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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 성, 권력' 왠지 많은 사람들이 익히 제목을 잘 알고 있는 '총, 균, 쇠'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주제 역시 비슷하다. 고대부터 근세 혹은 현대의 인간 역사의 줄기를 분석하고 역사의 변곡점 혹은 그렇게 흘러가게 된 주되 ㄴ요소가 무엇인지를 분석한 책이다.

 

 당연히 책은 제목처럼 우리 인간의 역사를 바꾸어 온것이 노동, 성, 권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나에게 책 내용 자체는 크게 흥미롭지 않았다. 읽고 있자면 다 어디선가 한번 들어보거나 읽어본 내용이었고, 제목에 적힌 주제가 어떻게 역사라는 커다란 옷감에서 씨줄과 날줄의 역활을 했었는지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에도 선명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물론 나의 능력 부족이겠지만.)

 

 신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피지배계층을 수탈하는 권력과 그에 따른 강제적 노동이(혹은 노예가) 현대 자본주의에 이르러 '사용자'와 '임금노동자'로 둔갑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책은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책의 곳곳에 인류 역사의 어느 순간에서건 지배라는 피라미드의 가장 최하단에는 여성이 있었음을 저자는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책을 읽다가 몇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문자라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었다. 그런데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가장 낮은 사람들을 위해 문자를 만든 세종대왕이 세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고 내가 1차적으로 내린 결론은 역사는 처음 의도가 어쨋든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도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는 모양이나 명칭이 바뀔 뿐이지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점이다. 사람이 모이고 잉여 물자가 생기면 위아래라는 권력이 생기고 권력자는 피지배자에게 강제적 혹은 그럴듯한 사유로 노동을 시키고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그 동안은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문장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며, 동시에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우리 각 개인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미래를 향해 투영하며, 각 개인과 처해있는 문화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애를 쓴다.

 

 '사회주의는 빈곤과 결핍 상태에서는 완성될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은 상대하다 보면 모든 꿈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결핍은 불평등을 낳는다. 먹을거리와 입을 옷, 그리고 살 집이 충분하지 않으면, 소수의 사람들이 능력이 닿는 한 모든 것을 움켜쥐고 나머지 사람들은 굶주리게 된다. 누더기를 걸치고 더러운 빈민굴에 몰려 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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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책의 내용은 저자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이 사람은 대체 어쩌다가 이런 험한 일만 골라서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수준이 어느정도냐면 이 책 하나를 내기 위해 그 많은 경험들을 한 것일까? 라는 의심이들 정도다. 실제로 저자는 이 책을 낼 때도 도배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책은 어두운 주제와 내용과 다르게 표현과 문체가 제기발랄해 쉽게 쉽게 읽히고 가끔씩은 웃기기도하다.

 

2. 책의 줄거리

 

 책은 누군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궁금해봤을 고기잡이 배의 일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서울의 직업 소개소에서 일을 소개 받고 진도의 한 항구로 내려간 저자는 그곳에서 여러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궁벽한 어촌에 대해 굉장히 상세히 설명을 해준다. 직업 소개소에서 말하는 소득은 온데간데 없고 과연 21세기에 벌어지는 일일까 싶은 문명과는 굉장히 동떨어진 것 같은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제대로 돈을 못받는 건 기본이다.

 

 그 다음은 고시원과 편의점, 주유소이다. 여기서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애환이 상세하게 묘사된다.

 

 세번째는 돼지농장의 똥꾼이다. 사실 여기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곳이라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요즘 꽤 많은 이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채식주의자로 전환한다. 그런데 과연 그 가혹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인간들은? 여기서 최초로 외국인 노동자가 등장한다. 웃기게 인간은 더 떨어질 곳이 없을 것 같은 바닥에서도 서로 층을 분리시킨다. 그리고 자동화가 언급되며 이 최악의 일조차 점차 없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네번째는 농촌의 비닐하우스다. 이곳 고용주들은 참 선량한 사람이다. 일을 제대로 못하는 주인공을 감싸주고, 주인공의 반발에 눈물 짓기도 하고 그의 환경을 개선해주기 위해서도 노력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선량함과는 별개로 돈과 일 문제에 관한 고용주와 고용인이 얼마나 커다란 간극이 있는지를 아이러니 하게 보여준다.

 

 마지막은 자동차 부품업체이다. 소위 하청이다. 그것도 메이저급 벤더가 아닌 거의 가장 끝단에 위치한 벤더 같다. 여기서는 파견직과 외국인 노동자의 애환과 관리직과 현장직(실무자) 간의 대립이 드러난다. 그리고 가장 복잡한 인간관계가 나타나며 크다면 크고 우습도록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을 작은 사회가 어찌 굴러가는지 까발리고 있는 것 같다.

