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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때가 때라서 그런지 오랜만에 페스트를 다시 읽게 되었다. 같은 까뮈의 소설이긴 하지만 이방인을 읽은 사람에 비해 페스트를 읽은 사람을 만나본 일은 거의 없다. 아무래도 노벨 문학상의 영향일까? 라고 생각하기에는 두 책이 주제는 비슷하지만 굉장히 다르다. (일단 두께부터가 페스트가 압도적으로 두껍다.)

 

 그리고 혹시나 페스트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나 묘사를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인간에게 갑작스레 가해지는 부조리 혹은 악으로써 페스트라는 질병을 택하고 질병에 저항하는 개개인의 인물이 중점을 맞춰 써져있다.

 

 만약 정말 흑사병이 중세 유럽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 읽고 싶다면 존 켈 리가 지은 흑사병 시대의 재구성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참고 이 책은 절판 되어 일반 서점에 팔지는 않는다. 운이 좋다면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고, 영어에 자신이 있다면 “The Great Mortality” 라는 원서를 읽으면 될 것이다. (구글북에서 ebook으로도 판다.)

 

2. 책의 줄거리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단순하다. 어느 날, 오랑시에 쥐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불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어 오랫동안 잊혀졌던 병이 잘 작동하는 시계의 추처럼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상을 영위하던 오랑시의 시민들은 덮친다. 시민들은 사라졌을 것이라 믿었던 병이 오랑시에 나타나자 큰 혼란에 빠진다.

 

 책은 이 혼란스러운 도시에서 몇몇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의사인 리외이다. 그러나 때가 때이니만큼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파늘루 신부이다. 그는 페스가 확산되고 사망자가 늘어 갈수록 위기 극복을하기 위해 신앙에 의존해야 된다고 소리를 높인다.

 

 페스트는 사악한 자들에게 가해진 신의 징벌이라 설교를 하며 신에게 구원을 받기 위해 순종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페스트가 지속되고 자신의 눈앞에서 아무런 죄 없는 어린 오통의 아들이 밤사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스스로의 말이 설득력을 잃어 버린 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앙을 완전히 놓지는 않는다. 그는 페스트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십자가를 꼭 쥐고 의사의 진료를 거부하며 죽어간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화자인 리외는 까뮈가 그리는 이상적인 인물에 가까울 것이다. 의사인 그는 특별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의사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비루한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페스트가 오랑시를 덮치자 무기력해보이던 리외가 점차 변해간다. 그는 자신의 주변을 파괴하는 거대한 부조리에 대항해 점차 현실주의자로 변해간다.

 

 그는 인간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에 부조리함을 느끼지만 그것보다 더 페스트라는 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듯 죽어나가는 것이 더욱 부조리하다고 여긴다. 리외에게 페스트라는 질병은 파늘루 신부의 페스트처럼 추상적이지도 관념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현실에 엄연히 실존하고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무참히 파괴하는 현실이었다.

 

 그는 신의 구원을 바라지 않고 페스트에 걸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페스트에 걸린 이들이 다른 이들에게 병을 옮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페스트에 걸렸다면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리외 외에도 그랑, 타루,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여기며 도시에서 탈출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랑베르까지 페스트에게 투쟁을 한다.

 

 전염병은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 자기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자원봉사대는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말했다.

 

 물론 스스로와 타인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 있는가하면 이 혼란을 일으킨 페스트를 사랑하고 이용하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거나 결정을 미루는 관리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이 혼란한 와중에 이익을 얻고 오히려 평온함을 느낀다.

 

 그 중하나가 코타르이다. 페스트가 발생하기 전 자살을 시도했던 코타르는 페스트로 인해 도시가 혼란에 빠지고 자신의 자살을 하려고 했던 사건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페스트가 끝나가는 것을 무척이나 안타까워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 그쪽하곤 상관 없어요.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라면... 결국 하나 명백한 것은 우리가 페스트와 함께 지낸 날부터 나는 여기가 참 좋다는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하지만 시내에는 탈진하거나 낙담해 보이지도 않고 만족감의 살아 있는 표상으로 남아 있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코타르였다.

