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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나온지가 10년도 넘어 김영하 작가의 좀 더 젊은 시절 사진을 표지에서 감상 할 수 있었던 소설책이다. 마치 미드 '24시' 처럼 그 어떤 날과도 달랐던 기영의 가족의 하루를 그려놓은 책이다.

 

 책의 표지는 실제로 동명의 그림인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 사용되었다. 무척이나 평온해 보이는, 밝은 푸른하늘과 그 아래에 가로등 등불을 밝힌 어두컴컴한 집과의 대비와 빛과 어둠의 동시성은 무척이나 인상 깊다.

 

2. 줄거리

 

 기영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년가장이다. 아내와의 관계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럭저럭이고 중학생인 딸과의 관계는 그것보다는 좀더 좋아 보인다. 하고 있는 일은 영화 수입상, 상업성이 좋은 영화를 수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업도 그럭저럭이다. 차는 소나타다. 영화 수입상이라는 직업이 특이하긴 하지만 그 외에는 무척이나 평범한 아파트 한동에서 하나 둘 정도는 발견 할 수 있을 법한 중년의 남성이다.

 

 그런 그에게 평소에는 겪어 본 적이 없는 두통이 찾아오고 북에서는 실제 신분이 간첩이 었던 그에게 '귀환' 명령이 마치 갑자기 찾아온 두통처럼 찾아온다.

 

3. 마무리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문장은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였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인 줄 알았던 기영은 평양이 고향인 간첩이었다. 그의 아내 마리는 평범한 영업사원이지만 젊고 똑똑한 대학생 남자친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미래에 엘리트 계층에 속할 법한 이 대학생과 그의 친구 역시 쉽게 드러내놓고 밝힐 수는 없는 범상치 않은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

 

 가장 순수할 법한 기영과 마리의 딸 현미 역시 비밀을 가지고 있다. 마리를 쫓던 국정원 요원도, 현미의 국어 선생님이자 기영의 친구였던 소지 선생님 역시 남들에게 말하기 쉽지 않은 비밀을 하나씩 다 품고 있다.

 

 위성곤이 기영에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연기를 안 한 거죠. 지금 보시는 게 바로 연기입니다. 회사에선 평소 집에서 하던 대로 했을 뿐입니다. 포르노를 보고 코를 후비고 졸고 그러는거죠. 대학 다닐 때 연극반에 잠깐 있었는데요, 그때 그런 얘길 들었어요. 연기라는 게 없는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자기 안에 있는 또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조명탄이 꺼지면 바다 속 잠수정은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너무 강한 조명아래에서 얼굴의 음영이 지워져서 마치 유령처럼 보인다. 그래서 인간이란 모름직이 밝은 곳에서 쓸 가면이 하나씩 필요한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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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가끔 천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어떤 모습이 보일까라는 궁금증이 든다. 사람마다 그 차이가 적든 많든 서로 같은 물건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떠올리니 당연히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겠지만 왠지 그들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특별 할 것만 같다.

 

 그 중에서 가장 궁금한 작가는 이상과 카프카이다. 두 작가가 쓴 글들을 보면 대체 세상이 어떻게 보이길래 이런 글을 쓴 걸까 라고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성은 카프카의 장편 3부작 가운데 하나이다. 안타깝게도 완성이 되지 않은 작품이다. 다음 장면으로 들어가는 묘사 도중 뚝 끊어져버린다. 책을 읽고 나니 다음 장면이 궁금해 머리카락이 간질간질 거리는 기분이다.

 

2. 줄거리

 

 굉장히 난해한 책이다. 사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과연 이걸 줄거리를 정리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과연 맞게 줄거리를 정리 하긴 하는 것일까? 라는 무력감이 든다.

 

 소설은 K가 베스트베스트 백작의 성에 측량사로 초빙되어 밤늦게 마을 여관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피로한 상태에서 숙박을 청하는 K에게 어떤 남자가 굉장히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면 뭔가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K는 외지인으로써 마을에서 굉장히 배척 받는다. 그리고 K는 그런 원주민들의 태도에 진절머리를 치며 성으로 들어가길 원하지만 어째서인지 성에는 전혀 닿을 수 없고 자신의 직속 관리자인 클람에게 직접 접근하려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는데.

 

3. 마무리

 

 줄거리 파트 서두에서 언급했다시피 책이 굉장히 난해하다. 인물들 간의 대화도 뭔가 핀트가 어긋나 있고 시간과 공간 역시 뒤죽박죽이다. 마치 문장이 휙휙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이야기의 미로 속에 처박혀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 라는 의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 집중해서 읽어도 마찬가지일 건 같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흥미롭다. 마치 굉장히 폐쇄적이고 뭔가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집단의 속살을 한 꺼풀 한 꺼풀 파헤쳐가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게 별로 기분이 좋다는 건 아니다. K를 따라 가다보면 그리고 그가 변화되는 것을 보면 나 역시도 무척이나 피곤함이 느껴졌다. 도무지 실체라는 것을 잡을 수 없다.

 

 내가 직장인이라 그런지 등장인물들의 행위가 마치 혹시 모르는 일을 대비해 쌓아두는 자료 같이 느껴지고 누가 제대로 보기나 할지 의심스러운 알 수 없는 윗사람들 개별 입맞에 맞춰 수 많은 버전으로 수정이 가해지는 보고자료처럼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K는 버그이다. 절대로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아니 실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집단에서 만들어낸 버그이다. 프로그래머의 손에 의해 탄생했지만 필요치 않은 버그, 사실 프로그램에 버그가 있더라도 눈에 띄지 않고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중 아무런 오류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K는 너무 눈에 띈다. 자칭 클람의 여자인 프리다를 훔치고 마을 사람들의 충고에 따르지 않고 접근하지 말라는 바르가스 집안에 접근하고 관리들의 권위를 무시하기까지 한다.

 

 K전에는 올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내려진 형벌은? 사회적 매장이었다. 마을 내 꽤나 권위 있던 그녀의 집안이 아무런 명령서나 손짓도 발짓도 없이 소위 암묵적 합의에 의해 순식간에 작살이 나버린다.

 

당신은 성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을 사람도 아니에요.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신이 그 무엇이긴 해요. 즉 당신은 이방인이고 불필요한 사람이며 어딜 가나 방해가 되는 사람이에요.

 

경계에 관한 사소한 다툼은 우리 스스로 조정하지요. 그러니 우리에게 측량사가 왜 필요 하겠습니까?

 

실수 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 관청의 근무 원칙입니다.

 

 그리고 대체 클람은 누구일까? 그가 실존 하긴 하는 걸까? 때때로 그는 존재가 의문스러운 신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신의 권위를 이용하는 관리들은 신자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한다는 핑계로 권력을 행사하고 그들의 말에 의문을 가지거나 반기를 드는 이들은 신의 이름을 빌어 파문에 처한다!

 

아무튼 프리다는 클람의 애인이다. 클람을 만족시키는데 어찌 다른 사람들이라고 경탄하게 만들지 못 하겠는가.

 

클람의 이름을 사용하지 마세요.‘나 다른식으로 부르지, 제발 이름은 부르지 마세요.

 

부연해서 말하자면 사실 이 조서를 통해서만 드는 클람과 공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거예요.

 

클람은 왜 어떤 사람을 보는 걸 못 견뎌 할까요? 하긴 도저히 시험해 볼 도리가 없으니 증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요.

