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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주, 아니 거의 대부분 자신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날 확률을 과소 평가하고 행운이 찾아 올 확률을 과대 평가하고는 한다.

 

 그래서 벼락 맞을 확률보다 당첨 확률이 낮다는 로또는 매주 사면서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확률로 사고가 날 수 있는 자동차는 거의 매일 타고 다닌다. (내 이야기다.)

 

 물론 이런 걸 일일이 따지고 살면 거의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발생 확률이 0이 아니라는 것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야기 하려는 책은 확률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소설 책을 읽는 재미는 발생 확률이 0%가 아닌 일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현실은 소설 보다 더 하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들어가며

 

 이 책은 자본과 인간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근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민간에 전해지는 오래 된 설화 속 저주 같은 RB 바이러스, 인간과 흡사한 로봇, AI 선생님, 인체에 내장하는 ESC, 홀로그램북, 화성 관광 등을 통해 사실감을 부여하고 독자의 상상력을 고취시킨다.

 

 의문이 가득한 소년의 이야기가 한 꺼풀 한꺼풀 벗겨지고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가 끝에 다다랐을 때, 작가가 독자한테 원하는 감정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슬픔? 분노? 두려움? 그것도 아니라면 희망이었을까?

 

줄거리 요약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온몸이 새하얀 백색증을 앓고 있는 소년 마오가 다른 이들과 차단된 채 외딴 숲 속 집에 살고 있다.

 마오는 RB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태어났고 바이러스를 치료하고 살아남기 위해, 타인과 다른 자신의 삶을 수긍한다.

 치료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진솔이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다른 소년 하라를 집으로 데려온다. 

  

책의 줄거리

 

 시대는 근 미래, 마치 인간처럼 행동하는 안드로이드가 흔하고 인간은 달에 호텔을 짓고 화성에 정착할 첫 이주민을 뽑으려 하고 있다.

 

 고층 빌딩 숲이 평범한 시기에 울창한 나무로 둘러 쌓인 깊은 숲 속, 최첨단 설비를 갖춘 집에 온몸이 새하얀 소년이 자신의 메이드 로봇과 함께 단 둘이 살고 있다.

 

 백색증을 앓고 있는 소년의 이름은 마오.

 

 이제 16살이 된 이 알비노 소년은 달에 호텔 셀레나를 건설하고 운영에 성공한 거대한 그룹 회장의 유일한 손자이다.

마오는 연약하다. 햇볕을 받으면 알레르기 반응이 강하게 일어나고 먼지와 스트레스, 각종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소년을 이렇게 연약하게 만든 근원은 소년의 부모가 사업을 위해 멸종상태에서 부활시킨 ‘레인보우 버드’가 가지고 있던 희귀한 바이러스, RB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서다.

 

 그 바이러스로 인해 소년의 부모 역시 모두 사망하지만 태아 상태에서 감염된 마오는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소년의 할아버지 회장은 온갖 변이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치료하고 소년을 살리기 위해, 소년을 깊은 숲 속의 집에서 외부와 차단 한 채 살아가게 한다.

 

 그리고 치료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마오는 자신과 같이 RB바이러스에 감염되었지만 생존한 자신보다 2살 많은 하라를 만나게 된다.

 

 평생 사람이라고는 자신을 어렸을 때부터 돌봐 준 진솔을 제외하고 처음 다른 인간을 만나는 마오는 자기 삶에 대한 진실과 마주한다.

 

마치며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대표자 혹은 우리의 의견을 대신할 사람을 투표를 통해 뽑고 있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 체계는 분명 민주주의지만 우리의 실 생활에서 지배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돈, 그러니까 물질적 자본이 가지는 힘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단순히 돈이 많은 것으로는 남들에게 존경을 받거나 유명해지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을 졸부라고 부르며 비꼬기도 했다.

 

 그렇지만 요즘은 좀 많이 달라졌다.

 

 돈이 많다면, 그 돈을 쓰는 것을 온갖 SNS 등에 올리며 자랑하는 행위가 유명세를 사고 그 유명세가 명성 또는 영향력을 가지는 시대다.

 

 이렇게 돈으로 해결 가능한 것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적절한 보상이 따른다면 감옥에 가는 것도, 그러니까 자유가 부당하게 억압받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문조사에 응답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도덕관념은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변해왔다.

 

 인류 최고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도에 찬성했고, 여성 참정권을 부정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라는 세종대왕은 어머니가 노비이면 그 자식도 노비가 되는 노비종모법을 시행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사람들은 그런 시대에 영향을 받아 자라고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먼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까.

 

 돈은 이미 많은 것을 정당화시켜주고 있다.

 

 소설 속에서 인간이 멸종시킨 다시 부활시키는 것을 정당화한 것은 사업(=돈)을 위해서였다. 화성 첫 이주자 그룹에게는 그 이면에 무슨 저의가 숨겨져 알려주지 않고 살 곳과 지원금을 준다.

 

 막대한 기부금으로 사 온 아이의 인생 전부를 저당 잡고, 삶을 이어준다는 명목과 교묘한 속임수로 자신에게 일어난 부당한 일을 스스로 정당화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강압적으로 실험체로 사용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에는 나치, 일본에는 731부대가 있었고, 미국에서는 흑인들을 대상으로 한 터스키기 실험이 있었다.

 

 아마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이 일을 말도 안 되는 잔혹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일이 피해자에게 평생을 써도 다 못 쓸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 벌인 일이라면?

 

 솔직히 말해서 내게 책과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상상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아니라 내 후대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실제로 한 부자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어마어마 한 돈을 소비한다.

 그 방법으로 젊은 자기 아들의 피를 수혈하는 처방도 받았다고 한다. 과연 이 방법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굳이 자기 자식뿐만 아니라 자기 몸에 맞기만 하다면 사람을 사서 하지 않을 건 또 뭐란 말인가?

