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장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아마 데미안은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이 구절에 관해서는 알 것이다. 고전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대체 이런 책을 초등학교 시절 필독도서로 올려 놓은 사람들은 진짜 책을 읽어보고 필독 도서로 선정을 하긴 한 것 일까라는 큰 의문이 든다. 물론 나도 안 읽기는 했지만 초등학생 때 이런거 읽었으면 아마 다시는 책을 잡을 생각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어린이용으로 따로나오는게 있던 건 같지만 말이다.)

 

초판본 데미안 (방탄소년단 2집 앨범 모티브)
국내도서
저자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 이순학역
출판 : 더스토리 2016.06.20
상세보기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하는 이유

1. 소년의 영적, 정신적 성장기

2. 개인적인 의견이기는 하지만 성장하는 청소년들 보다는 그 아이들을 키우는 어른이 읽어야 하지 않을까?

내 마음대로 고른 주요 Keyword

1. 선과 악, 밝음과 어둠, 두 세계

 이 책의 주인공인 싱클레어는 독실한 신앙을 지닌 유복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였다. 아이는 부모님의 세계 속에 속하여 안전하게 보호를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잠깐의 불편한 마음을 모면하기 위해 했던 작은 거짓말로 인해 싱클레어의 밝고 안전한 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크로머는 싱클레어의 거짓말을 이용해 소년의 발목을 그러잡고 어둠의 세계로 끌어들여 싱클레어의 인생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소년에게 아버지, 어머니도 모르는 자신만의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아버지의 권위에 내가 새긴 최초의 칼자국이었고, 내 유년 시절을 이루는 기둥에 가한 최초의 칼자국이었다.

 

 크로머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던 싱클레어는 새롭게 전학을 온 데미안에 의해 그 상황에서 벗어난다. 데미안은 여로모로 특이한 어른 같은 소년이었다. 싱클레어는 크로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자 마자 다시 그 예의 안전한 세계로 돌아가고 만다.

2. 비판적 사고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카인과 아벨,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싱클레어에게 생각을 하게 한다. 제도권 교육에서 일절 가르치지 않는 것들을 싱클레어에게 알려 줌으로써 비판적 사고를 자라나게 한다. 중세시대 였다면 바로 이단으로 몰려 화형에 당할 소리였다.

 

다른 아이들과는 전혀 판이한 데미안의 집중된 눈빛은 나에게 무언가 경고를 느끼게 했고 내 마음 안에서 의심과 비판적인 생각이 생겨나도록 했다.

3. 표적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헤어지고 나서 방황의 시간을 가진다. 질 나쁜 친구들을 만나 술에 흠뻑 취하기도 하며 선생님들과 부모님을 실망시키기도 한다. 그는 고독과 방황에서 구원해 준 것은 베아트리체였다. 베아트리체는 싱클레어가 타인의 힘을 빌어서가 아닌 스스로가 창조해낸 첫 번째 이상향(표적) 같은 것이었다.

 

이 베아트리체에 대한 숭배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어제까지는 조숙한 풍자꾼이던 나는 성자가 되려는 희망을 품은 사원의 하인이

 

 이후 싱클레어는 계속해서 자신에 대한 탐구를 이어나간다. 피스토리우스를 만나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자신에게 비밀을 알려달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피스토리우스는 분명 좋은 조언자이고 선생님이었을지 모르지만 싱클레어는 또 다시 떠나간다. 결국은 주변에서 그가 표적을 찾을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지만 결국은 스스로가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임의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 운명을 자신의 내부에서 송두리째, 그리고 온전하게 끝까지 지켜 내는 것이다.

4. 전쟁

 싱클레어는 아브락사스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자아를 점점 더 선명하게 만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데미안과 재회를 하고 그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을 만나면서 자신이 원하던 완벽한 이상향을 만난다. 싱클레어의 자아는 이렇게 완벽하게 완성이 되고 행복한 일들만 일어 날 것 같지만 세상은 싱클레어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결국은 전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소용돌이에 싱클레어를 휘말리게 한다. 아무리 자신의 자아를 단단하고 아름답게 완성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결국 외부세계와 소통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것일까?

