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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비로소 나답게 만드는가?” 과학 저널리스트 아닐 아난타스와미는 올리버 색스를 연상시키는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우리를 ‘나’ 곧 ‘자아’의 세계로 초대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나’에 대한 애착, 무언가가 ‘내 것’이라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터득한다. 일견 ‘나’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인생에서 한 번쯤은 스스로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온다. 타인에게 보이는 다양한 ‘나’, 새롭게 발견한 나의 모습을 볼 때면 궁금해진다. 무엇이 ‘진짜 나’인가? 수천 년 전에는 종교와 철학이 이 고민에 함께했다면, 이제 우리에게는 과학이 있다. 뇌과학적으로 ‘자아’와 ‘자기감’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자아는 21세기 뇌과학이 마주한 최고의 난제이자,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이 책에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알츠하이머병, 조현병 등 제법 익숙한 병명부터 신체통합정체성장애, 유체이탈에 이르기까지, 자아와 관련된 다양한 신경심리학적 질병을 겪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기억을 모두 잃어도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내 몸이 내 것이라는 감각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침대에 누워 있는 또 다른 나를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아’는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며, 우리는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는가? 저자는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뇌과학, 신경과학, 심리학, 철학 등 학계 최전선의 전문가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섬뜩하면서도 경이로운 자아의 세계를 더듬는다. 실마리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집요한 탐사의 중심에는 ‘자아’라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이 자리한다. 뇌와 몸, 정신과 정서, 사회적 관계와 기억 그리고 자아의 연결고리를 치밀하게 파헤치는 가운데, 우리는 ‘나’(또는 ‘자아’)의 빈자리에서 역설적이게도 자아의 정체를 포착하게 된다.
저자
아닐 아난타스와미
출판
더퀘스트
출판일
2023.03.15

 나는 누구인가.

 

 나의 자아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춘기를 통과 한 사람들이라면 위와 같은 질문이나 그와 비슷한 질문을 한번쯤 자신에게 던져보거나 고민을 해보았을 것 같다.

 

 물론 나도 조금은 고민을 해보았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고민에 대해 어떤 적절한 해답을 구했는지는 어떤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 좀 더 어릴 때는 놀고 먹기 바빴고 지금은 먹고 살기 바빠서 솔직히 더 이상 자아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로 취급하지 않고 있는게 사실인것 같다.

 

 현실은 어떨지 몰라도 '자아'라는 주제가 주는 매력은 분명 강력한 것 같다.

 

 자아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오래전부터 종교와 철학 등 온갖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뤄 온 문제이다. 그리고 여전히 분야마다 주장하는 사람마다 그 정의가 조금씩 다르다.

 

 본 책은 부제와 같이 뇌과학적 관점을 중심으로 심리학, 철학자들의 의견을 덧붙이며 자아에 대해 탐구를 한다.

 

 책에서 탐구하는 사례들은 굉장히 충격적이면서도 흥미롭다.

 

 우리가 흔히 치매라 부르는 알츠하이머나 자폐증 같은 익숙한 사례도 다루지만 자신이 죽었다고 말하는 코타르증후군, 자신의 신체를 절단 하고 싶어하는 신체통합정체성장애와 같은 낯선 신경심리학적 질병을 사례를 소개하며 자아에 대해 질문한다.

 먼저 챗GPT 에게 "자아란 무엇인가" 대해 질문을 해보았다.

 자아는 개인의 의식, 인식, 아이덴티티, 그리고 자기의 존재를 경험하는 주체적인 측면을 의미합니다. 자아는 개인의 정체성과 자기인식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개념으로서, 개인이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구별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자아는 심리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지며, 주로 인지심리학, 발달심리학, 심리분석학 등에서 다양하게 연구되고 이론화되었습니다. 자아의 형성은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일어나는데, 어린 시기부터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개인의 신체, 정서, 사회적인 요인들에 영향을 받습니다.

 자아는 인식과정, 감정, 행동 등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며, 개인의 생각, 욕망, 가치관, 신념 등이 자아의 일부로 작용합니다. 또한, 자아는 개인이 자신의 경험과 행동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자아를 다른 개념들과 구분짓기 위해 "자아-이상(self-concept)", "자아-이미지(self-image)", "자아-개념(self-schema)" 등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용어들은 자아의 다양한 측면이나 형태를 강조하며, 개인의 자기인식과 관련된 특정한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자아는 개인의 의식과 인식, 아이덴티티 형성에 관련된 개념으로서, 개인의 주체성과 자기인식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개념입니다.

 

 책에서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자아에 대한 관념들을 소개하고 있다.

 

자아는 자기 자신에 대해 우리가 말하고 들어온 이야기들로 구성되고, 그 이야기들로부터 서서히 펼쳐지며 생겨나는 실체다.

하나로 지각된 통일감을 갖는 자아.

이러한 실체가 시간이 지나도 지속된다는 느낌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자아에 대해 가지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불교에 대해 공부를 하신 분들은 무아에 대해 이야기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책은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신경심리학적 질병을 사례들로 (통일 감을 잃은 신체, 나와 타인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등) 우리가 자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통념에 반하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책에 소개 된 사례들 중 몇가지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낯설은 것들이 많다. 분명 살아있지만 자신이 죽었다고 믿는 사람,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만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느끼며 불편함을 넘어 불쾌감 혹은 그 이상의 감정으로 자신의 신체를 절단하는 사람들에 과한 이야기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 몸과 내 자아가 일치한다는 생각에 대해 의구심을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억을 잃음으로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던 알츠하머에 대해서도 자아 유지라는 관점에서 생각 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의도치는 않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 오디오 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외사랑'을 들었다. 스릴로 소설로 주요 주제로 성정체성 장애를 앓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소설을 듣고 있던 중 도무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다리를 자르기 위해 아시아로 건너가 불법 수술을 받은 사례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멀쩡한 신체를 절단하는 수술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돈을 들여 다리를 잘랐고 그 후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외사랑'이라는 소설 속 이야기와 위 사례는 조금 다른 이야기기는 하지만 그 개인이 느꼈을 기분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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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들어 다들 한번쯤 Chat GPT에 대해 들어 보았을 것이다.

