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1. 들어가며

 

 카프카의 장편소설을 읽다보면 항상 진이 빠지는 것 같다. (사실 뭐 단편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이제서야 카프카 고독 시리즈를 다 읽게 되었다. (성, 아메리카, 소송)

 

 이 세 권의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상대하는 대다수 인물들의 공통점은 이야기가 지나치게 장황하면서도 별다른, 그러니까 실속있는 이야기가 없다. 늘 그럴 듯 하게 이야기는 시작하지만 온갖 제약조건이 있어 불가능하거나 불완전한 해결책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대화 내용들은 보면 마치 우리나라 단독으로는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미세먼지를 보는 것 같아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다.

 

 책은 회사에서 쓴다면 욕먹기 딱 좋은 문장들이 등장해 독자들을 괴롭히지만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 만들어준다. 실제로 카프카의 작품에는 발표 되고 난 이후로 온갖 주석과 해석들이 달리고 각색 되기도 했다. 소송도 마찬가지이다. 한 권의 책에서 누군가는 종교를 찾고 누군가는 실존주의를 찾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사회주의를 찾는다. 보는 시점에 따라 온갖 것들이 튀어나오니 굉장히 매력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2. 줄거리

 

  주인공인 K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을 찾아온 감시인들에 의해 자신의 방안에 구속 되면서 자신이 소송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런데 도무지 자신이 어떤 죄목으로 소송을 당하게 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건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감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이유를 들며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그들은 그저 일을 할뿐이고 법원은 실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분증명서 같은 것은 우리가 알 바 아니오. 우리는 하루 열시간씩 당신을 감시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 말고는 당신 일과 아무 관계가 없는 말단 직원일 뿐이오.'

 

'관청은 결코 주민들의 죄를 찾아내려고 하는 게 아니고, 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죄에 이끌려서 우리 감시인들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K는 곧 구속상태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직장인 은행으로 향한다. 그는 소송을 반쯤은 장난으로 생각하고 소송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질 우려 따위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날 밤, 그는 하숙집 여주인인 그루바흐 부인에게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고 이어 뷔르스트너 양에게 그녀의 방을 사용하게된 경위를 설명하며 (요즘 같으면 충분히 성폭행으로 구속되고도 남았을 행동을 보이며) 추파를 던진다. 

 

 K는 법원으로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정해진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는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정해 법원으로 간다. 그러나 빈민가에 도저히 법원이 있을 법하지 않은 낡은 건물에서 법정을 찾아 헤멘 K는 판사에게 심리 시간에 늦었다는 핀잔을 받지만 그곳에서 언변술로 자신을 방안에 구속하던 감시인의 비리를 폭로하고 난폭한 행동으로 판사를 당황시키며 승리감에 도취된다.

 

 다음 주 주말, 또 다시 법정을 찾아가지만 심리가 열리지 않는 법정에서 법원 정리의 아내를 만나고 미래에 판사가 될 것이라는 대학생을 만난 후, 법원 정리를 따라 법원 사무처에 들어가 그곳을 헤메다 밖으로 나온다. 이 법원 사무처의 풍경은 마치 톱니바퀴가 고장나 서로 헛돌기만하는 거대한 기계를 연상시킨다.

 

 이 이후로 K의 일상이 꼬이기 시작한다. 아니 일상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최초의 심리 이후일수 있다. K는 직장내에서 자신의 라이벌인 부지점장이 자신이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어째서인지 그가 찾아가거나,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은 K가 소송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법원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등을하며 어떻게하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 제시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K가 무슨 이유에서 소송을 당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아니 관심도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무죄는 안 된다고 말한다.

 

'법원의 최종 판결은 공개되지 않고, 판사들조차 그것을 볼 수 없어서, 옛날의 판례에 대해서는 전설로만 전해 올 뿐이죠.'

 

 K는 자신을 위해 변론서를 작성할 생각만 할 뿐 완성을 하지 않는 변호사와의 계약을 해약한다. 그리고 31세 생일, "개같군!" 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형을 당한다.

