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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이하여 앞서 희생자분들과 유가족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와 함께

더불어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분들이 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 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리의 두번째 작품 파수꾼.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내용자체는 앵무새 죽이기와 연계가 되어 있는데 등장인물들의 변화가 매우 심했다. 등장 인물이 바뀐 것은 아니고 그들의 성향이 바뀐터라 사실 처음 읽을 때는 적지 않게 당황했었다.

 다 읽고 생각해보니 앵무새 죽이기는 스카웃이 소녀였을 때 시점에서 진행된데 반해 파수꾼은 진 루이즈가 20대 숙녀가 되었을 때임을 감안한다면 그런 변화는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은 아직 읽어보지 못한 그러나 한번 읽어 보실분들께는 스포가 될까봐 자세히는 쓰지 않고 핵심이 되는 주제와 관련 된 내용만 쓰겠다.

 

 앵무새 죽이기의 사건이 이 후 나이가 든 진 루이즈는 뉴욕으로가 독립적으로 생활 한다. 그러다 휴가때는 다시 메이콤으로 돌아와 생활을 하는다. 그녀에게 그녀의 아버지 핀치 변호사는 여전히 완벽한 우상이자 이상향 같은 존재였다. 북부(뉴욕)에서 생활하는 그녀에게 아버지는 남북전쟁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절 일반적인 남부지역의 사람과는 다르게 인종에대한 편견이 없는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환상을 깨는 사건이 발생하고 매우 실망한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모진말을 퍼붓고는 메이콤을 떠나려고 할때 그녀의 삼촌이 찾아와 약간의 폭력과 대화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책의 말미 진 루이즈와 핀치 박사의 대화에서 여러가지 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느낄 수 있었다. 진 루이즈는 남부에서 태어났지만 그 시절 남부 사람과는 달리 인종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위선적이거나 허례허식에 치중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요즘 기준으로 일적으로 생각하는 정의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남부를 기준으로 본다면 일종에 "깨인 사람"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휴가에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고향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혹은 위선적인 모습들을 목도 하지만 그저 비난 하거나 무시 할 뿐 그들을 설득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완벽하게 이상적인 모델이었던 자신의 아버지의 불완전한 모습에 비난하다 못해 도망치려까지 했던 그녀를 되돌린 그녀와 삼촌의 대화 몇개만 살펴 보자.

 

"진 루이즈, 각자의 섬은 말이다, 각자의 파수꾼은 각자의 양심이야. 집단의 양심이란 것은 없어 - 핀치 박사

 

"...고집불통이 자기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양보하지 않아.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지.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아, 그저 비난만 하고.....<나는 이 사람들이 행하는 방식이 싫어, 그러니까 나는 이들과 상대하지 않아>라고 말이야. 이것아, 그들과 상대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지 않으면 너는 절대로 성장하지 못할 거야. 예순 살이 되어도 지금과 똑같을 거라고. 그러면 너는 내 조카가 아니라 괴짜가 되는거야."  - 핀치 박사

 

"싸우라는 게 아니라, 매일 아침 일을 나가고, 밤에는 친구들을 만나고 그러라는 거야."

"삼촌, 나는 내가 공감하지 않고, 내 성미에 맞지도 않는 곳에서 살 수 없어요."

"....친구에게 네가 필요할 때는 친구가 틀렸을 때란다, 진 루이즈. 친구가 옳을 때는 네가 필요 없지"

- 진과 핀치박사의 대화

 

나는 나의 세계가 교란되지 않기 바라면서, 나를 위해 애써 그것을 보존하려 하는 사람을 짓밟고 싶었다. 그와 같은 모든 사람들을 몰아내고 싶어 했다. 그것은 비행기와 같은 듯하다. 그들은 저항력이고 우리는 추진력이어서, 우리는 함께 그것을 날게 만든다. 우리가 너무 많으면 머리가 무겁고, 그들이 너무 많으면 꼬리가 무겁다. 이것은 균형의 문제다.

- 진 루이즈

 

 나는 위의 네 구절에 책의 주제가 대부분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각자의 정의가 있음으로 자기와 합치하지 않는 것들은 그저 배척하거나 비난하면서 살기만 하는 되는 걸까? 핀치 박사는 이런 이들을 비판한다. 무엇이 옳은 정의인지 토의하고 토론해야 하고 설득도 해야한다. 그렇지 않고 홀로 고립되면 괴짜가 되어버리고 의견이 맞는 이들만 뭉친다면 집단적인 괴물이 되어 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파수꾼은 군대에서 필요 한 것이 아니라 사회속에서 사람들을 깨우쳐 바른길로 인도해 줄 파수꾼 혹은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파수꾼도 필요 할 것이다. 이런 파수꾼들이 사회에서 점점 늘어난다면 우리 사회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가끔 주위를 둘러보면 "세월호 사건 그거 다 끝난거 아니야?" 혹은 "나라에서 어련히 알아서 잘 했겠어" 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것이 그 사람들의 정의 일 수 있다. 마냥 비판하거나 그렇다고 무시하면서 무조건 멀리해서도 안 될 것이다. 모든 이들이 잘 못 된 것은 바로 잡아주고 알려 줄 수 있는 파수꾼이 되기를 그리고 그런 이들이 늘어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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