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어느 새, 땀을 쭉쭉 빼던 여름도 거의다 지나가고 가을이 다가왔다.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이라면 완연히 하반기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들고 빠른 곳은 내년 경영계획이나 투자계획 등을 짜는 곳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그렇다.)
아직 올해도 일도 다 못 끝낸 판에 무슨 내년도 경영계획이니 전략이냐라는 생각도 들지만 까라면 까야지 월급이 나오는 직장인의 비애를 가지고 열심히 머리를 쥐어 짜내서 투자계획이나 경영전략을 짜고 있었을 때였다. 이런거 할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돈쓰라고 계획하라는 것도 꽤나 골치아픈 일이다. 그리고 쓰라고 하면서 왜 쓰는지는 엄청 따져 대니 말이다. 아무튼 본래 목적은 이게 아니라. 회사의 경영전략은 효율화에 맞춰져 있다. 어떻게 하면 무엇을 하면 생산성을 올려서 적은 노동력으로 많은 일을 적은 돈으로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을지 끊임 없이 생각해 내길 회사에서는 요구하고 그것을 창의력 혹은 혁신이라고 칭찬하고 좋은 실적이라고 평가한다.
올해도 억지로 회사에서 요구하는 양식에 맞춰 최대한 설득력이 있게 포장한 문서를 제출하고는 퇴근을 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내가 만들어낸 문서 한장이 회사의 생산성과 이익에는 부합 될지 모르지만 내 곁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일자리를 노리고 있다 것과 함께 결국은 내 목 끝을 겨누는 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우울해졌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이나 노동이란 내가가진 자원인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버는 행위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합 할 것이다. 그리고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노동만이 유일하게 자본주의에서 최고의 물질이자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 불가결한 생활 수단인 돈을 벌어 들일 수 있는 방법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점에서 실업이란 대부분의 사람에게 끔찍한 재앙와 같은 단어이다. 이건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칼 마르크스는 이런 자본주의의 근원적이고 구조조적인 오류를 지적했지만 그가 만들어 낸 이론 역시 자본주의의 본래 속성을 바꾸지는 못했다.
노동을 중시하는 것은 오래된 이념이다. 물론 그 노동의 숭고함이나 게으름뱅이에 대한 비판은 지배층이 아닌 피지배층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고대에는 인력 혹은 노동력은 국력이었고 농경사회에서는 토지와 함께 가장 중요한 생산 수단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산업혁명 이후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실업이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실업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내일은 줄어들지 않고 있고 내 옆자리의 사람은 회사를 떠나고 나에게 일을 넘겨주지만 인원은 충원되지 않고 있다. 대체 이건 어디서 부터 잘 못 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 책은 이 질문에대한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된다고 연일 떠들고 있고 기본소득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노동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하는 시기가 오지 않았는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하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한다.
2. 마음에 드는 문구
현대 자본주의에서 우리는 기이한 상황에 맞닥 뜨린다. 고급노동자는 장시간 노동 하느라 괴로워하는데, 다른 편에는 사익추구 세대에 자신의 노동력이 더 이상 유용하게 쓰이지 않아 고통받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이다...(중략)... 노동 시간 단축정책은 모두에게 보다 공평하게 일을 할당해 불균등한 일 분배 상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 모두가 적게 일해야 모두가 일을 하고 늘어난 자유 시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 보면 이해가가지 않는 일이 벌어질 때가 있다. 청년 실업률은 날이 갈 수록 치솟는데 정작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제대로된 돈을 지급받지 조차 못한채 추가 노동에 시달리다 자살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고용주는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두 사람 분의 일을 한사람에게 시키고 한 명의 실업자와 한 명의 탈진자를 만들어낸다. 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일까?
그러나 성과를 측정 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오늘 날 비물질적 노동에서는 개별 노동자가 ㄴ어느 정도 생산성을 지니는지 파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 결과, 노동자를 '성격'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늘어가는 상황이다. 훌륭한 노동자는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에 몰입하고, 열정을 갖고, 지지를 드러냄으로써 전문가주의적 사회규범에 능통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다.
