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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 성, 권력' 왠지 많은 사람들이 익히 제목을 잘 알고 있는 '총, 균, 쇠'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주제 역시 비슷하다. 고대부터 근세 혹은 현대의 인간 역사의 줄기를 분석하고 역사의 변곡점 혹은 그렇게 흘러가게 된 주되 ㄴ요소가 무엇인지를 분석한 책이다.

 

 당연히 책은 제목처럼 우리 인간의 역사를 바꾸어 온것이 노동, 성, 권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나에게 책 내용 자체는 크게 흥미롭지 않았다. 읽고 있자면 다 어디선가 한번 들어보거나 읽어본 내용이었고, 제목에 적힌 주제가 어떻게 역사라는 커다란 옷감에서 씨줄과 날줄의 역활을 했었는지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에도 선명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물론 나의 능력 부족이겠지만.)

 

 신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피지배계층을 수탈하는 권력과 그에 따른 강제적 노동이(혹은 노예가) 현대 자본주의에 이르러 '사용자'와 '임금노동자'로 둔갑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책은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책의 곳곳에 인류 역사의 어느 순간에서건 지배라는 피라미드의 가장 최하단에는 여성이 있었음을 저자는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책을 읽다가 몇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문자라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었다. 그런데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가장 낮은 사람들을 위해 문자를 만든 세종대왕이 세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고 내가 1차적으로 내린 결론은 역사는 처음 의도가 어쨋든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도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는 모양이나 명칭이 바뀔 뿐이지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점이다. 사람이 모이고 잉여 물자가 생기면 위아래라는 권력이 생기고 권력자는 피지배자에게 강제적 혹은 그럴듯한 사유로 노동을 시키고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그 동안은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문장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며, 동시에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우리 각 개인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미래를 향해 투영하며, 각 개인과 처해있는 문화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애를 쓴다.

 

 '사회주의는 빈곤과 결핍 상태에서는 완성될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은 상대하다 보면 모든 꿈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결핍은 불평등을 낳는다. 먹을거리와 입을 옷, 그리고 살 집이 충분하지 않으면, 소수의 사람들이 능력이 닿는 한 모든 것을 움켜쥐고 나머지 사람들은 굶주리게 된다. 누더기를 걸치고 더러운 빈민굴에 몰려 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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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사실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대체 요즘 같이 인터넷이 발달하여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손 쉽게 이루어지고 A.I가 발달하는, 전문가의 권위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약해졌다고 여겨지는 지금 무슨 전문가의 독재 타령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이 몸의 어딘가가 눈에 띄지 않게 아픈 일이 생기면 초록창에 지식인을 먼저 찾는지 의사를 먼저 찾아가는지 생각해보자, 최순실 사태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 이들은 전문가들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활동하던 일반인들 이었다.)

 

 그렇지만 굳이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책 띠지에 적힌 내용, "중국의 덩샤오핑, 한국의 박정희, 싱가포르의 리콴유, 국가의 고도성장은 독재자의 능력 덕분인가?" 라는 말과 부제처럼 붙어있는 '경제학자, 독재자 그리고 빈다들의 잊힌권리' 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그 시기에 우리나라가 성장했던 이유는 다분히 골디락스라 일컬어지는 당시 국제시장의 상황, 그리고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력과 국가적으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수탈에 의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당시가 살기 좋았다고 추억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소위 추억보정에다가(아니 다들 젊었을 적을 그리워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엄청난 성장시기에 사회의 최하층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콩고물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테크노라트적 환상은 빈곤이 전문적인 능력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결과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빈곤은 실제로 권리의 부족에서 비로소디는 문제이다."

 

2. 빈 서판 vs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과연 우리가 한 국가 혹은 민족의 발전을 논할 때, 그 국가의 역사를 무시한채 빈 서판에 글을 쓰듯이 좋은 제도, 좋은 기술 등 소위 그 국가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선진화 되고 앞선 것들을 도입하면 그 국가가 자동적으로 발전 할 수 있을까?

 사실 이 개념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관리관점과 인종적 관점이 적용된 이야기이다. 유럽열강들의 지배를 받던 아프리카에 식민지들에게 적용된 개념이었는데. 그들의 삶과 정신은 미개하기 짝이 없어 지배자인 제국들이 새로운 제도 등의 도입을 통해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과론 적으로만 봤을 때, 그 것은 대 실패였는데, 아프리카 내부적으로 수 많은 사항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것에 관한 논쟁은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개화기에 갑오개혁이나 중국에서도 변법자강운동 같은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이 바뀌지 않고 단 시간에 제도와 문물한 도입하려 했던 시도는 대부분 실패였다. (특이하게 성공한 메이지 유신이 있기는 했지만서도...)

 

"식민지의 역사적 사례를 보면, 테크로라트적 해법을 중시했으며 그에 동반하여 식민지 독재자가 행하는 권리 침해를 무시 했다는 점이 잘 드러난다."

