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그 동안 꽤 많은 일본 소설을 읽었지만 이런 느낌의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다. 요시모토 바바나나의 달콤함이나 에쿠니 가오리의 잔잔함과도 그렇다고 하루키의 무뚝뚝함이나 허무함과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간단히 느낀점을 표현하자면 읽는 동안 읽는 맛이 나는 책이었다. 한문체의 고풍스러운 표현과 은근하면서도 관능적인 표현은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어디 까지가 현실인지 구분이 안가는 소설 속 내용처럼 독자를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사실 한 번 읽고는 이 책이 짜임새가 좋은 책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한번 더 읽은 후에야 이 책이 얼마나 처음부터 끝까지 짜임새가 좋은 책인지를 알 수가 있었다.
2. 책의 내용
책은 신경쇠약을 앓고있는 시인인 마사키의 여행을 담고 있다. 마사키는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은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세번의 인연을 통해 나라 현 도쓰카와 마을 왕선악 산중에 이르게 된다.
마사키는 이곳에 이르는 도중에 여러가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서양 풍으로 곱게 차려 입은 여인에 이끌려 행선지를 요시노로 정하게 되는데,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 왠 광치어린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내릴 역을 지나쳐 본의아니게 구마노 본사로 향하게 된다.
기묘한 노인과의 만남은 노인의 태도 변화 이후 노인이 떠나버림에 따라 혼자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구마노 본사로 가던 중 노인과 함께 기차안에서 마주쳤던 나비와 비슷하게 생긴 나비에 이끌려 원래의 길에서 벗어나 왕선악으로 들어서게 된다.
나비에 이끌려 한참을 산을 오르던중 밤이 내려앉고 마사키는 길을 잃고 헤메던 중 뱀에게 물려 정신을 잃게 된다. 그리고 엔유 스님의 구함을 받게 되고 그곳에서 또 시간이 달리 흐르는 듯 한 느낌과 더불어 아름다운 여인이 나오는 야릇한 꿈, 그리고 고통스러운 환상에 시달리게 된다.
엔유는 마사키에게 뒤쪽의 암자로는 다가가지 말 것을 경고한다. 그곳에는 나병이 걸린 노파가 홀로 죽어 가고 있음으로 마사키에게 절대로 그곳에 접근치 말하고 하는데. 마사키는 점점 꿈속의 여인에 빠져들어서는 산을 내려가기를 거부한다. 이에 엔유는 강제로 하산 할 것을 명령하고, 보름달 밤 잠이오지 않던 마사키는 몰래 암자로 접근을 하는데...
3. 내 마음대로 뽑아보는 키워드
키워드1 : 왕선악 (往仙岳)
저자 히라노 게이치로는 소설속에서 다 일본 지방의 실제 지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직 원래 행선악인 산만은 왕선악으로 고쳐서 사용했는다. 여기서 바뀐 글자의 한문은 다닐 行 → 갈 往 한문에 조예가 깊지 않은 관계로 비슷 한 것 같은데 무엇이 다른지 잘 몰라 사전을 뒤적뒤적 이다보니 왕생(往生)의 의미가 '이 세상을 버리고 저승으로 가서 삶'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것을 생 대신 신선 仙 자로 바꾸면 '이 세상을 버리고 신선계에로 가서 삶' 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왕선악은 현실과는 유리가 된 세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키워드2 : 제비나비
제비나비는 소설 속에서 여러번 등장한다. 먼저 노인과 만났던 기차에서 그리고 구마노 본사로 가던 길에서는 마사키를 왕선악 산중으로 이끈다. 그리고 꿈속의 여인의 머리핀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다카코가 남긴 핏물에서 나타난다.