 

 저자의 개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에필로그 형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3. 마치며

 

 책에서 말하는 '인간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조건'이라고 하니 왠지 곤충은 '머리','가슴','배'로 이루어져있다는 말이 떠오르니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 책은 묻는 것 같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 앞에 존재했던 무수히 많은 성현들이 철학적인 말들을 언급했으니 제쳐두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돈' 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라는 말에 동의는 하지만 나는 '돈이 인생의 최소한' 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돈이 없으면 같은 시대에 살면서도 전혀 다른 생활을 해야한다.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이 글을 보고있는 디스플레이도 다를 것이고, 읽고 있는 온도 역시 다를 것이다.

 

 책에 등장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한 때 잘나갔던 시절이있다. 몇몇은 대기업에 근무하기도 했고 조그맣지만 자신의 사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상상하기도 힘든 생활 환경속에서 최저임금과 월 2회 휴무를 감내하며 고용주로부터는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곧 잘 주인공에게 '남의 돈 벌어먹고 사는게 쉽지 않다.'라고 충고한다. 이것이 체화 된 체념인지 아니면 고용주로부터 받은 세뇌인지 아리송 할 지경이다. 어째서 고용인이 많은 고용주들이 최저임금을 '충분임금'으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고용주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일까?

 

 책의 마지막 부분 창작된 이야기속 주인공이 소리치는 장면이 굉장히 기억이 남는다. 주인공과 같이 항구에서 도망친 젊은이가 '남의 돈 벌어먹고 사는 일이 참 힘들다.' 라고 말한다. 그러자 주인공이 그를 미친듯이 꾸짖으며 말한다. '그게 왜 남에 돈이냐고 일을 하고 받은 내 돈'이라고 소리친다.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그 동안 보지 못했던 혹은 외면하고 있었던 세상의 이면을 엿본 기분이었다. 사실 이런 모습들은 우리에게서 멀지 않다. 주유원들은 이미 대부분 사라져버렸지만 고시원과 편의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이런 것들 조차 언제 주유원과 같이 없어져 버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점점 인간이 인간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비용으로 인식하는 시대가 오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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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어느 새, 땀을 쭉쭉 빼던 여름도 거의다 지나가고 가을이 다가왔다.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이라면 완연히 하반기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들고 빠른 곳은 내년 경영계획이나 투자계획 등을 짜는 곳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그렇다.)

 

 아직 올해도 일도 다 못 끝낸 판에 무슨 내년도 경영계획이니 전략이냐라는 생각도 들지만 까라면 까야지 월급이 나오는 직장인의 비애를 가지고 열심히 머리를 쥐어 짜내서 투자계획이나 경영전략을 짜고 있었을 때였다. 이런거 할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돈쓰라고 계획하라는 것도 꽤나 골치아픈 일이다. 그리고 쓰라고 하면서 왜 쓰는지는 엄청 따져 대니 말이다. 아무튼 본래 목적은 이게 아니라. 회사의 경영전략은 효율화에 맞춰져 있다. 어떻게 하면 무엇을 하면 생산성을 올려서 적은 노동력으로 많은 일을 적은 돈으로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을지 끊임 없이 생각해 내길 회사에서는 요구하고 그것을 창의력 혹은 혁신이라고 칭찬하고 좋은 실적이라고 평가한다.

 

 올해도 억지로 회사에서 요구하는 양식에 맞춰 최대한 설득력이 있게 포장한 문서를 제출하고는 퇴근을 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내가 만들어낸 문서 한장이 회사의 생산성과 이익에는 부합 될지 모르지만 내 곁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일자리를 노리고 있다 것과 함께 결국은 내 목 끝을 겨누는 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우울해졌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이나 노동이란 내가가진 자원인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버는 행위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합 할 것이다. 그리고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노동만이 유일하게 자본주의에서 최고의 물질이자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 불가결한 생활 수단인 돈을 벌어 들일 수 있는 방법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점에서 실업이란 대부분의 사람에게 끔찍한 재앙와 같은 단어이다. 이건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칼 마르크스는 이런 자본주의의 근원적이고 구조조적인 오류를 지적했지만 그가 만들어 낸 이론 역시 자본주의의 본래 속성을 바꾸지는 못했다.

 

 노동을 중시하는 것은 오래된 이념이다. 물론 그 노동의 숭고함이나 게으름뱅이에 대한 비판은 지배층이 아닌 피지배층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고대에는 인력 혹은 노동력은 국력이었고 농경사회에서는 토지와 함께 가장 중요한 생산 수단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산업혁명 이후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실업이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실업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내일은 줄어들지 않고 있고 내 옆자리의 사람은 회사를 떠나고 나에게 일을 넘겨주지만 인원은 충원되지 않고 있다. 대체 이건 어디서 부터 잘 못 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 책은 이 질문에대한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된다고 연일 떠들고 있고 기본소득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노동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하는 시기가 오지 않았는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하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한다.

