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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세계 많은 이들의 우상! 영원한 청년! 쿠바를 독립으로 이끈 위대한 혁명가!

 체 게바라!

 누군가에게는 이름만으로 가슴 떨리는 사람일 것이다. 이 영화는 23살 의학도 시절의 체 게바라의 여행을 담고 있다. 영화의 시작에서 나오는 자막대로 어떤 특별하고 위대한 이의 여행이 아닌 그저 꿈을 품고있는 두 젊은이의 남미 대륙 횡단기를 담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영웅담이 아니다 그저 한 청년의 인생을 바꾼 유쾌한 여행기이다.

 우리 모두 꿈을 안고 있다면 여행을 통해서 정말 특별해 질 수 있을까?

 

2. 줄거리

 

 23살 천식을 앓고 있는 의학도 이자 럭비 선수인 에르네스토 게바라(별명:푸세)는 엉뚱하고 열정이 넘치는 화학도이자 친구인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4개월 간의 남미 횡단 여행을 떠난다. 낡고 오래된 시끄럽게 덜덜거리는 '포데로사'라는 이름의 모터사이클을 타고 안데스 산맥을 가로지르고 칠레를 지나 사막을 건너 후, 아마존으로 뛰어든다는 아주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두 젊은 사내들의 원대한 계획과 포부와는 달리 여행은 고난의 연속이다. 텐트는 날아가버리고 초반의 다짐과는 달리 부유한 지주들의 헛간에서 지내기 일 수이고 낡은 오토바이는 끊임 없이 고장을 일으킨다. 그리곤 포데로사를 고치러 갔던 정비소에서는 정비사의 아내에게 추근대다 마을 사람들에게 쫓겨나기에 이른다.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여유와 미소가 가득하다.

 

 결국 완전히 정비를 받지 못한 오토바이는 결국 완전히 고장나고 만다. 알베르토는 포기를 논하지만 푸세는 걸어서라도 계속 여행을 할 것을 천명한다. 결국 둘은 포데로사에서 내려 두발로 세상을 마주한다. 그들은 퇴색되어가는 페루의 잉카유적을 거치고 사막을 건나 추끼까마띠 광산으로 가는 길에는 정치적 이념때문에 일자리와 살 곳을 잃어버린 부부를 만난다. 두 청년은 점점 분노한다. 둘의 눈 빛에는 여유가 사라지고 진지한 고민이 담긴것 같다. 말쑥한 중산층 가정의 잘 교육을 받은 청년의 모습이었던 푸세의 얼굴에서 점점 훗날의 위대한 혁명가의 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3. 맺으말 및 느낀점

 

 개인적으로 체 게바라를 굉장히 좋아한다.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포기하고 꿈과 이상향을 위해 혁명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모습은 정말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인물인 듯하다. 물론 그의 바램과 이상과는 다르게 심지어 그의 조국이라고 할 수도 있을 쿠바에서 마저도 체 게바라라는 아이콘은 매우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게 현재인 것 같다..

 

다들 이런 프린트가 박히 티셔츠를 한번쯤은 봤을꺼다.

 

 그럼 대체 혁명에 뛰어 들기전 체 게바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 영화를 보면 혁명가가 아닌 일반 청년인 그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그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을 것이다.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는 본격 적으로 여행을 시작하기 전 자신들의 오토바이인 '포데로사'를 '로시단테'에 비유하고 자신들을 '돈 키호테'에 비유한다. 그리고 '정복자'의 모습으로 칠레에 들어 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텐트를 잃고 어려움을 격지만 자신들의 신분을 십분 활용하여 부유한 이들의 신세를 진다.

 두 청년은 꿈과 이상을 가지고 있고 여행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것을 잃지 않는다.

 

 로시단테를 타고 여행을 하는 그들은 돈키호테 마냥 꿈과 이상은 있지만 여전히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여전히 여자의 꽁무니를 쫓고 자신들의 의사라는 것에서(혹은 의사가 될 것이라는) 약간은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칠레에서 결국 그들의 로시단테는 사망 선고를 받는다. 돈 키호테가 말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다.

 

 로시단테에서 떨어진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천천히 걷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현실을 마주한다. 그들의 머릿속 이상향들과의 괴리를 사람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다. 그들은 현실을 마주하고 고통을 겪는다. 그렇지만 여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길에서 많은것을봤어,. 많은것이 불공평해.

 

 광산으로 가는 길에 만난 부부는 아마 그들을 가장 크게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어두운 사막속에서 비슷한 몰골로 여행을 하던 그들. 그렇지만 한 부류는 여행을 위해 어두운 사막에 있고 한 부류는 생존을 위해 도망치 듯 이 사막을 지나가고 있다.  

 

 곱상하던 에르네스토의 얼굴은 점점 평전의 표지에서 보았던 얼굴처럼 변해간다. 그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이상과 철학을 키워나가고 나병 환자 촌에서 그것을 완성한다. 로시단테에서 내려온 돈 키호테는 산초가 되지 않고 여전히 돈 키호테 였던 것 일까?

 

네, 정말 엿같죠. 매 순간 숨쉬기 위해 싸워야 하니까.. 매순간 숨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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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요 근래에 읽은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하나 말해보라고 하면 나는 이 책을 뽑을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시점에 가장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기는 하다.) 책이 재미있거나 수 많은 정보를 담고있는 그런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 었다고 말하고 싶다. 책은 노화와 죽음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라는 '웰다잉'을 다루고 있기 보다는 죽음에 이르기 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웰리빙'을 담고 있는 책인 것 같다.

 

 사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노화와 죽음이라는 것을 일상 생활에서 마주 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그런 것과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병원이나 요양원 등 사회와 '격리' 된 공간에 존재하여 분명 존재하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일상 생활에서 마주치지란 쉽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30대 초반이라는 나이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조부모님과 함께 살지도 않았고 다들 굉장히 어린시절 돌아가신 터라 두 가지를 가까이서 대 해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또한 말 그대로 어떻게 살지에 대한 걱정과 고민만 가득한 덕분에 늙어감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생각해 볼 여유도 없고 피하고 싶기도 한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매우 충격적이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늙어 가고 있다. 비록 갑작스럽게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내일도 오늘처럼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이고 나 혼자 씻을 수도 옷을 입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늙는다. 그리고 언제 죽을 것이다. 이건 모두가 알지만 피하고 싶은 진실 일 것이다.

 

 책은 먼저 나이 듦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다양한 사례들을 들어 노화에 따른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읽는 동안 굉장히 끔찍하고 괴로운 일었다. 내가 저 상황이 된다면? 개인이 가지고 있던 세계가 부서지고 더 이상 내가 살아가던 생활 방식으로 살 수 없게 된다면? 그저 내가 짐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면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2. 나이 듦에 대해

 

할머니는 서서히 병약해져 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아 왔던 대로 계속 살아갈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원하는 대로 '진정으로 살 수' 있었을 거라는 얘기다.

 

 우리에게 나이가 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나이가 꽤 들어도 건강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해서 허약해 질 것이고 질병에도 더 자주 걸릴 것이다. 그리고 관절염 따위가 찾아와서 더 이상 혼자서 걸을 수도 없을 지도 모르고 이렇게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 될 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럭저럭 혼자서 혹은 배우자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맙소사 어느날 치매까지 와 버렸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나도 모르게 쓰러져서는 다리 뼈마저 부서졌다!

 이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 스스로 혹은 자녀들의 권유로 나와 같은 노인들이 가득한 요양원으로 가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정말 최선의 선택일까? 