 책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이 시선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상황, 혹은 장소의 변동에 따라 사람들의 외양과 성격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알아 챌 수 있다. 프리다가 K를 따라간 후 그녀의 자리를 차지한 페피의 변화 그리고 프리다가 돌아 온 후의 변화, K를 따르던 조수의 모습, 관청에서의 바르나스와 집에서의 바르나스까지 재미있다. 마치 인간의 페르소나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쉽다. 뭔가 점차 실체에 접근하려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순간 책이 뚝하고 끊겨 버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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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우연히 그리고 또 급작스럽게 베트남 출장을 10일 정도 가게 되면서 가는 김에 베트남에 대한 이해나 높여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비행기 타는 동안 읽으려 책을 고르게 되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논하면서 지금의 남북을 만든 한국전쟁을 빼놓을 수 없듯 베트남을 논하면서 베트남 전쟁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비행기를 타는 동안 책을 읽지도 않았고 (잠이 너무와서) 베트남에서도 읽지를 못하고 한국에 귀국하고 나서야 읽게 되었는데 베트남에 대한 이해를 높여 주기보다는 오히려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한 단면을 들춰 읽은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다. 자기나라 방위도 홀로 하지 못해 미군의 도움을 받던 가난한 나라에서 대체 어떻게 다른 나라의 전쟁에 까지 개입하게 되었던 것일까?

 

2. 책의 주요 내용

 

책은 베트남 전쟁이 베트남에 미친 영향 보다는 한국과 세계사에 미친 영향 그리고 대부분 사람이 모르는 베트남 전쟁의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다.

 

베트남 전쟁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작게는 미국에 반전운동이 벌어지고, 미국의 정권을 바꿔놓았다.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세계의 헤게모니를 지배는 강대국으로 군림하던 미국에게 타격을 주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세계 곳곳에 개입을 하던 미국은 그 활동이 위축되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막대한 전비로 인해 미국이 지탱하고 있던 금환본위제가 붕괴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된다. (이점은 미국에게 좋은 거 아닌가? 아님 음모론자들의 주장대로 금융재벌들에게만 좋은 일인가?)

 

또 우리나라는 이 전쟁으로 인한 특수로 경제가 부흥하고 외화를 벌어들이게 되는데.

 

책은 미국이 벌인 전쟁은 명분도 시기도 전략도 적도 모호한 모든 것이 적절치 않은 전쟁이라고 평한다. 그리고 그런 전쟁에 참여하게 된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을 비판한다. 그들이 이 전쟁에서 얻고 자 한건 돈! ! 그리고 더 많은 돈 뿐이었다.

 

적과 아군이 뚜렷하지 않은 정글 속 최악의 전장에 파견된 가난하고 무지한 혹은 강제로 동원 된 젊은이들의 피 값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심지어 전쟁 당사자인 남베트남군의 병사에 비해서도 싼 값이 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충격적이다.

 

그리고 전쟁통에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과 기타 전쟁에서 드러나는 추악한 모습까지 책은 다루고 있다.

 

 

3. 마치며

 

이 책은 전쟁에 참여했던 일반 병사들의 행위를 꾸짖기 위한 책이 아니다. 그들을 사지로 내몬 사람들을 비판 받아야한다.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파병을 나갔던 병사들은 그들의 애국심에 대한 보답과 찬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전쟁터에서 있던 추악한 사실들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할 것은 그들을 사지로 내몰았던 국가와 위정자들이다.

 

용병도 아닌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몰고 돈을 벌었다. 일본은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전쟁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경제를 성장 시킬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베트남전쟁으로 인해 경제성장과 독재정권의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전쟁에 깊숙이 개입함으로써 많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또 만약 정말 책에서처럼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면 피해자가 납득 할 때까지 충분히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그것이 전쟁에 참전했던 이들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베트남 전쟁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남겼다. 그리고 한국군이 주둔 했던 다낭은 이제 베트남으로 관광가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되었고 내가 찾아갔던 하노이에서는 박항서를 외치며 한국인인 나를 꽤나 살갑게 맞아 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책의 부제처럼 이 전쟁이 잊혀 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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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문득 돌이켜보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들은 것이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증오는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이나 이제는 해체되어버린 소련을 떠올리면서 실패한 체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대체 그것이 민주주의이자 자본주의 국가를 살아가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이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2. 책의 내용

 

책은 레닌과 트로츠키, 스탈린 등 우리가 이름만 들어서 대부분 알고 있을 지도모를 러시아 혁명사에 관여했던 주요 인물들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러시아 혁명에 영향을 받았던 나라들의 당시 상황을 소개한다.

 

책은 어려운 공산주의에 관한 이론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보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러시아 혁명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 그리고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영향을 받은 나라들을 차분히 설명하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어나가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도 충분 할 것이다.

 

3. 마치며

 

러시아 혁명은 분명 미완의 혁명이다. 한 때 미국과 함께 세계를 이끌던 두 개의 축 중 하나였던 소비에트연방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그들이 추구하던 (적어도 그들을 이끌던 지도자가 주장은 하던, 실천이야 어찌 됐건) 이상은 실패한 것으로 치부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세계를 경제를 이끌던 자본주의는 또 다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과연 이 시대에 실패한 러시아 혁명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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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누구나 제목은 한 번쯤 들었을 명저인 '죄와 벌' 드디어 다이제스티 판이 아닌 완역본으로 읽었다. 읽은 날짜는 꽤지났는데 도저히 리뷰를 쓸 엄두가 나지 않아 못쓰고 있다가 드디어 쓰게 되었다. 축약본 조차 꽤나 긴 이 책을 완역본으로 보려면 800페이지가 넘는 무시무시한 두께의 책이 된다. 그리고 러시아 소설 특유의 등장인물의 이름이 헷깔리는 상황을 끊임 없이 마주하다보면  정신이 혼미헤지는 기분이든다.

 

 지독할 정도로 상세하고 치밀한 묘사를 읽다보면 가끔씩은 내가 살인을 저지른 로지온 마냥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는데 여기에 기여한 것은 당시 러시아의 고료 산정 방식에도 영향이 있다고 한다. 당시 러시아의 고료 산정은 글자 수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하니 작품의 완성도도 완성도지만 톨스토이와 달리 가난한 집안 출신인데다 개인적으로도 도박에 빠져있었던 도스토옙스키의 상황에서는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축약본의 경우 로지온과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다보니 다른 등장인물들의 특색이 살아나지 않았는데 완역본으로 보니 로지온을 제외한 등장인물들도 굉장히 특색있고 흥미롭다. 대체 이 소설 한편에 이런 인물들을 어떻게 다 엮어 넣을 생각을 했을까라고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2. 줄거리

 

 아마 다들 이 책에 스토리에 대해 한번쯤은 들어보거나 읽어는 보았을 것이다. 어린이용 만화책으로도 많이 나왔으니 말이다.

 

 가난한 대학생인 로지온은 전당포를 운영하는 노파인 일리나를 계획적으로 죽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일리나의 동생인 리지베타를 도끼로 살해하게 되고 그의 범행이 들키려는 순간 운 좋게도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후 로지온은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게 되고 결국은 포르피리의 압박과 소냐의 설득에 힘 입어 자수를 하게 되고 시베리아 수형소로 향하게 된다.

 

 이야기는 살인사건을 중심에 놓고 풀어나가지만 살인사건 그 자체보다는 그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 정확히는 살인사건을 일으킨 인물의 배경사상과 그 이후의 심리 상황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살인자의 분신과 같은 역활을 하는 인물과 주변인들이 그를 끊임 없이 자극하며 그의 행위와 사상의 괴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그게 읽는 사람이나 로지온을 끈덕지게 붙들고 늘어진다.

