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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을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전문가에게 물어보거나 해결을 요청하면 된다. 다만 보통 그런 전문가들에게 물어보거나 해결을 요청하면 돈을 요구하니 돈이 부족한 우리는 공부를 하거나 시간을 들여서라도 직접 해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경제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떨까? 경제학자에게 문의를 하면 다 해결이 될까? 나의 이 얇디 얇은 지갑도 해결 해 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럴리가 없다. 돈과 경제에 관해서라면 왠만한 전문가라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 해줄 수 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22명의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물들의 이론을 간결하게 풀어놓은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하는 이유가 있다면?

1. 수요와 공급 법칙에서 벗어나 경제학을 좀 더 심도있게 파고 싶지만 아직은 가볍게 접근하고 싶을때

2. 경제학적인 생각과 시야란 무엇일까?

 

내 마음대로 고른 주요 Keyword

1. 노벨 경제학 상을 받은 학자들

 사실 이게 정확히 맞는것 같지는 않다. 생각보다 경제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많이 받는다. 이 책에서도 분명히 본 것 같은데...

 

 아무튼 우리나라사람들은 노벨상과 같은 권위적인 상을 굉장히 좋아하니 그런 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의 이론이라니! 라며 충분히 궁금증을 가질만하다. 사실 이 책이 초보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친절한 책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지만 수요와 공급 법칙 같은 경제학의 기본적인 원리정도는 이해하고 읽는 것이 좋을 것같다. (사실 초반에는 친절하게 풀어쓰다가 점차 뒤로 갈 수록 귀찮아지는 건지 빨리 끝을 내고 싶은건지 하여간 그런 느낌이 든다.)

 

 책은 무려 22명의 경제학자들과 이론을 다루고 있다. 언듯 보면 '죽은 경제학자들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와 비슷해보이지만 그 책은 경제학자들의 생애부터 하나하나 세심히 다루었다면 이 책은 노벨경제학 상을 받은 이론을 간단히 다루고 그 이론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현실을 분석하는 책이다.

2. 불연속적인 이론들

 22명의 경제학자들 모아 놓기는 했지만 사실 그들 사이에 큰 연관성은 찾을 수가 없다. 크게 5개의 장으로 나누어놨으나 중간중간에 약간은 핀트가 어긋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소위 말에서 그 분야에서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대가의 생각들을 굉장히 쉽게 풀어 놓은 책 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그 배경이 되는 시대상황이나 그 전부터 있어왔던 이론이나 철학적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면 약간은 뜬금 없다는 느낌이 가끔 들 것이다.

3.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사실 이부분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앞에서 내가 불평불만을 가지고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각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언젠가부터 경제학이라는 것이 미래를 예측하는 일에는 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일어난 상황이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 정교한 이론을 통해 설명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사회계속 발달하고 복잡해지니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대선 홍보문구가 떠오른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여전히 문제는 경제이다. 이 책에서 읽어주는 이론들과 시각들이 여러분의 경제적으로 생각하는 시야도 트여 줄 수 있다면 책 값어치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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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에는 여러가지 이론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이론으로는 제임스 뷰캐넌 교수의 '공공선택 이론'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뷰캐넌 교수는 이 이론에서 국가와 정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 역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 이론은 '이기적인 개인 혹은 기업 vs 공공의 정부' 라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을 증명 해냈습니다.


 이 이론은 정치(의회)와 행정이(정부)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국민의 행복, 정의 기타 등등)과는 달리 글로벌 기업들과 자본가들의 사익을 추구하는 비지니스로 활용되고 있다고 늘 비난하는 촘스키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멀어보이지는 않습니다.


 촘스키 교수는 미국의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들의 이익과 편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과 금융권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늘 비난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 교육과 언론들을 활용하여 민중들을 파편화 시키는 선전을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개똥철학', 즉 '순간적으로 유행하는 소비재와 같은 천박한 것'에 집착하는 인생관을 노동자들에게 심어주며서 그들이 장시간 노동을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 타인과의 연대 등과 같은 위험한 생각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요컨데 인간의 가치를 완전히 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왠지 김기춘씨가 썻다는 쪽지의 전략과 비슷합니다.


 주류 경제학의 대전제는 바로 '경제적 인간' 입니다. 그럼 대체 정부와 정치권 놈들이 우리의 이익을 편취하는데 왜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특이한 일입니다. 고대부터 위정자의 숫자보다 백성들의 숫자가 언제나 훨씬 많았습니다. 신대륙에서도 백인 지주들의 숫자들 보다 흑인 노예의 숫자가 많았죠. 그런데 심각한 착취 속에서도 민란이나 혁명은 언제나 거의 꾹꾹 눌러 담았다가 최후의 순간에 터집니다. 왜일까요?


 뷰캐넌 교수는 이를 '합리적 무시'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합리적 무시는 어떤 정보가 주는 이득보다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비용이 클 때 정보를 무시하는 것을 뜻합니다. 단순히 말하자면 모난돌이 정 맞는다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공공선택이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무임승차 이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촘스키 교수는 대중이 혁명 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중이 현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임승차를 하고 싶지 이 모난 부분이 되어 먼저 정을 맞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죠.


 공공선택 이론으로 봤을 때 이익에 직접적으로 결부되지 않은 일반 대중이 집회나 단체행위에 나서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춰봤을 때 광화문 광장에 수백만의 대중이 모여서 평화롭게 집회를 한 것은 굉장히 놀랄만하고 자랑할만한 일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이양한 권력을 마음대로 팔아 먹었고 최순실은 그것으로 삥을 뜯었죠. 그렇지만 이게 국민 개개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삥 뜯은 것도 아니고 우리의 세금이 빼돌려 지기는 했겠지만 이것도 전국민이 소위 N빵하면 개개인에게는 얼마되지 않는 돈일 가능성이 높고 설령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여 다른 형태로 국민에게 투자를 하더라도 개개인에게는 티도 안나겠죠. 그에 비해 집회에 참여하는 비용은 매우 직접적이죠. 지방이라면 왕복 KTX 차비, 식비, 잠이라도 잔다면 숙박비에 시간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JTBC에서 태블릿PC를 오픈하기전 몇몇 모난돌의 역활을 하던 사람들은 신나게 정으로 까이거나 아예 관심도 받지 못했었죠.)


 그럼에도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굉장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현재 우리는 역사적으로 굉장한 큰 변곡점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발전과정 중의 하나가 정치에 참여하는 권력자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성골에서 진골로 6두품과 지방호족으로, 그리고 과거로 선발된 관료에게로 말이죠. 이 과정이 일제시대와 독재를 거치면서 일반 대중에게로 내려오다가 어느 시점에인가 멈춰버렸지만 그 시계가 지 다시 돌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촘스키는 민주주의가 최고의 체제라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가 현재 그 찬란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특히나 미국의 민주주의를 '국민이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머무는 체제'라고 비난합니다.


 국민은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자신들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줄 지도자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권리를 행사한 후에는 집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어야 합니다. 주어진 일에 열중하고 벌어들인 돈으로 소비하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요리나 하면서 지내야 합니다. 국가를 성가시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바로 이런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촘스키는 많은 진보적 발전이 있었지만, 그 원동력은 지식인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대중의 결집된 힘, 그리고 조직화된 노동계급이야 말로 진보적 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합니다.


 군도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모이면 도적이고, 흩어지면 백성이다.', 권력자들은 자기들 목에 칼을 들이댈 지도 모를 도적을 두려워 할지언정 나약한 백성은 두려워하지 않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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