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들어가며
채피는 2015년 개봉작이니 꽤나 오래된 영화다. 포스터는 꽤나 귀여워 보이는 로봇에 온갖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고 벽에도 귀여운 그림들과 함께 총이 뉘여져 있는 걸로 봐서 굉장히 가볍고 발랄한 영화라는 느낌이나는터라 포스터를 보고 영화를 봤다면 분명 욕하는 사람이 많았을 꺼라고 생각되는 영화이다. 엄청나게 디스토피아적인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를 보는 감상을 표현하자면 마치 너른 밭에서 감자를 캐내듯 영화 장면과 대사 곳곳에 숨겨져있는 감독의 메세지를 드러내고 고민을 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즐거운 영화였다. (즐겁다 라고 하기엔 주제가 좀 무거운 것 같은게 사실이다.)
이 때는 알파고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이니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제는 영화의 모습들이 일부분은 현실로 실현이 된터라 좀 더 마음이 무겁다. 지금도 A.I가 인류를 구원 할 것인지 인류를 위협할 것인가를 부터 시작하여 여러가지로 A.I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영화를 보고 나도 문득 궁금해졌다.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의 예측처럼 A.I가 특이점을 넘어선다면 과연 무엇으로 A.I와 인간을 구분 할 수 있을까?
2. 신화
등장 인물들을 뜯어 보면 참 재미있다. 먼저 채피의 원형인 로봇 스카우트의 제작자이자 채피의 A.I 설계자인 디온은 마치 신을 연상시킨다. 그는 기존 인간이 혹은 산업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해(계속 되는 파손으로 인해 복구에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상황) 폐기 처분 위기에 놓인 22호를 사장의 지시를 어기고 빼돌려 자신이 개발한 A.I를 장착시킨다.
그리고 그는 곧 채피를 자신을 납치한 갱단에게 빼았기는데 그 와중에도 채피에게 자신이 그를 창조한 창조주임과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희망, 그리고 인간을 해치지 말라는 약속을 하게 한다. 마치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곧장 갱단에게 채피를 빼앗기는데 그들 (특히 아메리카와 닌자)의 모습은 마치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으라고 유혹하는 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디온과 대치하는 빈센트는 마치 창조론의 수호자처럼 보인다. 자율적인 A.I를 부정하고 그림을 그리는 채피를 발견하고 성호를 그은 그는 채피를 잡았을 때 그의 머리에 든 것은 데이터 덩어리일 뿐이라고 소리친다.
3. 채피
영화는 당연히 채피를 빼놓고 말을 할 수 없다. 채피의 모습은 완전히 인간을 연상시킨다. 하긴 개발자인 디온의 목표가 당연히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하는 A.I 였으니 당연한 결과이긴 하다. 그리고 마치 인간처럼 주변에 관계된 인간들을 변화시키기까지 한다.
소심하고 나약해보이던 디온은 총을 들게 했고 거칠고 악의만 가득차 보였던 욜란디는 '마미'를 자청하게 만들고 그를 아기처럼 돌보게 한다. 종국에는 처음에는 채피를 도구로 물건으로만 다루었던 닌자조차 말뿐이 아닌 진짜 '파더'로 행동하게 만든다. 현금 수송차를 털고 새로운 몸을 줄 수 없다고 고백하고 그 사실을 안 채피가 마치 자식이 부모에게 따지 듯 왜 거짓말을 했냐고 격렬하게 항의하는 채피에게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하고 죄책감 어린 표정을 짓는 닌자를 보며 연출한 감독에게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압도적인 악의를 보이며 마치 성전을 치루며 악을 정화를 행하는 듯 잔혹한 행동을 서슴치 않으며 자신의 '마미'를 죽인 빈센트를 공격하는 모습은 영화를 지켜보고 있는 나마저 로봇이 인간을 공격하는 모습에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묘하게 동조 시키게 만들었다. 정리하자면 빈센트보다 오히려 채피가 더 인간다워 보였다.
