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모든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대체로는, 어쨋든, 전쟁 이야기는 아주 많은 부분이 사실이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이 드레스덴에서 자기 것이 아닌 찻주전자를 가져갔다는 이유로 정말로 총상을 당했다.
책은 위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처음 책을 펼쳐들고 읽을 때는 별다른 의미가 없던 것 같은 문장이 책을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을 때, 책의 내용을 얼마나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드레스덴에 대해서 알지 못할 것이다. 물론 나도 알지 못했다. 그곳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독일의 문학가 에리히 캐스트너는 자신의 자서전에 드레스덴의 포격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술했다.
정말이지 드레스덴은 멋진 도시였다. 내 말을 믿어도 좋다. 아니, 내 말을 꼭 믿어야 한다! 여러분이 아무리 부자 아버지를 두었어도, 내 말이 맞는지 알아보려고 기차를 타고 드레스덴으로 갈 수는 없다. 드레스덴이라는 도시는 이제 없기 때문이다. 제 2차 세계 대전이 단 하룻밤 사이에, 단 한 번의 손놀림으로 그 도시를 완전히 없애 버렸다.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움이 만들어지기에는 수백 년이 걸렸지만, 그 도시를 땅 위에서 날려버리기엔 두어 시간으로 족했다. 1945년 2월 13일의 일이었다. 전투기 팔백 대가 수류탄과 폭탄을 퍼부었다. 그리고 허허벌판만 남았다. 뒤집힌 원앙 어선처럼 보이는 몇 무더기의 거대한 잿더미와 함께. - 에리히 캐스트너
비슷한 시기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이 투하 된 옆나라의 도시만큼 우리에게 유명한 것은 아니지만 독일의 드레스덴이라는 도시는 순식간에 폐허가 되고 수 만명의 사람이 사망했다. 그리고 그 폐허속에서 미군 포로인 늙은 고등학교 선생 에드거 더비가 지하묘지에서 찻주전자를 가져왔다 들켜 약탈죄로 총살을 당한다.
책에서는 이런식으로 수많은 아이라니가 벌어진다. 더비는 찻잔 하나에 목숨을 잃지만 전쟁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은 작던 크던 무언가를 가지고 떠난다.
책의 첫장에 등장하는 저자의 약속처럼 이 책에는 프랭크 시나트라나 존 웨인 같이 마초적이고 영웅적인 인물도 거대한 악당이나 권력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에 따르면 '트랄파마도어' 라는 외계인에 납치당했다 풀려난 후 풀려버린 시간을 뒤죽박죽 헤메며 전쟁의 모습과 그 이후의 이야기 해주는 빌리는 오히려 삶에 대한 의욕없고 완전히 무해한 사람처럼 보인다.
빌리는 시간여행을 하는 동안 앞으로 자신에게 벌어질 일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결코 그 상황에 개입하여 무언가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흔히 공상과학 소설에 나오는 타임패러독스 같은 이유가 아니다.
▶ 그로부터 25년 뒤 빌리 필그림은 일리엄에서 전세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 비행기가 추락할 건 알았지만 그런 말을 해서 바보 취급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4차원을 볼 수 있는 트랄파마도어인들은 우주의 미래가 어떻게 끝이 날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결말을 바꾸지는 않는다. 트랄파마도어인들에게 인생이란 길고 긴 시간동안 수 많은 원인과 결과를 쌓아 올린 장편 소설 같은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짧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순간순간 같은 것이고 그것을 작은 파이프를 통해 들여다 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개념에는 자유의지란 없다.
▶ 그 조종사는 늘 그걸 눌렀고, 앞으로도 늘 누를 겁니다. 우리는 늘 누르게 놔두었고 앞으로도 늘 놔둘 겁니다. 그 순간은 그렇게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트랄파마도어에는 전문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 말이 맞습니다. 각 기호들의 덩어리는 짧고 급한 메세지입니다. 하나의 상황, 하나의 장면을 묘사하지요...(중략)...시작도 없고, 중간도 없고, 끝도 없고, 서스펜스도 없고, 교훈도 없고,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습니다.
빌리의 뒤죽박죽 된 시간여행 속에서 많은 것들이 죽는다. 별 볼일 없는 이유로 죽고, 폭격으로 죽고, 심지어 샴페인도 죽는다. 어쨋든 많은 것들이 죽는다. 그 때마다 '뭐 그런거지' 라는 문장이 반복된다. 책의 제목인 드레스덴의 제5도살장에 포로로 수용되어 있다 운이 좋게 살아 남은 빌리는 미국으로 귀환 후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책에서는 뚜렷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독자로서 폭격으로 인한 참상을 겪은 후 남은 트라우마가 아닐까? 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빌리가 어릴 때부터 심약한 성격이라는 것은 이야기 곳곳에 잘 드러나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조차 특정한 순간의 나쁜 상태라고 바라보는 트랄파마도어적인 태도를 수용함으로써 그 트라우라를 극복해낸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할 수 있다.
사실 책을 읽고 나서도 한동안 대체 이게 왜 최고의 반전(전쟁을 반대함) 소설 중 하나라고 소개되는지 의아했다. 노골적으로 전쟁의 참상을 묘사하는 것도 아니고 참혹한 전장에서 불행한 주인공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토막난 시간속에서 온갖 방법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들에게 '뭐 그런거지' 라는 무미건조한 말을 툭툭 던지다 끝이난다.
그리고 나중에 책의 내용을 되뇌이다. 저자는 전쟁에 '왜' 나 '무엇 때문에' 에 같은 이유를 붙이는 것을 비난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드레스덴 폭격을 계획 할 때 수 많은 '왜'와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을 받았을 것이고 그것의 필요성에 대한 보고서를 한 다발은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로 인해 죽은 이들에게 이유가 필요한가? 이것을 드레스덴이라는 한 도시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것으로 확대한다면?
▶ 자, 여기 우리도 그런 거죠. 필그림 씨, 이 순간이라는 호박에 갇혀 있는 겁니다. 여기에는 어떤 왜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책의 구조가 기가막힌다. 저자가 책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장면을 서술한 첫장은 아래와 같이 끝난다.
▶ 들어보라 :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풀려났다.
그 책은 이렇게 끝난다.
지지배배뱃?
그 후, 빌리 필그림이 등장하하는 내용은 정확히 동일한 문장으로 시작해 '지지배뱃?' 하고 우는 새소리로 끝난다. 나는 독자로서 이미 책의 시작과 끝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하나 바꾸지 못했다. 그리고 순간순간들을 별 의미 없이 넘기고, 모든 것들을 보고 난 이후에야 이 책이 굉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소설 속 트랄파마도어의 책을 엿본 기분이었고 빌리의 인생을 다른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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