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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그 동안 꽤 많은 일본 소설을 읽었지만 이런 느낌의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다. 요시모토 바바나나의 달콤함이나 에쿠니 가오리의 잔잔함과도 그렇다고 하루키의 무뚝뚝함이나 허무함과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간단히 느낀점을 표현하자면 읽는 동안 읽는 맛이 나는 책이었다. 한문체의 고풍스러운 표현과 은근하면서도 관능적인 표현은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어디 까지가 현실인지 구분이 안가는 소설 속 내용처럼 독자를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사실 한 번 읽고는 이 책이 짜임새가 좋은 책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한번 더 읽은 후에야 이 책이 얼마나 처음부터 끝까지 짜임새가 좋은 책인지를 알 수가 있었다.

 

2. 책의 내용

 

 책은 신경쇠약을 앓고있는 시인인 마사키의 여행을 담고 있다. 마사키는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은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세번의 인연을 통해 나라 현 도쓰카와 마을 왕선악 산중에 이르게 된다.

 

 마사키는 이곳에 이르는 도중에 여러가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서양 풍으로 곱게 차려 입은 여인에 이끌려 행선지를 요시노로 정하게 되는데,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 왠 광치어린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내릴 역을 지나쳐 본의아니게 구마노 본사로 향하게 된다.

 

 기묘한 노인과의 만남은 노인의 태도 변화 이후 노인이 떠나버림에 따라 혼자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구마노 본사로 가던 중 노인과 함께 기차안에서 마주쳤던 나비와 비슷하게 생긴 나비에 이끌려 원래의 길에서 벗어나 왕선악으로 들어서게 된다.

 

 나비에 이끌려 한참을 산을 오르던중 밤이 내려앉고 마사키는 길을 잃고 헤메던 중 뱀에게 물려 정신을 잃게 된다. 그리고 엔유 스님의 구함을 받게 되고 그곳에서 또 시간이 달리 흐르는 듯 한 느낌과 더불어 아름다운 여인이 나오는 야릇한 꿈, 그리고 고통스러운 환상에 시달리게 된다.

 

 엔유는 마사키에게 뒤쪽의 암자로는 다가가지 말 것을 경고한다. 그곳에는 나병이 걸린 노파가 홀로 죽어 가고 있음으로 마사키에게 절대로 그곳에 접근치 말하고 하는데. 마사키는 점점 꿈속의 여인에 빠져들어서는 산을 내려가기를 거부한다. 이에 엔유는 강제로 하산 할 것을 명령하고, 보름달 밤 잠이오지 않던 마사키는 몰래 암자로 접근을 하는데...

 

3. 내 마음대로 뽑아보는 키워드

 

 키워드1 :  왕선악 (往仙岳)

 

 저자 히라노 게이치로는 소설속에서 다 일본 지방의 실제 지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직 원래 행선악인 산만은 왕선악으로 고쳐서 사용했는다. 여기서 바뀐 글자의 한문은 다닐 行 → 갈 往 한문에 조예가 깊지 않은 관계로 비슷 한 것 같은데 무엇이 다른지 잘 몰라 사전을 뒤적뒤적 이다보니 왕생(往生)의 의미가 '이 세상을 버리고 저승으로 가서 삶'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것을 생 대신 신선 仙 자로 바꾸면 '이 세상을 버리고 신선계에로 가서 삶' 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왕선악은 현실과는 유리가 된 세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키워드2 : 제비나비

 

 제비나비는 소설 속에서 여러번 등장한다. 먼저 노인과 만났던 기차에서 그리고 구마노 본사로 가던 길에서는 마사키를 왕선악 산중으로 이끈다. 그리고 꿈속의 여인의 머리핀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다카코가 남긴 핏물에서 나타난다.

 

 소설에서 나비는 마치 호접지몽(장자지몽)을 연상시킨다. 장자의 제물론편에서 나오는 이 이야기에서 장자가 깨달은 바는 만물에는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즉 물아일체를 경험하면 꿈과 현실을 구분짓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실 책을 관통하는 가장 큰 하나의 주제를 꼽자면 이것이 아닐까? 마사키는 찰나의 순간 명멸하는 정열을 꿈꾸면서 계속해서 자연 혹은 최후에는 여인과 하나되는 완벽한 순간을 꿈꾼다. 그리고 나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에 등장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마사키를 왕선악(신선계 혹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으로 이끄는 존재가 아닐까?

