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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불편한'과 '편의점' 서로 반대의 의미를 가진 단어들을 이어붙여 만든 흥미로운 책이었다. 언젠가부터 동네마다 한두개쯤은 있던 구멍가게들 대신해 자리를 잡은 편의점이 불편하면 대체 어떤 손님이 그런곳을 간단 말인가?
나는 어렸을 때, 지금은 편의점에 밀려 거의 사라진 구멍가게의 아들이었다. 가끔 부모님을 대신해 가게를 보기도 했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지금 편의점의 장점은 명확하다. 깔끔한 내외부의 인테리어와 손쉽게 확인가능한 가격, 같은 프렌차이즈면 어딜가나 비슷한 상품 구성과 물품배치, 간단한 식사를 해결 할 수 있는 공간과 식품들이 있는 것, 조금 큰 곳으로 가면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을 넘어서 택배를 비롯해 기타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다고 여기는 점은 그 공간 안에서의 느슨한 인간관계이다. 예전 구멍가게에서 계산대를 지키던 이들은 대부분 그 동네의 주민이자 점포의 주인 혹은 혈연관계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손님들 역시 대부분 그곳의 주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계산대를 지키는 사람들이 대부분 알바생으로 바뀌고 손님들 역시 오다가다 들리는 손님들이 되면서는 가게 안에서의 인간관계가 상당히 느슨하게 변한것 같다.
편함이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누군가는 어떤 점포에 들어갔을 때, 종업원이 나와서 반겨주고 이것저것 권하는 것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그런 접객문화는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키오스크로 대체하거나 아예 무인점포라는 이름을 걸고 운영되는 매장도 생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런 흐름을 역행하는 사람과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2. 줄거리

평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신경도 쓰지 않거나 가까이 오면 불편하게 여겼을 노숙자, 자칭 독고씨가 염여사의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독고씨는 지갑을 찾아주는 과정에서 말을 더듬으며 어설픈 모습도 보이지만 지갑의 주민번호와 염여사의 주민번호를 확인하는 의외의 꼼꼼함도 보이고 다른 노숙인들에게서 지갑을 지키는 정의로운 모습까지 보여준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지갑을 찾고 고마워하며 떠났겠지만 평생 고등학교 교사로 살아오다 퇴직한 염여사가 독고씨에게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하고 그에게 관심을 쏟으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염여사는 독고씨에게 밥을 사주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일부나마 듣게된다. 이미 알콜성 치매를 앓고 있던 독고씨가 기억하는것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때마침 그녀가 운영하는 편의점에 야간 알바가 필요하게 된 염여사는 독고씨를 채용하며 술을 끊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독고씨가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그의 편의점 야간 알바가 시작이된다.
그렇게 염여사 다음으로 그와 관계를 맺은 것은 취업 준비생이면서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시연이다. 이미 독고씨가 노숙자였다는 사시을 알고 있는 시연은 그가 야간알바를 한다는 사실을 꽤나 껄끄러워한다. 그러나 사장의 의지에 따라 독고씨에게 편의점 일에 관해 이것저것 알려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고씨가 상당히 일머리가 좋을 뿐만 아니라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독고씨는 이런식으로 편의점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관계를 맺는다. 자신의 다음 타임에 일을 하며 독고씨가 편의점을 망칠지 모른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 50대 생계형 알바생 오여사와 매일 밤 야외 테이블에서 참참참 (참치김밥, 참깨라면, 참소주)을 즐기는 고독한 가장이자 회사원인 경만, 절필 전 창파동으로 글을 쓰러온 희곡작가 인경, 어머니의 편의점을 팔아넘기고 자신의 사업자금으로 쓰려는 염여사의 아들 민식, 그리고 그 민식의 의뢰로 자신의 뒤를 캐는 사설탐정 곽까지, 그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시선으로 독고씨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의 과거를 상상한다. 그리고 독고씨는 도저히 세련되다고는 못하겠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자신의 과거를 찾기 시작한다.

3. 마치며

책의 주인공이라도 할 수 있는 독고라는 인물은 특이하다. 커다란 덩치에 알콜성 치매를 겪으며 사람을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던 그는 염여사의 관심으로 일자리를 얻고 편의점 알바생 시연에게 일을 배우며 편의점이라는 작은 사회의 일원이 된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치 않다. 사람들은 각자의 시선을 통해 독고를 관찰하고 오해하며 경계심을 보인다. 소설속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독고 역시 마찬가지로 그들을 괸찰 했을 것이다. 다만 그는 관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한다.
독고씨의 원래 직업(?)인 노숙자라는 존재는 생각해보면 꽤나 특이한 존재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들과 마주치는 순간 마치 없는 사람인양 무시한다. 마치 그림자 처럼 말이다. 편의점에서는 이런 관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특히나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두번쯤은 편의점에 갈 것이다. 가는 시간이 늘 비슷하면 아마 같은 사람을 매번보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매번 마주치는 사람의 얼굴 외에는 이름을 비롯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책을 읽는 동안 관계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귀찮은 혹은 쓰잘데 없는 참견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책에서처럼 누군가의 작은 관심이 한 사람을 바꾸고 그 사람이 다른 여러 사람에게 관심을 나눠주며 또 다른 영향력을 행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재미있었던 책이다. 책의 종반부까지 독고의 정체를 궁금해 할 수 있었고 각 챕터마다 등장하는 인물들, 편의점 알바를 하는 취준생, 가족에게서 고립된 가장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는 인물들이었기에 책에 잘 몰입이 되었던 것 같다.
다만 주인공격인 독고에 대해서는 정체가 밝혀 지고 책이 결말에 이르면서 물음표가 남았던 것 같다. 마치 마감시간에 쫓기다 억지로 결말을 내버린 것 같이 느껴졌다.
전염병을 이유로든 비용을 이유로든 사회적으로 비대면 접촉이 늘어나면서 정말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타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 같다. 우리도 어느 새 이런 사회에 익숙해져있다. 도시에 산다면 마음만 먹는다면 이런 최소한의 접촉마저 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도 독고씨처럼 서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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