소설에서 나비는 마치 호접지몽(장자지몽)을 연상시킨다. 장자의 제물론편에서 나오는 이 이야기에서 장자가 깨달은 바는 만물에는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즉 물아일체를 경험하면 꿈과 현실을 구분짓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실 책을 관통하는 가장 큰 하나의 주제를 꼽자면 이것이 아닐까? 마사키는 찰나의 순간 명멸하는 정열을 꿈꾸면서 계속해서 자연 혹은 최후에는 여인과 하나되는 완벽한 순간을 꿈꾼다. 그리고 나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에 등장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마사키를 왕선악(신선계 혹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으로 이끄는 존재가 아닐까?
그때도 지금과 똑같았다. 마치 시간의 흐름에서 튕겨져나와버린 듯한 느낌. 기차안에 잘못 날아든 나비가 기차의 이 칸 저 칸으로 얼마 안 되는 거리를 날아다니는 사이에 하나둘 정차역을 지나쳐버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생전 처음 보는 땅에 떨어졌다는 느낌. - p.34
키워드3 : 강물소리, 두견새 그리고 절, 엔유, 다카코
뱀에 물린 마사키가 깨어난 절, 그리고 그 곳에 머루르는 엔유 스님, 엔유는 어떤것을 깨달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는 폐불훼석이 있은 후 행각을 돌다가 도쓰카와 온천 여숙에서 무슨 일인가를 겪고 활연대오, 이제까지 득도라 믿어왔던 바가 기껏 나한의 경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다카코는 뱀과 인간 여자의 교접을 통해 태어난 아이다. 그리고 눈에는 살을 품고 있다. 그녀도 일반적인 인간은 아니다 일종의 경계에서 살고있는 사람이다.
"아아, 괴로워요. 지금처럼 제 몸을 저주한 적은 없었어요. 당신을 이곳에 불러들이고 만 것이 너무도 괴로워요. 제 마음의 반은 제 것, 나머지는 무언지 정체도 모를 무서운 힘의 것, 누군가를 생각하면 만나고 싶어지지요. 아무리 멀리 있어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부르고 말이요. 제 마음이 원하는 것을 무리하게 이루어버리고 말아요."
왕선악은 인적이 끊긴 이후로 시공간이 밖과는 다르게 분리된 채로 흘러간다. 그리고 마사키가 머물렀던 선방은 경계속의 또 다른 경계이다. 마사키는 밤에 물소리를 듣는다. 밤은 소위 음의 기운이 강해지는 시간이다. 현세와 저승의 경계가 조금 더 엷어지는 시간이다. 엔유는 마사키가 물소리를 들었다고 하자 안색이 변한다.
마사키가 들었던 것은 삼도천의 강물 소리가 아닐까? 불교에서 저승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는 강인 삼도천은 삼도내라고도 하고 죽은지 7일 째되는 날 이 강을 건난다고 한다.
마사키는 뱀에게 물리고 정신을 잃은지 사흘째 되는날 깨어난다. 후에 여관주인으로부터 듣는 다키의 이야기에서도 다키도 산속으로 사라지고 사흘째 되는 날 돌아온다. 7일이 다 되지 않은 다키 역시 마사키와 마찬가지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 혹은 서양에서는 림보라고 부르는 곳에 다녀온 것 아닐까?
마사키는 그로부터도 몇일 지나 보름 동안이나 머무른다. 마사키가 머무르는 동안 몸은 매우 빠르게 회복된다. 몸이 빠르게 회복되지만 꿈과 환상도(혹은 현실) 점차 강해진다. 마사키가 머무는 선방은 다시 현세로 돌아갈 수 있는 최후의 경계선 이고 다키코와 그녀가 머무를 암자는 그 반대편에 위치하는 것 같다.
두견새는 그야 말로 저승길 초입의 새이다.
"이 산은 두견새가 퍽 울어대는군요. 아, 지금 또...... 휘파람새니 다른 이름 모를 새들은 모두 이쪽으로 저녁거리를 찾아날아드는데, 두견이만은 이상하게도 항상 멀리서 울지요....... 저는 저 두견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옛 사람이 어째서 저 새를 일컬어 '저승길에서 온 새' 라 했는지 알 듯한 기분이 듭니다.