 

 물론 들어 본 것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용해 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Chat GPT에 대한 책을 읽거나 듣기 전, Chat GPT가 코드도 짜준다는 짤막한 블로그의 글만 읽도 별다른 설명도 듣지 않고 대책없이 나도 회사에서 일을하며 필요한 엑셀 매크로를 짜는 코드를 만들기 위해 Chat GPT를 사용해 보았다.

 

 사용해 본 소감은 놀라웠다. 내가 필요한 기능들을 말하면 우선 코드를 짜주고 추가적인 기능이나 상세한 정보를 추가하면 코드가 더 정교해졌다. 덕분에 원래대로라면 코드를 짤 줄 몰라 여기저기 뒤져가며 짜집기를 해서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었어야 될 엑셀 매크로 코드가 30분도 걸리지 않아 만들낼 수 있었다.

 

 없느니만 못하던 은행이나 카드사의 쳇봇을 상대하던 것과는 전혀 색다른 경험이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것 이후, 한 동안 잠잠하던 주제인 AI가 Chat GPT의 부상으로 인해 (Chat GPT도 꽤나 나온지 오래된 서비스다.) 다시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 동안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AI가 그린 그림들이 그날 유저들에게 추천을 많이 받은 게시물로 오르기도 했고, 대통령이 Chat GPT를 사용해 작성 된 신년사를 받아 보고 훌륭하다고 평가하며 행안부 장관에 Chat GPT를 활용해 공무원들에게 잘 활용하게 해달라는 주문도 했다고 한다.(물론 보안의 사유로 그게 가능한지, 옳은지는 상당히 의문이긴 하지만)

 

 

아래는 Chat GPT가 작성해 준 GPT에 관한 글이다.

 

 아직 최신 정보는 업데이트 할 수 없어 GPT 제네레이션 책에 관한 정확한 리뷰 내용은 쓸 수 없지만 그 책을 읽은 걸 바탕으로 Chat GPT가 써낸 글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닌지 정도만 확인했다.

 제너레이티브 프리트레인 트랜스포머(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GPT)은 인공지능의 언어 모델로서, 최근 몇 년 동안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 큰 관심을 받은 모델 중 하나입니다. GPT는 OpenAI에서 개발된 모델로, 텍스트 생성, 번역, 대화 시스템, 요약 등 다양한 자연어 처리 작업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 GPT 모델에 대한 간단한 리뷰를 써보겠습니다.

 GPT 모델은 자연어 처리 작업에서 높은 품질의 결과를 제공하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 주요 요소에 기인합니다.

 첫째, GPT는 대규모의 텍스트 데이터로 사전 훈련(pre-training)되는데, 이는 다양한 언어적 패턴과 문맥을 학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사전 훈련된 모델은 다른 작업을 위해 fine-tuning되며, 특정 작업에 대한 데이터를 사용하여 더 높은 성능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둘째, GPT는 Transformer라는 구조를 기반으로 합니다. Transformer는 자연어 처리 작업에 있어서 혁신적인 모델로, 기존의 순차적인 방식보다 효율적인 병렬 처리를 가능케 합니다. 이를 통해 GPT는 긴 문장이나 컨텍스트를 처리하는 데 뛰어난 성능을 보이며, 특히 텍스트 생성 작업에서 유용합니다.

 GPT 모델은 사용자의 입력에 기반하여 일정한 길이의 텍스트를 생성합니다. 이는 대화 시스템이나 챗봇 등의 인터랙티브한 응용 프로그램에 유용합니다. 또한, 문장이나 문서의 요약, 번역 등에서도 좋은 성과를 보입니다. 하지만 GPT는 모델의 특성상 주어진 문맥 내에서만 텍스트를 생성하며, 완전한 이해나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GPT는 매우 강력하고 유연한 모델이지만, 가끔 예측이 어색하거나 문맥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GPT 모델은 대량의 데이터와 많은 계산 리소스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훈련 및 실행에는 상당한 컴퓨팅 자원이 필요 합니다.

 요약하자면, GPT는 자연어 처리 작업에서 혁신적인 모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사전 훈련된 모델과 Transformer 구조를 기반으로 하며, 텍스트 생성, 번역, 요약 등 다양한 작업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GPT 모델은 완벽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며, 컴퓨팅 리소스의 요구도 상당합니다.

 이 리뷰는 GPT 모델의 기본적인 특징과 장단점을 다루었지만, 더 깊이 있는 정보와 구체적인 활용 사례를 원한다면 추가적인 참고 자료를 검색해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글 전체의 구조는 크게 흠잡을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저 글을 작성하는데 걸린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거기다 영어에 비해 한국어 데이터는 부족한데도 저런 수준이다.

 

 책에서도 이야기 하지만 현재 AI는 레이 커즈와일이 말한 특이점에는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사용하면서 감탄 할 수 있는 WOW 포인트에는 확실히 도달 한 것 같다.

 

 그리고 책에 보면 돈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온다. 그것도 수십, 수천 억 단 위가 아니다. 조 단위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빅테크 기업이 AI에 얼마나 많은 돈을 쏟고 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것이 커즈와일이 말하던 자본의 수레바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미 AI가 인간들에게 가져 올 수 있는 온갖 우울한 미래를 손에 꼽으며 과연 AI를 사용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논쟁하는 것은 이미 무의미 할 것이다. AI는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사용을 포기 할 수 없는 전기나 불 같은 도구 같은 것이 되버렸다. 잘못 사용하면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뒤쳐질 수 밖에 없는 도구 말이다.

 

 AI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저런 생각이 있지만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교육에 관한 것이다. 아직 애가 그런 걸 고민할 나이가 아니긴 한것 같지만 애가 크고 초등학교를 들어 갈 때 쯤이면 AI는 지금 스마트폰 처럼 누구나 당연히 들고다니는 물건 이 될 것 같다.

