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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든 책이든 하나의 이야기를 두고도 사람들은 다양한 자신들의 의견을 내 놓는다. 영화는 두말할 것도 없이 굉장히 좋은 영화였다. 곳곳에 심어놓은 블랙 코미디적 요소와 관객을 빨아들이는 스릴감까지 굳이 무언가를 느끼거나 해석하려 들지 않고 순수하게 이야기를 즐기기에도 충분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빈부의 격차, 계급의 격차 등등 다양한 단어들이 영화를 보는 사이 스쳐지나갔지만 나의 뇌리에 가장 깊게 남은 것은 바로 '집' 이었다.

 

 올해부터 익숙하게 지내던 도시를 떠나 또다시 홀로 지내게 되었고 얼마전에야 원룸을 구해 내 몸하나 편히 뉘일 수 있게 된 탓일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난지는 꽤 오랜시간이 지났지만 직접 살곳을 고르고 부동산 계약을 맺은 것은 처음이었던 탓에 굉장히 기억에 남는 강렬한 경험이었따.

 

 방을 고르고 최종 계약을 맺고 잔금을 넣기까지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돈 생각은 세상 누군가는 '인생에 돈이 전부가 아니다' 라고 할지 모르지만 집에는 돈이 전부였다. 밝은 햇살도, 깨끗한 공기도, 편히 쉴 수 있는 조용함도 다 돈으로 계산 되어 있었다.

 

 영화의 메인이 되는 두 가족의 집은 두 가족 구성원들의 성격만큼, 두 집의 위치 차이만큼 대비된다. 반지하의 기택(송강호 분)의 집은 아직 날이 밝은 날에도 술주정뱅이가 오줌을 싸고 소란을 피우는 소리가 들리지만, 부촌으로 보이는 언덕 주택가의 박사장(이선균 분), 연교(조여정 분)의 집은 작은 숲으로 둘러 쌓인 채 나뭇잎이 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박사장의 아들 다송이가 장난감처럼 정원에 설치하고 잔 인디언 텐트조차 비가 새지 않지만 기택의 반지하집은 어깨까지 물에 잠긴다.

 

 비가 그친 다음날도 마찬가지다. 박사장의 집에 찾아온 사람들은 비가내려 미세먼지가 사라져서 다행이라 날씨를 평가하며 갑작스러운 모임속에서도 즐겁고 밝은 모습을 연출하지만, 똑같은 폭우로 인해 우연히 체육관에 모이게 된 기택의 이웃들은 생존을 위해 주위 사람들에게 악다구를 퍼붓는다.

 

 이렇듯 계획이 틀어지는 모습도, 무계획적으로 실행한 일의 결과물도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다만 이 두 집엔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습은 다르지만 기생충을 키운다는 것이다. 기택의 집에는 밤에 불을키면 재빠르게 숨는 바퀴벌레와 곱등이를 박사장의 집은 근세가(박명훈 분) 있다. 분명 모습은 다르지만 집주인의 눈을 피해 살아가고 집주인이 남긴 찌꺼기를 먹으며 살아간다.

 

 그럴듯한 말과 꾸밈으로 박사장의 가족을 속였던 기택의 가족이었지만 결국 숨길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냄새였다. 기정(박소담 분)이 반지하 냄새라 말한 것을 박사장은 '지하철에 가끔 탈 때 나는 냄새' 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이른 아침부터 지하철을 타고 영화를 보러갔던 나를 움찔하게 했던 말이었다. 감독이 마치 '넌 아니라고 생각하지?' 라고 말을 거는 기분이었다.

 

 기택이 근세에게 '넌 아무 계획도 없지.' 라고 소리치며 깔보는 듯 소리쳤지만 박사장의 입장에서는 둘 다 똑같은 지하철 냄새 일 뿐이고, 이 냄새는 차 안에서는 선을 넘어와 불쾌하게 만들고 위험한 순간에도 코를 막게한다. 그리고 막 쇼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연교의 발에서 나는 냄새보다도 지독하다. 근세는 박사장을 향해 리스펙을 외치지만 박사장은 자신의 집에서 4년 동안 숨어 산 이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이 인간적 모멸감을 참지 못한 극중 인물들은 두 가지 선택을한다. 기택은 원래의 숙주를 죽이고 다음 숙주를 기다리며 숨어든다. 기택의 아들이자 모든 일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기우(최우식 분)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무엇보다도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해주는 영화였다.

 

 요즘 많은 이들이 다른 이들을 'XX충' 이라 욕을한다. 무엇이 가난한자들이 계획하기를 포기하고 부자들이 주는 부스러기에 만족하며 살게 만들었을까. 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모아도 집을 사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 되어 버렸을까?

 

 그리고 가장 소름돋는 건 왜 이 이글을 쓰고 있는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걸까? 그들이 보기엔 다 지하철 냄새가나는 사람일 뿐일지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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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요즘 우리나라 최대 영화관인 CGV를 비롯하여 메이저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상영하지 않아 여러 의미로 논란이 되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최신 영화이다. 오늘 대구에서 있었던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일단 재미 있었다. 하마인지 돼지인지 헷갈리게 생긴 귀여운 옥자와 영화가 진행되는 곳곳에 뿌려놓은 블랙코미디 그리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스토리까지 말이다. 아 그리고 쿠키 영상이 있으니 놓치지 말고 보시길 바란다.

(사람이 워낙 많아 그냥 기다리다가 우연히 보긴 했는데 많은 분들이 그냥 나가더라구요.)