 

 이렇게 한 단계씩 그 수위를 올려 나간다면 개인을 위한 인간 모르모트를 상상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과연 우리는 아니 세상은 그것을 멈출 수 있을까?

 

 
테스터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장시켜 줄 허블 청소년 시리즈의 첫 책은 30만 명의 독자들이 사랑한 베스트셀러 『페인트』를 쓴 이희영 작가의 장편소설 『테스터』이다. ‘누가 이토록 연약한 소년을 숲속에 홀로 방치해 두었을까’ 하는 미스테리한 질문 하나로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 작품은 장대하고도 아름다운 디스토피아 SF이다. 그와 동시에 이 소설은 세상과 유리된 채 불가항력에 이끌려 살아가는 먼지 같은 존재들을 위한 곡진한 진혼곡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멸종된 오방새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인류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함께 복원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모두 죽었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어린아이가 있다. 백색 소년 마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 평생 숲속 집에 갇혀 메이드 로봇과 함께 산 이 외로운 소년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온다. 바로 RB 바이러스의 또 다른 생존자인 하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소년을 둘러싼 미스테리한 질문들을 파헤친 끝에 마오가 가닿은 반전은 두 소년의 위치를 송두리째 뒤흔든다. 두 소년이 드러내는 슬프고 충격적인 진실은 독자들이 작품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도록 한다. 하루아침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소년들에게 과연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정교하고, 아름답고, 꿈결 같고, 왠지 슬프다. 매력적이고 여운이 긴 작품이다.” -장강명(소설가) “《페인트》와 《나나》를 잇는 또 하나의 명작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한다. 이희영 작가가 빚어낸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디스토피아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정여울(문학평론가)
저자
이희영
출판
허블
출판일
20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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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력은 저주일 수 있다."

 

 파친코를 읽을 때도 느낀거지만 참 첫문장으로 책 전체를 잘 녹여내는 작가인 것 같다.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무엇을 떠올릴까? 신분과 인종, 종교 같은 출신 배경에 상관없이 가진바 능력에 따라서 성공 할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떠올리지 않는가?

 

 책은 한국계 미국인들을 주요 인물로 삼고 그들의 사회를 주 배경으로 묘사한다.

 케이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녀 역시 이민자 2세대이다. 그녀는 프린스턴대에 들어 갈 정도로 똑똑하고 능력있으며 대책이 없을 정도로 자유분방 하지만 자신의 이상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과감하게 쫓을 줄도 아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에게 왜 능력은 저주가 되었을까?

 그녀는 분명 주류 사회에 편입이 될 준비가 된 사람처럼 보인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보기엔 터무니 없어보이는 자신감 때문에 졸업 후 비록 취업에는 실패하지만 로스쿨에도 진학 준비 중이었다. 인간 관계도 좋은 편이다.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는 제이도 있고 부모님이 아니지만 그녀라는 존재를 지지하는 사빈 같은 사람도 있다.

 

 비록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사빈의 백화점에서 종업원 일을 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는 인정 받지 못하지만 케이시의 동생은 그녀에게 깊은 애정과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케이시가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버지와의 다툼 끝에 집에서 쫓겨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이후의 생활은 그야 말로 우당탕탕 좌충우돌이다.

 동거하던 남자친구에게 갔더니 바람을 피는 장면을 목격을 하고, 제대로 된 수입원은 없지만 신용카드로 빚을 진다.

 금방이라도 나가 떨어질 것처럼 비틀비틀거리며 삶을 살아간다.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겨낸다. 그러나 결국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가난한 이민자의 딸.

 

 가난하다는 것, 이민자라는 것, 딸이라는 것.

 이것들은 케이스의 뛰어난 능력을 저주로 만든다. 이것들은 여러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케이시에게 번듯한 삶과 성공을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하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실패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만약 그녀가 그녀의 친구처럼 프린스턴을 졸업 후 부모의 도움을 받아 이탈리아로 대학원을 갈 정도로 집안이 여유로웠다면?

 테드나 제이처럼 남자이거나 이민자가 아니었다면?

 그들의 삶이 케이시의 것만큼 힘들지 않았다고 단정 할 수는 없지만 저런 조건들이 있었다면 그녀의 방황이 조금은 덜 힘들지는 않았을까?

 물론 그녀의 삶을 가장 힘들게 만든건 어쩌면 그녀 자신이었을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것이다.

 번듯하고 성공한 삶을 살아야한다는 강박관념과 그런것과 상관없이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은 남들이 보기에 편하고 안정적인 길을 놔두고 몇번이나 긴 방황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 였으니 말이다.

 사실 읽고 있는 동안 나도 몇번이고 그녀의 선택에 의문을 가졌다. 조건없이 학비 등을 대주겠다는 사빈의 도움을 거절하고 버는 돈 보다 많은 돈을 소비하고는 등의 행동을 말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녀의 의지와 그녀의 꿈에 대한 소망이 소비로 나타난다는 것을 이해한 뒤로는 나의 기준으로 간단하게 그녀의 선택을 평가하기는 어려웠다.

 

 책은 케이시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지 않는다.

 그녀 외에도 그녀의 어머니 등 많은 이민자들의 삶을 조명한다. 각자 비슷하면서도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이었기에 듣는 동안 지루하지 않았다.

 같은 문화권에서 태어나 유사한 사회공동체에서 삶을 살아왔음으로, 외부에서는 편의상 '한국계 미국인' 같은 특정한 틀로 묶어 특징 같은 것을 부여하지만, 그건 지극히 편의주의적인 사고 방식일지 모른다. 사람은 백인백색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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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이는 건조한 호주 남부의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추리 소설이다.