채피는 다른 로봇들과 달리 애초에 수명이 정해져있었다. 배터리 손상으로 인해 수명은 단 5일, 태생부터 굉장히 인간답다. 그리고 불완전한 인간답게 영생을 꿈꾼다. 자신을 불완전하게 탄생시킨 디온(신 혹은 설계자)에게 항의하고 디온이 불가능하다고 한 마음을 옮기는 일까지 해낸다.
4. 과연 무엇이 인간인가?
채피가 아직 세상을 제대로 알기전 욜란디가 읽어주던 책에서는 검은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채피에게 '겉모습이 다른것은 중요하지 않고 내 안에 무엇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그게 널 다르게 만들어준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닌자의 손에 이끌려 나간 맞닥드린 세상은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채피의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채피의 겉모습을 바라보고 로봇 경찰이라고 공포에 질리거나 경멸한다. 채피가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이 없다. 채피가 완전히 성숙하고 주변은 채피를 인간적으로 받아 들였지만 양키와 빈센트에게는 여전히 하나의 로봇일 뿐이었다.
이 영화의 결말은 소름끼친다. 디온은 마음은 옮길 수 없음으로 채피가 다른 로봇으로 옮겨지면 더 이상 같은 로봇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견해는 채피를 처음부터 인간적으로 대해주었던 마미 욜린다고 마찬가지다. 그런데 영생에 대한 욕망으로 마음을 옮기는데 성공한 채피는 그 첫번째 대상으로 죽어가는 디온을 로봇으로 옮긴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디온은 살아 있었고 자신이 로봇의 몸에 들어 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미 과연 그 디온이 이 디온인지 그냥 복제된 데이터인지에 관한 의문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소름돋는 건 그 다음이다.
닌자를 구하기 위해 죽은 욜란디, 어찌보면 사랑하는 이를 위한 죽음이라는 굉장히 인간적인 죽음을 맞이한 그녀의 육신은 땅아래 묻힌다. 그런데 채피가 그녀의 마음의 백업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다. 욜란디의 말대로라면 그녀의 영혼은 이미 먼곳으로 떠난 상황, 그렇다면 USB에 담긴 그녀의 마음 무엇일까?
채피는 그녀의 마음 백업데이터를 이용해 그녀를 살려낸다. 그녀의 모습은 좀 더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채피는 말한다.
"이젠 우린 둘다 검은양이야"
조금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부활한 욜린다는 채피보다 조금 더 인간적일까? 아니면 모두가 채피 같은 모습이 되면 채피가 가장 인간적일까?
5. 마치며
지난 여름에 레리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를 읽었었다. 문과인 나에게는 외계어가 쓰여진 것 같은 더럽게 어려운 책이 었다. 책에는 여러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인간은 육신을 벗어던지고 데이터가 될 것이다 라는 식으로 예건이 되어있었다. (내가 책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그때는 최근 영화였던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는 로봇몸에 들어가 디온을 떠올리게 되었다. 과연 로봇의 몸에 들어가서 말하는 디온은 정말 인간 디온일까? 아니면 디온의 데이터일까?
문득 '우리는 객체이자 주체로써 서로를 투사한다.' 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아직까지는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가장 손 쉬운 방법은 인간끼리 서로 증명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A.I가 더 자연스러워지고 모두 채피와 같은 모습이 되면 채피가 인간이 되는 것일까?
검은양이 농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면 과연 양은 검은색일까 흰색일까?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기생충' - 봉준호 (스포) (0) | 2019.06.06 |
---|---|
영화 라쇼몽 - 구로사와 아키라 (2) | 2018.10.21 |
민주주의의 의미 영화 '1987' (1) | 2018.01.14 |
5.18 그리고 광주 '택시운전사' (0) | 2017.08.05 |
전쟁터 속에서의 생존과 공존 '덩케르크' - 크리스토퍼 놀란 (0) | 2017.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