 

 그때도 지금과 똑같았다. 마치 시간의 흐름에서 튕겨져나와버린 듯한 느낌. 기차안에 잘못 날아든 나비가 기차의 이 칸 저 칸으로 얼마 안 되는 거리를 날아다니는 사이에 하나둘 정차역을 지나쳐버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생전 처음 보는 땅에 떨어졌다는 느낌. - p.34

 

 키워드3 : 강물소리, 두견새 그리고 절, 엔유, 다카코

 

 뱀에 물린 마사키가 깨어난 절, 그리고 그 곳에 머루르는 엔유 스님, 엔유는 어떤것을 깨달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는 폐불훼석이 있은 후 행각을 돌다가 도쓰카와 온천 여숙에서 무슨 일인가를 겪고 활연대오, 이제까지 득도라 믿어왔던 바가 기껏 나한의 경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다카코는 뱀과 인간 여자의 교접을 통해 태어난 아이다. 그리고 눈에는 살을 품고 있다. 그녀도 일반적인 인간은 아니다 일종의 경계에서 살고있는 사람이다.

 

"아아, 괴로워요. 지금처럼 제 몸을 저주한 적은 없었어요. 당신을 이곳에 불러들이고 만 것이 너무도 괴로워요. 제 마음의 반은 제 것, 나머지는 무언지 정체도 모를 무서운 힘의 것, 누군가를 생각하면 만나고 싶어지지요. 아무리 멀리 있어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부르고 말이요. 제 마음이 원하는 것을 무리하게 이루어버리고 말아요."

 

 왕선악은 인적이 끊긴 이후로 시공간이 밖과는 다르게 분리된 채로 흘러간다. 그리고 마사키가 머물렀던 선방은 경계속의 또 다른 경계이다. 마사키는 밤에 물소리를 듣는다. 밤은 소위 음의 기운이 강해지는 시간이다. 현세와 저승의 경계가 조금 더 엷어지는 시간이다. 엔유는 마사키가 물소리를 들었다고 하자 안색이 변한다.

 

 마사키가 들었던 것은 삼도천의 강물 소리가 아닐까? 불교에서 저승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는 강인 삼도천은 삼도내라고도 하고 죽은지 7일 째되는 날 이 강을 건난다고 한다.

 

 마사키는 뱀에게 물리고 정신을 잃은지 사흘째 되는날 깨어난다. 후에 여관주인으로부터 듣는 다키의 이야기에서도 다키도 산속으로 사라지고 사흘째 되는 날 돌아온다. 7일이 다 되지 않은 다키 역시 마사키와 마찬가지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 혹은 서양에서는 림보라고 부르는 곳에 다녀온 것 아닐까?

 

 마사키는 그로부터도 몇일 지나 보름 동안이나 머무른다. 마사키가 머무르는 동안 몸은 매우 빠르게 회복된다. 몸이 빠르게 회복되지만 꿈과 환상도(혹은 현실) 점차 강해진다. 마사키가 머무는 선방은 다시 현세로 돌아갈 수 있는 최후의 경계선 이고 다키코와 그녀가 머무를 암자는 그 반대편에 위치하는 것 같다.

 

 두견새는 그야 말로 저승길 초입의 새이다.

 

 "이 산은 두견새가 퍽 울어대는군요. 아, 지금 또...... 휘파람새니 다른 이름 모를 새들은 모두 이쪽으로 저녁거리를 찾아날아드는데, 두견이만은 이상하게도 항상 멀리서 울지요....... 저는 저 두견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옛 사람이 어째서 저 새를 일컬어 '저승길에서 온 새' 라 했는지 알 듯한 기분이 듭니다.

 

 마사키는 엔유에 의해 쫓겨나 듯 산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아마 다키가 묻혔을지도 모를 묘지를 지나친다. 그곳은 일종의 이승과 저승 혹은 선계의 경계인 듯 오랜시간 경계 머물던 몸은 현세를 견디지 못하는 마냥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키워드4 : 다키, 마사키 그리고 뱀

 

 그럼 대체 다키와 마사키 이 둘은 왕선악으로 간 것일까? 마사키의 경우는 어떻게 왕선악으로 가게 되었는지 그 여정이 잘드러나 있다 그러나 다키는 여관 주인의 말을 빌어 나오기 때문인지 그 여정이 잘 들어나지는 않는데. 몇가지 단서가 있으니 따라가보도록 하자

 

 일단 둘의 공통점이다.  둘은 아름다운 20대였다. 다키는 여관의 주인의 말을 빌리자면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데도 이따금 퍼뜩 놀랄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다. 마사키는 아수라와 같은 출중하게 매력 넘치는 모습을 온몸에 휘감고 있다고 나온다. 그리고 둘은 달도 없는 밤에 왕선악으로 가서는 초승달이 뜨는 밤 (사흘 후) 돌아오고 정신을 차린다.

