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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사실 영화를 보러가기 전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를 하나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 그냥 외계인 나오는 SF 영화인 줄 알고 보러갔었다. 내가 일반적으로 외계인이 나오는 SF영화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는? 스타워즈 아니면 E.T다. 그런데 이 영화는 둘다 아니다. 스타워즈처럼 빵빵 하며 다 터지는 영화도 아니고 E.T처럼 외계인과 인간의 교감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고 하기에도 무언가 좀 모자란 느낌의 영화였다.

 

 그렇지만 영화 자체는 매우 재미있었다. 영화의 시작 부분은 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으로 시작하였지만 끝에 다다라서는 '아!' 하는 감탄사를 뱉어내기에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2. 줄거리

 

 어느 날, 지구의 12곳에 외계인의 것으로 보이는 쉘이 도착한다. 세계 각국들은 서로 공조하여 이 쉘의 정체와 외계인의 방문 목적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실력있는 언어학자인 루이스가 뽑혀 미국에 도착한 외계인이 있는 몬태나로 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루이스는 이론 물리학자인 이안을 만나는데.

 

 루이스는 외계인과 최초의 접촉 이후 기존의 말로 소통하는 방식에서 필담을 통한 소통 방식으로 소통 방식을 바꾼다. 루이스는 외계인과의 접촉이 잦아 질 수록 환상에 시달린다. 어느 정도 소통이 자유로워지고 루이스가 외계인의 문자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쯤 그들의 방문 목적을 듣게 되는데...

 

3. 키워드1. 언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언어 일 것이다. 루이스와 이안이 처음 만난 헬리콥터에서 이안은 루이스의 책을 읽어준다.

 

"언어는 문명을 이루는 초석이다. 사람들을 하나로 통합 해주는 접착제이자, 갈등을 끝내는 첫번째 무기이다."

Language is the foundation of civilization. It is the glue that holds the people together, and it is the first weapon drawn in a conflict. (정확한 번역인지 사실 헷깔리네요)

 

 루이스는 이안에게 도입부에 어려운 말을 써서 독자들을 압도하기 위해서라는 식의 대답을 건내주고 이안은 이에 문명의 초석을 이루는 것은 과학이라고 가벼운 농담을 건낸다.

 

 여기에 영화의 언어에 대한 관념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루이스는 언어를 화합의 도구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어를 독자를 압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무기 혹은 권력으로 사용 할 수 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 방식이 형성된다는 학설을 이야기 하며 이를 통해 시간을 선형적 흐름으로 인식하지 않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당신은 그들의 언어로 꿈을 꾸고 있는거요?

- 이안 -

 

4. 키워드2. 헵타포드의 언어, 시간

 

 여기에는 굉장히 많은 복선과 상징이 깔린 것 같은데. 일단 헵타포드의 언어는 끝도 시작도 애매한 원형이다. 그들의 문자는 일종의 표의문자로써 시제가 없다는 것을 루이스는 이야기 한다. 그리고 루이스는 아이의 이름을 이와 같이 시작과 끝이 동일한 Hannah로 짓는다.

 

 결정적으로 영화가 끝나는 순간 다시 화면이 영화의 시작부분으로 돌아가야말 할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한다.

 

그들의 언어를 제대로 배우면 시간을 그들처럼 인식할 수 있어요. 다만, 그들의 시간은 한쪽으로 흐르지 않아요.

- 루이스 -

 

5. 키워드3. 우아한 정복자 헵타포드

 

 대체 헵타포드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헵타포드는 자신의 목적을 3,000년 후 인간들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언어(도구? 무기?) 를 전달하기 위해 왔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헵타포드에게 시간의 관념이 없다고 해놓고는 왠 3,000년 후 타령이지?

 

 키워드1. 에서 말했지만 언어는 사고방식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 저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운다면 미래를 볼 수있다고 하는데 과연 누가 그것을 배우지 않을것인가?

 

 영화에 잠깐 나오지만 루이스는 책 출판을 통해 헵타포드의 언어를 전파하는 것 같다. 모든 이들이 헵타포드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3,000년이 지나고 몇 세대를 거친다면 우리는 자연히 헵타포드화 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지구를 식민지화 시키려는 헵타포드의 진짜 아닐까?

 

 영화 속에서 언어는 권력이자 무기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생각하지 못 했을 수도 있지만 의아한 점이 있다. 바로 영어를 제외하고는 모든 언어는 루이스가 번역해서 직접 설명을 해주기 때문이다. 생 장군과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중국어는 자막으로 번역되어 나오지 않고 가끔씩 나오는 다른 나라들의 방송도 자막을 넣어주지 않는다. 지구인들은 불완전한 헵타포드어를 통해 헵타포드화 되고 진정한 권력을(언어) 쥔 헵타포드들은 정복자로 설 수도 있다.

 

 사실 그냥 웃어 넘길 수도 있는 소리이다. 그런데 이게 현실에 존재한다. 그리고 멀지도 않은 명동에서 말이다. 헵타포들이 언어를 주면서 끼워준 무기(시간)는 일종의 미끼이다. 자신들의 언어를 배우게 할 유인책 말이다. 

 

 이것을 현실에 약간 대입시키자면 유커들이 대한민국에 대량으로 들어와서 명동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경제력(=시간)을 미끼로 뿌린다. 그리고 그곳 상인들과 상권들은 그 미끼를 물고 중국어(=헵타포드어)를 사용하거나 중국어를 사용하는 종업원들을 고용하여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수도의 한복판을 소음이나 충돌없이 자연스럽게 파고 들었다. 명동에 중국어 소리가 높아 가면 갈 수록 자연히 내국인들의 발길은 뜸해지고 중국(=중국어)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지니 실제로 점점 하나의 권력이 되어가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을 얻지 않았나? 라고 반문 할 지 모르지만 바뀌는 것은 없다. 루이스는 모든 결말을 알지만 미래를 바꾸지 못했다. (그게 아이에 대한 사랑이든 어쨋든) 그리고 모든 사람이 언어를 배워서 미래를 볼 수 있다면? 물리 법칙처럼 모든 미래는 정해진 것 아닐까?

 (언어학자인 루이스는 이것을 받아들였던 것이고 이론 물리학자인(양자역학의 개념에서) 이안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이혼을 했던 것은 아닐까?)

 

 헵타포드들은 총 한발 쏘지 않은 이제까지 지구 정복을 시도했던 외계인 중 가장 우아한 정복자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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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그 동안 꽤 많은 일본 소설을 읽었지만 이런 느낌의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다. 요시모토 바바나나의 달콤함이나 에쿠니 가오리의 잔잔함과도 그렇다고 하루키의 무뚝뚝함이나 허무함과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간단히 느낀점을 표현하자면 읽는 동안 읽는 맛이 나는 책이었다. 한문체의 고풍스러운 표현과 은근하면서도 관능적인 표현은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어디 까지가 현실인지 구분이 안가는 소설 속 내용처럼 독자를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사실 한 번 읽고는 이 책이 짜임새가 좋은 책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한번 더 읽은 후에야 이 책이 얼마나 처음부터 끝까지 짜임새가 좋은 책인지를 알 수가 있었다.

 

2. 책의 내용

 

 책은 신경쇠약을 앓고있는 시인인 마사키의 여행을 담고 있다. 마사키는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은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세번의 인연을 통해 나라 현 도쓰카와 마을 왕선악 산중에 이르게 된다.

 

 마사키는 이곳에 이르는 도중에 여러가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서양 풍으로 곱게 차려 입은 여인에 이끌려 행선지를 요시노로 정하게 되는데,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 왠 광치어린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내릴 역을 지나쳐 본의아니게 구마노 본사로 향하게 된다.

 

 기묘한 노인과의 만남은 노인의 태도 변화 이후 노인이 떠나버림에 따라 혼자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구마노 본사로 가던 중 노인과 함께 기차안에서 마주쳤던 나비와 비슷하게 생긴 나비에 이끌려 원래의 길에서 벗어나 왕선악으로 들어서게 된다.

 

 나비에 이끌려 한참을 산을 오르던중 밤이 내려앉고 마사키는 길을 잃고 헤메던 중 뱀에게 물려 정신을 잃게 된다. 그리고 엔유 스님의 구함을 받게 되고 그곳에서 또 시간이 달리 흐르는 듯 한 느낌과 더불어 아름다운 여인이 나오는 야릇한 꿈, 그리고 고통스러운 환상에 시달리게 된다.

