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1. 들어가며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독일에서 도망쳐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살다가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의해 체포 당한 후 600만명의 유태인들을 유럽에서 추방하거나 학살하는 행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예루살렘에서 최종적으로 사형에 처해졌다. 그의 재판은 세계인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한나 아렌트는 방송국의 지원을 받아 그 모습을 취재하고 연구했다. 이 책은 그 재판을 한나 아렌트의 눈으로 분석한 책이다.

 

 대규모 학살 현장인 아우슈비츠와 홀로코스트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계획을 직접 실행 하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치즘에 광기에 혹은 인종우월 주의에 빠져서 맹목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광신도와 같은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따뜻한 미소로 겉 모습을 위장하고 뒤로운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가스실을 레버를 잡아 당기는 잔혹한 사이코패스의 모습이었을까?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진실은 둘다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이히만은 그저 지극히 소시민적이고 수동적인 한 개인이 었을 뿐이다. 그는 단지 진급을 바랬을 뿐이고 제국의 명령과 법을 잘 따랐을 뿐이다. 요즘 시대에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회사가 요구하는대로 일만 하다가 과로사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그를 괴물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대체 자신이 속한 단체의 법과 규율에 따라(거기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행동한 개인이 사형이라는 처발을 받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2. 책의 내용

 

 책에는 흥미로운 내용도 많고 그 동안 몰랐던 내용도 역시 많다.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이 대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유럽 각지의 국가들은 이 계획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흔히 영화 등에서 '하일 히틀러!' 를 외치고 하켄크로이츠 완장을 차고 무자비하게 총 칼을 휘두르는 광기어린 나치스들이 아닌 정말 평범하고 거대한 관료 집단 속에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꿈틀거리는 나치스들의 실상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근래 들어 흔히 아는 이 사건에 대해 독일인들이 취하는 태도란 다른 국가들에게 진정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것을 보면서 일본에게 좀 배우라고 한다. 그렇지만 책 속의 내용으로 아이히만이 체포되기전의 독일의 모습은 마치 지금의 일본과 같았던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일련의 과정들 중 (노란색 표찰로 유태인을 구분하고, 체포하고, 가스실을 레버를 당기고, 게토를 감독하는 행위) 많은 부분이 독일인들이 아닌 유태인들의 직접적이고도 자발적인 협조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있었다. (우리나라의 사례와 비교해보나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를 해봐도 이런 것이 특이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유태인들에 대한 학살, 최종 해결책은 나치 정권 초기부터 행해진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그들을 이주시키고나 추방 시키기 위한 정책들이 시행 되었는데. 물론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재산을 몰수 당한 채 쫓가나기는 했으나 이건 후에 있을 홀로코스트를 생각하면 어찌보면 굉장한 배려나 마찬가지였다. 아이히만은 이런 초기의 정책으로 자신의 목표는 '유태인들에게 발을 딛고 설 수있는 굳건한 땅을 주는 것이다.' 라고 표현했다.

 

 아이히만은 어떠한 대단한 목표나 이상을 가지고 나치스 친위대에 투신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동기는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이 었고 유태인의 학살을 대하는 태도 통한 그다지 특별 할 것이 없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진급을 위해 법을 잘 지키는 시민으로써 살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재미있는 점은 그런 이면 속에서 자기가 굉장히 대단한 사람인양 과장된 기억이나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형을 당하는 순간에도 자기가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을 통제하는 듯하게 행동을 하며 마치 독일 젊은이들이 지고있는 죄책감을 공개처형을 통해 자신이 지고 가겠다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3. 마치며

 

 책을 읽는 내내 언어가 과연 얼마나 인간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지 알 수가 있었다. 아이히만은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치스들이 특수하게 사용하던 상투어나 선전구호들은 굉장히 잘 기억하고 있어 그의 기억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결코 학살이나 가스실과 같은 용어들은 사용하지 않았다. 자칫 개인의 양심을 건드릴지 모를 것들은 자신들의 소속 집단에서만 사용하는 용어로 전용해버려 전혀 다른 느낌이 들게 하고 직접 총으로 유태인들을 학살을 하던 돌격대에게는 자신들이 히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가가 아니라 자신들이 하는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 라고 생각하게 했다.

 

 나치스들은 독가스실을 이용한 살인을 의학적 문제라고 칭했다. 언어는 인간의 생각을 구성하는 단위이다. 그들의 의도에 의해 사용된 여러 상투어와 선전문구는 일반적, 보편적, 도덕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상상의 틀을 뭉게 놓았다.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고 있는가, 라고 말하는 대신, 나의 의무를 이행하는 가운데 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목격해야만 하는가, 내 어깨에 놓인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 라고 살인자들은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히만이 말한 것처럼 자기자신의 양심을 무마시킨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실제로 최종해결책에 반대하는 사람을 한명도, 단 한명도 볼 수 가 없었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사실 어쩌면 아이히만은 힘러나 이 일에 연루되어 있는 다른 고위직 간부들에 비해서 훨씬 덜 약삭빠르고 똑똑해 보이지 않는다. 약간 완고한 것 같지만 지극히 정상이고 평범했다. 그저 성실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유죄를 받고 사형을 당한 이유는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에 있다고 한나 아렌트는 말한다. 그는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 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 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붐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과 다른 사람의 현존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 상 가장 끔찍한 인종 학살 중 하나로 알려진 사건에 연루된 중요한 인물이 그저 우리 옆에서 언제나 찾을 수 있을 것만 평범한 사람이었다. 실로 악은 굉장히 평범했다. 그저 성실하고 무능력했을 뿐이다.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사유할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누구나 아이히만을 품고 있을 수 있다. 현재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갑질 역시 자신 속의 아이히만이 발현 되는 것 중 하나였을 뿐이다. 다들 그래왔어 라고 하는 악의적인 관행, 집단의 이익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범법 행위, 대기업에서 하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역시 그 원인은 행위를 하는 개인이 악인이라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미디어와 인터넷, SNS가 점점 발달함에 따라 점점 사유하는 능력이 부족해지고 A.I가 등장하면 사유할 필요조차 없는 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때 다시 우리속의 아이히만이 세상속에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를 일이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