 

 

3. 죄

 

 그 유일한 이유인즉 자기가 계획한 일은 '범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로지온은 일종의 자아도취 상태이다. 그는 악덕 고리대금업자인 일리나를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은 그를 벌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는다. 나폴레옹을 숭배하다시피 하는 로지온의 이런 생각은 그의 논문을 통해 은근슬쩍 드러내고 있다. 위대한 자는 법률을 초월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돈을 훔치고도 쓰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의 어머니가 겨우겨우 마련해서 보내준 돈마저 몇번 보지도 못한 소냐의 아버지의 장례식에 써달라고 다 줘버린다.

 

 로지온은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살인사건을 제외한 그의 행위들을 보자면 그가 진정으로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명예와 정의를 아는 인물 같다. 어려운 친구를 돕고 절망에 빠진 가족을 사려 깊게 돕는다. 그리고 눈앞의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진정한 가족의 행복을 챙긴다.

 

 또한 라주미힌 같은 친구를 가지고 있고 그의 주변 사람들 조차 그가 살인을 저지르고 난 이후 광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참을성 있게 그를 챙기는 것을 보면 (심지어 숙소의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자 조차!) 평소 그의 행실이 어떠했는지는 짐작하고 남음이다.

 

형씨, 극빈은 죄랍니다. 그냥 가난한 정도라면 아직은 타고난 감정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빈한 상태라면 아무도 절대 그럴 수 없지요.

 

 로지온은 소냐의 아버지의 입을 빌어 또 다시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 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우연히 자신을 심정적으로 변호해준 소냐의 아버지의 장례식을 챙겨준 것은 아닐까?

 

4. 죄1

 

 범죄를 저지르기 전 자신이 하는 일을 범죄라고 믿지 않았던 로지온은 대체 왜 자수를 하게 된 것일까?

 

 먼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일리나를 살해한 후 우연히 사건에 휘말려 버린 '리자베타' 일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상황에서 위기를 모면하고자 두려움에 질려 살해 된 리지베타는 그를 끊임 없이 괴롭니다. 그의 범죄에 관한 신념은 시작부터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고 만다.

 

 그리고 로지온 대신 살인자로 몰려 법정에 서게 된 노동자가 두번째 이유일 것이다.

 

 리지베타는 그녀의 언니인 일리나와 달리 굉장히 선한 인물이고 살인자로 몰리게 된 페인트 노동공은 대학생이었고 나름 지인식층인 로지온과는 달리 공권력에 쉽게 휘둘리는 약자이다. 분명 큰 사회적 선을 행하기 위해 한 행동에 의도치 않게 약자들이 말려들자 로지온은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냐와 포르피리가 이 사실을 자극하고 자신의 이상과는 다른 초라한 모습을 쪼잔한 루쥔과 잔혹한 스비드리가일로프를 통해 만난다.

 

루쥔과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로지온이 가지고 있는 이상의 일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루쥔은 가난한 두냐(로지온의 여동생)을 도우며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려 하지만 오히려 로지온의 반대 등으로 인해 모욕받자 당사자도 아닌 가장 약한자인 소냐를 자신의 음모에 끌어들여 쪼잔한 복수를 하려고 한다.

 

 사랑 때문에 두냐를 쫓아 페테부르크로 온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무 죄 없는 아니 오히려 자신을 구원해주었던 전 부인을 살해하는 일을 저지르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산을 통해 소냐를 도와준다.

 

 

5. 죄2

 

 로지온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죄인지 아닌지 끊임 없이 고민하다 결국은 자수를 하며 이 책은 일단 끝이 난다. 그리고 에필로그 형식으로 이야기가 더 이어진다. 로지온은 재판을 받는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벌어졌던 혹은 행했던 일에 대한 모든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들이 감형의 이유가 된다.

 

 그는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 시베리아 유형지로 보내진 그를 괴롭히는 것은 고된 노동도 살을 에는 듯한 추위도 빈약한 식사도 아닌 자신의 죄를 인정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병이 났던 것이다. 오, 만약 스스로 죄를 인정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중략) 자신을 아무리 엄중하게 심판하고 양심을 모질게 다져 봐도 지난 일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실책 외에는 유달리 끔찍한 죄를 도무지 발견할 수 없었다. (중략) 저 무슨 선고의 '어처구니없음'과 타협하고 그것에 굴복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대체 그는 왜 자수를 했던 것일까? 정말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말처럼 공기를 바꿀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죄가 스스로를 죽이지 않기 위해 사회적 처분이 필요했던 것 일까?

 

 책은 애매하게 결론을 맺는다. 로지온은 마치 무언가를 깨달은 듯 한 모습을 보이며 갱생을 하는 것 같이 해놓긴 해놨는데 정말?? 이라는 물음표를 남긴다.

 

6. 마치며

 

 죄와 벌이라는 것은 참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영역인것 같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법률로서 엄정히 벌을 집행했다고 할지라도 그 범죄에 대한 죄과를 다 치뤘다고 할 수 있을지 또는 피해자가 용서를 해야만 할지 관해서는 늘 의문이 든다.

 

 범죄를 저지르고 정신착란에 빠져 자살이라도 할 것 같던 로지온은 공적인 영역에서 벌이 부과되자 억울한 생각이 든다. 사실 요즘 이런 상황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일본은 위안부 합의로 인해 모든 일이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참 고민되는 일이다. 공공의 법 집행이 범죄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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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새해 벽두부터 가상화폐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누군가는 거래소가 투기판이라고 근절해야 한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통해 4차 산업혁명과 블록체인 기술을 발견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거래소 폐쇄를 반대한다.

 

 이 글은 그것에 대해서 논쟁하고자 하는 건 아니고 대체 가상화폐의 기반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블록체인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블록체인이라는 녀석이 사회와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해 기술한 책에 관한 서평이다. 물론 이 책도 가상화폐 혹은 암호화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등 일반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블록체인이라함은 스마트폰이나 A.I 스피커와 달리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이고 차라리 블록체인 기술에서 창발한 코인이라는 것이 실체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는게 사실인 것 같다.

 

 아무튼 이야기가 약간 겉돌았던 것 같은데. 책은 초반부에는 그저 일반인이 교양으로 받아 들일 정도의 내용을 포함 하고 있지만 후반부로 갈 수록 알 수 없는 전문용어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책을 계속 읽을까 말까 고민하게 만들어 꽤나 어려웠다.

 

 

2. 책의 주요내용

 

 책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내용만 발췌해 보았다.

 

 블록체인은 '분산원장' 이라 부른다. '원장'이란 비즈니스 거래와 계약에 대한 '기록체계'다. 즉, 원장은 유형, 무형자산의 소유권 이전과 이전을 위한 조건들을 포함하는 정보이다.

 

 골드만 삭스에 따르면 블록체인은 크게 두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번째는 바로 보안성이다. 블록체인은 다른 사용자가 몰래 데이터를 추가, 삭제, 변경 하는 것이 불가능한 방식으로 정보를 저장하도록 설계 되어있다.

 

 두번째는 분산화다. 블록체인은 제3자 보증기관 또는 중개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거래에 수반되는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함으로써 개인과 개인, 공공기관과 개인, 기업과 기업간에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거래관계를 혁신하는 기술이다. 즉 블록체인은 중개자 없이 작동하는 신뢰 인프라다.

 

 블록체인은 범용 기술이다. 범용기술이란 경제 사회의 '혁신을 촉진'하는 기술로써 '제품, 프로세스, 조직' 에 대한 창조적 변화를 가져온다. 즉, 범용기술은 최종 상품을 만드는 기술의 역활을 하기 보다는 일종의 조력자로서 수 많은 구성요소를 지원함으로써 시스템 전반의 성장에 기여한다.

