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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미국 청소년 문학의 대표 작가라 불리는 로이스 로리 장편소설. 모두가 잃어버린 여러 감정들을 찾아나서는 열두 살 소년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1994년 뉴베리 상과 1993년 보스턴 글로브 혼 북 아너 상 수상작이다. 모두가 똑같은 형태의 가족을 가지고 동일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 곳. 이곳에서는 열두 살이 되면 위원회가 직위를 정해 준다. 열두 살 기념식을 앞둔 조너스에게 내려진 직위는 '기억 보유자'. 과거의 기억을 유일하게 가지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선임 기억 보유자는 이제 기억 전달자가 되어 조너스를 훈련시키기 시작한다. 조너스는 효율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희생된 진짜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저자
로이스 로리
출판
비룡소
출판일
2007.05.18

 

 내가 직접 고민하고, 세상과 부딪혀 때때로는 실패를 겪으며 선택하는 삶이 아닌 다른 이에 의해 계획되고 준비된, 통제가 되지만 실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된 삶은 과연 어떨까?

 

 다른 이들이 준비해준 이런 삶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일마다 되지 않을 때, 무슨 선택이 옳은 것인지 내가 잘하는 게 대체 뭘까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할 때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줄지도 모를 멘토를 찾기도 하고 누군가는 신을 찾기도 한다.

 

 

 책에 등장하는 마을은 이런 것들을 규칙과 원로들이 대신한다.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면밀하게 감시되고 작은 규칙 위반도 넘어가는 일 없이 마을 전체에 설치된 스피커로 방송 된다.
그들은 결혼, 출산 등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개입한다. 목적은 최적 혹은 실패하지 않는 기초가족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실패하지 않는 마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마을의 가구들은 실용적으로 설계된 데다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각 가구의 쓰임새는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조너스가 아는 한 마을에 있는 어떤 문도 결코 잠겨 있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의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고 출산 역시 직접 하지 않고 직업적인 임산부가 낳은 아이를 부부를 관찰하던 원로들이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을 하고 부부가 신청을 하면 한 해의 특정일에 마치 아파트 분양을 받는 것처럼 입양을 하는 방식이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직업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부터 기록되고 관찰한 바를 바탕으로 12살 생일에 아이들의 직업이 원로의 발표로 결정이 된다. 물론 아이가 그 결정이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할 경우 이의는 제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조너스의 경우 그것조차 규칙으로 금지되어있다.

 

지금이 바로 차이를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을 공동체에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행동을 표준화했습니다.

 

 많은 규칙과 감시, 통제가 되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굉장히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자격이 있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각자의 개성은 죽이는 대신 차별은 금지되어있다. 먹을 것도 늘 배달된다.

 

 조금 재미는 없을지는 모르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없는 마을이다. 과연 여기에서 사람들은 행복할까?
 

 책이 그려내는 마을은 통제되어있지만 주민들의 삶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 생활은 늘 질서 정연하고 예측이 가능해. 그래서 별로 힘이 들지 않지. 이 삶은 바로 원로들이 선택한 결과야.

 

 12살 앞으로의 직업이 정해지는 날을 기다리며 불안해하던 조너스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기억보유자'가 된다.

 

 조너스는 원래 기억 보유자에서 기억 전달자로 바뀐 스승으로부터 기억을 전달받기 시작하며 마을이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우리가 '늘 같음 상태'에 들어가자 눈은 쓸모없는 게 되었지.
전 단지 우리만 있다고, 현재만 있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것이 평등해 보이고 안정된 것 같은 마을에도 차별과 속임수가 숨어있다.

 

 모든 직업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 같지만 조너스 가족의 대화에는 육체 노동자에 대한 천대가 담겨있고, 규칙은 필요에 따라 교묘하게 무시되거나 변경된다.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쓰라는 규칙과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교묘하게 표현을 바꿔치기 함으로써 잔학한 행위를 왜곡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조너스는 마을을 탈출할 것을 결심한다.

 

 '늘 같음 상태.', 책에서 마을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마을의 겉모습은 이상적이다. 아무도 굶지 않고 아프면 방치되지 않고 치료하며 외모 같은 것으로 차별받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체계적인 보육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성장해서는 적절한 직업을 가지고, 원한다면 가족을 구성하고 늙어서는 마을 구성원으로부터 돌봄을 받는다.

 

 정말 요람에서 무덤까지 개인이 걱정할 거리가 없다. 유일한 걱정거리라고는 실수나 범법행위로 인한 임무 해제라는 조치가 유일한 것 같다.

 

 하지만 그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면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조너스의 직업이 된 기억 보유자라는 직업도 그런 것이다. 기억 보유자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의도적으로 제거된 감정, 기억 등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가지고 있는 직업이다.