 

 

 사실 줄거리를 쭉 나열하긴 했지만 이 책은 완성작이 아니다. 책의 말미에는 미완성 원고들도 있다. 그래도 전개하는 와중에 내용이 뚝하고 끊겨 버리는 '성'에 비하면 그럴 듯한(?) 결말도 있다.

 

3. 마치며

 

 서론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 책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달려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무엇이 옳은 해석인가가 중요 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인 독자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가 당연히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에서 인간다움을 느꼈다. 최초 이유도 모른 채, 소송을 당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방에 구속되어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K는 자신에게 가해진 사법권력의 강압적인 부당함에 분노하고 최초의 심리에서는 저항하며, 자신이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저항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자신의 무죄와 법원의 부정함을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이 지은 죄로 인해 감시인들을 매질하는 형리에게 뇌물을 주어가며 감시인들을 구하려했다. (비록 K의 말대로 고소는 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는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는 억압하는 시스템(법원)을 부정하면서도 자신과 비등하거나 조금이라도 우월해 보이는 상대에서는 자신을 억압하는 시스템(법원)의 권위를 인정하며 자신이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을 숨기려했다. 사실 그 권위를 가장 인정한 것은 K 그 자신이었던 것 같다. 그는 법원을 부정하려하는 척했지만 계속 이끌려 다녔으며 어떻게든 소송을 끝내기 위해 이 방법 저 방법을 쓰다 결국에는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한 채 무력하게 처형당하고 만다.

 

 이제 여영 승진기회 따위는 놓쳐버리고 형리에게 매질을 당하고 기계처럼 소리를 지르는 감시인과 잘나가는 은행원에서 제대로 된 업무로를 볼 수 없을 지경으로 몰락해가는 K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자신은 신념을 가지고 오롯이 스스로 존재한다고 믿지만 거대한 무리에서 내쳐지는 순간 으깨지고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도대체 너는 소송에 져도 좋단 말이냐? 그렇게 되면 어덯게 되는지 알고 있어? 그렇게 되면 너는 그냥 지워져버리는 거야.'

 

 '전에는 언제나 떳떳하게 자기 이름을 말할 수 있었지만, K는 언제부터인지 그 이름이 부담스러웠다.'

 

 

※ 카프카의 다른 소설들

 

[독서 노트/고전] - 미완의 걸작 소설 성 - 프란츠 카프카

 

미완의 걸작 소설 성 - 프란츠 카프카

1. 들어가며 가끔 천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어떤 모습이 보일까라는 궁금증이 든다. 사람마다 그 차이가 적든 많든 서로 같은 물건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떠올리니 당연히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겠지만 왠지..

poorrichard.tistory.com

[독서 노트/소설] - 변신 - 프란츠 카프카

 

변신 - 프란츠 카프카

1. 줄거리 어느 날, 불안한 꿈을 꾸며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의 몸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이야기의 시작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전개가 이어지며 작중..

poorrichard.tistory.com

반응형
반응형

1. 들어가며

 

 사르트르와 함께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이다. 카뮈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유명한 책이기도 하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 책에 대한 감성도 섰을 텐데, 요 근래 그 동안의 번역이 잘 못 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새로운 번역본으로 출간도 되면서 한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2. 줄거리

 

 이야기는 뫼르소의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뫼르소의 반응은 무척이나 담담하다. 아니 어머니의 죽음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얼이 빠진 듯 멍해보이기도 한다. 그는 사람들의 동정과 배웅을 받으며 어머니가 머물고 있던 양로원으로 간다.

 

 양로원의 원장을 만나고, 그곳에서 어머니의 지인을 만나고 장례를 치른다. 양로원 원장은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뫼르소에게 이것저것 권하지만 뫼르소는 따르지 않는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뫼르소에게 어머니의 죽음이란 그저 하나의 특이한 사건일 뿐인 것 같았다.

 

서로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지만 마치 지난밤이 우리들의 친밀감을 두텁게 만든 것 같았다.

 

아름다운 하루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야외에 나가 본 일이 없었다. 엄마 일만 아니었으면 산책하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인정상의 문제거든요.