 

 사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인들이란 환영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닐 것이다. 예전에는 노인들은 그야 말로 살아 있는 정보의 보고였다. 그들이 살면서 축적해온 경험과 지혜 등은 그 아들 대에도 유효한 것이다. 과거에는 모내기를 하는 시기나 방법을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 물어 보고 마을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고장에서 오래 살아 강력한 커뮤니티 파워를 가진 이들을 찾아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 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노인의 지혜를 찾기 보다는 구글을, 페이스북을 트위터를 찾는 것이 훨씬 빠르고 신뢰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 할 것이다. 이로인해 현대 사회의 노인은 그야 말로 생산성은 떨어고 건강 유지나 치료에 많은 비용이 소모되는 비 효율적인 존재로 취급되기 쉽상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그런 이들을 요양원이란 이름의 수용소로 그들을 격리 시켜 버린 것은 아닐까?

 

 요 근래 우리나라에도 많은 요양원들이 생겨났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한다. 물론 나는 그 곳에 단 한번도 방문해 본적이 없어 그것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책의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해보자면 일반적인 요양원은 노인들을 고장이나 폐기직전의 고철기계 취급을 하는 것이다. 당장 부서뜨리거나 버릴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나사를 조이고 기름칠을 해서 유지만 하려는 듯 보인다. 그들은 인격체가 아니라 그저 관리를 해야할 대상으로 대한 다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당연히 사람들이(노인이 아니다!) 만족 할 리가 없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의 일상생활을 획일적으로 관리하려고 하디니 말도 안되는 일이다.(회사도 아니고 그리고 회사는 퇴근이라도 하지.) 이로인한 반발과 대안으로 미국에는 다양한 대안 단체나 기구 등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3. 죽음에 대해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대신 오늘을 최선의 상태로 살기로 한 결정의 열매를 눈으로 확인했다.

 

 어느 날, 회사에서 2년마다 제공하는 종합검진을 받고 왔다. 나는 의례적으로 하는 검진을 아무런 생각 없이 넘기고 있었다. 나는 매우 건강했고 술은 적당히 담배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규칙적이고 균형잡힌 식사와 더불어 운동도 꾸준히 했기 때문에 건강에 대해서 매우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터라 그런 곳에는 신경 쓸 여유가 더더욱 없었다! 이번 일만 잘되면 초고속 승진은 문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 며칠 밤을 새고 무리한 덕분인지 계속 미열과 더불어 기침을 계속했다. 나는 감기 몸살인가 싶어 한여름임에도 긴팔을 입고 있었다. 부장님은 나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격려를 하며 쉬라고 권했지만 나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 일을 했고, 집으로 검사 결과표가 도착했다. 그러나 회식으로 피곤했던 나는 대충 뜯어보곤 책상위에 던져 둔 채 잠을 청했다.

 

 다음 날, 회사에서 일하는 나에게 전화가 왔다. 담당 간호사는 심각한 목소리로 나에게 폐 검사에서 이상한게 발견 되었으니 재검을 받으러 오라고 했다. 그리곤 단순한 착오 일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은 말라고 했다. 걱정이 된나는 최대한 재검일정을 빨리 잡고는 병원으로 향했고 의사는 재검 결과 폐암 말기로 진단을 내렸다. 

 

 의사는 내게 최대한 긍정적인 태도로 말하는 것 같았다. 수술은 불가했다. 그들은 나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온갖 약물들을 주입하고 치료 방법들을 사용했다. 날 이 갈수록 정신은 몽롱해져가고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은 점점 길어져만 간다. 그런데 병은 계속해서 악화만 되어간다. 그렇지만 담당 의사는 계속 헛된 희망을 나에게 주는 것 같다. 어느 날은 아예 정신을 잃었다. 일어나 보니 나는 중환자실에 있었고 그들은 나에게 심폐소생술을 시쟁했다고 했다. 그리고 몸에는 또 못보던 관이 연결되어 있었다.

 

 위에 글은 그냥 책을 읽었던 기억으로 그냥 내가 지어낸 이야기이다. 물론 의료적으로 틀린 것도 굉장히 많을 테지만 그냥 하나의 예일 뿐이니 넘어가자.

 

 요즘은 정말 환자들이 죽고 싶어도 죽기가 쉽지 않은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모 회장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여러해 동안 살아계시니 말이다. 사실 정말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행해지는 이런저런 치료들이 필요한 일 일까? 물론 환자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충분히 필요 한 일이다. 그러나 결과를 바꿀 가능성이 거의 0%에 가까운 그저 조금의 시간을 벌기 위해 행해지는 치료들로 인해 환자가 오히려 피폐해져 소중한 남은 시간마저 잘 활용 할 수 없게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런 것들을 하기전에 어느 순간부터는 환자의 의사는 대부분 물어보지 않는다. 아니 금기시 되어 환자와 미리 그런것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환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의료진도 환자의 보호자도 제대로 알지 못하니 그거 죄책감 혹은 의무감 등으로 오히려 환자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고통 속에 빠트리고 있지는 않을까?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인체 숨을 거두고 싶은 환자를 억지로 중환자실에 밀어 넣은체 차가운 병동에서 홀로 죽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단편적으로 정리 해놓은 것들을 보면 저자가 '존엄사'를 찬성하는 것 처럼 보일이 것이다. 그런데 사실 책에서 저자는 존엄사를 비판하는 입장이다. 어떻게 죽을 지만 고민하고 죽기까지 어떻게 사는 지에 대한 고민과 대책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호스피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4.마무리

 

 서두에도 썻다시피 굉장히 좋은 책이었다. 책을 읽고 난 이후 마음 한켠이 불편했다. 미뤄두고 싶었던 고민을 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곤 나 개인의 노화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호스피스나 어시스턴트 리빙 등의 대안들이 굉장히 마음에 끌리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들 인 것 같다.

 

 시간을 고민해 보았지만 아직 아무런 그럴 듯한 결론도 내지 못했다. 무엇이 정말 중요하고 우선인지는 그때 가봐야지만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지만 또 누구나 미리 고민을 해보아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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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1984'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책 제목도 알고 내용도 대충은 알지만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는 누구나 알지만 완독을 한 사람은 많이 없는 '고전명작'의 정의에 잘 부합하는 조지 오웰의 또 다른 명저이다.

 

 동물농장은 초기 출간 당시 동물들이 등장하는 우화라는 이유 등으로 어린이 서적으로 분류되기도 했고 후에는 많은 자유주의 진영의 국가에서 대표적인 반공 서적으로 활용 되기도 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작가를 잘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 농장을 공산주의를 풍자하며 비한하는 것으로 알고 있을 텐데요. 물론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저자인 조지 오웰은 유명한 사회주의자 이자 무정부주의 자였습니다. 영국 독립 노동당 당원이기도 했던 그는 위험한 좌파 인사로 낙인 찍혀 영국 정부의 감시를 받기도 했죠. 1984도 마찬가지겠지만 비록 동물농장이 당시의 소비에트연방의 인물들을 대입시켜 우화시켜 이야기를 써내기는 했으나, 그는 단순히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을 가르고 공산진영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정의와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주의를 비판 했다고 보는게 옳을 것입니다.

 

2. 줄거리

 

 '메이너 농장'의 주인인 존슨에 의해서 사육당하고 있던 동물들은 평소 존경받던 늙은 수퇘지 메이저(마르크스)의 꿈 이야기를 듣고 농장에서 인간을 내 쫓는 혁명을 꿈꾸게된다. 그리고 메이저는 몇일 후 숨을 거두게 되고혁명은 생각과는 다르게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문득 별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일어나게 된다.