 

 엔유는 마사키에게 뒤쪽의 암자로는 다가가지 말 것을 경고한다. 그곳에는 나병이 걸린 노파가 홀로 죽어 가고 있음으로 마사키에게 절대로 그곳에 접근치 말하고 하는데. 마사키는 점점 꿈속의 여인에 빠져들어서는 산을 내려가기를 거부한다. 이에 엔유는 강제로 하산 할 것을 명령하고, 보름달 밤 잠이오지 않던 마사키는 몰래 암자로 접근을 하는데...

 

3. 내 마음대로 뽑아보는 키워드

 

 키워드1 :  왕선악 (往仙岳)

 

 저자 히라노 게이치로는 소설속에서 다 일본 지방의 실제 지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직 원래 행선악인 산만은 왕선악으로 고쳐서 사용했는다. 여기서 바뀐 글자의 한문은 다닐 行 → 갈 往 한문에 조예가 깊지 않은 관계로 비슷 한 것 같은데 무엇이 다른지 잘 몰라 사전을 뒤적뒤적 이다보니 왕생(往生)의 의미가 '이 세상을 버리고 저승으로 가서 삶'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것을 생 대신 신선 仙 자로 바꾸면 '이 세상을 버리고 신선계에로 가서 삶' 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왕선악은 현실과는 유리가 된 세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키워드2 : 제비나비

 

 제비나비는 소설 속에서 여러번 등장한다. 먼저 노인과 만났던 기차에서 그리고 구마노 본사로 가던 길에서는 마사키를 왕선악 산중으로 이끈다. 그리고 꿈속의 여인의 머리핀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다카코가 남긴 핏물에서 나타난다.

 

 소설에서 나비는 마치 호접지몽(장자지몽)을 연상시킨다. 장자의 제물론편에서 나오는 이 이야기에서 장자가 깨달은 바는 만물에는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즉 물아일체를 경험하면 꿈과 현실을 구분짓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실 책을 관통하는 가장 큰 하나의 주제를 꼽자면 이것이 아닐까? 마사키는 찰나의 순간 명멸하는 정열을 꿈꾸면서 계속해서 자연 혹은 최후에는 여인과 하나되는 완벽한 순간을 꿈꾼다. 그리고 나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에 등장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마사키를 왕선악(신선계 혹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으로 이끄는 존재가 아닐까?

 

 그때도 지금과 똑같았다. 마치 시간의 흐름에서 튕겨져나와버린 듯한 느낌. 기차안에 잘못 날아든 나비가 기차의 이 칸 저 칸으로 얼마 안 되는 거리를 날아다니는 사이에 하나둘 정차역을 지나쳐버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생전 처음 보는 땅에 떨어졌다는 느낌. - p.34

 

 키워드3 : 강물소리, 두견새 그리고 절, 엔유, 다카코

 

 뱀에 물린 마사키가 깨어난 절, 그리고 그 곳에 머루르는 엔유 스님, 엔유는 어떤것을 깨달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는 폐불훼석이 있은 후 행각을 돌다가 도쓰카와 온천 여숙에서 무슨 일인가를 겪고 활연대오, 이제까지 득도라 믿어왔던 바가 기껏 나한의 경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다카코는 뱀과 인간 여자의 교접을 통해 태어난 아이다. 그리고 눈에는 살을 품고 있다. 그녀도 일반적인 인간은 아니다 일종의 경계에서 살고있는 사람이다.

 

"아아, 괴로워요. 지금처럼 제 몸을 저주한 적은 없었어요. 당신을 이곳에 불러들이고 만 것이 너무도 괴로워요. 제 마음의 반은 제 것, 나머지는 무언지 정체도 모를 무서운 힘의 것, 누군가를 생각하면 만나고 싶어지지요. 아무리 멀리 있어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부르고 말이요. 제 마음이 원하는 것을 무리하게 이루어버리고 말아요."

 

 왕선악은 인적이 끊긴 이후로 시공간이 밖과는 다르게 분리된 채로 흘러간다. 그리고 마사키가 머물렀던 선방은 경계속의 또 다른 경계이다. 마사키는 밤에 물소리를 듣는다. 밤은 소위 음의 기운이 강해지는 시간이다. 현세와 저승의 경계가 조금 더 엷어지는 시간이다. 엔유는 마사키가 물소리를 들었다고 하자 안색이 변한다.

 

 마사키가 들었던 것은 삼도천의 강물 소리가 아닐까? 불교에서 저승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는 강인 삼도천은 삼도내라고도 하고 죽은지 7일 째되는 날 이 강을 건난다고 한다.

 

 마사키는 뱀에게 물리고 정신을 잃은지 사흘째 되는날 깨어난다. 후에 여관주인으로부터 듣는 다키의 이야기에서도 다키도 산속으로 사라지고 사흘째 되는 날 돌아온다. 7일이 다 되지 않은 다키 역시 마사키와 마찬가지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 혹은 서양에서는 림보라고 부르는 곳에 다녀온 것 아닐까?

 

 마사키는 그로부터도 몇일 지나 보름 동안이나 머무른다. 마사키가 머무르는 동안 몸은 매우 빠르게 회복된다. 몸이 빠르게 회복되지만 꿈과 환상도(혹은 현실) 점차 강해진다. 마사키가 머무는 선방은 다시 현세로 돌아갈 수 있는 최후의 경계선 이고 다키코와 그녀가 머무를 암자는 그 반대편에 위치하는 것 같다.

 

 두견새는 그야 말로 저승길 초입의 새이다.

 

 "이 산은 두견새가 퍽 울어대는군요. 아, 지금 또...... 휘파람새니 다른 이름 모를 새들은 모두 이쪽으로 저녁거리를 찾아날아드는데, 두견이만은 이상하게도 항상 멀리서 울지요....... 저는 저 두견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옛 사람이 어째서 저 새를 일컬어 '저승길에서 온 새' 라 했는지 알 듯한 기분이 듭니다.

 

 마사키는 엔유에 의해 쫓겨나 듯 산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아마 다키가 묻혔을지도 모를 묘지를 지나친다. 그곳은 일종의 이승과 저승 혹은 선계의 경계인 듯 오랜시간 경계 머물던 몸은 현세를 견디지 못하는 마냥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키워드4 : 다키, 마사키 그리고 뱀

 

 그럼 대체 다키와 마사키 이 둘은 왕선악으로 간 것일까? 마사키의 경우는 어떻게 왕선악으로 가게 되었는지 그 여정이 잘드러나 있다 그러나 다키는 여관 주인의 말을 빌어 나오기 때문인지 그 여정이 잘 들어나지는 않는데. 몇가지 단서가 있으니 따라가보도록 하자

 

 일단 둘의 공통점이다.  둘은 아름다운 20대였다. 다키는 여관의 주인의 말을 빌리자면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데도 이따금 퍼뜩 놀랄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다. 마사키는 아수라와 같은 출중하게 매력 넘치는 모습을 온몸에 휘감고 있다고 나온다. 그리고 둘은 달도 없는 밤에 왕선악으로 가서는 초승달이 뜨는 밤 (사흘 후) 돌아오고 정신을 차린다.

 

 둘의 차이점은 둘다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으나 마사키는 정렬적인 흙담즙질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다키는 하얗고, 허망하고 청승 맞은 느낌이 드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뱀을 만났다. 뱀은 나비와 동일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왕선악으로 안내하는 길잡이인 동시에 최후로는 왕선악 내부의 이질적인 공간으로 그들을 납치(?) 하는 존재이며 엔유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것 같다. 사실 다키가 산으로 끌려가서 뱀의 아이를 가지고 내려왔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퍼득 떠오른 것은 그리스 신화였는데 마치 제우스가 온갖 동물로 변해 인간세에 내려와서 자기 씨를 뿌리는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뱀은 (악마? 신? 글쎄다 뭐라고 표현하는게 좋을지는 모르겠다.) 아름다운 다키를 유혹해 자신의 아이를 가지게 한다. 그리고 아름답고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또 한명의 인간을 유혹해 왕선악으로 들인다.

 마사키가 선택된 이유는 아름답고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에게는 바로 다키와는 달리 최고의 한 순간을 위해 자신을 불태울 '정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뱀이 다키를 통해 다카코를 낳은 이유는 마사키의 뮤즈 혹은 세이렌으로 활용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뱀의 큰그림???)

 그리고 그 것을 바라보며 인간이 하늘에서 아름다운 한순간 터지는 불꽃이 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불꽃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그 둘을 바라보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과정에서 좀 더 아름다운 재탄생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엔유는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을 알지만 어쩔수 없는 비자발적 조력자가 되었던 것 같다. 마사키가 시를 쓴다는 것을 이야기 할 때 굳어지는 표정이나 애써 산을 내려가라고 하는 권유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마치 구하고 싶지 않았는데 구했다고 말하는 듯한 문장.

