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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고전이란 책의 이름은 다 알지만 읽어 본 사람은 없는, 혹은 읽다 보면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앞 뒤 내용을 다 읽어보면 내가 아는 그 내용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한번쯤, 울타리에 페인트를 칠하는 소년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 교육을 할 때 '일에 대한 관점을 바꿔라.'라 같은 교훈적인 이야기로 사용되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이 이야기가 등장하는 책이 바로 '톰 소여의 모험'이다.

법칙이란 바로 어른이건 아이 이건 어떤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려면 그 물건을 손에 넣기 어렵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게도 톰 소여의 모험은 그 정도로 피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던 책이었다. 미국 남부의 작은 시골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은 요즘 아이들이 읽어도 톰의 행동이 유치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소년다운 과장된 행동과 복잡하면서도 지극히 단순하고 과잉된 감정은 웃기기도 하며 나도 이랬던 것 같다는 감상에 젖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편 이제는 모험이라는 것을 몸으로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작은 스크린 안에서 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그것과는 반대되는 힙함 또는 낭만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서 산적만큼 예의 바른 사람은 없는 거야.

줄거리


"톰 소여의 모험"은 마크 트웨인이 1876년에 발표한 고전 소설로,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 세인트피터스버그를 배경으로 톰 소여라는 소년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소설은 톰의 장난기 많고 자유분방한 성격과 그의 친구들과의 다양한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톰 소여는 이모 폴리의 집에서 살고 있다. 그는 모범적인 학생과는 거리가 멀고, 자주 학교를 빼먹고 장난을 치며 문제를 일으킨다. 톰은 베키 대처라는 새로 온 여자아이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여러 가지 모험을 계획한다. 이 과정에서 톰은 종종 친구들과 함께 다니며, 그중에서도 허클베리 핀과 가장 가까운 사이다.

허클베리 핀은 어른들의 규율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소년으로, 톰과 함께 위험한 모험에 빠져들게 된다.

"톰, 남들이 그러는 것은 나랑 상관없어. 나는 남들이 아니잖아."


톰과 허클베리는 어느 날 밤 공동묘지에서 우연히 목격한 살인 사건으로 인해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인디언 조라는 악당이 의사 로빈슨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두 소년은 겁에 질려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대신 무고한 머프 포터가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버린다. 톰은 자신의 양심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법정에서 진실을 증언을 한다. 이로 인해 머프 포터는 풀려나지만, 인디언 조는 도망친다.

톰은 즉시 금주 소년단에서 탈퇴했는데, 판사는 바로 그날 밤 병사게 악화돼 사망했다. 톰은 그런 사람은 앞으로 절대로 믿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톰과 허클베리는 어느 날 문득 장난 삼아 보물을 찾기 놀이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우연히 인디언 조 숨겨둔 금화를 발견하게 되고, 톰과 허클베리는 또 다시 위험한 모험을 겪게 되지만 어린 아이 다운 행운과 용기로 이를 극복하고 이를 통해 마을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톰 소여는 다시 한번 빛나는 영웅이 되었다.


이후 톰은 베키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허클베리 핀은 문명화된 삶을 거부하려 하지만 결국 톰의 권유로 과거의 생활을 청산하기로 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마치며


소설은 톰 소여의 별 숨겨진 뜻이 없고 다분히 재미를 위한 장난기 많은 모험을 통해 순수한 어린이의 세계를 묘사하며 동시에 당시 시대의 사회적 규범과 개인의 자유 사이의 갈등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다 지독하게 규칙적이어서 정말 견딜 수가 없어.
허락받을 필요 없이 뭐든 할 수 있다면 죽어도 좋겠어.


별 의미 없는 구슬이나 잡동사니를 자랑하고 서로 교환하며, 마치 조울증이 걸린 것처럼 쉽게 기뻐했다가 마치 크나큰 시련을 당한 것처럼 슬퍼하는 어린 소년, 소녀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흥분하고 화를 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톰은 이제 베키 새처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단정했다. 명예면 충분했다. 그는 명예를 위해 살고 싶었다.


