이의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아이였다. 곤이가 고통, 죄책감, 아픔이 뭔지 알려 주려 했다면 도라는 내게 꽃과 향기, 바람과 꿈을 가르쳐 주었다.

 

 감성이 풍부한 고니는 강한척을 하기 위해 그것을 폭력적으로 표현할 뿐이었기에 나에 비해 썩 나을 것도 없었다. 자신을 편견없이 받아주는 나에게 관심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어색할뿐이다. 그리고 고니 역시 주인공인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보다는 다른 이들처럼 나를 바꾸려고 들었다.

 

 그러나 도라는 달랐다. 자신의 꿈을 들어주는 나를 온전히 공감하려 했던 것이 소년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를 통해 나 역시 고니를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 방금 네가 어떤 앤지 조금 이해하게 됐어." - 도라 -

 

 

 감정이라는 문제는 참어려운 것 같다. 어떤 때는 냉정할 필요가 있지만 어떤 때는 또 열정적이어야 한다고한다. 불행한 이를 보면 나는 그를 보며 불쌍하다고 공감을 해줘야 하는걸까 아니면 냉정한 시선으로 그의 불행의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찾아봐줘야 하는걸까?

 

참 어려운 일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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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아무리 좋게 말해도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책이다. 자본주의에 대해 궁금한 사람보단 차라리 근세의 유럽 군대의 발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더 흥미롭게 읽을 만한 책이지 않을까라고 생각되는 책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발전 해왔는지에 대한 책은 예전부터 많았다. 그런데 예전 자본주의의 탄생을 분석한 책들은 대부분 생산자 위주로 분석하였지만 베르너 좀바르트의 '전쟁과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탄생과 발전을 전쟁과 그 전쟁에 참여하는 군대라는 거대한 소비집단과 결부시켜 연구한 책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한다.

 

2. 책의 내용

 

 책은 총 6장에 걸쳐 전쟁이 자본주의의 태동과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한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자면 근대 군대, 그러니까 상비군 제도가 발달하고 그 규모가 중세시대를 아득히 뛰어 넘게 됨으로써 군대를 무장시키고 먹이고 입히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군대는 생산하는 것은 없지만 단순히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비용이 사용하는 소비자로써 시장에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이 거대하고 지속적인 수요는 생산자들로 하여금 낮은 비용과 합리적인 품질을 바라는 수요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분업화와 전문화를 촉진시키게 되었다. 또한 자본가들은 이 수요를 바탕으로 자본금을 불려 더욱더 거대한 자본세력으로 성장 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라는 사실을 수 많은 표를 통해서 명하고 있다.

 

 여기는 대항해시대에 빠질 수 없는 조선에 관한 이야기도 포함 되어 있다.

 

 전쟁이 근대 군대를 만들어 냈으며, 근대 군대는 자본주의 경제의 중요한 조건들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근대 군대가 재산 형성자로서, 성향 형성자로서, 특히 시장 형성자로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발전을 얼마나 촉진시켰는가이다.

 

 전쟁이 증권 거래소를 만들어 냈다. 우선 우리가 여기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유가 증권 거래소이다.

 

 무기의 통일성이라는 사상에 우리 소비재의 통일성 관념이 처음 나타났다.

 

 

3. 마치며

 

 과거나 지금이나 전쟁과 돈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인 것 같고, 지금은 전쟁과 자본주의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미국이 대공황을 극복한 것은 케인스주의를 기반으로한 뉴딜 정책 때문이 아니라 세계 2차 대전때문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케인스 주의의 핵심요지가 시장에 부족한 유효수요를 진작하기 위해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이니 군인이라는 일자리를 마련하고 전쟁이라는 행위를 통해 어마어마 한 소비를 했으니 얼마나 목표에 부합하는 일이 아닌가?