 

 '소승은 처음부터 자비심에서 선비를 구한 것이 아니외다. 한 찰나 '감히' 그냥 지나치려 했던 소승의 교만을 절복 하기 위해 업어왔을 뿐이오."

 

 키워드5 : 도쓰카와

 

 책을 읽다보면 여기서 시간과 공간이 굉장히 불분명 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도쓰카와라는 지명이 그렇다. 도쓰카와는 여러번에 걸쳐서 등장한다. 책 첫페이지에 마사키가 서 있는 곳은 도쓰카와 마을의 왕선악 산중이다. 그리고 홍수의 범람으로 인해 폐허가 된 곳도 도쓰카와 연안이고 엔유가 깨달음 얻은 온천 여숙이 있는 곳도 다키까 빠져 죽은 곳도 도쓰카와이다.

 

 무슨 말인가 하니 도쓰카와는 1890년에 여러 촌이 모여서 생신 새로운 행정구역이다(일본에서 최고로 넓은 촌이라고 한다.) 마사키가 있는 곳은 도쓰카와 마을의(도쓰카와 촌을 번역하다가 이렇게 나온 것일까? 왕선악 산중이라고 표현한다. 마사키가 여정중 만난 노인은 1889년 도쓰카와 강이 범람하여 사람이 죽었다고 말한다. 책 속에는 몇몇 번만 정확한 년도가 나오는데 이것을 잘 꿰어 맞추다보면 다키의 아버지가 대홍수에 죽은 연도와 1889년이 얼추 맞아 들어간다. 

 

 마사키가 왕선악 산중을 벗어나 오타니로 왔으나 (도쓰카와 촌 소속이다.) 여전히 강물 소리가 들린다. 산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죽음의 공간이 이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키워드6 : 죽음

 

 책에서 죽음은 대체로 완벽한 정열의 순간과 동의어로 쓰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죽음을 통해 마사키가 완성한 것은 자신인가 자신의 사랑인가 아니면 한편의 완전한 시인가? 아니면 장자지몽처럼 이 둘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이 한송이 왜솜다리로 아니면 아름다운 나비로 변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키워드7 : 엔딩

 

 책의 결말은 아무런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결국 암자(경계) 남은 것은 나한을 초월한 엔유뿐이다. 엔유는 일종의 관찰자인가? 다들 왜솜다리 꽃으로 백골로, 한줌의 핏물로, 나비로 변해 자연으로 돌아간다. 필멸자로써 피할 수 없는 죽음, 완벽한 정열을 통해 탄생된 죽음 속에서 태어난 한마리의 아름다운 나비(완벽한 작품)

 

 결말 부분에 마사키의 시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사키는 이 책을 따라온 독자일까? 소설은 도입부부터 시간과 공간을 마구 헝클어트리기 시작하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마구 무너뜨린채 독자를 끌여 들였고 이제 당신을 내보낸다는 뜻일까?

 

 키워드8 : 도입

 

 사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데 책을 한번 읽고 두번 읽을 때야 눈에 들어왔는데 이 부분이 마치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해질녁, 도쓰카와 마을 왕선악 산 중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로 홀로 서 있는 청년, 그리고

 

 "대체 내가 어디를 헤매고 있는 것일까?"

 두견새 울음소리가 일제히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 문장 이 후, 두번의 문단을 분절 시키며 이 앞의 문단이 뒤의 문단과 시간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음을 암시하며 자신이 왕선악으로 향하게 된 길을 상기시켜 준다.

 

 이 후, 책 내내 강물 소리와 두견새 소리는 저 멀리서 들려온다. 과연 이것은 다 한바탕 꿈이었고 여기야 말로 엔딩이 아니었을까?

 

 4. 맺음말

 

 서두에서 말했 듯이 읽을 맛이 나는 책이다. 고풍스러운 문장은 차라리 마치 한편의 시와 같다. 그리고 여러가지 고전 설화들의 클리셰를 잘 이용해서 만든 한편의 옛날 이야기 느낌이 나는 책이었다. 굳이 이런식으로 소설을 해체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 길수 있는 좋은 책인 것 같다. (맞는지도 모르겠는게 가장 큰 문제긴하다)

 

 밤이 서서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산속에서는, 어둠은 바닥으로 바닥으로 첩첩이 쌓여 올라온다. 어느 틈엔가 복사뼈를 덮고 무릅을 덮고 문득 가슴팍까지 차오른 것을 깨닫는다.

 

 번역의 힘일까?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관계로 무어라고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책 한권 속에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한 것 같다.

 

 방문이 조금 열렸다. 뜰에 가득 찬 달빛은, 향주머니의 끈을 막 풀어헤친 듯 문 틈새로 들어와 마사키를 감쌌다. 땀에 젖은 팔이 얼음 조각처럼 창백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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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노벨상을 수상했던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책을 읽고나서 알게된 놀라우면서도 슬픈 사실은 작품의 배경이라고도 할 수 있을 헤르만 헤세가 기숙신학교에 입학 한 14세때가 19세기 말엽인 1891년인데 이때의 강압적이고 주위 사람들과 치열하게 경쟁시키며 사회에 순종적인 인재를 양성 교육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주류라는 것에 놀랄 따름이다.

 

2. 주요 내용

 

 독일 구석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그 마을에서 일전에 없던 재능으로 마을에서 촉망 받는 소년이었다. 누구도 그 소년의 재능을 의심하지 않았고 소년의 미래는 소년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부유하지 않는 집안에 태어난 재능있는 소년이 성공 할 수 있는 방법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기숙 신학교에 입학하여 관료나 교수, 성직자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한스은 또래의 다른 소년들과는 달리 교회의 목사, 학교의 교장 선생님 등으로 부터 추가적으로 교육을 받고 입학 시험을 준비한다. 한스는 또래 소년들에게 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생활 하면서도 종종 휴식을 취할 때면 두통을 겪는다.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입학 시험에 응시한 한스는 긴장감으로 시험을 망쳤다고 자책을 하며 고향으로 돌아와 걱정에 휩쌓이자만 곧 2등으로 합격한 사실을 통보를 받으며 자신의 실수 때문에 1등으로 합격하지 못한 사실을 아쉬워 한다. 한스는 그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자유시간을 허락 받아 그 동안 공부를 하느라 즐기지 못했던 낚시, 수영 등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나는데. 그 이유는 물고기를 선물하기 위해 방문했던 교장 선생님이 자유 시간을 즐기라고 권유하면서도 기숙학교에서 공부할 내용을 선행 학습하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어른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훌룡하게 성정했다. 길거리에서 뛰노는 일과 장난질 따위는 스스로 그만두었다.

 

 한스는 결국 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또래 아이들 보다 우월하다는 감정을 느끼며 그리고 자신의 것인지 타인의 것인지도 모를 성공에 대한 욕망을 느끼며 낚시대는 버리고 토끼장은 박살을 내버리고 잠시 동안 즐겼던 여유를 포기기하고는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선생님들이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의무는 아이들의 거친 본능을 누르고 국가가 원하는 평화롭고 절제된 이상을 심어 주는 것이다. 현재 행복하게 살고 있는 시민이나 성실한 관료들도 이러한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낙폭한 개혁가나 공허한 이상에 사로잡힌 몽상가가 되었을 것이다.

 

 한스는 기숙학교에 입학하고도 별 다른 생활의 변화가 없다. 그저 공부에 매진할 뿐이다. 기숙사의 다른 학생들이 서로 우정을 쌓아가는 동안에도 한스는 오히려 자신에게 손을 내밀려는 다른 소년의 손을 뿌리친다. 그러던 중 오직 한 소년만이 한스와 우정을 쌓아가게 되는데 그 소년의 이름은 하일러 였다.

 

 한스가 부지런하고 평범하지만 모범생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면 하일러는 나태해보지만 감수성이 풍부하고 진정으로 천재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두 소년은 다른 사람들은 배척한 채 자신들 만의 우정을 이어나가나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잠시 동안 멀어진다. 그렇지만 힌딩거라는 소년이 사고로 인해 사망하고 난 이후 하일러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던 한스는 하일러와 다시 우정을 회복한다.

 

 선생님들은 살아 있는 학생을 대할 때와는 다른 눈으로 죽은 학생을 바라보앗다. 평소에 함부로 상처를 주었던 젊음의 가치를 되새겨 보는 듯했다.

