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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크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몸집과 골격, 누더기를 기워 놓은 것 같은 바늘 자국이 무수히 많은 창백한 피부, 각진 턱, 관자놀이에는 커다란 볼트가 박혀 있는 괴물. 내가 프랑켄슈타인을 읽기 전 프랑켄슈타인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이미지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 특히나 30대 이상(?)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이라 하면 이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꽤나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충격적이라면 충격 적이겠지만 원작에 등장하는 프랑켄슈타인은 내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먼저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다.

 

 프랑켄슈타인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이 풀네임으로 책에 등장하는 생명체를 만들어 낸 창조자의 이름이다. 책에서 빅터에 의해 창조 된 생명체는 그 등장부터 책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름도 부여받지 못한 채 사라진다. 그리고 그에 관한 묘사도 덩치가 크고 그저 끔찍한 모습이라고 반복적으로 묘사 될 뿐, 모습에 대한 정확한 묘사는 없었던 것 같다.(그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과학을 발전시키고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당시의 금기를 어겨가며 생명체를 탄생시킨 빅터는 자신의 창조물의 끔찍한 모습에 질려 그를 버려두고 달아난다. 그러나 빅터는 죄책감과 고통에 시달린다.

 

 겨우 그것에서 벗어나 고향인 제네바로 돌아갔을 때는 동생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된다. 자신이 버렸던 창조물의 복수였다. 복수를 위해 창조물을 쫓던 빅터는 그와 조우하게 되고, 빅터에게 버림받은 이후 그가 겪었던 과거를 듣고 복수의 고리를 끊을 방법에 대해 합의를 하지만 결국 빅터가 다시 한번 그를 버림으로써 창조자와 창조주의 쫓고 쫓기는 복수극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빅터에 의해 창조 된 '그'는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실낙원'의 아담과 이브처럼 자신의 창조주에게서 버려진다. 물론 훨씬 더 과격하게. 심지어 창조주의 종족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할 뿐만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우월한 모습을 드러낸다.

 

 힘이 센건 말할 것도 없고, 짧은 시간에 문자와 말을 배우고 사용하는 학습 능력뿐만 아니라 남을 도울 수 있는 이타심과 자신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을 용서 할 수도 있는 아량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없는 것은 단지 인간과 같은 외모 뿐이다. 때문에 자신이 몰래 숨어서 훔쳐보고 배우던, 프랑스인 가족 중 눈이 먼 아버지에게서는 여느 평범하고 선량한 인간의 대접을 받지만 아들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에게서는 대화의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쫓겨난다.

 

 책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금기를 어기고 새로운 창조물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빅터의 열정어린 모습은 마치 A.I와 로봇을 연구하는 현대의 과학자나 기업가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발전하는 그것들의 모습을 보며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이미 거대한 자본금이 계속해서 투입되고 굴러가기 시작한 일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이제는 옛날 이야기처럼 되어린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 이 후 이세돌 9단은 은퇴를 했다. 그는 나중에 한 토크쇼에서 은퇴의 이유를 밝히며 자신은 바둑을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닌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라는 절대자의 등장으로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게 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

 

 예술에 관한 정의는 개인별로 천차만별일테지만 일반적으로 예술이라 여기는 미술 등의 분야에서도 AI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이 우월 하다고 믿고있는 창작의 영역이 오히려 더 빠르게 추월 당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들 정도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것들이 우리를 뛰어 넘었을 때,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기계에 밀려 일자리를 잃은 많은 노동자들이 ‘러다이트 운동’을 벌이며 기계를 파괴했다. 기계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 파괴되는 동안 아무런 불평불만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래에도 인간보다 인간적인 가치라 믿었던 것을 더 잘 수행하는 피조물이 그런 자신을 미워하는 창조주 인간들에게 아무런 불평불만을 제기하지 않을거라 확언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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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들어가며

 

 채피는 2015년 개봉작이니 꽤나 오래된 영화다. 포스터는 꽤나 귀여워 보이는 로봇에 온갖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고 벽에도 귀여운 그림들과 함께 총이 뉘여져 있는 걸로 봐서 굉장히 가볍고 발랄한 영화라는 느낌이나는터라 포스터를 보고 영화를 봤다면 분명 욕하는 사람이 많았을 꺼라고 생각되는 영화이다. 엄청나게 디스토피아적인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를 보는 감상을 표현하자면 마치 너른 밭에서 감자를 캐내듯 영화 장면과 대사 곳곳에 숨겨져있는 감독의 메세지를 드러내고 고민을 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즐거운 영화였다. (즐겁다 라고 하기엔 주제가 좀 무거운 것 같은게 사실이다.)
 