 

 블록체인이 가져올 변화의 본질은 한마디로 '정보의 민주화' 이자 새로운 '거버넌스'의 탄생이다.

 

 블록체인은 데이터의 투명성과 무결성, 추적 가능성을 통해 모든 단계의 검증을 보장하므로 신뢰를 기반으로한 비지니스 인프라를 새로 구축하는데 기여한다.

 

 프랑스 경제학자 앙드레 오를레랑에 따르면, 화폐와 가치는 동일하며 분리되지 않는다. 디지털 카달락시를 구성하는 암호화폐 역시 사회 구성원 전체에 의해 수용되고 승인되는 과정에서 가치에 실재적인 힘을 부여한다. 화폐를 통해 경제적 가치는 사회적 성격을 획득하며 사회적 근거로 작동한다. "가치는 대상에 있지 않다. 가치는 사람들이 서로 조화롭게 영위하는데에서 만들어진다. 가치는 제도의 성격을 갖는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이해가 가는 내용도 있고 이해가 가지 않고 의문이 가는 내용도 있었다. 일단 이해한바를 간단하기 정리하자면 현재 만약 개인과 개인간의 계약을 체결할 시 결국은 마지막에 증빙이 되는 것은 도장을 꽝꽝 하고 찍은 원본 '종이서류' 이다. 기업과 기업간에 계약시에도 전자로 된 서류들도 보관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문제가 생겼을 때 까보는 건 원본 '종이서류'이다. 왜냐하면 전자로 된 문서 같은 건 위조와 변조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남양사태 때 거래 기록 조작한걸 떠 올려보자.) 물론 전자로 된 서류를 인정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는 보통 공증력 있는 제3자가 끼어들어 기록을 나눠가지는 형태를 주로 취한다.

 

 사실 이때 든 생각은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의 발전형태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누군가가 서버를 유지하고 파일을 업로드하고 이용자들은 거기서 다운로드를 받는 웹하드 등의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면 지금은 토렌토를 이용해 파일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업로드와 다운로드에 참여하는 P2P 방식이 대세다.

 

 블록체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전자로 된 문서를 '블록체인 참여자' 모두에게 서류를 나눠가지게 한다.  수 많은 이들이 원본서류를 나눠 가짐으로써 보안성과 서류의 무결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물론 이건 과도하게 단순화 한게 사실이다. 어떻게 노드와 노드끼리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체인과 체인이 어떻게 연결되고 퍼블릭체인, 프라이빗체인 등등 많은 내용이 나오지만 프로그래머도 아닌데 굳이 그런것 까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한게 사실이다. (물론 특정 블록은 권한을 가진 사람만 조회 할 수 있게 처리하는 기술도 있다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인터넷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지는 않지 않는가. 그냥 익스플로어나 크롬 키고 구글이든 네이버든 다음이든 접속되면 장땡이다. 블록체인도 이와 같이 범용기술이다. 블록체인의 설계가 어떻게 되었든 그로 인해서 나오는 인터넷을 치면 검색사이트든, 메일이든 기업으로 치면 인터넷망을 활용한 ERP든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그냥 잘 되면 그만이다. 내일 당장 인터넷에 쇼핑몰을 개업한다고 인터넷의 기본원리를 공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일반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개발되면 과연 우리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가 중요한 사항일 텐데. 블록체인이 정보의 민주화를 불러 올 것이라고 말한다. 언젠가부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플랫폼 경제' 나 '플랫폼을 지배하는 기업이 성공한다.' 등등 플랫폼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재의 네트워크 구조로는 모든 정보가 곡물을 저장하는 높은 굴뚝 처럼 생긴 '사일로' 처럼 한 곳으로 집중된다.

 

 내가 페이스북에 누른 좋아요에 관한 정보는 페이스북 서버에 저장되지 다른 곳에 저장되지 않고 내가 송금한 기록은 송금한 은행에 남는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은 이것들을 공유 할 수 있게 한다. (과연 그런 독점력이 강한 기업들이 참여를 할까라는 의문이 들긴하지만)

 

 물건 하나를 수출하려면 수 많은 사람들이 서류를 나눠가진다. 화주와 운송업자, 선사는 물건을 제대로 인수 인계 했다는 서류도 주고 받고 관세청에도 어떤 물자 나간다고 신고도 해야하고 하여간 수십명의 이해관계자들이 자신이 일 제대로 했다는 증빙을 위해 말도 않되게 많은 서류들을 주고 받는데 이걸 블록체인으로 엮으면 한방에 딱! 해결 된다는 것도 있다. (물론 그전에 생산 단계에서 부터 물품을 제로 생산하고 제대로 된 물건을 보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자동화 같은 것이 이루어져야 겠지만 말이다.)

 

3. 마치며

 

 사실 정리하기가 어려운 책이었다. 단순히 교양서적일 거라고 생각하고 샀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개념이 많았고 설명도 추상적인 느낌이 들때가 많았다. (저자가 눈앞에 있었다면 질문하고 싶을 정도로)

 

 책을 읽고 느낀바는 정리하면 

 첫 째, 블록체인은 도깨비의 요술방망이가 아닌 범용기술이다. www와 같은 또하나의 네트워크 방식으로 다른 4차 산업기술들이 지원을 해줘야지 완성이 될 수 있다.

 둘 째, 블록체인에 참여하는 참여자들(노드) 이 있어야지 그리고 많아 질 수록 그 가치가 있다.

 셋 째, 그리고 이 기술이 우리의 생활에 실제적 편의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우리는 꽤 많은 개인적인 것들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과연 블록체인이 앞으로 어떻게 우리들에게 모습을 드러낼지는 모르겠다. 진짜 저자의 말대로 정보의 민주화가 일어날지 아니면 거대한 혼돈을 몰고 올지는 아니면 그저 그런 미풍으로 그칠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고 난 후 거래소 폐지에 관한 생각으로는 블록체인의 근원 기술도 아닌 결과물중에 하나인 암호화 화폐 거래를 금지시킨다고 블록체인 발전이 안된다고 주장 하는건 19금 포르노 사이트 막는다고 인터넷이 발전을 안한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블록체인의 목표중 하나가 중개인을 없애서 거래 비용을 최소화 하는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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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보통 글을 쓸 때 처음 시작으로 무성의 하게 책 표지를 올리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저자인 기드 모파상의 사진을 올렸다. 왜냐하면 이 책은 모파상의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이다. 벨아미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벗' 이라는 의미이다. 책을 아주 쉽게 폄하하여 요약하자면 뭣 모르는 시골에서 상경한 청년이 파리에서 잘생긴 얼굴을 믿고 여자들을 이용하여 성공하는 스토리이다. 그래서 저자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저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개인적인 궁금함도 있었기 때문이다. (수염이 참 멋지신분 같다.)

 

 책을 읽고 난 후 놀란점이 있다. 어떻게 보면 요즘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막장 드라마보다 약간 수위가 높아 보이는 이야기가 무려 '사실주의 소설' 로서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인데 나중에는 고개를 끄덕일만 했다. 어떻게보면 참 반전이랄 것이다.