 

 그럼 그 때 교육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내가 한창 자랄 때는 글로벌 시대가 온다는 이유로 영어가 중요하다고 말하며 영어 공부 열풍이 일었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사람보다 컴퓨터와 일할 줄 알아야 한다며 그들의 언어인 코딩을 공부하는 것이 한동안 유행처럼 몰아쳤다. 그런데 AI는? 영어는 지금도 원어민 보다 더 잘 할 거다. 그리고 프로그래밍 언어가 아니라 벌써 자연어를 이해하고 코드로 바꾸는 수준이다. 대체 몇 년 후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상상해 보고 싶다면 읽어 볼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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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자본주의자
서울에 살던 평범한 가족이 특별한 계획 없이 미국 시골로 떠났다. 110년된 집에서 밀을 갈고 빵을 구워먹으며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새로운 일상을 찾았다. 소크라테스처럼 삶에 질문을 던지고, 소로처럼 순간을 음미하며 살다 보니 드디어 나답게 살아가는 삶의 맛을 알게 되었다.
저자
박혜윤
출판
다산초당
출판일
2021.06.14

 

 

 누구나 한번 쯤은 살다보면 가끔씩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돈 벌어서 뭐하냐라는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서 월급보다 병원비가 더 나올 것 같다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들더라도 언젠가 괜찮아 지겠지 같은 생각으로 그 자리에 머문다.

 

 그리고 여기 두 책에는 그 동안 해오던 것들을 버려두고 자신의 삶을, 혹은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 이상적인 삶을 찾아 떠나는 일을 실행에 옮긴 사람들의 수필이다. 물론 두 책은 세트도 아니고 생활하는 시대에도 큰 차이가 있다.

 

 먼저 월든은 많은 이들이 이름은 한번 쯤 들어봤을 법한 데이비드 헨리 소로 가 저술한 책이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월든 호수에서 1845년 에서 1847년까지 두 해를 머물며 이 책을 썼다.

 

 그리고 숲속의 자본주의자는 박혜윤 작가가 쓴 책으로 2021년 출판 되었다. 책 내용에 따르면 저자는 약 7년 동안 미국 시애틀에서 한 시간 덩도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남편과 두 아이와 살며 이 책을 출판 했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 는 책 곳곳에 월든의 내용이 나온다. 월든을 사랑하던 저자는 결국 소로처럼 본래 가졌던 직업과 학위 등 그 동안 쌓아 왔던 것을 한쪽에 치워두고 미국의 작은 마을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개인적인 감상은 월든 보다는 숲 속의 자본주의자가 나의 개인적 취향에 더 맞는 같다.

 

 내가 느끼기에는 월든은 조용한 숲 속을 거닐며 방금 농사일을 끝내고 흙이 잔뜩 묻은 젊은 철학자에게 이상적인 삶에 관한 조곤조곤한 설명을 듣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해 숲 속의 자본주의자는 월든에 나오는 철학을 기반으로 하지만 조금 더 현실과 타협한 느낌이다. 마치 "뭐 어때, 굳이 나까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잖아?" 라고 가볍게 말하는 사람과 커다란 빈백에 누워 수다를 나누는 느낌이다.

 인간의 삶과 자연, 진정한 행복과 만족 등, 월든은 많은 이야기와 생각이 담겨있다.

 그리고 소로는 책의 첫 장부터 우리의 상식을 깨는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만나는 젊은이와 마을 사람들의 불행은 농장, 집, 창고, 가축, 그리고 농기구들을 상속 받는데서 온다.

 소로가 살았을 당시 시대에 농장과 집 등을 물려 받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사업체나 빌딩 건물을 물려 받는 것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가슴 설레는 일은 소로는 불행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가진 것에 얽매이고 더 가질려고 노력하는 일은 인간을 불행에 빠트리고, 진정한 삶이 아닌 일에 얽메인 삶으로 인생을 변질 시킨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그처럼 성공하려고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토록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일까?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혹은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 진정한 삶을 버려가며 일하면 우리는 더 많이 가지게 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하는 악순환을 거치며 병들고 행복을 잃어버린다.

 적게 일하면 에너지 소비가 줄어 적게 먹고 적게 먹으면 그 만큼 소비가 줄어든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자신의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찾는다. 이것이 소로가 추구하는 바 중 하나이다.

 

 과연 무엇이 더 좋은 삶일지는 개인의 선택일 것이다. 앞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고 뒤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니 말이다.

 

 소로는 월든에서 삶의 복잡함과 인위적인 것들이 인간을 억압하고 불안감을 일으킨다고 지적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단순함에서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에서 말하는 내용도 월든에서 이야기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월든과는 다르게 발전 된 사회와 자본주의를 훨씬 더 편하게 이용한다. 물론 그래도 많은 이들이 원하는 경치 좋은 곳에 지어진 커다란 전원주택에 정원을 돌보며사는 한가한 삶과는 좀 많이 거리가 먼 삶이다.

 

 많은 것을 원치 않았기에 많은 것을 하지않는 그러면서도 진짜하고 싶은 것을 하는 느긋한 삶에 관해 이야기 하는 책이었다.

 월든이 출간 되었을 때도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소비를 줄이며 간소하게 사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온갖 매체로 소비심리를 자극하고 SNS 등으로 스스로를 과신하고 다른 이들과 쉽게 비교를 하는 시대이니 더더욱 그렇게 사는게 쉽지 않은 것 같다.

 

 월든에서 소로는 혼자지만 숲속의 자본주의자에서는 가족들과 함께이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할 나이의 아이들이지만 적어도 책속에서는 스마트폰도 TV도 없이 의외로 저자의 방식처럼 잘 살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삶이 현대 시대의 최선의 대안적 삶이라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 동안 유행처럼 떠돌던 파이어족이나 욜로 같은 사회를 휩쓰는 트렌드로도 다른 이들에게 다가 올 일도 거의 없을 것 같다.

 

 이런 책을 읽으면 누군가는 분명, 젊을 때나 좋은거지 늙고 병들면 어쩌려고 그러냐. 등등 오만가지 현실적 걱정을 들고 나올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없으면 없는대로 살라는 거냐라고 비아냥 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날로 치열해져가는 경쟁 사회는 그곳에서 경쟁 하는 사람들을 우울증 등으로 극한에 내몰기도 한다. 거기다 이제 곧 인간 뿐만 아니라 AI나 로봇과도 경쟁을 해야 할 판 인 것 같다.

 

 이런 사회에서 삶은 그냥 사는 것이지 구태여 '잘' 살 필요는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말이 더 잘 와닿은 것 같다.

 그 외 책에서 기억에 남는 문구들

그대의 삶이 아무리 가난하다해도 맞부딪혀 살아나가라. 회피하거나 욕하지 말라.