 이 때는 알파고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이니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제는 영화의 모습들이 일부분은 현실로 실현이 된터라 좀 더 마음이 무겁다. 지금도 A.I가 인류를 구원 할 것인지 인류를 위협할 것인가를 부터 시작하여 여러가지로 A.I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영화를 보고 나도 문득 궁금해졌다.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의 예측처럼 A.I가 특이점을 넘어선다면 과연 무엇으로 A.I와 인간을 구분 할 수 있을까?
 

2. 신화

 

 등장 인물들을 뜯어 보면 참 재미있다. 먼저 채피의 원형인 로봇 스카우트의 제작자이자 채피의 A.I 설계자인 디온은 마치 신을 연상시킨다. 그는 기존 인간이 혹은 산업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해(계속 되는 파손으로 인해 복구에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상황) 폐기 처분 위기에 놓인 22호를 사장의 지시를 어기고 빼돌려 자신이 개발한 A.I를 장착시킨다.

 
 그리고 그는 곧 채피를 자신을 납치한 갱단에게 빼았기는데 그 와중에도 채피에게 자신이 그를 창조한 창조주임과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희망, 그리고 인간을 해치지 말라는 약속을 하게 한다. 마치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곧장 갱단에게 채피를 빼앗기는데 그들 (특히 아메리카와 닌자)의 모습은 마치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으라고 유혹하는 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디온과 대치하는 빈센트는 마치 창조론의 수호자처럼 보인다. 자율적인 A.I를 부정하고 그림을 그리는 채피를 발견하고 성호를 그은 그는 채피를 잡았을 때 그의 머리에 든 것은 데이터 덩어리일 뿐이라고 소리친다.

 

3. 채피

 

 영화는 당연히 채피를 빼놓고 말을 할 수 없다. 채피의 모습은 완전히 인간을 연상시킨다. 하긴 개발자인 디온의 목표가 당연히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하는 A.I 였으니 당연한 결과이긴 하다. 그리고 마치 인간처럼 주변에 관계된 인간들을 변화시키기까지 한다.
 
 소심하고 나약해보이던 디온은 총을 들게 했고 거칠고 악의만 가득차 보였던 욜란디는 '마미'를 자청하게 만들고 그를 아기처럼 돌보게 한다. 종국에는 처음에는 채피를 도구로 물건으로만 다루었던 닌자조차 말뿐이 아닌 진짜 '파더'로 행동하게 만든다. 현금 수송차를 털고 새로운 몸을 줄 수 없다고 고백하고 그 사실을 안 채피가 마치 자식이 부모에게 따지 듯 왜 거짓말을 했냐고 격렬하게 항의하는 채피에게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하고 죄책감 어린 표정을 짓는 닌자를 보며 연출한 감독에게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압도적인 악의를 보이며 마치 성전을 치루며 악을 정화를 행하는 듯 잔혹한 행동을 서슴치 않으며 자신의 '마미'를 죽인 빈센트를 공격하는 모습은 영화를 지켜보고 있는 나마저 로봇이 인간을 공격하는 모습에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묘하게 동조 시키게 만들었다. 정리하자면 빈센트보다 오히려 채피가 더 인간다워 보였다.
 
 채피는 다른 로봇들과 달리 애초에 수명이 정해져있었다. 배터리 손상으로 인해 수명은 단 5일, 태생부터 굉장히 인간답다. 그리고 불완전한 인간답게 영생을 꿈꾼다. 자신을 불완전하게 탄생시킨 디온(신 혹은 설계자)에게 항의하고 디온이 불가능하다고 한 마음을 옮기는 일까지 해낸다.
 

 

4. 과연 무엇이 인간인가?

 

  채피가 아직 세상을 제대로 알기전 욜란디가 읽어주던 책에서는 검은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채피에게 '겉모습이 다른것은 중요하지 않고 내 안에 무엇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그게 널 다르게 만들어준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닌자의 손에 이끌려 나간 맞닥드린 세상은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채피의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채피의 겉모습을 바라보고 로봇 경찰이라고 공포에 질리거나 경멸한다. 채피가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이 없다. 채피가 완전히 성숙하고 주변은 채피를 인간적으로 받아 들였지만 양키와 빈센트에게는 여전히 하나의 로봇일 뿐이었다.
 
