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는 건조한 호주 남부의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추리 소설이다.
책을 읽다보면 가끔씩, 꼭 이렇게 번역해야 하나? 라는 의문과 함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구문들이 있지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메마른 대지가 버스럭거리고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건조한 문체는 소설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예전에 우리나라 신안에 있었던 염전노예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작가는 수 년째, 터를 잡고 술집을 운영하지만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아 여전히 외지인 취급을 하는 지극히 폐쇄적이고 보이지 않는 규율과 힘의 균형이 존재하는 시골마을에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을 절묘하게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야기의 크게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어린 시절,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 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키와라 마을을 강제로 떠나게 되었던 에런 포크는 친구 루크의 장례식을 위해 가뭄으로 고통 받고 있는 마을로 되돌아온다.
루크는 자신의 부인과 아들을 총으로 쏴죽이고 자살을 한 것으로 잠정적으로 결론이 난 상황이었다. 루크의 아버지는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가 가지는 의심을 지우기 위해 어린시절 루크의 절친이자 경찰관이기도 한 포크를 마을로 불러들인다.
포크는 키와라 마을로 돌아오는 것을 내켜하지 않지만 루크와 공유하고 있는 은밀한 비밀의 진실을 ‘일부’ 알고 있는 루크의 아버지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마을에 머물며 루크 일가족 살해 사건의 진실을 파해치기 위해 마을에 머물며 사건을 조사한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사건이 존재한다. 어린 포크와 그의 아버지를 오랜 시간 동안 이룩한 모든 것을 두고 떠나게 한 사건인 엘리의 사망사건이다.
엘리 역시 어린 포크의 친구였다. 둘 사이에 몽글몽글 사랑의 감정이 피어나고, 남들이 모르는 하나의 비밀을 공유했을 때, 엘리는 마을 강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녀의 바지에서는 포크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발견되었고 포크는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다.
당시 강가에서 혼자 낚시를 하고 있던 포크는 꼼짝없이 용의자로 의심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루크와의 비밀 협약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경찰 수사관의 용의선상에서 벗어난 것일 뿐, 비밀은 또 다른 비밀과 의심을 낳으며 서로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이야기는 촘촘한 그물처럼 잘 짜여져 있다.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현재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며 독자를 서서히 진실에 접근 시킨다. 적절한 타이밍을 놓쳐버렸다는 이유로 진실을 말하지 않은 이들은 비밀을 더 크게 만들고 사건을 더 복잡한 미궁에 빠트린 채 사람들을 서로 의심하게 만든다.
책은 몇가지 다른 소설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과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였다. '데미안'의 초반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 허세를 위해 했던 거짓말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뒤죽박죽 되는 경험을 한다. 포크와 루크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른 목적이긴 했지만 그들이 한 거짓말은 오랫동안 그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객관적 진실이 아닌 소문과 편견이 지배하는 마을과 그레천이 토끼 사냥을 위해 총을 쏘는 모습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책은 곳곳에서 비밀이 나온다. 그리고 누구나 비밀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뭄에 말라버려 드러난 강바닥처럼 비밀이 한꺼풀 한꺼풀 벗겨지고 진실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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