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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2016년 한해를 마무리 하는 때이다. 한 때, 정치적으로는 쓰레기통에서 꽃을 피웠다고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이룩한 나라로 경제적으로는 한강의 기적, 아시아의 네마리 용 중 하나로 찬사를 받던 나라가 한 순간 샤머니즘의 나라로 조롱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다행이도 어리석은 위정자의 행동과는 다르게 평화로운 촛불 시위를 주도한 일반 대중들의 모습에 그나마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던 국격을 조금이나마 세웠던 한해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의 문제는 산적해 있다. 2016년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문제와 앞으로 다가올 경제적, 정치적 어려움들이 우리를 압도 할 것만 같은 시기이다.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모든 나라들도 이와 같은 문제를 겪었다. 최초의 지중해의 패자였던 로마는 본토가 한니발에 의해 유린 당하기도 했고, 몽골은 그 시작부터가 처참하기 까지 했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당시 유럽 최강대국 이었던 스페인의 압박을 받았었고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로도 여전히 흑인의 인권 문제로 골머리르 앓았었다.

 

 이 나라들은 대체 어떻게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최강자로 우뚝 설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어디일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한다.

 

2. 내 용

 

 이 책은 서두에서도 말했다 시피 과거와 현대의 강대국들의 역사를 통해 그들이 당대 최고의 강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를 찾고 있다. 그 대상은 로마, 몽골, 영국, 네덜란드, 미국이다.

 

 당시 역사적 배경과 주요사건들 그리고 그들과 대비되는 국가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들의 성공 비결을 분석한다.

 

 먼저 로마이다. 로마가 세워지고 멸망하기 전까지 그들을 가장 위협했던 국가는 어디였을까?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다투었던 카르타고이다. 카르타고는 당시 로마보다 훨씬 더 부유하고 강대한 국가였다. 그들의 항해술과 지중해에 미치는 영향력 그리고 국토 자체의 생산력까지 로마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 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1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시칠리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지중해에 대한 기득권 역시 점점 사그라들게 된다.

 

 이 후, 거의 개인적인 복수전으로 시작 된 것이 한니발의 로마 본토에 대한 침공 2차 포에니 전쟁이었다. 당시는 로마는 현대와 같이 단일 국가의 개념이 아니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여러 도시 국가들의 동맹체라고 보아야 한다.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로마 본토로 들어가며 이런 동맹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 한니발이 보기에 이 동맹이라는 것은 느슨하기 그지 없어 우두머리가 침입자에 비해서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다면 금방 깨어지고 말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는 달랐다. 칸나이 회전을 통해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준 한니발은 많은 도시들이 로마를 저버리고 자신에게 투항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몇 도시들을 제외하고는 한니발에게 투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그에게 저항하기 시작한다. 결국 한니발은 로마에서 퇴각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는 칸나이 회전에서 살아 남은 로마의 젊은 장수에게 자신과 똑같은 전술로 당하고 만다.  

 

 압도적인 실력과 전술을 보여 주었던 한니발이 전쟁에서 패한 이유는 무엇이고 로마가 살아 남아서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칸나이 회전 이후의 도시 국가들의 양상이었다. 만약 다른 도시와 로마의 결속력이 한니발의 예측 만큼이나 약했다면 카르타고는 로마를 붕괴 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결속력은 한니발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했다.

 

 로마 이전의 지중해의 패자 중 하나였던 그리스의 아테네 역시도 이런 동맹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델로스 동맹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결속력은 로마의 그것보다 훨씬 약했는데. 그것은 바로 동맹국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였다. 아테네는 어느 순간부터 순혈주의를 추구했다.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도 아테네 시민권자가 아니었다는 것은 우리를 충분히 놀라게 할 만하다. 그리고 동맹국 시민을 2등 시민으로 취급하며 아테네와 다른 도시국가를 분리하 였지만. 그러나 신생국가였던 로마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을 벌이고 다른 도시를 복속 시키기는 했지만 그들이 했던 것은 정복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쟁에서 진 도시국가들의 귀족과 유력자들에게 로마 시민권과 원로원의 자리를 내어주며 그들을 동화 시켜 나갔고 덕분에 그들은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가지지 못했던 결속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몽골은 어땟을까? 우리가 흔히 몽골제국에 대해서 가지는 인상은 이럴 것이다. 초원의 야만적인 유목민으로 시작해 강력하고 거대한 군대로 전 세계로 파죽지세로 뻗어나간 대제국,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학살과 약탈 뭐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몽골의 군대에서 몽골인의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약 10만명 정도 였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정주 민족도 아닌 유목민의 식량 생산력을 생각해봤을 때 그 인구가 많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고작 10만명의 병력을 가지고 유라시아 전역에 걸친 거대한 제국을 건설 했던 몽골은 과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몽골은 전쟁을 벌여 침입을 하기 전 먼저 항복 사절을 보낸다. 그래서 항복을 한다면 모든 이들을 살려주고 만약 항복하지 않는다면 그곳을 철하게 파괴하고 학살 한다. 그를 반복하면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이들을 수용하는 것은 적극적이었다. 그렇다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이들 이를 테면 기술자들을 마구 징집하여 노예처럼 끌고 다닌 것이 아니라 최고의 대우를 해주며 전쟁터에 참여시켰다.

 

 몽골이 전쟁터에서 승리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군대의 우수한 기동력과 전술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정복한 지역이 가지고 있던 우수한 기술력을 빠르게 흡수하고 받아 들임으로써 언제나 한발짝 앞선 기술력을 가진 상태에서 전쟁을 이끌 수 있었다. 그들은 결코 잔인 하지만 않았다 그들의 소문의 그들의 잔혹함은 최소한의 사망자를 내기 위해 일부러 포장된 것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종교적인 면과 인종적인 면에서 굉장히 관대하고 개방적이었다.