 이 영화의 결말은 소름끼친다. 디온은 마음은 옮길 수 없음으로 채피가 다른 로봇으로 옮겨지면 더 이상 같은 로봇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견해는 채피를 처음부터 인간적으로 대해주었던 마미 욜린다고 마찬가지다. 그런데 영생에 대한 욕망으로 마음을 옮기는데 성공한 채피는 그 첫번째 대상으로 죽어가는 디온을 로봇으로 옮긴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디온은 살아 있었고 자신이 로봇의 몸에 들어 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미 과연 그 디온이 이 디온인지 그냥 복제된 데이터인지에 관한 의문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소름돋는 건 그 다음이다.
 
 닌자를 구하기 위해 죽은 욜란디, 어찌보면 사랑하는 이를 위한 죽음이라는 굉장히 인간적인 죽음을 맞이한 그녀의 육신은 땅아래 묻힌다. 그런데 채피가 그녀의 마음의 백업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다. 욜란디의 말대로라면 그녀의 영혼은 이미 먼곳으로 떠난 상황, 그렇다면 USB에 담긴 그녀의 마음 무엇일까?
 
 채피는 그녀의 마음 백업데이터를 이용해 그녀를 살려낸다. 그녀의 모습은 좀 더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채피는 말한다.
 

"이젠 우린 둘다 검은양이야"

 

 조금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부활한 욜린다는 채피보다 조금 더 인간적일까? 아니면 모두가 채피 같은 모습이 되면 채피가 가장 인간적일까?

 

5. 마치며

 

 지난 여름에 레리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를 읽었었다. 문과인 나에게는 외계어가 쓰여진 것 같은 더럽게 어려운 책이 었다. 책에는 여러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인간은 육신을 벗어던지고 데이터가 될 것이다 라는 식으로 예건이 되어있었다. (내가 책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그때는 최근 영화였던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는 로봇몸에 들어가 디온을 떠올리게 되었다. 과연 로봇의 몸에 들어가서 말하는 디온은 정말 인간 디온일까? 아니면 디온의 데이터일까?
 
 문득 '우리는 객체이자 주체로써 서로를 투사한다.' 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아직까지는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가장 손 쉬운 방법은 인간끼리 서로 증명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A.I가 더 자연스러워지고 모두 채피와 같은 모습이 되면 채피가 인간이 되는 것일까?
 
 검은양이 농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면 과연 양은 검은색일까 흰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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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말, 우리 서점을 강타했던 사피엔스의 후속작인 '호모데우스'가 출간 되었다. '사피엔스'가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라는 3가지 주요 혁명을 통해 어떻게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책이었다면 이번 '호모 데우스' 는 그 이후를 주로 다루고 있다. 과연 앞으로 인간에게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터미네이터나 메트릭스 처럼 기계들에게 지배당하는 세상일까? 아니면 노동에서 해방되어 모든 인간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유토피아가 펼쳐질까? 유발 하라리가 상상하는 미래를 엿보고 싶다면 책을 펼쳐보기를 바란다.

 

호모 데우스
국내도서
저자 :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 김명주역
출판 : 김영사 2017.05.15
상세보기

'호모 데우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

1. 탁월한 이야기꾼 유발 하라리, 역사학자가 바라보는 미래

2. 우리가 인간으로써 나아가야할 다음 스텝은 어디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 

 

 일단 책이 무진장 두껍다. 600 페이지가 넘으니 펼치기도 전에 질린다는 감정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읽다보면 그의 방대한 지식과 유려한 글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이야기가 그의 손을 거치며 쉽게 바뀌어 있어 생각보다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 '호모데우스'는 인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3부분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초반 부분은 약간 '사피엔스'와도 연계가 되는 부분이지만 굳이 '사피엔스'를 읽지 않아도 큰 무리가 없다.

내 마음대로 고른 주요 Keyword

1. 인류의 다음 욕망은 어디인가?

성공은 야망을 낳는다. 인류는 지금까지 이룩한 성취를 딛고 더 과감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전례 없는 수준의 번영, 건강,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가치를 고려할 때,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다.

 

 고대부터 많은 정복자 혹은 지배자들은 영생과 젊음을 꿈꾸었다. 중국에는 진시황제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영생을 이루기 위해 종교나 신화에 혹은 인간을 초월한 신비로운 무언가에 기대었다면 지금은 과학에 그것을 기대하고 있다. 과연 인간은 그것에 다다를 수 있을까?

 

 인간은 혹은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더 이상, 밤이되면 어두운 동굴속에 숨어서 야생 동물의 침입을 두려워하며 잠이들던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모든 동물들의 지배자가 되었고 이제는 에이즈나 에볼라와 같은 자연재해와의 싸움에서도 서서히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 이제 인간에게 더 위험 한 것은 전염병이나 야생동물 혹은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 들이다.