 

3. 국가인가 vs 개인인가

 

 저렇게 소 제목을 적고나니 언듯보기에는 전체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를 비교하는 것 마냥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국가에도 개인에 대한 권리 침해가 생각보다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우리는 국가의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기도 하는데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일까?

 

 가끔 국가를 위해 때로는 희생할 줄 도 알아야 한다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이민을 떠나는 이들에게 배신자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란 우리에게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인가?

 

"계획은 개인들이 따를 때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계획자들은 개인의 권리를 허용 할 수 없다."

 

"개인의 발전보다 나라의 발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망각하는 또하나의 잘못된 비극적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4. 테크노라트(전문가 관료집단) vs 시장(문제해결자 들의 연합)

 

 이건 생각보다 흔한 논쟁이다. 과연 전문화된 관료집단이 국가의 발전을 이끌 수 있을까? 이 부분은 특히나 독재시대때의 발전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우리나라 국민들이 많이 기대하는 것 같다. 대통령이나 다른 어떤 특출난 인물이 이끌어서 발전하는 신화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미 사회는 엄청나게 복잡해졌다. 전문가는 어느 특정분야에 대해서만 남들 보다 많이 알뿐이다. 그 전문가가 많이 모여있다고 해봤자 속속들이 잘 알 수는 없는 법이다. (회사의 부장님이 아무리 잘 안다고 해도 사원이 처리하는 일의 속사정과 미세하게 변하는 일들을 속속들이 알아기는 어려운 법이다.)

 

 "의도적인 설계자들이 더욱 알기 어려운 것은 묵시적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은 한 사람이 해당 내용을 상세히 적어 설명하더라도 좀 처럼 알아듣기 어렵다. 우리가 사회를 경영하기 위해 중앙 집중적인 전문지식에 의존 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대 필요한 광대한 지식에 비해서 각 개인이 아는 것은 너무 작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 가운데 누가 가장 잘 아는지도 좀 처럼 잘 모른다."

 

5. 인자한 독재자의 허상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인자한 독재자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살고 있다. 특별한 카리스마로 좌중을 휘어잡고 국가를 단합시키고 한 점에 에너지를 쏟아 국가를 끌고나가는 모습, 그로인한 경제성장 속에서 열광하는 민중들의 모습, 그렇지만 지도자는 자신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않고 검소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것이 우리가 상상하는 인자한 독재자의 모습이 아닐까? (이야 이거 완전 히틀러 아니냐...?)

 

 이러한 환상은 독재를 겪지 않은 국가에서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는 이유를 사람들의 심리적 편향에서 찾고 있다. 세상에는 성공한 독재자들 보다는 실패한 독재자가 훨씬 많다 그렇지만 우리가 리콴유 등 성공한 독재자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성공한 것을 기억하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심리적 편향과 언론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변에 주식이 실패했다고 하는 인물을 찾아보자 그리고 성공했다고 떠는 인물들은 찾아보자..)

 

 그리고 우리가 흔히 국가 성장의 지표라고 말하는 GDP 이것역이 신뢰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독재국가에서 굳이 통계에 힘쓸 필요도 없을 뿐더러 조작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이 연설에도 말했듯이 우리가 사람을 죽이는 총을 생산해도 범죄자를 가두는 감옥을 만들고 거기에 거는 자물쇠를 만들어도 우리의 GDP는 올라간다.

 

"독재는 집단주의적 가치를 영속시키고, 자유로운 도시와 국가는 개인주의적 가치를 영속 시킨다."

 

"독재는 집단주의적 가치를 키워주고, 집단주의적 가치는 독재를 키워준다. 독재의 역사를 가진 지역들에서는 서로를 신뢰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가치관이 매우 낮게 나타난다."

 

6. 마치며

 

 책은 어떻게 보면 아미타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 책은 소수집단(테크노라트) 혹은 개인이 권력을 가지고 다른 이들이 지배하면서 내세우는 명분인 발전이라는 것의 허상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개인에 대한 특히나 가난하고 힘 없는 이들에대한 권리 침해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이야기 하고 있다.

 

 책을 요약해서 쓰다보니 오해가 생길까 싶어 다시하는 말이지만 이 책은 소위 시장만능주의나 신자유주의를 옹호 하는 책이 아니다. 국가는 늘 실패를 하니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국가발전이라는 명목 혹은 이상 아래서 이루어지는 개인 권리에 대한 부당한 침해에 굴복하지 말라는 소수의 집단과 권력자들에게 우리의 권리를 모두 맡겨두지 진정한 민주주의를 옹호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잊지말자 그들이 주인이 아니다 우리가 주인이다.

 

"정치적 권리와 경제적 권리를 아우르는 통합적 관점에서 볼 때, 개인의 권리는 민간 및 정부의 공급자 모두가 그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힘이다."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은 시장의 시험도 민주적 제도의 시험도 치르지 않는 행위자들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다."