 

 모범생이었던 한스는 하일러의 영향을 받은 듯 점점 선생님들이 원하는 모범적인 학생의 상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기 시작한다. 이에 교장 선생님까지 나서서 한스에게 충고하지만 이미 한스의 변해버린 모습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한스는 점점 환상을 보는 듯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일러가 기숙학교를 탈출하는 일을 벌여 퇴학 당하고 난 후 홀로남은 한스는 이 현상이 점점 심해지다 결국은 신경쇠약이라는 판정을 받고 요양을 명목으로 고향으로 퇴출 당한다.

 

 고향으로 퇴출 당한 한스는 마을 사람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다. 마을에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소년은 이제 낙오자가 되어버렸다. 한스는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을 찾으려는 듯 마을 구석 구석을 더듬지만 이미 남겨진 것은 없다. 한스에게 낚시를 가르쳐주었던 다른 소년도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주머니도 남아있지 않다. 홀로 남겨진 한스에게 잠시간 사랑이 찾아오는 듯 했지만 그것 역시 홀연히 떠나버린다.

 

 그는 다시는 어린아이가 될 수 없고 리제의 곁에도 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스는 기계공이 되기로 하고 견습생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동안 육체적 노동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는 듯 했지만 다른 기계공들과 술을 마신 후 강물에 빠져 사망하고 만다. 소년은 결국 수래바퀴 아래 깔려 버리고 만 것이다.

 

 장례식에는 기계공들과 호기심에 찬 구경꾼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한스는 다시 한번 유명한 인물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3. 맺으며

 

 서두에서 말했다시피 책을 읽고 난 후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과 저 시대의 교육을 비교해봤을 때 뭐가 그렇게 달라졌나 라는 의문이든다.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 여기게 하고 오직 높은 점수와 출세를 위해 공부하게 하고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에서 부터 시작되는 선행 학습까지.

 

 우리나라 부모 혹은 어른 중에는 이런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일이다 혹은 충고다 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아이들 자신의 꿈과 희망이 아닌 어른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강요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좋게 말하면 관심이고 나쁘게 말하면 정말 나쁜 오지랍인 것 같다. 왜 게임도 아닌데 아이를 자신의 아바타로 키워 자신의 못다이룬 꿈을 성취하려는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문득 생각나는 것은 메가스터디 대표인 손주은 대표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공부 잘하는 것도 유전이고 열심히하는 것도 유전이다 과연 아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는 부모는 공부를 열심히 했는가?')

 

 한스는 초콜릿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마지못해 한입 베어 물었다. 숙모에게 초콜릿을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혹은 내가 어린 시절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아이가 그것을 좋아하라는 법은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 혹은 배려가, 인생의 선배라고 해주는 충고 한마디가 타인이 힘겹게 끌고 가고 있는 수레에 오히려 짐을 실어주는 것은 아닐지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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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2017년 새해가 밝은 지도 어느 덧 한달이라는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설날의 흥겨움과 새해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하 있어야 할 나라는 여전히 상상 이상으로 개판이다. 민주주의를 망쳐 놓은 인간이 언론을 향해 마치 민주 열사처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끝장났다고 외치고 있고 썩었을 꺼라고 예상만 하고 있던 곳은 그 속살을 훤히 들어내며 썩은 냄새를 나라 전체에 뿌리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헌재에서 어떠한 판결을 내놓든 대통령의 정상적인 국정 운영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거기다 미국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선출됨으로써 세계 정세가 점점 혼돈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각종 언론조사에서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추정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가 대담집을 내놓았다. 책은 곧 베스트셀러에 등극했고 그가 사인회를 하러 가는 곳에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패배를 했고 당내에서는 그를 친노 패권주의의 수호자 처럼 표현하고 청산해야할 구태 정치인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정말 여기저기서 수도 없이 까이고 또 까였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보여지듯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는 것 같다. 과연 사람들은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그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책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2. 책의 내용

 

  책은 대담 형태로 이루어져있다. 소설가 문형렬씨가 문재인 전 대표의 어린시절부터 현재의 각종 이슈사항(정치, 외교, 사드 등등)에 대한 의견 및 향후 그가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대한민국에 대해서 묻고 대답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중간 중간 직문직답 형식의 짧은 질문들도 존재한다.

 

 책의 주요 내용은 어쩌면 굉장히 요약하기 쉽다. 읽기 쉽게 마지막 목차에 간략하게 요약정리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 책을 읽을 시간은 없는데 책의 내용을 대략적으로라도 알고 싶다면 서점 같은 곳에 가서 마지막 부분만 봐도 될 것이다. 그래서 글에서는 간략하게 책에서 인상깊었던 부분만 정리해보겠다.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권력이 '공정함'을 이루도록 하는게 우리 사회이 부패를 청소하는 출발점이죠.

 

이들에게 혁명이 총칼처럼 아주 폭력적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주권자 혁명은 비폭력적이고 평화적 혁명입니다. 

 

헌법에는 권력이라는 말이 딱 한번 나옵니다. 우리가 권력이라는 말을 쓰고 특히 공권력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헌법에는 권력이라는 말이 단 한번 나와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다음 나머지는 '권한'에 대한 겁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 및 입법부에서 일하는 국회의원들은 다들 국민들에 의해서 선출된 선출직들이다. 그런데 일부 정치인들은 투표가 끝나고 나면 그들이 선출직이 아니라 국민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로 착각하는 것 같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권한을 잠시 위임한 것이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넘긴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국민이 원한다면 언제나 그 권한을 회수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권자 혁명은 폭력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려울 땐, 무조전 원칙적으로

 

 작금의 대한민국을 이 상황까지 몰고 간 것은 어찌보면 원칙없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원칙이 아니라 개인적 이익이었다. 직장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원칙 없는 상사를 만나면 굉장히 피곤하다. 원리원칙만 너무 따진다면 유연함이 떨어진다고 비난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대신 아랫사람으로써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지침이 정확히 서 있는 것과 같다. 회사는 사원들에게 언제나 원칙을 지키라고 설파하고 정도경영이 경영이념인 회사는 발에 채일정도로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어찌하여 회장님들은 그리도 안 지키시는지... 

 

북핵을 해결하려면 국제적으로 제제도 하고 공조로 압박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제제와 압박조차 협상을 위해서 입니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다. 근 10년 동안 북한에게 대고 으르렁 대기는 했지만 대체 얻은 것이라고는 없다. 천안함은 폭침으로 가라 앉고 개성공단의 철수로 중소기업만 어려워졌다. 거기다 사드를 배치한다고 공포는 해버려서 중국과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의 관계는? 또 괜찮나?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는 위협이나 당하고 FTA는 폐기, 방위비는 올려라고 소리치는 대통령이 들어왔다. 일본과의 관계는 손가락만 아프니 적지 말자. 대체 그 동안 외교로써 얻어 낸 것이 없다. 제대로된 협상이 되지 않았다.

 

3. 맺으며

 

 책에서 정말 기억에 남는 몇가지만 적었다. 책을 읽는 동안 여러가지 많은 생각들을 할 수도 있었고 그가 굉장히 준비된 사람이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인사가 만사' 라는 말이 있다. 리더라면 개인의 뛰어난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그가 이끌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능력도 굉장히 중요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대표로 있을 때 영입한 인재들이 요즘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만족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대통령 선가기 있는 해이다. 탄핵심판 결과에 따라 벗꽃 대선이 있을 수도 있다고 예상되는 상황이다. 누가 되었던 능력과 소신이 있고 도덕성이 뛰어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이 나라를 다시 정상으로 돌려 놓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유권자들 또한 이러한 것들을 읽고 그 사람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과연 진심인지도 파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4. 추가 (사드 배치에 대한 의견)

 

 이 글에 사드라는 단어가 단 한번 나왔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사드라는 단어와의 매칭으로 이 글을 찾아 들어왔길래 내용을 추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차기 대권주자의 사드에 대한 의견을 궁금해하는 것 같습니다.

 

 책에는 문재인 전 대표의 사드에 대한 의견이 명확하게 나와 있으니 일부 옮기겠습니다.

 

 '사드 배치는 다음 정부로 연기하는게 옳다고 본다. 절차상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은가. 다음 정부로 연기하면 이 사드 배치라는 카드로 북한과 적어도 핵폐기, 핵억제, 핵동결 등 다양한 협상을 할 수 있고...(중략)... 중국하고도 공조해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걸 도모 할 수도 있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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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에는 여러가지 이론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이론으로는 제임스 뷰캐넌 교수의 '공공선택 이론'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뷰캐넌 교수는 이 이론에서 국가와 정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 역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 이론은 '이기적인 개인 혹은 기업 vs 공공의 정부' 라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을 증명 해냈습니다.