그대가 나쁜 사람이 아니 듯, 삶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 삶이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황혼의 빛은 부자의 집 창문뿐 아니라. 가난한 집 창문도 밝게 비춘다. 또한 초봄에는 가난한 자들의 집 앞의 눈도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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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미국 청소년 문학의 대표 작가라 불리는 로이스 로리 장편소설. 모두가 잃어버린 여러 감정들을 찾아나서는 열두 살 소년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1994년 뉴베리 상과 1993년 보스턴 글로브 혼 북 아너 상 수상작이다. 모두가 똑같은 형태의 가족을 가지고 동일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 곳. 이곳에서는 열두 살이 되면 위원회가 직위를 정해 준다. 열두 살 기념식을 앞둔 조너스에게 내려진 직위는 '기억 보유자'. 과거의 기억을 유일하게 가지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선임 기억 보유자는 이제 기억 전달자가 되어 조너스를 훈련시키기 시작한다. 조너스는 효율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희생된 진짜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저자
로이스 로리
출판
비룡소
출판일
2007.05.18

 

 내가 직접 고민하고, 세상과 부딪혀 때때로는 실패를 겪으며 선택하는 삶이 아닌 다른 이에 의해 계획되고 준비된, 통제가 되지만 실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된 삶은 과연 어떨까?

 

 다른 이들이 준비해준 이런 삶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일마다 되지 않을 때, 무슨 선택이 옳은 것인지 내가 잘하는 게 대체 뭘까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할 때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줄지도 모를 멘토를 찾기도 하고 누군가는 신을 찾기도 한다.

 

 

 책에 등장하는 마을은 이런 것들을 규칙과 원로들이 대신한다.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면밀하게 감시되고 작은 규칙 위반도 넘어가는 일 없이 마을 전체에 설치된 스피커로 방송 된다.
그들은 결혼, 출산 등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개입한다. 목적은 최적 혹은 실패하지 않는 기초가족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실패하지 않는 마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마을의 가구들은 실용적으로 설계된 데다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각 가구의 쓰임새는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조너스가 아는 한 마을에 있는 어떤 문도 결코 잠겨 있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의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고 출산 역시 직접 하지 않고 직업적인 임산부가 낳은 아이를 부부를 관찰하던 원로들이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을 하고 부부가 신청을 하면 한 해의 특정일에 마치 아파트 분양을 받는 것처럼 입양을 하는 방식이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직업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부터 기록되고 관찰한 바를 바탕으로 12살 생일에 아이들의 직업이 원로의 발표로 결정이 된다. 물론 아이가 그 결정이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할 경우 이의는 제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조너스의 경우 그것조차 규칙으로 금지되어있다.

 

지금이 바로 차이를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을 공동체에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행동을 표준화했습니다.

 

 많은 규칙과 감시, 통제가 되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굉장히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자격이 있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각자의 개성은 죽이는 대신 차별은 금지되어있다. 먹을 것도 늘 배달된다.

 

 조금 재미는 없을지는 모르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없는 마을이다. 과연 여기에서 사람들은 행복할까?
 

 책이 그려내는 마을은 통제되어있지만 주민들의 삶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 생활은 늘 질서 정연하고 예측이 가능해. 그래서 별로 힘이 들지 않지. 이 삶은 바로 원로들이 선택한 결과야.

 

 12살 앞으로의 직업이 정해지는 날을 기다리며 불안해하던 조너스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기억보유자'가 된다.

 

 조너스는 원래 기억 보유자에서 기억 전달자로 바뀐 스승으로부터 기억을 전달받기 시작하며 마을이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우리가 '늘 같음 상태'에 들어가자 눈은 쓸모없는 게 되었지.
전 단지 우리만 있다고, 현재만 있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것이 평등해 보이고 안정된 것 같은 마을에도 차별과 속임수가 숨어있다.

 

 모든 직업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 같지만 조너스 가족의 대화에는 육체 노동자에 대한 천대가 담겨있고, 규칙은 필요에 따라 교묘하게 무시되거나 변경된다.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쓰라는 규칙과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교묘하게 표현을 바꿔치기 함으로써 잔학한 행위를 왜곡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조너스는 마을을 탈출할 것을 결심한다.

 

 '늘 같음 상태.', 책에서 마을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마을의 겉모습은 이상적이다. 아무도 굶지 않고 아프면 방치되지 않고 치료하며 외모 같은 것으로 차별받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체계적인 보육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성장해서는 적절한 직업을 가지고, 원한다면 가족을 구성하고 늙어서는 마을 구성원으로부터 돌봄을 받는다.

 

 정말 요람에서 무덤까지 개인이 걱정할 거리가 없다. 유일한 걱정거리라고는 실수나 범법행위로 인한 임무 해제라는 조치가 유일한 것 같다.

 

 하지만 그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면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조너스의 직업이 된 기억 보유자라는 직업도 그런 것이다. 기억 보유자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의도적으로 제거된 감정, 기억 등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가지고 있는 직업이다.

 

 여기에는 행복한 기억도 있지만 트라우마로 남을 법한 지독한 기억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고작 12살 아이에게, 그것도 직업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다른 직업에 없는 규칙을 새롭게 만들면서 떠넘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물론 최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억보유자가 남과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외로움과 끔찍한 기억들로 인한 괴로움을 제외한다면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는 꽤 특별한 대우를 받는 편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 모든 사람이 부담을 느끼고 고통을 당할 거야. 사람들은 그걸 원하지 않아.

 

 책을 말미에 조너스는 마을을 떠난다. 그 행위로 인해 그동안 자신이 전달받은 기억들을 마을 사람들에게 공유하게 됨으로써 혼란과 고통이 따를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기억을 전달해 주고 돌봐오던 가브리엘이 마을에서 요구하는 표준화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무 해제라는 표현을 빙자한 살해를 당 할 것임을 알고는 미처 준비도 다 되지 못한 상태에서 급히 마을을 떠난다.

 

 마침내 완전히 구속과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조너스는 과연 행복해졌을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조너스가 기억 보유자로 선택되고 잃어버렸던 감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과연 나는 고민이나 위험 같은 것이 없는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포기할 수 있을까? 였다.