결과물이 쉽게 확인 되는 제조업이 줄어들고 서비스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회사가 혹은 상사가 직원을 평가하는 방법은 여전히 다소 주관적이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특히나 서비스업에서 개별 고객이 받는 서비스에 대한 평가를 개별 고객이 진행함으로써 서비스업 종사자가 회사의 메뉴얼을 따라 진행했더라고 고객이 받는 만족도는 각각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럴 경우 그 노동자는 자신이 맡은 고객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자신의 생산성이 평가받음으로써 어찌보면 운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늘 날, 힘든 하루를 보낸 후 집에 돌아온 부유한 노동자는 무언가하라고 요구하는 물건에 포박 당한다. 내 경우에는 집에 가면 넷플릭스에 넘쳐나는 추천 시청목록과 CD가 ...(중략)... 덜 바쁜 시기에는 이런 것이 커다란 즐거움을 주지만, 너무 바쁜 시기에는 좌절만 안겨 줄 뿐이다.
사실 이 부분을 보다가 크게 웃었다. 문득 얼마전에 산 '드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보통 회사가 끝나고 나면 운동을 하러가는데 여기에 하나의 취미를 더끼워 넣어보았다. 그런데 처음에는 조금 즐겁더니 도리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돈을 들여산 것을 꼭 시간을 내어 즐겨야 할 것만 같았지만 그럴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운동도 가야하고 책도 읽어야하고 글도 써야하고 그런데 드론을 샀으니 드론까지 시간내서 해야지?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결국 드론은 서랍에 고이 숨겨 놓고 눈에 띄지 않게 되어서야 나는 묘한 죄책감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나 생일, 결혼, 성인식까지 모든 사회적 의례가 이제는 값비싼 선물과 호화스러운 소비의 동의어가 되었다. 끊임없이 타인을 향하는 기쁜과 사랑을 값비싼 상품 구매로 표현한다고 설득당하는 상황에서, 돈을 아끼려고 이를 거부하는 이는 고약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나 구두쇠 밖에 없다.
책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자유시간이 많다면 그 자유시간을 이용해 정성스러운 요리를 준비하거나 제품들을 수리하고 무언가를 만든다. 그렇지만 우리가 직업이라는 것을 가지고 난 이후에는 그런 행위들은 돈으로 대체된다. 정성스러운 요리는 시간이 없어 레토르트 식품이나 배달음식으로 대체 되고 제품수리는 돈을 주고 수리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그냥 완제품을 구매한다. 그리고 조금 더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돈을 좀 더 들여 공산품이 아니라 소량 생산하는 수제품을 구매하여 사용하며 대리만족을 통해 감성을 채운다.
3. 마무리
요즘은 모든 곳에서 사람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 책이나 TV에서는 욜로를 외치며 내일은 잊고 떠나라 빚을 내서라도 떠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보통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에게는 축하와 함께 빚을 내서라도 여행을 떠라고 말한다. 나중에는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이때의 기억이 일하는 동안 큰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충구를 해준다. 심지어 어떻게하면 회사를 오래 다닐까라는 질문에 빚을 내서 차를 사고 집을사면 회사를 나가고 싶어도 못나가니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다는 대답이 명대답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나는 이런 대답들을 들을 때마다 약간 벙찐다. 회사를 다니기 위해 돈을 쓰고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억지로 다니는 모습이 너무나도 어의없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회사 일을 하루에 몇시간 머물리도 않는 특히나 자는 시간 조차 빼버리면 덩그라니 비어버리는 공간을 소유하기 위해 빚까지 내가며 회사를 다니고 또 그 빚을 값는다는 명목으로 회사를 다니는 모습이 마치 챗바퀴 속의 쥐처럼 느껴진다.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소비를 휴식을 가지지고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은 회사를 다시 가기 위해서 그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현대 사회에서는 명목상의 개인의 신분이라는 없어졌지만 사회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그가 가진 직업이나 지위 혹은 직장과 바로 소비일 것이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고 다니면 좋은 대접을 받는다. 대기업을 다니거나 전문직에서 일을해도 주위사람들은 그를 높게 본다. 하지만 이제는 노동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에 대해서 다시 정의를 내려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함께보면 좋은 것들
1. 실업자에 대한 혹은 노동력은 잃은 사람들에 대한 불편한 시선
[영화] - 나 다니엘 불레이크 - 복지는 시민의 정당한 권리이다.
[독서 노트/고전]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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