 

 자본주의 초기에는 생산이 미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생산자 중심으로 자본주의를 연구하는 동안 전쟁과 군대라는 것을 통해 수요자 중심으로 자본주의를 연구한 좀바르트의 통찰력이 대단한것 같다.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되기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가 계속해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생산과 소비, 그리고 파괴의 기능까지 담당하고 있는 전쟁은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이 할 때마다 계속해서 나타날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로스차일드'가나 '쿠거'가 와 같은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난민이 되거나 최악에는 시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전쟁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전쟁은 여기에서는 파괴하고, 저기에서는 건설한다.

 

 제철 공업이 특히 무기 수요에 의해 그리고 조선이 전함 수요에 의해 한층 더 높은 형태로 변형되었다면, 따라서 제철 공업과 조선이 결국 전쟁이 낳은 아이들이라면, 전쟁은 이로 인해 다시 파괴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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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랜만에 주식투자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 동안 주식 투자를 쉰 건 아니지만 지나해 봄 이후로는 추가로 돈을 투자할 여력이 없기도 했거니와 바쁘기도 해서 거의 종목을 교체하지도 않고 가끔 들여다 보는 수준에서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어째 그 편이 무슨 종목을 살까 고민하며 종목을 뒤적뒤적 거렸을 때보다 수익율이 좋았다. 사실 운좋게 리츠 관련주가 뜨기 전에 사놓은게 쭉쭉 올라갔던거긴 했지만 말이다.

 

 책은 제목처럼 한 개인의 투자일기다. 따라서 소위 대가들의 책에서 나오는 수 많은 사례와 분석 자료들은 없다.(조금 있긴하다.) 그리고 '연평균 수익율 25%' 라는 아주 도발적이고 매력적인 부제를 빠른 시간에 이루어 줄 것 같은 투자의 필살기 같은 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읽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자신의 투자 원칙을 세우고 주변의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유지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기 때문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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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카프카의 장편소설을 읽다보면 항상 진이 빠지는 것 같다. (사실 뭐 단편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이제서야 카프카 고독 시리즈를 다 읽게 되었다. (성, 아메리카, 소송)

 

 이 세 권의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상대하는 대다수 인물들의 공통점은 이야기가 지나치게 장황하면서도 별다른, 그러니까 실속있는 이야기가 없다. 늘 그럴 듯 하게 이야기는 시작하지만 온갖 제약조건이 있어 불가능하거나 불완전한 해결책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대화 내용들은 보면 마치 우리나라 단독으로는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미세먼지를 보는 것 같아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다.

 

 책은 회사에서 쓴다면 욕먹기 딱 좋은 문장들이 등장해 독자들을 괴롭히지만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 만들어준다. 실제로 카프카의 작품에는 발표 되고 난 이후로 온갖 주석과 해석들이 달리고 각색 되기도 했다. 소송도 마찬가지이다. 한 권의 책에서 누군가는 종교를 찾고 누군가는 실존주의를 찾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사회주의를 찾는다. 보는 시점에 따라 온갖 것들이 튀어나오니 굉장히 매력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2. 줄거리

 

  주인공인 K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을 찾아온 감시인들에 의해 자신의 방안에 구속 되면서 자신이 소송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런데 도무지 자신이 어떤 죄목으로 소송을 당하게 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건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감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이유를 들며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그들은 그저 일을 할뿐이고 법원은 실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분증명서 같은 것은 우리가 알 바 아니오. 우리는 하루 열시간씩 당신을 감시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 말고는 당신 일과 아무 관계가 없는 말단 직원일 뿐이오.'

 

'관청은 결코 주민들의 죄를 찾아내려고 하는 게 아니고, 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죄에 이끌려서 우리 감시인들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K는 곧 구속상태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직장인 은행으로 향한다. 그는 소송을 반쯤은 장난으로 생각하고 소송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질 우려 따위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날 밤, 그는 하숙집 여주인인 그루바흐 부인에게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고 이어 뷔르스트너 양에게 그녀의 방을 사용하게된 경위를 설명하며 (요즘 같으면 충분히 성폭행으로 구속되고도 남았을 행동을 보이며) 추파를 던진다. 