 이 이론은 정치(의회)와 행정이(정부)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국민의 행복, 정의 기타 등등)과는 달리 글로벌 기업들과 자본가들의 사익을 추구하는 비지니스로 활용되고 있다고 늘 비난하는 촘스키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멀어보이지는 않습니다.


 촘스키 교수는 미국의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들의 이익과 편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과 금융권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늘 비난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 교육과 언론들을 활용하여 민중들을 파편화 시키는 선전을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개똥철학', 즉 '순간적으로 유행하는 소비재와 같은 천박한 것'에 집착하는 인생관을 노동자들에게 심어주며서 그들이 장시간 노동을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 타인과의 연대 등과 같은 위험한 생각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요컨데 인간의 가치를 완전히 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왠지 김기춘씨가 썻다는 쪽지의 전략과 비슷합니다.


 주류 경제학의 대전제는 바로 '경제적 인간' 입니다. 그럼 대체 정부와 정치권 놈들이 우리의 이익을 편취하는데 왜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특이한 일입니다. 고대부터 위정자의 숫자보다 백성들의 숫자가 언제나 훨씬 많았습니다. 신대륙에서도 백인 지주들의 숫자들 보다 흑인 노예의 숫자가 많았죠. 그런데 심각한 착취 속에서도 민란이나 혁명은 언제나 거의 꾹꾹 눌러 담았다가 최후의 순간에 터집니다. 왜일까요?


 뷰캐넌 교수는 이를 '합리적 무시'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합리적 무시는 어떤 정보가 주는 이득보다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비용이 클 때 정보를 무시하는 것을 뜻합니다. 단순히 말하자면 모난돌이 정 맞는다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공공선택이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무임승차 이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촘스키 교수는 대중이 혁명 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중이 현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임승차를 하고 싶지 이 모난 부분이 되어 먼저 정을 맞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죠.


 공공선택 이론으로 봤을 때 이익에 직접적으로 결부되지 않은 일반 대중이 집회나 단체행위에 나서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춰봤을 때 광화문 광장에 수백만의 대중이 모여서 평화롭게 집회를 한 것은 굉장히 놀랄만하고 자랑할만한 일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이양한 권력을 마음대로 팔아 먹었고 최순실은 그것으로 삥을 뜯었죠. 그렇지만 이게 국민 개개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삥 뜯은 것도 아니고 우리의 세금이 빼돌려 지기는 했겠지만 이것도 전국민이 소위 N빵하면 개개인에게는 얼마되지 않는 돈일 가능성이 높고 설령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여 다른 형태로 국민에게 투자를 하더라도 개개인에게는 티도 안나겠죠. 그에 비해 집회에 참여하는 비용은 매우 직접적이죠. 지방이라면 왕복 KTX 차비, 식비, 잠이라도 잔다면 숙박비에 시간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JTBC에서 태블릿PC를 오픈하기전 몇몇 모난돌의 역활을 하던 사람들은 신나게 정으로 까이거나 아예 관심도 받지 못했었죠.)


 그럼에도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굉장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현재 우리는 역사적으로 굉장한 큰 변곡점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발전과정 중의 하나가 정치에 참여하는 권력자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성골에서 진골로 6두품과 지방호족으로, 그리고 과거로 선발된 관료에게로 말이죠. 이 과정이 일제시대와 독재를 거치면서 일반 대중에게로 내려오다가 어느 시점에인가 멈춰버렸지만 그 시계가 지 다시 돌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촘스키는 민주주의가 최고의 체제라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가 현재 그 찬란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특히나 미국의 민주주의를 '국민이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머무는 체제'라고 비난합니다.


 국민은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자신들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줄 지도자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권리를 행사한 후에는 집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어야 합니다. 주어진 일에 열중하고 벌어들인 돈으로 소비하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요리나 하면서 지내야 합니다. 국가를 성가시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바로 이런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촘스키는 많은 진보적 발전이 있었지만, 그 원동력은 지식인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대중의 결집된 힘, 그리고 조직화된 노동계급이야 말로 진보적 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합니다.


 군도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모이면 도적이고, 흩어지면 백성이다.', 권력자들은 자기들 목에 칼을 들이댈 지도 모를 도적을 두려워 할지언정 나약한 백성은 두려워하지 않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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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2016년 한해를 마무리 하는 때이다. 한 때, 정치적으로는 쓰레기통에서 꽃을 피웠다고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이룩한 나라로 경제적으로는 한강의 기적, 아시아의 네마리 용 중 하나로 찬사를 받던 나라가 한 순간 샤머니즘의 나라로 조롱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다행이도 어리석은 위정자의 행동과는 다르게 평화로운 촛불 시위를 주도한 일반 대중들의 모습에 그나마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던 국격을 조금이나마 세웠던 한해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의 문제는 산적해 있다. 2016년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문제와 앞으로 다가올 경제적, 정치적 어려움들이 우리를 압도 할 것만 같은 시기이다.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모든 나라들도 이와 같은 문제를 겪었다. 최초의 지중해의 패자였던 로마는 본토가 한니발에 의해 유린 당하기도 했고, 몽골은 그 시작부터가 처참하기 까지 했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당시 유럽 최강대국 이었던 스페인의 압박을 받았었고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로도 여전히 흑인의 인권 문제로 골머리르 앓았었다.

 

 이 나라들은 대체 어떻게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최강자로 우뚝 설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어디일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한다.

 

2. 내 용

 

 이 책은 서두에서도 말했다 시피 과거와 현대의 강대국들의 역사를 통해 그들이 당대 최고의 강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를 찾고 있다. 그 대상은 로마, 몽골, 영국, 네덜란드, 미국이다.

 

 당시 역사적 배경과 주요사건들 그리고 그들과 대비되는 국가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들의 성공 비결을 분석한다.

 

 먼저 로마이다. 로마가 세워지고 멸망하기 전까지 그들을 가장 위협했던 국가는 어디였을까?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다투었던 카르타고이다. 카르타고는 당시 로마보다 훨씬 더 부유하고 강대한 국가였다. 그들의 항해술과 지중해에 미치는 영향력 그리고 국토 자체의 생산력까지 로마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 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1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시칠리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지중해에 대한 기득권 역시 점점 사그라들게 된다.

 

 이 후, 거의 개인적인 복수전으로 시작 된 것이 한니발의 로마 본토에 대한 침공 2차 포에니 전쟁이었다. 당시는 로마는 현대와 같이 단일 국가의 개념이 아니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여러 도시 국가들의 동맹체라고 보아야 한다.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로마 본토로 들어가며 이런 동맹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 한니발이 보기에 이 동맹이라는 것은 느슨하기 그지 없어 우두머리가 침입자에 비해서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다면 금방 깨어지고 말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는 달랐다. 칸나이 회전을 통해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준 한니발은 많은 도시들이 로마를 저버리고 자신에게 투항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몇 도시들을 제외하고는 한니발에게 투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그에게 저항하기 시작한다. 결국 한니발은 로마에서 퇴각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는 칸나이 회전에서 살아 남은 로마의 젊은 장수에게 자신과 똑같은 전술로 당하고 만다.  

 

 압도적인 실력과 전술을 보여 주었던 한니발이 전쟁에서 패한 이유는 무엇이고 로마가 살아 남아서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칸나이 회전 이후의 도시 국가들의 양상이었다. 만약 다른 도시와 로마의 결속력이 한니발의 예측 만큼이나 약했다면 카르타고는 로마를 붕괴 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결속력은 한니발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했다.

 

 로마 이전의 지중해의 패자 중 하나였던 그리스의 아테네 역시도 이런 동맹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델로스 동맹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결속력은 로마의 그것보다 훨씬 약했는데. 그것은 바로 동맹국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였다. 아테네는 어느 순간부터 순혈주의를 추구했다.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도 아테네 시민권자가 아니었다는 것은 우리를 충분히 놀라게 할 만하다. 그리고 동맹국 시민을 2등 시민으로 취급하며 아테네와 다른 도시국가를 분리하 였지만. 그러나 신생국가였던 로마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을 벌이고 다른 도시를 복속 시키기는 했지만 그들이 했던 것은 정복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쟁에서 진 도시국가들의 귀족과 유력자들에게 로마 시민권과 원로원의 자리를 내어주며 그들을 동화 시켜 나갔고 덕분에 그들은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가지지 못했던 결속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몽골은 어땟을까? 우리가 흔히 몽골제국에 대해서 가지는 인상은 이럴 것이다. 초원의 야만적인 유목민으로 시작해 강력하고 거대한 군대로 전 세계로 파죽지세로 뻗어나간 대제국,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학살과 약탈 뭐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몽골의 군대에서 몽골인의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약 10만명 정도 였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정주 민족도 아닌 유목민의 식량 생산력을 생각해봤을 때 그 인구가 많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고작 10만명의 병력을 가지고 유라시아 전역에 걸친 거대한 제국을 건설 했던 몽골은 과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몽골은 전쟁을 벌여 침입을 하기 전 먼저 항복 사절을 보낸다. 그래서 항복을 한다면 모든 이들을 살려주고 만약 항복하지 않는다면 그곳을 철하게 파괴하고 학살 한다. 그를 반복하면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이들을 수용하는 것은 적극적이었다. 그렇다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이들 이를 테면 기술자들을 마구 징집하여 노예처럼 끌고 다닌 것이 아니라 최고의 대우를 해주며 전쟁터에 참여시켰다.

