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어느 날, 불안한 꿈을 꾸며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의 몸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이야기의 시작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전개가 이어지며 작중 내내 묘한 불쾌감을 전달한다.
그레고르가 자신의 몸이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은 다른 것도 아닌 그날 출장으로 예약된 기차시간과 출근, 고용주의 질책 등이다.
신체의 변화로 인한 혐오감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의 문제였다. 그레고르가 변한 것을 알기 전, 가족의 생계를 도맡아 시피 책임지고 있던 그레고르에게 가족들은 상냥한 모습을 보인다. 그레고르에게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는 지배인에게 대신 변명을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자본가의 편에 서서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익을 만들어내라고 그레고르에게 강변하던 지배인마저 변해버린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곤 그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음을 깨닫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돌린다.
물론 장사가 잘되는 계절은 아니죠. 우리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장사를 못하는 계절은 있을 수가 없어요. 잠자 씨,
그러한 일은 있어서도 안 돼요.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후 빚을 갚기 위해. 평범한 사원을 그만두고 영업직을 택한 그가 벌어오는 많은 중개료에 대해 가족들은 처음에는 감동하고 감사를 표했지만 어느 새, 그런 것들은 당연한 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사려깊은 그의 여동생 그레타는 여전히 그에게 감사를 표했는데 그레고르에게는 그것이 큰 위안이었고 그녀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그녀를 음악학교에 입학 시키려는 계획을 짜고 있을 때,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이런 관계 때문인지 변해버린 그를 폭력적으로 대하려는 아버지와 외면하려는 어머니와는 달리 여동생은 겉으로 나마 그를 챙겨주려고 노력을 하고 다른 가족들은 그런 여동생의 역할에 큰 만족감을 표한다.
그레고르가 변한 것과 더불어 가족들에게도 현실적인 문제가 들이닥친다. 사업이 망한 후 몇 년간 쉬고 있던 아버지, 그리고 일을 하기는커녕 천식으로 때때로 앓아눕는 어머니, 철부지 어린 여동생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이 끊겨버린 그들에게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걱정다. 그런데 어쩌면 현재 가장 불행한 그레고르는 자신을 걱정하기 앞서 변해버린 자신으로 인해 고통을 받을 가족을 걱정한다.
그의 앞에 펼쳐진 어둠을 바라보다가 문득 부모님과 여동생이 이렇게 아름다운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애쓴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이 모든 고요와 부와 만족이 자신에게 닥친 끔찍한 일로 인해 끝나야만 하나?
그러나 가족들이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동안에도 몇 년 동안, 가계의 생계를 이끌어온 그의 의견은 묻지 않는다. 가족은 그를 방치하고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무관심과 자신이 짐이 되어버렸다는 수치스러움에 소파 밑으로 점점 숨어든다.
한쪽 문과 사람들이 낮에 열어 놓았을 다른쪽 문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열쇠가 밖에 꽂혀 있었는데도.
반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리고 수치스러움을 느끼면서 그는 소파 아래로 서둘러 기어들어갔다.
가족들은 돈을 벌기 위해 각자 직업을 찾는다. 매일 지쳐 쓰러져 있던 등이 굽은 아버지는 곧게 뻗은 몸과 다부진 턱을가진 은행원의 모습으로 변하고 어머니는 고급 양장점에서 받아온 옷에 바느질을 한다. 그리고 마냥 어릴 것 같던 동생도 판매직 일을 구해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각자 세상 밖에서 자신들만의 세상을 새롭게 구축하는 동안 그레고르는 점점 소외되고 가족들에게 큰 짐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방은 잡동사니를 놓아두는 창고 방으로 변하고 그로 인해 세를 들어 살던 세 명의 신사가 놀라 항의하자 가족들 중 가장 우호적이던 여동생은 그를 귀찮은 짐 정도가 아니라 가족의 운명을 위협하는 적으로 취급하기에 이른다.
2. 눈이 가는 포인트?
① 자본주의 속에서의 가장
적어도 내가 감상하기엔 이 책은 굉장히 자본주의적인 책이다. 그레고리는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후 몇 년 동안 가정의 생계를 도맡아 책임지던 남자이다. 적어도 잠시기는 했지만 그 후 몇 년 동안 평범한 일로 변하긴 했지만 가족들은 그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의 희생으로 벌어들인 돈을 쓰며 안온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지배인으로부터 최종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형선고를 받음으로서 그를 대하는 태도가 변해간다. 변한 것은 그레고리를 대하는 태도만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가 생업에 뛰어 듦으로써 스스로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 역시 변한다. 늘 무기력하던 아버지는 다시 예전의 꼿꼿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쓸모없는 취급을 당하던 여동생은 희망으로 변한다.