 

 혁명 후 동물들은 행복하다. 농장의 유이한 번식용 수퇘지인 스노볼(트로츠키)와 나폴레옹(스탈린)의 주도로 나름의 규율도 만들어지게 되고 체제를 정비한다. 동물들은 스스로가 농장을 소유 하게 됨으로써 더 적게 일하면서도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누구에게 예속 된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가 자유를 쟁취하고 체제를 설립하게 되었다는데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동물들은 실제로 혁명의 목표였던 모든 동물들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처럼 보였다.

 

 돼지들의 주도로 교육도 이루어지며 동물들은 날이 갈 수록 행복해진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행복의 이면에는 돼지들의 탐욕이 조금씩 숨어있다. 존슨이 자신의 농장을 되찾기 위해 침입하지만 스노볼과 복서의 활약으로 물리친다. 그 후 농장의 주도권을 다투던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농장에 풍차를 건립하는 일로 대립한다. 그리고 결국 나폴레옹은 교육을 명목으로 육성하던 개들(비밀경찰)을 이용하여 스노볼을 축출한다.

 

 이 문제에 대해 몇몇 동물들이 문제를 제기하나 개들과 이미 매수된 양들(언론), 스퀼러(몰로토프)를 이용하여 불만을 잠재운다. 나폴레옹은 쏟아져나오는 문제와 불만들에 대해 스노볼을 반역자로 규정하고 문제가 벌어지는 온갖 문제를 스노볼의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 존슨이 돌아온다고 위협하기도 하며 자신의 권력을 강화한다.

 

 동물들의 삶은 점점 힘들어져 간다. 그에 비해 돼지와 개의 삶은 오히려 점점 풍족해지는 것 같다. 풍차는 2번씩이나 무너졌고 존슨의 침입은 한번 더 있었다. 많은 동물들이 죽고 다쳤다. 조금 똑똑한 동물들은 나폴레옹이 혁명 초에 세웠던 규율을 위반한다는 의심을 가지지만 어쩐 일인지 규율에 어떤 단서들이 달려 나폴레옹의 행동을 정당화 하고 있었다.

 

 결국 나폴레옹 동무의 말은 옳다와 내가 더 고생하면 되지 라는 신조를 가지고 일을 하며 다른 동물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던 복서는 결국 병이 나서 쓰러진다. 그리고 치료를 위해 동물병원으로 간다는 이야기와는 다르게 도축업자에게 팔려간다. 많은 동물들의 분노를 일으켰던 이 일역시 스퀼러의 노련한 언변술로 금새 잊혀지고 만다.

 

 결국 돼지들은 일부 인간이 아닌 다른 농장의 주인들까지 농장으로 불러들여 파티를 벌인다. 그리고 그 파티 속에서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3. 감상평 및 맺으며

 

 책은 서두에도 썻다 시피 소비에트연방의 인물들을 대입시켜 우화로 만들어 독재정권을 비판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어디서 많이 본 모습 같다.

 높은 고위 공무원 양반이 이 책에서 가장 고위 권력층인 "개, 돼지" 라고 시민들을 비유했던 어느 나라와 무척이 닮아 있는 농장이다.

 장미 및 비전과 공약들을 제시 했지만 권력을 잡자 그런 것들은 모조리 폐기 시키거나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바꿔버렸다. 그리고 언론들은 헛소리만 하며 정부가 불러준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많은 문제들은 북쪽의 깡패 국가 탓으로 돌린다.

 사드와 같이 매우 중대한 시설을 설치하는 일은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설치지역에 공청회나 설득 작업을 전혀 진행하지 않고 한 사람의 의지로 진행시켜 버린다. 그리고 북쪽 깡패들의 위협을 받고 싶지 않으면 시민들에게 다른 대안을 내놓으라고 겁박한다.  

 결국은 우리는 이 속에서 복서처럼 미친 듯이 노력을 하며 살아 봤자 도살장으로 끌려갈 운명이란 말인가?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다음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빌며, 1945년 거의 나온지 70년 씩이나 된 책에서 오늘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에서 이 책이 과연 명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낄 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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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한때 베스트셀러로 많은 이들을 꿈꾸게 해주었고 여전히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에게 권해지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사실 저자는 파산 신청을 했다. 돈 없어서는 아니고 황금만능주의가 매우 뿌리 깊게 그의 도덕에 자리 잡은 것 같아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이래도 돼? 라는 생각이 무지하게 많이 들 것이다. 재테크 서적을 권할때 늘 하는 말이지만 어떤 것이든지 맹신해서는 안되고 스스로 고민해서 취사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내가 재테크와 돈이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많은 지인들이 알고 있어 가끔씩 어떻게 재테크나 주식을 할지 물어 보는 사람이 있다. 그럴때 마다 언제나 물어보는게 소위 굴릴수 있는 '돈'이 얼마냐 있냐고 물어보고 그 다음으로는 공부를 하라고 한다. 그때 처음으로 읽어보라 추천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2권은 읽지 말자.)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학교도 부모님들도 돈에 관해서는 따로 교육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는 금융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금융지식도 거의 바닥수준이다.

 그런점에서 이 책은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일부나마 보충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돈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가질 것인가와 Cash Flow의 중요성, 투자와 소비의 차이,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채와 자산의 차이점을 구분하는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 책 내용

 

 책에서 말하는 목표지점은 이렇다. 일단 부채와 소비를 줄여 자산을 키운다. 그리고 거기서 생기는 수익율로 소비를 하고 부채를 충당하고 오히려 자산을 불려 새앙쥐레이스(노동 소득에 의존하는 생활) 에서 빠져나와 아름답고 빠르게 은퇴한다! 그야 말로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닌 돈을 일시켜서 돈을 번다!

 

 와우! 굉장히 쉬워보이지 않나? 마치 내일 당장이라도 이 책을 읽고 난다면 금새라도 부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여긴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고 지금은 21세기인데다가 몇 달전에 있은 브렉시트로 인해 경제가 휘청휘청하고 있는 시대임을 기억하자.

 저자의 투자에 대한 경험담과 어떻게 세금을 피할 것인가 대해서 내용들이 나오지만 이런것은 아 그럴 수도 있구나 정도로 듣고 넘어가고 책에서 나오는 중요한 개념들을 정리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고 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자산과 부채의 차이를 이해한다.

 부자가 되는 첫걸음은 바로 이 둘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부자들은 자산을 만들어 증식시키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부채를 만들고는 이를 자산으로 인식한다. 자산은 손익계산서에서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부채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마디로 자산은 자본소득을 올려주는 것이고 부채는 자본손실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그럼 집은 자산일까? 부채일까?

 집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집은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지. 사실 재무재표의 정의로 따졌을 때는 "자산=자본+부채" 이니 틀린 만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정의하는 바로는 그렇지 않다. 집은 나에게 아무런 소득을 올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재산세 등 세금이 나오고 관리비가 나오고 내 능력보다 비싼집이라도 샀다면 다달이 이자도 내야한다! 그야 말로 가장 큰 부채이자 원활한 현금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이다!

 아니! 그렇지 않아! 내가 산집은 집 값이 올랐다고! 라고 외치고 싶은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집팔고 딴집 갈 것인가? 딴 집가봐야 비슷한 조건이면 다 올랐다.