 

 몽골이 전쟁터에서 승리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군대의 우수한 기동력과 전술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정복한 지역이 가지고 있던 우수한 기술력을 빠르게 흡수하고 받아 들임으로써 언제나 한발짝 앞선 기술력을 가진 상태에서 전쟁을 이끌 수 있었다. 그들은 결코 잔인 하지만 않았다 그들의 소문의 그들의 잔혹함은 최소한의 사망자를 내기 위해 일부러 포장된 것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종교적인 면과 인종적인 면에서 굉장히 관대하고 개방적이었다.

 

신이 인간에게 다섯 손가락을 주신 것 처럼, 인류에게 행복을 추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주셨다. 너희들에겐 경전을 주셨고 우리에겐 예언자를 주셨다. 우리는 예언자의 말씀 아래 보호받는다. 그리고 평화롭게 지낸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방식에 맞게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 뭉케칸이 루브룩 사제에게

 

 영국과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은 당시 최고의 군대를 가지고 있던 스페인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야 했다. 당시 영국의 국력은 스페인에 비하면 형편 없다고 할 정도 였는데 특히 육군 전력은 거의 전무하다 시피했다. 그덕분에 영국은 스페인을 어떻게든 바다에서 막아내야 했었고 필요는 발전을 만들어 냈다. 영국은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던 덕분에 어떻게든 대체 할 것을 만들어 내었고 결국은 스페인 무적함대의 침공을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성공 신화는 영국 국민들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아 결국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이룩하는데 쓰일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의 국가적 신화는 침략과 해군, 침입에서 나라를 방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영웅인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최고의 승리를 영국에 안겨줬습니다. 그리고 시대를 바궈 넬슨의 트라팔가 해전으로 국가적 신화가 교체됩니다...(중략)... 1588년 이후 영국은 위대하고 강력한 해상국가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믿습니다...(중략)...1714년 영국은 매우 뛰어난 해군력을 갖게 됩니다. 1588년이 아닙니다. 해상을 장악하는 데 120년이 걸렸습니다. 스스로에게 계속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계속 사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는 당시 유럽의 최강대국이 었던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여야 했다. 독립전쟁의 이유는 종교적 자유 때문이었데 당시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는 독실한 카톨릭교 신자로써 카톨릭 외의 모든 종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당시 종교개혁이 후 신교도로 개종한 사람들과 유대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독립을 위해 전쟁이 벌어지고 스페인 제국에 살고 있던 많은 재능있던 사람들은 종교적 탄압을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하고 그들의 자본과 기술은 네덜란드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결국은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미국은 태생부터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그 곳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은 거의 존재감을 잃어 버렸다. 그들은 설립 될 때부터 유럽과는 다르게 종교적, 정치적 자유를 지니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노예로 이 대륙에 처음 발을 디뎠던 흑인만은 예외였다. 남북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노예해방이 이루어졌지만 남부의 흑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다. 그들의 참정권은 제한 받았고 백인들의 폭력과 탄압은 여전했다.

 

 결국 미국은 이 사태를 정리하고 어느 새, 버락 오바바라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 이 후 퇴임을 얼마 남겨두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결론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이 책에서 소개했던 다섯 국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관용과 개방성에 있다. 지금에서야 당연하지만 당시로써는 금기를 깨어버리는 듯 한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정복한 민족의 고위층을 우리의 고위층으로 편입 시키고 민족과 종교를 가리지 않고 능력있는 자를 기용하여 나라를 운영하고 제도를 정비한다. 그야 말로 능력이 있고 믿을 만하다면 적대적이었던 나라의 사람들도 수용하고 더불어 살아가기를 꺼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공통의 문화적 신념과 신화를 통해 할 수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한 것이 그 나라가 성공적으로 발전 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3. 마무리

 

 먼저 이 책에 대한 아쉬운점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다. 책은 지극이 유럽적이고 서양적인 관점에서 쓰여진 것 같다. 그들이 이야기 하는 개방성과 포용력은(미국의 사례를 제외하면) 오직 백인들을 향해서만 열려 있는 것이었다는 것을 간과하는것 같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들을 착취하며 성공적인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발전 방향과는 달리 세계 곳곳에는 국수주의와 민족주의가 널리 퍼지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특히나 유럽쪽은 IS의 테러로 인해 국경을 닫자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EU에서도 탈퇴하자는 분위기도 끓어 오르고 있다.

 

 미국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 시켰지만, 그의 후임으로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무슬림들의 입국을 차단하는 종교적 자유 제한하고 인종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대통령을 그들의 손으로 뽑았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사실 우리가 다른 나라를 걱정해야 할 시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상 할 정도로 단일민족이라는 정서가 뿌리 깊게 자리잡은 것 같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럴리도 없을 텐데 말이다. 그 덕분인지 외국인에 대해서 극단적인 배타주의와 극단적인 찬양이 공존하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버린 것 같다.

 

 우리나라의 특이한 점은 (언론이라고 해야하나?) 외국에서 성공한 한국계 인물들을 우리민족으로 끌어들여 자랑하기 바쁘다. 특이한 현상이다. 1세대도 아닌 2,3세대 이민자들에게 그러는 것을 보면 이해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대부분 프랑스에서 장관을 지냈던 사람처럼 자신의 조국을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외국계 이민자들에게 오히려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도 있는 실정이다. 우리에게는 왜 스티브 잡스가 없냐고 소리친다. 우리에게는 왜 오바마 같은 대통령이 없냐고 질문한다. 설사 그런 사람이 우리중에 태어나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았을 지라도 그 뜻을 다 이룰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그들은 그저 눈파란 외국이지 않았을까?

 

 젊은 이들은 헬조선을 외치며 탈조선을 꿈꾼다. 우리 세대에게 더 이상 한강의 기적과 같은 신화는 이미 퇴색되어 버린지 오래이다. 오히려 근래 들어서는 부끄러운 기억들만 가득하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평화로운 촛불 시위를 바라보며 이것이 우리의 또 다른 성공적인 신화가 되어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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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요즘 세상에 편의점이라는 공간은 여러가지 의미로 중요한 공간이다. 바쁜 직장인들과 가난한 학생들에게 값싸고 편안한 그나마 음식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제공해주고 과거 소위 구멍가게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편의점이라는 현대적이고 깔끔한 이미지의 가게들이 자리를 차지 하고 있다.

 

 편의점은 그야 말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편의점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서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는 편의점을 의미를 부여한 후 한편의 작품을 완성해 내었다는 것에 감탄한 작품이었다. (실제로 작가가 20년 가까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경험했다고 하는데... 와..)

 

2. 책의 내용

 

 책은 여자 주인공인 후루쿠라 게이코의 이야기이다. 30대 중반의 그녀는 대학교를 다닐 때 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졸업 후에도 취업을 하지 않은 채 무려 18년 간이나 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 지점에서!) 그녀는 어릴 때 부터 좀 남과 달랐는데 바로 공감 능력이 부족하여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이런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사이코패스 범죄라고 할 것이다.)

 

 세상에서 일반적인, 상식, 기준으로 통하는 것들은 그녀와 통 맞지가 않았다. 그녀는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피해 자신을 숨기고 살기 시작하는데. 그런 그녀에게 단 하나의 유일한 이상적인 공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편의점이라는 공간이었다. 우연히 편의점에 아르바이트로 취업한 그녀는 그 후로 많은 사람들이 바뀔 동안에도 편의점과 함께 자리를 지켰는데. 나이가 들어 갈 수록 그녀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늘어간다.

 

 그러던 중 우연히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온 시라하를 만나게 되는데. 그 역시 일반적인 사람들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어쩌면 도태 되어버린, 일반적이지 않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둘은 서로 필요에 의해 동거를 시작하게 되는데. 남들의 눈을 피해 일반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시작했던 동거는 오히려 후루쿠라의 생활에 균열을 가져오기 시작한다.