 

 여기에는 행복한 기억도 있지만 트라우마로 남을 법한 지독한 기억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고작 12살 아이에게, 그것도 직업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다른 직업에 없는 규칙을 새롭게 만들면서 떠넘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물론 최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억보유자가 남과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외로움과 끔찍한 기억들로 인한 괴로움을 제외한다면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는 꽤 특별한 대우를 받는 편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 모든 사람이 부담을 느끼고 고통을 당할 거야. 사람들은 그걸 원하지 않아.

 

 책을 말미에 조너스는 마을을 떠난다. 그 행위로 인해 그동안 자신이 전달받은 기억들을 마을 사람들에게 공유하게 됨으로써 혼란과 고통이 따를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기억을 전달해 주고 돌봐오던 가브리엘이 마을에서 요구하는 표준화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무 해제라는 표현을 빙자한 살해를 당 할 것임을 알고는 미처 준비도 다 되지 못한 상태에서 급히 마을을 떠난다.

 

 마침내 완전히 구속과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조너스는 과연 행복해졌을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조너스가 기억 보유자로 선택되고 잃어버렸던 감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과연 나는 고민이나 위험 같은 것이 없는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포기할 수 있을까? 였다.

 

 물론 '늘 같음 상태'라는 게 애매모호하니 그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아주 많은 돈으로 치환해서 생각한다면 이미 사회에 찌들어버린 나 같은 어른들은 생각하기가 좀 더 수월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는 이미 조너스의 마을 같은 삶에 꽤나 근접해 있지 않은가였다.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에 나가서 통제를 받고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감정을 죽여버린 채 일을 한다. 개성이 중요하다고 외치긴 하지만 인스타 등을 보며 남들처럼 살지 못해 우울해하거나 그들의 흔적을 좇아간다.

 

 사랑이 아닌 타인에 판단에 의한 결혼은 사실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조너스의 마을 사람들은 태어난 이후로부터 훈련되고 교육되어 애초에 가지지 못했고 주변인들도 없기에 결핍을 느끼지 못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다. 우린 가졌던 것을 잃기도 하고 아니면 남들이 한없이 많이 가진 것을 바라보기만 하며 결핍과 분노 같은 것을 느끼고는 한다.

 

 어느 쪽이 더 불행한 걸까?

 

 조너스는 가브리엘과 마을을 탈출해 부상과 굶주림에 시달린다.

 

 그러나 조너스은 마을에 머물렀다면 가브리엘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죽었을 것이며 자신은 감정, 색깔, 사랑 등에 굶주리며 평생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너스와 가브리엘은 계속해서 추위와 배고픔, 부상에 시달리며 약해진다.

 

 그리고 포기하고 싶을 때면 기억 전달자로부터 받은 기억을 가브리엘과 나누며 앞으로 나간다. 따뜻함의 기억, 행복함의 기억 등 괴로울 정도로 짧지만 그것들이 조너스를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해 준다.

 

 

 기억과 감정은 한 사람을 고통과 절망에 빠트리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미 지나가 버렸기에 해결할 수도,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는 문제도 기억과 감정이 섞이면 그 사람에게 고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런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게 해주는 것은 한 조각의 작은 행복한 기억 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것들을 배제하고 극도로 효율적인 삶만을 추구하는 세계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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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마치 영화 메트릭스나 이퀄리브리엄을 떠올리게 하는 이 디스토피아적 SF소설은 읽고 난 후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무려 1932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지금 봐도 놀랍도록 생생하게 묘사된 인공부화장의 모습이나 소설 전체의 줄거리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언젠가 한번 읽어 보려고 했던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조금 우습게도 얼마전 유발 하라리가 발간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그가 미래는 '1984'가 아니라 '멋진 신세계' 처럼 될 것이라는 한토막의 글을 읽고 호기심이 생겨 읽어 보게 되었다.

 

 책은 또 다른 디스토피아 소설의 명작이라 할 수 있는 '1984' 와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가 된다. '1984'가 태어난 사람에 대한 사상교육과 선전 그리고 완벽한 빅브라더의 감시를 통해 사람들을 강제로 통제하고 억압을 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유지한다면 '멋진 신세계'는 훨씬 세련된 방법으로 사람들을 통제한다. 바로 아예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목적에 맞게 '만드는' 것이다.

 

 이 외에도 사회 혹은 군중에 대한 통제라는 목표점은 똑같지만 방식은 전혀 다른 두 책에 대한 비교는 나중에 말미에 해보도록 하자.

 

2. 줄거리

 

 대전쟁 이후 거대한 세계정부가 들어서고 모든 아이들은 인공 수정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들의 교육 및 양육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지고 실시한다. 인공 수정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삶은 목적, 계급이 정해지고 그에 맞춰 지능과 육체적 특성이 정해지게 된다.