 

 현재 사회구조와 과학기술의 복잡도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 누구도 정확하고 완벽한 큰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세계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역시 우리는 향후 발전에 대해 브레이크를 잡을 수 조차 없다.

 

 현재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끊임 없는 성장을 갈망한다. 이제는 성장이 유지 되지 않으면 국가도, 경제도, 산업도 유지가 될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지금도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하라는 유혹을 받는다. 그렇지만 결국은 이러한 무한성장에 기반한 경제는 결국 끝을 맞이 할 수 밖에 없을 텐데. 이런 우리에게 불멸, 행복, 신성이라는 목표는 더 없이 완벽한 프로젝트일 것이다.

 

 영원한 젊은과 불멸은 어느날 갑자기 인간이 꿈꾸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과거부터 인간이 꿈꾸어 왔던 것이다. 다만 과거에는 신적인 존재에게 그 소망을 빌었다면 지금은 생물학과 같은 과학에 기대를 걸고 있을 뿐이다. 현재는 여러가지 도덕적 이유로 앞서 말한 것들에 도전하는 생명공학 같은 것을 제한하고 있지만 상기 기술했던 이유로 인해 계속해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쨋든 도래할 신기술이라면 그 용도를 선택할 수 있음으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이해하고 그 일들이 우리의 마음을 정하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역사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위대한 상수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2. 인류는 어떻게 발전해왔는가?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제치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바로 인지혁명을 통해 낯선 사람들과도 매우 유연한 방식으로 협력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피엔스가 이를 통해 창조 해낸 상호주관적인 실재는(돈이나 국가 같은 것) 막강한 힘을 발휘했고 결국은 세계를 지배하게 명분을 만들었다.

 

 사피엔스가 만들어낸 상호주관적인 실재의 걸작 중 하나인 종교는 인간에게 다른 동물과 자연을 지배할 강력한 명분을 제공하였다. 종교는 사피엔스의 존재 이유를 부여하고,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들 구분짓고 권위를 부여하여 다른 동물들 위에 올라 설 수 있게 했다.

 

 사피엔스는 이 상호주관적인 실재를 끊임 없이 개편했다. 애니미즘은 신을 받드는 종교로 진화하고 되고 종교가 자리잡았던 곳에 의심이 피어나자 인본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사피엔스가 상호주관적인 실재를 통해 만들어낸 것 중 가장 걸작중 하나가 과거에는 종교이고 현재에는 돈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도우려고 그것들을 발명 하였으나 그것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의 생명을 희생하고 있다. 종교는 우리에게 종교전쟁과 마녀사냥이라는 비극을 안겨주고 돈은 빈부격차와 장시간 저임금 노동이라는 슬픔을 안겨주고 있다.

 

 그런데 과학이 발전하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그동안 믿어왔던 혹은 상호 합의되어 왔던 사실들 또는 상호주관적인 실재에 의구심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과연 인간은 영혼이 있는가? 개인적 자아는 존재하는가? 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등이다.  

 

이렇게 상호주관적인 실재들을 창조하는 능력은 인간을 다른 동물들에게서 분리할 뿐 아니라, 인문학을 생명과학에서 분리한다.

3. 사피엔스의 미래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발전해왔고 다음 목적지가 어디인지 정했으니 어떻게 그곳으로 갈지를 정한다면 다음 미래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을것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마구 줄여놨으니 리뷰상 부족하고 생략된 부분이 많지만 이해하기를 바란다.

 

 저자가 바라보는 미래는 꽤나 디스토피아적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현재의 우리의 관점에서 그렇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향후 우리를 지배할 상호주관적인 실재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예측한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지금도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 동안은 신이 혹은 인간 개인 스스로가 선택하고 이루었다고 믿는 것들을 (행복, 평화 등) 첨단기술이 이루어 줄 것이라고 믿는 신흥 기술종교가 그것이다.

 

 신흥 기술종교들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기술 인본주의와 데이터 종교이다. 이것에 관해서는 가급적 직접 책을 읽고 보고 평가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기술 인본주의는 인간을 개조 혹은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반응을 통제하는 형태로 행복을 느끼게 하고 집중력을 높여 효율성을 높인다. 데이터 종교의 경우에는 모든 인간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상태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최근 개봉한 영화 공각기동대의 전뇌와 유사하다고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4. 마치며

 과연 앞으로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바둑으로 꺽으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들이 인간을 대체 할 것임으로 그것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호모 데우스는 그것에서 한 발 더 나가있다. 과연 그 세계에서 인간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좀 더 무서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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