그러면서 책에 나오는 강과 호수, 산이 어우러진 시골 근교의 풍경에서 벌어지는 소년의 별 뜻 없는 모험과 생각지 못한 우연이 겹쳐서 만든 행운과 포기하지 않는 용기로 얻어 낸 성취는 독자의 낭만을 자극하는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이를 통해 "톰 소여의 모험"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 독자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작품으로,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 외 기억에 남는 문구

사실 그도 '뽐내고' 있었다.

다음 순간 톰이 나무껍질에 쓴 글을 읽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 '이 애가 설사 백만 가지 죄를 짓는다 해도 나는 용서할 수 있어!"

그러나 복수에 대한 열망도 사라지고 곧 유쾌한 생각이 들었다.

소년들이 훌륭하게 복수한 셈이었다. 방학이 시작되었다.

술도 마시고 욕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혀 하고 싶지 않았다.

좋기는 우라지게 좋아서 땅바닥에 주저앉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고 뒹굴지도 못한단 말이지.

부자가 된다는 게 남들이 떠들어대듯 그리 대단한 게 아니더라고. 걱정에 또 걱정, 진땀에 또 진땀,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을 항상 갖도록 만드는 거야.

나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어.

톰 소여의 모험
현대 미국문학의 아버지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미국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저자의 대표적 작품 <톰 소여의 모험>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완역한 것이다. 19세기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강이 흐르는 한 마을에서, 공부보다 모험을 좋아하는 톰과 그의 친구 헉의 성장기를 풍자와 유머로 솔직하고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위트가 번뜩이는 저자 특유의 문체를 되살려냈다. <톰 소여의 모험>의 초판에 실렸던 트루 W. 윌리엄스의 세밀한 펜화도 옮겨왔다.
저자
마크 트웨인
출판
문예출판사
출판일
201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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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노벨상을 수상했던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책을 읽고나서 알게된 놀라우면서도 슬픈 사실은 작품의 배경이라고도 할 수 있을 헤르만 헤세가 기숙신학교에 입학 한 14세때가 19세기 말엽인 1891년인데 이때의 강압적이고 주위 사람들과 치열하게 경쟁시키며 사회에 순종적인 인재를 양성 교육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주류라는 것에 놀랄 따름이다.

 

2. 주요 내용

 

 독일 구석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그 마을에서 일전에 없던 재능으로 마을에서 촉망 받는 소년이었다. 누구도 그 소년의 재능을 의심하지 않았고 소년의 미래는 소년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부유하지 않는 집안에 태어난 재능있는 소년이 성공 할 수 있는 방법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기숙 신학교에 입학하여 관료나 교수, 성직자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한스은 또래의 다른 소년들과는 달리 교회의 목사, 학교의 교장 선생님 등으로 부터 추가적으로 교육을 받고 입학 시험을 준비한다. 한스는 또래 소년들에게 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생활 하면서도 종종 휴식을 취할 때면 두통을 겪는다.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입학 시험에 응시한 한스는 긴장감으로 시험을 망쳤다고 자책을 하며 고향으로 돌아와 걱정에 휩쌓이자만 곧 2등으로 합격한 사실을 통보를 받으며 자신의 실수 때문에 1등으로 합격하지 못한 사실을 아쉬워 한다. 한스는 그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자유시간을 허락 받아 그 동안 공부를 하느라 즐기지 못했던 낚시, 수영 등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나는데. 그 이유는 물고기를 선물하기 위해 방문했던 교장 선생님이 자유 시간을 즐기라고 권유하면서도 기숙학교에서 공부할 내용을 선행 학습하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어른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훌룡하게 성정했다. 길거리에서 뛰노는 일과 장난질 따위는 스스로 그만두었다.

 

 한스는 결국 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또래 아이들 보다 우월하다는 감정을 느끼며 그리고 자신의 것인지 타인의 것인지도 모를 성공에 대한 욕망을 느끼며 낚시대는 버리고 토끼장은 박살을 내버리고 잠시 동안 즐겼던 여유를 포기기하고는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선생님들이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의무는 아이들의 거친 본능을 누르고 국가가 원하는 평화롭고 절제된 이상을 심어 주는 것이다. 현재 행복하게 살고 있는 시민이나 성실한 관료들도 이러한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낙폭한 개혁가나 공허한 이상에 사로잡힌 몽상가가 되었을 것이다.