 

 책을 읽다보면 가끔씩, 꼭 이렇게 번역해야 하나? 라는 의문과 함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구문들이 있지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메마른 대지가 버스럭거리고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건조한 문체는 소설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예전에 우리나라 신안에 있었던 염전노예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작가는 수 년째, 터를 잡고 술집을 운영하지만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아 여전히 외지인 취급을 하는 지극히 폐쇄적이고 보이지 않는 규율과 힘의 균형이 존재하는 시골마을에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을 절묘하게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야기의 크게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어린 시절,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 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키와라 마을을 강제로 떠나게 되었던 에런 포크는 친구 루크의 장례식을 위해 가뭄으로 고통 받고 있는 마을로 되돌아온다.

 

 루크는 자신의 부인과 아들을 총으로 쏴죽이고 자살을 한 것으로 잠정적으로 결론이 난 상황이었다. 루크의 아버지는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가 가지는 의심을 지우기 위해 어린시절 루크의 절친이자 경찰관이기도 한 포크를 마을로 불러들인다.

 

 포크는 키와라 마을로 돌아오는 것을 내켜하지 않지만 루크와 공유하고 있는 은밀한 비밀의 진실을 일부알고 있는 루크의 아버지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마을에 머물며 루크 일가족 살해 사건의 진실을 파해치기 위해 마을에 머물며 사건을 조사한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사건이 존재한다. 어린 포크와 그의 아버지를 오랜 시간 동안 이룩한 모든 것을 두고 떠나게 한 사건인 엘리의 사망사건이다.

 

 엘리 역시 어린 포크의 친구였다. 둘 사이에 몽글몽글 사랑의 감정이 피어나고, 남들이 모르는 하나의 비밀을 공유했을 때, 엘리는 마을 강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녀의 바지에서는 포크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발견되었고 포크는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다.

 

 당시 강가에서 혼자 낚시를 하고 있던 포크는 꼼짝없이 용의자로 의심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루크와의 비밀 협약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경찰 수사관의 용의선상에서 벗어난 것일 뿐, 비밀은 또 다른 비밀과 의심을 낳으며 서로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이야기는 촘촘한 그물처럼 잘 짜여져 있다.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현재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며 독자를 서서히 진실에 접근 시킨다. 적절한 타이밍을 놓쳐버렸다는 이유로 진실을 말하지 않은 이들은 비밀을 더 크게 만들고 사건을 더 복잡한 미궁에 빠트린 채 사람들을 서로 의심하게 만든다.

 

 책은 몇가지 다른 소설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과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였다. '데미안'의 초반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 허세를 위해 했던 거짓말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뒤죽박죽 되는 경험을 한다. 포크와 루크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른 목적이긴 했지만 그들이 한 거짓말은 오랫동안 그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객관적 진실이 아닌 소문과 편견이 지배하는 마을과 그레천이 토끼 사냥을 위해 총을 쏘는 모습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책은 곳곳에서 비밀이 나온다. 그리고 누구나 비밀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뭄에 말라버려 드러난 강바닥처럼 비밀이 한꺼풀 한꺼풀 벗겨지고 진실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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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가끔 천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어떤 모습이 보일까라는 궁금증이 든다. 사람마다 그 차이가 적든 많든 서로 같은 물건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떠올리니 당연히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겠지만 왠지 그들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특별 할 것만 같다.

 

 그 중에서 가장 궁금한 작가는 이상과 카프카이다. 두 작가가 쓴 글들을 보면 대체 세상이 어떻게 보이길래 이런 글을 쓴 걸까 라고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성은 카프카의 장편 3부작 가운데 하나이다. 안타깝게도 완성이 되지 않은 작품이다. 다음 장면으로 들어가는 묘사 도중 뚝 끊어져버린다. 책을 읽고 나니 다음 장면이 궁금해 머리카락이 간질간질 거리는 기분이다.

 

2. 줄거리

 

 굉장히 난해한 책이다. 사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과연 이걸 줄거리를 정리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과연 맞게 줄거리를 정리 하긴 하는 것일까? 라는 무력감이 든다.

 

 소설은 K가 베스트베스트 백작의 성에 측량사로 초빙되어 밤늦게 마을 여관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피로한 상태에서 숙박을 청하는 K에게 어떤 남자가 굉장히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면 뭔가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K는 외지인으로써 마을에서 굉장히 배척 받는다. 그리고 K는 그런 원주민들의 태도에 진절머리를 치며 성으로 들어가길 원하지만 어째서인지 성에는 전혀 닿을 수 없고 자신의 직속 관리자인 클람에게 직접 접근하려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는데.

 

3. 마무리

 

 줄거리 파트 서두에서 언급했다시피 책이 굉장히 난해하다. 인물들 간의 대화도 뭔가 핀트가 어긋나 있고 시간과 공간 역시 뒤죽박죽이다. 마치 문장이 휙휙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이야기의 미로 속에 처박혀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 라는 의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 집중해서 읽어도 마찬가지일 건 같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흥미롭다. 마치 굉장히 폐쇄적이고 뭔가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집단의 속살을 한 꺼풀 한 꺼풀 파헤쳐가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게 별로 기분이 좋다는 건 아니다. K를 따라 가다보면 그리고 그가 변화되는 것을 보면 나 역시도 무척이나 피곤함이 느껴졌다. 도무지 실체라는 것을 잡을 수 없다.