 

 한 때 유행했던 TV 드라마에서처럼 조강지처를(애초에 조강지처랄 것도 없지만) 버리고 딴 여자를 만난 남자의 파멸 따위는 이 책에서 고려 대상이 전혀 아니다. 그건 허구인 소설 속에서나 이야기지 이 사실주의적 소설은 그런거 없다. 영화 '식스센스' 이후 강박적으로 반전을 추구하는 창작물의 세태에서 다른 의미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2. 줄거리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조르주 뒤루아는 알제리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다 전역하고 프랑스 파리로 온다. 꽤나 큰 꿈을 안고 파리로 상경했지만 북무 철도 사무원으로 일하는 그의 생활은 곤궁하기 그지 없다. 그의 생활은 마치 갓 시골에서 상경해 사람들이 자신을 얕잡아 보지는 않을까 하며 전전긍긍하는 시골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런 그에게 행운이 찾아오는데 바로 전우로 있었던 포레스티에를 만나서 우연히 상류사회의 파티에 참석하고 그가 근무하느 신문사 '라비 프랑세즈' 에 입사를 한 것이다. 파티에 참석하면서 뒤루아는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얼핏보게 되고 상류사회로의 진입을 열망하게 된다.

 

 그때부터 뒤루아는 자신의 재능(매력)을 십분 발휘하여 신분상승을 추구한다. 필요에 따라 여자를 유혹하고 더 높은 계단에 발을 디디기 위해 원래의 여자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취한다. 그러는 와중 마음만 앞설 뿐 글한줄 제대로 쓰지 못하던 기자 뒤로아는 장관을 글 몇편에 매장시켜버릴 정도로 뛰어난 논평가로도 성장한다.

 

 뒤루아의 욕심은 점점 더 커져간다. 자신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을 경멸하면서도 그들 처럼되기를 원하고 결국은 자신의 정부였던 이의 딸과도 결혼을 하게 되는데.

 

 

3. 마치며

 

 책은 인간의 추악한 욕망 혹은 순수한 욕망과 그 힘을 잘 드러낸다. 몇 푼 안되는 돈으로 살아남기 위해 식사를 굶어가며 다음 월급을 기다리며 궁상 맞게 살아가는 뒤루아를 밀어 올린 것은 상류층을 향한 욕망이었다. 실제로 책을 보면 알 수 있듯 뒤루아는 그렇게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소심하고 게으르다는 표현이 옳다. 대학을 가려고 했지만 포기하고 군인으로 성공하려고 했지만 일찍 전역해버린다. 그래서 도피하듯 도착한 곳이 파리였는데. 거기서도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고 있는 그를 최상류층으로 밀어 붙인 것은 얼핏 엿본 상류사회와 그에 대한 욕망이었다.

 

부유하고 유명한 권력가의 집 만찬에 초대되고 야회복을 입었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소설은 이 사회에서 사랑이나 결혼은 순수한 사랑이라는 것의 결과와는 거리가 먼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오히려 작중에 단 한번도 결혼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정부로 지낸 '드 마렐' 부인과의 관계가 육체적 욕망이긴 하지만 가장 순수한 감정에 가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들 정도이다.

 

뒤루아 씨, 저는 사랑에 빠진 남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은 바보가 되는 법이거든요.

 

  모파상이 뒤루아라는 캐릭터를 빌어 설명하는 프랑스 파리의 상류 사회는 모순 덩어리다. 결혼은 성공의 발판을 위해서 사용되고 사랑과 육체적 쾌락은 정부를 통해서 충족 시킨다. 정부고위 관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라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권력을 남용한다. 그리고 선출된 인물들 마저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선출된 이유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언론이 행하는 일은 사회 정의와는 관련 없이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이 있다. 권력과 결탁하여 돈벌이를 위해 확인도 되지 않은 글이나 정부의 청탁을 받은 글을 그대로 실을 뿐이다.

 

 그런데 무섭도록 놀라운 점은 이런 것들을 잘 활용한 뒤루아는 성공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인 뒤루아의 파멸이 혹은 그를 막는 난관이 언제 나올까 싶지만 그런게 없다. 난관이 없다기 보다는 있긴한데 솜씨 좋게 해치운다. 사랑을 팔아서든 부인을 팔아서든 말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쉬이 인정해주는 것을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는 결국 자신이 다니던 신문사의 사장의 딸인 쉬잔과 결혼식을 올린다. 사장은 국채 투매로 거대한 부를 이루어 파리에서 제일가는 부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원래 처와 간통죄라는 명목으로 이혼을 하고 자신을 무시하던 장관을 여기에 엮어 파멸시킨다.

 

 그리고 쉬잔과의 성대한 결혼식 당일

 

 그는 구경꾼들이 울타리를 이룬 높은 돌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그러나 그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과거로 돌아가 있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눈앞에는, 거울 앞에 앉아 그의 관자놀이 위 곱슬머리를 매만지던 드 마렐 부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책에도 잘 찾아보면 꽤나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노르베르 드 바렌' 이라는 인물이다.

 

"난 인간의 정신이, 돈 많은 갑부들의 돈을 눌러 이기는 승리를 위해 건배하겠네."

 

 그렇다면 그의 일생을 어땟을까.

 

밤에 집에 돌아가도 혼자이고 아무도 돌봐 줄 사람이 없고, 게다가 내 주위에 정체 모를 위험, 알지 못하는 무서운 것들이 우글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견딜 수가 없다오. 낯선 이웃과 나를 가로막은 벽은 멀리 보이는 별처럼 그와 나를 떨어뜨려 놓고 있지

 

 가끔 이런 책들을 보면 인간은 끊임 없이 발전했다고는 하는데 근본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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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얼마 전 (그러기엔 상당히 시간이 지났긴 하다.) 2017년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계 영국인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이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것보다는 이 책이 판타지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판타지 소설을 참 좋아하는데 소위 말하는 폄하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양판소 소설이건 톨킨이 쓴 책이건 그 상상력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 노벨상을 받는 작자가 판타지 소설을 쓰면 어떤 소설이 나올까 싶어서 읽어보게 된 책이다.

 

 혹시나 들어가기에 앞서 오크와 엘프, 검과 마법이 난무하고 젊은 주인공이 유쾌한 모험을 떠나는 소설을 기대하고 있는 분들은 그냥 장바구니에서 책을 빼고 뒤로가기를 누르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소설은 영국의 궂은 날씨처럼 지독하게 음울하고 초가을 해뜨기전 대교에 뿌옇게 낀 안개처럼  답답한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

 

2. 줄거리

 

 줄거리는 꽤나 단순하다. 도깨비와 용이 활보하던 먼 옛날 아서왕이 용을 물리치고 브리튼족과 색슨족의 통합을 이루어낸지 얼마되지 않은 시대이다. 그리고 매우 낙후 된 촌락지방의 액슬과 비어트리스 부부가 자신들의 아들을 찾아가기 위해 여행을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매우 사랑하는 사이지만 특이한 점이 있다. 그건 바로 과거의 기억이 제대로 공유가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은 분명 현재를 살아가고 단 한순간도 떨어지려 하지 않을만큼 서로 사랑하지만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기억이 없다. 그들은 심지어 왜 자신들이 그 동안 아들을 찾아가지 않았는지에 대한 기억도 없이 어느날 문득 찾아온 기억의 편린을 시작으로 아들을 찾아가기 위한 여행이 시작된다.

 

 부부는 여행의 과정에서 특이한 일들과 많이 마주친다. 그들의 과거를 기억 할 것만 같은 이들, 색슨족으로 태어나 브리튼족을 위해 봉사했지만 비참하게 쫓겨난 색슨족의 전사, 위스턴과 용 케리그를 쫓는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 도깨비에 물려 마을에서 쫓겨나면서 어머니를 찾으려고 하는 데드윈까지.