   

 그럼 대체 자산을 어떻게 늘리라는거야?

 그것을 위해서는 소비와 투자를 구분하면 된다!

 누굴 바보로 알아? 뭐 그런걸 또 구분해? 라고 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가자의 개념에 대해서 착각을 한다.

 

 소비는 자산을 줄이는 행위이다.

 투자는 자산을 늘이는 행위이다.

  

 굉장히 재무적인 마인드다. 어떤이들은 무언가를 사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건 나를 위한 투자야! 실제로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만족감이라는 효용을 얻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이런 재충전을 통해 생산성 향상 및 열정을 되찾아 본업에 충실하여 더 큰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솔직해지자 직장다니면서 휴가 다녀와봤다면 출근 하는 날 어떤 기분인지 다시 떠올려보자. 이때 그 달의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쓴다면 기존의 자산을 깍아 먹을 뿐만아니라 빚내서 간다면 부채까지 생겨난다.

 

 만약 이럴 돈으로 저금이라도 한다면? 다만 몇프로라도... 정말 쥐꼬리 만큼이라도.. 이자라는 명목으로 돈이 들어오긴한다. 그리고 그만큼 자산도 증식하게 된다. 이것이 복리의 효과로 반복 되다보면 자산은 점점 쌓이고 그만큼 수익률도 점점 커지게 되고 그야 말로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돈이 수억 되지 않는한 1% 금리로는 무리다 무리...)

 

 사회 초년생들이 흔히 고민하는 차로 가보자. 차를 사는 것은 투자 행위일까 소비 행위일까? 복잡하게 써놓기는 했기만 좀 쉽게가자 투자는 그 돈을 썻을 때 나에게 돈을 벌어줄 '가능성'이 있는 행위이고 소비는 그럴 가능성이 없는 행위다. 내가 영업직이라 꼭 필요하거나 운수업에 종사하여 차량 운행하는게 곧 소득이 되지 않는한 차를 하는 것이 투자 행위가 되기란 요원해 보인다. (개인의 만족감은 어디까지나 별개다)

 사실 뭐 소비까지는 괜찮다. 밥먹고 살자고 다 하는 짓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를 안하고 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부채가 될 때이다. 일회성 소비는 당연히 부채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차량의 경우는?

 저자는 이런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써먹는 방법인 바로 법인차량으로 등록하는 것이다. 회사의 자산으로 나의 개인차량을 등록하고 기름 값 등을 회사의 비용으로 편입하여 회사의 비용으로 처리하여 세금을 줄이는 행위다. (이러지 말자.)

 

3. 맺으며

 

 자산, 부채, 소비, 투자를 구분 할 수 있게 되었다면 이 책을 읽은 목적의 50%는 달성 되었다고 생각한다. 돈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할 생각이 생겼다면 저자의 의도가 아마 99%는 달성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끊임 없이 공부하라고 한다. 금융지식, 법률 시스템 등을 공부하여 모두들 새앙쥐레이스에서 탈출하기를 기도한다.

 

 가끔씩 직장 동기들이랑 서로 얼마씩 모았는지 물어보고는 한다. 그리고 때때로 나한테 어떻게 그렇게 많이 모았냐고 물어본다. 그러면서 재테크 하는 방버이나 추천하는 펀드나 주식 등을 물어보기도 한다. 사실 그럴때마다 조금은 황당하다. 받는 돈이 다른 것도 아니니 돈을 모으는 방법이야 간단하다.

 

'버는것 보다 적게 쓰면된다.'

 

 벤저민 프랭클린도 말했고 모두가 아는 금수저나 천재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자산이 적을 때는 자본소득 보다는 노동소득이 훨씬 클수 밖에 없다. 몇 십프로의 투자 수익률을 얻기 위해 고민하고 리스크를 감당하며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차라리 담배를 끊고 술을 덜 마시는게 훨씬 자산을 증식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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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개인적으로 자기계발 서적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모든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 우리시대의 사회적 멘토로 추앙받는 인물들이 쓴 자전적 이야기나 혹은 청년들에게 건내는 충고 또는 위로를 담은 내용의 책들은 매우 싫어하는 편이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나서는 사실 이 책이 왜 자기계발 분야에 분류 해놓았는지는 당최 이해를 못하겠다.

 우리나라의 대표 진보적 학자인 조국교수의 책을 읽을까 말까 굉장히 망설였다. 일단 책 제목부터 시작해서 굉장히 자극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출판사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었던 것은 일단 저자의 서문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정치인도, 시민운동가도, 철학자도, 구도자도 아닌 구저 공부하는 사람 학인으로 한정 했기 때문이다. 계속 무언가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도 가끔 내가 왜 이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똑똑한 사람은 무언가 알 고 있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감 말이다.

 

2. 책의 내용

 책은 크게 4개의 목차로 나눠져있다.

 

 1. 호모 아카데미우스 - 공부하는 인간

 2. 호모 레지스탕스 - 저항하는 인간

 3. 호모 쥬리디쿠스 - 정의로운 인간

 4. 호모 엠파티쿠스 - 공감하는 인간

 

 일단 이 책은 공부에 대해서 학구적으로 탐구하는 책은 아니니 혹시 그런것을 기대하는 독자는 얼른 다른 책을 알아보는게 좋을 것이다. 저자의 공부에 대한, 사회에 대한, 인간에 대한 개인적 관점 혹은 철학을 담고 있는 책이다.

 책 초반에는 자소서에서 많이 볼 법한 내용이 많이나온다. 평범한 중산층에서 태어나 엄한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밑에서... 뭐 이런 내용이 나는 공부가 좋아서 공부를 잘했다. 뭐 이런 내용이다. 그리고 자신이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쭉 나온다. 2장부터는 저자 개인의 진보적 성향이 가득 묻어 나오며 어떻게 공부 할 것인지, 우리의 사회는 어떻게 발전해나가야 할지, 개인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은 독자의 성향에 따라서 굉장히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는 내용이니 직접 읽어 보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3. 기억에 남는 문구들 및 감상

 사실 여기에 적는 내용 중 많은 부분을 저자 역시 인용한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그를 보고 부르는 차별적 호칭을 거부한다. 그 호칭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는 '나'가 아닌 어떤 부류에 속한 채 자존감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속한 조직이나 직함 등을 확인다. 학생들은 어디 학교를 다니는지 물어보고 직장인이라면 회사명과 하는 일을 물어본다. 물론 그게 꼭 나쁜일이라고는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그가 속한 조직이나 직함 따위로 그 사람을 먼저 파악하려고 드는게 문제가 아닐까? 내가 다니는 학교 혹은 회사 혹은 기타 조직이 왜 나를 존재를 대변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한자로 '사회(社會)'와 '회사(會社)'는 어순만 다르다.

그러나 두 단어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며 또 달라야 한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신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와 비슷한 맥락의 말 같다. 과연 무엇이 우선인지 우리는 언제나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요즘 사회는 선후가 바뀐 일이 많은 것 같다. 사회의 발전보다 개별 회사의 발전이 우선 시 되기도 하고 국가의 안전과 발전이라는 명목아래 개인의 권리가 부당하게 억압되기도 한다. 그리고 법에서 허용한다는 이유로 혹은 법률이 없다는 이유로 정의가 무시되기도 하는 사회이다.