 

 둘의 차이점은 둘다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으나 마사키는 정렬적인 흙담즙질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다키는 하얗고, 허망하고 청승 맞은 느낌이 드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뱀을 만났다. 뱀은 나비와 동일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왕선악으로 안내하는 길잡이인 동시에 최후로는 왕선악 내부의 이질적인 공간으로 그들을 납치(?) 하는 존재이며 엔유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것 같다. 사실 다키가 산으로 끌려가서 뱀의 아이를 가지고 내려왔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퍼득 떠오른 것은 그리스 신화였는데 마치 제우스가 온갖 동물로 변해 인간세에 내려와서 자기 씨를 뿌리는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뱀은 (악마? 신? 글쎄다 뭐라고 표현하는게 좋을지는 모르겠다.) 아름다운 다키를 유혹해 자신의 아이를 가지게 한다. 그리고 아름답고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또 한명의 인간을 유혹해 왕선악으로 들인다.

 마사키가 선택된 이유는 아름답고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에게는 바로 다키와는 달리 최고의 한 순간을 위해 자신을 불태울 '정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뱀이 다키를 통해 다카코를 낳은 이유는 마사키의 뮤즈 혹은 세이렌으로 활용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뱀의 큰그림???)

 그리고 그 것을 바라보며 인간이 하늘에서 아름다운 한순간 터지는 불꽃이 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불꽃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그 둘을 바라보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과정에서 좀 더 아름다운 재탄생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엔유는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을 알지만 어쩔수 없는 비자발적 조력자가 되었던 것 같다. 마사키가 시를 쓴다는 것을 이야기 할 때 굳어지는 표정이나 애써 산을 내려가라고 하는 권유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마치 구하고 싶지 않았는데 구했다고 말하는 듯한 문장.

 

 '소승은 처음부터 자비심에서 선비를 구한 것이 아니외다. 한 찰나 '감히' 그냥 지나치려 했던 소승의 교만을 절복 하기 위해 업어왔을 뿐이오."

 

 키워드5 : 도쓰카와

 

 책을 읽다보면 여기서 시간과 공간이 굉장히 불분명 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도쓰카와라는 지명이 그렇다. 도쓰카와는 여러번에 걸쳐서 등장한다. 책 첫페이지에 마사키가 서 있는 곳은 도쓰카와 마을의 왕선악 산중이다. 그리고 홍수의 범람으로 인해 폐허가 된 곳도 도쓰카와 연안이고 엔유가 깨달음 얻은 온천 여숙이 있는 곳도 다키까 빠져 죽은 곳도 도쓰카와이다.

 

 무슨 말인가 하니 도쓰카와는 1890년에 여러 촌이 모여서 생신 새로운 행정구역이다(일본에서 최고로 넓은 촌이라고 한다.) 마사키가 있는 곳은 도쓰카와 마을의(도쓰카와 촌을 번역하다가 이렇게 나온 것일까? 왕선악 산중이라고 표현한다. 마사키가 여정중 만난 노인은 1889년 도쓰카와 강이 범람하여 사람이 죽었다고 말한다. 책 속에는 몇몇 번만 정확한 년도가 나오는데 이것을 잘 꿰어 맞추다보면 다키의 아버지가 대홍수에 죽은 연도와 1889년이 얼추 맞아 들어간다. 

 

 마사키가 왕선악 산중을 벗어나 오타니로 왔으나 (도쓰카와 촌 소속이다.) 여전히 강물 소리가 들린다. 산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죽음의 공간이 이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키워드6 : 죽음

 

 책에서 죽음은 대체로 완벽한 정열의 순간과 동의어로 쓰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죽음을 통해 마사키가 완성한 것은 자신인가 자신의 사랑인가 아니면 한편의 완전한 시인가? 아니면 장자지몽처럼 이 둘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이 한송이 왜솜다리로 아니면 아름다운 나비로 변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키워드7 : 엔딩

 

 책의 결말은 아무런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결국 암자(경계) 남은 것은 나한을 초월한 엔유뿐이다. 엔유는 일종의 관찰자인가? 다들 왜솜다리 꽃으로 백골로, 한줌의 핏물로, 나비로 변해 자연으로 돌아간다. 필멸자로써 피할 수 없는 죽음, 완벽한 정열을 통해 탄생된 죽음 속에서 태어난 한마리의 아름다운 나비(완벽한 작품)

 

 결말 부분에 마사키의 시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사키는 이 책을 따라온 독자일까? 소설은 도입부부터 시간과 공간을 마구 헝클어트리기 시작하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마구 무너뜨린채 독자를 끌여 들였고 이제 당신을 내보낸다는 뜻일까?