 

 물론 '늘 같음 상태'라는 게 애매모호하니 그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아주 많은 돈으로 치환해서 생각한다면 이미 사회에 찌들어버린 나 같은 어른들은 생각하기가 좀 더 수월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는 이미 조너스의 마을 같은 삶에 꽤나 근접해 있지 않은가였다.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에 나가서 통제를 받고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감정을 죽여버린 채 일을 한다. 개성이 중요하다고 외치긴 하지만 인스타 등을 보며 남들처럼 살지 못해 우울해하거나 그들의 흔적을 좇아간다.

 

 사랑이 아닌 타인에 판단에 의한 결혼은 사실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조너스의 마을 사람들은 태어난 이후로부터 훈련되고 교육되어 애초에 가지지 못했고 주변인들도 없기에 결핍을 느끼지 못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다. 우린 가졌던 것을 잃기도 하고 아니면 남들이 한없이 많이 가진 것을 바라보기만 하며 결핍과 분노 같은 것을 느끼고는 한다.

 

 어느 쪽이 더 불행한 걸까?

 

 조너스는 가브리엘과 마을을 탈출해 부상과 굶주림에 시달린다.

 

 그러나 조너스은 마을에 머물렀다면 가브리엘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죽었을 것이며 자신은 감정, 색깔, 사랑 등에 굶주리며 평생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너스와 가브리엘은 계속해서 추위와 배고픔, 부상에 시달리며 약해진다.

 

 그리고 포기하고 싶을 때면 기억 전달자로부터 받은 기억을 가브리엘과 나누며 앞으로 나간다. 따뜻함의 기억, 행복함의 기억 등 괴로울 정도로 짧지만 그것들이 조너스를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해 준다.

 

 

 기억과 감정은 한 사람을 고통과 절망에 빠트리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미 지나가 버렸기에 해결할 수도,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는 문제도 기억과 감정이 섞이면 그 사람에게 고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런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게 해주는 것은 한 조각의 작은 행복한 기억 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것들을 배제하고 극도로 효율적인 삶만을 추구하는 세계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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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력은 저주일 수 있다."

 

 파친코를 읽을 때도 느낀거지만 참 첫문장으로 책 전체를 잘 녹여내는 작가인 것 같다.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무엇을 떠올릴까? 신분과 인종, 종교 같은 출신 배경에 상관없이 가진바 능력에 따라서 성공 할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떠올리지 않는가?

 

 책은 한국계 미국인들을 주요 인물로 삼고 그들의 사회를 주 배경으로 묘사한다.

 케이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녀 역시 이민자 2세대이다. 그녀는 프린스턴대에 들어 갈 정도로 똑똑하고 능력있으며 대책이 없을 정도로 자유분방 하지만 자신의 이상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과감하게 쫓을 줄도 아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에게 왜 능력은 저주가 되었을까?

 그녀는 분명 주류 사회에 편입이 될 준비가 된 사람처럼 보인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보기엔 터무니 없어보이는 자신감 때문에 졸업 후 비록 취업에는 실패하지만 로스쿨에도 진학 준비 중이었다. 인간 관계도 좋은 편이다.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는 제이도 있고 부모님이 아니지만 그녀라는 존재를 지지하는 사빈 같은 사람도 있다.

 

 비록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사빈의 백화점에서 종업원 일을 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는 인정 받지 못하지만 케이시의 동생은 그녀에게 깊은 애정과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케이시가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버지와의 다툼 끝에 집에서 쫓겨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이후의 생활은 그야 말로 우당탕탕 좌충우돌이다.

 동거하던 남자친구에게 갔더니 바람을 피는 장면을 목격을 하고, 제대로 된 수입원은 없지만 신용카드로 빚을 진다.

 금방이라도 나가 떨어질 것처럼 비틀비틀거리며 삶을 살아간다.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겨낸다. 그러나 결국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가난한 이민자의 딸.

 

 가난하다는 것, 이민자라는 것, 딸이라는 것.

 이것들은 케이스의 뛰어난 능력을 저주로 만든다. 이것들은 여러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케이시에게 번듯한 삶과 성공을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하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실패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만약 그녀가 그녀의 친구처럼 프린스턴을 졸업 후 부모의 도움을 받아 이탈리아로 대학원을 갈 정도로 집안이 여유로웠다면?

 테드나 제이처럼 남자이거나 이민자가 아니었다면?

 그들의 삶이 케이시의 것만큼 힘들지 않았다고 단정 할 수는 없지만 저런 조건들이 있었다면 그녀의 방황이 조금은 덜 힘들지는 않았을까?

 물론 그녀의 삶을 가장 힘들게 만든건 어쩌면 그녀 자신이었을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것이다.

 번듯하고 성공한 삶을 살아야한다는 강박관념과 그런것과 상관없이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은 남들이 보기에 편하고 안정적인 길을 놔두고 몇번이나 긴 방황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 였으니 말이다.

 사실 읽고 있는 동안 나도 몇번이고 그녀의 선택에 의문을 가졌다. 조건없이 학비 등을 대주겠다는 사빈의 도움을 거절하고 버는 돈 보다 많은 돈을 소비하고는 등의 행동을 말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녀의 의지와 그녀의 꿈에 대한 소망이 소비로 나타난다는 것을 이해한 뒤로는 나의 기준으로 간단하게 그녀의 선택을 평가하기는 어려웠다.

 

 책은 케이시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지 않는다.

 그녀 외에도 그녀의 어머니 등 많은 이민자들의 삶을 조명한다. 각자 비슷하면서도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이었기에 듣는 동안 지루하지 않았다.

 같은 문화권에서 태어나 유사한 사회공동체에서 삶을 살아왔음으로, 외부에서는 편의상 '한국계 미국인' 같은 특정한 틀로 묶어 특징 같은 것을 부여하지만, 그건 지극히 편의주의적인 사고 방식일지 모른다. 사람은 백인백색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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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주인공 '다이소'는 언젠가부터 곳곳에 생겨나더니 사람이 좀 산다 싶은 곳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가게가 되었다.

 

 심지어 지방 중소도시에서도 외곽, 봄이면 파랗게 물드는 논밭을 아파트단지와 스타벅스보다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내가 사는 지역에도 재작년쯤 다이소가 오픈했다.