 

 장례식이 끝나고 뫼르소는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는 바다가에서 전에 함께 일한 적이있던 마리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

 

나는 일요일이 다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처럼 일터에 복귀한 뫼르소를 사장은 친절히 대해줬다. 그는 살갑게 어머니의 나이를 묻지만 뫼르소는 제대로 대답을하지 못한다.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보다 그를 더 기분 나쁘게 한 것은 저녁에 흠뻑 젖은 채 걸려있는 회전식 수건이었다.

 

 퇴근 후, 집으로 향하던 그는 어둑한 층계에서 스패니얼 개와 함께사는 살라마노 영감과 만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레몽 생테스라는 남자를 만난다. 살라마노 영감은 다른 사람들엑 '불쌍한 사람' 취급을 당하는 남자이고 레몽은 다른 이들에게 '경멸'을 당하는 부류였다. 두 사람들 주변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뫼르소는 레몽의 치정 이야기를 듣는다. 뫼르소는 레몽을 대신 해 정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그와 친구가 된다.

 

 일주일이 지나고, 뫼르소는 마리와 만난다. 그리고 저녁 레몽이 정부를 폭행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호되게 당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 앞이라 당당하려 했지만 무척 비굴한 모습이었다. 후에 레몽은 뫼르소에게 그의 정부가 그에게 '버릇없이 굴었다.'라고 경찰에 증언해 줄 것을 요청했고 뫼르소는 그것을 받아 들였다.

 

 그날 저녁 살라마노 영감은 그의 유일한 동반자였던 개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렸다.뫼르소는 그에게 동물보호소에 찾아가라는 충고를 해준다.

 

엄마 생각이 났지만 이튿날 아침에 일ㅇ찍 일어나야 했고 배도 별로고프지 않아 저녁도 굶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레몽이 회사로 전화를 걸어 뫼르소와 여자친구를 친구의 별장에 초대했다. 그리고 아랍인이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장이 파리 출장소에 갈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한다.

 

사장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 생활을 바꿔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저녁에 마리가 뫼르소에게 자신과 결혼 할 생각이 있냐라는 질문에 '그녀가 원한다면'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 살라마노 영감을 만나 그의 인생사와 하소연을 듣는다.

 

 일요일, 레몽과 만나 마리와 함께 그의 친구 마송의 별장으로 간다. 그리고 레몽을 미행하고 있다는 아랍인과 마주친다. 별장 앞 바다에서 물놀이를 즐긴다. 점심을 먹고 바닷가를 거닐던 중 아랍인들과 마주쳐 싸움이 일어난다. 레몽은 여기서 칼에 상처를 입는다. 분에 찬 레몽은 다시 바닷가를 나가고 아랍인과 또 조우한다. 레몽이 총을 쏘려하지만 제지당하고 총을 뫼르소에게 맡긴다. 아랍인들은 도망간다.

 

 다시 별장 앞으로 돌아오지만, 뫼르소는 홀로 바닷가로 향한다. 다시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뫼르소는 칼을 들고 자신을 위협하는 아랍인을 쏜다.

 

 하지만 한 걸음을, 다만 한 걸음을 옮겼을 뿐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칼을 뽑아 태양빛에 반짝이며 내게 겨누었다. 강철 위에서 빛이 반짝 튀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내 이마를 쑤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고 한낮의 균형, 행복을 느끼던 바닷가의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 총알은 보이지도 않게 깊이 박혔다. 마치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 같았다.

 

 여기까지가 1부의 내용이다. 2부는 체포 된 후 심문과 재판 그리고 그 사형으로 이어진다. 2부에서도 그의 특이한 모습들이 드러난다.

 

3. 마치며

 

 2부 줄거리는 뭉텅 짤라내고 마무리로 넘어와 버렸다.