 

 그는 혼자서 죄수가 되는 것보다는 모두와 함께 포위당하는 쪽을 더 좋아한다.

 

 페스트가 거의 끝나갈 때쯤, 이 도시의 시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도적으로 사람들을 조직하고 이끌며 영웅적인 활약을 보였던 타루가 페스트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허탈한 웃음이 나올 정도로 부조리하다.

 

 그리고 페스트는 나타날 때처럼 갑자기 끝이 난다.

 

 고양이, 지난봄 이후로 처음으로 보는 고양이였다.

 

 마지막으로 리외는 페스트가 언제나 또 다시 우리를 찾아 올 수 있음을 경고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3. 마치며

 

 책에 나오는 페스트처럼 코로나19는 언젠가는 잠잠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얼마나 오래 우리 주변에 머물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빼앗아가고 상처를 남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각자가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돌아봐야하는 때인 것 같다. 적어도 코타르처럼은 되지 말아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리외는 추상이 행복보다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나는 일이 있으며, 그럴 때는 오직 추상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중략)...이렇게 해서, 그리고 새로운 차원에서 리외는 그 긴 시기에 우리 도시의 삶 전체를 형성했던, 각자의 행복과 페스트라는 추상 사이에서 그런 종류의 지긋지긋한 투쟁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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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사르트르와 함께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이다. 카뮈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유명한 책이기도 하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 책에 대한 감성도 섰을 텐데, 요 근래 그 동안의 번역이 잘 못 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새로운 번역본으로 출간도 되면서 한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2. 줄거리

 

 이야기는 뫼르소의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뫼르소의 반응은 무척이나 담담하다. 아니 어머니의 죽음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얼이 빠진 듯 멍해보이기도 한다. 그는 사람들의 동정과 배웅을 받으며 어머니가 머물고 있던 양로원으로 간다.

 

 양로원의 원장을 만나고, 그곳에서 어머니의 지인을 만나고 장례를 치른다. 양로원 원장은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뫼르소에게 이것저것 권하지만 뫼르소는 따르지 않는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뫼르소에게 어머니의 죽음이란 그저 하나의 특이한 사건일 뿐인 것 같았다.

 

서로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지만 마치 지난밤이 우리들의 친밀감을 두텁게 만든 것 같았다.

 

아름다운 하루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야외에 나가 본 일이 없었다. 엄마 일만 아니었으면 산책하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인정상의 문제거든요.

 

 장례식이 끝나고 뫼르소는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는 바다가에서 전에 함께 일한 적이있던 마리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

 

나는 일요일이 다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처럼 일터에 복귀한 뫼르소를 사장은 친절히 대해줬다. 그는 살갑게 어머니의 나이를 묻지만 뫼르소는 제대로 대답을하지 못한다.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보다 그를 더 기분 나쁘게 한 것은 저녁에 흠뻑 젖은 채 걸려있는 회전식 수건이었다.

 

 퇴근 후, 집으로 향하던 그는 어둑한 층계에서 스패니얼 개와 함께사는 살라마노 영감과 만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레몽 생테스라는 남자를 만난다. 살라마노 영감은 다른 사람들엑 '불쌍한 사람' 취급을 당하는 남자이고 레몽은 다른 이들에게 '경멸'을 당하는 부류였다. 두 사람들 주변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뫼르소는 레몽의 치정 이야기를 듣는다. 뫼르소는 레몽을 대신 해 정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그와 친구가 된다.

 

 일주일이 지나고, 뫼르소는 마리와 만난다. 그리고 저녁 레몽이 정부를 폭행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호되게 당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 앞이라 당당하려 했지만 무척 비굴한 모습이었다. 후에 레몽은 뫼르소에게 그의 정부가 그에게 '버릇없이 굴었다.'라고 경찰에 증언해 줄 것을 요청했고 뫼르소는 그것을 받아 들였다.

 

 그날 저녁 살라마노 영감은 그의 유일한 동반자였던 개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렸다.뫼르소는 그에게 동물보호소에 찾아가라는 충고를 해준다.