 

 한스는 기숙학교에 입학하고도 별 다른 생활의 변화가 없다. 그저 공부에 매진할 뿐이다. 기숙사의 다른 학생들이 서로 우정을 쌓아가는 동안에도 한스는 오히려 자신에게 손을 내밀려는 다른 소년의 손을 뿌리친다. 그러던 중 오직 한 소년만이 한스와 우정을 쌓아가게 되는데 그 소년의 이름은 하일러 였다.

 

 한스가 부지런하고 평범하지만 모범생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면 하일러는 나태해보지만 감수성이 풍부하고 진정으로 천재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두 소년은 다른 사람들은 배척한 채 자신들 만의 우정을 이어나가나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잠시 동안 멀어진다. 그렇지만 힌딩거라는 소년이 사고로 인해 사망하고 난 이후 하일러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던 한스는 하일러와 다시 우정을 회복한다.

 

 선생님들은 살아 있는 학생을 대할 때와는 다른 눈으로 죽은 학생을 바라보앗다. 평소에 함부로 상처를 주었던 젊음의 가치를 되새겨 보는 듯했다.

 

 모범생이었던 한스는 하일러의 영향을 받은 듯 점점 선생님들이 원하는 모범적인 학생의 상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기 시작한다. 이에 교장 선생님까지 나서서 한스에게 충고하지만 이미 한스의 변해버린 모습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한스는 점점 환상을 보는 듯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일러가 기숙학교를 탈출하는 일을 벌여 퇴학 당하고 난 후 홀로남은 한스는 이 현상이 점점 심해지다 결국은 신경쇠약이라는 판정을 받고 요양을 명목으로 고향으로 퇴출 당한다.

 

 고향으로 퇴출 당한 한스는 마을 사람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다. 마을에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소년은 이제 낙오자가 되어버렸다. 한스는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을 찾으려는 듯 마을 구석 구석을 더듬지만 이미 남겨진 것은 없다. 한스에게 낚시를 가르쳐주었던 다른 소년도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주머니도 남아있지 않다. 홀로 남겨진 한스에게 잠시간 사랑이 찾아오는 듯 했지만 그것 역시 홀연히 떠나버린다.

 

 그는 다시는 어린아이가 될 수 없고 리제의 곁에도 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스는 기계공이 되기로 하고 견습생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동안 육체적 노동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는 듯 했지만 다른 기계공들과 술을 마신 후 강물에 빠져 사망하고 만다. 소년은 결국 수래바퀴 아래 깔려 버리고 만 것이다.

 

 장례식에는 기계공들과 호기심에 찬 구경꾼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한스는 다시 한번 유명한 인물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3. 맺으며

 

 서두에서 말했다시피 책을 읽고 난 후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과 저 시대의 교육을 비교해봤을 때 뭐가 그렇게 달라졌나 라는 의문이든다.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 여기게 하고 오직 높은 점수와 출세를 위해 공부하게 하고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에서 부터 시작되는 선행 학습까지.

 

 우리나라 부모 혹은 어른 중에는 이런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일이다 혹은 충고다 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아이들 자신의 꿈과 희망이 아닌 어른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강요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좋게 말하면 관심이고 나쁘게 말하면 정말 나쁜 오지랍인 것 같다. 왜 게임도 아닌데 아이를 자신의 아바타로 키워 자신의 못다이룬 꿈을 성취하려는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문득 생각나는 것은 메가스터디 대표인 손주은 대표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공부 잘하는 것도 유전이고 열심히하는 것도 유전이다 과연 아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는 부모는 공부를 열심히 했는가?')

 

 한스는 초콜릿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마지못해 한입 베어 물었다. 숙모에게 초콜릿을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혹은 내가 어린 시절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아이가 그것을 좋아하라는 법은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 혹은 배려가, 인생의 선배라고 해주는 충고 한마디가 타인이 힘겹게 끌고 가고 있는 수레에 오히려 짐을 실어주는 것은 아닐지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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