 

 

 

3. 망각, 기억, 용서

 

 위 세 단어가 이 책 최대의 주제이자 키워드가 아닐까한다. 누군가는 망각이 인간의 최대의 축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에게 그런말을 한다면 헛소리 하지말고 망각이야 말로 인간 최대의 저주라고 답변할 지도 모른다.

 

 반대로 수험생에게는 기억이야 말로 인간 최대의 축복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방금전 사랑하는 연인과 가슴아프게 헤어진 사람에게는 지금 당장 기억을 날려버리길 바랄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과 망각은 모두 용서와도 관련되어 있다. 어떤 사건을 망각함으로써 용서를 할 수도 있고 기억함으로써 사죄할 수도 있다. 과연 어떤 것이 바람직하고 옳은 일인가에 대해 질문한다면 누가 과연 그것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잘못된 일이 사람들에게 잊힌 채 벌받지 않기를 바라는 신은 어떤 신인가요?"

- 위스턴 -

 

"이 땅이 망각 속에서 쉴 수 있게 해줘요."

- 가웨인 -

 

학살과 마법사의 술수 위에 세워진 평화가 영원히 유지 될 수 있을까요?

- 위스턴 -

 

 위스턴은 사람들의 기억이 돌아오길 원한다. 가웨인은 망각을 통해 평화를 유지 할 것을 주장한다. 사실 색슨족과 브리튼족은 이 망각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전에 있었던 끔찍한 학살은 잊어버리고 서로 이웃을 한 채 서로 즐겁게 웃고 떠들 수 있었다. 가웨인은 기억이 돌아온다면 다시금 처절한 학살과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 주장하고 언젠가는 돌아올 기억임으로 그것을 굳이 지금 당장 꺼낼 필요는 없다고 위스턴을 설득한다. 하지만 위스턴은 그것을 거짓평화라고 평가한다. 잘못된 일은 잊혀질께 아니라 처벌을 받고 고쳐야한다고 주장한다.

 

이 모습이 예전 굴 속에서 가웨인이 목을 베었던 괴물개의 머리를 연상시켰고

액슬은 다시 우울한 기분이 몰려왔다.

 

 가웨인에게 *망각*은 용서였지만 위스턴에게 *망각* 이란 가식과 거짓이었다. 그것은 정의가 아니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를 기억해줘. 네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느꼈던 이 우정과 우리를 기억해줘."

- 비어트리스 -

 

전사에게 했던 약속. 모든 브리튼족을 미워해야 한다는 약속.

그러나 분명 위스턴은 이들 다정한 부부까지 그 안에 포함시켜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 에드윈 -

 

 위스턴은 에드윈에게 스승이자 형으로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러가기전 에드윈에게 약속을 강요한다. 브리튼족을 미워하라고 자신이 색슨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헌신과 용맹을 무참히 짓밟고 그를 떠나게 한 브리튼족에 대한 증오를 다음세대에 전달한다. 하지만 에드윈 역시 브리튼족과 같이 살았었다. 그들은 어린 에드윈에게 빵을 나눠주고 돌봐줬었다. 소년은 그 증오의 감정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위스턴에게 그러마라고 약속한다.

 

 그러나 비어트리스가 자신들의 우정을 기억해달라고 한다. 위스턴이 전달한 증오는 이 *기억* 때문이지만 비어트리스는 *기억* 을 통해 화합과 용서를 구한다. 

 

"더 디게 낫는 상처도 결국 다 낫게 마련이지요."

- 액슬 -

 

'아마 안개 덕분에 오래된 상처가 아물 수 있었을 거예요."

- 액슬 -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책 상에서 약간의 시차를 두고 액슬은 비슷한 말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한문장이 아닌 앞뒤의 문맥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게 느껴지는데. 그것이 결말을 해석함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궁금하다면 직접 사서 보도록하자.

 

4. 마치며

 

 작가는 이 책을 유고 내전과 르완다 학살에서 영감을 받고 썻다고 한다. 르완다 학살은 사실 잘 모르겠고 유고 내전이라면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거치면서 뉴스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보스니아 내전에서 자행된 인종청소에 관한 이야기도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20세기를 거치며 많은 국가들이 강대국의 강요로 인해 망각과 용서를 강요 받았다. 그리고 그 강요된 망각이 기억으로 터져나온 것이 어쩌면 저 유고내전과 르완다 학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마치 멀린의 마법처럼 힘으로 짓눌러 강요된 망각이 풀리고 - 마치 용이 늙어가듯 강대국이 힘이 약해지고 - 기억이 돌아오는 날 정의와 복수라는 이름아래 행해지는 무자비한 사건들을 바라보며 우린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

 

 이런 일은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이, 중동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쿠르드족의 정부수립 투표와 같은 형태로 말이다. (물론 유럽에서는 스페인의 카스티야와 바스크, 영국에서는 북아일랜드와 스코트랜드, 이탈리아 역시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 역시 얼마전까지만 해도 위안부에 대해 정부에 의한(?) 강요된 망각과 용서를 당할 뻔 했다.

 

 사실 아직도 작가가 찾고 있는 해답에 대해서는 잘모르겠다. 망각에 취해서 용서를 해라는 것인지. 아니면 아픈기억을 끄집어 내서라도 진정한 화해를 하라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좋은 기억을 쌓아감으로써 긴 세월에 걸쳐 용서를 하라는 것인지 말이다. 물론 여기에 대한 해답은 각자가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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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날이 슬슬 추워지고 낙엽이 질 때쯤, 항상 찾아오는 책이 또 나왔다. 한 해를 마무리고 내년을 준비하다보면 늘 읽게 되는 책이다. (그래서 뭐 딴걸 준비 하는건 아니고.. 읽기만 한다.) 매년 십이간지의 동물에 맞춰 타이틀을 정하는 트렌드코리아가 또 다시 출간이 되었다. 굉장히 다사다난 했던 한해가 끝나간다.

 

 내년은 황금 개의 해이다. 그래서 올해의 타이틀은 "WAG THE DOGS" 이다. WAG THE DOG는 경제학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다. 롱테일 이론과도 관계되어 있는 이론인다. 동양식으로 바꾸면 풀을 쳐 뱀을 놀라게 한다는 타초경사 쯤 되려나?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취업을 준비하며 2013'COBRA TWIST' 가 타이틀일 때였다. 지금와서 차분히 그간 읽었던 내용들을 돌이켜 보자면 트렌드라는 것이 과거의 것을 기반으로 점차 그 속성을 세분화 하고 강화시키거나 아니면 오히려 반대편을 향해 튀어 나가는 것 같다.

 

2. 주요 내용

 

1) What's your 'Small but Certain Happiness'?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 - 이것을 읽고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누군가가 트위터에 썻던 소비에 실패할 여유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올해의 트렌드 중 하나이 B+ 프리미엄이나, YOLO의 연장선에 이것이 있는 것 같다. 다들 모든 것을 내팽겨치고 멀리 여행을 떠나버리거나 프리미엄 제품을 사고 싶지만 그렇다고 내 지갑사정을 고려치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작지만 확실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에 소비를 집중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생각해보면 굉장히 오래된 트렌드가 강화된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만큼이나 뉴노멀시대라고 하던 장기 불황을 터널을 우리가 지나고 있다보니 그런 거겠지만 말이다.

 

2) Added Satisfaction to Value for Money

   

 가성비에 가심비를 더하다 : "플라시보 소비" - 사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트렌드가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과 관련되어 있다. SNS의 발달로 내 일상을 그 어느 때보다 잘 오픈하고 남의 일상도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들보다 멋지게 사는 모습을 보이고 싶으니 돈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뭔가 있어보이는 소비가 아닐까?

