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1. 들어가며

 

 '공중전과 문학' 사실 책을 고를 때, W.G 제발트가 누구인지,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공중전과 문학'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알 지 못했다. 그냥 인간의 전쟁사에 공중전이라는 것이 새로이 등장함으로써 문학계에 어떤 지평을 넓힌 것인가? 라는 정도로 생각하면서 책을 집어 들었는데...

 

 생각보다 책이 어렵다. 아니 어렵다기 보다는 뭔가 우울하면서도 잘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왜냐하면 어쩌면 나는 이 사건에 대해서 지극히도 외부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과 남한의 사이나, 일본과 한국, 중국과 한국 사이 처럼 당사국의 국민이나 여기에 깊게 관계된 사이가 아니고서는 잘 알기 힘든 감정들을 책을 읽는 동안에 받아 들일려니 꽤나 버거웠던 것 같았다.

 

2. 책의 내용

 

 W.G 제발트는 독일에는 거의 머물지 않는 독일 문학계의 아웃사이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취히리에 있었던 강연을 통해 전후 독일 문학계의 침묵에 대하여 많은 독일의 원로 문학계 작가들을 비판했다.

 

 제발트는 제2차 세계대전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이 가능했는데 작가의 경우 전쟁이 그 기억에 거의 남지 않을 정도의 어린 시절에 일어났다. 그러나 연합군의 폭격이 후 폐허가 된 도시의 대한 기억은 이민을 간 후에도 머릿속에 남아 있었는데 그 후 작가는 일종의 '내적망명' 상태가 된다. 그는 같은 공간속에서 같은 사건을 공유하지만 사건으로부터는 이미 내적으로 멀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폐허를 떠올리며 냉정하게 말한다. 무엇이 독일 문학이 이 처참한 광경을 외면하게 만들었는지 말이다.

 

 침묵의 의도는 사죄 였을까? 비록 독일의 도시들에 무정한 포탄 세례가 쏟아지기는 했어도 그 책임의 근원은 어찌되었든 독일에 있었다. 이미 그들에 의하여 무수한 희생자가 존재하는 바 그들은 자신의 피해에 대해 다른 나라에 연민을 구하거나 스스로를 추모할 명분이 부족하기도 했거니와 그것이 사죄라고 믿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제발트는 이것이 사죄가 아니라 당시 많은 독일 소시민들은 독일이 패한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내어 놓는다. 때문에 당시 폭격으로 인해 발생한 참사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지 못한 채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하거나, 아예 망각속으로 숨겨버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제 기적의 촉매로 작용한 것은 순수한 비물질적 차원이었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마르지 않는 심리적 에너지의 흐름으로, 그 원천은 우리의 국가가 파묻힌 시신들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모두가 비호하는 기밀이다.

- P.25 -

 

 또한 전후 국가의 존립이 위협다는 상황에서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과거의 불우함이 아니라 당시 독일 사회에 필요한 것은 희망찬 미래와 발전이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피해자들과 일반 대중들은 망각을 강요 받았다. 망각은 일시적으로 상처를 지우는 빠른 방법이다. 진실을 마주한다고 해서 상처가 치유는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 상처가 났는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난다. 이는 부상이 언제 재발할지 모르지만 일단 다음 경기를 치루기 위해 진통제를 맞아가며 경기에 임하는 운동선수와 같다. 이번 경기는 어떻게든 이겨 낼 수 있지만 결국은 치명적인 부상으로 인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결국은 독일이 선택한 망각을 통한 진보는 사상누각이라고 말한다.

 

 연합군의 공중 폭격은 시작이야 무슨 이유였든 간에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자기 동력을 가지고 멈추지 못한 채 계속 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냉정한 시장경제 논리였다. 거대한 자본과 노동력으로 생산된 폭탄들은 반드시 사용되어야 했다. 그것도 가장 쓸모있는 방법으로 말이다. 어느 순간 폭탄이 독일에 떨어지는 이유는 그것이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만들어 진 것이란 폐허가 된 도시와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아이를 잃은 부모들, 트라우마, 그리고 정처없이 시작된 피난 행렬 뿐이었다. 그들은 폐허를 떠나거나 아니면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폐허로 돌아와야만 했다. 오직 의미없는 파멸만이 생겨났다. 이 어마어마한 부조리에 대해 문학은 당연히 그 시선을 거두지 말았어야 했다. 펜을 움직여 부조리를 파헤치고 기록해야 했다. 대체 이 전쟁의 의미는 무엇인가.

