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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이 책을 고른 건. 사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책을 사려고 했는데 소설 베스트셀러 중 하나라서 샀던 것 같다. 대부분 책을 고를 때는 그런 식이다. 좋아하는 작가라서, 그냥 고르다가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등등 별 대수롭지 않은 이유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렇게 우연히 고른 책이 무척 재미있거나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런 책이었다.

 

책의 줄거리

 

 내 이름은 안진진.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25살 미혼여성이다.

 

 참 진(眞) 자가 두 글자나 들어가 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그녀의 성과 만나 그녀의 인생처럼 되어버린 이름이다.

그녀의 가족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억척스러운 어머니, 가끔씩 집으로 돌아오는 거의 행방불명되다시피 한 아버지, 조폭 두목을 꿈꾸는 남동생이 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두 남자를 저울질 하고 있다. 사진작가인 김장호와 나영규이다.

 

 결혼 이후, 안진진의 어머니의 삶에는 숨 돌릴 틈 없이 불행이 연거푸 찾아온다. 따뜻하고 건실한 사람이라 여겼던 남편은 술 주정뱅이에 가출하기 일 수다. 아이들이 커서는 진진의 동생 진모가 사고를 치고 다니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남편은 치매에 중풍까지 앓으며 반신불구가 되어 돌아온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그 불행을 이겨내는 것이 천직인 것 같다. 책을 읽고, 힘을 얻고 연거푸 몰아치는 불행의 파도를 넘으며 살아간다.

 

 안진진의 어머니에게는 쌍둥이 동생이 있다. 그녀는 언니와 함께 태어난 것처럼 한 날, 한 시에 결혼을 했다.

 

 진진의 이모의 남편은 그녀의 아버지와 영 딴판이었다. 낭만적이지만 불안했던 아버지와 달리 그녀의 이모부는 지루하지만 안정적이었다.

 

 덕분에 진진의 이모는 부잣집에서 남들 보기에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이모의 남편도 아이들도 사고 따위는 치지 않는다. 그녀가 뒷바라지 할 것도 없이 다들 자신만의 계획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굴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삶.

 

 한편 두 남자를 양쪽에 두고 저울질 하는 안진진의 고민은 계속해서 깊어진다.

 

 어딘가 느슨해 보이는 김장호, 그는 그녀의 아버지를 닮아있다. 김장호나 그의 가족, 형과 형수는 가난하지만 무척 따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진진은 그들과 함께 자신의 불행을 나누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철두철미한 계획 아래 연애도 결혼도 진행하려는 나영규는 그녀의 이모부를 닮아 있다. 진진은 그의 계획에 답답해 하지만 그녀의 불행을 털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마치며

 

 IMF 때 초판이 나왔다고하니 꽤 오래된 책이다. 조금 더 어렸을 때 책을 읽어보았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해진다.

 

 결말이 스포가 되겠지만, 진진은 나영규와 결혼하기로 한다. 자신이 사랑하던, 자신을 사랑하던 남자 김장호를 버리고, 한번 헤어질 것을 통보한 나영규와 결혼하기로 한다.

 

 진진의 선택이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김장호와 같은 인물과 결혼하여 인생의 전반을 불행하게 보낸 이를 알고 있다.

 

 바로 그녀의 어머니.

 

 어렸을 때 모습은 모두 잃어버리고 누구나 인정하는 불행한 삶을 겪지만, 아이러니하게 불행은 그녀의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어머니는 더욱 바빠졌고 나날이 생기를 더해갔다. 아, 어머니의 불행하고도 행복한 삶

 

 진진은 나영규와 같은 사람과 결혼하여 남들이 보기에는 행복하지만 스스로는 불행한 결말로 치달은 이모를 잘 알았고 그녀의 자살이 가지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그런 이모와 어머니를 닮았음을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암시하던 진진은 이모와 같은 길을 스스로 선택하여 걸어 들어간다.

 

 진진은 이 선택을 변명처럼 독백한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다.

 

 절대 뚫리지 않는 방패와 무엇이든 뚫어버리는 창을 파는 상인의 이야기는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려서 저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인 줄 만 알았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고 살아가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경력은 많지만 연봉은 낮은 신입, 값은 싸지만 품질은 보통 이상인 물건이나 서비스 같이, 언젠가부터 이런 모순적인 요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나도 살아가고 있다.

 

 내년이면 또 앞자리가 바뀌는 나이가 되었다.

 

 짧게 되돌아보면 내 삶이라고 진진의 삶의 부피보다 더 두꺼울 것도 없다.

 

 내 삶의 얼마만큼이나 자의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아마 못해도 절반 이상은 되는대로 떠밀려 왔고, 나머지 절반도 내 선택인 줄 착각하고 살지 않았을까?

 

 진진은 그 끝이 불행 할 것을 알면서도 나영석과 결혼한다. 가져 본 적 없는 행복을 움켜쥐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일까?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진진의 선택을 쉽게 옹호하거나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그냥 자기 인생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진진은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지금은 이제 그런 사람이 거의 없지만, 나의 선택에 관해 자기 인생의 경험을 끄집어 내가며 충고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한 때, 인생이나 앞으로의 비전 등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자기 개발서에 심취해서 읽었던 적도 있었다.

 

 그 때를 돌이켜 보면 물론 그것이 도움이 아예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고도 말하기에도 애매한 것 같다. 그들의 인생이 내 인생은 아니고 그들의 성공이나 실패가 나의 성공이나 실패와 명백한 인과 관계가 있지도 않았던 것 같다.

 

 책의 마지막 말처럼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실수하고 수습하는 게 인생이 아닐까.

 

그 외 기억에 남는 문구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나는 왜 갑자기, 어딘가에서 그 남자의 냄새나는 양말을 깨끗이 빨아놓고 잠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까.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나는 다만 이것이 사랑인가, 하고 사랑을 묻다가 이것이 사랑이다, 라고 스스로에게 답했을 뿐이었다.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었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연관해서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

 

[독서 노트/소설] - 파친코 - 이미진

 

파친코 - 이미진

‘여자의 인생은 고생길이다.’ 선자의 모친 양진이 때때로 하는 말처럼 선자의 인생은 고생길로 가득하다. 그러나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로 시작하는 소설의 첫문장

poorrichard.tistory.com

 

 



모순
양귀자 소설의 힘을 보여준 베스트셀러 『모순』. 1998년에 초판이 출간된 이후 132쇄를 찍으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을, 오래도록 소장할 수 있는 양장본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스물다섯 살 미혼여성 안진진을 통해 모순으로 가득한 우리의 인생을 들여다본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장들로 여러 인물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장에서 내복을 팔고 있는 억척스런 어머니와 행방불명 상태로 떠돌다 가끔씩 귀가하는 아버지, 조폭의 보스가 인생의 꿈인 남동생을 가족으로 둔 안진진. 어머니와 일란성 쌍둥이인 이모는 부유하지만 지루한 삶에 지쳐 있고, 가난한 어머니는 처리해야 할 불행들이 많아 지루할 틈이 없다. 안진진은 사뭇 다른 어머니와 이모의 삶을 바라보며 모순투성이인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하는데….
저자
양귀자
출판
쓰다
출판일
201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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