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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일본 영화다. 동명의 일본 소설도 있지만 영화의 내용은 주로 '덤불 숲' 이라는 작품에서 따왔고 분위기와 일부 내용을 라쇼몽에서 따왔다고 한다.
 
 가끔 소설책이나 영화감독을 인터뷰 한 내용을 보면 '라쇼몽'과 '일곱 사무라이'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나온다. 그래서 대체 무슨 영화길래 그런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나 싶어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영화는 비가 억수 같이 오는 날씨에 부서져 썩어가고 있는 문을 배경으로 시작이된다. 비를 피하는 중인지 왠 나무꾼으로 보이는이와 중이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고 나무꾼은 혼자서 '모르겠다는' 를 중얼중얼 거린다. 그리고 그 때 약간 불량해보이는 사내가 비를 피하기 위해 문 안으로 뛰어들어고 '모르겠어'를 중얼거리는 나무꾼 남자의 이야기에 그가 흥미를 보이며 나무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무꾼 남자는 산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무라이 시신을 관청에 신고하고 증인(?) 의 개념으로 재판을 참관하고 중 역시 살아있던 사무라이를 마지막으로 본 인물로 재판에 참석한다. 운이 좋은건지 그 죽은 사무라이를 죽인 범인이 어의 없는 사유로 잡혀들어오고 사무라이의 부인까지 잡혀온다. 그리고 무녀에 의해 죽은 사무라이의 영혼까지 재판에 참석한다. 그리고 각자의 사건에 대한 증언이 시작된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 같은 일에 대해서 우린 각자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한다.

 

 나무꾼이 고민하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도적, 사무라이의 부인, 사무라이까지 모두 같은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악명높은 도적 타죠마루는 사건을 설명하며 자신의 용맹함과 강함을 주장하고 타죠마루에 의해 겁탈당한 사무라이의 아내는 자신의 정절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미 죽어버린 사무라이의 혼은 타죠마루의 속임수에 패배를하고 아내에게 배신을 당했지만 마음속으로 용서를 하고 배신감과 자괴감 속에 자결을 통해 사무라이로서의 기개를 지켰다고 주장한다.
 
 세 사람 모두 사건에 연루된 상대방의 간악함을 비난하고 당시 시대상 최고로 치부하는 관념을 지켰노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사건을 목격한 나무꾼의 증언 역시 그들과 다르다.
 
 도적 타죠마루의 남자다움에 반한 것 같았던 사무라이의 아내에게 오히려 타죠마루가 무릎을 꿇으며 지극정성으로 구애를 했고, 사무라이의 아내는 정절을 지키며 자결하려고 하기는 커녕 구애를 하는 타죠마루에게 그런건 남자가 알아서 정하라고 말한다. 이에 도적 타죠마루는 사무라이에게 결투를 신청하지만 사무라이는 자결치 않은 아내를 비난하고 그녀를 버린다. 이에 사무라이의 부인은 두 남자 모두 비난하자 도발에 걸려든 이들은 서로 결투를 벌인다.
 
 그런데 타죠마루의 기억속에서 멋지게 검을 주고 받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허공에다 칼질을하고 상대에게 흙을 뿌리고 검을 내팽겨친 채 도망을 가는 등 그야말로 영화가 아닌 현실적인 개싸움을 한다. 결국 타죠마루가 우여곡절 끝에 사무라이를 살해하지만 지친 타죠마루를 내버려 둔 채 사무라이의 부인은 도망간다.
 
 사건의 당사자인 세 사람이 했던 증언과 나무꾼이 목격했던 사건은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 서로 상대의 잘못에 대해서는 마치 사진을 찍은 듯 정확하게 기억을 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교묘히 기억을 왜곡해 저장을 하고 있다. 그건 심지어 죽어서 더 이상 세상에 남길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사무라이의 영혼조차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자신의 목격담을 말하는 나무꾼 역시 자신에게 불리한 기억을 교묘하게 숨기고 있다.
 
 과연 인간 세상에는 진실은 없는 걸까? 우린 모두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일까? 영화의 말미에 문 뒤쪽에 버려져 있는 아기가 울고 있고 나무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그네는 아기를 감싸고 있던 비단과 부적을 훔친다. 나무꾼과 중이 남자를 비난하지만 오히려 나그네가 단검을 훔친 나무꾼의 도덕성을 비난한다. 나그네가 떠나가고 나무꾼이 아이를 데리고 떠나려 하자 중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고 소리치지만 나무꾼은 아이를 키울 것임을 말하자 중은 지옥같은 세상 속에서 구원을 받은 것처럼 말하고 서로 맞절을 한채 영화는 막을 내린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일상속에서 이런 일을 쉽게 마주친다. 분명 같은 일이지만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억이 다른건 뉴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이고 같은 인물에 대해서도 가지는 기억이 다르다. 회사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분명 같은 일인데도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을 하기 위해 노력들을 한다.
 
 문득 영화를 보고나니 프레임이라는 것이 생각난다. 우린 같은 사건을 각자의 프레임에 맞춰 해석하고 판단한다. 사건속에서 타죠마루는 자신의 강함과 용맹을 증명하고 부인은 자신의 절개를 사무라이 역시 사무라이로써의 용기를 주장한다. 사회적 프레임과 계층적 프레임 안에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프레임으로 사건을 해석해내고 기억을 구성한다.
 
 그렇다고 인간이란 존재는 못 믿을 존재인가? 다만 이에 대해서는 직장 선배가 해줬던 말이 기억난다.
 
 "좋을 때나 서로 좋은 기억인거지, 힘들 때 그 사람에게는 악몽으로 변할지 모른다."
 
 과연 그들이 겪은게 서로를 향한 약탈과 살인, 강간이 아니라 힘을 함쳐 도적을 물리친 영광의 기억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서로에게 맞춰 윤색이 되었을까?
 
 
▼ 프레임에 관한 책
[독서 노트/인문(사회,정치,철학 등)] -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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