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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대왕은 윌리엄 골딩에게 노벨 문학상의 영광을 안겨준 책이다. 요 근래 소위 고전문학쪽을 읽고 리뷰를 하다보니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읽는 일이 잦은 것 같다.

 

 소설은 전쟁 중 영국에서 피난을 가던 비행기가 추락하여 무인도에 아이들만 살아 남으면서 이야기가 시작 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사라진 세상에서 나름의 질서를 수립하고 무인도에서의 삶을 이어간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돼지에 조언을 받은 랄프는 소라껍데기를 통해 권위를 확보하고 아이들의 리더가 된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통제하는 어른이 없다는 것에서 자유를 느끼며 그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일에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한다.

 

 그러나 '구조'와 '생존'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지루하고 힘겨운 일에는 흥미를 잃어버리고 그런 일은 리더인 랄프와 몇몇 헌신적인 소년들에게 떠넘겨 버린다. 그리고 무인도에 추락할 당시 성가대를 이끌고 있었고 리더가 되고 싶었던 잭은 사냥과 고기를 통해 아이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괴물이라 믿는 존재가 하늘에서 떨어져 봉화대에 떨어지면서 아이들의 사회는 순식간에 변화하기 시작한다.

 

 모임뿐이야. 모임만은 좋아하지. 매일 같이. 그것도 하루에 두번씩이나. 그저 말 뿐이야.

 

 비유와 상징이 많이 사용된 소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파악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은 소설이면서 다른 사람과 토론하기에도 좋은 소설인것 같다.

 

 작중의 배경은 세계 2차 대전시기이고 서서히 그 위상을 미국에게 넘겨주던 시기긴 했지만 영국은 당대 최고의 문명국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이면을 한꺼풀만 벗겨보면 야만성이 가득하다는 것을 영국 아이들을 무인도에 표류하게 하면서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책의 말미에 잭이 무인도에 지른 불을 보고 섬을 찾아온 해군 장교는 랄프를 죽이기 위해 쫓던 아이들 무리를 보고 전쟁놀이를 하는 것쯤으로 치부고하고 나무로 깍은 창과 피와 진흙이 뒤섞인 분장을 얼굴에 한 아이들을 보며 문명인 답지 못하다는 은근한 비난을한다. 그러나 그것이 당시 어른들이 하는 일과 무엇이 크게 다른 일일까?

 

 유색 찰흙으로 온통 몸뚱이에 줄무늬 색칠을 한 소년들이 손에 손에 뾰족한 창을 들고 모래 사장에 반원을 그린 채 잠자코 서 있었다.

 

 랄프는 "영국의 소년들이라면 더 좋은 광경을 보여 줄 수 있었을텐데." 라고 말하는 장교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처음엔 그랬어요."

 

 소위 고전명작으로 분류되는 소설들은 항상 전 시대에 공통적으로 고민을 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인간의 본성이란 본디 어떤 모습인가? 도덕 시간에 한번쯤 들어보았을 이야기이다. 이 소설을 통제와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 무인도에 '사회적 교육을 받고 나름 사연이 있는 어른들'이 아닌 '순수에 가까운 아이들'을 떨어뜨려 인간 내면에 품고 있는 '야만성'을 통해 성악설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어른인 해군 장교를 등장시킴으로서 '니들은 뭐 다를 줄 알아?' 라고 역설하는 것 같다.

 

 그리고 찰흙과 피로 얼굴을 칠해 익명성으르 확보하고 무리를 이루어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이먼을 죽이고 현실을 외면하는 모습은 현재의 인터넷 세상을 보는 것 같은 소름이 돋아 과연 소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반박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들게도 한다.