 

 주변에 큰 전통시장도 있고 중소형 마트도 있지만 여러가지 생활용품을 한자리에서 해결 할 수 있는 다이소의 입점은 꽤나 반가운 일이었다.

 "천 원을 경영해야. 3조를 경영할 수 있다!"

 

 책의 띠지의 문구는 꽤나 도발적이다. 다이소에서 물건을 살 때 천원짜리를 많이 본 기억은 없지만 물건 가격이 5천원이 최고가인 유통업체의 매출이 3조원이라니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2021년 결산기준 아성다이소의 매출액은 약 2조 6천억이고 영업이익은 약 11%이다. 이 숫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타벅스코리아와 비슷한 수치이다.

 

 매장 숫자는 스타벅스가 약 1800개, 아성다이소가 약 1500개라고 하니 정말 비슷한것 같다. 다만 스타벅스는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메리카노가 4,500원인 반면 다이소의 경우 제일 비싼 제품이 5,000원이니 물론 제품은 다르지만 판매되는 수량으로만 본다면 다이소가 훨씬 더 많이 팔았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유통에 속하지만 결이 다른 대형마트가 몇개의 업체가 과점인 상태로 수십년간 치열하게 경쟁을 해오고 있지만 내가 느끼기로는 다이소가 속한 저가-균일가 시장에서는 비교대상을 찾을 수 없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여전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책에서 읽고 느낀바로는 아성다이소의 경영전략은

 

 상품개발 혹은 발굴한 뒤, 생산은 아웃소싱 통해 비용를 낮추는 한편 대량구매와 제품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덜어내고 생산 공정을 수정하고 물류비를 줄이는 방식 등을 통해 비용을 최대한으로 낮춘다.

 

 그러나 그저 비용을 낮춰 제품의 가격을 다운시키는 것뿐만이 아니라 특별한 아이디어나 차별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상품이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가치를 가격보다 높게 만든다.

 

 그리고 이것을 계속해서 반복하여 한 두개가 아니라 수만가지 제품을 보유하고 공급함으로써 박리다매 전략을 완성했다.

 많은 유통기업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려고 하는 때에 오프라인으로 공격적으로 점포를 늘리는 것도 특이한 것 같다. 물론 덕분에 나도 편하게 쇼핑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일에 대한 주인의식과 일을 할 때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굉장히 강조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개인차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부하에게 장사가 어렵냐 쉽냐라고 묻고 어렵다라고 대답하자 장사가 자격증이나 힘쓰는 것도 아니고 니가 다른걸 뭘 할 수 있는데? 라는 식으로 묻고 다시 부하직원이 머뭇거리다 쉽다라고 하니 그런데 왜 실적이 그 모양이냐라고 핀잔을 주는 일화는 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최악이었다.

 

 그리고 다이소가 일본기업으로 소문났던 것은 굉장히 억울하셨는지 몇번이고 강조해서 일본기업이 아니라고 강조하신다. 아성다이소에 일본 기업인 대창산업(다이소산교)의 지분이 30%가 있긴 했지만 당시 투자 받을 때는 어쩔 수 없었던 사정이있었음 설명한다.

 예전 기숙사에서 생활을 시작할 때, 다이소에 처음 갔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곳곳에 매장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막 주식을 시작했을 때라 투자를 해보고 싶었지만 비상장사라서 알아보다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자신의 간절함, 장인정신, 집요함 같은 걸로 45세에 퇴직하고 사업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운도 따랐을 것이다.

 퇴직을 할 때, 일본 경제가 호황이었고 그곳에서 사업을 시작해볼만 인맥이 있었다. 그리고 국내에서 균일가 숍을 시작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IMF가 왔다.

 

 그리고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해 냈기에 지금의 다이소가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뭔가를 하기로 결심한다면 너무 늦은 때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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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그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사람이 가득 들어찬 어두컴컴한 영화관, 영화의 앞에 나오는 지루한 광고도 끝나고 화재 비상대피로 안내 방송이 스크린에 나올때 쯤 겨우 도착해 사람들의 다리를 헤치며 나아가 가운데 있는 자리에 겨우 착석했을 때.

 

 나 혹은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내 왼쪽 혹은 오른쪽 팔걸이에 음료수를 끼워놨던 경험. 물론 양쪽 팔걸이가 다 남에게 점령되는 일은 흔치는 않겠지만 혹시 그렇게 됐다면 대체 내 음료수는 어디에 놔둬야 되지??

 

 책은 이런 소유권에 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이다. 내가 산 영화표의 가격에는 분명 영화가 상영하는 동안 좌석에 대한 소유권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소유권에는 과연 어느쪽 팔걸이에 대한 소유권까지 포함 되어 있는 것일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이런 불쾌한 소유권에 관한 문제에 맞닥드리더라도 참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한 해결책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영화표나 기타 약관에 어느 쪽 팔걸이가 고객의 소유인지 명확하게 표기를 하거나.

 

 모든 좌석이 양쪽 팔걸이를 가질 수 있도록 팔걸이 자체를 늘리면 된다.

 

 그러나 영화관을 운영하는 기업은 소유권을 모호하게 설정함으로써 팔걸이를 비용을 줄이고, 그 공간만큼 좌석을 더 설치해 이익을 늘리는 한편 불편한 상황으로 인해 발생하는 분쟁의 해소를 소비자 혹은 현장을 관리하는 말단 직원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실 책은 항공기 좌석을 예로든다.)

 

 책은 위와 같은 예로 우리가 흔히 마주칠수 있는 소유권에 관한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예를 언급하며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6가지 소유의 법칙을 제시한다. 선착순, 점유, 노동, 귀속, 자기 소유권, 상속이다. 이 단어들을 들었을 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유권을 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과연 이것들이 정말 우리의 소유권을 보장해주고 있을까? 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한정판 물건을 사기 위해 오픈런을 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고,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서도 줄을 선다. 선착순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이해 할 수 있는 소유권을 나눠가지는 방식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이 바뀌고 있다.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돈을 주고 대신 줄을 설 사람을 고용하고, 미국의 대형 놀이공원은 돈을 더 내면 빠른 입장이 가능해졌다. 전화번호나 주소, 심지어 심각한 경우에는 주민번호 마자 이미 여러곳에 공유되고 있고, 이것보다 훨씬 매밀하다고 할만한 개인의 유전자 정보 조차 회사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고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론 책에는 소유권에 관한 이런 부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지는 않다.