 

 

2. 마음에 드는 문구

 

 현대 자본주의에서 우리는 기이한 상황에 맞닥 뜨린다. 고급노동자는 장시간 노동 하느라 괴로워하는데, 다른 편에는 사익추구 세대에 자신의 노동력이 더 이상 유용하게 쓰이지 않아 고통받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이다...(중략)... 노동 시간 단축정책은 모두에게 보다 공평하게 일을 할당해 불균등한 일 분배 상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 모두가 적게 일해야 모두가 일을 하고 늘어난 자유 시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 보면 이해가가지 않는 일이 벌어질 때가 있다. 청년 실업률은 날이 갈 수록 치솟는데 정작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제대로된 돈을 지급받지 조차 못한채 추가 노동에 시달리다 자살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고용주는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두 사람 분의 일을 한사람에게 시키고 한 명의 실업자와 한 명의 탈진자를 만들어낸다. 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일까?

 

 그러나 성과를 측정 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오늘 날 비물질적 노동에서는 개별 노동자가 ㄴ어느 정도 생산성을 지니는지 파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 결과, 노동자를 '성격'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늘어가는 상황이다. 훌륭한 노동자는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에 몰입하고, 열정을 갖고, 지지를 드러냄으로써 전문가주의적 사회규범에 능통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다.

 

 결과물이 쉽게 확인 되는 제조업이 줄어들고 서비스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회사가 혹은 상사가 직원을 평가하는 방법은 여전히 다소 주관적이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특히나 서비스업에서 개별 고객이 받는 서비스에 대한 평가를 개별 고객이 진행함으로써 서비스업 종사자가 회사의 메뉴얼을 따라 진행했더라고 고객이 받는 만족도는 각각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럴 경우 그 노동자는 자신이 맡은 고객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자신의 생산성이 평가받음으로써 어찌보면 운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늘 날, 힘든 하루를 보낸 후 집에 돌아온 부유한 노동자는 무언가하라고 요구하는 물건에 포박 당한다. 내 경우에는 집에 가면 넷플릭스에 넘쳐나는 추천 시청목록과 CD가 ...(중략)... 덜 바쁜 시기에는 이런 것이 커다란 즐거움을 주지만, 너무 바쁜 시기에는 좌절만 안겨 줄 뿐이다.

 

 사실 이 부분을 보다가 크게 웃었다. 문득 얼마전에 산 '드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보통 회사가 끝나고 나면 운동을 하러가는데 여기에 하나의 취미를 더끼워 넣어보았다. 그런데 처음에는 조금 즐겁더니 도리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돈을 들여산 것을 꼭 시간을 내어 즐겨야 할 것만 같았지만 그럴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운동도 가야하고 책도 읽어야하고 글도 써야하고 그런데 드론을 샀으니 드론까지 시간내서 해야지?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결국 드론은 서랍에 고이 숨겨 놓고 눈에 띄지 않게 되어서야 나는 묘한 죄책감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나 생일, 결혼, 성인식까지 모든 사회적 의례가 이제는 값비싼 선물과 호화스러운 소비의 동의어가 되었다. 끊임없이 타인을 향하는 기쁜과 사랑을 값비싼 상품 구매로 표현한다고 설득당하는 상황에서, 돈을 아끼려고 이를 거부하는 이는 고약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나 구두쇠 밖에 없다.

 

 책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자유시간이 많다면 그 자유시간을 이용해 정성스러운 요리를 준비하거나 제품들을 수리하고 무언가를 만든다. 그렇지만 우리가 직업이라는 것을 가지고 난 이후에는 그런 행위들은 돈으로 대체된다. 정성스러운 요리는 시간이 없어 레토르트 식품이나 배달음식으로 대체 되고 제품수리는 돈을 주고 수리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그냥 완제품을 구매한다. 그리고 조금 더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돈을 좀 더 들여 공산품이 아니라 소량 생산하는 수제품을 구매하여 사용하며 대리만족을 통해 감성을 채운다.