 

클루게가 작전 수립자의 관점에서 주목한 이 모든 측면은 그만큼 엄청난 두뇌와 자본과 노동력이 이 파괴 계획에 투입되었기에 이 파괴 계획은 잠재력의 무한 축적이라는 압박속에서 결국 완수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 P.92 -

 

 결국 문학이 택한 것은 침묵이다. 무의미한 전쟁에 대한 진실을 외면했다. 폐허 속으로 돌아온 이들은 시체 더미 앞에서 일상과도 같은 티타임을 즐겼다. 문학은 이 무서울 정도로 기괴한 현상이 가능하도록 만든 사회적 배경을 마치 땅속에 뭍혀버린 시체 더미 마냥 완벽하게 외면하거나 침묵했다. 제발트는 이 망각된 기억을 다시금 사회로 끄집어 내었다. 그 결과는 그에게 보내진 수 많은 편지들과 논쟁들이다. 그것이 제발트의 작가로써의 양심이었을 것이다.

 

3. 맺으며

 

 이미 글 중간중간에 사실과 개인의 의견이 많이 섞여 버린터라 맺음글에서 쓸 감상이 많이 남지 않았다. 세계에는 아직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참혹함이라 더하든 덜하든 그 당사자들에게는 지옥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전쟁의 참혹함이야 우리의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스크린으로 스쳐지나가며 보았을뿐 직접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일것이다.

 

 제발트는 전쟁을 겪은 문학계 인사들이 전쟁의 무의미함과 폐허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한다고 그리고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침묵을 깨트리고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벤야민이 말하는 그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파편에 파편을 쉼 없이 쌓아올리며 그 파편을 자기 발 앞에 내던지는 단 하나의 파국을 (본다). 천사는 머물러 있고 싶어하고, 죽은 자들을 깨우고 산산이 부서진 것을 한데 모아 맞추고 싶어한다. 그러나 천국으로부터 폭풍이 닥치더니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목하게 할 정도로 강하게 불어대서,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를 향해 끊임 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그러는 사이 그의 앞에는 잔해더미가 하늘까지 치솟는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러한 폭풍이다.

- P.95 -

반응형
반응형

 

1. 들어가며

 

 노벨상을 수상했던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책을 읽고나서 알게된 놀라우면서도 슬픈 사실은 작품의 배경이라고도 할 수 있을 헤르만 헤세가 기숙신학교에 입학 한 14세때가 19세기 말엽인 1891년인데 이때의 강압적이고 주위 사람들과 치열하게 경쟁시키며 사회에 순종적인 인재를 양성 교육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주류라는 것에 놀랄 따름이다.

 

2. 주요 내용

 

 독일 구석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그 마을에서 일전에 없던 재능으로 마을에서 촉망 받는 소년이었다. 누구도 그 소년의 재능을 의심하지 않았고 소년의 미래는 소년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부유하지 않는 집안에 태어난 재능있는 소년이 성공 할 수 있는 방법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기숙 신학교에 입학하여 관료나 교수, 성직자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한스은 또래의 다른 소년들과는 달리 교회의 목사, 학교의 교장 선생님 등으로 부터 추가적으로 교육을 받고 입학 시험을 준비한다. 한스는 또래 소년들에게 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생활 하면서도 종종 휴식을 취할 때면 두통을 겪는다.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입학 시험에 응시한 한스는 긴장감으로 시험을 망쳤다고 자책을 하며 고향으로 돌아와 걱정에 휩쌓이자만 곧 2등으로 합격한 사실을 통보를 받으며 자신의 실수 때문에 1등으로 합격하지 못한 사실을 아쉬워 한다. 한스는 그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자유시간을 허락 받아 그 동안 공부를 하느라 즐기지 못했던 낚시, 수영 등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나는데. 그 이유는 물고기를 선물하기 위해 방문했던 교장 선생님이 자유 시간을 즐기라고 권유하면서도 기숙학교에서 공부할 내용을 선행 학습하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어른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훌룡하게 성정했다. 길거리에서 뛰노는 일과 장난질 따위는 스스로 그만두었다.

 

 한스는 결국 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또래 아이들 보다 우월하다는 감정을 느끼며 그리고 자신의 것인지 타인의 것인지도 모를 성공에 대한 욕망을 느끼며 낚시대는 버리고 토끼장은 박살을 내버리고 잠시 동안 즐겼던 여유를 포기기하고는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선생님들이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의무는 아이들의 거친 본능을 누르고 국가가 원하는 평화롭고 절제된 이상을 심어 주는 것이다. 현재 행복하게 살고 있는 시민이나 성실한 관료들도 이러한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낙폭한 개혁가나 공허한 이상에 사로잡힌 몽상가가 되었을 것이다.

 

 한스는 기숙학교에 입학하고도 별 다른 생활의 변화가 없다. 그저 공부에 매진할 뿐이다. 기숙사의 다른 학생들이 서로 우정을 쌓아가는 동안에도 한스는 오히려 자신에게 손을 내밀려는 다른 소년의 손을 뿌리친다. 그러던 중 오직 한 소년만이 한스와 우정을 쌓아가게 되는데 그 소년의 이름은 하일러 였다.

