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사실 영화를 보러가기 전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를 하나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 그냥 외계인 나오는 SF 영화인 줄 알고 보러갔었다. 내가 일반적으로 외계인이 나오는 SF영화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는? 스타워즈 아니면 E.T다. 그런데 이 영화는 둘다 아니다. 스타워즈처럼 빵빵 하며 다 터지는 영화도 아니고 E.T처럼 외계인과 인간의 교감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고 하기에도 무언가 좀 모자란 느낌의 영화였다.
그렇지만 영화 자체는 매우 재미있었다. 영화의 시작 부분은 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으로 시작하였지만 끝에 다다라서는 '아!' 하는 감탄사를 뱉어내기에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2. 줄거리
어느 날, 지구의 12곳에 외계인의 것으로 보이는 쉘이 도착한다. 세계 각국들은 서로 공조하여 이 쉘의 정체와 외계인의 방문 목적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실력있는 언어학자인 루이스가 뽑혀 미국에 도착한 외계인이 있는 몬태나로 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루이스는 이론 물리학자인 이안을 만나는데.
루이스는 외계인과 최초의 접촉 이후 기존의 말로 소통하는 방식에서 필담을 통한 소통 방식으로 소통 방식을 바꾼다. 루이스는 외계인과의 접촉이 잦아 질 수록 환상에 시달린다. 어느 정도 소통이 자유로워지고 루이스가 외계인의 문자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쯤 그들의 방문 목적을 듣게 되는데...
3. 키워드1. 언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언어 일 것이다. 루이스와 이안이 처음 만난 헬리콥터에서 이안은 루이스의 책을 읽어준다.
"언어는 문명을 이루는 초석이다. 사람들을 하나로 통합 해주는 접착제이자, 갈등을 끝내는 첫번째 무기이다."
Language is the foundation of civilization. It is the glue that holds the people together, and it is the first weapon drawn in a conflict. (정확한 번역인지 사실 헷깔리네요)
루이스는 이안에게 도입부에 어려운 말을 써서 독자들을 압도하기 위해서라는 식의 대답을 건내주고 이안은 이에 문명의 초석을 이루는 것은 과학이라고 가벼운 농담을 건낸다.
여기에 영화의 언어에 대한 관념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루이스는 언어를 화합의 도구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어를 독자를 압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무기 혹은 권력으로 사용 할 수 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 방식이 형성된다는 학설을 이야기 하며 이를 통해 시간을 선형적 흐름으로 인식하지 않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당신은 그들의 언어로 꿈을 꾸고 있는거요?
- 이안 -
4. 키워드2. 헵타포드의 언어, 시간
여기에는 굉장히 많은 복선과 상징이 깔린 것 같은데. 일단 헵타포드의 언어는 끝도 시작도 애매한 원형이다. 그들의 문자는 일종의 표의문자로써 시제가 없다는 것을 루이스는 이야기 한다. 그리고 루이스는 아이의 이름을 이와 같이 시작과 끝이 동일한 Hannah로 짓는다.
결정적으로 영화가 끝나는 순간 다시 화면이 영화의 시작부분으로 돌아가야말 할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한다.
그들의 언어를 제대로 배우면 시간을 그들처럼 인식할 수 있어요. 다만, 그들의 시간은 한쪽으로 흐르지 않아요.
- 루이스 -
5. 키워드3. 우아한 정복자 헵타포드
대체 헵타포드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헵타포드는 자신의 목적을 3,000년 후 인간들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언어(도구? 무기?) 를 전달하기 위해 왔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헵타포드에게 시간의 관념이 없다고 해놓고는 왠 3,000년 후 타령이지?
키워드1. 에서 말했지만 언어는 사고방식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 저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운다면 미래를 볼 수있다고 하는데 과연 누가 그것을 배우지 않을것인가?
영화에 잠깐 나오지만 루이스는 책 출판을 통해 헵타포드의 언어를 전파하는 것 같다. 모든 이들이 헵타포드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3,000년이 지나고 몇 세대를 거친다면 우리는 자연히 헵타포드화 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지구를 식민지화 시키려는 헵타포드의 진짜 아닐까?
영화 속에서 언어는 권력이자 무기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생각하지 못 했을 수도 있지만 의아한 점이 있다. 바로 영어를 제외하고는 모든 언어는 루이스가 번역해서 직접 설명을 해주기 때문이다. 생 장군과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중국어는 자막으로 번역되어 나오지 않고 가끔씩 나오는 다른 나라들의 방송도 자막을 넣어주지 않는다. 지구인들은 불완전한 헵타포드어를 통해 헵타포드화 되고 진정한 권력을(언어) 쥔 헵타포드들은 정복자로 설 수도 있다.
사실 그냥 웃어 넘길 수도 있는 소리이다. 그런데 이게 현실에 존재한다. 그리고 멀지도 않은 명동에서 말이다. 헵타포들이 언어를 주면서 끼워준 무기(시간)는 일종의 미끼이다. 자신들의 언어를 배우게 할 유인책 말이다.
이것을 현실에 약간 대입시키자면 유커들이 대한민국에 대량으로 들어와서 명동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경제력(=시간)을 미끼로 뿌린다. 그리고 그곳 상인들과 상권들은 그 미끼를 물고 중국어(=헵타포드어)를 사용하거나 중국어를 사용하는 종업원들을 고용하여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수도의 한복판을 소음이나 충돌없이 자연스럽게 파고 들었다. 명동에 중국어 소리가 높아 가면 갈 수록 자연히 내국인들의 발길은 뜸해지고 중국(=중국어)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지니 실제로 점점 하나의 권력이 되어가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을 얻지 않았나? 라고 반문 할 지 모르지만 바뀌는 것은 없다. 루이스는 모든 결말을 알지만 미래를 바꾸지 못했다. (그게 아이에 대한 사랑이든 어쨋든) 그리고 모든 사람이 언어를 배워서 미래를 볼 수 있다면? 물리 법칙처럼 모든 미래는 정해진 것 아닐까?
(언어학자인 루이스는 이것을 받아들였던 것이고 이론 물리학자인(양자역학의 개념에서) 이안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이혼을 했던 것은 아닐까?)
헵타포드들은 총 한발 쏘지 않은 이제까지 지구 정복을 시도했던 외계인 중 가장 우아한 정복자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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