 

 1부의 모습과 2부의 모습은 상당히 차이가 난다. 1부에서는 뫼르소가 굉장히 이상한처럼 여겨진다. 외부자극에는 철저히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는 듯 하면서도 그러나 자신의 내적 욕망은 충실히 따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시 여기는 관습 같은것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인지 편견도 없어 남들이 기피하는 인물들까지 자연스럽게 받아 들인다. 대체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2부에서는 그를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상해 보인다. 그를 재판하는 사람들은 1부에서 독자들이 공감 했을 만한 내용들을 비판하며 뫼르소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런데 그 사형을 선고하는 죄목은 아랍인을 살해한 것에 대한 것이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무언가 이상하다.

 

 검사는 뫼르소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념을 말하며 뫼르소가 자신의 인생을 부정한다고 말한다.

 

그게 그의 신념이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의심한다면 그의 삶이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했다.

"당신은 내 인생이 무의미해지길 바랍니까?"

 

 간수와 기자들은 자기내들끼리 시끄럽게 떠들고 기자들은 뫼르소에게 일이 잘 풀리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의 기사는 다르지만.

 

"우리들은 당신 사건을 좀 부풀려서 썼어요. 여름철은 신문사에겐 불황기거든요. 기삿거리가 될 만한 건 당신 사건과 직계존속살해밖에 없었어요."

 

"도대체 피고는 어머니를 장례 치른 것으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죄로 기소 된 것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나는 이자가 냉혹한 범죄자의 마음을 갖고 자기 어머니를 묻었기 때문에 이 사람의 유죄 또한 주장하는 것입니다."

 

 뫼르소는 마치 구경꾼처럼 자신의 재판을 바라보다. 사형수가 된 이후로도 자신의 삶에 온전히 집중한다. 그에게 있어서는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왜냐하면 삶의 끝에는 모두 죽음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깨닫는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보고 싶어졌던 게 틀림없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 마치 형제 같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반응형
반응형

 

 

1. 들어가며

 

 가끔 천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어떤 모습이 보일까라는 궁금증이 든다. 사람마다 그 차이가 적든 많든 서로 같은 물건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떠올리니 당연히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겠지만 왠지 그들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특별 할 것만 같다.

 

 그 중에서 가장 궁금한 작가는 이상과 카프카이다. 두 작가가 쓴 글들을 보면 대체 세상이 어떻게 보이길래 이런 글을 쓴 걸까 라고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성은 카프카의 장편 3부작 가운데 하나이다. 안타깝게도 완성이 되지 않은 작품이다. 다음 장면으로 들어가는 묘사 도중 뚝 끊어져버린다. 책을 읽고 나니 다음 장면이 궁금해 머리카락이 간질간질 거리는 기분이다.

 

2. 줄거리

 

 굉장히 난해한 책이다. 사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과연 이걸 줄거리를 정리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과연 맞게 줄거리를 정리 하긴 하는 것일까? 라는 무력감이 든다.

 

 소설은 K가 베스트베스트 백작의 성에 측량사로 초빙되어 밤늦게 마을 여관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피로한 상태에서 숙박을 청하는 K에게 어떤 남자가 굉장히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면 뭔가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K는 외지인으로써 마을에서 굉장히 배척 받는다. 그리고 K는 그런 원주민들의 태도에 진절머리를 치며 성으로 들어가길 원하지만 어째서인지 성에는 전혀 닿을 수 없고 자신의 직속 관리자인 클람에게 직접 접근하려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는데.

 

3. 마무리

 

 줄거리 파트 서두에서 언급했다시피 책이 굉장히 난해하다. 인물들 간의 대화도 뭔가 핀트가 어긋나 있고 시간과 공간 역시 뒤죽박죽이다. 마치 문장이 휙휙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이야기의 미로 속에 처박혀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 라는 의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 집중해서 읽어도 마찬가지일 건 같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흥미롭다. 마치 굉장히 폐쇄적이고 뭔가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집단의 속살을 한 꺼풀 한 꺼풀 파헤쳐가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게 별로 기분이 좋다는 건 아니다. K를 따라 가다보면 그리고 그가 변화되는 것을 보면 나 역시도 무척이나 피곤함이 느껴졌다. 도무지 실체라는 것을 잡을 수 없다.