 

 내가 직장인이라 그런지 등장인물들의 행위가 마치 혹시 모르는 일을 대비해 쌓아두는 자료 같이 느껴지고 누가 제대로 보기나 할지 의심스러운 알 수 없는 윗사람들 개별 입맞에 맞춰 수 많은 버전으로 수정이 가해지는 보고자료처럼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K는 버그이다. 절대로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아니 실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집단에서 만들어낸 버그이다. 프로그래머의 손에 의해 탄생했지만 필요치 않은 버그, 사실 프로그램에 버그가 있더라도 눈에 띄지 않고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중 아무런 오류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K는 너무 눈에 띈다. 자칭 클람의 여자인 프리다를 훔치고 마을 사람들의 충고에 따르지 않고 접근하지 말라는 바르가스 집안에 접근하고 관리들의 권위를 무시하기까지 한다.

 

 K전에는 올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내려진 형벌은? 사회적 매장이었다. 마을 내 꽤나 권위 있던 그녀의 집안이 아무런 명령서나 손짓도 발짓도 없이 소위 암묵적 합의에 의해 순식간에 작살이 나버린다.

 

당신은 성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을 사람도 아니에요.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신이 그 무엇이긴 해요. 즉 당신은 이방인이고 불필요한 사람이며 어딜 가나 방해가 되는 사람이에요.

 

경계에 관한 사소한 다툼은 우리 스스로 조정하지요. 그러니 우리에게 측량사가 왜 필요 하겠습니까?

 

실수 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 관청의 근무 원칙입니다.

 

 그리고 대체 클람은 누구일까? 그가 실존 하긴 하는 걸까? 때때로 그는 존재가 의문스러운 신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신의 권위를 이용하는 관리들은 신자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한다는 핑계로 권력을 행사하고 그들의 말에 의문을 가지거나 반기를 드는 이들은 신의 이름을 빌어 파문에 처한다!

 

아무튼 프리다는 클람의 애인이다. 클람을 만족시키는데 어찌 다른 사람들이라고 경탄하게 만들지 못 하겠는가.

 

클람의 이름을 사용하지 마세요.‘나 다른식으로 부르지, 제발 이름은 부르지 마세요.

 

부연해서 말하자면 사실 이 조서를 통해서만 드는 클람과 공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거예요.

 

클람은 왜 어떤 사람을 보는 걸 못 견뎌 할까요? 하긴 도저히 시험해 볼 도리가 없으니 증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요.

 책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이 시선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상황, 혹은 장소의 변동에 따라 사람들의 외양과 성격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알아 챌 수 있다. 프리다가 K를 따라간 후 그녀의 자리를 차지한 페피의 변화 그리고 프리다가 돌아 온 후의 변화, K를 따르던 조수의 모습, 관청에서의 바르나스와 집에서의 바르나스까지 재미있다. 마치 인간의 페르소나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쉽다. 뭔가 점차 실체에 접근하려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순간 책이 뚝하고 끊겨 버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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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해변의 카프카는 참 오래된 책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이다. 근래 나왔던 하루키의 최신작인 '기사단장 죽이기' 를 읽고 애매가 끼인 휴가 덕분에 어디 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예전에 좋아하던 책이나 한번 더 꺼내 읽게 되었다.

 

 아마 이 책을 완독 한 것이 올해를 포함해서 4번 째인 것 같다. 처음 읽었던 시절은 고3 때 였고,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그리고 20대 중반에 그리고 올해까지... 이 책을 읽을 때 마다 드는 생각은 참 읽을 때 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때는 못봤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아무튼 책을 4번 읽을 동안 가장 심신이 안정 되어 있을 때가 지금인 것 같다. 다른 시기에는 인생에 쫓기듯 생활 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그런게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 전에 읽을 때에도 나의 느낌을 정리 해두고 싶었지만 정리를 못했었다. 아마 그 때와 지금은 다르겠지만 오래된 숙제를 해 내듯 글을 풀어보고 싶다.

 

2. 책의 내용

 

 책은 크게 두 인물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한명은 다무라 카프카라는 특이한 이름을 지닌 (자신이 지어낸) 15세 소년이고 한명은 나카타라는 노인이다.

 

 다무라는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이었다. 그렇지만 다무라의 어머니는 다무라가 어렸을 적 그의 얼굴 모를 누나와 가출하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다무라는 계속 집에서 지낸다면 자신이 훼손 당할 것을 우려하며 15세 생일에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세' 가 되기를 결심하며 집에서 가출을 결행한다. 다무라는 가출을 하고 우연히 행선지로 정한 다마쓰카에서 자신의 누이일지도 모를 여인과 자신의 어머니일지도 모를 인물을 마주친다.

 

 나카타는 특이한 노인이다. 2차 세계대전 전에 태어난 이 노인은 다무라와 마찬가지로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에는 굉장히 똑똑했으나 모종의 사건 이후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소위 말해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이 노인은 고양이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림자가 남들보다 옅다는 특징이 있다.

 

 소설은 다무라가 가출 이 후  다카마쓰에 있는 고무라 도서관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과 나카타가 다무라를 행로를 따라 오는 여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현실과 꿈, 이데아를 넘나들며 이야기 속에 철학을 곳곳에 숨겨 놓고 독자들이 따라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3. 마무리

 

 책을 보고 있노라면 재미있는 생각이 든다.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 다무라 카프카는 가장 가깝고 사랑 받아야 할 인물인 가족으로부터 어린시절 버림받고 아버지로 부터는 저주를 받는다. 그리고 사에키 역시 첫사랑이 죽은 이후 타인과는 깊은 관계를 가지지 못한다. 나카타는 기억을 잃은 이후 아예 그런 관계에 대한 관념 자체가 사라진듯 하다. 호시노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여인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사회에서 일종의 아웃사이더 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의외로 책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의 도움을 받고 도움이 되어 준다.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세 소년이 되어 홀로 살아남겠다던 다무라에게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 고무라 도서관에서 만나는 인물들 그리고 간접적으로 도와준 것 처럼 보이는 나카타와 호시노까지 타인과 관계를 가지지 안을려고 노력하고 살던 인물이 보이지 않는 관계로 엮이고 서로를 변화시키고 삶을 한단계 더 밀어 올려준다.