 

 K는 법원으로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정해진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는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정해 법원으로 간다. 그러나 빈민가에 도저히 법원이 있을 법하지 않은 낡은 건물에서 법정을 찾아 헤멘 K는 판사에게 심리 시간에 늦었다는 핀잔을 받지만 그곳에서 언변술로 자신을 방안에 구속하던 감시인의 비리를 폭로하고 난폭한 행동으로 판사를 당황시키며 승리감에 도취된다.

 

 다음 주 주말, 또 다시 법정을 찾아가지만 심리가 열리지 않는 법정에서 법원 정리의 아내를 만나고 미래에 판사가 될 것이라는 대학생을 만난 후, 법원 정리를 따라 법원 사무처에 들어가 그곳을 헤메다 밖으로 나온다. 이 법원 사무처의 풍경은 마치 톱니바퀴가 고장나 서로 헛돌기만하는 거대한 기계를 연상시킨다.

 

 이 이후로 K의 일상이 꼬이기 시작한다. 아니 일상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최초의 심리 이후일수 있다. K는 직장내에서 자신의 라이벌인 부지점장이 자신이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어째서인지 그가 찾아가거나,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은 K가 소송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법원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등을하며 어떻게하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 제시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K가 무슨 이유에서 소송을 당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아니 관심도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무죄는 안 된다고 말한다.

 

'법원의 최종 판결은 공개되지 않고, 판사들조차 그것을 볼 수 없어서, 옛날의 판례에 대해서는 전설로만 전해 올 뿐이죠.'

 

 K는 자신을 위해 변론서를 작성할 생각만 할 뿐 완성을 하지 않는 변호사와의 계약을 해약한다. 그리고 31세 생일, "개같군!" 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형을 당한다.

 

 

 사실 줄거리를 쭉 나열하긴 했지만 이 책은 완성작이 아니다. 책의 말미에는 미완성 원고들도 있다. 그래도 전개하는 와중에 내용이 뚝하고 끊겨 버리는 '성'에 비하면 그럴 듯한(?) 결말도 있다.

 

3. 마치며

 

 서론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 책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달려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무엇이 옳은 해석인가가 중요 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인 독자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가 당연히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에서 인간다움을 느꼈다. 최초 이유도 모른 채, 소송을 당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방에 구속되어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K는 자신에게 가해진 사법권력의 강압적인 부당함에 분노하고 최초의 심리에서는 저항하며, 자신이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저항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자신의 무죄와 법원의 부정함을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이 지은 죄로 인해 감시인들을 매질하는 형리에게 뇌물을 주어가며 감시인들을 구하려했다. (비록 K의 말대로 고소는 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는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는 억압하는 시스템(법원)을 부정하면서도 자신과 비등하거나 조금이라도 우월해 보이는 상대에서는 자신을 억압하는 시스템(법원)의 권위를 인정하며 자신이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을 숨기려했다. 사실 그 권위를 가장 인정한 것은 K 그 자신이었던 것 같다. 그는 법원을 부정하려하는 척했지만 계속 이끌려 다녔으며 어떻게든 소송을 끝내기 위해 이 방법 저 방법을 쓰다 결국에는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한 채 무력하게 처형당하고 만다.

 

 이제 여영 승진기회 따위는 놓쳐버리고 형리에게 매질을 당하고 기계처럼 소리를 지르는 감시인과 잘나가는 은행원에서 제대로 된 업무로를 볼 수 없을 지경으로 몰락해가는 K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자신은 신념을 가지고 오롯이 스스로 존재한다고 믿지만 거대한 무리에서 내쳐지는 순간 으깨지고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도대체 너는 소송에 져도 좋단 말이냐? 그렇게 되면 어덯게 되는지 알고 있어? 그렇게 되면 너는 그냥 지워져버리는 거야.'

 

 '전에는 언제나 떳떳하게 자기 이름을 말할 수 있었지만, K는 언제부터인지 그 이름이 부담스러웠다.'