 

 한스가 부지런하고 평범하지만 모범생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면 하일러는 나태해보지만 감수성이 풍부하고 진정으로 천재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두 소년은 다른 사람들은 배척한 채 자신들 만의 우정을 이어나가나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잠시 동안 멀어진다. 그렇지만 힌딩거라는 소년이 사고로 인해 사망하고 난 이후 하일러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던 한스는 하일러와 다시 우정을 회복한다.

 

 선생님들은 살아 있는 학생을 대할 때와는 다른 눈으로 죽은 학생을 바라보앗다. 평소에 함부로 상처를 주었던 젊음의 가치를 되새겨 보는 듯했다.

 

 모범생이었던 한스는 하일러의 영향을 받은 듯 점점 선생님들이 원하는 모범적인 학생의 상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기 시작한다. 이에 교장 선생님까지 나서서 한스에게 충고하지만 이미 한스의 변해버린 모습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한스는 점점 환상을 보는 듯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일러가 기숙학교를 탈출하는 일을 벌여 퇴학 당하고 난 후 홀로남은 한스는 이 현상이 점점 심해지다 결국은 신경쇠약이라는 판정을 받고 요양을 명목으로 고향으로 퇴출 당한다.

 

 고향으로 퇴출 당한 한스는 마을 사람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다. 마을에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소년은 이제 낙오자가 되어버렸다. 한스는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을 찾으려는 듯 마을 구석 구석을 더듬지만 이미 남겨진 것은 없다. 한스에게 낚시를 가르쳐주었던 다른 소년도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주머니도 남아있지 않다. 홀로 남겨진 한스에게 잠시간 사랑이 찾아오는 듯 했지만 그것 역시 홀연히 떠나버린다.

 

 그는 다시는 어린아이가 될 수 없고 리제의 곁에도 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스는 기계공이 되기로 하고 견습생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동안 육체적 노동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는 듯 했지만 다른 기계공들과 술을 마신 후 강물에 빠져 사망하고 만다. 소년은 결국 수래바퀴 아래 깔려 버리고 만 것이다.

 

 장례식에는 기계공들과 호기심에 찬 구경꾼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한스는 다시 한번 유명한 인물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3. 맺으며

 

 서두에서 말했다시피 책을 읽고 난 후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과 저 시대의 교육을 비교해봤을 때 뭐가 그렇게 달라졌나 라는 의문이든다.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 여기게 하고 오직 높은 점수와 출세를 위해 공부하게 하고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에서 부터 시작되는 선행 학습까지.

 

 우리나라 부모 혹은 어른 중에는 이런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일이다 혹은 충고다 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아이들 자신의 꿈과 희망이 아닌 어른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강요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좋게 말하면 관심이고 나쁘게 말하면 정말 나쁜 오지랍인 것 같다. 왜 게임도 아닌데 아이를 자신의 아바타로 키워 자신의 못다이룬 꿈을 성취하려는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문득 생각나는 것은 메가스터디 대표인 손주은 대표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공부 잘하는 것도 유전이고 열심히하는 것도 유전이다 과연 아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는 부모는 공부를 열심히 했는가?')

 

 한스는 초콜릿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마지못해 한입 베어 물었다. 숙모에게 초콜릿을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혹은 내가 어린 시절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아이가 그것을 좋아하라는 법은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 혹은 배려가, 인생의 선배라고 해주는 충고 한마디가 타인이 힘겹게 끌고 가고 있는 수레에 오히려 짐을 실어주는 것은 아닐지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반응형
반응형

 

1. 들어가며

 

 베르테르 효과라는 용어가 탄생하고 롯데 그룹의 이름의 모태가 된 여인 로테가 등장하는 소설을 괴테는 고작 25살이라는 나이에 고작 14주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중학생 때인지 고등학생 때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필독 도서라는 이유로 한번 읽었던 적이 있는데 사실 당시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그로 부터 10년도 넘은 후 읽어보니 글을 어마어마하게 잘 쓰여졌다는 생각과 함께 책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10년 동안 나도 그저 놀지만 않았는지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생각을 하고 느껴보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의 문장도 체험한 것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

 

 괴테가 "친화력" 이라는 작품에서 쓴 글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젊은 시절에 겪었던 자신과 자신의 친구의 이야기를 조합하여 쓴 글이다. 그래서 더욱 더 공감이 가는 것일까?

 

2. 책의 내용

 

 고향을 떠나 젊고 여유와 학식을 갖춘 그러나 계급 가치와 같은 기존의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젊은 베르테르, 이 젊은이가 보자마자 반하여 영혼을 다 바쳐 열열히 사랑하는 여인 로테. 그런데 이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인 로테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다.

 

 베르테르는 긍정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꽤나 종교적으로도 독실 한 듯하다.