 

엄마 생각이 났지만 이튿날 아침에 일ㅇ찍 일어나야 했고 배도 별로고프지 않아 저녁도 굶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레몽이 회사로 전화를 걸어 뫼르소와 여자친구를 친구의 별장에 초대했다. 그리고 아랍인이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장이 파리 출장소에 갈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한다.

 

사장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 생활을 바꿔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저녁에 마리가 뫼르소에게 자신과 결혼 할 생각이 있냐라는 질문에 '그녀가 원한다면'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 살라마노 영감을 만나 그의 인생사와 하소연을 듣는다.

 

 일요일, 레몽과 만나 마리와 함께 그의 친구 마송의 별장으로 간다. 그리고 레몽을 미행하고 있다는 아랍인과 마주친다. 별장 앞 바다에서 물놀이를 즐긴다. 점심을 먹고 바닷가를 거닐던 중 아랍인들과 마주쳐 싸움이 일어난다. 레몽은 여기서 칼에 상처를 입는다. 분에 찬 레몽은 다시 바닷가를 나가고 아랍인과 또 조우한다. 레몽이 총을 쏘려하지만 제지당하고 총을 뫼르소에게 맡긴다. 아랍인들은 도망간다.

 

 다시 별장 앞으로 돌아오지만, 뫼르소는 홀로 바닷가로 향한다. 다시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뫼르소는 칼을 들고 자신을 위협하는 아랍인을 쏜다.

 

 하지만 한 걸음을, 다만 한 걸음을 옮겼을 뿐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칼을 뽑아 태양빛에 반짝이며 내게 겨누었다. 강철 위에서 빛이 반짝 튀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내 이마를 쑤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고 한낮의 균형, 행복을 느끼던 바닷가의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 총알은 보이지도 않게 깊이 박혔다. 마치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 같았다.

 

 여기까지가 1부의 내용이다. 2부는 체포 된 후 심문과 재판 그리고 그 사형으로 이어진다. 2부에서도 그의 특이한 모습들이 드러난다.

 

3. 마치며

 

 2부 줄거리는 뭉텅 짤라내고 마무리로 넘어와 버렸다.

 

 1부의 모습과 2부의 모습은 상당히 차이가 난다. 1부에서는 뫼르소가 굉장히 이상한처럼 여겨진다. 외부자극에는 철저히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는 듯 하면서도 그러나 자신의 내적 욕망은 충실히 따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시 여기는 관습 같은것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인지 편견도 없어 남들이 기피하는 인물들까지 자연스럽게 받아 들인다. 대체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2부에서는 그를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상해 보인다. 그를 재판하는 사람들은 1부에서 독자들이 공감 했을 만한 내용들을 비판하며 뫼르소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런데 그 사형을 선고하는 죄목은 아랍인을 살해한 것에 대한 것이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무언가 이상하다.

 

 검사는 뫼르소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념을 말하며 뫼르소가 자신의 인생을 부정한다고 말한다.

 

그게 그의 신념이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의심한다면 그의 삶이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했다.

"당신은 내 인생이 무의미해지길 바랍니까?"

 

 간수와 기자들은 자기내들끼리 시끄럽게 떠들고 기자들은 뫼르소에게 일이 잘 풀리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의 기사는 다르지만.

 

"우리들은 당신 사건을 좀 부풀려서 썼어요. 여름철은 신문사에겐 불황기거든요. 기삿거리가 될 만한 건 당신 사건과 직계존속살해밖에 없었어요."

 

"도대체 피고는 어머니를 장례 치른 것으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죄로 기소 된 것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나는 이자가 냉혹한 범죄자의 마음을 갖고 자기 어머니를 묻었기 때문에 이 사람의 유죄 또한 주장하는 것입니다."

 

 뫼르소는 마치 구경꾼처럼 자신의 재판을 바라보다. 사형수가 된 이후로도 자신의 삶에 온전히 집중한다. 그에게 있어서는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왜냐하면 삶의 끝에는 모두 죽음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깨닫는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보고 싶어졌던 게 틀림없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 마치 형제 같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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