마사키는 엔유에 의해 쫓겨나 듯 산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아마 다키가 묻혔을지도 모를 묘지를 지나친다. 그곳은 일종의 이승과 저승 혹은 선계의 경계인 듯 오랜시간 경계 머물던 몸은 현세를 견디지 못하는 마냥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키워드4 : 다키, 마사키 그리고 뱀
그럼 대체 다키와 마사키 이 둘은 왕선악으로 간 것일까? 마사키의 경우는 어떻게 왕선악으로 가게 되었는지 그 여정이 잘드러나 있다 그러나 다키는 여관 주인의 말을 빌어 나오기 때문인지 그 여정이 잘 들어나지는 않는데. 몇가지 단서가 있으니 따라가보도록 하자
일단 둘의 공통점이다. 둘은 아름다운 20대였다. 다키는 여관의 주인의 말을 빌리자면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데도 이따금 퍼뜩 놀랄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다. 마사키는 아수라와 같은 출중하게 매력 넘치는 모습을 온몸에 휘감고 있다고 나온다. 그리고 둘은 달도 없는 밤에 왕선악으로 가서는 초승달이 뜨는 밤 (사흘 후) 돌아오고 정신을 차린다.
둘의 차이점은 둘다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으나 마사키는 정렬적인 흙담즙질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다키는 하얗고, 허망하고 청승 맞은 느낌이 드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뱀을 만났다. 뱀은 나비와 동일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왕선악으로 안내하는 길잡이인 동시에 최후로는 왕선악 내부의 이질적인 공간으로 그들을 납치(?) 하는 존재이며 엔유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것 같다. 사실 다키가 산으로 끌려가서 뱀의 아이를 가지고 내려왔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퍼득 떠오른 것은 그리스 신화였는데 마치 제우스가 온갖 동물로 변해 인간세에 내려와서 자기 씨를 뿌리는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뱀은 (악마? 신? 글쎄다 뭐라고 표현하는게 좋을지는 모르겠다.) 아름다운 다키를 유혹해 자신의 아이를 가지게 한다. 그리고 아름답고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또 한명의 인간을 유혹해 왕선악으로 들인다.
마사키가 선택된 이유는 아름답고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에게는 바로 다키와는 달리 최고의 한 순간을 위해 자신을 불태울 '정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뱀이 다키를 통해 다카코를 낳은 이유는 마사키의 뮤즈 혹은 세이렌으로 활용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뱀의 큰그림???)
그리고 그 것을 바라보며 인간이 하늘에서 아름다운 한순간 터지는 불꽃이 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불꽃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그 둘을 바라보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과정에서 좀 더 아름다운 재탄생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엔유는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을 알지만 어쩔수 없는 비자발적 조력자가 되었던 것 같다. 마사키가 시를 쓴다는 것을 이야기 할 때 굳어지는 표정이나 애써 산을 내려가라고 하는 권유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마치 구하고 싶지 않았는데 구했다고 말하는 듯한 문장.
'소승은 처음부터 자비심에서 선비를 구한 것이 아니외다. 한 찰나 '감히' 그냥 지나치려 했던 소승의 교만을 절복 하기 위해 업어왔을 뿐이오."
키워드5 : 도쓰카와
책을 읽다보면 여기서 시간과 공간이 굉장히 불분명 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도쓰카와라는 지명이 그렇다. 도쓰카와는 여러번에 걸쳐서 등장한다. 책 첫페이지에 마사키가 서 있는 곳은 도쓰카와 마을의 왕선악 산중이다. 그리고 홍수의 범람으로 인해 폐허가 된 곳도 도쓰카와 연안이고 엔유가 깨달음 얻은 온천 여숙이 있는 곳도 다키까 빠져 죽은 곳도 도쓰카와이다.