 

법의 가식에 대해서는 항상 회의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법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결코 냉소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

 

'중용'의 '중'은 '가운데'가 아니라 '정확함'을 뜻한다... 중용은 현실의 부정의와 부당함을 직시하고 그것을 고쳐서 최상·최적의 현실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행동하는 심성과 자세를 뜻한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를 냉소적으로 만들었고, 우리의 영리함은 우리를 딱딱하고 불친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생각은 너무 많이 하지만 너무 적게 느낍니다.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냉소적 거리 두기는 투항과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지성은 죽은 지성'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말들이다. 가끔 인터넷 상에서는 어려운 용어들을 써가며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고 나빼고는 다 쓰레기라고 말하는 양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들은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말 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부당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귀찮아서 혹은 나에게 피해가 올까봐라는 이유로 눈을 감고 외면한다. 그리고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와 말이 통하지 않는 다고 단절적인 태도를 취한다.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인가. 진정 자신이 옳은 일이라고 믿는 다면 이성적이고 지적인 상태가 아니라 감성적인 태도로 설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내가 더 많이 알고 그럼으로 내가 옳다고 무조건 믿고 남들을 배척하거나 설득을 포기는 것 역시 양심에 대한 직무유기 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로마인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균형감각이란 서로 모순되는 양극단의 중간점에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니다. 야극단 사이를 되풀이하여 오락가락하고, 때로는 한쪽 극단에 가까이 접근하기도 하면서, 문제 해결에 가장 적합한 한 점을 찾아내는 영원한 이동 행위가 아닐까?"

 하퍼리의 '파수꾼'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잘 풀어내고 있으니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파수꾼과 세월호)

 

호모 심비우스, 즉 경쟁일변도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 '협력하고 공생하는 인간'이라고 한다.

 

 책에서 굉장히 기억남는 내용이다. 얼마전 메리츠자산운용의 존리 대표의 강연을 들은 적이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교육을 이야기를 하면서 호모 심비우스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시험 문제를 남들보다 한 문제라도 더 맞추는 것을 추구함으로써 같이 공부하는 친구를 경쟁자로 만든다. 협력을 하고 공생을 해야하는 사람이 아니라 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자로 만든다. 이는 굉장히 큰문제다. 알파고가 나와서 이세돌을 이겼다. 이것이 현실이다. 왓슨이 미국의 퀴즈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수능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공부를 해봤자 수능을 제일 잘 푸는 것은 이제 기계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시험 문제를 잘 푸느냐가 중요한 것일까?

 옆의 친구와 얼마나 잘 지내고 그것을 통해 협력하고 공생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포기하지 말고 체념하지 말고,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한 걸음을 내딛자

 

 책에서 이야기 하고 싶은 내용을 한문장으로 요약하면 이게 아닐까? 어설프게 위로하며 이 모든 것은 지나가리가 아니라. 버티고 어떻게든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라... 

 

P.S 그런데 법은 왜 공부하나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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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소개

 

 다들 중,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한 번쯤 (비록 완편은 아니지만) 읽어 보았을 김승옥 작가의 단편 소설이다. 내 기억 속에는 수업시간에 이 글에 관해 배우면서도 도통 작가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했던 책이다. 그러면서 책의 내용이 다 실려 있지 않아서 내가 다 이해를 못하는 건가라고도 생각했었다.

 우연한 기회에 소설집을 구할 수가 있어 거기에 실린 단편 소설인 무진기행을 읽어 보게 되었는데.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조차 과연 내가 이해한 것이 정말 저자의 의도일까라는 의문을 가진다. 그러나 하나의 소설을 백명의 사람 읽고 백가지의 의견이 나오면 그는 그대로 좋은게 아닐까 한다.

 

2. 줄거리

 

 무진에는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소설의 주인공은 나는 장인과 부인의 힘으로 제약회사의 전무가 되기 전 부인의 권유로 고향인 무진으로 휴가를 떠나게 된다. 무진으로 돌아가는 버스안에서 두 농촌 시찰원의 대화를 통해 명산물도 그렇다고 너른 평야도, 항구도 없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평범한 고장인지를 들을 수 있다.

 

 나는 아내의 권유로 인해 무진으로 가지만 마음은 영 내키지 않는다. 어린 시절 기억부터 나이가 좀 든 뒤로는 무진행은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새출발이 필요할 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 가서 무슨 새로운 용기나 에너지를 얻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떠밀리 듯 시작된 무진행은 광주에서 내려 기차역을 빠져나올때 미친 여자로 인해 어두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6.25 전란 시절 홀어머니에 의해 거의 강제로 골방에 숨어 징병을 회피하며 스스로를 혐오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무진에 온 후 그는 신문지국에 잠깐 들린다. 그리고 이모 댁에 저녁을 먹을때 후배인 박을 만난다. 그는 문학소년이었고 지금은 모교의 선생님이었다. 피츠제럴드를 좋아하지만 아주 얌전하고 매사에 엄숙한 사람이었다. 나는 박을 통해 친구인 조가 세무서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저녁에 그를 만나러 간다. 그곳에서는 화투를 치고 있는 세무서 직원들과 박과 같이 근무하는 하 선생이라는 여 선생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성악을 전공한(소프라노) 음악 선생님이다. 그리고 무진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말 끝마다 "대학 다닐 때" 를 달고 살며 대학교 졸업연주회 때 <나비부인> 중 <어떤 개인 날>을 부른 것을 자랑스럽고도 무척이나 그리워 하는 듯 하다. 저녁 조의 집에서 벌어진 술자리에서 그녀는 가요인 <목포의 눈물>을 부른다.

 이 모습에 하 선생을 연모하던 박은 슬쩍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고 이를 눈치 챈 나는 박과 대화를 나누지만 박은 그녀가 조가 신부감으로 점찍고 있다는 말을하며 포기를 하려는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렇지만 여긴 책임도 무책임도 없는 곳인걸로. 하여튼 서울에 가고 싶어요. 절 데려가주시겠어요?"

 

 술자리가 파하고 돌아가는 어두운 길, 나는 하 선생의 이름이 하인숙 알게되고 둘은 어두운 길을 함께 걸으며 나는 그녀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녀는 나에게 무진을 벗어나 서울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리고 내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갑자기 나는 이 여자가 나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침 이슬비를 맞으며 어머니의 묘소를 다녀오는 길에 방죽길에서 자살한 술집 여자의 시신과 마주한다. 그녀는 수면제가 아니라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 나는 그녀에게 묘한 정욕을 느끼고는 다급히 자리를 떠난다. 그녀는 그에게 여러가지 상념을 준다.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는 조의 쪽지가 왔다. 그의 세무서로 초대하는 쪽지였다. 나는 마뜩치 않아 하지만 그를 만나러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의 모습을 관찰하고 하 선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의 대답에서 그가 하 선생을 신부감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는 나의 부인과 같이 좋은 신부감을 원한다는 것과 그러면서 그녀가 죽어도 그녀를 찾아올 변변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박이 쓴 연애편지가 그녀의 손을 거쳐 조의 손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 선생님께서 여기 계시는 일 주일 동안만 멋있는 연애를 할 계획이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나는 조와 헤어지고 하인숙과 만나게 된다. 나와 그녀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나는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인숙은 갑자기 서울로 가기 싫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나에게 <어느 개인 날>을 불러준다. 하인숙은 나와 헤어지며 일 주일만 연애를 할 계획이라 말해주고 그 말을 농으로 받아 들인 나는 자신이 힘이 더 세니 그녀를 끌고 갈 것이라고 말한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아내에게서 전보를 받는다. 돌아오라는 내용이 었다. 나는 떠나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지만 떠나기를 결심하고는 하인숙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편지를 완성하고는 몇 번 읽어 본 후 그 편지를 찢어 버린다. 그리고 무진을 떠나간다.