 

 키워드8 : 도입

 

 사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데 책을 한번 읽고 두번 읽을 때야 눈에 들어왔는데 이 부분이 마치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해질녁, 도쓰카와 마을 왕선악 산 중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로 홀로 서 있는 청년, 그리고

 

 "대체 내가 어디를 헤매고 있는 것일까?"

 두견새 울음소리가 일제히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 문장 이 후, 두번의 문단을 분절 시키며 이 앞의 문단이 뒤의 문단과 시간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음을 암시하며 자신이 왕선악으로 향하게 된 길을 상기시켜 준다.

 

 이 후, 책 내내 강물 소리와 두견새 소리는 저 멀리서 들려온다. 과연 이것은 다 한바탕 꿈이었고 여기야 말로 엔딩이 아니었을까?

 

 4. 맺음말

 

 서두에서 말했 듯이 읽을 맛이 나는 책이다. 고풍스러운 문장은 차라리 마치 한편의 시와 같다. 그리고 여러가지 고전 설화들의 클리셰를 잘 이용해서 만든 한편의 옛날 이야기 느낌이 나는 책이었다. 굳이 이런식으로 소설을 해체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 길수 있는 좋은 책인 것 같다. (맞는지도 모르겠는게 가장 큰 문제긴하다)

 

 밤이 서서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산속에서는, 어둠은 바닥으로 바닥으로 첩첩이 쌓여 올라온다. 어느 틈엔가 복사뼈를 덮고 무릅을 덮고 문득 가슴팍까지 차오른 것을 깨닫는다.

 

 번역의 힘일까?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관계로 무어라고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책 한권 속에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한 것 같다.

 

 방문이 조금 열렸다. 뜰에 가득 찬 달빛은, 향주머니의 끈을 막 풀어헤친 듯 문 틈새로 들어와 마사키를 감쌌다. 땀에 젖은 팔이 얼음 조각처럼 창백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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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노벨상을 수상했던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책을 읽고나서 알게된 놀라우면서도 슬픈 사실은 작품의 배경이라고도 할 수 있을 헤르만 헤세가 기숙신학교에 입학 한 14세때가 19세기 말엽인 1891년인데 이때의 강압적이고 주위 사람들과 치열하게 경쟁시키며 사회에 순종적인 인재를 양성 교육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주류라는 것에 놀랄 따름이다.

 

2. 주요 내용

 

 독일 구석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그 마을에서 일전에 없던 재능으로 마을에서 촉망 받는 소년이었다. 누구도 그 소년의 재능을 의심하지 않았고 소년의 미래는 소년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부유하지 않는 집안에 태어난 재능있는 소년이 성공 할 수 있는 방법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기숙 신학교에 입학하여 관료나 교수, 성직자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한스은 또래의 다른 소년들과는 달리 교회의 목사, 학교의 교장 선생님 등으로 부터 추가적으로 교육을 받고 입학 시험을 준비한다. 한스는 또래 소년들에게 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생활 하면서도 종종 휴식을 취할 때면 두통을 겪는다.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입학 시험에 응시한 한스는 긴장감으로 시험을 망쳤다고 자책을 하며 고향으로 돌아와 걱정에 휩쌓이자만 곧 2등으로 합격한 사실을 통보를 받으며 자신의 실수 때문에 1등으로 합격하지 못한 사실을 아쉬워 한다. 한스는 그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자유시간을 허락 받아 그 동안 공부를 하느라 즐기지 못했던 낚시, 수영 등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나는데. 그 이유는 물고기를 선물하기 위해 방문했던 교장 선생님이 자유 시간을 즐기라고 권유하면서도 기숙학교에서 공부할 내용을 선행 학습하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어른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훌룡하게 성정했다. 길거리에서 뛰노는 일과 장난질 따위는 스스로 그만두었다.