 

 책의 주요 등장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사에키씨는 현재가 없고 나카타는 과거가 없다. 둘다 가슴 한쪽이 텅빈 상태이다. 그래서인지 그림자도 남들보다 짧다. 두 사람다 우연 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상실을 겪고 난 후 비어버린 가슴한켠을 메꾸지 못한다. (사에키의 경우 어린 시절 부터 사랑했던 연인을 잃었고 나카타는 조금씩 차오르던 애정이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우발적 폭행으로 훼손 혹은 상실 된 것 같다.)

 

 다무라 역시 어머니와 누이의 상실로 인해 안이 빈 상태였다. 아니 완전히 비었다기 보다는 분노와 증오가 그 자리를 차지 하기 위해 싸우는 상태였다가 더 정확한 표현 일 것 같다. 다무라는 가출 후 거친 세상속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세'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리고 외부의 압력으로 부터 견디기 위해 강력한 벽을 이야기 한다.

 

 그렇지만 이 소년은 누군가로부터 계속 도움을 받는다. 소년을 쫓아 이동하는 나카타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군가로 부터 계속해서 도움을 받는다. 사에키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무라와 관계를 맺으며 그녀 안에 공허한 부분을 일정부분 메워 현재를 되찾고 고무라 도서관에서 조우한 나카타에게는 자신의 과거를 전달 해준다. 다무라를 림보에서 구원해 준 것은 다무라의 가슴 한 켠에 남은 사에키다. 그리고 나카타를 마지막으로 구원해 준 것은 호시노가

아닐까?

 

 우리는 태어난 이후 끊임 없이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태어 남으로써 안락한 자궁을 상실한 이후 성장하고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더 많은 것들 역시 상실 할 가능성은 점점 커져만 갈 것이다. 인간관계란 참 어려운 것 같다. 서로를 보듬어 주기도 하지만 서로를 찌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지독하게 찔린 이들을 한 대 모아놓고 서로가 서로를 보충해주는 곳이 소설에서는 고무라 도서관 일 지도 모르겠다.

 

 소설에서는 호시노가 철학과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매춘부를 하는 학생과 관계를 맺으며 헤겔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하며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서로가 객체이자 주체로써 서로를 투사한다.'

 

 내 생각에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큰 철학이 이것이 아닐 까한다. 결국 자신의 존재를 증명 해 줄 사람은 결국 타인이다. 상실로 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터프한 마음가짐 혹은 높은 벽이 아니라 편견 없는 이해와 관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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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소개

 

 다들 중,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한 번쯤 (비록 완편은 아니지만) 읽어 보았을 김승옥 작가의 단편 소설이다. 내 기억 속에는 수업시간에 이 글에 관해 배우면서도 도통 작가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했던 책이다. 그러면서 책의 내용이 다 실려 있지 않아서 내가 다 이해를 못하는 건가라고도 생각했었다.

 우연한 기회에 소설집을 구할 수가 있어 거기에 실린 단편 소설인 무진기행을 읽어 보게 되었는데.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조차 과연 내가 이해한 것이 정말 저자의 의도일까라는 의문을 가진다. 그러나 하나의 소설을 백명의 사람 읽고 백가지의 의견이 나오면 그는 그대로 좋은게 아닐까 한다.

 

2. 줄거리

 

 무진에는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소설의 주인공은 나는 장인과 부인의 힘으로 제약회사의 전무가 되기 전 부인의 권유로 고향인 무진으로 휴가를 떠나게 된다. 무진으로 돌아가는 버스안에서 두 농촌 시찰원의 대화를 통해 명산물도 그렇다고 너른 평야도, 항구도 없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평범한 고장인지를 들을 수 있다.

 

 나는 아내의 권유로 인해 무진으로 가지만 마음은 영 내키지 않는다. 어린 시절 기억부터 나이가 좀 든 뒤로는 무진행은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새출발이 필요할 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 가서 무슨 새로운 용기나 에너지를 얻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떠밀리 듯 시작된 무진행은 광주에서 내려 기차역을 빠져나올때 미친 여자로 인해 어두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6.25 전란 시절 홀어머니에 의해 거의 강제로 골방에 숨어 징병을 회피하며 스스로를 혐오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무진에 온 후 그는 신문지국에 잠깐 들린다. 그리고 이모 댁에 저녁을 먹을때 후배인 박을 만난다. 그는 문학소년이었고 지금은 모교의 선생님이었다. 피츠제럴드를 좋아하지만 아주 얌전하고 매사에 엄숙한 사람이었다. 나는 박을 통해 친구인 조가 세무서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저녁에 그를 만나러 간다. 그곳에서는 화투를 치고 있는 세무서 직원들과 박과 같이 근무하는 하 선생이라는 여 선생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성악을 전공한(소프라노) 음악 선생님이다. 그리고 무진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말 끝마다 "대학 다닐 때" 를 달고 살며 대학교 졸업연주회 때 <나비부인> 중 <어떤 개인 날>을 부른 것을 자랑스럽고도 무척이나 그리워 하는 듯 하다. 저녁 조의 집에서 벌어진 술자리에서 그녀는 가요인 <목포의 눈물>을 부른다.

 이 모습에 하 선생을 연모하던 박은 슬쩍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고 이를 눈치 챈 나는 박과 대화를 나누지만 박은 그녀가 조가 신부감으로 점찍고 있다는 말을하며 포기를 하려는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렇지만 여긴 책임도 무책임도 없는 곳인걸로. 하여튼 서울에 가고 싶어요. 절 데려가주시겠어요?"