 

 '나는 이런 것을 이런이런 취미를 즐긴다.', '나는 이렇게 개념있는 소비를 한다.', '이러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소비를 한다.' 그리고 지불하는 가격이상의 심정적 만족감을 느낀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대외적으로 주장한다.

 

3) Generation 'Work-Life-Balance'

 

 '워라벨' 세대 -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세대의 출현이다. 누군가는 일보다는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는 세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그냥 '돈 주는 만큼 일하는 세대' 라고 칭하고 싶다. 과거와는 달리 회사에 모든 것을 바치고 일을 한다고 해도 정당한 대가나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2030 세대는 그것을 실제로 목격하기도 했던 세대이다. IMF로 인해 평생직장이란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고 부모세다가 그 일에 휩쌓이는 것도 목격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이 바닥은 다 이래'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다.

 

4) Technology of 'Untact'

 

 언택트 기술 - 비대면 기술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 아마존은 점원이 거의 없는 손님이 물건을 집고 매장을 나가기만하면 자동으로 결제가 되는 매장을 시험적으로 오픈하고 주로 알바생이 주문을 받던 패스트푸드 매장은 키오스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기술의 발달로 기업의 니즈와 고객의 니즈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지점 인것 같다. 인건비를 줄이고 싶은 기업과 SNS에 자신을 노출하면서도 사생활은 지키고 싶은 개인의 욕구가 말이다. (사실 이런 무인 점포에서야 말로 모든 정보가 기업쪽으로 흘러 들어갈텐데 라는 상념이 든다.)

 

 

5) Hide Away in Your Querencia

 

 나만의 케렌시아 - 케렌시아는 스페인에서 벌어지는 투우에서 소가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이곳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에너지를 충전하고 최후의 일전을 준비한는 공간이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사실 혼자만의 공간 혹은 시간을 가지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니다. 집에서 편히 쉬고 싶지만 시시때때로 울리는 카톡 알림음과 트위터의 진동소리가 나를 방해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 받고 있는 것이 '패스트힐링' 이라고 한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잠깐의 낮잠을 즐길 수 있게하는 수면방등이 대표적이다.

 

6) Everything-as-a-Service

 

 만물의 서비스화 - 과거에는 물건(하드웨어)을 팔고 서비스가(소프트웨어) 덤으로 따라 붙었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바뀌고 있다. 정수기는 이미 오래되었고 이제는 메트리스까지 렌탈을 할 수 있는 시대다 소비자들이 사는 것은 단순히 정수기나 메트리스가 아니라 그것을 관리해주는 서비스가 주목적인 시대가 되었다.

 

물론 이것도 기업과 소비자의 이익이 맞아 떨어진 것이겠지만 소비자의 감성을 공략하는 것이 더욱더 중요해진 시대이다. 과연 카카오와 네이버에서 AI 스피커를 엄청난 할인을 붙여서 파는 것은 하드웨어를 파는 것이 목적일까 그들의 서비스를 파는 것이 목적일 까를 생각해보자

 

7) Days of 'cutocracy'

 

 매력, 자본되다 - 귀여운것 예쁜것이 좋다. 가심비와도 관계가 있는 것이겠지만 책은 표지를 예쁘게 혹은 초판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로 돌려 판다. 화장품들은 각종 케릭터와 콜라보를 해서 판다. 카카오톡에서 매출을 끌어올린 것은 혁신적인 기술이 아니라 '라이언' 전무라는 소리까지 있으니 말 다했다.

 

8) One's Ture Colors, 'Meaning Out'

 

 미닝아웃 - 자기주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 혹은 지지하는 기업의 미담을 퍼트리기를 주저하지 않고 싫어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불만을 표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SNS를 통해 그만큼 개인의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극대화 된 것도 있지만 익명성에도 있지 않을까? 오래된 속담인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라는 소리가 있다. 그만큼 거대한 기업이나 정치인에게 대놓고 불만족을 표시했다가는 정을 맞을 수 있지만 요즘는 타인들이 동조하는 순간 모난 돌이 어딧는지 제대로 찾을 수가 없게된다.

 

9) Gig-Relationship, Alt-Family

 

 이 관계를 다시 써보려 해 - 인스턴트 식품에 이어 인스턴트 인간관계까지 등장하는 시대에 왔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까지 줄었던 가족의 구성은 이제 일인으로까지 줄어든다. 결혼과 이혼 등 기존에 우리가 상식적으로 혹은 의무적으로 알고 있던 관계들이 해체되고 ''를 중심으로 둔 쉽게 만나고 쉽게 정리가 되는 관계가 점차 성행을 하고 있다.

 

10) Shouting Out Self-esteem

 

 세상의 주변에서 나를 외치다 - 점차 자존감을 지키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단위나 마찬가지였던 가족이 해체되고 개인은 점차 파편화 되면서 특정 구성원 내에서 자신의 지위와 자존감을 찾기란 요원한 일이 되어가고 있고 수저론이 등장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 역시 점차 사라지고 있는데...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소비를 한다는 개념이다. (사실 이 부분은 참 이해가 안간다.)

 

3. 마치며 감상


 책 읽기를 마치고 떠오른 것은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인 '정반합' 이다. 들어가면서 기술 했듯이 이제까지 이 시리즈의 책을 읽어오면서 느낀 결과로는 각 년도별 트렌드는 결국 거대한 흐름안에서 각종 변수들의 출현으로 인해 강화되거나 반대되는 것이 나오는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에는 현재의 트렌드의 큰 흐름은 스마트폰과 SNS의 등장과 경제적으로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장기적인 불황에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이 트위터에 올린 한마디도 영향력을 가지고 침대에 누워서도 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전통적 개념의 인간관계는 약해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면서 사람들은 현재 지향적으로 변하게 된다.

 

 SNS에 나의 온갖 일상들을 업로드 하면서 나의 사생활을 완전히 노출 시키고 개인화 되어가던 것이 오프라인에서 조차 사람과 접촉을하지 않는 언택트 기술로 강회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인스턴트와 같은 그렇지만 개인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소비는 불황을 터널을 지나며 가성비를 추구하던 것에 대한 반동으로 욜로가 나타나고 이것이 강화되어 소위 이쁜쓰레기를 사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결국은 지갑과 현실의 한계로 가심비를 추구하는 형태로도 변형이 된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사실 제일 인상이 깊었던 것은 마지막 챕터인 '세상의 주변에서 나를 외치다' 였다. 이 챕터는 떨어진 개인의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소비를 한다는 개념이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느낌이었다. 마치 실존주의 철학을 보는 것 같다랄까?

 

[독서 노트/경제] - 트렌드 코리아 2017 - 김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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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어느 새, 땀을 쭉쭉 빼던 여름도 거의다 지나가고 가을이 다가왔다.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이라면 완연히 하반기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들고 빠른 곳은 내년 경영계획이나 투자계획 등을 짜는 곳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그렇다.)

 

 아직 올해도 일도 다 못 끝낸 판에 무슨 내년도 경영계획이니 전략이냐라는 생각도 들지만 까라면 까야지 월급이 나오는 직장인의 비애를 가지고 열심히 머리를 쥐어 짜내서 투자계획이나 경영전략을 짜고 있었을 때였다. 이런거 할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돈쓰라고 계획하라는 것도 꽤나 골치아픈 일이다. 그리고 쓰라고 하면서 왜 쓰는지는 엄청 따져 대니 말이다. 아무튼 본래 목적은 이게 아니라. 회사의 경영전략은 효율화에 맞춰져 있다. 어떻게 하면 무엇을 하면 생산성을 올려서 적은 노동력으로 많은 일을 적은 돈으로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을지 끊임 없이 생각해 내길 회사에서는 요구하고 그것을 창의력 혹은 혁신이라고 칭찬하고 좋은 실적이라고 평가한다.