 

 한스는 결국 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또래 아이들 보다 우월하다는 감정을 느끼며 그리고 자신의 것인지 타인의 것인지도 모를 성공에 대한 욕망을 느끼며 낚시대는 버리고 토끼장은 박살을 내버리고 잠시 동안 즐겼던 여유를 포기기하고는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선생님들이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의무는 아이들의 거친 본능을 누르고 국가가 원하는 평화롭고 절제된 이상을 심어 주는 것이다. 현재 행복하게 살고 있는 시민이나 성실한 관료들도 이러한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낙폭한 개혁가나 공허한 이상에 사로잡힌 몽상가가 되었을 것이다.

 

 한스는 기숙학교에 입학하고도 별 다른 생활의 변화가 없다. 그저 공부에 매진할 뿐이다. 기숙사의 다른 학생들이 서로 우정을 쌓아가는 동안에도 한스는 오히려 자신에게 손을 내밀려는 다른 소년의 손을 뿌리친다. 그러던 중 오직 한 소년만이 한스와 우정을 쌓아가게 되는데 그 소년의 이름은 하일러 였다.

 

 한스가 부지런하고 평범하지만 모범생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면 하일러는 나태해보지만 감수성이 풍부하고 진정으로 천재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두 소년은 다른 사람들은 배척한 채 자신들 만의 우정을 이어나가나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잠시 동안 멀어진다. 그렇지만 힌딩거라는 소년이 사고로 인해 사망하고 난 이후 하일러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던 한스는 하일러와 다시 우정을 회복한다.

 

 선생님들은 살아 있는 학생을 대할 때와는 다른 눈으로 죽은 학생을 바라보앗다. 평소에 함부로 상처를 주었던 젊음의 가치를 되새겨 보는 듯했다.

 

 모범생이었던 한스는 하일러의 영향을 받은 듯 점점 선생님들이 원하는 모범적인 학생의 상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기 시작한다. 이에 교장 선생님까지 나서서 한스에게 충고하지만 이미 한스의 변해버린 모습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한스는 점점 환상을 보는 듯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일러가 기숙학교를 탈출하는 일을 벌여 퇴학 당하고 난 후 홀로남은 한스는 이 현상이 점점 심해지다 결국은 신경쇠약이라는 판정을 받고 요양을 명목으로 고향으로 퇴출 당한다.

 

 고향으로 퇴출 당한 한스는 마을 사람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다. 마을에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소년은 이제 낙오자가 되어버렸다. 한스는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을 찾으려는 듯 마을 구석 구석을 더듬지만 이미 남겨진 것은 없다. 한스에게 낚시를 가르쳐주었던 다른 소년도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주머니도 남아있지 않다. 홀로 남겨진 한스에게 잠시간 사랑이 찾아오는 듯 했지만 그것 역시 홀연히 떠나버린다.

 

 그는 다시는 어린아이가 될 수 없고 리제의 곁에도 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스는 기계공이 되기로 하고 견습생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동안 육체적 노동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는 듯 했지만 다른 기계공들과 술을 마신 후 강물에 빠져 사망하고 만다. 소년은 결국 수래바퀴 아래 깔려 버리고 만 것이다.

 

 장례식에는 기계공들과 호기심에 찬 구경꾼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한스는 다시 한번 유명한 인물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3. 맺으며

 

 서두에서 말했다시피 책을 읽고 난 후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과 저 시대의 교육을 비교해봤을 때 뭐가 그렇게 달라졌나 라는 의문이든다.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 여기게 하고 오직 높은 점수와 출세를 위해 공부하게 하고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에서 부터 시작되는 선행 학습까지.

 

 우리나라 부모 혹은 어른 중에는 이런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일이다 혹은 충고다 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아이들 자신의 꿈과 희망이 아닌 어른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강요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좋게 말하면 관심이고 나쁘게 말하면 정말 나쁜 오지랍인 것 같다. 왜 게임도 아닌데 아이를 자신의 아바타로 키워 자신의 못다이룬 꿈을 성취하려는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문득 생각나는 것은 메가스터디 대표인 손주은 대표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공부 잘하는 것도 유전이고 열심히하는 것도 유전이다 과연 아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는 부모는 공부를 열심히 했는가?')

 

 한스는 초콜릿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마지못해 한입 베어 물었다. 숙모에게 초콜릿을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혹은 내가 어린 시절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아이가 그것을 좋아하라는 법은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 혹은 배려가, 인생의 선배라고 해주는 충고 한마디가 타인이 힘겹게 끌고 가고 있는 수레에 오히려 짐을 실어주는 것은 아닐지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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