 

작별을 고하고 혼자 거실을 지날 때 풍겨 온 히아신스의 향기가 시들고 무미한 죽음의 냄새처럼 느껴졌다. 한 자락의 그림자가 우리들을 덮쳐 온 것이다.

 

 비록 외부적 사건으로 인해 그의 몸은 상처 입지만 그의 자아는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

 

붕대를 감는 것은 몸시 아팠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나는 열쇠를 발견했고, 때때로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형상이 졸고 있는 그 곳, 내 자신의 내부에 완전히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개인적인 감상

▲ 좋았던 점

 일단 책이 기본적으로 좋은 것은 부정할 수가 없는 것 같다. 한 소년의 성장기를 철학적으로 참 잘 쓴 것 같다. 이건 그저 이야기 속의 한 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들 형태는 다르지만 이런 성장기를 겪어 왔을 것이다. 부모의 보호 속에서 자라던 아이가 점점 커가며 자신만의 이상을 찾고 사상을 지니며 살아가는 모습, 그 결과와 과정이야 천차만별이겠지만 다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지내왔다.

 

 글의 서두에서 아이들이 읽기보다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 지나고 나면 '아!' 하며 알지만 당시에는 왜 대체 그러는지 알아채지를 못한다. 이 책을보며 아이들의 성장이 어디쯤인지 다시 한번 느껴보면 어떨지?

 

 헤르만 헤세는 다른 책인 '수레바퀴 아래서' 와 마찬가지로 제도권 교육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결국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적인 사고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잘 아는 것이 아닐까? 현재이 제도권 교육은 우리에게 이런 것을 질문하지도 생각해보라고 하지도 않으니 각자도생으로 잘 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 이건 좀 그래

 책의 후반부에 전쟁이 발발하며 나오는 문장들에서 불편한 느낌이 난다. 나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전쟁과 그 결과를 미화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이 쓰여지던 시대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중이던 1916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19년에 출간이 되었다. 이 전쟁에서 독일은 패했다.

 

  W.G 제발트가 '공중전과 문학'에서 전후 (2차 대전) 이후 독일 문학의 침묵을 비판했었다. 이 책의 결말 부를 보니 이 책도 마찬가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예전에 읽었다. '괴벨스'의 전기에서도 괴벨스는 1차 대전에서 패한것을 수치스러워 했다고 했다. 이 책의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어떤 정신승리 같은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괜한 착각일까?

 

씨름에 완전히 진 일본인은 가버렸고 톨스토이 신봉자도 오지 않게 되었다.

 

이건 헤세의 전쟁결과에 대한 바램 아니었을까?

 

헤르만 헤세의 다른 책

[독서 노트/고전] -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전후 독일 문학에 관한 책

[독서 노트/인문(사회,정치,철학 등)] - 공중전과 문학 - W.G 제발트

 

반응형
반응형

 또 하나의 누구나 제목을 알고 들어는 본 것 같은데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고전의 정의에 충실히 따르고 있는 책인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서평을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1925년 작 소설인 '위대한 개츠비'는 사실 작가의 생전에는 잘 팔리지 않았던 소설 책이다. 초판으로 2만부를 찍어 내어 겨우 팔고 2쇄로 찍었던 것은 팔리지 않아 결국 작가가 죽을 때까지 그의 집 창고에 처박혀 있었던 책이 영화로 제작이 되고 미국 고등학생들의 필독 도서라고 하니 인생이 어떻게 풀릴지는 아무도 모르는게 맞나보다.

 

 '위대한 개츠비'는 사랑에 관한 책이다. 간단히 내용을 풀이하자면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세계 1차 대전 이후 미국 동부에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위해 보여주는 그야 말로 모든 것을 바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체 무엇이 개츠비를 위대하다고 표현 했을까? 닉 캐러웨이의 시선을 따라 가보도록 하자.

 

위대한 개츠비 미니북 세트 (한글판+영문판)
국내도서
저자 :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 / 이기선역
출판 : 더클래식 2014.11.07
상세보기

이 책 읽기를 추천하는 이유가 있다면?