 

 올해도 억지로 회사에서 요구하는 양식에 맞춰 최대한 설득력이 있게 포장한 문서를 제출하고는 퇴근을 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내가 만들어낸 문서 한장이 회사의 생산성과 이익에는 부합 될지 모르지만 내 곁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일자리를 노리고 있다 것과 함께 결국은 내 목 끝을 겨누는 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우울해졌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이나 노동이란 내가가진 자원인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버는 행위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합 할 것이다. 그리고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노동만이 유일하게 자본주의에서 최고의 물질이자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 불가결한 생활 수단인 돈을 벌어 들일 수 있는 방법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점에서 실업이란 대부분의 사람에게 끔찍한 재앙와 같은 단어이다. 이건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칼 마르크스는 이런 자본주의의 근원적이고 구조조적인 오류를 지적했지만 그가 만들어 낸 이론 역시 자본주의의 본래 속성을 바꾸지는 못했다.

 

 노동을 중시하는 것은 오래된 이념이다. 물론 그 노동의 숭고함이나 게으름뱅이에 대한 비판은 지배층이 아닌 피지배층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고대에는 인력 혹은 노동력은 국력이었고 농경사회에서는 토지와 함께 가장 중요한 생산 수단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산업혁명 이후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실업이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실업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내일은 줄어들지 않고 있고 내 옆자리의 사람은 회사를 떠나고 나에게 일을 넘겨주지만 인원은 충원되지 않고 있다. 대체 이건 어디서 부터 잘 못 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 책은 이 질문에대한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된다고 연일 떠들고 있고 기본소득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노동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하는 시기가 오지 않았는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하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한다.

 

 

2. 마음에 드는 문구

 

 현대 자본주의에서 우리는 기이한 상황에 맞닥 뜨린다. 고급노동자는 장시간 노동 하느라 괴로워하는데, 다른 편에는 사익추구 세대에 자신의 노동력이 더 이상 유용하게 쓰이지 않아 고통받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이다...(중략)... 노동 시간 단축정책은 모두에게 보다 공평하게 일을 할당해 불균등한 일 분배 상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 모두가 적게 일해야 모두가 일을 하고 늘어난 자유 시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 보면 이해가가지 않는 일이 벌어질 때가 있다. 청년 실업률은 날이 갈 수록 치솟는데 정작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제대로된 돈을 지급받지 조차 못한채 추가 노동에 시달리다 자살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고용주는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두 사람 분의 일을 한사람에게 시키고 한 명의 실업자와 한 명의 탈진자를 만들어낸다. 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일까?

 

 그러나 성과를 측정 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오늘 날 비물질적 노동에서는 개별 노동자가 ㄴ어느 정도 생산성을 지니는지 파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 결과, 노동자를 '성격'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늘어가는 상황이다. 훌륭한 노동자는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에 몰입하고, 열정을 갖고, 지지를 드러냄으로써 전문가주의적 사회규범에 능통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다.

 

 결과물이 쉽게 확인 되는 제조업이 줄어들고 서비스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회사가 혹은 상사가 직원을 평가하는 방법은 여전히 다소 주관적이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특히나 서비스업에서 개별 고객이 받는 서비스에 대한 평가를 개별 고객이 진행함으로써 서비스업 종사자가 회사의 메뉴얼을 따라 진행했더라고 고객이 받는 만족도는 각각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럴 경우 그 노동자는 자신이 맡은 고객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자신의 생산성이 평가받음으로써 어찌보면 운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늘 날, 힘든 하루를 보낸 후 집에 돌아온 부유한 노동자는 무언가하라고 요구하는 물건에 포박 당한다. 내 경우에는 집에 가면 넷플릭스에 넘쳐나는 추천 시청목록과 CD가 ...(중략)... 덜 바쁜 시기에는 이런 것이 커다란 즐거움을 주지만, 너무 바쁜 시기에는 좌절만 안겨 줄 뿐이다.

 

 사실 이 부분을 보다가 크게 웃었다. 문득 얼마전에 산 '드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보통 회사가 끝나고 나면 운동을 하러가는데 여기에 하나의 취미를 더끼워 넣어보았다. 그런데 처음에는 조금 즐겁더니 도리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돈을 들여산 것을 꼭 시간을 내어 즐겨야 할 것만 같았지만 그럴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운동도 가야하고 책도 읽어야하고 글도 써야하고 그런데 드론을 샀으니 드론까지 시간내서 해야지?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결국 드론은 서랍에 고이 숨겨 놓고 눈에 띄지 않게 되어서야 나는 묘한 죄책감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나 생일, 결혼, 성인식까지 모든 사회적 의례가 이제는 값비싼 선물과 호화스러운 소비의 동의어가 되었다. 끊임없이 타인을 향하는 기쁜과 사랑을 값비싼 상품 구매로 표현한다고 설득당하는 상황에서, 돈을 아끼려고 이를 거부하는 이는 고약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나 구두쇠 밖에 없다.

 

 책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자유시간이 많다면 그 자유시간을 이용해 정성스러운 요리를 준비하거나 제품들을 수리하고 무언가를 만든다. 그렇지만 우리가 직업이라는 것을 가지고 난 이후에는 그런 행위들은 돈으로 대체된다. 정성스러운 요리는 시간이 없어 레토르트 식품이나 배달음식으로 대체 되고 제품수리는 돈을 주고 수리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그냥 완제품을 구매한다. 그리고 조금 더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돈을 좀 더 들여 공산품이 아니라 소량 생산하는 수제품을 구매하여 사용하며 대리만족을 통해 감성을 채운다.

 

3. 마무리

 

 요즘은 모든 곳에서 사람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 책이나 TV에서는 욜로를 외치며 내일은 잊고 떠나라 빚을 내서라도 떠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보통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에게는 축하와 함께 빚을 내서라도 여행을 떠라고 말한다. 나중에는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이때의 기억이 일하는 동안 큰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충구를 해준다. 심지어 어떻게하면 회사를 오래 다닐까라는 질문에 빚을 내서 차를 사고 집을사면 회사를 나가고 싶어도 못나가니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다는 대답이 명대답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나는 이런 대답들을 들을 때마다 약간 벙찐다. 회사를 다니기 위해 돈을 쓰고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억지로 다니는 모습이 너무나도 어의없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회사 일을 하루에 몇시간 머물리도 않는 특히나 자는 시간 조차 빼버리면 덩그라니 비어버리는 공간을 소유하기 위해 빚까지 내가며 회사를 다니고 또 그 빚을 값는다는 명목으로 회사를 다니는 모습이 마치 챗바퀴 속의 쥐처럼 느껴진다.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소비를 휴식을 가지지고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은 회사를 다시 가기 위해서 그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현대 사회에서는 명목상의 개인의 신분이라는 없어졌지만 사회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그가 가진 직업이나 지위 혹은 직장과 바로 소비일 것이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고 다니면 좋은 대접을 받는다. 대기업을 다니거나 전문직에서 일을해도 주위사람들은 그를 높게 본다. 하지만 이제는 노동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에 대해서 다시 정의를 내려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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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나 다니엘 불레이크 - 복지는 시민의 정당한 권리이다.

[독서 노트/고전]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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