 

 소유권을 설정하는 방법을 변경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도 알려준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알래스카 킹크랩 어업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 중 하나라는 알래스카 킹크랩 잡이는 자연 환경적 요인 외에도 배에 탄 사람들을 위협하는 요소가 있었다. 바로 바다속 킹크랩에 관한 소유권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원래 킹크랩은 한정 된 기간 내 바다에서 건져내는 순서대로 소유권을 가졌다. 일견 타당해보이긴 하지만 한정된 자원에서 선착순으로 건져내는 것이다보니 악천후나 기타 선박 결함등의 위험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박들은 출항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걸 선박당 소유권을 총량으로 규제 함으로서 안전을 확보하고 오히려 전체적 이익을 늘리는 일이 되었다. 과연 지금 우리사회에 온전히 내것이라고 확언 할 만한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책을 읽은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이다.

 

 어떤 사이트나 어딘가 회원에 가입을 하면 내 정보는 금세 온갖 곳에 공유되고 휴대전화로는 스팸이 넘쳐난다.

은행 어플에 들어가면 마이데이터, 오픈뱅킹 등등 온갖 단어와 미사여구 당신에게 커다란 혜택을 줄 것처럼 이야기 하며 정보를 팔아 넘기라고 한다.

 

 스마트폰은 어떤가 내가 간 위치며 통화내역이며 온갖 내 개인적인 것을 캐내가기 위해 온갖 권한을 요구한다.

 

 세금, 월급, 복지 등 대부분의 문제는 소유권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 많다. 회사에서 혹은 여타 공동체가 만들어 낸 성과와 이익의 소유권은 누구의 것인지에 관한 논쟁은 오래도록 해묵은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소유권에 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끝으로 '남의 것도 내 것으로 만드는 소유의 법칙' 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이건 좀 너무 마케팅 용으로 붙여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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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크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몸집과 골격, 누더기를 기워 놓은 것 같은 바늘 자국이 무수히 많은 창백한 피부, 각진 턱, 관자놀이에는 커다란 볼트가 박혀 있는 괴물. 내가 프랑켄슈타인을 읽기 전 프랑켄슈타인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이미지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 특히나 30대 이상(?)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이라 하면 이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꽤나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충격적이라면 충격 적이겠지만 원작에 등장하는 프랑켄슈타인은 내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먼저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다.

 

 프랑켄슈타인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이 풀네임으로 책에 등장하는 생명체를 만들어 낸 창조자의 이름이다. 책에서 빅터에 의해 창조 된 생명체는 그 등장부터 책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름도 부여받지 못한 채 사라진다. 그리고 그에 관한 묘사도 덩치가 크고 그저 끔찍한 모습이라고 반복적으로 묘사 될 뿐, 모습에 대한 정확한 묘사는 없었던 것 같다.(그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과학을 발전시키고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당시의 금기를 어겨가며 생명체를 탄생시킨 빅터는 자신의 창조물의 끔찍한 모습에 질려 그를 버려두고 달아난다. 그러나 빅터는 죄책감과 고통에 시달린다.

 

 겨우 그것에서 벗어나 고향인 제네바로 돌아갔을 때는 동생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된다. 자신이 버렸던 창조물의 복수였다. 복수를 위해 창조물을 쫓던 빅터는 그와 조우하게 되고, 빅터에게 버림받은 이후 그가 겪었던 과거를 듣고 복수의 고리를 끊을 방법에 대해 합의를 하지만 결국 빅터가 다시 한번 그를 버림으로써 창조자와 창조주의 쫓고 쫓기는 복수극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빅터에 의해 창조 된 '그'는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실낙원'의 아담과 이브처럼 자신의 창조주에게서 버려진다. 물론 훨씬 더 과격하게. 심지어 창조주의 종족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할 뿐만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우월한 모습을 드러낸다.

 

 힘이 센건 말할 것도 없고, 짧은 시간에 문자와 말을 배우고 사용하는 학습 능력뿐만 아니라 남을 도울 수 있는 이타심과 자신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을 용서 할 수도 있는 아량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없는 것은 단지 인간과 같은 외모 뿐이다. 때문에 자신이 몰래 숨어서 훔쳐보고 배우던, 프랑스인 가족 중 눈이 먼 아버지에게서는 여느 평범하고 선량한 인간의 대접을 받지만 아들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에게서는 대화의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쫓겨난다.

 

 책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금기를 어기고 새로운 창조물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빅터의 열정어린 모습은 마치 A.I와 로봇을 연구하는 현대의 과학자나 기업가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발전하는 그것들의 모습을 보며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이미 거대한 자본금이 계속해서 투입되고 굴러가기 시작한 일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이제는 옛날 이야기처럼 되어린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 이 후 이세돌 9단은 은퇴를 했다. 그는 나중에 한 토크쇼에서 은퇴의 이유를 밝히며 자신은 바둑을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닌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라는 절대자의 등장으로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게 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

 

 예술에 관한 정의는 개인별로 천차만별일테지만 일반적으로 예술이라 여기는 미술 등의 분야에서도 AI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이 우월 하다고 믿고있는 창작의 영역이 오히려 더 빠르게 추월 당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들 정도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것들이 우리를 뛰어 넘었을 때,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기계에 밀려 일자리를 잃은 많은 노동자들이 ‘러다이트 운동’을 벌이며 기계를 파괴했다. 기계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 파괴되는 동안 아무런 불평불만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래에도 인간보다 인간적인 가치라 믿었던 것을 더 잘 수행하는 피조물이 그런 자신을 미워하는 창조주 인간들에게 아무런 불평불만을 제기하지 않을거라 확언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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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부제인 ‘어느 미술품 컬렉터의 기록’ 처럼 저자의 미술품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성공과 실패, 그리고 미술품을 수집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충고와 조언 등을 담고 있는 책이다.

 

 책의 내용에 어려운 것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품 수집을 취미로 여기고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취미로 무언가를 수집하는 사람들은 과거부터 있었다. 먼 과거에는 찻잔과 벼루 같은 것을 수집했고, 우표, 동전, 레고, 최근에는 스니커즈를 수집하는 사람도 많아 진 것 같다.