 

3. 감상평 및 맺으며

 

 책에 대한 해설과 감상은 순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임을 밝힌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그대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무진은 어떤 곳일까? 책의 곳곳에서 무진이 어떤 곳인지를 나타내고 있다. 일단 이름 그대로 안개가 가득한 곳, 그럴 듯한 명산물도 평야도 항구도 없지만 많은 이들이 모여 그럭저럭 살아가는 곳, 그리고 자신 외에는 속물로 취급하는 곳, 그러면서도 특이하게도 나에게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거의 감추지 않는 것 같다.

 신문지국을 나가면서도 사람들은 그에 관해 수근수근 거릴 뿐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를 서울과 다르다고 생각하다. 여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나에게 굉장히 솔찍히다. 박도 자신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조도 자신의 속물 근성을 숨기지 않는다. 하선생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그들은 나를 이방인 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서일까?

 

 진에서는 항상 자신을 상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과거의 경험에 의한 조건반사였다.

 

 무진은 소설속에서 나의 고향으로 실존하는 장소로 묘사되고 있지만 나 자신의 관념속에 존재하는 일종의 가상의 공간은 아닐까?

 무진은 내가 버린 일종의 감정들이 집합체이고 안개는 그것을 외부로 부터 숨겨주는 혹은 떠올리지 않게 가려주는 역활을 한다. 박은 나의 과거의 모습을 투영하고 조는 나의 현재의 모습을 투영한다. 그리고 하인숙 그녀는 그를 떠나간 희 혹은 순수한 사랑의 잔재가 아닐까?

 나가 무진의 갔었을 때는 항상 상황이 좋지 않을 때이다. 징병을 피해서 숨을 때, 폐병에 걸렸을 때, 제약회사가 합병 되면서 희와 헤어졌을 때, 그는 무진에 있었고 무진에서 나올 때 마다 무언가를 버리고 나왔다. 일종의 징병을 피했을 때는 친구(?), 폐병에 걸렸을 때는 인간관계, 희와 헤어졌을 때는 사랑...

 그리고 장인과 아내의 힘으로 전무가 되려 무진에 왔을 때는 남아있는 자존심 혹은 부끄러움을 버리기 위해 왔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들이 버려놓은 감정들과 만나고 그 중에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려했던 건 하인숙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사랑일 것이다.

 

내 심장에 남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일단 무진을 떠나기만 하면 내 심장 위에서

지워져버리리라.

 

나는 내게서 달아나버렸던 여자에 대한 것과는 다른 사랑을 지금의 내 아내에 대하여 갖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버렸다.

 

 인숙은 나에게 현실 세계인 서울로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말하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깨달았는지 포기하고 나에게 일주일 간만이라도 여기서 연애를 하자고 청한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온 아내의 전보는 그를 다시 현실세계로 이끈다.

 끝 부분의 나의 독백과 편지 속에서 의문이 풀리는 것 같다. 나는 장인의 힘을 통해 자신을 전무로 승진시키려는 것에 일종의 모욕감을 느끼고 아내와 다투었고 도망치듯 무진으로 왔다. 나는 숨어서 옛날에 버려버렸던 것을 찾고자 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얼마간 찾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실의 전보가 불쑥 타협하자고 손을 내빈다. 그는 타협을 하는 와중에도 희망을 남기려고 하지만 결국은 그것 조차 자신의 손으로 찢어 버린다. 그는 다시 현실과 타협하고 무진 밖으로 향한다. 그는 과연 무엇을 버렸을까?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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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소개

 중고시장에서 10배 넘는 가격에 거래되던 바로 그 책! 이라는 자극 적인 표지에 묶여 있는 책을 집어 든 것은 벤자민 그레이엄이 썻던 "현명한 투자자" 와 비슷한 이유도 있었고 왠지 밑에 붙은 부제(?)에서 세스 클라먼의 "Magin of Safety" 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책은 내가 예상 했던 것과 거의 맞아 떨어지는 내용이었다.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와 세스 클라먼의 "안전마진"을 굉장히 쉽게 그리고 주식을 위주로 설명해 놓은 책이다. 현명한 투자자와 안전마진은 채권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것들을 비교 분석 할 뿐만 아니라 특히나 현명한 투자자의 경우에는 수 많은 예시와 복잡한 산식으로 초보 투자자를 압도하여 질리게 해버린다면 이 책은 굉장히 편안하게 다가오면서도 어떤 철학을 가지고 주식 투자를 할 것인가에 대한 맥을 집고 있다.

 

2. 주요 내용

 

 책의 주요 내용을 3개로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① 주식 투자를 해야하는 이유

  - 도박, 경마, 복권, 예금, 외환예금, 부동산 그리고 주식투자

 

 ② 주식 투자를 하는 방법

  - 기업의 가치란 무엇인가 그리고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방법, 안전마진의 개념

  - 어떤 주식이 좋은 주식일까?

 

 ③ 주식 투자시 필요한 철학 혹은 마음 가짐

  - 감정의 덫에 걸리지마라

  - 주식 투자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찬찬히 그리고 일부 내용을 소개하자면 왜 주식 투자를 해야 하나?

 저자는 위에 예시한 것 중 주식투자가 수익을 거둘 확율, 그리고 수익율의 크기, 투자의 편리함이 가장 크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도박, 경마, 복권은 수익을 거둘 확율이 낮다. 아니 수익을 거두는 자체가 수학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저 모임을 주체하는 주체측이 투자자금의 상단 부분을 자신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운좋은 0.1퍼센트라고 주장하면 할 말이 없다.)

 예금은 안전하지만 수익율이 별로인데다 거기에 세금까지 떼어간다. (실상 물가상승률로 봤을 때는 마이너스다.), 외환 예금은 수익율은 높을 수 있으나 역시 중개 수수료가 높고 세계경제와 투자하는 타국의 경제 사정에도 밝아야 함으로 위험도가 크고 수고가 많이든다.

 부동산은 일단 자본의 크기가 커야 한다. 거기에 중개 수수료, 재산세 등의 세금이 추가 되고 공실등의 위험도가 있다.

 하지만 주식은? 주식도 중개 수수료를 내야하고(앞에 예시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다.), 환금성도 좋고 많은 자본이 투입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다. 거기다 영어를 물라도 우리나라로 치면 한글과 숫자를 알면 정보를 모으는데 큰 문제는 없을 수 있다. 조금 의견을 추가하고 각색하기는 했으나 이런 이야기를 저자가 한다.

 

 자 그럼 자세히 보면 위에서 설명하지 않은 내용이 있는데.

 "그럼 주식은 위험이 없다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주식도 투자한 것에 비해 주가가 떨어지거나 최악의 경우 회사가 도산해버려 주식이 종이쪼가리가 될 위험이 충분히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위험을 관리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도입되는 개념이 기업의 가치와 안전마진이라는 개념이다.

 

 주식이나 사업이나 돈을 버는 원칙은 간단하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그럼 대체 어떻게 싸게 사야한다는 것인가? 싸게 사기 위해서는 물건의 가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주식의 가치를(주식의 타당한 가격, 적정 가격) 알기 위해서는 기업의 가치를 알야한다. 

 책은 단순하게 기업의 가치를 산출하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사업 가치' 평가 → '재산 가치' 평가 → 부채를 뺀다 → 발행 주식 수로 나눠 한 주의 가치를 산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산식은 이렇다.