 

신이 인간에게 다섯 손가락을 주신 것 처럼, 인류에게 행복을 추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주셨다. 너희들에겐 경전을 주셨고 우리에겐 예언자를 주셨다. 우리는 예언자의 말씀 아래 보호받는다. 그리고 평화롭게 지낸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방식에 맞게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 뭉케칸이 루브룩 사제에게

 

 영국과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은 당시 최고의 군대를 가지고 있던 스페인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야 했다. 당시 영국의 국력은 스페인에 비하면 형편 없다고 할 정도 였는데 특히 육군 전력은 거의 전무하다 시피했다. 그덕분에 영국은 스페인을 어떻게든 바다에서 막아내야 했었고 필요는 발전을 만들어 냈다. 영국은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던 덕분에 어떻게든 대체 할 것을 만들어 내었고 결국은 스페인 무적함대의 침공을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성공 신화는 영국 국민들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아 결국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이룩하는데 쓰일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의 국가적 신화는 침략과 해군, 침입에서 나라를 방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영웅인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최고의 승리를 영국에 안겨줬습니다. 그리고 시대를 바궈 넬슨의 트라팔가 해전으로 국가적 신화가 교체됩니다...(중략)... 1588년 이후 영국은 위대하고 강력한 해상국가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믿습니다...(중략)...1714년 영국은 매우 뛰어난 해군력을 갖게 됩니다. 1588년이 아닙니다. 해상을 장악하는 데 120년이 걸렸습니다. 스스로에게 계속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계속 사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는 당시 유럽의 최강대국이 었던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여야 했다. 독립전쟁의 이유는 종교적 자유 때문이었데 당시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는 독실한 카톨릭교 신자로써 카톨릭 외의 모든 종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당시 종교개혁이 후 신교도로 개종한 사람들과 유대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독립을 위해 전쟁이 벌어지고 스페인 제국에 살고 있던 많은 재능있던 사람들은 종교적 탄압을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하고 그들의 자본과 기술은 네덜란드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결국은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미국은 태생부터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그 곳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은 거의 존재감을 잃어 버렸다. 그들은 설립 될 때부터 유럽과는 다르게 종교적, 정치적 자유를 지니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노예로 이 대륙에 처음 발을 디뎠던 흑인만은 예외였다. 남북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노예해방이 이루어졌지만 남부의 흑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다. 그들의 참정권은 제한 받았고 백인들의 폭력과 탄압은 여전했다.

 

 결국 미국은 이 사태를 정리하고 어느 새, 버락 오바바라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 이 후 퇴임을 얼마 남겨두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결론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이 책에서 소개했던 다섯 국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관용과 개방성에 있다. 지금에서야 당연하지만 당시로써는 금기를 깨어버리는 듯 한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정복한 민족의 고위층을 우리의 고위층으로 편입 시키고 민족과 종교를 가리지 않고 능력있는 자를 기용하여 나라를 운영하고 제도를 정비한다. 그야 말로 능력이 있고 믿을 만하다면 적대적이었던 나라의 사람들도 수용하고 더불어 살아가기를 꺼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공통의 문화적 신념과 신화를 통해 할 수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한 것이 그 나라가 성공적으로 발전 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3. 마무리

 

 먼저 이 책에 대한 아쉬운점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다. 책은 지극이 유럽적이고 서양적인 관점에서 쓰여진 것 같다. 그들이 이야기 하는 개방성과 포용력은(미국의 사례를 제외하면) 오직 백인들을 향해서만 열려 있는 것이었다는 것을 간과하는것 같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들을 착취하며 성공적인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발전 방향과는 달리 세계 곳곳에는 국수주의와 민족주의가 널리 퍼지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특히나 유럽쪽은 IS의 테러로 인해 국경을 닫자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EU에서도 탈퇴하자는 분위기도 끓어 오르고 있다.

 

 미국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 시켰지만, 그의 후임으로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무슬림들의 입국을 차단하는 종교적 자유 제한하고 인종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대통령을 그들의 손으로 뽑았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사실 우리가 다른 나라를 걱정해야 할 시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상 할 정도로 단일민족이라는 정서가 뿌리 깊게 자리잡은 것 같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럴리도 없을 텐데 말이다. 그 덕분인지 외국인에 대해서 극단적인 배타주의와 극단적인 찬양이 공존하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버린 것 같다.

 

 우리나라의 특이한 점은 (언론이라고 해야하나?) 외국에서 성공한 한국계 인물들을 우리민족으로 끌어들여 자랑하기 바쁘다. 특이한 현상이다. 1세대도 아닌 2,3세대 이민자들에게 그러는 것을 보면 이해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대부분 프랑스에서 장관을 지냈던 사람처럼 자신의 조국을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외국계 이민자들에게 오히려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도 있는 실정이다. 우리에게는 왜 스티브 잡스가 없냐고 소리친다. 우리에게는 왜 오바마 같은 대통령이 없냐고 질문한다. 설사 그런 사람이 우리중에 태어나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았을 지라도 그 뜻을 다 이룰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그들은 그저 눈파란 외국이지 않았을까?

 

 젊은 이들은 헬조선을 외치며 탈조선을 꿈꾼다. 우리 세대에게 더 이상 한강의 기적과 같은 신화는 이미 퇴색되어 버린지 오래이다. 오히려 근래 들어서는 부끄러운 기억들만 가득하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평화로운 촛불 시위를 바라보며 이것이 우리의 또 다른 성공적인 신화가 되어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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