 

 내가 직장인이라 그런지 등장인물들의 행위가 마치 혹시 모르는 일을 대비해 쌓아두는 자료 같이 느껴지고 누가 제대로 보기나 할지 의심스러운 알 수 없는 윗사람들 개별 입맞에 맞춰 수 많은 버전으로 수정이 가해지는 보고자료처럼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K는 버그이다. 절대로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아니 실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집단에서 만들어낸 버그이다. 프로그래머의 손에 의해 탄생했지만 필요치 않은 버그, 사실 프로그램에 버그가 있더라도 눈에 띄지 않고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중 아무런 오류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K는 너무 눈에 띈다. 자칭 클람의 여자인 프리다를 훔치고 마을 사람들의 충고에 따르지 않고 접근하지 말라는 바르가스 집안에 접근하고 관리들의 권위를 무시하기까지 한다.

 

 K전에는 올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내려진 형벌은? 사회적 매장이었다. 마을 내 꽤나 권위 있던 그녀의 집안이 아무런 명령서나 손짓도 발짓도 없이 소위 암묵적 합의에 의해 순식간에 작살이 나버린다.

 

당신은 성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을 사람도 아니에요.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신이 그 무엇이긴 해요. 즉 당신은 이방인이고 불필요한 사람이며 어딜 가나 방해가 되는 사람이에요.

 

경계에 관한 사소한 다툼은 우리 스스로 조정하지요. 그러니 우리에게 측량사가 왜 필요 하겠습니까?

 

실수 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 관청의 근무 원칙입니다.

 

 그리고 대체 클람은 누구일까? 그가 실존 하긴 하는 걸까? 때때로 그는 존재가 의문스러운 신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신의 권위를 이용하는 관리들은 신자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한다는 핑계로 권력을 행사하고 그들의 말에 의문을 가지거나 반기를 드는 이들은 신의 이름을 빌어 파문에 처한다!

 

아무튼 프리다는 클람의 애인이다. 클람을 만족시키는데 어찌 다른 사람들이라고 경탄하게 만들지 못 하겠는가.

 

클람의 이름을 사용하지 마세요.‘나 다른식으로 부르지, 제발 이름은 부르지 마세요.

 

부연해서 말하자면 사실 이 조서를 통해서만 드는 클람과 공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거예요.

 

클람은 왜 어떤 사람을 보는 걸 못 견뎌 할까요? 하긴 도저히 시험해 볼 도리가 없으니 증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요.

 책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이 시선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상황, 혹은 장소의 변동에 따라 사람들의 외양과 성격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알아 챌 수 있다. 프리다가 K를 따라간 후 그녀의 자리를 차지한 페피의 변화 그리고 프리다가 돌아 온 후의 변화, K를 따르던 조수의 모습, 관청에서의 바르나스와 집에서의 바르나스까지 재미있다. 마치 인간의 페르소나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쉽다. 뭔가 점차 실체에 접근하려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순간 책이 뚝하고 끊겨 버리니 말이다.

반응형
반응형

 

1. 들어가며

 

 얼마 전 있었던 노벨상 수상식에 선약이 있다며 참석하지 않았던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인 밥 딜런을 보며 예전 노벨상 수상을 거부했던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가 떠올랐다.

 

 그는 왜 노벨상이라는 어마어마한 명예를 거절 했을까? 사르트르는 간단히 '제도화된 작가가 되기를 거부한다' 라는 짧지만 쿨한 답변을 남겼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무수한 이유들을 들이 밀었다. 그중 하나가 그가 '실존주의' 철학자 였기 때문이다라는 것인데. 대체 그 실존주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구토' 라는 짧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설 형식을 지니고 있는 이 책을 통해서나마 일부 느낄 수 있었다.