 

 술자리가 파하고 돌아가는 어두운 길, 나는 하 선생의 이름이 하인숙 알게되고 둘은 어두운 길을 함께 걸으며 나는 그녀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녀는 나에게 무진을 벗어나 서울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리고 내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갑자기 나는 이 여자가 나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침 이슬비를 맞으며 어머니의 묘소를 다녀오는 길에 방죽길에서 자살한 술집 여자의 시신과 마주한다. 그녀는 수면제가 아니라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 나는 그녀에게 묘한 정욕을 느끼고는 다급히 자리를 떠난다. 그녀는 그에게 여러가지 상념을 준다.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는 조의 쪽지가 왔다. 그의 세무서로 초대하는 쪽지였다. 나는 마뜩치 않아 하지만 그를 만나러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의 모습을 관찰하고 하 선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의 대답에서 그가 하 선생을 신부감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는 나의 부인과 같이 좋은 신부감을 원한다는 것과 그러면서 그녀가 죽어도 그녀를 찾아올 변변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박이 쓴 연애편지가 그녀의 손을 거쳐 조의 손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 선생님께서 여기 계시는 일 주일 동안만 멋있는 연애를 할 계획이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나는 조와 헤어지고 하인숙과 만나게 된다. 나와 그녀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나는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인숙은 갑자기 서울로 가기 싫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나에게 <어느 개인 날>을 불러준다. 하인숙은 나와 헤어지며 일 주일만 연애를 할 계획이라 말해주고 그 말을 농으로 받아 들인 나는 자신이 힘이 더 세니 그녀를 끌고 갈 것이라고 말한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아내에게서 전보를 받는다. 돌아오라는 내용이 었다. 나는 떠나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지만 떠나기를 결심하고는 하인숙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편지를 완성하고는 몇 번 읽어 본 후 그 편지를 찢어 버린다. 그리고 무진을 떠나간다.

 

3. 감상평 및 맺으며

 

 책에 대한 해설과 감상은 순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임을 밝힌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그대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무진은 어떤 곳일까? 책의 곳곳에서 무진이 어떤 곳인지를 나타내고 있다. 일단 이름 그대로 안개가 가득한 곳, 그럴 듯한 명산물도 평야도 항구도 없지만 많은 이들이 모여 그럭저럭 살아가는 곳, 그리고 자신 외에는 속물로 취급하는 곳, 그러면서도 특이하게도 나에게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거의 감추지 않는 것 같다.

 신문지국을 나가면서도 사람들은 그에 관해 수근수근 거릴 뿐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를 서울과 다르다고 생각하다. 여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나에게 굉장히 솔찍히다. 박도 자신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조도 자신의 속물 근성을 숨기지 않는다. 하선생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그들은 나를 이방인 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서일까?

 

 진에서는 항상 자신을 상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과거의 경험에 의한 조건반사였다.

 

 무진은 소설속에서 나의 고향으로 실존하는 장소로 묘사되고 있지만 나 자신의 관념속에 존재하는 일종의 가상의 공간은 아닐까?

 무진은 내가 버린 일종의 감정들이 집합체이고 안개는 그것을 외부로 부터 숨겨주는 혹은 떠올리지 않게 가려주는 역활을 한다. 박은 나의 과거의 모습을 투영하고 조는 나의 현재의 모습을 투영한다. 그리고 하인숙 그녀는 그를 떠나간 희 혹은 순수한 사랑의 잔재가 아닐까?

 나가 무진의 갔었을 때는 항상 상황이 좋지 않을 때이다. 징병을 피해서 숨을 때, 폐병에 걸렸을 때, 제약회사가 합병 되면서 희와 헤어졌을 때, 그는 무진에 있었고 무진에서 나올 때 마다 무언가를 버리고 나왔다. 일종의 징병을 피했을 때는 친구(?), 폐병에 걸렸을 때는 인간관계, 희와 헤어졌을 때는 사랑...

 그리고 장인과 아내의 힘으로 전무가 되려 무진에 왔을 때는 남아있는 자존심 혹은 부끄러움을 버리기 위해 왔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들이 버려놓은 감정들과 만나고 그 중에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려했던 건 하인숙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사랑일 것이다.

 

내 심장에 남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일단 무진을 떠나기만 하면 내 심장 위에서

지워져버리리라.

 

나는 내게서 달아나버렸던 여자에 대한 것과는 다른 사랑을 지금의 내 아내에 대하여 갖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버렸다.

 

 인숙은 나에게 현실 세계인 서울로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말하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깨달았는지 포기하고 나에게 일주일 간만이라도 여기서 연애를 하자고 청한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온 아내의 전보는 그를 다시 현실세계로 이끈다.

 끝 부분의 나의 독백과 편지 속에서 의문이 풀리는 것 같다. 나는 장인의 힘을 통해 자신을 전무로 승진시키려는 것에 일종의 모욕감을 느끼고 아내와 다투었고 도망치듯 무진으로 왔다. 나는 숨어서 옛날에 버려버렸던 것을 찾고자 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얼마간 찾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실의 전보가 불쑥 타협하자고 손을 내빈다. 그는 타협을 하는 와중에도 희망을 남기려고 하지만 결국은 그것 조차 자신의 손으로 찢어 버린다. 그는 다시 현실과 타협하고 무진 밖으로 향한다. 그는 과연 무엇을 버렸을까?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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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전설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이 것의 내용이 아포칼립스 배경의 좀비가 나오는 내용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 엔딩에 약간은 오글거리는 장면을 보면서 주인공이 세상을 재건하는데 일종의 희망을 주는 전설적인 인물이라서 제목이 저런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원작 소설을 읽은 결과 완전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 난 감상평을 먼저 말하고 시작하자면 대체 저 따위로 왕창 각색을 할꺼면 제목을 대체 왜 저기서 따온 것일 까라는 강렬한 의문과 함께 1950년대에 나온 소설이지만 굉장히 굉장히 흥미진진하며 공포소설 다운 암울하면서도 독자에게 일말의 희망도 던져주지 않는 반전을 품고 있는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다.