 

 내게 이 영화는 한 소녀와 동물의 교감을 그린 슬프고도 아름다운 영화이기도 했지만 사회의 모순을 통렬하게 비난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이 글을 읽는 분은 영화를 본 후 어떻게 느꼈을 지는 모르겠다.

 

2. 옥자를 바라보는 시선들, 생명인가? 자산인가?

 

 영화의 스토리는 자칫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최대한 배제를 하고 영화를 보고 느낀 것과 질문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도록 노력하겠다.

 

 일단 영화 포스터부터가 우리나라 영화 답지 않게 (사실 넷플릭스에서 투자했으니 우리나라 영화라고 하기에는 좀 우습다만..) 주연배우의 모습이나 이런 것 없이 뭔가 영화의 주제를 팍팍 풍기는 그림을 떡 하니 박아 놓았다. 미자와 옥자로 보이는 실루엣과 옥자 위에 세워진 공장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너무나 뻔하고 노골적이다. 영화도 그렇다. 굉장히 은유적으로 표현을 해놓은 것 같지만 굉장히 노골적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고기를 소비한다. 삼겹살을 좋아하고 이 글을 보는 와중에 핫도그를 입에 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 살아있는 돼지를 단 한번도 보지 못했을지 몰라도 돼지 고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다들 알 것이다.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분홍빛의 신선한 돼지고기 과연 이것은 상품일까? 생명일까?

 

 영화는 한 생명체로써 돼지가 겪을 수 있는 일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질문한다. 과연 옥자는(혹은 돼지는) 생명인가 자산인가? 미자(안서현 분)에게 옥자는 생명이다. 함께 10년을 함께 지낸 가족이자 소통하는, 자유 의지를 동등한 인격체에 가깝다. 그렇지만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트 분)에게 옥자는 수 많은 회사 자산들 중 특별히 우수한 자원 중 하나 일 뿐이다.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은(희봉과 ALF) 이 둘의 중간쯤의 위치하는 듯 하다.

 

 사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이 미자와 루시 미란도의 옥자를 바라보는 시점에 차이로 인해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 시점에 차이가 힘이 없는 미자의 굴복 혹은 타협으로 극적으로 종결된다. 덕분에 영화가 뜬금 없이 끝나버린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로써는 굉장히 인상 깊었다.

 

 그리고 어쨋든 멀티플렉스들에서 옥자를 개봉해주지 않는 것도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문제가 아닌가!

 

3. 인간이나 돼지나

 

 이런 이야기가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내게 이런 말을 건는 것만 같았다.

 

 "산업화 된 자본주의 시대에 인간이나 돼지나."

 

 앞서 말했지만 미자에게 옥자는 인간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의 자리를 메꿔주는 또 한명이 가족이었다. 그리고 영화 내에서 몇번이나 옥자가 지성과 감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어필 한다. 미자를 구하기 위해 머리를 쓰고 뉴욕에서는 마치 고문을 당한 후 좋아하는 먹을 거리도 거부하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앓는 듯 한 모습도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도 보여준다. 스포가 될 수 도 있겠지만 미자가 옥자를 찾아 서울로 상경하며 나오는 지하철의 모습, 사람들이 다들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방향으로 몰려가는 모습 위로 다들 비슷한 모습으로 억지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돼지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고 뉴욕에서 차량에 갇힌 채 이동하는 옥자의 눈에 비친 거대한 공동묘지에서는 도살장에서 손질 되는 돼지고기의 모습이 겹쳐진다.

 

 기업에게는 인간이나 돼지나 똑같을 지 모른다. 돼지는 폭력과 억압에 의해 도살장으로 끌려가지만 우리는 돈이라는 목줄에 메여 끌려가는 것이 다를 뿐이고 상품 자산이 아니라 인적 자산으로 등록될 뿐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쓸모가 다하면 버려질 뿐 일지도 모른다.

 

 

4. 효율 만세!

 

 루시 미란도는 효율을 위해 유전자를 조작하여 슈퍼 돼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슈퍼 돼지 종 중 가장 우수한 돼지로 뽑힌 것은 옥자이다. 그런데 옥자는 어떻게 보면 비효율을 집합체이다. 죠니 윌콕스 박사(제이크 질렌할 분)가 말하듯 다른 돼지들은 큰 도로가 뚫린 농장에서 관리를 받으며 자란다. 그런데 옥자는 차도 못 들어가는 첩첩 산중의 두메산골에서 온 산을 뛰어 다니며 성장한다.

 

 죠니가 희봉에서 옥자를 키운 비결을 묻자 희봉은 대답한다. "그냥 산에 풀어 놓고 키웠다" 라고 굉장히 아이러니 한 일이다. 효율을 위한 유전자 조작의 산물이 가장 통제되지 않은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키워졌을 때 가장 우수한 결과를 가져오다니 말이다.

 

5. 마치며

 

 완벽하게 정리하지는 못 했지만 여러가지로 의미를 주는 영화였다. 우리가 동물을 먹는 것을 비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효율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생명체를 물건이나 자산으로 취급하면서 진정 몹쓸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죄책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건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미란도 기업은 굉장히 큰 기업이다. 그런데 그곳 직원으로 일하며 트럭을 운전하는 김군은 1종 면허를 가지고 운전을 하지만 4대 보험은 가입이 되어 있지 않다고 문도에게 소리친다. 이것이 효율화의 또 다른 모습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몰라도 김군에게는 영화는 해피 엔딩이 아닐까? 사실 다른 대사 보다 김군의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X발, 이게 회사 차지 내꺼냐!"

 

"미란도가 X된 거지 내가 X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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