 

 "우리 인간들은 곧잘 불만을 늘어놓기 일쑤죠. 살아가면서 좋은 날은 적고 나쁜 날만 많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매일 내려 주시는 가득한 은혜를 우리가 마음을 열고 누리고자 한다면, 나쁜 일이 있더라도 그걸 충분히 이겨 낼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 베르테르

 

 "우울함이란 게으름과 무척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것은 게으름의 일종이죠." - 베르테르

 

 그리고 개인의 감정과 마음 먹기에 따라 인생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젊은 이었다. 이런 그가 약혼자가 잠시 여행을 간 틈에 로테에게 사랑을 느끼고 매일 그녀를 지켜보며 행복에 겨워하는데. 불행히도 그녀의 약혼자인 알베르트가 돌아와 그녀의 곁을 차지 함으로써 그의 행복은 막을 내리게 된다.

 

 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가 돌아 왔을 때 베르테르는 이미 이성의 힘 보다는 감성의 힘을 훨씬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모해 있다.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이성적인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트는 로테 곁을 맴도는 베르테르를 억지로 모욕을 줘 일부러 밀어 내려하지는 않지만 둘 사이에는 의견 충돌이 잦아 진다.

 

"인간은 인간일 뿐이라고요. 조금 더 분별력이 잇다 한들 격정에 휩싸여 한계로 치닫게 되면 약간의 이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 베르테르

 

 결국 괴로워하던 베르테르는 그녀의 곁을 떠나기로 한다.

 

 "로테,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틀림없이 다시 만날 겁니다!" - 베르테르

 

 사랑이라는 감성의 지배를 받던 베르테르는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나가 일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베르테르는 인부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고 사회에 잘 적응 하는 듯 하지만 하지만 결국 인습을 거부하는 그의 태도는 벽에 부딪혀 사회에서도 도태 당해버리고 만다. 실의에 찬 그는 결국 공직 사회에서도 밀려버리고 다시 로테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얼마 전부터 나는 무척 예의를 차리게 되었는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더군요. - 베르테르

 

 그는 예전에 그곳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모든 것이 전과 같지 않다.

 

 까닭은 잘 모르겠지만 전과 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아 그렇게 썩 마음에 들지 않네 - 베르테르

 그냥 내가 영주라면! 내가 정말 영주라면, 내 관할 안에 있는 나무들 정도야! - 베르테르

 

 로테 때문에 번민하고 괴로워하던 베르테르는 두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일전에 보았던 과부 주인을 사랑하는 하인 남자, 그는 결국 과부에게 사랑 고백을 했지만 거절 당하고 쫓겨났고 종래에는 새로운 하인을 죽이는 일을 저지른다. 그리고 또다른 한남자는 로테를 사랑했지만 실패하여 미쳐버린 한 남자이다. 이 둘은 베르테르가 선택할 수 있는 두가지 선택의 결과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전에 말했던 감정에 극한에 몰려버린 그저 인간의 모습을 말이다.

 

 베르테르는 고민한다. 그리고 로테 역시 자신의 감정으로 인해 혼란을 느낀다. 오직 알베르트 만이 여전히 이성적인 듯 하다. 결국 베르테르는 자신이 사랑하는 로테에게 편지를 남기고는 그녀가 하인에게 건내 준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사랑받은 그녀에게나 사랑한 그에게나 비극이다.

 

3. 마치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계몽주의의 합리적인 감정 절제에 반발하여 극단적인 감정을 자유로이 표출한, 독일 문학의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 운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고 한다.

 

 이상하게 어느 시대에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제한 받았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로마시대에는 병사들의 결혼을 막기도 했고 중세 교회야 말 할 것도 없고 (아.. 기사도에 의한 사랑은 예외인가?), 위에서 말하는 계몽주의 시대나 심지어 요즘 역시도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삼포세대' 라는게 나타나니 말이다.

 

 사랑을 만나고 점점 변해가는 베르테르의 모습을 '서간(편지)' 형식으로 섬세하게 그려내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우울과 같은 개인의 감정을 조절 할 수 있다고 믿던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감정에 대한 생각이 변해가고 결국은 어찌보면 변하기전 베르테르와 비슷하다고 할 수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하는 알베르트와 대립하고 그들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에 혼란스러워 하며 괴로워하는 로테, 안타깝게도 이 여인의 아픔을 헤아려주기엔 이 두 남자가 각자 자기 일로 너무 나 바쁘다. 그녀야 말로 어머니로 부터 물려 받은 임무와 사회적 인습에 짖눌려 있는 제대로 감정조차 표출하지 못하는 이 책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바로 로테가 아닐까?

 

 알베르트는 로테의 생명이 위태로웠기 때문에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 인부들이 시신을 운구를 메고 갔으며, 성직자는 한 사람도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