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로이스 로리
- 출판
- 비룡소
- 출판일
- 2007.05.18
내가 직접 고민하고, 세상과 부딪혀 때때로는 실패를 겪으며 선택하는 삶이 아닌 다른 이에 의해 계획되고 준비된, 통제가 되지만 실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된 삶은 과연 어떨까?
다른 이들이 준비해준 이런 삶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일마다 되지 않을 때, 무슨 선택이 옳은 것인지 내가 잘하는 게 대체 뭘까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할 때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줄지도 모를 멘토를 찾기도 하고 누군가는 신을 찾기도 한다.
책에 등장하는 마을은 이런 것들을 규칙과 원로들이 대신한다.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면밀하게 감시되고 작은 규칙 위반도 넘어가는 일 없이 마을 전체에 설치된 스피커로 방송 된다.
그들은 결혼, 출산 등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개입한다. 목적은 최적 혹은 실패하지 않는 기초가족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실패하지 않는 마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마을의 가구들은 실용적으로 설계된 데다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각 가구의 쓰임새는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조너스가 아는 한 마을에 있는 어떤 문도 결코 잠겨 있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의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고 출산 역시 직접 하지 않고 직업적인 임산부가 낳은 아이를 부부를 관찰하던 원로들이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을 하고 부부가 신청을 하면 한 해의 특정일에 마치 아파트 분양을 받는 것처럼 입양을 하는 방식이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직업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부터 기록되고 관찰한 바를 바탕으로 12살 생일에 아이들의 직업이 원로의 발표로 결정이 된다. 물론 아이가 그 결정이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할 경우 이의는 제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조너스의 경우 그것조차 규칙으로 금지되어있다.
지금이 바로 차이를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을 공동체에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행동을 표준화했습니다.
많은 규칙과 감시, 통제가 되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굉장히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자격이 있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각자의 개성은 죽이는 대신 차별은 금지되어있다. 먹을 것도 늘 배달된다.
조금 재미는 없을지는 모르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없는 마을이다. 과연 여기에서 사람들은 행복할까?
책이 그려내는 마을은 통제되어있지만 주민들의 삶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 생활은 늘 질서 정연하고 예측이 가능해. 그래서 별로 힘이 들지 않지. 이 삶은 바로 원로들이 선택한 결과야.
12살 앞으로의 직업이 정해지는 날을 기다리며 불안해하던 조너스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기억보유자'가 된다.
조너스는 원래 기억 보유자에서 기억 전달자로 바뀐 스승으로부터 기억을 전달받기 시작하며 마을이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우리가 '늘 같음 상태'에 들어가자 눈은 쓸모없는 게 되었지.
전 단지 우리만 있다고, 현재만 있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것이 평등해 보이고 안정된 것 같은 마을에도 차별과 속임수가 숨어있다.
모든 직업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 같지만 조너스 가족의 대화에는 육체 노동자에 대한 천대가 담겨있고, 규칙은 필요에 따라 교묘하게 무시되거나 변경된다.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쓰라는 규칙과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교묘하게 표현을 바꿔치기 함으로써 잔학한 행위를 왜곡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조너스는 마을을 탈출할 것을 결심한다.
'늘 같음 상태.', 책에서 마을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마을의 겉모습은 이상적이다. 아무도 굶지 않고 아프면 방치되지 않고 치료하며 외모 같은 것으로 차별받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체계적인 보육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성장해서는 적절한 직업을 가지고, 원한다면 가족을 구성하고 늙어서는 마을 구성원으로부터 돌봄을 받는다.
정말 요람에서 무덤까지 개인이 걱정할 거리가 없다. 유일한 걱정거리라고는 실수나 범법행위로 인한 임무 해제라는 조치가 유일한 것 같다.
하지만 그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면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조너스의 직업이 된 기억 보유자라는 직업도 그런 것이다. 기억 보유자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의도적으로 제거된 감정, 기억 등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가지고 있는 직업이다.
여기에는 행복한 기억도 있지만 트라우마로 남을 법한 지독한 기억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고작 12살 아이에게, 그것도 직업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다른 직업에 없는 규칙을 새롭게 만들면서 떠넘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물론 최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억보유자가 남과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외로움과 끔찍한 기억들로 인한 괴로움을 제외한다면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는 꽤 특별한 대우를 받는 편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 모든 사람이 부담을 느끼고 고통을 당할 거야. 사람들은 그걸 원하지 않아.
책을 말미에 조너스는 마을을 떠난다. 그 행위로 인해 그동안 자신이 전달받은 기억들을 마을 사람들에게 공유하게 됨으로써 혼란과 고통이 따를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기억을 전달해 주고 돌봐오던 가브리엘이 마을에서 요구하는 표준화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무 해제라는 표현을 빙자한 살해를 당 할 것임을 알고는 미처 준비도 다 되지 못한 상태에서 급히 마을을 떠난다.
마침내 완전히 구속과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조너스는 과연 행복해졌을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조너스가 기억 보유자로 선택되고 잃어버렸던 감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과연 나는 고민이나 위험 같은 것이 없는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포기할 수 있을까? 였다.
물론 '늘 같음 상태'라는 게 애매모호하니 그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아주 많은 돈으로 치환해서 생각한다면 이미 사회에 찌들어버린 나 같은 어른들은 생각하기가 좀 더 수월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는 이미 조너스의 마을 같은 삶에 꽤나 근접해 있지 않은가였다.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에 나가서 통제를 받고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감정을 죽여버린 채 일을 한다. 개성이 중요하다고 외치긴 하지만 인스타 등을 보며 남들처럼 살지 못해 우울해하거나 그들의 흔적을 좇아간다.
사랑이 아닌 타인에 판단에 의한 결혼은 사실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조너스의 마을 사람들은 태어난 이후로부터 훈련되고 교육되어 애초에 가지지 못했고 주변인들도 없기에 결핍을 느끼지 못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다. 우린 가졌던 것을 잃기도 하고 아니면 남들이 한없이 많이 가진 것을 바라보기만 하며 결핍과 분노 같은 것을 느끼고는 한다.
어느 쪽이 더 불행한 걸까?
조너스는 가브리엘과 마을을 탈출해 부상과 굶주림에 시달린다.
그러나 조너스은 마을에 머물렀다면 가브리엘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죽었을 것이며 자신은 감정, 색깔, 사랑 등에 굶주리며 평생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너스와 가브리엘은 계속해서 추위와 배고픔, 부상에 시달리며 약해진다.
그리고 포기하고 싶을 때면 기억 전달자로부터 받은 기억을 가브리엘과 나누며 앞으로 나간다. 따뜻함의 기억, 행복함의 기억 등 괴로울 정도로 짧지만 그것들이 조너스를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해 준다.
기억과 감정은 한 사람을 고통과 절망에 빠트리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미 지나가 버렸기에 해결할 수도,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는 문제도 기억과 감정이 섞이면 그 사람에게 고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런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게 해주는 것은 한 조각의 작은 행복한 기억 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것들을 배제하고 극도로 효율적인 삶만을 추구하는 세계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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