마치 그레고르의 모습은 IMF시절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어버린 혹은 산재로 인해 노동력을 상실해버린 가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② 변해가는 그레고르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후 자신의 몸이 완전히 변해버리긴 했지만 그레고르는 자신이 여전히 인간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지배인을 대하는 동안 꼿꼿이 서려고 했고 인간의 목소리로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가족과 사회에서 고립 될수록 점점 벌레로 변해간다.
도망가던 지배인을 쫓다 넘어질 때부터,
넘어지는 순간 바로 그는 오늘 아침 처음으로 육체적인 쾌감을 느꼈다. 다리들은 딱딱한 바닥을 짚고 있었다.
마치 그가 왜 기뻐하는지를 알아챈것처럼 그에게 완전히 복종했다.
실제로 날이 갈수록 조금씩, 멀리 있는 것들이 그의 눈에 점점 불명확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르는 두 달 정도의 변신 기간 때문에 가족 내에서 단조로운 삶을 살고,
모든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부족해서 이해력이 떨어졌음을 알아차렸다.
그레고르의 겉모습은 일순간 변했지만 그의 내면과 보이지 않는 것들은 주변의 변화를 따라 천천히 변해갔다. 어쩌면 진정으로 변한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주변 사람들일 것이다. 그레고르의 어머니는 그의 방의 가구를 치우려는 여동생에게 잠시 저항하지만 결국 변해버린 그레고르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감행된 행위를 막지 못한다. 그레고르 역시 저항해보려 했지만 아버지의 폭력과 여동생의 외침에 무릎을 꿇는다. 그 후, 그는 급격히 무너진다.
그러나 바닥을 기어 다니며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며 스스로를 잃어가는 와중에도 그는 가장 인간적이고 가족적인 모습을 보인다.
음악에 사로잡힌 그는 과연 짐승일까
왜냐하면 여기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처럼 그렇게 그녀의 연주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적어도 그녀를 자신의 방 밖으로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의 끔찍한 형상은 그에게 처음으로 유용할 것이다.
잠자 씨의 집에 세를 들어사는 멀끔하게 차려입은 세 명의 신사는 연주를 하는 그레타에게 모욕적인 행위를 한다. 심지어 자신들이 먼저 청해 들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가 그들을 어찌하지 못할 때 분개한 그레고르가 나선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시선이었다. 그는 가족을 지키고 싶었했지만 결국은 적으로 취급받는다.
3. 마치며
과연 누가 괴물일까? 변한 것은 그레고르일까? 아니면 그의 가족일까?
대부분 소설에 묘사되는 가족과 사회 상황은 작가가 살아온 혹은 살아가고 있는 사회상황과 연결시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카프카는 매우 엄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잘 돌보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 역시 작가를 하려는 그의 꿈을 응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을 쓰고 잇을 당시에는 경제공황과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개인의 운명은 무척이나 불안정 할 수 밖에 없었음으로 이런 소설이 쓰여 졌을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과연 그런 상황이 얼마나 변했을 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가 점차 파편화 되어가면서 사회의 최소 구성단위라는 가족이 가지는 의미는 점차 감소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오랜 불황과 높은 실업율은 사람들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비록 벌레로 극적인 변신을 할 가능성은 낮지만 누구나 노동력을 상실 할 정도의 신체적 변화를 겪을 여지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소설 속 잠자씨의 가족은 그레고르를 빼고는 모두 처음보다 오히려 행복해 보인다.
다들 그레고르가 벌어오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객체에 가까운 느낌이었다면 스스로 사회 속으로 뛰어드는 주체로 변해 미래를 꿈꾼다. 그 사이 쓸모를 잃고 철저하게 고립된 채 파괴되어간다.
그런데 감상평을 마무리하려던 그런 생각도 들었다. 벌레로 변한 것은 그레고르가 원하던 것이 아닐까? 회사의 혹은 가족에 대한 의무감에 지쳐있던 그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그런 식으로 표현 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변해버린 그를 그가 가족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돌봐주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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