 

1. 내용 요약 (결말이 포함된 강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던 시절에는 좀비라고 알고 있었던 존재들이 흡혈귀라는 놀라운(?) 사실과 함께 책이 시작된다. 네빌은 핵전쟁 이후 시작된 (비록 전쟁에 승리하기는 했으나) 전염병으로 인해 아내와 딸을 잃은채 홀로 살아남아 자신의 집을 지키며 살아간다. 자신의 집에 울타리를 치고 마늘과 거울 따위로 자신을 끌어내려는 흡혈귀 들에게 대항한다.

 

 네빌은 소설 초반 흡혈귀들이 과연 살아있는 존재있는 인간성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인지 혼란에 휩쌓이기도 하고 그들을 죽일 때 마다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밤마다 찾아와 소음을 일으키며 그를 괴롭히는 흡혈귀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것들이 성적 도발을 통해 네빌을 자극하려고 하는 것과 네빌이 그것에 끌리는 것이었다.

 

 네빌은 술에 쩔어 밤에는 흡혈귀들을 피해 숨어 있고 낮에는 텅빈 도시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된 코마상태의 흡혈귀들을 살해한다. 네빌은 이 과정에서 괴로워 하기도 하고 죽음을 갈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어느날 우연히 말뚝이 아닌 태양에 의해 죽어버리는 흡혈귀를 발견하고 새로운 발견에 희열을 느낀다.

 

 이 때 부터 네빌은 흡혈귀를 납치하여 실험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네빌은 우연인지 의도 된 것이지 모르겠으나 여자 흡혈귀만을 납치하여 실험을 진행한다. 그리고 그들이 일종의 병원균에 감연된 상태임을 알아내고 치료법을 찾아 내려하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다.

 

 그러다 자신과 같이 살아남은 생명체인 개를 만나게 되어 구조하려 하지만 이 역시 허무한 실패로 끝나고 절망에 빠진다.

 

 그 후 네빌은 루스라는 낮에 돌아다니는 여성을 만난다. 네빌은 구조라는 명목으로 그녀를 집안에다가 감금한다. 그리고 그녀를 끊임 없이 의심하다 결국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자신이 새로운 흡혈귀 사회의(생명이 있고 지성이 있는 흡혈귀, 네빌을 찾아오는 흡혈귀들은 이미 죽은 상태에 이성이 거의 남아 있는 상태이다.) 첩자라를 사실을 밝히며 그에게 도망가라는 메세지를 남기고는 떠나버린다.

 

 그 날 밤도 어김없이 일단의 구 세대 흡혈귀 무리가 네빌을 찾아와 네빌을 괴롭히는데 루스가 말했던 새로운 흡혈귀들이 그들을 모두 죽여버린 후 네빌을 잡아간다. 네빌은 그 과정에서 총을 맞았고 루스는 그를 탈출 시키고 싶어 했지만 부상 당한 몸으로 그것마져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네빌만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구 인류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신 세대 흡혈귀들은 그를 두려워 하고 있었고 그를 처형하기를 바랬고 결국 네빌은 "나는 전설이다." 라는 말과 함께 이야기가 끝이 난다. 

 

2. 내가 생각하는 키워드

 

1) 다수의 흡혈귀

  이 책에서 나오는 흡혈귀는 기존에 나오던 흡혈귀와는 많이 다른 존재이다. 많은 책들에서 흡혈귀는 변신이 가능하고 수백년을 살기도 굉장히 강한 초월적인 존재였다면 이 책에서는 병원균이 감연된 존재로 피를 갈구 하고 인간에 비해 강한 회복력을 지니기는 했지만 개체 단위로 보았을 때는 대단히 강력한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인간인 네빌에게 맞아 나뒹굴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기존과는 다른 가장 극명한 대비는 인간이 다수가 아니라 흡혈귀가 다수이고 인간이 절대 소수라는 점이다. 이것은 사실 요즘 흔히 나오는 좀비물을 떠올리게 하는 점이긴 하다.

 또한 흡혈귀가 피해자 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병원균 혹은 돌연변이로 인해 진화된 절대 다수의 흡혈귀 입장에서는 낮에 잘자다가 그저 자신들과 종족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살해를 하고 다니는 네빌이 일종의 광폭한 야수로 비쳐 질 것이다.

 

'문득 자신이야말로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자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

단 하나의 존재를 위한 개념이 될 수는 없다.'

 

2) 여성

 책에서는 여성이 자주 언급된다. 네빌은 여자 흡혈귀를 바라보며 성욕을 느끼기도 하고 여자 흡혈귀들을 잡아서 실험을 진행하고 밤에 네빌을 집을 두드리던 흡혈귀들이 물러가고 몇몇 흡혈귀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면 언제나 여자이다. 과연 작가기 이것으로 말하고 싶었던게 무엇인지는 나로써는 짐작이 잘 가지 않는다. 2차 대전에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쓰여졌다는 점에서는 전쟁은 여자에게 가장 잔혹하다는 것을 쓰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남성의 잔혹성을 부각 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보도 위에 시체 하나가 널브러져 있었고, 다른 시체는 관목 숲 속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

둘 다 여자엿다. 언제나 그랬다. 죽어 나자빠지는 것은 항상 여자였다.

 

3) 인간성의 상실?