 

2. 책의 내용

 

 주인공인 '앙트완 로카텡' 은 연금을 받으며 무직으로 혹은 역사가나 여행가라는 이름으로 부빌 도서관에서 시간을 주로 보내며 '롤르봉' 씨에 관한 책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30살의 젊은 남자이다. 이 남자는 때로 여관 주인과 몸을 섞기도 하지만 별달리 욕망이나 야심 따위를 보이지 않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그는 과거에 사랑했던 '안니'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와는 헤어진 상태이다. (뭔가 익숙한 느낌의 주인공이다. 마치 하루키 소설속에 흔히 등장 할 법한 남자 주인공이랄까?)

 

 그는 갑자기 어느 날 부터인가 구역질을 하곤 했는데.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하루의 일 들을 기록하며 소설이 시작된다.

 

 그는 부빌에서 생활 하며 그 곳에서 살아가는 부르주아들의 생활을 비웃으며 기존 질서와 관습을 벗어나기 위한 자유를 갈망한다. 그는 바닷가의 조약돌, 심지어 문 손잡이에서 까지 구토감을 느끼며 그것을 상세히 기술하며 자신의 구토감의 원인을 찾아 나선다. 그러던 중 오래전 헤어졌던 연인인 유일하게 진정으로 사랑 했을지도 모를 안니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 옛 연인과의 재회를 앞두고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다 마로니에 나무 뿌리를 바라보다 직감적으로 자신의 구토감의 원인을 찾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어떤 사물의 실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가 부여한 뿌리라는 본질이 아닌 진정으로 고유한 실존으로써 존재하는 뿌리를 느끼고는 그것과 자신이 아무런 연관성이 없이 동떨어진 체 존재했다고 느끼며 당혹감을 드러낸다.

 

 옛 연인과의 재회는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안니는 이미 타성에 젖아 예전에 아름다운 모습과 신비로운 모습을 잃어버렸고 부빌로 다시 돌아온 주인공은 부빌을 떠나기를 결심한다. 그리고 부빌을 떠돌며 자신과 관계 되었던 사람들 한명 한명과 만나 작별 인사를 건낸다. 그리고 역사 연구도 포기하고 절망찬 채 떠나려 할때 재즈음악이 주는 감동 속에서 소설이 구원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책은 끝이 난다.

 

3. 마무리

 

 사실 리뷰를 쓰고 있는 와중에도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를 하고 쓰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사르트르가 주장했던 실존주의를 간단히 표현하자면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 그리고 인간은 다른 사물들처럼 본질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으로써 존재한다.' 라고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르트르 이전의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의 존재의 목적 혹은 본질을 신에게서 찾았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책에서 그저 세상에 내던저진 것으로 표현하며 인간이 실존한다고 말한다..

 

나는 차라리...... 나에게 주어진, '까닭 없이' 주어진 이 인생 앞에 놀랄 뿐이다.

 

 그리고 그가 했던 또 다른 유명한 말인 '타인은 지옥이다.(HELL IS OTHER PEOPLE)' 라는 말이 책을 읽다보면 점점 이해가 된다.

 

 나는 책임감에 짓눌렸다. 눈을 부릅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안니가 그 순간에 만들어낸 의식의 한복판에서 몸부림칠 뿐이었다. 결국 나는 기다란 팔로 그 의식을 거무줄처럼 찢어 버렸고, 그럴 때마다 안니는 나를 증오했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실존보다는 본질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처음 만나면 나이가 어릴 때는 학교를 어디 다니는지 나이가 들어서는 직장이 어디인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입은 옷, 그 사람이 타고 다니는 차, 심지어 그 사람이 사는 동네를(혹은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통해서 한 사람을 편하게 평가하고 규정하려든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실존에 대한 고민을 점점하지 않는 탓인지 아니면 마케팅이 발달하면서 자기를 대신 표현 혹은 규정하기 편한 브랜드 같은 것이 세상에 넘쳐 나서인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끔 이런 것들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요즘 주말 내내 우리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서는 이유도 많은 사람들이 한 인간의 실존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채 못한 채 주변에서 만들어 놓은 본질만 바라본 결과 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다. 공산주의와 휴머니즘에 대한 생각 같은 것도 들어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 하다보면 왜 사르트르가 노벨상의 수상을 거부했는지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