 

"이제는 오래도록 이루어지지 못한 논쟁을 벌여야 할 때다. 부자와 빈자의 불평등한 권리에 대한 침묵을 이제 끝내야 할 때다. 모든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자유를 누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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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당연히 의도 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탄핵으로 인해 치뤄지는 소위 벚꽃 대선으로 인해 이 영화의 의미가 더욱 특별 한 것 같다. 최민식, 곽도원 등 배우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흥행 할 수 있을 것 같은 영화가 매우 시의 적절할 때 개봉을 한 것 같다.

 

  영화는 3선 서울시장 직을 노리는 변종구의(최민식) 선거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개인들의 사정과 배신, 정치 공작을 보여주며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정치란 혹은 선거란 쇼비지니스일 뿐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듯 한 영화이다.

 

 영화 초반의 약간은 긴장한 듯 하지만 신념에 차있어 보이는 박경(심은경)과 특유의 의뭉스러우면서도 뭔가 위압감이 느껴지는 심혁수(곽도원)의 투 샷과 둘 다 모든 것을 내보이지 않고 조금은 숨기며 서로 간을 보는 듯한 변종구와 심혁수의 투 샷은 영화 내내 집중을 할 수 있게 해준 요소 였던 것 같다.

 

2. 결국은 쇼 일 뿐인가?

 

 영화는 다이나믹 듀오의 '거기서 거기' 가 흘러나오면서 시작한다. 변종구가 개최한 청춘 콘서트에서 그는 다이나믹 듀오와 함께 랩을 하며 청년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며 권위를 내려놓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바로 다음 테이크에서 그런 모습이 산산히 깨어지며 그것은 그저 쇼일 뿐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선거는 똥물에서 진주 꺼내는 거야, 손에 똥 안 묻히고 진주 꺼낼 수 있겠어 없겠어?

 

 그 외에도 많은 장면에서 그런 모습이 나오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모습은 변종구가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다. 영화 내내 변종구가 술을 마시는 장면이 여러차례 나오는 데 그 때마다 소주를 마신다. 양주를 부어 마실 것 같은 크리스털 잔에도 그는 소주를 가득 부어마시고 사케가 어울릴 것 같은 잔에도 소주를 부어 마신다. 이런 표현이 맞을 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무언가 있는 듯 (신념이든 정의 든 무엇이 든 그럴듯 한 것) 행동하지만 결국 본질은 평범한 우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만 같다.

 

 심혁수 구두를 닦는다. 좋은 신발이 좋은 곳을 보내준다는 말이 있지 않냐며 매우 열심히 그것이 그의 유일한 취미라고 말을 한다. 변종구는 노동자 출신의 정치인이고 곽병규는 검사 출신의 정치인다. 과연 무엇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일까?

 

3. 왠지 평범한 인물들

 

 사실 내부자나 다른 정치 영화에서 우리는 각종 악인들을 만나왔다. 특히나 요 근래에 있었던 정치 상황을 고려하자면 악인으로 변종구는 영화치고는 자못 평범한 것만 같다. 비록 권력욕에서 비롯된 일로 여러가지 잘 못을 저지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소위 기레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이는 정제이(문소리) 역시 어떻게 보면 그저 자기일을 열심히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심혁수 역시 타인을 깔아뭉개기는 하지만 그저 권력욕에 많이 취한 듯 보인다. 신념에 차서 큰일을 할 것만 같던 박경 역시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건 영화야!"를 외치는 듯 처럼 튀는 역활이 없었던 것 같다. 

 언듯 무언가 있어보이는 변종구도 어린 소녀 무당을 만나러 가서 소녀의 사람들이 아직 니가 진짜라는 것을 모른다라는 말 한마디에 눈물을 삼킨다. 변종구도 그저 누군가에 인정 받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었을 지도 모른다.

 

4. 결국은 유권자가 답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앞에서 말한 것 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서 좋았다. 영화는 제목처럼 특별시민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 유권자들에게 메세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진실을 알고 있는 동료 정치인, 기자 소위 특별시민들은 잘못을 한 이들을 벌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가지고 무언가를 얻고 싶을 뿐이다. 그를 벌 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평범한 다수의 유권자들 뿐이다.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변종구는 여러장의 상추에 소고기를 몇점 얹어 상조의 입에 쑤셔넣는다. 한쌈에 입이 가득차지만 변종구는 또 다시 크게 한쌈을 싸서 상조의 입에 억지로 밀어넣고 상조는 켁켁거린다. 마치 개처럼... 우리가 정치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밥과 고기를 주는 사람이 아니다. 아니 그들이 우리에게 밥과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개가 아니고 그들은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는 평범한 시민일 뿐이지 모르지만 우리의 한표는 최고의 권력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저는 시장님이 그렇게 싫어하시는 유권자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심판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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