 

3. 마무리

 

 요즘은 모든 곳에서 사람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 책이나 TV에서는 욜로를 외치며 내일은 잊고 떠나라 빚을 내서라도 떠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보통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에게는 축하와 함께 빚을 내서라도 여행을 떠라고 말한다. 나중에는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이때의 기억이 일하는 동안 큰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충구를 해준다. 심지어 어떻게하면 회사를 오래 다닐까라는 질문에 빚을 내서 차를 사고 집을사면 회사를 나가고 싶어도 못나가니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다는 대답이 명대답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나는 이런 대답들을 들을 때마다 약간 벙찐다. 회사를 다니기 위해 돈을 쓰고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억지로 다니는 모습이 너무나도 어의없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회사 일을 하루에 몇시간 머물리도 않는 특히나 자는 시간 조차 빼버리면 덩그라니 비어버리는 공간을 소유하기 위해 빚까지 내가며 회사를 다니고 또 그 빚을 값는다는 명목으로 회사를 다니는 모습이 마치 챗바퀴 속의 쥐처럼 느껴진다.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소비를 휴식을 가지지고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은 회사를 다시 가기 위해서 그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현대 사회에서는 명목상의 개인의 신분이라는 없어졌지만 사회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그가 가진 직업이나 지위 혹은 직장과 바로 소비일 것이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고 다니면 좋은 대접을 받는다. 대기업을 다니거나 전문직에서 일을해도 주위사람들은 그를 높게 본다. 하지만 이제는 노동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에 대해서 다시 정의를 내려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함께보면 좋은 것들

 

1. 실업자에 대한 혹은 노동력은 잃은 사람들에 대한 불편한 시선

[영화] - 나 다니엘 불레이크 - 복지는 시민의 정당한 권리이다.

[독서 노트/고전]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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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누구나 가끔 그런 생각이 문득 들때가 있을 것이다. 무인자동차가 개발이되고 IOT가 활성화된다고 하는 이 시대에 모든 사람이 손 안에 컴퓨터, 인터넷을 들고다니는 이 시대에, 많은 것이 자동화 되고 있는 이 시대에 대체 나는 왜이렇게 바쁜 것일까?

 세탁기가 생기고 청소기가 나오고 식기 세척기도 나왔는데 우리의 어머니들은 왜 여전히 바쁘다고 짜증을 부리실까? 대체 왜?

 매년 회사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이 업그레이드 되고 편의성이 증진이 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여전히 바쁘고 야근을 하는걸까?

 대체 TV에 나오는 광고들은 우리가(기업들이) 너의 생활을 편하게 해 줄 것이다! 라고 줄기차게 광고를 하고 있는데 대체 왜? 우리는 타임푸어가 되는가는 걸까?

 

 노동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명제는 굉장히 단순하지만 강력하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더 이상 노예제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림자 노동이 우리는 옥죄며 우리는 자발적 노예를 만들고 있다. 기름 값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스스로 기름을 넣고, 스타벅스나 맥도날드에서는 우리가 직접 먹은 것들을 치운다.

 과연 지금 세상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2. 책의 내용

 

 셀프 서비스라는 이름의 사소한 일들에 점령당해버린 우리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

 

 먼저 그림자 노동에 대해서 간단히 정의를 내려보자 그림자 노동이란 마치 가사노동처럼 대가를 받지 않고 하는 노동을 뜻한다. 이 개념은 오스트리아의 사회사상가인 이반 일리치에 의해 최초로 주장되었다고 한다.

 

 책은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노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우리의 삶은 셀프 서비스로 점철되어 있다. 간단하게는 예전에는 식당에가면 물을 내줬지만 어느 순간 물은 셀프가 됐고 자동차 기름 주유도 셀프고 심지어 가구 마저 DIY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조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다. 그리고 직접 제품들의 스펙을 비교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사용 후기를 꼼꼼히 읽으며 전자제품을 사기도 한다. 그리고 젊은 세대는 취업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무급으로 나마 인턴을 하려고 한다.

 

 직장에서는 우리의 동료들이 하나 둘씩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비록 컴퓨터와 각종 사무용 프로그램들이 도입이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야근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들은 고객의 접점에 사람들을 점점 줄이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키오스크을 둠으로서 점점 접촉을 줄이며 고객에게 자신들의 일을 떠 넘기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 존재하는 수 많은 열정적인 사람들은 그런 기업들을 도와주고 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글 역시 그림자 노동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내가 글을 적고 사람들이 이 글을 검색하여 접속한다면 TISTORY 트래픽을 올리고 출판사에서는 공짜로 마케팅도 할 수 있다.

 

 물론 그림자 노동에 순기능도 있다. 직접 주식을 선택하고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주식을 거래하면서 주식 수수료를 대폭 줄이는 등의 효과도 말이다.

 

3. 마무리

 

 물론 책에서는 돈을 받기 위함이 아닌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 하는 취미는 그림자 노동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지금 내가 뭐하는 짓이지? 라고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소비자라는 이름으로 어마어마한 자유를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또 거기에 압도 당하며 너무 많은 선택지들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위해 준비며 시간을 허비함으로써 일상을 '셀프 서비스' 라는 이름에 압도 당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당장드는 생각은 지금은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주니까. 몇가지 선택지 중에 선택을 하지만 만약 식당이 없어서 매일 점심시간 마다 무얼 먹을지 고민해야 한다면 얼마나 귀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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