 

 과연 일시적으로 문명이 사라지고 국가가 사라지면 모든 사람들이 야만적인 상태로 돌아갈까? 물론 그건 아닐 것이다. 랄프와 사이먼, 돼지 같이 그러지 않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 상태가 계속 지속 됐을 때, 야만인처럼 변한 무리에서 계속해서 버텨 낼 수 있을까? 그때는 무엇에 의지를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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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얼마 전 (그러기엔 상당히 시간이 지났긴 하다.) 2017년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계 영국인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이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것보다는 이 책이 판타지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판타지 소설을 참 좋아하는데 소위 말하는 폄하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양판소 소설이건 톨킨이 쓴 책이건 그 상상력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 노벨상을 받는 작자가 판타지 소설을 쓰면 어떤 소설이 나올까 싶어서 읽어보게 된 책이다.

 

 혹시나 들어가기에 앞서 오크와 엘프, 검과 마법이 난무하고 젊은 주인공이 유쾌한 모험을 떠나는 소설을 기대하고 있는 분들은 그냥 장바구니에서 책을 빼고 뒤로가기를 누르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소설은 영국의 궂은 날씨처럼 지독하게 음울하고 초가을 해뜨기전 대교에 뿌옇게 낀 안개처럼  답답한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

 

2. 줄거리

 

 줄거리는 꽤나 단순하다. 도깨비와 용이 활보하던 먼 옛날 아서왕이 용을 물리치고 브리튼족과 색슨족의 통합을 이루어낸지 얼마되지 않은 시대이다. 그리고 매우 낙후 된 촌락지방의 액슬과 비어트리스 부부가 자신들의 아들을 찾아가기 위해 여행을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매우 사랑하는 사이지만 특이한 점이 있다. 그건 바로 과거의 기억이 제대로 공유가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은 분명 현재를 살아가고 단 한순간도 떨어지려 하지 않을만큼 서로 사랑하지만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기억이 없다. 그들은 심지어 왜 자신들이 그 동안 아들을 찾아가지 않았는지에 대한 기억도 없이 어느날 문득 찾아온 기억의 편린을 시작으로 아들을 찾아가기 위한 여행이 시작된다.

 

 부부는 여행의 과정에서 특이한 일들과 많이 마주친다. 그들의 과거를 기억 할 것만 같은 이들, 색슨족으로 태어나 브리튼족을 위해 봉사했지만 비참하게 쫓겨난 색슨족의 전사, 위스턴과 용 케리그를 쫓는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 도깨비에 물려 마을에서 쫓겨나면서 어머니를 찾으려고 하는 데드윈까지.

 

 

 

3. 망각, 기억, 용서

 

 위 세 단어가 이 책 최대의 주제이자 키워드가 아닐까한다. 누군가는 망각이 인간의 최대의 축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에게 그런말을 한다면 헛소리 하지말고 망각이야 말로 인간 최대의 저주라고 답변할 지도 모른다.

 

 반대로 수험생에게는 기억이야 말로 인간 최대의 축복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방금전 사랑하는 연인과 가슴아프게 헤어진 사람에게는 지금 당장 기억을 날려버리길 바랄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과 망각은 모두 용서와도 관련되어 있다. 어떤 사건을 망각함으로써 용서를 할 수도 있고 기억함으로써 사죄할 수도 있다. 과연 어떤 것이 바람직하고 옳은 일인가에 대해 질문한다면 누가 과연 그것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잘못된 일이 사람들에게 잊힌 채 벌받지 않기를 바라는 신은 어떤 신인가요?"

- 위스턴 -

 

"이 땅이 망각 속에서 쉴 수 있게 해줘요."

- 가웨인 -

 

학살과 마법사의 술수 위에 세워진 평화가 영원히 유지 될 수 있을까요?