 

 아이들은 이미 태아시절 부터 세뇌를 받기 시작하게 되고 자신의 신분이나 직업에 대한 불만을 전혀 가지지 않도록 자라나게 된다. 심지어 가장 하층 계급인 엡실론은 고의로 지적장애를 가진 채 태어나게 해 단순 반복 노동을 담당하게 만든다.

 

 지능과 육체뿐만이 아니다.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항목은 욕망이다. 정부는 개인의 욕망마저 통제한다. 부모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하고 임신은 불필요 한 것으로 만든다. 소비와 육체적 쾌락은 미덕으로 죽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다.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시행되어온 세뇌로도 부족해 괴로움이나 고민을 조금이라도 할라치면 마약의 일종인 '소마'를 복용하게 만들어 행복감과 안정감을 가지게 한다.

 

 이 사회에서 높은 계급인 알파 플러스로 태어난 버나드 마르크스는 불만을 가지며 외톨이 생활을 이어가다 연인인(이 사회에서 연인이란 솜털처럼 가벼운 관계이다.) 레니나와 함께 연구라는 명목으로 아직 문명화가 되지 않은 야만인 거주구역으로 들어가 존이라는 남자를 만나고 그를 런던으로 데려오고 존과 함께 갑작스레 유명인이 되어버린 버나드 마르크스는 본격적으로 사회를 즐기기 시작한다.

 

3. 멋진 신세계와 1984

 

 멋진 신세계와 1984는 비슷한 듯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과학기술을 이용해 사회를 통제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1984가 도청 등을 통한 엄밀한 감시를 통해 사회를 통제하고 일반 군중들에게 서로 연결되지 말고 분리 될 것과 절제할 것을 요구한다면 멋진 신세계에서는 결코 군중과 분리 되지 말기를 그리고 끊임 없이 소비하고 행복할 것을 요구한다.

 

 물론 두 소설에는 배경적 차이가 있으니 무엇이 더 옳으냐는 당연히 따질 수 없는 노릇이지만 두 소설 모두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예견한 것이니 과연 어느 쪽이 더 들어 맞을지는 궁금한 노릇이다.

 

4. 마무리

 

 책에서 묘사된 사회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스쳐지나가며 보기엔 참 멋진 신세계다 라고 감탄을 터트릴 수 있을 것이다. 깨끗하고 평화로운 세계, 실업자도 없고, 갑에게 고통을 받는 을 역시 없다. 다들 충만한 행복감만을 느끼며 가끔 괴롭거나 우울 할 때면 그들의 구호처럼 소마 한개면 충분하다.

 

 그런데 또 이런 생각도 든다. 과연 그것이 인간일까? 두려움도 고통도 느끼지 않고 직장에서는 주어진 일만 처리하고 사회에서는 의무처럼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모습은 과연 저것이 기계와 무엇이 크게 다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미숙하기 때문에 쓸모가 없어서 낭비되는 오랜 기간, 만일 암소만큼 육체적인 발육 기간을 단축시킬 방법만 있다면 사회를 위해 얼마나 큰 공헌이 되겠는가!

 

 기계는 돌아가고, 돌아가고, 계속해서 영원히 돌아가야만 한다. 가만히 서 있으면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할 바는 다 해야 돼요. 누가 뭐라고해도 모든 인간은 서로 공유해야 하니까요.

 

 이제는 어찌나 크나큰 발전이 이루어졌는지 노인들도 일을 하고, 성행위를 하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에 잠길 짬을 낼 틈도 없고, 쾌락 이외의 시간이나 여유를 짜낼 수가 없으며...(중략)

 

 "일하는 시간 동안에만, 그리고 지적으로만 어른이죠". 그는 얘기를 계속했다. "감정과 욕망에 있어서는 아기들이지만요."

 

 책에 나타난 문장들은 책 속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란 기계부품과 비슷한것이다. 다만 때때로 기름을 치고 정비를 해줘야하는 기계처럼 여러 수단을 통해 그들에게 '행복감' 이라는 것을 선사해줌으로써 기계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톱니들과 연결되지 않은 부품들은 쓸모가 없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SNS가 등장한 이 후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도 혼자 있는게 아닌 것처럼 되버렸다. 한적한 곳에서는 사색을 즐기기보단 사진을 찍어 공유를 하거나 멍하니 쉬는 시간을 공백이라 여기며 불안해한다. 그리고 풍족해진 먹거리와 컨텐츠들은 우리의 쾌락 중추를 자극하는 것만 같다.

 

 누가 알겠는가 뇌과학과 가상현실이 계속 발전한다면 우리 뇌에 전극이라고 꼽고 다들 가상현실에 빠져 즐기고 있을지. 책에서 말한 것처럼 '행복이란 전혀 웅장하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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