1. 세계 1차대전 이후 미국의 시대상을 잘 알 수 있다.

2.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궁금하다면?

3. 정렬적인 사랑에 대한 로망 충족!

내 마음대로 고른 주요 Keyword

1. 서쪽과 동쪽

  책은 대조되는 것들 을 보여준다. 서부와 동부, 이스트 에그와 웨스트 에그, 돈 많은 자들과 가난한 자들, 이 책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는 서부의 명문가 출신의 남자이다. 이 사람은 금권주의의 가장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증권업을 배우기 위해 서부에서 가족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동부로 온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당시 시대의 많은 계급층들을 대변하고 있다. 대부분 극단적인 인물들이 많은데 비하여 닉은 가장 균형잡히고 중립적인 인물로 묘사가 된다. 그는 서부 출신이지만 동부의 물질주의를 배우러 온데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 편견을 가지지 않을려고 노력하니 아마 최고의 관찰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지면 이 말을 명심해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너처럼 혜택을 누리고 사는 건 아니란다.

내가 살던 웨스트 에그는 이스트에그에 비해 덜 화려한 곳이었다. 사실 두지역은 상당히 다르고 대조적이라 이런 비교는 피상적일 뿐이다.

 

 개츠비가 서부 출신의 개천에서 용 난 흙수저 출신이라면 톰은 동부 출신의 그야 말로 날 때 부터 황금수저를 물고 자라난 인물이다.

 

 그리고 두 남자가 사랑하는 혹은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데이지 역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여인이고 이와 대조적으로 톰이 바람을 피는 머틀은 톰을 통해 상류층의 진입을 꿈꾸는 하류층의 여인을 대변하고 있다.

 

 동부와 서부, 혹은 금수저와 흙수저의 삶은 너무도 달라서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개츠비가 뛰어난 능력으로 성공하여 매일 밤, 명사들을 불러 성대한 파티를 열고, 머틀은 톰과 조그마한 파티에 개최하고 개를 기르지만 이들은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였을 지도 모른다.

 

자동차 정비소에서의 풍만하고 육감적이던 생기는 이제 거만함과 오만함으로 바뀌었다. 웃음, 몸짓, 말투 등 머틀의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식적으로 변했고, 그렇게 그녀가 들뜰수록 집은 점점 비좁아지는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창문과 커다란 문으로부터 공허감이 흘러나오더니 현관에서 형식적인 작별을 고하는 개츠비의 실루엣에 완벽한 고독을 더 했다.

 

 아까 닉을 굉장히 중도적인 인물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사람과 대조적인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건 바로 그와 애정을 나누었던 베이커이다. 닉은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지만 캐서린은 닉과는 반대적인 의미로 동일하게 행동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워릭에서 열린 파티에 같이 갔을 때였다. 베이커가 렌터카를 몰고 왔는데, 차 지붕을 열어둔 채 빗속에 주차를 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일에 대해서 거짓말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기본 덕목 중에 하나쯤은 가지고 산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게 바로 정직함이다.내가 알고 지내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서 정말로 정직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2. 그렇지만 사랑, 하지만 돈

 위에서 나열 하였듯 이 처럼 절대 뭉치지도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았을 인물들을 모아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이었다.

 

 개츠비는 1차 대전에 참전하기전 만났던 데이지를 사랑하여 멀고 먼 길을 돌아 그녀의 집 건너편에 대저택을 마련한다. 개츠비는 그가 데이지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서로의 사고나 생활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돈'이 부족해서라고 판단했다.

 

 능력있는 개츠비는 돈을 번다. 그가 돈을 번 방법은 자세히 나와있지 않지만, 유산 같은 것을 통해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닌것 만큼은 확실히다. 불법과도 연계되어 있다는 낌새를 풍기며 그는 돈을 번다.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서 였다는 점이 참 놀랍다.