 

3. 마무리

 

 이 책을 읽기 바로 직전에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었기 때문일까? 책을 읽다보니 현대 사회에서 일종의 규격화 된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수가 있는 시간이었다. 인터넷이 세상에 나오고 SNS가 발달 한 후 사회에서는 다양성을 존종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오히려 획일화 되어 가고 있는 세계화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아키텍쳐 베이비라던가, 소위 말하는 국민 ** 상품 등 말이다. 사람들과 사회는 다양성을 추구하라고 말을 하고는 있지만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지 않으면 특히나 그것에 실패한다면 사회는 우리를 낙오자 취급하기 일쑤이다.

 

 사회는 후루쿠라에게 이상한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었다. 그리고 후루쿠라는 그 속에서 최대한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지만 대체 무엇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는 정확한 메뉴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편의점에는 정확한 메뉴얼이라는 것이 있다. 어떻게 인사를 하고 물건은 어떻게 진열하고 등이 말이다.

 

 "아니, 누구에게 용납이 안 되어도 나는 편의점 점원이에요. 인간인 나에게 어쩌면 시라하 씨가 있는 게 더 유리하고, 가족도 친구도 안심하고 납득 할지 모르죠. 하지만 편의점 점원이라는 동물인 나한테는 당신이 전혀 필요 없어요."

 

 사르트르의 소설 속에서 처럼 실존하는 인간으로 '까닭 없이'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 위치나 지위 같은 누군가가 규정해준 본질에 집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회사의 직원, 한 가정의 가장, 누군가의 부모 와 같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것에 매여 살아가는 것처럼 후루쿠라에게는 편의점 점원이 사회가 그녀에게 규정해준 그리고 그녀가 받아들이기 가장 적당한 본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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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얼마 전 있었던 노벨상 수상식에 선약이 있다며 참석하지 않았던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인 밥 딜런을 보며 예전 노벨상 수상을 거부했던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가 떠올랐다.

 

 그는 왜 노벨상이라는 어마어마한 명예를 거절 했을까? 사르트르는 간단히 '제도화된 작가가 되기를 거부한다' 라는 짧지만 쿨한 답변을 남겼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무수한 이유들을 들이 밀었다. 그중 하나가 그가 '실존주의' 철학자 였기 때문이다라는 것인데. 대체 그 실존주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구토' 라는 짧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설 형식을 지니고 있는 이 책을 통해서나마 일부 느낄 수 있었다.

 

2. 책의 내용

 

 주인공인 '앙트완 로카텡' 은 연금을 받으며 무직으로 혹은 역사가나 여행가라는 이름으로 부빌 도서관에서 시간을 주로 보내며 '롤르봉' 씨에 관한 책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30살의 젊은 남자이다. 이 남자는 때로 여관 주인과 몸을 섞기도 하지만 별달리 욕망이나 야심 따위를 보이지 않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그는 과거에 사랑했던 '안니'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와는 헤어진 상태이다. (뭔가 익숙한 느낌의 주인공이다. 마치 하루키 소설속에 흔히 등장 할 법한 남자 주인공이랄까?)

 

 그는 갑자기 어느 날 부터인가 구역질을 하곤 했는데.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하루의 일 들을 기록하며 소설이 시작된다.

 

 그는 부빌에서 생활 하며 그 곳에서 살아가는 부르주아들의 생활을 비웃으며 기존 질서와 관습을 벗어나기 위한 자유를 갈망한다. 그는 바닷가의 조약돌, 심지어 문 손잡이에서 까지 구토감을 느끼며 그것을 상세히 기술하며 자신의 구토감의 원인을 찾아 나선다. 그러던 중 오래전 헤어졌던 연인인 유일하게 진정으로 사랑 했을지도 모를 안니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 옛 연인과의 재회를 앞두고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다 마로니에 나무 뿌리를 바라보다 직감적으로 자신의 구토감의 원인을 찾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어떤 사물의 실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가 부여한 뿌리라는 본질이 아닌 진정으로 고유한 실존으로써 존재하는 뿌리를 느끼고는 그것과 자신이 아무런 연관성이 없이 동떨어진 체 존재했다고 느끼며 당혹감을 드러낸다.

 

 옛 연인과의 재회는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안니는 이미 타성에 젖아 예전에 아름다운 모습과 신비로운 모습을 잃어버렸고 부빌로 다시 돌아온 주인공은 부빌을 떠나기를 결심한다. 그리고 부빌을 떠돌며 자신과 관계 되었던 사람들 한명 한명과 만나 작별 인사를 건낸다. 그리고 역사 연구도 포기하고 절망찬 채 떠나려 할때 재즈음악이 주는 감동 속에서 소설이 구원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책은 끝이 난다.

 

3. 마무리

 

 사실 리뷰를 쓰고 있는 와중에도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를 하고 쓰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사르트르가 주장했던 실존주의를 간단히 표현하자면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 그리고 인간은 다른 사물들처럼 본질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으로써 존재한다.' 라고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르트르 이전의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의 존재의 목적 혹은 본질을 신에게서 찾았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책에서 그저 세상에 내던저진 것으로 표현하며 인간이 실존한다고 말한다..

 

나는 차라리...... 나에게 주어진, '까닭 없이' 주어진 이 인생 앞에 놀랄 뿐이다.

 

 그리고 그가 했던 또 다른 유명한 말인 '타인은 지옥이다.(HELL IS OTHER PEOPLE)' 라는 말이 책을 읽다보면 점점 이해가 된다.

 

 나는 책임감에 짓눌렸다. 눈을 부릅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안니가 그 순간에 만들어낸 의식의 한복판에서 몸부림칠 뿐이었다. 결국 나는 기다란 팔로 그 의식을 거무줄처럼 찢어 버렸고, 그럴 때마다 안니는 나를 증오했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실존보다는 본질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처음 만나면 나이가 어릴 때는 학교를 어디 다니는지 나이가 들어서는 직장이 어디인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입은 옷, 그 사람이 타고 다니는 차, 심지어 그 사람이 사는 동네를(혹은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통해서 한 사람을 편하게 평가하고 규정하려든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실존에 대한 고민을 점점하지 않는 탓인지 아니면 마케팅이 발달하면서 자기를 대신 표현 혹은 규정하기 편한 브랜드 같은 것이 세상에 넘쳐 나서인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끔 이런 것들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요즘 주말 내내 우리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서는 이유도 많은 사람들이 한 인간의 실존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채 못한 채 주변에서 만들어 놓은 본질만 바라본 결과 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다. 공산주의와 휴머니즘에 대한 생각 같은 것도 들어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 하다보면 왜 사르트르가 노벨상의 수상을 거부했는지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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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누구나 가끔 그런 생각이 문득 들때가 있을 것이다. 무인자동차가 개발이되고 IOT가 활성화된다고 하는 이 시대에 모든 사람이 손 안에 컴퓨터, 인터넷을 들고다니는 이 시대에, 많은 것이 자동화 되고 있는 이 시대에 대체 나는 왜이렇게 바쁜 것일까?

 세탁기가 생기고 청소기가 나오고 식기 세척기도 나왔는데 우리의 어머니들은 왜 여전히 바쁘다고 짜증을 부리실까? 대체 왜?

 매년 회사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이 업그레이드 되고 편의성이 증진이 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여전히 바쁘고 야근을 하는걸까?

 대체 TV에 나오는 광고들은 우리가(기업들이) 너의 생활을 편하게 해 줄 것이다! 라고 줄기차게 광고를 하고 있는데 대체 왜? 우리는 타임푸어가 되는가는 걸까?

 

 노동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명제는 굉장히 단순하지만 강력하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더 이상 노예제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림자 노동이 우리는 옥죄며 우리는 자발적 노예를 만들고 있다. 기름 값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스스로 기름을 넣고, 스타벅스나 맥도날드에서는 우리가 직접 먹은 것들을 치운다.

 과연 지금 세상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2. 책의 내용

 

 셀프 서비스라는 이름의 사소한 일들에 점령당해버린 우리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

 

 먼저 그림자 노동에 대해서 간단히 정의를 내려보자 그림자 노동이란 마치 가사노동처럼 대가를 받지 않고 하는 노동을 뜻한다. 이 개념은 오스트리아의 사회사상가인 이반 일리치에 의해 최초로 주장되었다고 한다.

