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얼마 전 있었던 노벨상 수상식에 선약이 있다며 참석하지 않았던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인 밥 딜런을 보며 예전 노벨상 수상을 거부했던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가 떠올랐다.
그는 왜 노벨상이라는 어마어마한 명예를 거절 했을까? 사르트르는 간단히 '제도화된 작가가 되기를 거부한다' 라는 짧지만 쿨한 답변을 남겼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무수한 이유들을 들이 밀었다. 그중 하나가 그가 '실존주의' 철학자 였기 때문이다라는 것인데. 대체 그 실존주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구토' 라는 짧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설 형식을 지니고 있는 이 책을 통해서나마 일부 느낄 수 있었다.
2. 책의 내용
주인공인 '앙트완 로카텡' 은 연금을 받으며 무직으로 혹은 역사가나 여행가라는 이름으로 부빌 도서관에서 시간을 주로 보내며 '롤르봉' 씨에 관한 책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30살의 젊은 남자이다. 이 남자는 때로 여관 주인과 몸을 섞기도 하지만 별달리 욕망이나 야심 따위를 보이지 않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그는 과거에 사랑했던 '안니'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와는 헤어진 상태이다. (뭔가 익숙한 느낌의 주인공이다. 마치 하루키 소설속에 흔히 등장 할 법한 남자 주인공이랄까?)
그는 갑자기 어느 날 부터인가 구역질을 하곤 했는데.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하루의 일 들을 기록하며 소설이 시작된다.
그는 부빌에서 생활 하며 그 곳에서 살아가는 부르주아들의 생활을 비웃으며 기존 질서와 관습을 벗어나기 위한 자유를 갈망한다. 그는 바닷가의 조약돌, 심지어 문 손잡이에서 까지 구토감을 느끼며 그것을 상세히 기술하며 자신의 구토감의 원인을 찾아 나선다. 그러던 중 오래전 헤어졌던 연인인 유일하게 진정으로 사랑 했을지도 모를 안니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 옛 연인과의 재회를 앞두고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다 마로니에 나무 뿌리를 바라보다 직감적으로 자신의 구토감의 원인을 찾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어떤 사물의 실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가 부여한 뿌리라는 본질이 아닌 진정으로 고유한 실존으로써 존재하는 뿌리를 느끼고는 그것과 자신이 아무런 연관성이 없이 동떨어진 체 존재했다고 느끼며 당혹감을 드러낸다.
옛 연인과의 재회는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안니는 이미 타성에 젖아 예전에 아름다운 모습과 신비로운 모습을 잃어버렸고 부빌로 다시 돌아온 주인공은 부빌을 떠나기를 결심한다. 그리고 부빌을 떠돌며 자신과 관계 되었던 사람들 한명 한명과 만나 작별 인사를 건낸다. 그리고 역사 연구도 포기하고 절망찬 채 떠나려 할때 재즈음악이 주는 감동 속에서 소설이 구원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책은 끝이 난다.
3. 마무리
사실 리뷰를 쓰고 있는 와중에도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를 하고 쓰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사르트르가 주장했던 실존주의를 간단히 표현하자면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 그리고 인간은 다른 사물들처럼 본질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으로써 존재한다.' 라고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르트르 이전의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의 존재의 목적 혹은 본질을 신에게서 찾았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책에서 그저 세상에 내던저진 것으로 표현하며 인간이 실존한다고 말한다..
나는 차라리...... 나에게 주어진, '까닭 없이' 주어진 이 인생 앞에 놀랄 뿐이다.
그리고 그가 했던 또 다른 유명한 말인 '타인은 지옥이다.(HELL IS OTHER PEOPLE)' 라는 말이 책을 읽다보면 점점 이해가 된다.
나는 책임감에 짓눌렸다. 눈을 부릅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안니가 그 순간에 만들어낸 의식의 한복판에서 몸부림칠 뿐이었다. 결국 나는 기다란 팔로 그 의식을 거무줄처럼 찢어 버렸고, 그럴 때마다 안니는 나를 증오했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실존보다는 본질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처음 만나면 나이가 어릴 때는 학교를 어디 다니는지 나이가 들어서는 직장이 어디인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입은 옷, 그 사람이 타고 다니는 차, 심지어 그 사람이 사는 동네를(혹은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통해서 한 사람을 편하게 평가하고 규정하려든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실존에 대한 고민을 점점하지 않는 탓인지 아니면 마케팅이 발달하면서 자기를 대신 표현 혹은 규정하기 편한 브랜드 같은 것이 세상에 넘쳐 나서인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끔 이런 것들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요즘 주말 내내 우리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서는 이유도 많은 사람들이 한 인간의 실존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채 못한 채 주변에서 만들어 놓은 본질만 바라본 결과 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다. 공산주의와 휴머니즘에 대한 생각 같은 것도 들어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 하다보면 왜 사르트르가 노벨상의 수상을 거부했는지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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