 

 

※ 카프카의 다른 소설들

 

[독서 노트/고전] - 미완의 걸작 소설 성 - 프란츠 카프카

 

미완의 걸작 소설 성 - 프란츠 카프카

1. 들어가며 가끔 천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어떤 모습이 보일까라는 궁금증이 든다. 사람마다 그 차이가 적든 많든 서로 같은 물건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떠올리니 당연히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겠지만 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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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노트/소설] - 변신 - 프란츠 카프카

 

변신 - 프란츠 카프카

1. 줄거리 어느 날, 불안한 꿈을 꾸며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의 몸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이야기의 시작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전개가 이어지며 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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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에 마지막으로 쓰는 책 리뷰가 여행책이 될 줄은 몰랐다. 사실 이 책이 여행기인지 산문 수필로 구분해야 할지 헷깔리기는 하지만 책의 제목과 부제가 여행에 관한 것이니 여행기로 봐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장거리 여행은 선호하지 않는데,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해외 여행은 최악이다. 좁은 비행기 좌석은(비지니스를 타라는 가슴 아이픈 충고는 하지말자...) 고문의자 같고 공항부터 입출국 심사를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은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떼를 보는 것 같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임으로 여행을 떠나시는 다른 분들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그들이 그것을 통해 얻는 행복감이 불편함을 넘어설 뿐이고 나의 경우에는 불편함이 행복감을 넘어설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꽤나 긴 동계휴가에도 뜨뜻한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상당히 끌리는 책이었다. 사실 내 방 침대에서 눈을 뜨면 5분도 안되는 곳에 환상적인 여행지가 펼쳐진다니 누군들 구미가 당기지 않겠는가?

 

 사실 인스타, 유투브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넘어 내밀한 부분까지 공유하는 세상에서는 이 책의 내용이 그다지 놀랍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절은 돈 많은 이들이 '그랜드 투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여가며 가정교사와 함께 유럽 곳곳을 여행하던 시절에 본의 아니게 가택연금이라는 이유가 있기는하지만 자신의 방을 천천히 둘러보며 묘사와 느낀바를 적어낸 책이 꽤나 신선 했을 것 같다.

 

 사실 책의 내용은 별개 없다. 누구나 집에 가지고 있을 법한 침대, 의자, 거울 등등을 자신의 방식대로 느끼며 책에 풀어 쓰고 있다. 별거 없다고 했지만 이게 전부이다. 매일 보고 만지고 사용하는 물건들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그로인해 행복함과 기쁨을 느낀다면 수십, 수천키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보다 못할 것이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문장을 남기며 끝을 맺겠다. 나도 일상적인 공간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

 

사랑이 화살촉을 벼리면서 어떻게 하면 연인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까 고민하는 것은 바로 거울 앞에서라는 사실이다. 거울 앞에서 사랑은 계략을 꾸미고 기동전략을 세운 뒤 선전포고를 외칠 만반의 준비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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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판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일까? 나도 이제 나이가 꽤 들어버린 것이지,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장남이 가족들의 온갖 기대를 받으며 차남 혹은 장녀의 희생과 우골탑까지 세워가져 들어간 대학을 졸업하고 가지는 직업이 떠오른다. (뭐 검사인 경우도 있지만)

 

 요즘에서야 여러모로 퇴색해버린 느낌이 없지 않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 중 하나라는 것에는 다들 큰 의의는 없을 것 같다. 

 

 그런 그들은 평범한 우리(?)와 무엇이 그렇게 다를까?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솔직히 서술하자면 별다를 것 없는 집단인 것 같다. 한 개인 개인이야 정확히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저자의 눈을 빌려서 본, 저 대한민국의 엘리트들만 모아 놓은 집단 역시 과로에 시달리고, 일하는데는 일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쓸데 없는 문화가 존재하고, 상명하복 식의 꽉 막힌 군대문화, 항상 평가에 매달리며 승진과 퇴직의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 것까지...

 

 그나마 퇴직 후 진로가 덜 막막할 수 있다는 점 빼고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을 보는 것 같았다. 다만 그들이 하는 일, 업무 자체가 평범한 회사원에 비해 다른 사람의 인생에 훨씬 더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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