 

 개츠비는 부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예전의 '지미 개츠'로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불행한 미래를 이미 암시했을 지도 모른다. 그

 

이런 행동은 깔금한 그의 매너와 별개로 불안정하며 예의도 없어 보였다. 개츠비는 한시로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다리를 떨거나 초조한 듯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에게는 태생적인 부자가 가지는 여유가 없었는 것 같다. 자신의 손으로 하나하나 일군 것들이 하루 아침에 없어질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그의 태도와 갑작스럽게 등장한 부호라는 타이틀은 사람들에게 의심을 안겨 주었다. 아무튼 소문에 상관치 않고 그들은 파티를 즐겼지만 말이다.

 

 마침내 개츠비는 베이커와 닉의 힘을 빌어 데이지와 만난다. 데이지도 다른 여자에게 빠진 남편에 질렸던지 개츠비에게 빠져든다. 둘은 마치 오래된 연인 처럼 사랑을 속삭이고 개츠비는 자신의 파티에 데이지를 초대한다. 과연 그의 파티는 그녀가 즐겨왔던 파티와 어떻게 달랐을까?

 

데이지는 롱아일랜드의 한 구석에 자리한 웨스트에그의 저택에서 왠지 모를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낡은 완곡어법에 느껴지는 활기와 허무한 인생길에서 서로를 내리까는 사람들의 강렬한 생활력에 데이지는 소름이 끼쳤다. 그녀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단 순함에 무시무시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이 대목에서 이미 둘의 사랑은 이루어 질 수 가 없다는 것을 암시 했던 것 같다. 개츠비가 그녀를 위해 추구해왔던 것이 그녀가 이미 가지고 있던 것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데이지는 오늘은 뭘할까, 내일은, 십년 후는, 이십년 후는 뭐할 까를 한가하게 고민하는 금수저였고, 개츠비는 하루하루를 계획하고 실천해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흙수저였다. 개츠비는 이미 이런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집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군요."

"데이지는 말할 때 신중하지 못해요."

내가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뭔가......"

내가 머뭇거리며 망설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죠."

개츠비가 내말을 받아쳤다.

 3. 위대한 개츠비

  개츠비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자신이 사랑이 어떻게 끝날지 그의 이성은 다 판단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사랑이라는 그의 감정의 끈이 그를 다른 방향으로 억지로 끌었을 것이다. 결국 개츠비는 데이지의 죄까지 모두 끌어 앉은 채 죽고 만다.

 

 닉은 죽은 개츠비의 장례식을 준비하며 동부의 진실을 깨닫는다. 그의 파티에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던 손님들은 그가 죽자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다. 그의 죽음의 책임이 있던 데이지도 톰도 그를 친구라 부르던 울프심도 그의 집에 얹혀 살던 이들도 그가 죽고 그가 줄 돈이 없어지자 아무도 그를 찾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와 닉이 개츠비 저택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올빼미 모양의 안경을 쓴 건장한 중년 남자만이 개츠비의 장례식에 찾아온다.

 

"저거 말이오. 새삼 확인할 필요도 없어요. 전부 진짜요. 내가 확인해봤거든."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 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개인적인 감상

 사랑이란 결국 어느 시대에나 공통적으로 공감되고 모든 이들이 고민하는 사항이니 여전히 이 책도, 고전 필독서라는 명목으로 통용되는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읽다보니 이 책의 내용이 우리나라의 현실에도 잘 맞는데다가 우리나라의 드라마에도 잘 등장하는 소재라고 생각이 된다.

 

 삼포세대니 팔포세대니 하는 것도 결국은 다 돈 문제에서 비롯된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돈 문제가 해결 된다고 그 뒷 문제가 무조건 해결되는건 아니라는 것을 소설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책에서는 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다들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겹치는 캐릭터가 없이 잘 살아있다는게 책의 큰 장점인 것 같다. 어쨋든 개츠비는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꿈을 잠시나마 이루었다. 자신의 쌓아온 모든 것을 바쳐서 말이다. 비록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환상속에 인물과 좀 다르기는 하지만 그 환상을 간직한채 죽을 수 있어서 그나마 덜 불행했을까?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