 

 {매년의 영업이익 X 10 + 유동자산 - (유동부채 X 1.2) + 고정자산 중의'투자 자산' - 고정부채} ÷ 발행주식 수

 

 이다. 일단 용어만 숙지하고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무재표를 본다면 초보자라도 쉽게 기업의 가치를 예측 할 수있다. (여기서 주의 할 것은 저것은 정확히 기업의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식 투자시에는 어떤 것도 맹신은 금물이다!)

 가치를 구했으면 다음은 쉽다. 바로 현재 주식가격과 내가 계산해낸 주식의 가치를 비교하면 된다. 주식 가격이 내가 계산한 주식의 가치보다 낮다면 그 주식은 "저평가" 된 것이고 그 반대라면 "고평가" 된것이다.

 여기서 저평가된 주식의 가격과 가치의 차이가 바로 "안전마진" 이 된다.

 이 외에도 어떤 주식이 좋은 주식, 매력적인지 평가하는데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 보길 권한다.

 

 세 번째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해준다.

 바로 투자에 관한 철학이자 마음가짐이다. 그는 주식투자 시 감정에 덫에 빠지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주식 투자는 재산 증식을 위한 수단이지 결코 주식 투자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됨을 강조한다.

 주식 투자는 승패를 가리는 승부가 아니다. 기업의 가치가 아닌 개인의 감정에 덫에 빠져 매도와 매수를 반복한다면 결국 손실이 발생 할 수 밖에 없다.

 

3. 감상평 및 맺으며

 

 책은 이제 막 주식투자를 시작하려는 초보에게나 현재 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한번쯤은 읽어 보도록 추천 할 만한 책이다. 초보투자자에게는 어떤 기준으로 투자를 하면 좋을 지에 대한 간단한 툴과 철학을 제시해주고 기존 투자자들에게는 다시 한번 자신의 투자 습관과 방법을 돌아보게 해줄 수 있는 책 일 것이다.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워렌 버핏 등의 영향으로 "가치투자"를 신봉하지만 사실 그 개념을 정확히 아는 사람과 실천하는 사람은 드문게 사실 인것 같다. 타인의 추천으로 혹은 그냥 좋아보여서 투자를 했다가 조금만 오르면 팔고 떨어지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다 손실을 키우는 사람을 주변에서 보기도 한다.

 실제로 브렉시트 당일 날 추락하는 주가를 보며 담대하게 주식을 그저 홀딩하거나 오히려 사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었을까? 기업 가치에 대한 확신과 자신의 주식투자 철학이 명확하지 않다면 결코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는 오히려 떨어졌던 주가가 다 회복되는 이상으로 오히려 상승 중이다. 유동성이 풀려 갈 곳 없는 돈이 주식시장으로 몰려와 머니게임이 벌어진다고 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럴 때 일 수록 감정을 배제한 정확한 판단과 철학이 필요한 시점일 것임으로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절대적인 내용이 아니고 하나의 방법이다.

 절대적인 방법으로 신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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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읽은 소감
 책은 미국의 남북전쟁이 발생하기 이전 남부지역에 노예제도가 존치하고 있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실제로 북부에서 태어나 자유민으로 살다 불법적인 납치로 인해 남부지역에서 노예로 살아야 했던 흑인 작가의 실제 경험을 엮어 낸 책이다.
 작가는 납치 된 이후 노예 생활 동안 3명의 주인과 2명의 중개인을 만나서 힘든 노예 생활을 이어 나간다. 작가는 자신의 노예 시절의 생활과 자신의 느꼈던 감정등을 자세히 풀어내고 있어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잘 느끼지 못했던 노예 생활의 비참함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책을 통해서나마 생생히 느껴 볼 수 있는 시간이 었다. (비록 범죄 행위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일부 섬등지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노예로 만들어 사용한다는 점은 매우 큰 충격적으로 느껴진다.)

2. 줄거리
 책의 주인공이자 저자인 솔로몬 노섭은 미국 북부 뉴욕 인근에서 태어난 흑인 자유민이었다. 그는 결혼을 했고 딸도 있었으며 바올린을 잘 연주 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비록 일용직 노동자 처럼 생활 하기는 했지만 가정이 있고 희망도 품은 채 나름 대로의 행복한 삶을 영위 해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일감을 구하던 중 공연을 한다는 두 사람의 제안에 워싱턴으로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약물에 취해 납치를 당하게 된다.(그는 노예제도가 존재하는 남부로가는 길에 세관에서 자유민 증명서를 발급 받았지만 납치당하는 와중에 분실 혹은 강탈을 당하고 만다.)
 그 이후로 악몽 같은 나날이 이어진다. 납치 당한 후 일종의 노예 중개상인 제임스.H.버치의 노예 수용소에 갇힌 노섭은 자신이 자유민인 것을 주장하며 풀어줄 것을 요구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혹독한 매질 뿐이었고 그는 그 이후로  자신이 자유민이었다는 사실을 숨긴채 이름과 자유를 잃어 버리고 플랫이라는 노예로 살아간다.
 노섭은 수용소에서 여럿의 다른 노예들을 만났고 그들의 사정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그 후 남부로 옮겨져 팔린 플랫은 3명의 주인을 만나 12년 간의 긴 노예 생활을 이어 나간다.
 첫 번째 주인인 윌리엄 포드는 매우 친절한 사내였다. 그는 비록 그렇게 태어나고 교육 받은 덕분인지 노예 제도에 대한 의문이나 그 정당성에 대한 반감은 없었지만 흑인 들을 "비싼 가축"이라 취급하지 않고 그들도 나름의 권리와 인격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한다. 플랫은 그 생활 동안 비록 자신이 노예 신분이는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을 한다. 비록 이 생활 동안 정말 폭력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 기간 동안 만큼은 매질에 대한 이야기나 혹은 목숨을 위협 받았던 이야기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주인은 존 티비츠 이다. 그를 주인으로 불러야 할 지는 약간 의문이 들기는 한다. 플랫은 자신의 원 주인이었던 윌리엄 포드의 빚으로 인해 일좀의 담보물 대신에 존 티비츠에게 맡겨졌다. 이를 통해 그가 비록 노예 생활기간 중에 약간의 행복한 시간을 경험하고 그의 주인이 다른 주인 들에 비해 좋았을 지라도 어쩔 수 없이 일종의 물건 취급 받았다는 사실을 엿 볼 수 있다.
 존 티비츠는 그 전 주인과 같지 않았다. 그는 끊임 없이 노섭을 괴롭히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그는 3명의 주인 중 거의 최악의 주인 중 하나로 봐도 무방 할 것 같은데 최소한 다음에 나올 주인도 플랫을 괴롭히고 매질을 하기는 했지만 매우 비싼 노동력 혹은 물건으로 취급하며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았으나 티비츠는 그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꺼리낌 없이 플랫을 죽이려 했다.
 플랫은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는 오히려 가끔 폭력을 방어하며 도망치기도 한다. 다행히도 그를 아꼈던 원래 주인의 노력으로 다행히 목숨을 건진다.
 세 번째 주인은 에드윈 엡스이다. 자그마한 농장의 주인이자 플랫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엡스는 존 티비츠 만큼이나 폭력적이다. 그는 곧잘 술에 취해서 자신의 "비싼 가축" 들에게 폭력의 행사하기도 하고 자신의 부인과의 관계로 인해 여자 노예인 팻시를 괴롭히기도 한다. 이 장에서는 목화 농장과 사탕수수 농장의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노예들이 얼마나 고된 노동을 했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플랫은 그 동안 계속 탈출을 꿈꾸어 왔다. 그는 당연히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엡스의 노예로 지내는 동안 백인 암스비를 만나 그에게 편지를 전해 줄 것을 부탁하지만 오히려 암스비가 배신을해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한 동안 좌절을 하고 있던 플랫은 캐나다 출신의 배스를 만난다. 그는 미국 전역을 떠돌아 다니다. 플랫이 있던 지방까지 왔고 그는 공공연히 노예제도를 비판하고 다닌다.
 그에게 희망을 느낀 플랫은 그에게 자신의 사정을 말하고 편지를 보내 줄 것을 부탁한다. 사정을 들은 배스는 자신이 편지를 전해 줄 것을 약속하고 최선을 다한다. 결국 그의 편지를 받은 가족들은 플랫을 구원하고 그는 자유와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비록 그를 납치했던 인물과 팔았던 인물들이 노섭이 생각했던 정당한 처벌을 받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3. 느낀점
 책은 노예 생활의 비참함을 잘 보여주기도 하지만 사회에서 인간이 어떤 사회에서 태어나고 교육 받고 자라느냐에 따라 인간의 행태가 얼마나 바뀔 수 있는 지도 보여준다. 실상 지금에서야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지만 노예제도 하에서 노예에게 권리와 친절함을 베푸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들을 가축으로 여기며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을 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예제도가 정당하다고 느끼며 그 체제 자체에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들에게 예속되어 살아가는 노예들 역시 그런 비슷한 생각을 가진 듯 하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몰이꾼이라는 일종의 노예를 감시하는 노예였다. 약간의 특권을 이유로 다른 노예를 매질하는 충격적인 모습이 현대사회의 그것과 비슷해 보여 충격적이면서 안타까웠다.
 그런 한편으로는 최악의 노예들도 크리스마스 인근 몇일 만큼은 휴가가 주어졌다는 것과 안식일(일요일)에 노동을 하면 그 대가가 주어지기도 했다는 점이다. 비록 노예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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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제목부터가 우울한 이 책의 주인공은 잠깐의 행복만 주어 질 뿐 작가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나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불행에 시달린다.