 

 그리고 그 수집이 누군가에는 단순한 취미의 영역을 넘어 투자의 한 방식으로도 자리를 잡았다.

 

 수집이라는 것이 그렇게 대중적인 영역에 들어서고 있지만 미술품 수집은 내게 여전히 부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상이 강한 것은 가끔씩 기사나 뉴스로 나오는 경매에서 수 백, 수 천억원에 낙찰 되었다는 미술품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책은 이런 미술품 수집을 일반인들도 접근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만들고자하는 저자의 바람을 담고 있다. 저자는 20대 때, 돈이 많지 않은 시절부터 미술품 수집에 열중 했다고 했다. 다른 이의 추천으로 산 미술품의 가격이 크게 올랐던 이야기도 나온다. (어째... 많은 사람들이 주식 투자에 입문하는 계기와 비슷한것 같은건 내 착각일까?)

 

 이렇듯 저자는 미술품은 수집 후 보관하는 동안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효용을 누릴 수 있고 추후 다른 이들에게도 가치를 인정 받는다면 투자의 목적물로 이익을 남길 수도 있다고 설파한다.

 

 조각 투자 등의 핀테크 기술이 발달과 인터넷에 넘쳐나는 정보들로 인해 고가의 미술품 투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성은 이전보다 훨씬 개선 된 것 같다. 과거처럼 화랑 같은 곳에서만 실물로만 미술품을 감상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하면 미술품의 작가에 대한 정보가 주르륵 나올 뿐더러 동일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찾는 것도 훨씬 쉬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자신이 수집한 것을 되팔지 않는다는 저자는 책의 제목처럼 투자보다는 수집 자체를 즐기기를 권하는 것 같다.

 

 육아 용품으로 방안이 가득찬 현실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수집에는 큰 취미가 없다. 다 읽은 책을 처분하지 않은 것도 그저 귀찮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전자책이 나온 뒤로는 종이책 보단 전자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특히 무겁고 큰 책 일수록 보관도 읽기도 가지고 다니기도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씩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았던 책들 중 마음에 드는 작가의 책이 리커버 버전 등이 나오면 가끔씩 사모으는 걸 보면 가끔씩은 손에 잡히는 물성에 욕구 같은 것이 나한테도 없지는 않다는 걸 느끼곤 한다.

 

 내 생각에 수집이란 수집물 자체의 가격 외에도 수집물의 크기에 따라 꽤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 취미인 것 같다.

 책을 읽는 와중에 나도 가끔씩 미술관에만 찾아가서 그림을 볼 것이 아니라 그림을 한 번 사볼까? 하는 마음으로 찾아본 경매 사이트는 싼 것이 시작가가 100만원 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못도 하나 박지 못해 결혼 사진이며, 애 돌사진도 걸어 놓지 못하는 전세 집 어디에 그림을 걸어 놓을 것인가라는 문제의 벽에 부딪혔다.

 

 수집품은 손상되지 않도록 잘 보관해야한다는 저자의 충고를 떠올리면 미술품 수집은 아직 나에게 너무 높은 벽인 것 같아 아쉬웠다. 물론 저자는 작은 소품으로 시작을 하라고 하지만... 과연 그런 소품을 탁자 위에 무심히 올려 두었다간 애들 손에 남아날까? 라는 불안감이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지막으로 미술품 수집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가 말하는 좋은 미술품의 기준을 이다.

  1. 작품의 독창성
  2. 질이 좋은 작품
  3. 작품의 상태
  4. 구매할 작품의 가격이 자신의 경제적 여건과 맞는가?
  5. 주변의 평가
  6. 작품의 진위 문제

 마지막으로 저자는 돈으로도 좋은 취미를 살 수 없다고 말한다. 꼭 수집이 아니더라도 취미를 가지는 건 누구에게나 좋은 일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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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 뇌과학 등이 발달하며 ‘합리적인 인간’에 대한 인식이 꽤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인간의 불합리성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철인통치’ 와 같은 합리적인 인간에 대한 환상 역시 가지고 있었음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른 이들에 비해 높은 수준의 합리적 판단을 기대하는 직업은 존재한다.
판사, 의사와 같이 한번의 판단으로 인해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이들은 높은 수준의 고등교육을 거치는 동안 두뇌를 평가 받으며 직업을 가진 뒤로도 선배들의 지도와 실무를 거치며 경험을 쌓아 나간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 그들은 일종의 판단 전문가로서 활동한다.
그들이 항상 100%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꺼라 기대하거나 믿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 과연 이런 이들은 얼마나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있을까?
책은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모든 판단에는 잡음이 들어있다. 그리고 그 잡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비용과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문가들이 항상 옳고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큰 병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으면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진단을 다시 받아보고 다른 의사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통해 특히나 전문가들의 판단이 자신의 집단과 관련 된 문제가 되거나 아니면 개인적 이익과 결부되는 일이라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판단이 나오게 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사실 이건 의도한 왜곡된 판단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긴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이런 판단의 소음을 막기 위해 여러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 할 문제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판단에 소음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의 날씨, 컨디션, 판단을 내리는 시간에 따라서도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일에 대해서 다른 판단을 내린다. 전문가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로 인해서 생기는 비용이나 부작용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지 모른다.
책의 내용을 읽다 보면 고도로 훈련 받은 전문가들이 내리는 판단 또한 A.I에게 맞기는 것이 적합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은 과거의 사례들을 학습하여 판단을 내리는 A.I가 동일한 사례를 지속적으로 학습하면 판단에 대한 변산성은 줄어들 것 같지만 개별적 사실에 대한 가치판단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의문도 생긴다. 그리고 애초에 학습하는 내용이 잘 못 되었을 경우도 문제겠지만 말이다.
한 때, 인간은 뇌의 기능의 10%로만 활용하고 있으며 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으면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진다는 식의 소문과 영화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뇌과학이 발달하며 그런 이야기는 사라지고 인간이 본성적으로 가지는 한계가 계속해서 드러나는 것 같다.
그리고 승승장구하던 인간이 기후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 없이 신에 가까워지고 있던 인간이 점점 한계를 느끼고 주춤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을 쏘아올리고 미지의 우주를 끝 없이 탐구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과연 앞으로 인간은 어떻게 될까?
자신의 판단 권한을 A.I에게 넘길 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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