 

 책은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노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우리의 삶은 셀프 서비스로 점철되어 있다. 간단하게는 예전에는 식당에가면 물을 내줬지만 어느 순간 물은 셀프가 됐고 자동차 기름 주유도 셀프고 심지어 가구 마저 DIY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조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다. 그리고 직접 제품들의 스펙을 비교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사용 후기를 꼼꼼히 읽으며 전자제품을 사기도 한다. 그리고 젊은 세대는 취업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무급으로 나마 인턴을 하려고 한다.

 

 직장에서는 우리의 동료들이 하나 둘씩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비록 컴퓨터와 각종 사무용 프로그램들이 도입이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야근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들은 고객의 접점에 사람들을 점점 줄이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키오스크을 둠으로서 점점 접촉을 줄이며 고객에게 자신들의 일을 떠 넘기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 존재하는 수 많은 열정적인 사람들은 그런 기업들을 도와주고 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글 역시 그림자 노동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내가 글을 적고 사람들이 이 글을 검색하여 접속한다면 TISTORY 트래픽을 올리고 출판사에서는 공짜로 마케팅도 할 수 있다.

 

 물론 그림자 노동에 순기능도 있다. 직접 주식을 선택하고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주식을 거래하면서 주식 수수료를 대폭 줄이는 등의 효과도 말이다.

 

3. 마무리

 

 물론 책에서는 돈을 받기 위함이 아닌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 하는 취미는 그림자 노동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지금 내가 뭐하는 짓이지? 라고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소비자라는 이름으로 어마어마한 자유를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또 거기에 압도 당하며 너무 많은 선택지들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위해 준비며 시간을 허비함으로써 일상을 '셀프 서비스' 라는 이름에 압도 당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당장드는 생각은 지금은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주니까. 몇가지 선택지 중에 선택을 하지만 만약 식당이 없어서 매일 점심시간 마다 무얼 먹을지 고민해야 한다면 얼마나 귀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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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올해도 슬슬 바람이 차가워져 가자 이 책이 나왔다. '트레드 코리아 2017' 개인적으로 김난도 교수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 는 정말 싫어 하지만 그의 본업과 관계된 이 책은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라 매년 사서 보는 편이다.

 언제나 그 해의 12간지 동물중 하나의 이름을 키워드로 제목을 만들고 목차를 만드는 것 보면 참 신기하다고 생각이 든다. 아무튼 저물어가는 2016년 내년을 대비하며 한번 읽어 볼만한 책 인건 분명하다.

 

2. 주요 내용

 

 이 책의 시작은 언제나 지난해 펴냈던 책의 트렌드가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대해서 쓰면서 시작한다. 이 글을 읽는 분에 그게 궁금하신 분은 별로 없을 것 같으니 내년에 어떤 트렌드가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서만 적도록 하겠다.

 

1) C'mon, YOLO! 지금 이 순간, '욜로 라이프'

 

 You Only Live Once, 의 약자인 욜로, 달관족(사토리 세대)가 진화한 형태인 욜로족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현재에 집중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현재에 만족하며 포기하는 달관족과는 달리 현재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모 할 지라도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 전세금을 빼서 세계 여행을 돌아다는 등의 사람들이 있다.

 

2) Heading to 'B+ Premium' 새로운 'B+ 프리미엄'

 

  제품의 정보가 완전히 개방되는 완전정보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가 주는 믿음은 약화 될 수 밖에 없다.

 이에 평범한 대중제품의 품질을 뛰어넘는 품질을 제공하면서 납득 할 수 있는 가격이 책정 된 제품이 B+ 프리미엄이다. 가성비의 시대에 어울리는 제품, 싼것을 찾지만 가격대비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을 찾는 소비자의 욕망에 맞춘 상품이라 할 수 있겠다.

 럭셔리가 브랜드, 역사, 전통에 초점을 맞춘다면 B+ 프리미엄은 제품력에 초점을 맞춘다. 대표적인 상품은 도요타의 '렉서스' 이다.

 

3) I Am the 'Pick-me' Generation 나는 '픽미 세대'

 

 저성장 경제 속에서 무기력을 학습하며 불안정한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온 세대이다.

 가성비가 좋은 싼 제품을 사면서도 공유 경제에도 익숙한 실속형 소비를 하며 필요 없는 것은 최대한 줄인다.

 그리고 진지하고 무거운 것을 싫어 하며 가볍고 쉬운것, 웃긴것을 즐긴다. 위험한 모험을 피하고 소박한 안정을 추구한다.

 

4) 'Calm Tech' Felt but not Seen 보이지 않는 배려의 기술 캄테크

 

 실제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IoT로 변화하는 세상, 대놓고 드러나는 기술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를 불안에 떨게 했던 A.I 알파고를 기억하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생활을 은근히 편하게 해주며 우리를 돌봐주는 듯한 기술과 사람 사이의 인터랙션이 중요하다. 이것이 캄테크의 핵심이다.

 

5) Key to Success : Sales 영업의 시대가 온다.

 

 결국 기업의 최종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영업이고 브랜드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 역시 결국은 '대면 서비스' 이다. 많은 사람, 여러가지 발전이 영업의 종말을 고했지만 여전히 영업은 그저 형태가 바뀌었을 뿐 영업은 여전히 살아남았다. 결국 '진실의 순간'을 차지하는 사람은 여업맨이다.

 영업의 개선과 재평가가 필요하다. 영업사원은 단순히 물건만 잘 팔아서 될 것이 아니라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많은 것이 무인화되고 기계화 되었지만 물건을 살 때는 여전히 인간적이고 따듯한 서비스가 필요하다.

 

6) Era of 'Aloners' 내 멋대로 1코노미

 

 나홀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취미를 즐기며, 관태로움이라는 것 때문에 타인과는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얼마전 종영된 드라마인 '혼술남녀'에서 이런 모습들을 연출하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그런데 이런 혼자 있는 것을 즐기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특이하게 사진은 또 열심히 찍어서 SNS에 공유를 한다. 이렇게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해소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그덕분에 카페나 식당에서 커다란 중대형 테이블이 늘어났다. 이런 모습들이 최종적으로 진화한 형태가 소셜다이닝이다.

 

7) No Give Up, No Live Up 버려야 산다, 바이바이 센세이션

 

 사람들이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다. 빈곤의 시대를 살았던 세대와 달리 풍요의 시대에서 자라났던 세대는 소유욕이 상대적으로 적고 클라우드나 공유경제와도 더욱 친숙하다. 물건을 더 사기 위해 꽉꽉 채워졌던 물품들을 비우기도 한다. 의식주가 바뀌고 결국 물질이 아닌 정신을 채우는 미니멀리즘을 추가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와중에도 이 행위들을 자랑하기 위한 사진 찍기와 SNS 공유는 멈추지 않는다.

 

8) Rebuilding Consumertopia 소비자가 만드는 수요 중심시장

 

 온디멘드의 시대, 기업이 물건을 만들고 소비자는 그저 여기서 필요한 제품을 고르던 시장에 변화가 오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모른다고 일갈 했었다.) 소비자의 수요에 기업이 맞추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 이 방식이 노동의 수요을 늘릴지 아니면 고용의 안정성과 질을 떨어뜨릴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9) User Experience Matters 경험 is 뭔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단순히 소유를 위해서만 소비하지 않는다. 소비를 통해 특별한 경험 좀 더 정확하게는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자신만의 경험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물거닝 집 앞까지 배송되는 시대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마트와 백화점을 방문하는 것이다.

 

10) No One Backs You Up 각자 도생의 시대

 

 거대한 지진이 한반도를 강타 했지만 국가에서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 사람들은 서로를 벌레라 칭하며 증오한다. 법을 통한 해결이 아닌 아닌 폭력과 보복이 난무하는 시대, 관용이 사라진 시대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시대이다. 회사도 국가도 너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관용과 협력, 사회적 신뢰를 회복시킬 리더십이 피요한 시대이다.

 

3. 마무리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이렇다. 가운데 중도가 없고 양극단만 살아남은 시대같다. 가성비와 허례허식을 버리고 불필요한 인간 관계를 다 정리하며 극단적인 이성을 추구하는 와중에도 사진이 잘나오는 매장을 찾아가고 사진을 찍어 모르는 사람들과 공유를 하며 '나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라고 세상을 향해 절규하는 듯한 극히 감성적인 코드가 보인다.

 

 또한 몇년째 트렌드를 관통하는 코드중 하나가 불안이다. 더 이상 성장이 없을 것 같은 불안한 미래가 모든 트렌드를 창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AI와 기계의 자동화가 발전 할 수록 노동시장 등에서 개인이 가져야하는 불안감을 커져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 대비 위해서라도 무언가 해야하는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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