 

 세장의 사진으로 시작하는 책은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난 요조라고 불리우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세 장의 사진은 분명 같은 주인공을 찍어 놓은 것 같으나 그 생김새가 사진마다 너무나 달라 도무지 같은 인물이라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세장은 사진은 앞으로 이어질 내용을 암시한다. 책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며 주인공이 인간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독자들을 괴롭히려 하는 것 같다.

 

 요조는 좀 처럼 인간이라는 존재에게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가장 가까운 그의 가족도 어린 소년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어린시절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인지 자신만의 가면을 쓴 채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달하고 정작 자신은 불행하지만 다른이들은 그런 요조의 모습을 좋아하며 호감을 느낀다. 다만 고향에서는 비록 알맹이가 빠진 관계들이기는 했으나 다케이치를 만나 가면 뒤 자신의 모습을 일부를 보여주기도 하며 화가라는 것을 하고 싶어 하게 된다.

 

 요조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두려워 하며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상하게 거절하는 법이 없다. 또한 특히 여자들은 이런 요조의 모습에 끌리는데.

 

 고향을 떠나 도쿄로 가면서 요조는 본격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한다. 미술 공방에서 호로키를 만나 술과 여자, 공산주의를 배우고 이를 인간에 대한 공포심을 잊게해주는 도구로 사용한다. 그러나 호로키는 다케이치 처럼 결코 좋은 친구는 아니었는데 그는 언제나 요조에게 자신이 필요한 것만 얻어 갈 뿐 중요한 순간에는 외면해버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요조는 술집 여급과 동반자살 소동 이 후 점점 더 큰 불행에 빠진다. 이 사건 이 후 경찰에 구속되고 고향의 아버지와 절연하게 되며 호로키로 부터도 일종의 하급 인간 취급을 당하게 된다.

 

 여전히 여자들은 그를 좋아하고 감싸준다. 그러나 요조는 그런 여자들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었다. 술에 쩔어 있을 때 만난 이제까지는 한번도 만나본적이 없던 어린 처녀인 요시코와 만나게 되고 그녀의 인간에 대한 순수한 신뢰에 반하여 결혼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잠깐의 행복은 더 큰 불행을 불러오는데 그녀의 인간에 대한 순수한 신뢰 때문에 그녀는 겁탈당하게 되고 그녀가 가졌던 신뢰가 더럽혀 졌다는 생각에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경에 이르고 요시코가 준비해 두었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술 대신 약에 취했던 주인공은  결국 정신 병원에 가둬 지며 사회에서는 인간으로써 실격처리가 되어 버린다...

 

인간, 실격

이제 저는 완전히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책을 쓴 다자이 오사무는 실제로 꽤나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는 삶을 사는 동안 5번의 자살을 시도했고 4번의 실패 끝에 5번째에서야 숨을 거둘 수 있었다. 작가의 삶은 요조와 굉장히 닮아 있는데. 작가는 역시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났으나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획득한 집안 내력에 혐오감과 죄의식을 평생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덕분에 그의 생애를 알고 나면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다.

 

 대체 무엇이 요조를 그리도 불행하게 만들었을까?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밥먹는 평범한 일상에서 조차 고통을 느낀다. 타인을 제대로 신뢰하지도 못한다. 그것이 불행의 큰 원인 이었을까?

 사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소위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점점 더 인간성을 상실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다. 돈 벌이를 위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도구로 취급하고 있는 않을까?

 

신께 묻습니다. 무저항은 죄가 되나요?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세상에서 딱 하나 진리 같다고 느낀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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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 못하네......

 

 피 냄시와 그리고 왠지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시작한 책은 이 책이 혹은 저자의 의도대로 나를 나의 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해 긴장하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한편의 소설이었다. 그래서인지 읽다가 계속 중간중간 일부러 딴 짓을 하게 만들었던 책이었다.

 

 책은 왜 대체 다윈의 유명한 책이었던 '종의 기원'과 같은 제목을 썻던 것일까? 스포를 약간 하자면 책은 사이코패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매력적이고 젊은 그리고 부유하면서도 로스쿨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지적인 사이코패스...

 

유진의 심장을 뛰게 하려면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일지 몰라 겁이 난다.

 

 과거 어느 글에서 보았던게 사실이라면 현대이건 고대이건 간에 거대한 사회 조직에세 높은 위치에 올라가면 갈 수록 사이코패스적 특징이 성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보았었다. 그럼 진화론적 관점에서 '악'은 생존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 었을까?

 

발작 이후 벌어진 사건들과 잃어버린 기억들을 탐구하는 주인공(유진)의 심경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거대한, 그러나 죄책감 없는 악의 기원을 밝혀가는 과정이 숨막히게 그려진다.

 

 과연 이 '악'의 기질은 유전적으로 물려 받은 것이 었을까? 아니라면 억지로 억압되었던 것이 폭발하면서 일어났던 반작용이 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작가는 미묘한 줄다리기를 하며 나에게 막판까지 고민거리와 긴장감을 던져 주는 소설이었다.

천진난만하게 즐거워하는 눈이었다.

 이렇게 묻는 눈이었다. 너 아직도 안 죽은 거야?

 

P.S 사실 내가 동생의 입장에서 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순간적으로 여기서 나오는 형인 유민(형)이 오히려 영악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일순간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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