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년 포함 16년간의 정규 교육기간 동안 법에 관해 배웠던 것이 3차례 정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첫 번째 기억은 꽤나 강렬한 것이었다. 중학생 시절에 사회 과목을 가르치시던 담임 선생님이 여름 방학숙제로 헌법 전문을 손으로 적어오라는 숙제를 낸 적이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막 초고속 인터넷이 등장하던 시기라 인터넷에 헌법 전문이 올라와 있었는지 아닌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체 뭘 보고 베껴 적으라고 했던지는 잊어 버렸지만 아무튼 그 길고 긴 헌법 전문을 적는 걸 포기하고 2페이지 정도 적고는 그냥 몸으로 때웠었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길고 한자가 가득했던 헌법전문은(그 때는 전자사전도 잘 없었다.) 그 시절 내 눈에는 다른 나라 법이나 마찬 가지였다.
두 번째는 고등학교 시절 법과 사회 수행 평가로 지방법원 견학을 가봤던 것이다. 그 시절에는 이미 꽤나 큰 상태라 미국의 영화를 보면 나오는 변호사와 검사의 치열한 법정 다툼을 기대하고 법정에 갔었는데 방청객이 별로 없던 민사와 형사 판결이 짧은 판사의 선고로 금세 끝이 났었던 걸로 기억한다.
세 번째는 대학교 시절 교양 과목으로 배웠던 생활과 법률, 노동과 법률, 그리고 전공과목과 연계된 각종 법들이었다. 돌이켜보면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과 종교의 자리를 대체한 것이 과학이라면 왕 권력과 전통관습 권위를 대체한 것이 현대에서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대통령을 탄핵시킨 것은 그 과정 상 국민의 염원과 바람도 있었지만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은 법률이 정한 권한을 가지고 있던 헌법 재판소였다.
물론 그 때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열광하긴 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들이 가지는 최고의 권리중 하나인 투표권을 이용해 뽑힌 최고의 선출직 공직자가(물론 투표 조작으로 인해 뽑혔다는 의문은 제외고) 그 사람을 뽑은 국민이 아닌 임명직 공직자에 의해서만 해임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약간 헛웃음이 나긴 했다.
이번 정부의 목표 중 하나가 사법부 개혁이다. 방금 말했듯이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공식적 최고 권력은 법이다. 그리고 그것을 법이라는 검을 붙잡고 휘두르는 곳이 사법부이다. 책을 보고 있자면 그 칼자루를 과연 공부 잘해서 판검사 혹은 변호사에게 온전히 맡겨 놔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비공식 최고 권력은 돈이다.)
탄핵 정국 시기 몇몇 정치인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로 인해 탄핵이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며 헌법을 개정할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걸 듣고 있던 유시민 작가는 만약 헌법이 살아있는 생물이었다면 그 말을 듣고 굉장히 억울해 할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며 악용한 개인이 잘 못 된 것이지 헌법이 잘 못 된 게 아니라는 의미로 일갈했다.
떠올려보면 명문화 된 법이란 것은 예전부터 계속해서 존재 해왔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경국대전이 편찬 되었지만 몇번의 사화가 일어나고 민초들이 고통을 겪기도 한다. 결국 본질적으로는 법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집행하는 '사람'이 더 문제 일수도 있다.
헌법은 지금 인간의 권리를 규정하고 보호하는 최고의 법률이다. 과연 우리 헌법은 어떤 풍경일까? 소위 전문가들에게만 그것을 바라 볼 권리를 넘겨버려 필요에 따라 쓱싹 도려내져 황폐화 돼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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