- 위스턴 -

 

 위스턴은 사람들의 기억이 돌아오길 원한다. 가웨인은 망각을 통해 평화를 유지 할 것을 주장한다. 사실 색슨족과 브리튼족은 이 망각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전에 있었던 끔찍한 학살은 잊어버리고 서로 이웃을 한 채 서로 즐겁게 웃고 떠들 수 있었다. 가웨인은 기억이 돌아온다면 다시금 처절한 학살과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 주장하고 언젠가는 돌아올 기억임으로 그것을 굳이 지금 당장 꺼낼 필요는 없다고 위스턴을 설득한다. 하지만 위스턴은 그것을 거짓평화라고 평가한다. 잘못된 일은 잊혀질께 아니라 처벌을 받고 고쳐야한다고 주장한다.

 

이 모습이 예전 굴 속에서 가웨인이 목을 베었던 괴물개의 머리를 연상시켰고

액슬은 다시 우울한 기분이 몰려왔다.

 

 가웨인에게 *망각*은 용서였지만 위스턴에게 *망각* 이란 가식과 거짓이었다. 그것은 정의가 아니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를 기억해줘. 네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느꼈던 이 우정과 우리를 기억해줘."

- 비어트리스 -

 

전사에게 했던 약속. 모든 브리튼족을 미워해야 한다는 약속.

그러나 분명 위스턴은 이들 다정한 부부까지 그 안에 포함시켜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 에드윈 -

 

 위스턴은 에드윈에게 스승이자 형으로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러가기전 에드윈에게 약속을 강요한다. 브리튼족을 미워하라고 자신이 색슨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헌신과 용맹을 무참히 짓밟고 그를 떠나게 한 브리튼족에 대한 증오를 다음세대에 전달한다. 하지만 에드윈 역시 브리튼족과 같이 살았었다. 그들은 어린 에드윈에게 빵을 나눠주고 돌봐줬었다. 소년은 그 증오의 감정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위스턴에게 그러마라고 약속한다.

 

 그러나 비어트리스가 자신들의 우정을 기억해달라고 한다. 위스턴이 전달한 증오는 이 *기억* 때문이지만 비어트리스는 *기억* 을 통해 화합과 용서를 구한다. 

 

"더 디게 낫는 상처도 결국 다 낫게 마련이지요."

- 액슬 -

 

'아마 안개 덕분에 오래된 상처가 아물 수 있었을 거예요."

- 액슬 -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책 상에서 약간의 시차를 두고 액슬은 비슷한 말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한문장이 아닌 앞뒤의 문맥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게 느껴지는데. 그것이 결말을 해석함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궁금하다면 직접 사서 보도록하자.

 

4. 마치며

 

 작가는 이 책을 유고 내전과 르완다 학살에서 영감을 받고 썻다고 한다. 르완다 학살은 사실 잘 모르겠고 유고 내전이라면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거치면서 뉴스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보스니아 내전에서 자행된 인종청소에 관한 이야기도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20세기를 거치며 많은 국가들이 강대국의 강요로 인해 망각과 용서를 강요 받았다. 그리고 그 강요된 망각이 기억으로 터져나온 것이 어쩌면 저 유고내전과 르완다 학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마치 멀린의 마법처럼 힘으로 짓눌러 강요된 망각이 풀리고 - 마치 용이 늙어가듯 강대국이 힘이 약해지고 - 기억이 돌아오는 날 정의와 복수라는 이름아래 행해지는 무자비한 사건들을 바라보며 우린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

 

 이런 일은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이, 중동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쿠르드족의 정부수립 투표와 같은 형태로 말이다. (물론 유럽에서는 스페인의 카스티야와 바스크, 영국에서는 북아일랜드와 스코트랜드, 이탈리아 역시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 역시 얼마전까지만 해도 위안부에 대해 정부에 의한(?) 강요된 망각과 용서를 당할 뻔 했다.

 

 사실 아직도 작가가 찾고 있는 해답에 대해서는 잘모르겠다. 망각에 취해서 용서를 해라는 것인지. 아니면 아픈기억을 끄집어 내서라도 진정한 화해를 하라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좋은 기억을 쌓아감으로써 긴 세월에 걸쳐 용서를 하라는 것인지 말이다. 물론 여기에 대한 해답은 각자가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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