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카프카의 장편소설을 읽다보면 항상 진이 빠지는 것 같다. (사실 뭐 단편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이제서야 카프카 고독 시리즈를 다 읽게 되었다. (성, 아메리카, 소송)
이 세 권의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상대하는 대다수 인물들의 공통점은 이야기가 지나치게 장황하면서도 별다른, 그러니까 실속있는 이야기가 없다. 늘 그럴 듯 하게 이야기는 시작하지만 온갖 제약조건이 있어 불가능하거나 불완전한 해결책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대화 내용들은 보면 마치 우리나라 단독으로는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미세먼지를 보는 것 같아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다.
책은 회사에서 쓴다면 욕먹기 딱 좋은 문장들이 등장해 독자들을 괴롭히지만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 만들어준다. 실제로 카프카의 작품에는 발표 되고 난 이후로 온갖 주석과 해석들이 달리고 각색 되기도 했다. 소송도 마찬가지이다. 한 권의 책에서 누군가는 종교를 찾고 누군가는 실존주의를 찾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사회주의를 찾는다. 보는 시점에 따라 온갖 것들이 튀어나오니 굉장히 매력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2. 줄거리
주인공인 K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을 찾아온 감시인들에 의해 자신의 방안에 구속 되면서 자신이 소송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런데 도무지 자신이 어떤 죄목으로 소송을 당하게 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건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감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이유를 들며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그들은 그저 일을 할뿐이고 법원은 실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분증명서 같은 것은 우리가 알 바 아니오. 우리는 하루 열시간씩 당신을 감시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 말고는 당신 일과 아무 관계가 없는 말단 직원일 뿐이오.'
'관청은 결코 주민들의 죄를 찾아내려고 하는 게 아니고, 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죄에 이끌려서 우리 감시인들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K는 곧 구속상태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직장인 은행으로 향한다. 그는 소송을 반쯤은 장난으로 생각하고 소송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질 우려 따위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날 밤, 그는 하숙집 여주인인 그루바흐 부인에게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고 이어 뷔르스트너 양에게 그녀의 방을 사용하게된 경위를 설명하며 (요즘 같으면 충분히 성폭행으로 구속되고도 남았을 행동을 보이며) 추파를 던진다.
K는 법원으로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정해진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는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정해 법원으로 간다. 그러나 빈민가에 도저히 법원이 있을 법하지 않은 낡은 건물에서 법정을 찾아 헤멘 K는 판사에게 심리 시간에 늦었다는 핀잔을 받지만 그곳에서 언변술로 자신을 방안에 구속하던 감시인의 비리를 폭로하고 난폭한 행동으로 판사를 당황시키며 승리감에 도취된다.
다음 주 주말, 또 다시 법정을 찾아가지만 심리가 열리지 않는 법정에서 법원 정리의 아내를 만나고 미래에 판사가 될 것이라는 대학생을 만난 후, 법원 정리를 따라 법원 사무처에 들어가 그곳을 헤메다 밖으로 나온다. 이 법원 사무처의 풍경은 마치 톱니바퀴가 고장나 서로 헛돌기만하는 거대한 기계를 연상시킨다.
이 이후로 K의 일상이 꼬이기 시작한다. 아니 일상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최초의 심리 이후일수 있다. K는 직장내에서 자신의 라이벌인 부지점장이 자신이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어째서인지 그가 찾아가거나,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은 K가 소송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법원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등을하며 어떻게하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 제시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K가 무슨 이유에서 소송을 당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아니 관심도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무죄는 안 된다고 말한다.
'법원의 최종 판결은 공개되지 않고, 판사들조차 그것을 볼 수 없어서, 옛날의 판례에 대해서는 전설로만 전해 올 뿐이죠.'
K는 자신을 위해 변론서를 작성할 생각만 할 뿐 완성을 하지 않는 변호사와의 계약을 해약한다. 그리고 31세 생일, "개같군!" 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형을 당한다.
사실 줄거리를 쭉 나열하긴 했지만 이 책은 완성작이 아니다. 책의 말미에는 미완성 원고들도 있다. 그래도 전개하는 와중에 내용이 뚝하고 끊겨 버리는 '성'에 비하면 그럴 듯한(?) 결말도 있다.
3. 마치며
서론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 책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달려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무엇이 옳은 해석인가가 중요 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인 독자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가 당연히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에서 인간다움을 느꼈다. 최초 이유도 모른 채, 소송을 당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방에 구속되어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K는 자신에게 가해진 사법권력의 강압적인 부당함에 분노하고 최초의 심리에서는 저항하며, 자신이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저항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자신의 무죄와 법원의 부정함을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이 지은 죄로 인해 감시인들을 매질하는 형리에게 뇌물을 주어가며 감시인들을 구하려했다. (비록 K의 말대로 고소는 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는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는 억압하는 시스템(법원)을 부정하면서도 자신과 비등하거나 조금이라도 우월해 보이는 상대에서는 자신을 억압하는 시스템(법원)의 권위를 인정하며 자신이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을 숨기려했다. 사실 그 권위를 가장 인정한 것은 K 그 자신이었던 것 같다. 그는 법원을 부정하려하는 척했지만 계속 이끌려 다녔으며 어떻게든 소송을 끝내기 위해 이 방법 저 방법을 쓰다 결국에는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한 채 무력하게 처형당하고 만다.
이제 여영 승진기회 따위는 놓쳐버리고 형리에게 매질을 당하고 기계처럼 소리를 지르는 감시인과 잘나가는 은행원에서 제대로 된 업무로를 볼 수 없을 지경으로 몰락해가는 K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자신은 신념을 가지고 오롯이 스스로 존재한다고 믿지만 거대한 무리에서 내쳐지는 순간 으깨지고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도대체 너는 소송에 져도 좋단 말이냐? 그렇게 되면 어덯게 되는지 알고 있어? 그렇게 되면 너는 그냥 지워져버리는 거야.'
'전에는 언제나 떳떳하게 자기 이름을 말할 수 있었지만, K는 언제부터인지 그 이름이 부담스러웠다.'
※ 카프카의 다른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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