무슨 말인가 하니 도쓰카와는 1890년에 여러 촌이 모여서 생신 새로운 행정구역이다(일본에서 최고로 넓은 촌이라고 한다.) 마사키가 있는 곳은 도쓰카와 마을의(도쓰카와 촌을 번역하다가 이렇게 나온 것일까? 왕선악 산중이라고 표현한다. 마사키가 여정중 만난 노인은 1889년 도쓰카와 강이 범람하여 사람이 죽었다고 말한다. 책 속에는 몇몇 번만 정확한 년도가 나오는데 이것을 잘 꿰어 맞추다보면 다키의 아버지가 대홍수에 죽은 연도와 1889년이 얼추 맞아 들어간다.
마사키가 왕선악 산중을 벗어나 오타니로 왔으나 (도쓰카와 촌 소속이다.) 여전히 강물 소리가 들린다. 산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죽음의 공간이 이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키워드6 : 죽음
책에서 죽음은 대체로 완벽한 정열의 순간과 동의어로 쓰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죽음을 통해 마사키가 완성한 것은 자신인가 자신의 사랑인가 아니면 한편의 완전한 시인가? 아니면 장자지몽처럼 이 둘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이 한송이 왜솜다리로 아니면 아름다운 나비로 변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키워드7 : 엔딩
책의 결말은 아무런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결국 암자(경계) 남은 것은 나한을 초월한 엔유뿐이다. 엔유는 일종의 관찰자인가? 다들 왜솜다리 꽃으로 백골로, 한줌의 핏물로, 나비로 변해 자연으로 돌아간다. 필멸자로써 피할 수 없는 죽음, 완벽한 정열을 통해 탄생된 죽음 속에서 태어난 한마리의 아름다운 나비(완벽한 작품)
결말 부분에 마사키의 시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사키는 이 책을 따라온 독자일까? 소설은 도입부부터 시간과 공간을 마구 헝클어트리기 시작하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마구 무너뜨린채 독자를 끌여 들였고 이제 당신을 내보낸다는 뜻일까?
키워드8 : 도입
사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데 책을 한번 읽고 두번 읽을 때야 눈에 들어왔는데 이 부분이 마치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해질녁, 도쓰카와 마을 왕선악 산 중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로 홀로 서 있는 청년, 그리고
"대체 내가 어디를 헤매고 있는 것일까?"
두견새 울음소리가 일제히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 문장 이 후, 두번의 문단을 분절 시키며 이 앞의 문단이 뒤의 문단과 시간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음을 암시하며 자신이 왕선악으로 향하게 된 길을 상기시켜 준다.
이 후, 책 내내 강물 소리와 두견새 소리는 저 멀리서 들려온다. 과연 이것은 다 한바탕 꿈이었고 여기야 말로 엔딩이 아니었을까?
4. 맺음말
서두에서 말했 듯이 읽을 맛이 나는 책이다. 고풍스러운 문장은 차라리 마치 한편의 시와 같다. 그리고 여러가지 고전 설화들의 클리셰를 잘 이용해서 만든 한편의 옛날 이야기 느낌이 나는 책이었다. 굳이 이런식으로 소설을 해체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 길수 있는 좋은 책인 것 같다. (맞는지도 모르겠는게 가장 큰 문제긴하다)
밤이 서서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산속에서는, 어둠은 바닥으로 바닥으로 첩첩이 쌓여 올라온다. 어느 틈엔가 복사뼈를 덮고 무릅을 덮고 문득 가슴팍까지 차오른 것을 깨닫는다.
번역의 힘일까?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관계로 무어라고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책 한권 속에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한 것 같다.
방문이 조금 열렸다. 뜰에 가득 찬 달빛은, 향주머니의 끈을 막 풀어헤친 듯 문 틈새로 들어와 마사키를 감쌌다. 땀에 젖은 팔이 얼음 조각처럼 창백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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