 소설 초반부 네빌은 끊임 없이 고뇌한다. 흡혈귀들의 존재에 대해 자신에 대해 고민하며 괴로워 한다. 그리고 술로 도피를 하려고 하는데. 후반으로 갈 수록 이런 모습들이 사라진다.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며 그들을 인간의 다른 형태로 바라보지만 점점 그들을 실험실의 쥐를 대하 듯 다루기도 하며 자신이 그들을 병으로 구원 할 수도 있다는 태도를 지니기 시작한다.

 

 '과학자들이 옳았다. 박테리아가 개입된 것이다. 그리고 서른 여섯 살의 유일한 생존자인 로버트 네빌이 오랜 심리를 마치고 드디어 살인자를 지명하는 순간이 된 것이다. 살인자, 흡혈귀, 박테리아!'

 

'대게의 경우 그는 이들이 그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상기해 내곤 죄책감을 느꼈다. 묘한 동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빨리 실험을 해보고 싶은 생각에 죄책감 따위는 지금 안중에도 없었다.'

 

4) 전설

 이 책에서 전설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전설이라는 단어를 전설적인 영웅, 전설적인 선수, 전설 아닌 레전드(?) 뭐 이런 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대충 지금은 실제하지 않는 어마어마한 무언가라는 의미로 전설이라는 단어를 수식어로 호라용다.

 앞서 말했듯 영화에서는 전설이라는 단어가 인류에게 희망을 주고 떠난 일종의 전설적인 영웅으로 사용되었다. 그럼 소설에서는?

 전설이란 단어는 좋게 해석하면 좋지만 나쁘게 쓴다면 옛날의 것, 그것이 존재 했는지 안했는지도 확인 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쓸 수있다. 소설에서 이제 구 인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야 말로 네안데르탈인 처럼 전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 또 다른 시작인 거야. 죽음속에서 태어난 새로운 공포. 영원의 요새를 정복한 새로운 미신.'

'이제 나는 전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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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삶은 단순하기 그지 없다.

힘이 다할 때까지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다 멈추어버리면 되니까.

 서점을 방문 했다가 문득 나의 시선을 잡아 끈 덕분에 완전 우연히 읽게 된 책이다. 사실 처음 멀리서 제목만 봤을때는

'이야 우리나라 서점에서도 히틀러 책을 저렇게 대놓고 디피 해놓는건가?' 라고 생각했다. (노르웨어랑 독일어랑 비슷해서인지는 몰라도 마인캄프라고 읽는 것 까지 똑 같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미중년의 사진이 떡하니 박힌게 이 사진은 내가 알던 히틀러는 아닌 것이 확실했다.(책 표지 앞면 말고 뒷면을 펴보면 미중년 작가님의 전신 사진이 실려있다...)

 그리고 노르웨이 소설이라는 것에 흥미가 일어 책을 펴서 읽는데 첫문장 부터 나의 마음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다 종이에 손이 베였는데. 내 피가 묻어 "이건 살 수 밖에 없어!" 라고 속으로 외치면 책을 사버렸다.

 

북유럽 사람들은 다들 잘 생겼나보다.

 

 일단 책이 무척 두껍다 600P가 넘는다. 이 정도 크기에 이 정도 두께의 소설책을 읽어 보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오래 들고 보면 팔아프다. 그리고 우리가 문학시간에 다들 배웠을 발단-전개-위기-절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말로하면 아주 큰 사건 혹은 갈등 등이 발생하여 우리의 심장을 쫄깃쫄깃 하게 하거나 미스테리한 일이 발생하여 궁금증을 자아내지도 않고 흥미진진한 추격전이나 액션으로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게 해주지도 않거니와 한국 드라마의 필요 수요소인 아름다운 사랑 혹은 슬픈 사람 그것도 아님 바람피는 막장이나 숨겨진 출생의 비밀 따위는 전혀 간직하고 있지 않은 책이다. (일단 1권까지는 말이다.)

 

 그럼 이 책은 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일까? 책은 뻔한 일상을 담고 있다. 누군가에게나 있을 만한 사건, 어디서나 주위를 둘러보면 한번쯤 볼 법한 인물들과 사건들만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쉬이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 책의 장르를 소설로 구분해야 하는 건지도 조금 의문들 정도다. 분명 자전적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작가 본인의 실명은 물론 주변인들의 실명까지(작가는 자신의 원고를 등장인물 모두에게 발송하여 먼저 읽어보게 한 후 익명을 요청한 경우에는 가명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넣어서 집필을 해놓았다. 그 덕분인지 소설적 요소는 거의 배제된 채 어떻게 보면 작가 스스로를 관찰한 개인의 관찰일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나는 완전히 다르게 쓰기 시작했다. 일종의 고백처럼.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는 모든 비밀을 말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별달리 큰 서사적 요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몰입도가 좋았는데, 작가의 풍경과 심경 묘사가 매우 섬세하다. 방과 집에 대한 묘사라던지 어느 집에나 있는 집안의 고유한 냄새에 대한 표현이라던지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생각을 따라가는 기분이었다. (작가나 작가의 아버지나 외면적으로는 굉장히 무감각한 듯 보여지지만 굉장히 섬세한 사람들인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들을 그림자 속에서 꺼내오는 작업이다."

 

 계속해서 언급하는 것이지만 이 책에서 읽을 때는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무언가는 없지만 꼭 한번쯤은 읽어 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2권이 올해 말에 번역 된다는데. 어서 출간 되었으면 좋겠다. 영문판으로는 작년에 이미 4권까지 나왔는데다.(노르웨이어로는 이미 6권까지 나왔음) 난생 처음 보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이미 세계적으로 성공한 작가이다. 라는 것에서 우리는 북유럽식 인테리어 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관심을 가져 볼 만하지 않을까라는 쓸데 없는 사족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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