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인터넷이 전 세계에 보급되고, SNS가 발달하면서 타인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나의 생활을 드러내는 것이 굉장히 일상적이고 쉬운 환경이 되었다.
많은 이들은 이런 행위로 명성 혹은 인기를 쌓아 자신의 팔로워가 된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인플루언서라는 신종 용어가 생겨났다.
또 그 반대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다른 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들여다보는데 지친 사람들이 많이 생겨 난 탓인지, 한동안 서점가 베스트셀러의 제목에는 유독 '쇼펜하우어'의 이름이 들어간 책이 많았다.
'스토너'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19세기말 미국 중서부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대학에 진학하여 영문학 교수가 되는 인물이다. 그의 인생은 그다지 주목받을 만한 사건들로 가득하지 않다. 그의 인생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지만 그는 참전하지 않고, 아주 작은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스토너는 결혼 생활에서 불행을 겪고, 직장에서도 큰 성공을 이루지 못하며,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언뜻 들으면 과연 소설의 주인공으로 어울릴 법한 삶인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며 이러한 평범한 인물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다 보면 내 삶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바라보다 지친 나를 돌아볼 기회가 될 것이다.
줄거리
스토너는 미주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농업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문학 수업을 듣고 난 후 그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고 전공을 바꾼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미주리 대학교의 영문학 교수가 되어 평생을 그곳에서 보낸다.
스토너의 삶은 여러 갈래로 펼쳐진다. 그는 이디스라는 여인과 결혼하지만, 이디스는 결혼 생활 내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둘의 관계는 차갑고 불행하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딸 그레이스는 부모의 불행한 결혼 생활의 영향을 받아 성장한다.
스토너는 대학 내에서도 여러 갈등을 겪는다. 특히 동료 교수 홀리스 러맥과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러맥은 스토너의 삶에 큰 장애물이 되며, 이로 인해 스토너의 학문적 경력은 여러 번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스토너는 자신의 가치를 지키며 일에 대한 열정을 다한다.
스토너의 삶에서 잠시 동안의 기쁨은 동료 교수 캐서린 드리스콜과의 사랑이다. 그녀와의 관계는 스토너에게 진정한 행복과 위안을 준다. 그러나 이 관계도 대학 측의 압박으로 끝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스토너는 외롭게 생을 마감한다.
마치며
꽤나 길게 줄거리를 써 내렸지만 그의 삶에 소설에서 흔히 있는 반전이나 극적인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꽤나 극적이거나 자극적이라 할 만한 이야기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 스토너가 우연히 대학에 들어가 문학 교수가 되는 것과 이디스, 그리고 캐서린 드린스콜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정도였던 것 같다.
결말을 아주 자세히 적어도 그 누구도 스포일러를 했다고 투덜거리지 않을 어찌 보면 어디서 인가 한 번쯤은 만나봤을 법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 깊은 몰입감을 준 저자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토너'를 매우 절제된 문체로 쓰여있다.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으며,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문체는 인물들의 내면세계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비록 스토너는 그들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의식하고 있었다.
얼굴들에서 그는 서서히 죽어가는 마음, 모질게 마모되어 사라지는 감정과 애정을 보았다.
그리고 중서부의 황량한 농촌 풍경과 대학 캠퍼스의 모습은 묘사한 것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게 그려지며,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나뭇잎은 더욱 짙은 갈색과 황금색으로 물들었고, 캠퍼스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졌다. 잔디밭 위에는 노란 잎사귀들이 흩날리며 쌓였고, 가을 햇살이 비추는 나무들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다시 주인공 스토너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요즘으로 치면 스토너의 인생은 SNS에 올릴 이야기가 거의 없는 인생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멋진 곳으로 여행을 가지도 않고,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업적이나 극적인 상황도 없다. 오히려 그의 인생은 남들에게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인내와 고뇌의 연속이었고, 그것을 항상 담담히 마주 보고 있었다.
스토너는 그녀의 모든 행동, 즉 분노, 고뇌, 고함, 증오에 찬 침묵 등을 모두 남의 일처럼 바라보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대부분 사람의 삶이 그런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가 하드보일드 소설 속 주인공은 될 수 없다. 긴 인생의 아주 잠깐의 극적인 순간순간은 존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겉으로는 대부분은 어제 같은 오늘의 일상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큰 굴곡 삶이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화려한 삶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스토너의 인생은 외견상 큰 사건 없이 흘러가지만, 그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고, 자신의 길을 찾으려 노력한다.
문득 얼마 전, 읽었던 소설 '모순'의 진진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그녀의 불행은 스토너의 것보다 훨씬 요란하고 시끌벅쩍하다. 불행을 자기 안으로 삼키고 녹여버리는 스토너에 반해 진진의 어머니는 그것을 드러내고 발산한다.
"아, 윌리" 이디스가 말했다. "당신 속이 다 먹혀버렸대요."
무엇이 옳은 방법인지 나로서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다만 두 사람 다 끝까지 자신의 인생을 지켜낸 멋진 사람인 것만은 알 수 있는 것 같다.
스토너의 삶은 실패로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그 끝이 실패인지 아닌지는 소설을 읽는 이의 각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스토너의 모습은 큰 감동을 주었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그의 삶은 그는 스승인 슬론의 충고처럼 항상 자기가 누구인지 잊지 않은 삶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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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존 윌리엄스
- 출판
- 알에이치코리아
- 출판일
-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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